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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h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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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21:21:1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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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9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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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14:24:0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200쪽 학자금 대출 비율 이미지 표를 반응형 HTML 표로 변환; 원문 수치·평균·출처 보존&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lt;br /&gt;
오찬호 (지은이)개마고원2013-12-06&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비정규직인 건 자기계발 안한 탓?&#039;&#039;&#039;&lt;br /&gt;
 문제는 이십대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문제가 과거보다 더 심각하고도 끔찍해진 상황임에도 이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다는 데 있다. 즉,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이들이 묶여 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너희 때는 원래 그런 거야!”와 같은 말로 이들을 격려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쉽게 말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말은 이들의 삶이나 처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단 얘기다.&lt;br /&gt;
 예컨대 100명의 이십대 중 20명만이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고 하자. 여기서 이 20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 숫자라 하자. 그럴 경우, 죽도록 고생하면 정규직 된다고 말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생 여부와 상관없이 100명 중 80명은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 전체 ‘파이’의 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딴 식의 말로 이십대를 위로한다고 하자.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정규직이 되지 못한 21번째 사람부터는 그의 현실이 ‘고생 안 한 결과’로 인식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문제는 자기계발과 성공의 간격이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강조되는 것은 늘 자기계발이라는 점이다. 즉, 문제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자기계발의 논리가 사실은 평생 극복만 주문 받는 개인을 만들어버린다. 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 이는 ‘가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 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1~8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결국 “회사에서 부려먹기 좋은 사람” 이 되도록 자기 시간을 버릴 줄 아는 게 이 관리기법의 핵심인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화는 공모전 6개를 동시에 준비하기 위해 커피 믹스를 몇십 개씩 씹어 먹으면서 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다. 취업 준비를 위해 당연히 위장병이 걸려야 하는, 그리고 그것조차 이겨내야 하는 괴물이 취업하는 사회를 어떻게 ‘좋은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lt;br /&gt;
 하지만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상태를 위로한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는 이십대를 계속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라면서 다독인다. 그렇게 이들은 ‘열정이 있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며, “내가 옳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자기위안을 한다. 그런 판인데, 비정규직들이 감히 ‘감사하지는 않고’ 눈에 불을 켜고 파업을 한다? 이십대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지 않겠는가.&lt;br /&gt;
 상식적으로 ‘열정’을 평가받겠다는 건 그 자체가 퇴행적이다. 열정, 의지, 성실성⋯⋯ 이런 건 지극히 주관적 영역에서 평가되는 것이기에, 본원적으로 객관의 잣대를 들이댈 성질이 아니다. 즉, 겉으로는 ‘시간관리’이겠지만 사실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든 결국 그 평가는 이를 ‘열정’이라 인정하고 받아줄 권한이 있는 누군가의 주관성에 기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lt;br /&gt;
 사실 세상은 이러한 ‘타인의 주관성’에 기초하여 사람 능력을 판단하다가 점차 ‘문서화된 정량적 지표’에 근거를 두는 쪽으로, 즉 평가기준에서 주관성을 줄여가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말하자면 과거처럼 황제가 그렇다고 하면, 동네이장이 틀렸다고 하면 이 규정이 저 규정으로 해석되고, 저 규정이 이 규정으로 둔갑하는 그런 시대에서 조금씩 탈피해왔다. 한데 시간관리를 ‘열정’의 이름으로 둔갑시킨다는 건, 결국 자신을 평가자에게 선택되어야만 하는 ‘을’의 위치에 올려놓는 일에 불과하다.&lt;br /&gt;
 그럼에도 이 ‘을’들의 자리나마 쉽사리 선택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시간관리의 ‘결과’가 없으니 자신을 그나마 선택될 가능성이 있는 ‘대기상태’로 유지시키고자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 시간을 ‘나처럼’ 보내지 않은 사람을 결코 ‘나와 같은 급’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은 노동자라고? 큰일 날 소리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받아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시간관리’만이라도 평가받길 원하는 것이다.&lt;br /&gt;
 하지만 극도의 자기통제로 이루어지는 자기계발을 그 ‘고통’이 약속한 어떤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수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만난 수십 명의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취업준비를 ‘자기계발’로 해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자체를 ‘대단한 만족’으로 즉각 여기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누가 ‘취업 때문에’(사실상) 억지로 해야 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겠는가? 새벽같이 매일 가야 하는 토익학원도 죽을 맛이다. 정말이지 토익점수를 기업에서 평가기준으로 삼지만 않는다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 않다고? 만약 ‘대한민국 어떤 기업에서도 토익점수를 요구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그럼에도 진정 ‘자기’계발을 위해 토익학원을 선택할 대학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lt;br /&gt;
 이처럼 대학생들은 취업이라는 목적을 위한 엄격한 자기통제식 자기계발이 공허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아를 구속하는 자기계발을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기계발의 의미와 가치를 격하시키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왜? 그 과정의 결과를 어쨌든 ‘스펙’의 한 줄로 적어야 하니까.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이십대의 자기계발은 끝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형태이지만 매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취업준비에 찌든 독수리 5형제는 늘 술잔이 여러 번 돌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거죠?”라면서 애써 이 모든 걸 긍정하곤 했다. 그 순간 이들의 눈빛에 비치던 그 간절한 진심이란⋯⋯.&lt;br /&gt;
 그러나 이 진심은 애석하게도 타인을 평가하는 애꿎은 집착으로 변질된다. 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기준으로 모든 세상사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계발을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십대의 눈을 만들어버렸고, 그 이십대의 눈은 곧 자기계발서 자체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십대 스스로 그 시각에 갇혀, 결국은 다시 자기계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십대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던 바로 ‘그 사람들’이 되기 싫어서다. 이것이 자신을 자기통제적인 자기계발로 몰아붙이게 하고, 덩달아 ‘시간관리’에 대한 신념은 더욱 강화되며, 이 신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다. 이제 이십대는 살아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극단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확언컨대, 이는 이십대 본인들에게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일상의 순간순간을 지배하는 ‘칼날’로 돌아올 것이다. 아니, 이미 돌아와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1~9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나는 2009년도와 2012년도에 걸쳐 ‘대학생들의 가치관’을 조사하면서 이를 확인한 바 있는데, 그런 연대의식이 중요하다고 답한 대학생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외국어능력’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90%가 넘지만 말이다.&lt;br /&gt;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자기계발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자 했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 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심성 여린 A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경험한 점장의 횡포에 대한 서러움은, 늘 강한 심성을 가진 덕분에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내는 B가 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먹 한 대 맞은 고통은 두 대 맞은 고통보다 그저 ‘낮은’ 순위로 이해될 뿐이다.&lt;br /&gt;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타인의 상황을 늘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곤 한다. 그 근거로서 저자 자신, 혹은 유명 인사가 주인공으로 설정된다. 당연히 이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총량은 무지막지하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다. 그런데 성공한다. 청소부를 했던 사람이 대통령도 되었고(이명박), 빈농의 자식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고(정주영), 비닐하우스 집에 살면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양학선) 식이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그런 스토리 안에서 아파하는 이십대를 질타한다. 그 정도 수준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웬만한 고통이니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거라면서.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주인공들을 접할 때마다, 이십대들은 십중팔구 ‘지금 내가 힘든 건 힘든 축에도 못 끼는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취업준비 어렵다는 하소연은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된다. 이는 자연스레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그렇게 고통의 비교 법칙이 이십대를 통제한다.&lt;br /&gt;
 이렇게 이십대들에게 개인의 고통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누군가를 본받으면서 마땅히 참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건, 앞선 장에 등장한 이십대들은 한편으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면서 또 한편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이 또 어딨는가.&lt;br /&gt;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의 호소는 자신들의 고통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기에 나타난 절규나 다름없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셈이다. 자신을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자신이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또한 이들은 고통의 비교 법칙을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다. 취업대란이란 말이 상징하듯, 이십대들이 마주하게 되는 고통 자체가 객관적으로 엄청 늘어나 있다. 신입생 때부터 해야 될 일은 상상을 초월하며, 게다가 그 보상마저 확실하지 않으니 심신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공감할 여유가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나만큼’ 힘들진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단 말이다.&lt;br /&gt;
&lt;br /&gt;
 &#039;&#039;&#039;둘째: 편견의 확대재생산&#039;&#039;&#039; &lt;br /&gt;
 고통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기존의 편견이 더 강화된다. 기실 ‘공감’이란 단지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한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그래서 타인의 상황을 깊고 넓게 이해할수록 당연히 타인을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재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로 이렇게 되는 걸 일컬어 ‘공감대가 넓다’고 하지 않는가.&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책에서는 논의를 가장 심플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름값’이 높은 대학들을 소개했지만, 내가 여러 대학에 강의를 다니면서 확인해보면, 이 속성은 어떤 대학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 한다. 행여나 후자가 전자를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전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난리가 난다. 그렇게 4년제는 다시 2년제를, 2년제는 또 같은 기준에 근거해서 자기들 내부를 쪼개고 줄세운다. 모두가 이렇게 같은 논리를 가지고 가해자 역할을 하며, 또 그래서 당연히 피해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도 매우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사회 구조가 그 엄청난 불공정성에도 어떻게든 유지되는 것은 이처럼 모든 사회적 구성원들이 이 구조를 적극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의 피해자들이 가장 충실한 구조의 유지자로 기여하기에 사회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나간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앞서 여러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 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명문대든 아니든 내가 만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 모든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이해했다.&lt;br /&gt;
 흔히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 한다. 소비사회에서의 개인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어떤 부류인지를 드러낸다. 오늘날 이십대들이 대학이라는 맥락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들이 학력을 근거로 우월감과 열등감을 갖는 모습은 싸구려를 부끄러워하고 명품을 가졌을 때 당당해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경영학이 ‘보편적’ 학풍으로 존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자기계발 시대가 빚은 지독한 학력위계주의 모습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은 사실상 기업의 논리를 체득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사고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재해석하는 일이 인문사회 학문에 비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해석하라!’  ‘상상력을 발휘하라!’ 등의 주문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lt;br /&gt;
 경영학과의 수업 풍경은 전국 모든 대학이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이는 기업에서 뽑고자 하는 표준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한 ‘맞춤식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재무회계를 배웠는데 대학마다, 또는 어떤 교수이냐에 따라 ‘다르게’ 배웠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경영학에서는 독특하게 해석한다느니 하는 발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명제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지 이를 의심하는 비판적 사고력은 위험하다. (하략)&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이십대가 구원을 기다리는 ‘88만원세대’로 구성되는 과정은,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선택 무능력’의 징표로 이해되고 있는 ‘최하층계층’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한 것과 흡사하다. 쉽게 말하면, 대중매체에 이른바 휴먼다큐나 휴먼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불쌍한 사람들’의 무능력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비춰지면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동정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에는 “저러니까 가난하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9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그 전에 먼저 말해둘 것은, 사실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논할 때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이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라는 자기계발 담론에 따르자면 가급적 기존의 룰에 충실한 것이 개인에게 훨씬 이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를 바꾸는 건 힘들고 불확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건 개인에겐 큰 손해다. 자연히 자기계발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굳이 문제제기하지 않는 태도가 일상화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0&amp;lt;/h3&amp;gt;&lt;br /&gt;
&amp;lt;div id=&amp;quot;student-loan-table&amp;quot; style=&amp;quot;clear:both;&amp;quot;&amp;gt;&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도표 6〉 서울지역 주요 대학별 전체학생 대비 학자금 대출자 비율(2010년 1학기)&amp;lt;/strong&amp;gt;&amp;lt;/p&amp;gt;&lt;br /&gt;
&amp;lt;p style=&amp;quot;text-align:right;&amp;quot;&amp;gt;단위: %&amp;lt;/p&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display:flex; flex-wrap:wrap; gap:1em; align-items:flex-star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ex:1 1 20em; min-width:0;&amp;quot;&amp;gt;&lt;br /&gt;
&amp;lt;table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display:table; width:100%; margin:0; text-align:center;&amp;quot;&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학(여대 제외)&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출비율&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비고&amp;lt;/th&amp;gt;&amp;lt;/tr&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row&amp;quot;&amp;gt;서울대&amp;lt;/th&amp;gt;&amp;lt;td&amp;gt;5.5&amp;lt;/td&amp;gt;&amp;lt;td rowspan=&amp;quot;4&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amp;gt;평균&amp;lt;br&amp;gt;7.9&amp;lt;/td&amp;gt;&amp;lt;/t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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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amp;gt;출처: 대학알리미 → 통합비교 → 대학재정 → 학자금대출&amp;lt;/p&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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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 &#039;&#039;&#039;CPA의 사회학&#039;&#039;&#039; &lt;br /&gt;
 아무리 그래도 경쟁 사회에서 차별 대우는 불가피한 일이고, 그 객관적 기준으로 ‘능력’만한 잣대가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학력위계주의의 처참한 실상을 강의시간에 언급할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능력 자체에 차이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죠. 고시처럼 오로지 성적만으로 뽑는 시험에서도 학교서열에 따라 합격률이 다르잖아요” 하는 반론을 많이 들었다.&lt;br /&gt;
 나는 학교별 역량 차이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고시 합격률, 대기업 합격률 순위는 대학서열에 거의 비례한다. 하지만 그 수치가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일 수는 없다. 왜? 그런 차이에는 이미 불공정한 과정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lt;br /&gt;
 CPA(공인회계사) 시험에서 합격을 결정하는 데 ‘학교이름’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점수대로 당락이 결정될 뿐이다. 내가 만난 재준이와 범진이는 이 시험을 준비했다. 재준이는 서울 상위권대에 다니고 있었고, 범진이는 경기도 소재 학교에 다녔다. 이들은 준비한 첫 해 둘 다 1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재준이는 그 이듬해에 2차까지 합격해서 지금은 연봉 7000만 원을 받으면서 굴지의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범진이는 그 다음해에 시험 자체를 포기했다. 그 이후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지금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되어 본봉 120만 원에 인센티브에 따라 아주 운이 좋으면 300만 원 정도 번다. 자, 이 두 명의 현재 삶은 공정한 경쟁의 대가일까? CPA 시험에 학력 변수가 개입하지 않았으니, 이 결과는 공정한 걸까?&lt;br /&gt;
 모든 시험이 그러하듯이, CPA 시험 역시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기획단계와 실제 결심 및 준비단계 그리고 응시 및 실패했을 시 재도전의 순으로 진행된다. 재준이는 최초 결심부터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넌 언제쯤부터 준비할래?”라는 말을 경영학과에 입학할 때부터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교수들은 강의 중에도 “여러분 같은 인재들은⋯⋯” “우리 학교 정도면⋯⋯”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부모님들은 “그래 넌 충분히 될 거야!”라고 다독여주신다. 그러나 범진이는 달랐다. 일단 그 학교에서는 아무도 CPA에 관심이 없었다. 정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CPA 준비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았다. 부모님도 시큰둥하신다. 사실 부모님은 그게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셨다.&lt;br /&gt;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험 준비 과정은 완전히 달랐다. 재준이는 학교의 최첨단 신축건물 안에 있는 고시반에 들어갔다. 샤워시설은 물론 휴식을 위한 배려도 잘 되어 있다. 오직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학교에서는 노량진에서 우수한 강사를 초빙해 주기도 한다. 동문선배들이 찾아와서 회식자리를 만들고 격려해준다. 이 자리에서 매우 유용한 수험정보들도 얻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험 준비는 착착 진행된다. 심지어 연애를 해도, 축구를 해도, 영화를 보러 가도 그 고시반 학생들과 함께한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자체가 그 시험을 위한 정보가 돌고 도는 의미 있는 순간이 된다.&lt;br /&gt;
 하지만 범진이는 고립무원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학원을 찾아간다. 오고 가는 시간만 3시간이다. 학원에서는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는 전제하에 수업이 진행된다. 그래서 그건 별도로 준비하려고 하는데 혼자서는 힘들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채 몇 개월을 보낸다.&lt;br /&gt;
 그러다가 1차 시험이 있었고 두 명 모두 떨어진다. 그런데 재준이 주변의 분위기는 재도전을 격려하는 쪽이다. 그는 위축되지 않는다. 불합격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이번엔 연습게임한 거니까, 다음에 붙을 거야!”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분위기다. 교수는 “이번에 대충 어떤 건지 살펴본 거니까, 담에 제대로 하면 잘 될 거야!”라면서, 재준이의 ‘원래 실력’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대기업 이사인 아버지는 푼돈 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라!” 면서 전혀 실망하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1년을 다시 준비한 재준이는 그 다음해에 합격했고, 지금은 ‘빅4’에 해당하는 회계 법인에 있다.&lt;br /&gt;
 하지만 범진이는 떨어졌을 때 가족들 반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솔직히, 좀 힘들지 않겠니? 아버지가 지금 아프신데⋯⋯”라면서 재도전이 아니라 얼른 돈벌이에 나서길 바란다. 동생은 한술 더 뜬다. “처음에, 내가 뭐랬어? 시간낭비라고 했어, 안 했어? 형도 제발 철 좀 들어. 아버지 지금 저러신데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으면 되겠어!”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한 후배는 이 소식을 듣고 “선배, 이야기 들었는데요, 솔직히 저희가 되겠어요? 괜히 쓸데없는 데 투자하시는 것 아닐까요?”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이 정도면 사람 미친다. 이 상황에서도 굳은 의지로 버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온 세상이 범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넌 원래 떨어질 놈이었어!&lt;br /&gt;
 범진이 머릿속에 ‘내가 정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슬슬 다른 길을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범진이는 CPA를 포기하고 공무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5급 행시를 한 2주 정도 생각하다가, 다시 7급 공무원을 한 2개월 고민했고, 최종적으로는 9급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것도 잘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떨어지면 다른 이들이 얼마나 자신을 비웃을지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결국 범진이는 한 선배의 소개로 작은 제약회사의 영업직 사원이 되었다.&lt;br /&gt;
 사회는 늘 최종적인 결과가 곧 개인적 역량 차이가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그렇게 CPA 합격률, 고시 합격률, 대기업 취업률, 토익점수를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경쟁력을 그 사람의 절대적 경쟁력으로 간주해버리는 건 분명 불공정한 일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뭉개버린 채 그저 ‘능력 차이’를 이야기한다는 건 부당한 일이다.&lt;br /&gt;
&lt;br /&gt;
&#039;&#039;&#039;결과는 정의로운가?&#039;&#039;&#039;&lt;br /&gt;
&lt;br /&gt;
 우리는 흔히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그 결과도 공정한 것이리라 믿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완강히 반대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의 핵심이 이것이다. 기회와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물론 앞서 봤듯이 이건 많은 경우 착시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결과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와 과정이 공정하기만 하다면 그 결과가 어떤 모습의 것이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예를 들어, 어떤 사회는 가장이 하루 8시간 정도의 노동을 해서 3인가족 정도가 부자로는 아니어도 평범하게는 살 수 있다. 반면 어떤 사회는 뼈 빠지게 일해도 제 한몸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했었다 해도, 최저임금 수준이나 노동환경 여건에 따라 그 결과는 이렇게 다를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2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출발선과 과정에서 공정했다고 그 결과의 공정성이 저절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마지막 결과된 모습까지 공정해야 그게 공정한 사회인 것이다. 진정한 공정성은, 예컨대 출발과 과정에서 공정을 기했음에도 평범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하고도 3인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모자란 만큼을 채워놓는 데 있다. 그래야 결과의 공정성도 이뤄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학업 성취와 계층변수의 강력한 밀착성을 조사한 ‘콜먼 연구서’는, 부모의 계층이 결과에 큰 영향을 주는 사회에서 그저 교육기회를 주겠다는 식의 선심성 복지로는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나온 결과 그 자체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니, 차별을 줄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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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9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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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14:22:4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200쪽 학자금 대출 비율 이미지 표를 반응형 HTML 표로 변환; 원문 수치·평균·출처 보존&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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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lt;br /&gt;
오찬호 (지은이)개마고원2013-12-06&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비정규직인 건 자기계발 안한 탓?&#039;&#039;&#039;&lt;br /&gt;
 문제는 이십대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문제가 과거보다 더 심각하고도 끔찍해진 상황임에도 이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다는 데 있다. 즉,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 이들이 묶여 있는데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을 거야!” “너희 때는 원래 그런 거야!”와 같은 말로 이들을 격려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쉽게 말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말은 이들의 삶이나 처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단 얘기다.&lt;br /&gt;
 예컨대 100명의 이십대 중 20명만이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고 하자. 여기서 이 20명은 결코 변하지 않는 숫자라 하자. 그럴 경우, 죽도록 고생하면 정규직 된다고 말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생 여부와 상관없이 100명 중 80명은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이 전체 ‘파이’의 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그딴 식의 말로 이십대를 위로한다고 하자.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정규직이 되지 못한 21번째 사람부터는 그의 현실이 ‘고생 안 한 결과’로 인식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문제는 자기계발과 성공의 간격이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강조되는 것은 늘 자기계발이라는 점이다. 즉, 문제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자기계발의 논리가 사실은 평생 극복만 주문 받는 개인을 만들어버린다. 이십대는 불안하니까 자기계발 담론을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서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불안한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돌이표처럼 갇혀버리는 것이다. 모두가 이 자기계발의 수행에 동참하면 그 어마어마한 참여자들 덕택에 성공하는 ‘하나의’ 사례는 또 발견될 것이고, 이는 ‘가능성’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이 표면화될 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수천수만의 사례는 ‘노력 부족’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 처분된다. 이렇게 좌절하는 자아가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시장은 더 커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노골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낚였다!’의 다른 말인 것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1~8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결국 “회사에서 부려먹기 좋은 사람” 이 되도록 자기 시간을 버릴 줄 아는 게 이 관리기법의 핵심인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화는 공모전 6개를 동시에 준비하기 위해 커피 믹스를 몇십 개씩 씹어 먹으면서 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다. 취업 준비를 위해 당연히 위장병이 걸려야 하는, 그리고 그것조차 이겨내야 하는 괴물이 취업하는 사회를 어떻게 ‘좋은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lt;br /&gt;
 하지만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상태를 위로한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는 이십대를 계속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라면서 다독인다. 그렇게 이들은 ‘열정이 있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며, “내가 옳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자기위안을 한다. 그런 판인데, 비정규직들이 감히 ‘감사하지는 않고’ 눈에 불을 켜고 파업을 한다? 이십대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지 않겠는가.&lt;br /&gt;
 상식적으로 ‘열정’을 평가받겠다는 건 그 자체가 퇴행적이다. 열정, 의지, 성실성⋯⋯ 이런 건 지극히 주관적 영역에서 평가되는 것이기에, 본원적으로 객관의 잣대를 들이댈 성질이 아니다. 즉, 겉으로는 ‘시간관리’이겠지만 사실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든 결국 그 평가는 이를 ‘열정’이라 인정하고 받아줄 권한이 있는 누군가의 주관성에 기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lt;br /&gt;
 사실 세상은 이러한 ‘타인의 주관성’에 기초하여 사람 능력을 판단하다가 점차 ‘문서화된 정량적 지표’에 근거를 두는 쪽으로, 즉 평가기준에서 주관성을 줄여가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말하자면 과거처럼 황제가 그렇다고 하면, 동네이장이 틀렸다고 하면 이 규정이 저 규정으로 해석되고, 저 규정이 이 규정으로 둔갑하는 그런 시대에서 조금씩 탈피해왔다. 한데 시간관리를 ‘열정’의 이름으로 둔갑시킨다는 건, 결국 자신을 평가자에게 선택되어야만 하는 ‘을’의 위치에 올려놓는 일에 불과하다.&lt;br /&gt;
 그럼에도 이 ‘을’들의 자리나마 쉽사리 선택되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시간관리의 ‘결과’가 없으니 자신을 그나마 선택될 가능성이 있는 ‘대기상태’로 유지시키고자 한다는 거다. 이를 위해서 시간을 ‘나처럼’ 보내지 않은 사람을 결코 ‘나와 같은 급’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다 같은 노동자라고? 큰일 날 소리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받아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시간관리’만이라도 평가받길 원하는 것이다.&lt;br /&gt;
 하지만 극도의 자기통제로 이루어지는 자기계발을 그 ‘고통’이 약속한 어떤 성과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수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만난 수십 명의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취업준비를 ‘자기계발’로 해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자체를 ‘대단한 만족’으로 즉각 여기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누가 ‘취업 때문에’(사실상) 억지로 해야 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겠는가? 새벽같이 매일 가야 하는 토익학원도 죽을 맛이다. 정말이지 토익점수를 기업에서 평가기준으로 삼지만 않는다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 않다고? 만약 ‘대한민국 어떤 기업에서도 토익점수를 요구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그럼에도 진정 ‘자기’계발을 위해 토익학원을 선택할 대학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lt;br /&gt;
 이처럼 대학생들은 취업이라는 목적을 위한 엄격한 자기통제식 자기계발이 공허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아를 구속하는 자기계발을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자기계발의 의미와 가치를 격하시키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왜? 그 과정의 결과를 어쨌든 ‘스펙’의 한 줄로 적어야 하니까.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이십대의 자기계발은 끝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형태이지만 매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취업준비에 찌든 독수리 5형제는 늘 술잔이 여러 번 돌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거죠?”라면서 애써 이 모든 걸 긍정하곤 했다. 그 순간 이들의 눈빛에 비치던 그 간절한 진심이란⋯⋯.&lt;br /&gt;
 그러나 이 진심은 애석하게도 타인을 평가하는 애꿎은 집착으로 변질된다. 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기준으로 모든 세상사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계발을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십대의 눈을 만들어버렸고, 그 이십대의 눈은 곧 자기계발서 자체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십대 스스로 그 시각에 갇혀, 결국은 다시 자기계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십대가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던 바로 ‘그 사람들’이 되기 싫어서다. 이것이 자신을 자기통제적인 자기계발로 몰아붙이게 하고, 덩달아 ‘시간관리’에 대한 신념은 더욱 강화되며, 이 신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고정관념이 되어 버린다. 이제 이십대는 살아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극단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확언컨대, 이는 이십대 본인들에게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일상의 순간순간을 지배하는 ‘칼날’로 돌아올 것이다. 아니, 이미 돌아와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1~9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나는 2009년도와 2012년도에 걸쳐 ‘대학생들의 가치관’을 조사하면서 이를 확인한 바 있는데, 그런 연대의식이 중요하다고 답한 대학생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외국어능력’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90%가 넘지만 말이다.&lt;br /&gt;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이다. 자기계발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자 했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는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A가 아파할 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이겨낸 B가 있다면 A의 고통은 참아야 되고, 이겨내야 하고, 사회적 요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심성 여린 A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경험한 점장의 횡포에 대한 서러움은, 늘 강한 심성을 가진 덕분에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내는 B가 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먹 한 대 맞은 고통은 두 대 맞은 고통보다 그저 ‘낮은’ 순위로 이해될 뿐이다.&lt;br /&gt;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타인의 상황을 늘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곤 한다. 그 근거로서 저자 자신, 혹은 유명 인사가 주인공으로 설정된다. 당연히 이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총량은 무지막지하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다. 그런데 성공한다. 청소부를 했던 사람이 대통령도 되었고(이명박), 빈농의 자식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고(정주영), 비닐하우스 집에 살면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양학선) 식이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는 그런 스토리 안에서 아파하는 이십대를 질타한다. 그 정도 수준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웬만한 고통이니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거라면서.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주인공들을 접할 때마다, 이십대들은 십중팔구 ‘지금 내가 힘든 건 힘든 축에도 못 끼는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취업준비 어렵다는 하소연은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된다. 이는 자연스레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저하시킨다. 그렇게 고통의 비교 법칙이 이십대를 통제한다.&lt;br /&gt;
 이렇게 이십대들에게 개인의 고통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누군가를 본받으면서 마땅히 참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건, 앞선 장에 등장한 이십대들은 한편으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면서 또 한편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이 또 어딨는가.&lt;br /&gt;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의 호소는 자신들의 고통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기에 나타난 절규나 다름없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셈이다. 자신을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자신이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또한 이들은 고통의 비교 법칙을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다. 취업대란이란 말이 상징하듯, 이십대들이 마주하게 되는 고통 자체가 객관적으로 엄청 늘어나 있다. 신입생 때부터 해야 될 일은 상상을 초월하며, 게다가 그 보상마저 확실하지 않으니 심신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공감할 여유가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나만큼’ 힘들진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단 말이다.&lt;br /&gt;
&lt;br /&gt;
 &#039;&#039;&#039;둘째: 편견의 확대재생산&#039;&#039;&#039; &lt;br /&gt;
 고통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기존의 편견이 더 강화된다. 기실 ‘공감’이란 단지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시작으로 한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그래서 타인의 상황을 깊고 넓게 이해할수록 당연히 타인을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재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로 이렇게 되는 걸 일컬어 ‘공감대가 넓다’고 하지 않는가.&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책에서는 논의를 가장 심플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름값’이 높은 대학들을 소개했지만, 내가 여러 대학에 강의를 다니면서 확인해보면, 이 속성은 어떤 대학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 한다. 행여나 후자가 전자를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전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난리가 난다. 그렇게 4년제는 다시 2년제를, 2년제는 또 같은 기준에 근거해서 자기들 내부를 쪼개고 줄세운다. 모두가 이렇게 같은 논리를 가지고 가해자 역할을 하며, 또 그래서 당연히 피해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도 매우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사회 구조가 그 엄청난 불공정성에도 어떻게든 유지되는 것은 이처럼 모든 사회적 구성원들이 이 구조를 적극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의 피해자들이 가장 충실한 구조의 유지자로 기여하기에 사회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어 나간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앞서 여러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 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명문대든 아니든 내가 만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 모든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이해했다.&lt;br /&gt;
 흔히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 한다. 소비사회에서의 개인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어떤 부류인지를 드러낸다. 오늘날 이십대들이 대학이라는 맥락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들이 학력을 근거로 우월감과 열등감을 갖는 모습은 싸구려를 부끄러워하고 명품을 가졌을 때 당당해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경영학이 ‘보편적’ 학풍으로 존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자기계발 시대가 빚은 지독한 학력위계주의 모습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경영학은 사실상 기업의 논리를 체득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사고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재해석하는 일이 인문사회 학문에 비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스스로 해석하라!’  ‘상상력을 발휘하라!’ 등의 주문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lt;br /&gt;
 경영학과의 수업 풍경은 전국 모든 대학이 사실상 거의 같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이는 기업에서 뽑고자 하는 표준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한 ‘맞춤식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재무회계를 배웠는데 대학마다, 또는 어떤 교수이냐에 따라 ‘다르게’ 배웠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경영학에서는 독특하게 해석한다느니 하는 발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명제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지 이를 의심하는 비판적 사고력은 위험하다. (하략)&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이십대가 구원을 기다리는 ‘88만원세대’로 구성되는 과정은,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선택 무능력’의 징표로 이해되고 있는 ‘최하층계층’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한 것과 흡사하다. 쉽게 말하면, 대중매체에 이른바 휴먼다큐나 휴먼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불쌍한 사람들’의 무능력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비춰지면서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 동정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지만, 결국에는 “저러니까 가난하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9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그 전에 먼저 말해둘 것은, 사실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논할 때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이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라는 자기계발 담론에 따르자면 가급적 기존의 룰에 충실한 것이 개인에게 훨씬 이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를 바꾸는 건 힘들고 불확실한 일이기 때문이다.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건 개인에겐 큰 손해다. 자연히 자기계발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확실한 대안이 없으면 굳이 문제제기하지 않는 태도가 일상화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0&amp;lt;/h3&amp;gt;&lt;br /&gt;
&amp;lt;div id=&amp;quot;student-loan-table&amp;quot; style=&amp;quot;clear:both;&amp;quot;&amp;gt;&lt;br /&gt;
&amp;lt;p&amp;gt;&amp;lt;strong&amp;gt;〈도표 6〉 서울지역 주요 대학별 전체학생 대비 학자금 대출자 비율(2010년 1학기)&amp;lt;/strong&amp;gt;&amp;lt;/p&amp;gt;&lt;br /&gt;
&amp;lt;p style=&amp;quot;text-align:right;&amp;quot;&amp;gt;단위: %&amp;lt;/p&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display:flex; flex-wrap:wrap; gap:1em; align-items:flex-start;&amp;quot;&amp;gt;&lt;br /&gt;
&amp;lt;div style=&amp;quot;flex:1 1 20em; min-width:0;&amp;quot;&amp;gt;&lt;br /&gt;
&amp;lt;table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width:100%; margin:0; text-align:center;&amp;quot;&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학(여대 제외)&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출비율&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비고&amp;lt;/th&amp;gt;&amp;lt;/t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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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학(여대만)&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대출비율&amp;lt;/th&amp;gt;&amp;lt;th scope=&amp;quot;col&amp;quot;&amp;gt;비고&amp;lt;/th&amp;gt;&amp;lt;/tr&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row&amp;quot;&amp;gt;이화여대&amp;lt;/th&amp;gt;&amp;lt;td&amp;gt;10.0&amp;lt;/td&amp;gt;&amp;lt;td rowspan=&amp;quot;2&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amp;quot;&amp;gt;평균&amp;lt;br&amp;gt;11.4&amp;lt;/td&amp;gt;&amp;lt;/tr&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row&amp;quot;&amp;gt;숙명여대&amp;lt;/th&amp;gt;&amp;lt;td&amp;gt;12.7&amp;lt;/td&amp;gt;&amp;lt;/t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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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row&amp;quot;&amp;gt;동덕여대&amp;lt;/th&amp;gt;&amp;lt;td&amp;gt;19.3&amp;lt;/td&amp;gt;&amp;lt;/tr&amp;gt;&lt;br /&gt;
&amp;lt;tr&amp;gt;&amp;lt;th scope=&amp;quot;row&amp;quot;&amp;gt;덕성여대&amp;lt;/th&amp;gt;&amp;lt;td&amp;gt;16.5&amp;lt;/td&amp;gt;&amp;lt;/tr&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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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table&amp;gt;&lt;br /&gt;
&amp;lt;p&amp;gt;출처: 대학알리미 → 통합비교 → 대학재정 → 학자금대출&amp;lt;/p&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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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 &#039;&#039;&#039;CPA의 사회학&#039;&#039;&#039; &lt;br /&gt;
 아무리 그래도 경쟁 사회에서 차별 대우는 불가피한 일이고, 그 객관적 기준으로 ‘능력’만한 잣대가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학력위계주의의 처참한 실상을 강의시간에 언급할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서 “능력 자체에 차이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죠. 고시처럼 오로지 성적만으로 뽑는 시험에서도 학교서열에 따라 합격률이 다르잖아요” 하는 반론을 많이 들었다.&lt;br /&gt;
 나는 학교별 역량 차이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고시 합격률, 대기업 합격률 순위는 대학서열에 거의 비례한다. 하지만 그 수치가 차별을 정당화할 근거일 수는 없다. 왜? 그런 차이에는 이미 불공정한 과정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lt;br /&gt;
 CPA(공인회계사) 시험에서 합격을 결정하는 데 ‘학교이름’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점수대로 당락이 결정될 뿐이다. 내가 만난 재준이와 범진이는 이 시험을 준비했다. 재준이는 서울 상위권대에 다니고 있었고, 범진이는 경기도 소재 학교에 다녔다. 이들은 준비한 첫 해 둘 다 1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재준이는 그 이듬해에 2차까지 합격해서 지금은 연봉 7000만 원을 받으면서 굴지의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범진이는 그 다음해에 시험 자체를 포기했다. 그 이후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지금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되어 본봉 120만 원에 인센티브에 따라 아주 운이 좋으면 300만 원 정도 번다. 자, 이 두 명의 현재 삶은 공정한 경쟁의 대가일까? CPA 시험에 학력 변수가 개입하지 않았으니, 이 결과는 공정한 걸까?&lt;br /&gt;
 모든 시험이 그러하듯이, CPA 시험 역시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기획단계와 실제 결심 및 준비단계 그리고 응시 및 실패했을 시 재도전의 순으로 진행된다. 재준이는 최초 결심부터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넌 언제쯤부터 준비할래?”라는 말을 경영학과에 입학할 때부터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교수들은 강의 중에도 “여러분 같은 인재들은⋯⋯” “우리 학교 정도면⋯⋯”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부모님들은 “그래 넌 충분히 될 거야!”라고 다독여주신다. 그러나 범진이는 달랐다. 일단 그 학교에서는 아무도 CPA에 관심이 없었다. 정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CPA 준비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았다. 부모님도 시큰둥하신다. 사실 부모님은 그게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셨다.&lt;br /&gt;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험 준비 과정은 완전히 달랐다. 재준이는 학교의 최첨단 신축건물 안에 있는 고시반에 들어갔다. 샤워시설은 물론 휴식을 위한 배려도 잘 되어 있다. 오직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학교에서는 노량진에서 우수한 강사를 초빙해 주기도 한다. 동문선배들이 찾아와서 회식자리를 만들고 격려해준다. 이 자리에서 매우 유용한 수험정보들도 얻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험 준비는 착착 진행된다. 심지어 연애를 해도, 축구를 해도, 영화를 보러 가도 그 고시반 학생들과 함께한다. 그렇게 하루 24시간 자체가 그 시험을 위한 정보가 돌고 도는 의미 있는 순간이 된다.&lt;br /&gt;
 하지만 범진이는 고립무원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학원을 찾아간다. 오고 가는 시간만 3시간이다. 학원에서는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는 전제하에 수업이 진행된다. 그래서 그건 별도로 준비하려고 하는데 혼자서는 힘들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채 몇 개월을 보낸다.&lt;br /&gt;
 그러다가 1차 시험이 있었고 두 명 모두 떨어진다. 그런데 재준이 주변의 분위기는 재도전을 격려하는 쪽이다. 그는 위축되지 않는다. 불합격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이번엔 연습게임한 거니까, 다음에 붙을 거야!”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분위기다. 교수는 “이번에 대충 어떤 건지 살펴본 거니까, 담에 제대로 하면 잘 될 거야!”라면서, 재준이의 ‘원래 실력’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대기업 이사인 아버지는 푼돈 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라!” 면서 전혀 실망하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1년을 다시 준비한 재준이는 그 다음해에 합격했고, 지금은 ‘빅4’에 해당하는 회계 법인에 있다.&lt;br /&gt;
 하지만 범진이는 떨어졌을 때 가족들 반응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솔직히, 좀 힘들지 않겠니? 아버지가 지금 아프신데⋯⋯”라면서 재도전이 아니라 얼른 돈벌이에 나서길 바란다. 동생은 한술 더 뜬다. “처음에, 내가 뭐랬어? 시간낭비라고 했어, 안 했어? 형도 제발 철 좀 들어. 아버지 지금 저러신데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으면 되겠어!” 마치 이런 상황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한 후배는 이 소식을 듣고 “선배, 이야기 들었는데요, 솔직히 저희가 되겠어요? 괜히 쓸데없는 데 투자하시는 것 아닐까요?”라고 당돌하게 말한다. 이 정도면 사람 미친다. 이 상황에서도 굳은 의지로 버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온 세상이 범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넌 원래 떨어질 놈이었어!&lt;br /&gt;
 범진이 머릿속에 ‘내가 정말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슬슬 다른 길을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범진이는 CPA를 포기하고 공무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5급 행시를 한 2주 정도 생각하다가, 다시 7급 공무원을 한 2개월 고민했고, 최종적으로는 9급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것도 잘 되지 않는다. 이마저도 떨어지면 다른 이들이 얼마나 자신을 비웃을지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결국 범진이는 한 선배의 소개로 작은 제약회사의 영업직 사원이 되었다.&lt;br /&gt;
 사회는 늘 최종적인 결과가 곧 개인적 역량 차이가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그렇게 CPA 합격률, 고시 합격률, 대기업 취업률, 토익점수를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경쟁력을 그 사람의 절대적 경쟁력으로 간주해버리는 건 분명 불공정한 일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뭉개버린 채 그저 ‘능력 차이’를 이야기한다는 건 부당한 일이다.&lt;br /&gt;
&lt;br /&gt;
&#039;&#039;&#039;결과는 정의로운가?&#039;&#039;&#039;&lt;br /&gt;
&lt;br /&gt;
 우리는 흔히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면 그 결과도 공정한 것이리라 믿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완강히 반대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의 핵심이 이것이다. 기회와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물론 앞서 봤듯이 이건 많은 경우 착시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결과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와 과정이 공정하기만 하다면 그 결과가 어떤 모습의 것이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예를 들어, 어떤 사회는 가장이 하루 8시간 정도의 노동을 해서 3인가족 정도가 부자로는 아니어도 평범하게는 살 수 있다. 반면 어떤 사회는 뼈 빠지게 일해도 제 한몸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했었다 해도, 최저임금 수준이나 노동환경 여건에 따라 그 결과는 이렇게 다를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2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출발선과 과정에서 공정했다고 그 결과의 공정성이 저절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마지막 결과된 모습까지 공정해야 그게 공정한 사회인 것이다. 진정한 공정성은, 예컨대 출발과 과정에서 공정을 기했음에도 평범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하고도 3인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갈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모자란 만큼을 채워놓는 데 있다. 그래야 결과의 공정성도 이뤄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학업 성취와 계층변수의 강력한 밀착성을 조사한 ‘콜먼 연구서’는, 부모의 계층이 결과에 큰 영향을 주는 사회에서 그저 교육기회를 주겠다는 식의 선심성 복지로는 사회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나온 결과 그 자체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니, 차별을 줄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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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자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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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4: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원어 서식이 빨간색 강조 안에서도 표시되도록 태그 호환성 보완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투자전쟁 ―헤지펀드 사람들의 영광과 좌절 &lt;br /&gt;
이경식 역 | 휴먼앤북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uman&amp;amp;Books&amp;lt;/span&amp;gt;) | 2017년 01월 31일&lt;br /&gt;
&lt;br /&gt;
- ebook이 3천원이어서 싼맛에 사서 봄. 조판이 역시 엉망.&lt;br /&gt;
- 저자가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인 티가 나지만, 한두가지 특정 분야에 조예가 깊어보이지는 않고 그저 &amp;lt;del&amp;gt;돈이 많아서&amp;lt;/del&amp;gt; 취미로 이런저런 독서를 즐겼던 사람으로 보임. &amp;lt;ref&amp;gt;저자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D%84%B4_%EB%B9%84%EA%B7%B8%EC%8A%A4 바턴 빅스]는 2012년에 작고했다. 그의 작고 후 그가 세운 트랙시스 파트너스도 문을 닫았다. [http://www.institutionalinvestorsalpha.com/IssueArticle/3267379/Archive-AR-Magazine/Barton-Biggs-Founded-Traxis-Partners-is-Shutting-its-Doors.html]&amp;lt;/ref&amp;gt; &amp;lt;del&amp;gt;말이 드럽게 많음&amp;lt;/del&amp;gt;&lt;br /&gt;
- 헤지펀드 하는 사람들이 골프를 엄청 좋아하나보다. 아무리 바쁘네 뭐하네 해도 골프는 엄청들 쳐댐.&lt;br /&gt;
- 번역에 문제가 많다. 주술호응이나 은/는/이/가 같은 기본적 조사도 문제가 많고, ‘하지만의’ 같은 말도 안되는 단어도 있다.&amp;lt;ref&amp;gt;그런데 이게 ①번역문제인지 원문이 이모양인지 아니면, ②전자책만 이모양 이꼴인지 헷갈리는 부분도 조금 있다. 예를들어, ‘피아노 건반은 흰색 건반 8개와 검은색 건반 5개로 기본 13옥타브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있는데 원문도 이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amp;lt;del&amp;gt;내가 저자를 너무 무시하나.&amp;lt;/del&amp;gt;&amp;lt;/ref&amp;gt; ‘자산관리’를 ‘자신관리’라고 해놓은 부분이 인상깊었다. ㅎㅎ &lt;br /&gt;
- 엘리엇의 파동이론이나 피보나치 수열같은 &amp;lt;del&amp;gt;개&amp;lt;/del&amp;gt;헛소리도 실려있다. 물론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적어도 책에 실은 것으로 보아, 그리고 &amp;lt;del&amp;gt;개&amp;lt;/del&amp;gt;헛소리가 아니고 그저 신빙성이 떨어지는 방법 정도로 적은 것으로 보아 이 책은 그냥 심심풀이 에세이인 듯.&lt;br /&gt;
- 전자책으로 읽어서 인용의 쪽수를 적을 수 없음. &lt;br /&gt;
- 전자책은 역시 줄을 너무 헤프게 쳐댄다. &amp;lt;del&amp;gt;옮기기 힘들다&amp;lt;/del&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장 황금손의 헤지펀드 사람들, 피를 흘리며 사라지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윈스턴 처칠은 거대하고 더러운 검은 개가 하수도 냄새를 풍기며 수시로 나타나서 자기 가슴을 타고 앉아 짓눌렀다고 말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장 석유공매도의 쓰라린 경험&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들은 최적의 분석을 통해서 가격이 상승할 주식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가격이 하락할 주식을 찾아내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매수 포지션으로 투자하는 사람보다 매도포지션으로 투자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으므로&lt;br /&gt;
 *&lt;br /&gt;
([[어느 투자가의 회상]]에서 인용됨)&lt;br /&gt;
&amp;lt;blockquote&amp;gt;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지나치게 거래하지 마라. 옳으면서도 동시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배우기 힘든 원칙이었다. 하지만 주식 투자가라면 이 원칙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큰돈을 벌 수 있다.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우리 펀드의 투자자 가운데 평생 상품선물 거래자로 일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올드 터키&amp;lt;ref&amp;gt;[[어느 투자가의 회상]]에서 리버모어의 대역으로 나온 사람의 이름. 즉, 리버모어 자신이라고 보면 된다는데 정작 그 책에서는 리버모어가 뭔가 소설을 쓰는 것 같지 않던데. 리버모어 대신 누가 나오는 그런 대목은 읽은 기억이 안난다. 너무 대충 읽었나. &amp;lt;/ref&amp;gt;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이런 질문을 했다.&lt;br /&gt;
 “제시 리버모어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아시오?”&lt;br /&gt;
 모른다고 했다.&lt;br /&gt;
 “1920년대 후반에 매도포지션으로 계속 투자하다가 마침내 1929년 중반에 두 손을 들고 말았지요. 그리고 매수포지션으로 많은 투자를 했다가 대공황 때 거덜났다오. 그리고 몇 년 뒤에 빌트모아 호텔의 남자화장실에서 자살했답니다.”&lt;br /&gt;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amp;lt;ref&amp;gt;나무위키에 보면 1940년 11월 28일 모든 자산을 날리고 거래소에서도 쫓겨난 후 한 호텔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https://namu.wiki/w/%EC%A0%9C%EC%8B%9C%20%EB%A6%AC%EB%B2%84%EB%AA%A8%EC%96%B4]&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5장 헤지펀드의 출범, 그 필사적인 모험&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성공은 필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오만을 낳는다. 그리고 이 오만은 다시 필연적으로 그 사람을 거꾸러뜨린다. 오만 때문에 자가용 제트비행기를 사고 골프 클럽 회원권을 여러 장 사고 프랑스 남부 지역과 메사추세츠의 난투켓 섬에 집을 사고 아내를 여러 번 바꾼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은퇴해서 어린 시절 꿈꾸었던 대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압력솥 같은 헤지펀드 판을 미련 없이 훌훌 떠나서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연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치가나 자선사업가로 변신해서 자기 이름을 세상에 떨치려고 한다.&amp;lt;ref&amp;gt;이 뒷문장이 ‘예를 들어서 조지 소로스는 영국 은행을 물 먹인 위대한 투기꾼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자선사업가이자 리플렉시티 법칙&amp;lt;sub&amp;gt;많이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론 ―역주&amp;lt;/sub&amp;gt;을 발견한 철학자로 기억되길 원한다’인데 아무래도 저자는 소로스를 물먹이고 싶은 듯.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온통 곰들의 세상이 된 것 같았고 황소들은 꽁무니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증시에서 곰은 하락 장세를 나타내고 황소는 상승장세를 나타낸다 ―역주)&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장 땀과 피눈물로 얼룩진 투자 설명회&amp;lt;ref&amp;gt;이건 원문도 ‘피눈물’일지 궁금하다. 이런저런 책만 보면,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은 &amp;lt;del&amp;gt;실패하기 전까지&amp;lt;/del&amp;gt; 자부심이 남다른 경향이 있다.&amp;lt;/ref&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건 스탠리의 개인자산 운용팀에는 개인 투자자와 소규모 기관투자가를 관리하는 영업 및 투자관리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매우 영악하다. 영리하면서도 탐욕스럽다. 이들은 금전적인 보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회사보다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 고객들이야말로 자기들의 장기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성장주가 추락할 때는 특히 큰 폭으로 추락한다&lt;br /&gt;
 *&lt;br /&gt;
 션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 헤지펀드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사실을 알아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수익률의 적은 규모만이 아니다. 성공과 부는 투자가의 초심을 흔들어서 오만에 빠지게 하거나 은퇴하도록 유혹한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7장 펀드개시 직전, 나쁜 기억에 시달리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독자들은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별 어려움 없이 헤지펀드 회사를 설립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틀리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성공한 전문 투자가였다. 뉴욕 은행의 최고 투자책임자였으며 수많은 주식회사의 이사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는 아들 셋이 18세가 되었을 때, 전체 자산 구성의 합계 금액이 대략 15만달러가 되는 포트폴리오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보라고 당부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다. 우리가 더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집 식탁에는 늘 시장과 경제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우리 가족만 참가하는 주식 투자 대회를 열었다. 각자 다섯 개 종목을 선택하는 게 아버지가 정한 규정이었다. 이 대회에서 내가 꼴찌를 했고 주식시장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어머니가 우승을 차지했다. 어머니가 종목을 선택한 기준은 당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정서적으로 이끌리는 회사였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선택해서 크게 성공한 회사 가운데 두 개는 프록터 앤 갬블과 아이오와 파워였는데, 어머니는 카드게임을 좋아했고 또 아이오와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amp;lt;ref&amp;gt;이 부분을 옮긴 이유는 ①이렇게 성장배경이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것과 ②역시 투자란 운칠기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시장이 붕괴할 때 유동성이 급격하게 사라질 뿐만 아니라,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적자를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빠르게 떨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가장 나쁜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amp;lt;ref&amp;gt;‘최악만 피해라’이런 건가 보다&amp;lt;/ref&amp;gt;⋯하지만 아버지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경험한 실패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지는 마라.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 나오는 개구리는 되지 마란 말이다. 이 개구리는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았다가 혼이 난 뒤로는 다시는 난로 가까이 가지 않았고, 결국 난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에도 얼어 죽고 말았지.” &lt;br /&gt;
 *&lt;br /&gt;
 경험이 가르치는 교훈에 따르려면 온갖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대신 그냥 우리가 위치하고 싶고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가면 된다.&lt;br /&gt;
 *&lt;br /&gt;
 결국 그 나라의 투자가가 외국 투자가를 이긴다.&lt;br /&gt;
 *&lt;br /&gt;
약삭빠른 투자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만일 어떤 운용자가 상당 기간 동안 좋은 성적을 내다가 갑자기 성적이 나빠져서 적자로 돌아가서 불가피하게 펀드를 청산하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나설 경우 이 운용자에게 투자금을 다시 맡기는 것이다. 이 투자자들은 ‘평균 회귀원칙’&amp;lt;sub&amp;gt;reversion to the mean : 수익률이 단기간에는 크게 변동하지만 5년이나 10년이라는 장기간으로 보면 변동 폭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이론―역주&amp;lt;/sub&amp;gt;이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헤지펀드 수익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적자를 낸 이 운용자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 절치부심 결사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와 똑같은 이치가 반대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이 투자자들은 이삼 년 연속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헤지펀드에서는 돈을 회수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내가 아는 헤지펀드 운용자인 제프에게 일어났다. 그는 여러해 동안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2년 연속으로 4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의 투자자들 가운데 일부가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유는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제프는 이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제프처럼 확실한 불사조&amp;lt;ref&amp;gt;‘확실한 불사조’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수익률이 좋았던 모양이다&amp;lt;/ref&amp;gt;가 아니라면 이렇게 외면당하는 운용자는 얼마나 황당할까? 지나치게 성적이 나빠도 투자금을 회수당하지만 성적이 좋아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lt;br /&gt;
 *&lt;br /&gt;
 이 공간은 어둡고 더럽고 낡았고 구식이다. 회의실에 깔린 양탄자에서는 곰팡내가 나서 여기에 들어갈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하지만 마드하브, 시릴, 더글러스 그리고 나는 각자 자기 방을 가지고 있고 이 방에는 모두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어 이 창문으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나무 꼭대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나는 보통 이 창문을 열어 둔다. 그러면 광장에서 밴드의 연주나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방안으로 날아든다. 아무리 황량한 볼모의 사무실 환경이라 하더라도 신선한 공기와 거리의 소음만 있으면 유쾌하다.&amp;lt;ref&amp;gt;이런 사무실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완벽하지 않은가!&amp;lt;/ref&amp;gt;⋯(나중에 알게 되지만 우리는 첫해에 세 번이나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 사무실 환경은 점차 좋아졌고 마지막에는 5번가&amp;lt;sub&amp;gt;맨해튼의 중앙 부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 역주&amp;lt;/sub&amp;gt;의 장엄한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사치스럽지 않고 안락한 독자적인 공간에 안착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거두는 수익률은 우리 사무실이 누추할 때 높았고 반대로 사무실이 그럴듯하게 세련되면 낮았다. 우리는 곰팡내가 나는 지독한 사무실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록을 그 뒤로는 결코 깰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amp;lt;blue&amp;gt;주식의 움직임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 주식 운용에서 상상력을 무시하는 사람들 혹은 주가 등락의 기술적 근거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재앙을 맞이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게임은 감정이라는 3차원과 꿈이라는 4차원에서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로지 사실과 수치라는 평범한 2차원 공간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amp;lt;/blue&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장 헤지펀드 업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운용자들은 손실 최대허용치를 설정해 두고 이 대원칙 아래 기계적으로 자기 대신 투자 결정을 해주는 온갖 종류의 위험관리 프로그램에 의지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에 의존해서 내리는 결정들은 대부분 좋은 결정이 아니다. ⋯ 그 결과 이 운용자들은 단기 모멘텀 투자가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기복이 심한 변동성을 기꺼이 감수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고 팀은 말한다.⋯ 투자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느냐고 그에게 묻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생각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지식을 쌓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어떤 사건이나 정보를 접하는 순간 투자 기회가 눈에 보인다고 했다. 그 기회를 억지로 이끌어낼 수는 없고 끈질기게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여러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표는 가능한 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지 회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나 유능한 분석가들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lt;br /&gt;
 *&lt;br /&gt;
단기 금리가 올라가면 할부 상환 금액은 올라가고 주택 가격은 내려갑니다. &lt;br /&gt;
 *&lt;br /&gt;
주로 물가인상과 전쟁 그리고 유가증권에 대한 두려움이 금 가격을 결정하므로 금은 내재적인 투자가치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금을 모은다는 것은 소극적인 투자 방법이다.&lt;br /&gt;
 *&lt;br /&gt;
고대 그리스의 시인 필로스트라투스는 &amp;lt;blue&amp;gt;‘신은 미래의 사실을 지각하고 평범한 사람은 현재의 사실을 지각하며 현명한 사람은 지금 막 일어날 일을 지각한다’&amp;lt;/blue&amp;gt;라고 했다. &lt;br /&gt;
 *&lt;br /&gt;
평범한 정도의 수익률이나 중요 기준 지수보다 약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전문 투자가들은 다른 업종의 전문가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다&amp;lt;ref&amp;gt;역시 이런데로 어떻게든 가야 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버핏의 이 글&amp;lt;ref&amp;gt;전미 동전던지기 토너먼트&amp;lt;/ref&amp;gt;이 말하는 요지는 투자업계의 슈퍼스타 역시 전미 동전 던지기 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른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헤지펀드 판에 있는 사람들은 워낙 경쟁심리와 자의식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골프와 핸디캡에 완전히 빠져있다. 이 사람들은 돈과 관련된 압박감을 잠시 제쳐 둔 채 280야드 밖으로 골프공을 날리고 3미터 퍼팅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남성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담하게 경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자기가 냉철하면서도 담대한 배짱의 소유자임을 과시하려고 한다. &lt;br /&gt;
 *&lt;br /&gt;
헤밍웨이는 용기를 &amp;lt;blue&amp;gt; ‘압박감 속에서 발휘하는 우아함’&amp;lt;/blue&amp;gt;이라고 표현했다&lt;br /&gt;
 *&lt;br /&gt;
부유함의 영역에는 강도, 질투, 납치등의 단어가 연상되는, 차라리 피하고 싶은 최고 수준의 부유함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르는 어떤 분수령이 있다.&amp;lt;ref&amp;gt;여기가 어딘지 정말 궁금하다&amp;lt;/ref&amp;gt;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5억달러를 벌고 나면 이제 가장 만족스러운 성취감을 골프 실력을 높이는 것, 다시 말해서 핸디캡을 줄이는 것에서 찾는다.⋯그들의 일상에서 골프는 펀드를 운용해서 수익을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lt;br /&gt;
 *&lt;br /&gt;
 쉰 살이 넘어가면 실력은 거의 좋아지지 않는다.&amp;lt;ref&amp;gt;글에는 골프 얘기지만, 사실 모든 방면이 다 이런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장 추세적 경기 순환의 폭력성&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든 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따뜻한 느낌은 보통 수많은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체온이다.&lt;br /&gt;
 *&lt;br /&gt;
일반 투자자의 돈은 펀드가 잘되기 전이 아니라 잘된 뒤에 대규모로 몰려든다. 그리고 이 투자금은 성과가 좋지 않을 때 그리고 이제 정말 막 좋은 성과를 내려고 할 때 우르르 빠져나간다.&lt;br /&gt;
 *&lt;br /&gt;
&amp;lt;blue&amp;gt;일반 투자자가 시장 변동의 시점을 맞추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러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amp;lt;/blue&amp;gt; 평균적인 미국인이라면 자기의 사회 보장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자산의 안정과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 역주)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다.&lt;br /&gt;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의 뮤추얼펀드 모델은 관련기업과 개인, 즉 투자회사, 주식중개인, 그리고 포트폴리오 운용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안겨 주었다.&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그 방법으로 인덱스(지수) 펀드를 선택해야 한다.&amp;lt;/ired&amp;gt;&lt;br /&gt;
 *&lt;br /&gt;
교수들과 투자 자문 전문가들은 투자금 운용자들이 아무리 애써도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으며 전문적인 투자라는 개념이 아예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기사를 쓰고 책을 펴냈다.&lt;br /&gt;
 *&lt;br /&gt;
 &amp;lt;sblue&amp;gt;기존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한 채 재구성만 한다면 아무런 편견 없이 냉정하게 매매할 수 없다. 편견과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mp;lt;/sblue&amp;gt;기존의 어떤 소유의식이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짐은 투자자가 최상의 선택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어떤 투자가에게든 시장이 바보같아 아직 알아보지 못하지만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하는 포지션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포지션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하는 순간 반등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또 편견 때문에 당연히 팔아야 할 종목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이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 마찬가지 원리로 승리의 기쁨을 더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팔아야 할 종목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lt;br /&gt;
 *&lt;br /&gt;
20세기 전반기의 최고 개인투자가라고 할 수 있는 버나드 바룩과 제시 리버모어는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이 어쩐지 낡은 것 같다거나 불확실하거나 불편하면 곧바로 현금화한 다음에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0장 생존을 위한 전투&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ired&amp;gt;바보들만이 꼭대기 종목과 바닥 종목을 찾는다&amp;lt;/ired&amp;gt;&lt;br /&gt;
 *&lt;br /&gt;
어떤 주식의 주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절대 그 주식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주식도 절대 사지 않는다. 저평가, 저소유 그리고 비호감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올라갈 주식을 사고 보유할 것 그리고 내려가거나 보합세를 유지할 주식은 팔아 치우고 쳐다보지도 말 것. &amp;lt;ref&amp;gt;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amp;lt;blockquote&amp;gt;이것이 그의 투자 원칙이다. 데이비드의 수익률은 늘 변동성이 높아 기복이 심하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에게 투자금을 맡기지 않는 게 좋다&amp;lt;/blockquote&amp;gt;&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시장을 주도하던 주식들이 호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강도를 잃기 시작할 때, 그리고 구매력이나 매도 약점등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얼른 주식을 털어버리고 나와라. 이미 게임은 끝났다.&amp;lt;ref&amp;gt;[[어느 투자가의 회상]]을 인용한 것&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만일 어떤 거래가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조건이 좋게 보인다면, 아마도 그것은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건이 좋은 게 분명하다.’ &amp;lt;ref&amp;gt;이것도 [[어느 투자가의 회상]]인용&amp;lt;/ref&amp;gt;&lt;br /&gt;
 *&lt;br /&gt;
62개 회사 이익, 22개 회사 손해, 8개 회사 본전. 이걸 가지고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주식 종목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적중률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amp;lt;ref&amp;gt;아니 그럼 얼마나 더 잘 맞춰야 하는 거냐&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네드 데이비드 리서치社의 네드 데이비드는 여러 해 동안 체감적 지표들을 연구했는데, 그는 시장이 변동할 때 군중은 늘 잘못 판단하며 또 주가가 바닥에 있거나 천장에 있을 때 이를 감지하는 군중의 체감적 정서도 늘 잘못 작동한다고 지적한다.&lt;br /&gt;
 “만일 누가 바닥과 천장을 앞서서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역투자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늘 성공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시장 가격이 10%이상 떨어질 때 손절매 주문이 실행되도록 해 두어 시장이 막 변동하려고 할 때 매도하였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시기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손절매 주문을 내놓았을 때 혹은 그 주문이 스페셜리스트&amp;lt;sub&amp;gt;미국 거래소의 회원이며 거래소가 지정하는 종목을 전문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업자. 스페셜리스트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매매를 통해 공정가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다른 회원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처리하기도 한다 ― 역주&amp;lt;/sub&amp;gt;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을 때 마켓메이커&amp;lt;sub&amp;gt;특정 주식을 소유하고 항상 매매에 응할 용의가 있는 업자 혹은 투자 전문기관 ― 역주&amp;lt;/sub&amp;gt;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그 자산을 반등하기 직전에 팔아버리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말이다.&lt;br /&gt;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amp;lt;sblue&amp;gt;무조건 반대로 나갈 수는 없다. 체감적 지표들이 특별히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군중의 대규모 움직임은 거의 대부분 옳기 때문이다. 끈기를 가지고 최고점 혹은 최저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네드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했다.&amp;lt;/sblue&amp;gt;&lt;br /&gt;
 &amp;lt;sblue&amp;gt;“최고점이나 최저점에 도달해서 막 바뀌려고 할 때까지는 대세의 흐름과 함께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가 결국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amp;lt;/sblue&amp;gt;&lt;br /&gt;
 (중략)&lt;br /&gt;
 이 연구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이 지표들이 비록 최저점을 예측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최고점에 대한 예측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또 하나의 체감적 지표는 언론이다. 언론은 언제나 변함없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이미 과거에 일어나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게 훨씬 더 좋은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이다. &amp;lt;비즈니스 위크&amp;gt;의 특집 기사는 오랜 세월 동안 반대지표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lt;br /&gt;
 *&lt;br /&gt;
쌍둥이 적자&amp;lt;sub&amp;gt;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역주&amp;lt;/sub&amp;gt;&lt;br /&gt;
 *&lt;br /&gt;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또 하나의 체험적 지표는, 추세적 약세시장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항복을 받아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장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투자&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1930년대에 윈스턴 처칠은 권력에서 밀려나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려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학 강의를 했다. 어느 날 오후였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그는 어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lt;br /&gt;
 “사람의 신체 부위 중 외부 자극을 받으면 평소보다 열두배로 커지는 곳이 어디인가?” &lt;br /&gt;
 학생들은 놀라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처칠은 그런 상황을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학생들을 죽 둘러보다가 열 번째 줄에 앉은 여학생을 지목했다. &lt;br /&gt;
 “자, 답이 뭔가 학생?” &lt;br /&gt;
 그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다.&lt;br /&gt;
 “네, 답은⋯⋯, 남자의 성기입니다.” &lt;br /&gt;
 “틀렸네!” &lt;br /&gt;
 처칠이 고함을 질렀다.&lt;br /&gt;
 “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lt;br /&gt;
 그러자 다른 여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lt;br /&gt;
 “정답은 안구의 동공입니다. 동공은 어둠 속에서는 평소 크기의 열두배로 커집니다.” &lt;br /&gt;
 “정답이네!” &lt;br /&gt;
 처칠은 이렇게 외친 다음에, 틀린 답을 말한 학생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lt;br /&gt;
 “학생에게는 세 가지 지적을 하겠네. 하나는 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생이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인생에 대해서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일세. 그건 열두배씩 커지지 않는단 말이지.” &lt;br /&gt;
 *&lt;br /&gt;
비스마르크는 후손들에게 주식이나 채권을 물려줄 경우 이 후손들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고 제2의 블라이흐뢰더와 같은 투자 자문가를 옆에 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 끝에 삼림지와 같은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자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토지와 목재는 굳이 천재 투자가 없이도 후손들이 잘 관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냥 삼림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목재 수확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비가 오면 나무가 잘 자라니까 비가 오는 것도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터였다. &lt;br /&gt;
 *&lt;br /&gt;
1985년에 그가 대학교 기금의 운용 책임을 맡은 뒤로 이 기금은 연평균 16.1%라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다른 대학의 기금이 기록한 수익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것으로(하버드 대학교가 14.9%로 예일 대학교에 이어 2위이다) 전체 대형 기관투자가의 기록을 놓고 보면 상위 1%안에 드는 기록이다. &amp;lt;ref&amp;gt;예일기금을 운용했던 데이비드 스웬센의 이야기&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맥조지 번디. 예일기금을 1970년대에 운용&amp;lt;/ref&amp;gt;가 옹호했던 모멘텀 투자 방식을 따른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기관투자가는 다른 데도 있었다.&lt;br /&gt;
 *&lt;br /&gt;
불완전한 정보와 유동성 부족을 특징으로 하는 비공개 시장(비상장 시장)에 대해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자산 운용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영역이 바로 예일 기금 운용팀이 힘쓰는 점이다&amp;lt;ref&amp;gt;역시 스팩인가&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장 자연의 신비와 집단 순응의 악취&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나는 지지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upport level&amp;lt;/span&amp;gt;이나 저항선&amp;lt;sub&amp;gt;resistance level. 하락시세에서 가격이 더 떨어지면 매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이상 내려가지 않는 가격이 형성되는데 이 가격대를 ‘지지선’이라고 한다. 저항선은 지지선의 반대이다. ― 역주&amp;lt;/sub&amp;gt;은 매도나 매수의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참조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참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자가들이 기술적 분석 결과가 예측하는 수치를 믿는다.(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게을러서 경제 상황의 제반 요소들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예측치가 전혀 터무니없다고 믿는 나와 같은 투자가들도 최소한 거기에 관심은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기술적 분석의 결과가 그 투자가들의 행동 및 시장 가격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고도로 지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지 않고 여태 동의해 왔던 합의된 의견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이런 의견이 제시하는 방향은 보통 쉽고 편한 길이다. (중략) 집단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부정적인 역학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애초부터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개인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에 개인이 혼자 내리는 결정이 집단에서 내린 결정보다 더 나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중략)&amp;lt;sblue&amp;gt;광기는 개인에게서는 예외적으로 나타나지만 집단에서는 반드시 나타난다고 한 니체의 말은 진리를 담고 있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집단의 지도자가 자기가 원하는 의견만을 들으려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구하려고 할 때조차도 그 집단에서는 순응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난다. 또 집단의 구성원들이 매우 지적이며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고 또 자기 의견을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lt;br /&gt;
 *&lt;br /&gt;
 그 집단이 전체 조직에서 중요하면 할수록 집단 내의 순응적인 사고방식은 더 많이 나타난다. &lt;br /&gt;
 *&lt;br /&gt;
 윌프레드 트로터는 ≪전쟁과 평화 상황에서의 집단적 본능≫이라는 고전적인 책에서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사는 집단적인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의 기본적인 성품은 동일성과 통일성이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의 구성원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는데 그 교육 내용의 핵심은, 소속 집단에서 모나지 않게 행동해서 집단의 일부분이 되어야지 집단에서 너무 다르게 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트로터는 이렇게 지적한다. &lt;br /&gt;
 「사회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동원해서 새로운 의견을 압살해 왔으며, 집단의 의지나 의견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늘 가차 없이 지하 감옥과 교수대와 십자가의 형벌을 내렸다.」&lt;br /&gt;
 만일 당신이 어떤 투자위원회의 위원이라면 당신이 다른 위원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의 잘못된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정말 불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당신 의견이 잘못된 것이고 또 다른 사람과 다를 경우 당신은 이제 그 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격이 실질적으로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 옳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참석자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악역을 맡아서 전체 위원회의 공통된 의견을 반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마지막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최고 책임자이다. 보기에는 모든 참석자들의 의견을 고루 존중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으로 투표하는 대규모 집단이 바람직할 것 같지만 투자 결정을 하는 데는 민주주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민주주의적 경로를 통해서 도달한 결론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의사 결정과 책임은 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아인 랜드의 《파운틴헤드》에서 재인용&amp;lt;/ref&amp;gt;마음의 속성은 개인적이다. 여러 사람의 두뇌를 합친 총체적인 두뇌라는 것은 없다(중략)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동의한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타협한 내용이거나 아니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평균값을 구한 것일 뿐이다. (중략) 추론 과정이라는 기본적인 행위는 사람마다 각자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이 상징적인 능력은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다. 어디까지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에게만 속할 뿐이다&lt;br /&gt;
 *&lt;br /&gt;
 한 해에 한 차례씩 여러 동업자들이 기록한 수익률에 따라서 그들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회사들은 훨씬 투명하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아온 바로는 이런 방식이 결국은 동업자 사이를 갈라놓는 결과를 초래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장 인터넷 거품&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춤추고 있는 사람들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 &amp;lt;ref&amp;gt;니체&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거만 바라보면 눈 하나를 잃는다. 하지만 과거를 무시하면 두 눈 다 잃고 만다’&amp;lt;ref&amp;gt;러시아 속담&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4장 위대한 투자가는 집중력 있는 잘 훈련된 미치광이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자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나쁜 포지션은 청산하고 좋은 포지션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첫 번째 거래가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그 주식을 다시 거래하지 마라. 손실이 발생하는 종목은 언제든 팔아 버려라. 바보만이 계속 내려가는 종목을 사들인다. &amp;lt;ref&amp;gt;이것도 [[어느 투자가의 회상]]. 저자가 엄청나게 인상적으로 읽은 모양.&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장기적으로 볼 때 주가가 상승하는 힘이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게 좋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그는 자기가 매수한 주식이 힘을 잃고 비틀거리면 그 순간 곧바로 팔아 치웠다. 여태 힘 있게 움직이던 주식이 어떤 자극을 받은 뒤에도 웬일인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이것은 그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조짐이며, 따라서 그 주식을 팔아치워야 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다. &lt;br /&gt;
 물론 힘 있는 주식을 사고 힘 없는 주식을 파는 것은 모멘텀 투자방식이다.&lt;br /&gt;
 *&lt;br /&gt;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그 포지션의 반은 팔아야 한다.&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찰리 문거라는 저자의 친구인 모양.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모르겠음. ‘강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는 독서가’라고 함&amp;lt;/ref&amp;gt;는 전체 읽을 거리중 10%정도만 꼼꼼하게 읽고 연구한다.&lt;br /&gt;
 *&lt;br /&gt;
 문제는 내게 필요한 10%를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90%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lt;br /&gt;
 *&lt;br /&gt;
투자전략가들이 쓴 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최근의 경향을 보고 미래를 추정할 뿐이다. 이들은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순히 미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의 경제관련 수치나 시장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지시하는 방향에 기초해 미래에 대해 자기들이 추정한 것들을 조금씩 수정만 할 따름이다. 그 결과 이들은 늘 실제 현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5장 투자가에게는 가장 최근의 성적만이 있을 뿐이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사실 많이 거래하는 경우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lt;br /&gt;
 *&lt;br /&gt;
모멘텀 투자가였던 그녀로서는 1990년대 후반 5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필요한 정보제공자들을 많이 개발했고 이들을 통해서 수익을 올렸을 때는 이들에게 충분히 보상했다.&lt;br /&gt;
 *&lt;br /&gt;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투자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을 관리하는 투자가가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그다음에 떼어 놓는 발도 잘못 디디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lt;br /&gt;
 *&lt;br /&gt;
투자가는 오로지 가장 최근에 기록한 수익률로만 평가를 받는다&amp;lt;ref&amp;gt;어느 바닥이나 그런 것 같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사실, 낮은 수익률이라는 오랜 슬럼프가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최고의 신호는 중요한 고객이 투자금을 빼내갈 때이다.&lt;br /&gt;
 *&lt;br /&gt;
‘평균회귀원칙’이 투자의 황금률이라고 믿는다면(나는 이렇게 믿는다.) 그리고 명석한 투자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일반 지수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낸다는 사실을 믿는다면(나는 이렇게 믿는다.) 현재 손해를 본 상태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lt;br /&gt;
 *&lt;br /&gt;
낮은 수익률의 규모는(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작았고 높은 수익률의 규모는 컸으며 때로는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지수에 비해서 이들&amp;lt;ref&amp;gt;버핏을 비롯한 스타 투자가들&amp;lt;/ref&amp;gt;의 수익률이 주춤거렸던 시기를 살펴보면 대체로 지수들의 평균이 크게 뛰었던 시기였다.&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상대적인 수익률은 3년에서 5년 주기로 반복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 투자가의 투자 방식과 특정 시장의 중심 테마주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amp;lt;/ired&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장 격변기의 위험한 사회에서 자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개인자산 운용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투자수준은 매우 낮다&lt;br /&gt;
 *&lt;br /&gt;
펀드를 홍보하고 투자자를 모으는 사람들의 이해는 투자자들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석유와 가스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 거래는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결과를 보면 늘 운용자나 펀드 설립자들은 부자가 되고 투자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끝난다. &lt;br /&gt;
 *&lt;br /&gt;
“이상적으로 말하면, 주식시장이 완전히 파산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어야 할 정도가 되겠지요.” &amp;lt;ref&amp;gt;부자는 어느 정도의 금액을 비과세금융상품에 묻어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샘’이라는 사람의 답. 이 사람은 15년 전쯤 투자업계를 떠나 노후를 보내며, 일반적인 방법의 재산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유동성은 겁쟁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뭔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기미가 보이면 유동성은 꼬리를 감추고 달아나 버린다는 말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이 자기들이 직접 개발했다면서 이상한 것을 들고 나와 투자의 새로운 계산법이라고 설명하려 들면 역시 작별 인사를 던져야 한다.&lt;br /&gt;
 *&lt;br /&gt;
2003년 3월까지 5년 동안 계속된 활황-불황기간에 S&amp;amp;P 500지수는 연평균 마이너스 3%감소했지만, 이 기간에 중간 성적을 낸 FOF의 연평균 수익률은 6.3%였고, 상위 25%와 상위 5%는 각각 9.2%와 15.7%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했다. &lt;br /&gt;
 *&lt;br /&gt;
아트100지수&amp;lt;ref&amp;gt;미술품들의 가격도 S&amp;amp;P 500지수처럼 뭔가 지표가 있긴 있나보다. 구글에서 검색해봐도 바로 뭔가 나오지는 않는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통계치들&amp;lt;ref&amp;gt;여러 미술품들의 매매기록&amp;lt;/ref&amp;gt; 가운데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매소와 거래상들이 온 힘을 기울여서 좋은 미술품은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환상을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7장 투자의 세 가지 종교 ― 성장, 가치, ‘몰라’ &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상적으로 성장주 투자자들은 멋진 사업 분야의 주식을 가지길 원하며 주식의 가격이 올랐을 때가 아니라 그 사업이 주춤거릴 때 그 주식을 판다.&lt;br /&gt;
 *&lt;br /&gt;
투자가가 어떤 주를 성장주로 인식할 때면 이미 그 주식은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lt;br /&gt;
 *&lt;br /&gt;
‘우리 회사에서는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서 주당 순이익이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 보이는 소수의 기업들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amp;lt;ref&amp;gt;캐피탈 가디언社의 밥 파커. 성장주의 정의를 말하면서&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가치투자자는 다른 주식과 비교할 때뿐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도 가격이 싼 주식을 찾는다&amp;lt;/ired&amp;gt;&lt;br /&gt;
 * &lt;br /&gt;
 이때 그 기업의 현재 경상이익은 그 기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 능력보다 낮아야 함은 물론이다.&lt;br /&gt;
 *&lt;br /&gt;
 성장주 투자자들은 번듯하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보유자산으로 구성하는 데 비해서 가치 투자자들은 주가가 싸고 현재로서는 볼품없는 기업들을 보유자산으로 구성한다.&lt;br /&gt;
 *&lt;br /&gt;
버핏은 비록 모순적인 투자행위이긴 하지만 자기소유의 버크셔 해서웨이社의 엄청난 규모의 자본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기보유전략&amp;lt;sub&amp;gt;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함으로써 투자할 때 미리 수익을 확정짓는 전략으로 이자율이 변동할 때 기회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투자위험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역주&amp;lt;/sub&amp;gt;을 구사하는 가치투자자가 되었다. &amp;lt;sblue&amp;gt;그는 비싼 가격이라도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고 싶다&amp;lt;/sblue&amp;gt;고 말한다.&lt;br /&gt;
 *&lt;br /&gt;
 ‘몰라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선다. 이들은 투자사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바뀔 거야’가 그들의 경전이다. 어느 것이든 열광적으로 믿다가는 바로 그 종교적인 확신 때문에 화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성장주가 상대적으로 싸고 경제 환경이 이들에게 우호적이면 성장주를 매수한다. 그리고 가치가 있는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고 성장주의 가격이 바싸지면 가치를 쫓는다. 때로는 둘을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가치와 성장은 끊임없이 변동하는데 똑똑한 투자가라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하나만 믿는 골수 투자방식을 따르면 반드시 실패할 뿐이라고 대꾸한다. &lt;br /&gt;
 *&lt;br /&gt;
&amp;lt;red&amp;gt;성장대 가치의 수익률역사는 분명하다. 오랜 세월 동안 가치가 성장을 앞질러 왔고 그중에서도 소형 가치주는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해왔다.&amp;lt;/red&amp;gt;&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red&amp;quot;&amp;gt;만일 당신이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개인퇴직계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RA&amp;lt;/span&amp;gt;)와 장기 인덱스펀드가 포함되는 소형 가치주일 것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주식분야는 고수익 자산군이다. 특히 소형주일 경우에는 최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성장주든 가치주든 소형주는 대형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쌌다. 지난 6년 동안 소형주는 대형주보다 훨씬 나은 수익을 냈고 특히 소형 가치주는 소형 성장주보다 월등하게 앞섰다. 나라면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며 어느 쪽이든 소형주지수를 선택하겠다. &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MSCI는 소형주를 규정할 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볼 때 751위에서 2500위 사이에 놓인 기업이라고 정의한다.&lt;br /&gt;
 *&lt;br /&gt;
아마추어가 개별 주식들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성장주의 수명은 그다지 길지 않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인 자산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장 대형 투자회사를 피해야 하는 이유&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sblue&amp;gt;집착은 하되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투자가가 최고의 투자가이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버핏은 한때 투자가가 되는 것은 투수가 스트라이크 공을 던지지 않는 야구경기에서 타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투수가 GE를 시속 100킬로미터로 던질 수 있지만 굳이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속 70킬로미터로 던질 수 있지만 굳이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투수는 계속 던져야 하지만 타자는 칠 필요가 없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큰 것 한방을 터뜨리면 된다고 했다. 여섯달 아니 2년 동안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다보면 투수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공을 던질 때가 있다. 기다려야 한다!&lt;br /&gt;
 *&lt;br /&gt;
건강하고 강인한 투자 운용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외로운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압력 행사를 적당하게 하라. 둘째, 오랜 실전 경험과 가능하면 민간 투자자의 태도와 가장 가까운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라. 셋째, 함께 있어 편안하고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는 투자회사를 찾아라. 넷째, 투자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와 함께 하라. 건실하면서도 허풍을 떨지 않는 투자 컨설턴트나 운용자들이 직접 상당한 금액의 자기 돈을 투자해서 운용하는 헤지펀드를 이런 예로 들 수 있다. 또 대형 투자회사 안에도 개인자산 운용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9장 거품과 진정한 믿음&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든 거품은 처음에 강력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합법적인 기회로 출발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미래의 결과를 합리적인 추론과정이 아니라 과거의 결과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믿음만으로 장밋빛으로 전망할 때 이것은 거품(혹은 알맹이가 없는 투기 열풍)이 된다. 아무리 인터넷이 보급되고 누구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공인 금융 분석가들이 수천 명씩 쏟아지고 또 증권거래위원회가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려고 애쓰며 여러 정책들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시장은 보다 효율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고 또 거품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리지어살고자 하는 군거群居본능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거품은 금융시장과 군중심리에 통달한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가진다.&lt;br /&gt;
 *&lt;br /&gt;
거품이 완전히 꺼졌을 때 소위 ‘합성의 오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fallacy of composition&amp;lt;/span&amp;gt;가 작용해 군중심리로 작용한다. ‘합성의 오류’이론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개인에게는 이성적인 행동이 집단 전체로서는 비합리적이며 참혹한 결과를 빚어낸다.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칠 경우 관객 개개인으로서는 살기 위해서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할 경우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금융 공황상황에서도 개인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시장에 파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만 합리적이다. 즉,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합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전체를 파탄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장기 파동론을 점성학占星學이나 수상학手相學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혼돈의 세상을 오래 바라보면 네 자신이 혼돈의 세상이 되고 만다&amp;lt;ref&amp;gt;니체. 그런데 이게 그 ‘심연도 너를 바라본다’ 그것과 동일한 문장인지 아닌지 모르겠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구약성경은 기원전 600년에 1온스의 금으로 350덩이의 빵을 살 수 있다고 적었다. 오늘날에도 1온스의 금으로 미국에서 빵 350덩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금이 변변찮은 투자수단이었음을 반증한다. 2600년이나 지났지만 구매력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책속 등장인물&amp;lt;/ref&amp;gt;는 경제학과 옵션 이론을 전공한 뒤 1980년에 모건 스탠리에 입사해 파생상품부서에서 일했고 그 뒤에는 온갖 일들을 다 했다. 1987년 여름에 그는 자기가 개발한 일련의 계량모델을 이용해서 3표준편차에 속하는 동적 불균형 사건이 임박했다고 확신했다. 그는 회사와 몇몇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S&amp;amp;P 500종목 중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고 자기가 직접 증명한 종목들을 사게 했다.(그리고 자기도 직접 돈을 투자해서 그 종목을 샀다.) 그런데 그 주식은 대규모로 폭락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장 월스트리트괴담&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신문을 읽음으로써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려고 애쓰는 것은 시계의 초침을 보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려고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1장 동성애자, 경제학자, 헤지펀드 운용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사도회 런던 지회인 블룸스버리 집단 (중략) 블룸스버리는 사도회보다 한층 더 진보적인 태도를 가졌는데,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합리성을 경멸하고 감각성과 관능성을 더 높이 쳤다.&lt;br /&gt;
 *&lt;br /&gt;
이제 그들은 그의 맹렬한 지성과 그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 그리고 그의 상상력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lt;br /&gt;
 *&lt;br /&gt;
슘페터는 케인스와 그가 쓴 책을 놓고 ‘통찰력은 같지만 용기가 모자라는 사람들과, 용기는 같지만 통찰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침묵을 지킬 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활 타올랐다’고 표현했다.&lt;br /&gt;
 * &lt;br /&gt;
이 기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차입금 비중이 높았던 그의 펀드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가 입은 손실은 초기에 환 투기로 벌었던 수익의 3배가 넘었다. 뿐만 아니라 주식중개인에게도 상당한 빚을 졌다. 그의 순자산은 마이너스 상태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블룸스버리의 투자자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은 케인스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는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고 이 펀드는 투자자들의 손실을 말끔하게 메워 주었다. 그리고 케인스도 막대한 재산을 다시 모았다.&lt;br /&gt;
 *&lt;br /&gt;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장기적인 관점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고 한 유명한 구절도 바로 이 책&amp;lt;ref&amp;gt;《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amp;lt;/ref&amp;gt;에 들어있다.&lt;br /&gt;
 *&lt;br /&gt;
명목금리가 떨어질 때조차도 실질금리는 상승&lt;br /&gt;
 *&lt;br /&gt;
케인스는 대규모의 추세적 약세시장에서는 금융자산이든 실물자산이든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lt;br /&gt;
 *&lt;br /&gt;
아무리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한다 하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지면서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얼마든지 이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에 그는 주식에만 집중했다.&lt;br /&gt;
 *&lt;br /&gt;
케인스는 투자게임을 좋아했다. 이 게임이 자기 정신과 직관으로 하여금 시장과 맞붙어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지적인 영향을 받은 적이 없으며 자기는 오로지 실무적인 일밖에 모른다고 믿는 사람은 사실은 흔히 어떤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인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폴 새뮤얼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lt;br /&gt;
 “이 책은 글이 조잡하고 구성도 엉성하다(중략) 거만하며 모질고 시비를 건다. 인식의 관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중략) 대단한 발견인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리고 혼란스러운 쓰레기들이 수두룩하다. (중략) 통찰력과 직관의 섬광이 지루한 대수학을 뒤흔들고 쫓아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까지 도달하고 나면, 그제야 이 책에서 시도하는 분석이 선명하게 우리 앞에 떠오른다. 전혀 새로운 분석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책은 천재가 쓴 위대한 저작물이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보다 도덕적이라면, 그래서 보다 더 절약한다면, 그래서 개인재정이나 국가 재정이 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다면, 금리가 자본의 한계 효율에 비례해서 오를 때 수입은 그만큼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amp;lt;ref&amp;gt;일반적으로 자본의 한계효율이 이자율을 상회하는 경우 투자가 지속되며 이자율과 자본의 한계효율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에서 투자량이 결정된다. ― 역주&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는 주식시장에 관한 케인스의 뛰어난 통찰력도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그는 &amp;lt;sblue&amp;gt;주식시장을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고 최고의 미인을 예측해서 맞히는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는 미인 선발대회에 비유했다.&amp;lt;/sblue&amp;gt;&lt;br /&gt;
 &amp;lt;sblue&amp;gt;이 경우 각자가 판단하기에 실제로 가장 예쁜 여자를 뽑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여론으로 볼 때 가장 예쁜 여자를 뽑으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한 차원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 평균적인 여론이 어떤지에 대한 평균적인 여론을 추적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중층화 과정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때로 보유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태연하게 그리고 아무런 자책감 없이 지켜보는 것도 진지한 투자가의 의무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책을 마치면서&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자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역자&amp;lt;ref&amp;gt;이경식&amp;lt;/ref&amp;gt; 후기&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기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내에 상륙한 뒤 2000년까지는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일을 주로 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빌딩등의 부동산 매입을 거쳐 기업과 금융기관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 규모를 키웠다. 또 얼마 전에는 스틸파트너스라는 펀드가 KT&amp;amp;G주식을 대거 사들인 뒤에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했다. 소버린은 SK그룹의 경영권을 넘봤다. 뉴브리지 캐피탈은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사서 1조 1800원을 벌어들였고, 칼라일은 한미은행을 사서 7000억원을 챙겼따. 미국 월스트리트에선 한국을 흐름만 잘 타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 헤지펀드의 놀이터라는 말까지 나타났을까.&lt;br /&gt;
 이들이 경영권을 노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경영권을 확보해서 주주에 대한 배당을 늘리고 기업의 성장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저평가된 주식의 가치를 높인 뒤에 매각해서 차익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다. 외환 위기 직후에 정부는 외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렇게 나타난 외자는 생산적인 투자자본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투기 자본들이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순이익을 높이고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다음에 되팔아서(통째로 되팔기도 하고 잘게 쪼개서 하나씩 되팔기도 한다) 단기수익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이 해체되거나 말거나 혹은 그 회사의 직원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말거나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주주가운데 이미 다수가 외국인 혹은 외국 자본이다. 예를 들면, 2006년 2월 17일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54.16%, 포스코가 68.48%, 한국전력이 30.50%, 현대자동차가 45.62%, KT&amp;amp;G가 60.76%, LG전자가 43.84%, SK가 51.98%, 삼성화재가 54.32%, 대우조선해양이 37.12%, 삼성중공업이 37.01%등이다. ‘국민 기업’이라는 이유로 때로 특혜를 베푼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정부가 혜택을 아끼지 않았던 기업들의 주식이 상당 부분 외국인의 손에 들어가 있다.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재벌 가문을 제외하면 어쩌면 순수 내국인 주주는 외국인 주주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금융시장 개방과 무능한 경제관료 그리고 무지한 투자정보 및 일천한 투자역량이 만들어 낸 놀라운 ‘마술’이 아닐 수 없다.&lt;br /&gt;
 *&lt;br /&gt;
어떤 전문가는&amp;lt;ref&amp;gt;이런경우, 전문가가 아닐 확률도 높고 그냥 저자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자극적으로 끼워맞추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amp;lt;del&amp;gt;하지만 내 입맛에도 맞으므로 옮겨두겠다. ㅎㅎ&amp;lt;/del&amp;gt;&amp;lt;/ref&amp;gt;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및 그로 인한 엄청난 부의 유출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lt;br /&gt;
 “이른바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이 일개 사모펀드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실력에서 졌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게 론스타가 남긴 교훈의 첫단추라고 본다. 하지만 경제관료나 은행가 그리고 옆에서 훈수를 두던 경제학자들까지 그 누구도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용어해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 뮤추얼 펀드&lt;br /&gt;
뮤추얼펀드란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 회사를 설립하여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한 후 그 운용 수익을 투자자 즉 주주에게 배당금 형태로 나누어 주는 회사형 투자신탁을 말한다. 초기에는 일정 기간 환매가 되지 않는 폐쇄형 뮤추얼 펀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환매가 자유로운 개방형 뮤추얼펀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주식투자비중이 높은가, 채권비중이 높은가에 따라 주식형과 채권형으로 구분한다.&lt;br /&gt;
 투자자가 수익 증권을 사고 나중에 이익 배당을 하는 계약형 투자신탁도 포함해 개방형 투자신탁을 총칭하기도 한다. (하략)&lt;br /&gt;
● 투자전략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rategist&amp;lt;/span&amp;gt;&lt;br /&gt;
 (전략) 이들은 분석가와 달리 개별 종목이나 업종이 아니라 주식보유비중을 줄이고 채권비중을 늘리라는 식으로 투자 포트폴리오 자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lt;br /&gt;
● 블룸버그&lt;br /&gt;
 마이클 블룸버그가 1981년에 창업한 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사. 자체개발한 단말기를 통해서 채권수익률계산등의 금융정보를 증권회사에 제공하다가 1990년부터 뉴스공급도 병행하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와 주가, 기업정보등 수많은 정보들을 문자와 그래프, 수치로 제공한다.&amp;lt;ref&amp;gt;마침 블룸버그 앱이 애플 광고에 등장하길래 깔아봤더니 무슨 OTP같은 것도 있어야 하고 유료이고 해서 로그인도 못해봄&amp;lt;/ref&amp;gt;&lt;br /&gt;
● 선물거래&lt;br /&gt;
 (전략) 즉 현재 매수의 선물계약을 보유한 투자자는 동일한 종목을 매도하면 계약이 청산된다. 반대로 매도의 선물계약을 보유한 투자자는 동일한 종목을 매수하면 계약을 청산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ong liquidation&amp;lt;/span&amp;gt;, 후자의 경우는 환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hort covering&amp;lt;/span&amp;gt;라고 한다.&lt;br /&gt;
● 선물거래의 유형&lt;br /&gt;
 (전략)스프레드거래: 거래대상 상품은 같으면서 결제월이 서로 다른 선물계약 간 또는 거래 대상 상품은 다르나 가격 움직임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결제월이 같은 선물계약 간 가격관계를 이용하여 (중략) 가격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매수·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lt;br /&gt;
● 주가수익비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ER&amp;lt;/span&amp;gt;&lt;br /&gt;
 (전략) 대체적으로는 13~14배정도가 타당하다고 하지만, 각국의 경제사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또 품목별 이익신장률에 따라서도 관점이 달라진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B%AF%B8%EB%9E%98%EC%97%90%EC%84%9C_%EC%98%A8_%EB%82%A8%EC%9E%90_%ED%8F%B0_%EB%85%B8%EC%9D%B4%EB%A7%8C&amp;diff=16377</id>
		<title>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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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2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여느 천재와 달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알았던 노이만은 결코 나대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타고난 천재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위그너는 “노이만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는 완전히 깨어 있고 나는 반쯤 잠든 기분이었다”고 했다.&lt;br /&gt;
  노이만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관찰하는 눈으로’ 동급생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1850년대에,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ernhard Riemann&amp;lt;/span&amp;gt;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rl Friedrich Gauss&amp;lt;/span&amp;gt;는 리만의 논문을 읽고 “찬란하게 빛나는 창조성의 극치”라며 감탄을 자아냈다.&lt;br /&gt;
&lt;br /&gt;
  모든 종류의 치즈케이크로 이루어진 집합을 상상해보자. 여기에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치즈케이크(뉴욕식 치즈케이크, 독일식 치즈케이크, 레몬 리코타 등)가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집합 자체는 치즈케이크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치즈케이크의 집합’은 그 집합(자기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있다.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여전히 치즈케이크가 아니기 때문이다.&lt;br /&gt;
  러셀은 ‘자신의 원소가 아닌 집합의 집합’을 생각해보았다. 이 집합이 자신의 원소가 아니면 애초의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원소이면 역시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발견한 역설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문장은 거짓이다”)도 이런 종류의 역설에 속한다.&lt;br /&gt;
&lt;br /&gt;
  독일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그레테 헤르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Grete Hermann&amp;lt;/span&amp;gt;은 노이만의 책이 출간된 후 그의 증명을 철저히 확인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lt;br /&gt;
  헤르만은 괴팅겐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분명하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원칙적으로 김나지움에 입학할 수 없었고, 굳이 입학을 하려면 학교 재단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헤르만은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했는데, 그녀의 지도교수는 당시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의 유일한 여교수였던 에미 뇌터&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Emmy Noether&amp;lt;/span&amp;gt;였다. 몇 년 전, 괴팅겐의 사학과와 언어학과 교수들이 뇌터의 채용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힐베르트가 그들을 향해 날렸던 대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저는 지원자의 성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긴 대학교잖아요. 목욕탕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 속에서 헤르만과 뇌터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두 여인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그러나 헤르만은 1925년 2월에 박사학위 과정 졸업시험을 통과한 후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당시 뇌터는 헤르만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기에, 제자의 변심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수학 공부를 그토록 열심히 해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철학적 재능을 발견하다니, 축하를 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구나!”&lt;br /&gt;
&lt;br /&gt;
  몇 가지 증거에 의하면 독일은 이미 1943년 3월부터 미국의 핵폭탄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독일에 투하한 핵폭탄이 불발되었을 경우, 독일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분해하여 그들만의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며 폭탄 투하를 반대해왔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과학기술이 독일보다 못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인은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자를 몹시 경멸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직후 미국 정부는 수천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둬놓고 평범한 시민을 범죄자로 모는 등 인종차별과 전시 히스테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rtime hysteria&amp;lt;/span&amp;gt;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것은 전시상황에 벌어진 비상대책이라기보다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에 가깝다. 혹자는 핵폭탄을 ‘진주만 공습의 복수’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차출된 비-미국 출신 과학자들에게 “여기서 만든 핵폭탄은 독일이 아니라 일본에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통보했다면, 그들은 도중에 그만두거나 애초부터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lt;br /&gt;
&lt;br /&gt;
  ENIAC은 1930년대에 미국을 강타한 경제 대공황 때문에 학자의 꿈을 접은 전직 물리학 교사 존 모클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hn W. Mauchly&amp;lt;/span&amp;gt;의 작품이다. 그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학부 과정을 속성으로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1932년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잠시 동안 연구조교로 재직하면서 적당한 일자리를 물색했는데, 때마침 사상 최악이자 최장의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번듯한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모클리와 에커트는 노이만이 수백만 달러를 훔쳤다며 맹렬히 비난했고. 노이만이 그들(모클리와 에커트)의 가장 큰 경쟁사로부터 수천 달러를 받고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했다. 그때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두 사람의 분노는 노이만이 죽은 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노이만이 세상을 떠나고 무려 20년이 지난 1977년에 에커트는 한 인터뷰 자리에서 노이만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노이만은 우리가 개발한 모든 아이디어를 IBM에 알뜰히 팔아넘겼습니다. 그것도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말이죠.”&lt;br /&gt;
&lt;br /&gt;
  그가 바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과학자 할로 섀플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arlow Shapley&amp;lt;/span&amp;gt;의 아들인 로이드 섀플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loyd Shapley&amp;lt;/span&amp;gt;였다.&lt;br /&gt;
&lt;br /&gt;
  “동전을 허공에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 그리고 옆으로 똑바로 설 확률이 모두 같으려면, 동전의 두께와 반지름의 비율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화젯거리로 떠올랐는데, 노이만이 즉석에서 답을 제시하자 윌리엄스는 기술자에게 당장 그런 동전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고, 노이만의 처방에 따라 절삭기로 갈아서 만든 두툼한 동전은 정말로 모든 확률이 똑같았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과학자들 중에는 두 분야를 고립된 채로 놔두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obert Epstein&amp;lt;/span&amp;gt;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두뇌를 일종의 컴퓨터(정보처리장치)로 간주하는 노이만식 관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바람에 신경과학이 오히려 퇴보했다. 두뇌와 컴퓨터의 유사성을 추적하는 연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도 없이 실행되었는데도 얻은 것이 거의 없으니, 이제 ‘DELETE 키’를 누를 때가 되었다.”&lt;br /&gt;
  하지만 컴퓨터 말고 딱히 비유할 대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lt;br /&gt;
&lt;br /&gt;
  노이만의 암은 참으로 잔인한 시기에 찾아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53년에 노이만의 초청을 받아 고등연구소에 합류했던 브누아 델브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enoit Mandelbrot&amp;lt;/span&amp;gt;는 그 시기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프린스턴에 머무는 동안 노이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수학자들은 그를 더 이상 수학자로 취급하지 않았고, 물리학자들도 그가 단 한순간도 진정한 물리학자인 적이 없었다며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컴퓨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프린스턴으로 초빙했는데, 기존의 학자들은 그들을 ‘프로그래머’라 부르며 고매한 학문의 전당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으로 취급했다. 한마디로 노이만은 고등연구소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lt;br /&gt;
&lt;br /&gt;
  미클로스는 자신의 형이 단 하루 만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노이만과 가까운 친구들도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울람은 스트라우스에게 “신앙심이 그토록 초단기 속성으로 자랄 수 있다니, 내 마음이 다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마리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파스칼의 내기&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ascal&amp;amp;#39;s wager&amp;lt;/span&amp;gt;’ (신의 존재 여부에 따른 득과 실을 따져서 종교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옮긴이)를 떠올렸던 겁니다, 그분은 지옥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0이 아니라면,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신도가 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 선택이라고 생각했지요. 또 아버지는 천주교가 신자로 살아가기에 매우 힘든 종교지만, 신자로 죽기에는 아주 좋은 종교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lt;br /&gt;
  노이만의 몸을 잠식하던 암이 어느새 뇌까지 도달했다. 그는 잠결에 헝가리어로 잠꼬대를 했고, 병실을 지키던 군인들을 불러서 “본부에 급히 전할 메시지가 있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지구에서 가장 예리했던 한 사람의 지성은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갔다. 마지막 순간에 노이만은 마리나에게 “7+4” 같은 단순한 산수 문제를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마리나가 던진 몇 개의 문제에 노이만은 하나도 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lt;br /&gt;
&lt;br /&gt;
  1981년에 천문학자 로버트 제스트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obert Jastrow&amp;lt;/span&amp;gt;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컴퓨터란 순수한 사고만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컴퓨터에게 전력과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간이 컴퓨터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컴퓨터의 재생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컴퓨터의 번식을 수행하는 생식기관인 셈이다.”&lt;br /&gt;
  그의 말은 거의 옳았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에는 20억 대의 컴퓨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막강한 번식력을 능가하는 새로운 오토마타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다. 이 기계는 2014년에 전 세계 인구수를 추월했고, 지금 사용 중인 SIM 카드는 100억 개가 넘는다.&lt;br /&gt;
  2019년 한 해 동안 15억 개가 넘는 스마트폰이 팔려나갔다. 증가율로 따져도 인구 증가율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지금은 이 많은 SIM 카드를 인간이 사용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동안, 이 기계도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27b64672154947df9e19353d2fc5dd20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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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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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4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각 인용의 정확한 위치를 생략했고, 순서만 지킴)&lt;br /&gt;
&lt;br /&gt;
  호니그가 양적완화에 반대한 이유는 이것이 전례 없는 양의 화폐를 공급하게 될 테고 그 돈이 월가의 거대 은행으로 먼저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호니그는 이 돈이 매우 부유한 사람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는 혜택을 보겠지만 월급 받아 살면서 저축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될 터였다.&lt;br /&gt;
&lt;br /&gt;
  티파티가 위력을 발휘한 선거 이후 의회는 어느 방식으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호니그와 의장인 버냉키의 관계는 원래도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적대적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버냉키가 펴낸 회고록에 남에 대한 옹졸한 험담은 그리 많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상당수가 호니그를 향한 것이었다. 버냉키는 호니그를 충성심이 없고 고집이 세며 심지어는 다소 편향된 사람처럼 묘사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의 피셔는 이 계획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근사한 은유로 발언을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적완화는 시장 운영의 칡뿌리와 같습니다. 계속 자라고 또 자라기 때문에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제거하거나 쳐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피셔는 이 계획이 본질적으로 거대 은행과 금융 투기 세력에 혜택을 주고 은퇴를 위해 저축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격이 된다는 호니그의 우려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 정책을 실행하면 가난한 사람, 대부분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사람, 저축을 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결과가 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봅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소비자 물가만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산 가격도 올리고 있었다. 호니그 같은 은행 감독관들이 보기에 자산 인플레이션은 매우 경악스러운 종류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캔자스시티 연은 관할 지역의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핵심 자산은 농지였는데, 농지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도, 유정도 그랬다. 이러한 자산이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올라와 있었는데, 이 자산들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은행들은 더 공격적인 대출을 하도록 부추겨졌다. 중서부 지역 전역에서 은행들은 농지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르리라는 전제에서 농민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었다. 상승하는 담보 가치가 대출금을 충분히 지탱해주리라고 본 것이다. 석유 산업도, 부동산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호니그는 부동산 가치가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만큼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재융자가 가능하리라는 전제하에 건설 분야로 단기 대출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lt;br /&gt;
  이러한 상황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몰아갔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는 은행과 투자자가 돈을 저축하려 할 유인을 없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저축으로 약간의 이자를 얻어도 오히려 손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 돈을 가지고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은행들은 점점 더 수익률 곡선의 먼 쪽으로 내몰렸다. 호니그의 팀은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산 가격이 올랐으므로 은행들이 자신이 내어준 대출이 안전하고 은행 건전성도 안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은 감독관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 해도 장부의 숫자들이 은행 편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이 예기치 못하게 뚝 멎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될 터였다.&lt;br /&gt;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막대한 붕괴가 발생하게 됩니다. 줄도산과 줄손실과 줄위기가 이어집니다.”&lt;br /&gt;
&lt;br /&gt;
  그는 경제학자들이 ‘자산버블’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력하고 지극히 다루기 어려운 현상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수십 년 뒤인 오늘날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은 대개 자산버블이라고 묘사되지 않는다. 오늘날 1970년대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재앙의 절반만 이야기한다. 고깃값이나 휘발윳값 같은 소비재 물가가 충격적으로 올랐던 시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인플레이션이 파괴적이었던 진짜 이유는 두 종류의 인플레이션이 상호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 절반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며,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후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다. 2000년의 닷컴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고 2008년 주택시장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으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시장이 전례 없이 붕괴했을 때도 큰 요인 중 하나가 자산버블이었다.&lt;br /&gt;
&lt;br /&gt;
  처음에 사람들은 볼커가 금리 인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그가 정말로 금리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1979년 10월에는 그가 압력 때문에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준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볼커는 토요일 저녁에 에클스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연준은 금리 인상에 진지하다고 선언했다. “최근 돌고 있는 소문과 달리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 주 주말에 11.6%이던 단기 금리는 그달 말에 16%가 되었고 1년도 안 되어 20%에까지 도달했다.&lt;br /&gt;
  그 토요일 저녁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제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질문했는데, 볼커는 이 질문을 대체로 일축했다. “저는 이러한 조치의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불확실한 세계에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지표들을 보건대, 경제의 조정 과정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lt;br /&gt;
  볼커의 이 말은 틀렸다. 어떤 것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의 경제 생태계는 저금리를 북극성 삼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볼커가 느닷없이 북극성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재조정되어야 했다. 지난 10년간의 자원 배분 양상이 달라져야 했고 모든 것이 수익률 곡선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안쪽으로, 덜 위험한 쪽으로 돌아와야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에 대한 연준의 긴급 융자는 재할인 창구를 통해 나가는데, 호니그는 1980년대 초에 캔자스시티 연은의 재할인 창구를 관리했다. 그의 팀이 어느 은행이 이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지를 결정할 때, 이것은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선고를 내리는 격이었다.&lt;br /&gt;
  1982년에 진정한 은행 패닉이 터졌고, 이는 대공황 이래 최악이었다. 8 그해에 100개 넘는 은행이 도산했는데, 한 해 도산 건수 기준으로 1930년대 이래 어느 해보다도 많은 수였다. 1986년에는 심지어 이 숫자가 더 늘어서 200개가 넘는 은행이 도산했다. 1980년에서 1994년 사이에 총 1,600개 이상의 은행이 도산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호니그는 어리석은 대출이 전적으로 은행들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은행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그에 비해 낮은 금리, 그리고 상승하는 자산 가격이라는 거시 경제 환경에 반응해 의사결정을 했을 뿐이었다.&lt;br /&gt;
  그리고 그러한 거시 경제 환경은 은행들이 만든 게 아니라 호니그가 일하는 기관, 바로 연준이 만든 것이었다.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자산 가치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던 환경에서 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환경은 10년이나 너무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했던 잘못에서 야기된 면이 컸습니다.” 이 부분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1980년대의 침체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자주 간과되곤 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끝냈고 살아남은 건전한 은행을 구제해주었다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나온 연구는 이 재앙 전체에 연준이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순전한 실수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먼 훗날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연준이 고려했던 몇몇 데이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잘못된 데이터 중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연준이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관되게 저평가한 것이었다. 이것은 곡사포 관제병이 오류가 있는 기상관측기구가 보내오는 정보에 기초해 발사 지시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실제 여건이 벙커 안에 있는 팀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연준은 그 시기의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연준과는 관련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비용을 밀어올려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거대 노조가 노동 비용을 밀어올린다거나 중동의 석유 카르텔이 유가를 밀어올린다는 식으로 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은 단지 자산버블만 부추긴 것이 아니었다. 연준은 버블이 커지던 동안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던 은행들을 버블이 붕괴할 때 구제하는 일에도 나서야 하게 되었다. 어떤 은행들은 너무 크고 너무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lt;br /&gt;
&lt;br /&gt;
  예보와 연준은 대안을 마련했다. 예보는 이례적인 구제 패키지를 제공해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주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보가 원래 10만 달러 이내의 예금자만 보전해주게 되어 있는 규정을 넘어 그 이상 예금한 예금 보유자와 채권 보유자까지 모두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돈을 넣었을 은행들에까지 안전망을 크게 넓혀준 것이다. 이제 납세자들이 그 손실 모두를 메워주게 될 터였다. 예보의 구제 금융과 동시에 연준도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콘티넨탈에 긴급 융자를 제공하기로 했다.&lt;br /&gt;
  콘티넨탈 구제 금융은 대인플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에 위험을 충분히 많이 퍼뜨려 놓았다면 그 은행은 위기 때 구제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까지 존재하던 규정은 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간단히 무시될 것이었다. 이 선례는 미국 은행의 어휘집에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다. 콘티넨탈 구제 금융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코네티컷주 출신 공화당 의원 스튜어트 매키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wart McKinney&amp;lt;/span&amp;gt;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했다. “의장님, 돌려 말하지 맙시다. 우리 앞에는 이제 새로운 종류의 은행이 있습니다.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큰’ 은행 말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성장이 부채로 일으킨 성장이었고 그것이 은행들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린스펀이 묘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되고 강화되면서 21세기 미국 경제의 핵심 특징이 된다. 값싼 부채는 한동안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긴 붕괴와 오랫동안의 약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차차로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새로운 패턴을 더 잘 파악하게 되고 1990년의 불황이 그린스펀이 짐작했던 대로 정말로 전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업과 가계는 여전히 1980년대의 빚을 갚고 있어서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이것은 금융 침체 버전의 지독한 숙취라고 할 만했다.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전에는 불황 때도 해고 영향을 덜 받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이 주도한 조치들은 단기적인 응급 처방이 아니었다. 이 조치들은 ‘이지 머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easy money&amp;lt;/span&amp;gt;’의 새로운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다. 그린스펀이 1992년 동안 진행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더 나중의 완화적 정책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1년에 연준이 일조한 악성 부채 오버행도 이후의 오버행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린스펀은 이 시기에 유명인이 되었고 연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라는 인물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질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대중이 점점 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10년 동안 연준은 경제 정책의 장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매우 신경을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전에 폴 볼커의 방정식에는 ‘사촌지간’인 두 인플레이션(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린스펀의 연준은 점차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는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지 않는 한에서 화폐 공급을 계속 늘리고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은 제어 불가능한 본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방치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탄탄한 근거 논리가 있었다.  우선, 추적이 더 쉬웠다. 휘발유, 빵, 텔레비전 등의 가격은 수집하기가 쉽다.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다. 연준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릴 때는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자산버블을 터뜨리면 즉각적으로 고통이 일고 특히 매우 부유한 가구에 고통이 일었다. 금융 기자 세바스천 맬러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ebastian Mallaby&amp;lt;/span&amp;gt;는 ‘버블에 직면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불확실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치솟는 시장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는 정치인과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가 쓴 그린스펀 전기 &amp;amp;lt;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Man Who Knew&amp;lt;/span&amp;gt;&amp;amp;gt;는 그린스펀 시기 연준의 정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로 한 의사결정이 점진적으로, 하지만 1990년대 무렵이면 거의 분명하게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그린스펀 시기만의 특징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패턴을 설정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이 결정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양당 모두의 의원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그를 칭송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린스펀은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금융 엔지니어로 보였고, 이러한 성공과 그것이 갖는 신비한 아우라의 핵심은 그가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은 채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하지만 1998년 무렵이면 자산 인플레이션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우려를 별로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호황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말의 자산버블은 상당 부분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주가에서 벌어진 것만큼의 가격 상승이 버터나 휘발유에서 벌어졌다면 모두 경악했을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주가 지수가 1999년에 19.5%나 상승했다. 기술주들이 주로 있는 나스닥 지수는 80%가 넘게 뛰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는 물가 인플레이션만 통제하기로 하고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무시했고, 그다음에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자산 가격이 붕괴하면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했다. &lt;br /&gt;
&lt;br /&gt;
  물가 인플레이션은 통제하되 자산버블은 무시하기로 하는 그린스펀의 정책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연준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로 이어질 커다란 자산버블에 불을 때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몇 년 동안 연준은 하나의 자산버블을 다른 하나의 자산버블로 대체하면서 경기를 진작했다. 주식시장 버블이 주택 버블로 선수 교체되었다. 주택 시장의 활황이 다른 영역으로도 넘쳐흐르는 ‘스필오버’ 효과를 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 지출과 대출을 촉진하리라는 것이 이에 대한 논리였고, 이 논리는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동안 부동산 산업은 호황을 구가했고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1970년대에 값싼 부채가 농지 가격을 밀어올렸듯이 낮은 모지기 금리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게 더 쉬워지게 했다. 그래서 매년 경쟁이 높아졌고 이것이 가격을 더 밀어올렸다. 대체로 이러한 동태적 과정은 1990년대 말에 주식시장 인플레이션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호황’이었다. 주식처럼 주택은 중산층이 부를 일구는 핵심 원천이자 중요한 노후 대비 투자라고 이야기되었다. 주택 가치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흠 없이 좋은 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랬듯이,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게 된 것은 &amp;amp;#91;주택 시장 인플레이션이 아니라&amp;amp;#93; 물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서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물론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적하는 게 물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시장 교란 없이, 또 자산 가격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멈추기도 더 어렵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산 가격이 조정되는 시점이 오면(자산 인플레이션은 언젠가는 반드시 조정이 된다) 막대한 금융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연준이 자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 5%를 달성했다 해도 조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실업률 10%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산버블의 피해를 다루기 위해 연준은 한층 더 크게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그 영향이 경제 시스템 전체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고 시스템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교란은 2007년 8월에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의 황폐화가 명백해진 2008년 말에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2년 사이에 8조 달러가 사라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들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보였고, 이 이미지는 긴급 대출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이국적인 야생동물원을 보는 것처럼 TAF(&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erm auction facity&amp;lt;/span&amp;gt;, 기간물입찰대출제도)라든가 TSLF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erm securties ending facity&amp;lt;/span&amp;gt;, 기간물증권담보대출제도)라든가 PDCF(&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rimary dealer credit facity&amp;lt;/span&amp;gt;, 프라이머리딜러신용제도)와 같은 불가해한 영문 약어들로 되어 있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연준어이고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하나였다. 돈을 찍어서 소수의 프라이머리 딜러 계좌로 내보냄으로써 월가에 돈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연준은 이것을 전례 없는 규모로 실시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행히도, 호니그가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의 통로로만 나갈 수 있었다. 케이블뉴스, 신문, 금융 통신 서비스, 그리고 점점 더 인기가 높아져가던 당파적인 웹사이트 등으로 구성된 미국의 언론 생태계였다. 그런데 2010년 무렵에 이 생태계는 분절되어 있었고 질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민주적 기관들이 쇠락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자 쇠락을 가속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양적완화와 제로금리가 지난 10년간의 경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대중 담론에서 가장 논의되지 못한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은 트레이더들은 새로 만들어진 달러를 써서 금융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것이 경제와 은행 시스템에 연준이 미치는 영향력의 토대다.&lt;br /&gt;
&lt;br /&gt;
  흔히 FOMC가 단기 금리를 ‘설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FOMC는 단기 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뉴욕 연의 트레이더들이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든다. 수십 년 동안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증권을 사고팔아서 돈의 비용이 FOMC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래 연준은 단기 채권 거래로만 통화 공급을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기 채권을 사들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월가 투자자들이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었던 금고 하나를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이 수익률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자산을 구매한다. 이는 자산 수요를 증가시켜 회사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미술품에 대한 가격까지 밀어올린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의 목적이었고, 자산 가격이 높아지면 ‘자산 효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ealth effect&amp;lt;/span&amp;gt;’를 일으키고 이 이득이 더 폭넓은 경제로 확산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리라는 기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러한 자산 효과가 일어나려면 제로금리가 우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부터 이득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연준의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산 소유가 폭넓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 자체의 분석으로도 그렇다. 2012년 초에 미국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했고 하위 50%가 소유한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에 불을 땠을 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기별이 없이 상층의 매우 소수에게만 이득을 주었다.&lt;br /&gt;
  이러한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가장 적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헤지펀드 운영자 중 ZIRP가 소득 불평등을 강화하고 투기적인 부채 버블을 일으킨다고 소리 높여 비판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월가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거래가 수익이 높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이 그리로 우르르 몰려 거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적완화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계속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종말론자들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었고, 그러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호니그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무시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동시에 같은 액수의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단기를 비트는&amp;amp;#91;트위스트&amp;amp;#93; 공개 시장 운영&amp;amp;#91;오퍼레이션&amp;amp;#93;을 한다.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서 퇴장시킴으로써 수요를 높여 장기 국채의 금리를 낮춘다. 하지만 같은 액수의 단기 채권을 매도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에 새로운 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장기 국채를 매입할 때 추가되는 만큼의 달러가 단기 국채를 매도할 때 다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이 조치의 목적은 은행 시스템에 존재하는 화폐량을 늘리지는 않으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에 돈을 묻어두고자 할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듀크는 ‘재닛은 제한 없는 양적완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회상했다. “재닛은 매우 영향력이 컸습니다. 자신감이 넘쳤고 견해를 밀어붙이는 데 아주 유능했어요.” 옐런과 버냉키의 확신에 찬 주장은 한 가지의 단순한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즉 무엇을 하더라도 오류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하는 쪽으로 오류를 저지르는 게 낫다는 의견이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점차로 여기에 매우 능숙해졌다. 7월 말의 FOMC 회의에서 그는 점점 더 확장적이고 강한 개입 정책을 밀어붙이는 버냉키의 주장에 대해 길고 열정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피셔는 ZIRP 정책의 이론적인 장단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ZIRP 정책이 이미 경제에 미치고 있는 위험한 왜곡의 실제 사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lt;br /&gt;
  피셔는 최근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재무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회사가 ZIRP 시대에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얼마 전에 낮은 비용으로 15억 달러의 부채를 조달했는데, 이 돈을 공장을 짓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쓸 계획이 아니었다. 그 돈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쓸 계획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부채 조달 비용은 0.45~1.6%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식에는 2.5%의 배당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부채를 늘리고 주가를 올리며 주주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주는 정교한 금융 공학 기법이었다. 피셔는 그 재무 임원과의 대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핵심을 지적했다. “그가 말하길, 아,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인용해도 좋다고 했는데요, 그 회사는 그 돈을 일자리를 하나라도 창출하는 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값싼 돈을 공급하면 기업들이 차입을 늘려 그 돈을 자본재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리라는 가정하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lt;br /&gt;
&lt;br /&gt;
  7월 회의에서 제이 파월은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그는 QE가 자산 가격부터 먼저 올리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경로, 그러니까 자산 가격을 통한 경로가 우리의 모델이 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lt;br /&gt;
&lt;br /&gt;
  아무튼 이 오류들은 새로운 라운드의 QE가 긴급히 필요한 조치이고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그다음에는 철회되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연준이 사용하는 다른 수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령 금리 인하처럼 시행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빠르게 철회할 수 있는 수단 말이다.&lt;br /&gt;
  하지만 양적완화는 그렇지 않음이 곧 드러났다. 양적완화가 일으킨 왜곡은 깊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으며 양적완화는 일단 시행되면 끝내기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lt;br /&gt;
  이러한 예측 오류는 그날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중앙은행 모두가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해 일관되게 스스로를 오도했다. 2020년 전미경제연구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amp;lt;/span&amp;gt;의 한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양적완화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외부 연구자들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양적완화의 효과를 더 크게 잡은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더 승진을 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그들의 분석이 바로 그 프로그램을 미는 중앙은행 고위 인사들에게 보고되는 것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lt;br /&gt;
&lt;br /&gt;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벳시 듀크는 집무실의 텔레비전과 실시간 블룸버그 통신 터미널에서 테이퍼 탠트럼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듀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것은 연준이 한 일 전부를 한꺼번에 쓸어 없애고 있었다. 연준이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가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것이었는데 그 금리 하락이 사라지고 있었다. 듀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점에, 상황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지속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매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테이퍼링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자산 매입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고 양적완화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수준의 부채를 일으키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QE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QE의 목적이었다.&lt;br /&gt;
&lt;br /&gt;
  매년 생존을 해내는 것만으로는,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칼라일의 경영진이 투자했을 때 기대한 수익을 아직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대개 투자한 뒤 5년 이내에 두 자릿수 수익을 내고자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숫자다. 가장 일반적인 전술은 부채를 더 일으켜서 회사를 더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회사는 부채가 증가하지만 즉각적으로 새로운 제품군과 고객층을 보탤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합병을 하면 비용 절감의 지름길이 생기기도 한다. 호니그였다면 이것을 ‘자원의 잘못된 배분’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돈 빌리는 게 쉬워지면 기업들은 빌린 돈을 합병이나 바이아웃에 쓴다. 이러한 활동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혁신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 대중의 임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lt;br /&gt;
&lt;br /&gt;
  이것이 ZIRP 전까지 브라이언이 내내 일해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ZIRP로 기업 부채 시장의 다이내믹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14년과 2015년에 브라이언은 중대한 폭로를 해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는 연준이 2010년에 시작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한 정책의 결과였습니다. 이제 인공적인 바닥이 생겼고 연준이 그 바닥의 상당 부분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장에서는 잃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잃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것은 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설명했다.&lt;br /&gt;
  잃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레버리지론과 CLO의 새로운 시장으로 그 모든 돈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2010년 말에는 미국에 CLO 잔액이 3,000억 달러가 채 안 되었는데 2014년 말에는 4,000억 달러가 되었고 2018년에는 6,170억 달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몇 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위험한 기업 부채의 탑을 쌓았다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을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은 연준이 인센티브를 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 중 어느 것도 연준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FOMC가 가장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진행하던 2013년에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명시적으로 이 정책이 주로 사모펀드에만 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 파월이 있었던 칼라일그룹 같은 곳 말이다. 피셔는 높은 자산 가격이 버냉키가 기대한 방식대로 ‘자산 효과’를 일으켜&amp;amp;#91;즉 주식, 주택 등 자산 소유자들이 부가 증가했다고 느끼게 되면 이들의 소비가 촉진되어&amp;amp;#93;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lt;br /&gt;
  피셔는 그때 FOMC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자산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자들과 시장을 잘 읽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버핏이나 KKR이나 칼라일이나 골드만삭스나 파월 같은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마 피셔 같은 사람들도요. 이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돈을 빌려서 채권과 주식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피셔는 이것이 연준이 바라는 정도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lt;br /&gt;
&lt;br /&gt;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한한 부작용 중 하나는 그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거대 은행들의 권력이 더 강화되고 공고화되었다는 점이었다. 2008년 시점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은 더욱 커져서 망하게 두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은행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산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이대로 그냥 둘 생각인 것 같았다. 이것은 호니그가 수년 동안 경계했던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소수의 거대 은행이 가진 자산이 점점 더 늘어나는 동안 지역공동체 은행은 수천 개가 사라졌다. 은행 업계는 현대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중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행동에 나서게 부추기고 있었다. 또한 위험은 ‘그림자’ 은행 시스템으로도 퍼지고 있었다. 그림자 은행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방대한 양의 돈을 대부하면서 은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lt;br /&gt;
&lt;br /&gt;
  대공황 때 루스벨트 행정부와 의회는 은행의 권력을 제한하고 은행이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은행 업계를 완전히 개편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은 이와 달랐다. 은행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기는 했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소비자금융보호국&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amp;lt;/span&amp;gt;이라는 규제 기관도 새로 생기긴 했지만, 은행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보다는 거대 은행들이 지켜야 할 매우 복잡한 새 규칙을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거대 은행이 계속 거대하게 있을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세세하게 감독과 관리를 받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것이 수백 쪽에 달하는 도드-프랭크법과 은행 관련 국제 협약인 ‘바젤 II’의 내용이다.&lt;br /&gt;
  하지만 호니그는 이것이 지는 게임이라고 보았다. 은행을 규제하는 규칙은 목적에 비추어 간명하게 작성되어야 하고 쉽게 이해되어야 하며 분명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뉴딜 시기에 그랬듯이 은행들이 다시 분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보험으로 보호되는 소비자 예금은 상업은행이 취급하게 하고 더 위험한 파생 상품 거래는 투자은행에 허용하는 식으로 은행 산업이 기능에 따라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분리하면 납세자들의 돈은 상업은행의 예금, 즉 예보가 보장하는 예금을 보호하는 데만 들어갈 것이고 이 안전망이 고객의 예금도 받으면서 위험한 투기성 거래도 하는 거대 은행들로까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호니그는 일단 은행들이 이렇게 기능별로 분리되면, 그 다음에는 위기에 대비해 자본을 얼마나 많이 보유해야 하는가의 간단한 규칙에 따라 감독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lt;br /&gt;
&lt;br /&gt;
  호니그 규칙의 핵심은 은행 업계에서 더 위험한 부분과 경제적으로 더 필요한 기업 대출 같은 부분을 분리해서,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이 베팅을 잘못했을 때 전체 시스템을 함께 위험으로 끌고 내려가지 말고 혼자 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양적완화는 주식시장에 인플레를 일으킬 목적으로 고안되고 실행되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2010년 이후 10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준이 개입 근거로 들었던 것처럼 전반적인 경제성장은 약세였고 임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해외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7%나 상승했다. 천성이 다소 신랄한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던 2016년의 주식시장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에 갑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에 빗댔다. 갑판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갑판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과 호니그 모두 연준이 노동 시장에서 얻을 상대적으로 작은 이득을 위해 위험한 자산버블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파월은 본인이 제기한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다. 그리고 호니그와 달리 파월은 비판의 어조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한때 FOMC의 닫힌 회의장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정책을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때가 파월이 명실공히 권력의 위치로 떠오른 시점이다.&lt;br /&gt;
&lt;br /&gt;
  공개된 경제 포럼에서 그는 현재로서는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에서 ‘한참 멀리 있다’고 말했다. 중립 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저해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하는데, 아직 이보다 낮다는 의미였고 이는 금리 인상이 더 있으리라는 암시였다.&lt;br /&gt;
  그 발언 이후 시장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이틀 만에 5%가 떨어졌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종목에는 은행과 에너지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와 시장의 요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가려지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을 설명할 그날의 뉴스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예를 들면 기술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뉴스는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테크 기업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정치계의 관심을 이유로 들었다. 맞긴 맞았다. 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실제로 세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 하락의 배경에 있는 더 큰 요인은 연준의 정상화 조치였다. 연준이 돈이 주식으로 몰려가게 하는 압력을 줄이자 투자자들은 가치가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던 데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기술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가차없는 경제 요인의 힘이 자신의 모습과 범위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파월이 항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lt;br /&gt;
&lt;br /&gt;
  하지만 곧 분명해지듯이 정상화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배전이 엉망이라 벽 뒤에서 전선이 녹고 있는, 잘못 지어진 거대한 건물과 같았다. 몇몇 방은 풀풀 연기가 났고 몇몇 방은 공기가 탁해지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화염이 타오를 것 같았다.&lt;br /&gt;
&lt;br /&gt;
  7월에 파월의 연준은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실업률은 3.7%로 5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임금도 상승하고 있었다. 경기 순환의 이러한 국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 그래야 둔화 국면에 연준이 개입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경기를 둔화시켜 할 국면에 이례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이유로 연준은 이것이 일종의 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이 보험이 시작일 뿐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물 시장에서 가격은 그해 말까지 세 차례 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반영해 형성되었다. 유럽, 중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 다시 완화를 시작했다. 중앙은행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고 8월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침체와 싸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시장이 안정적이고 건전한 상태라고 여겨지던 때에 말이다. 그러한 위기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연준이 거의 곧바로 개입해서 레포시장 구제에 4,000억 달러를 지출했기 때문이었다. 전례 없는 구제 조치였고, 이러한 대규모 구제 조치는 레포시장을 공중 납치해 위험한 도박의 도구로 사용하던 소수의 헤지펀드에 큰 이득을 주었다. 연준이 그들을 그들의 도박이 일으킨 결과에서 구제해준 격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이 거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4,000억 달러의 긴급한 현금 주입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연준은 이것이 일상적인 유지 보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이날 아침에 레포 금리는 9.5%였고 이것은 금융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날 연준은 전례 없는 레포시장 개입을 시작했다. 오버나이트 레포 론 시장에 750억 달러를 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긴 구제금융의 시작이었고 나중에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치들을 발표할 때 연준은 아주 많은 전문 용어를 사용했고 전체를 일상적인 유지 보수 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대한 현실 하나를 가리고 있었다. 연준이 뿌리는 돈이 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돈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었다.&lt;br /&gt;
&lt;br /&gt;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lt;br /&gt;
  헤지펀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레포시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이것이 헤지펀드들에 준 금전적 이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레포시장 구제 금융은 레포 대출 자체에서 상당한 돈을 구제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이 베이시스 거래에 잘못 베팅한 결과를 피하게 해줌으로써도 거의 헤아릴 수 없는 금액을 구제했다. 연준 덕분에 헤지펀드들은 가진 자산을 뭐든 투매해서 현금으로 유동화하지 않아도 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레포시장 개입을 발표하면서 헤지펀드나 베이시스 거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오버나이트 론 금리를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임시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레포 구제 금융은 수주, 수개월 간 지속되었는데 파월, 로건, 윌리엄스 같은 연준 고위 당국자들은 내내 이것이 일상적인 시스템 유지 보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실제의 번영은 경제 시스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만 누리고 있었다. 헤지펀드가 돈을 빌려서 그 돈을 주식시장에 부었을 때 뉴스 보도들은 상당히 신나 보였다. “다우는 오늘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마감했습니다.” 누가 여기에 불평할 수 있었겠는가?&lt;br /&gt;
  돌아보면, 호니그가 스타벅스에 온 날은 특히 통렬한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국 경제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장이었다. 곧 신문은 날마다 바이러스 소식으로 뒤덮이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3월 4일까지 감염자가 158명 발생했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날 호니그와 손님들은 스타벅스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나눴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였다. 이날 같은 좋은 날이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lt;br /&gt;
&lt;br /&gt;
  지난 9월에 레포시장이 붕괴했을 때 연준은 75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날 3월 12일 목요일에 연준은 5,00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고 다음 날 다시 1조 달러어치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연준이 월가에 즉각적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보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우는 계속 급락해 그날 전일 대비 2,300포인트, 비율로는 10% 하락했다. &lt;br /&gt;
&lt;br /&gt;
  파월의 연준은 벤 버냉키가 2008년과 2009년에 했던 것을 모두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달에 걸쳐서가 아니라 1주일 만에 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거의 제로로 낮추었고 외국의 중앙은행들과 스왑 라인을 열어 그들의 통화와 달러를 맞교환했다(많은 글로벌 부채가 달러 표시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총 7,000억 달러 규모로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를 개시했고 전보다 빠른 속도로 국채를 매입했다. 연준은 그다음 화요일이 되기 전에 8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했는데 이전의 양적완화에서 한 달에 푼 돈을 48시간 만에 푼 것이었다. 또 연준은 금리가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제로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다 시작되었다. FOMC는 이 긴급 조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클리블랜드 연은 행장 로레타 메스터&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oretta Mester&amp;lt;/span&amp;gt;가 반대표를 던졌는데, 금리가 0.1%가 아니라 최대 0.5%까지로만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이 3월 15일에 시작한 긴급조치는 어느 기준으로 보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연준이 했던 어느 개입보다 범위도 넓었고 규모도 컸고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3월 20일 금요일 저녁까지 벌어진 1주일간의 금융판 대학살은 연준의 조치들이 패닉을 누르기에 충분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lt;br /&gt;
  이 시점에 이미 파월은 연준 구제책의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연준을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가게 할 것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연준은 회사채, CLO, 심지어는 정크본드까지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 풋을 거의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부채 시장을 영원히 바꾸어놓게 될 것이었다. 이 조치는 공식적인 FOMC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FOMC 회의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지만 이 계획은 제이 파월, 존 윌리엄스(뉴욕 연은), 라엘 브레이너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ael Brainard&amp;lt;/span&amp;gt; 등 연준 이사들 사이의 정신없는 전화 통화에서 만들어졌다.&lt;br /&gt;
&lt;br /&gt;
  첫 두 개의 SPV는 연준이 기업 부채를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목적은 명백했다. 연준은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줄도산하면 그것의 연쇄효과로 CLO 가치가 급락하고 은행들이 피해를 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연준은 연준 풋을 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때쯤이면 주식 거래인들은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연준이 구제안을 가지고 달려와줄 것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업 부채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을 훨씬 넘어선 곳까지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기업 부채의 금리는 그 부채의 기저에 있는 위험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통념이었다. 위험이 큰 회사는 높은 이자를 내고 안전한 회사는 이자를 더 적게 냈다. 그런데 이제 연준이 기업 부채를 사들이는 큰 손이 되어서 이 시장에 바닥을 제공했고, 이는 부채에 매겨지는 금리의 속성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금리는 그 회사의 위험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이 그 부채를 매입할 의지를 반영하게 되었다. 매우 중요하게, 연준이 일단 기업 부채를 매입하는 일에 나서면 나중에 이 역할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월가의 열렬한 눈이 전에 보았던 것을 늘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개입할 때마다 미래에도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lt;br /&gt;
&lt;br /&gt;
  그날 아침 연준이 발표한 구제안은 급진적이었고 패닉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연준은 대략 90일 사이에 3조 달러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2008년 위기 이전 시기의 정상적인 속도였다면 연준이 300년간 만들었을 돈에 맞먹었다.&lt;br /&gt;
  연준의 행동에 대중의 반대는 사실상 없었고, 파월은 연준의 행동을 확대했다. 첫 구제안이 나간 지 3주도 되지 않아서 이제까지 한 것에 더해 새로운 조치들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도 FOMC 전체 회의의 표결을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새 조치들의 근거와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치들의 일부는 4월 8일에 비공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4월 9일에 회사채를 사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정크 등급의 더 위험한 채권도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크본드를 무조건 매입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연준은 팬데믹 이전에 투자 등급이었던 것만 사들일 것이었다. 이러한 채권을 월가에서는 ‘추락한 천사’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포드자동차 같은 회사의 부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락한 천사’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연준은 기존에도 정크 등급이었던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위험한 채권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가령, 렉스노드 같은 곳의 채권 말이다. 기존에는 정크 등급이 아니었던 부채의 등급이 강등되어 ‘추락한 천사’가 되면 이것들이 기존의 정크본드들을 대체하게 되고 기존의 정크본드는 투자자에게 매력이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연준은 이러한 폭포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었다.&lt;br /&gt;
  또한 그날 연준은 별도의 새 프로그램 하나를 업데이트했다. ‘기간물자산담보부증권대출제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ALF: term asset 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amp;lt;/span&amp;gt;’라고 불리는 것인데, 연준 사상 처음으로 레버리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구성된 CLO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이 제공하는 안전망의 적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한 것이었고, 이는 가치가 강등되어 수천억 달러 규모의 CLO가 약정상의 정크 등급 비율 상한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수천억 달러어치의 CLO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은행들에도 도움이 되었다.&lt;br /&gt;
  이 중 어느 것도 대중 담론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조치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로 둘둘 싸여 있었다. 일례로, 연준의 표현을 빌리면 SMCCF는 수정, 확장될 것이었고, TALF는 새로운 자산군을 추가해 가정과 기업으로 흘러가는 신용 흐름을 지지할 것이었는데, 이는 대중의 눈길을 확 당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코로나 확진자가 3만 5,000명 나온 날(한 달 전 하루 확진자는 201명이었다), 그리고 주 정부들이 식당과 상점 문을 닫도록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금융 용어는 더더욱 관심을 끌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채권을 거래하는 사람들, 채권을 만들고 꾸러미로 묶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역사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만했다. SPV 이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SPV 이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 조치들이 극적이긴 했지만 여기에서 직접 혜택을 본 사람은 소수였다.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 혹은 자산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았다.&lt;br /&gt;
&lt;br /&gt;
  CARES법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용도로 2조 달러의 지출을 승인했다. 여기에는 납세자의 돈으로 연준의 SPV에 출자할 돈 4,540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CARES법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부분은 약 2,920억 달러 규모의, 사람들에게 직접 지급될 돈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의 계좌로 직접 들어간 돈이 CARES법의 가장 가시적인 부분이었지만, 의회가 승인한 지출 액수 전체 중에서는 작은 비중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급여 보장 프로그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aycheck Protection Program&amp;lt;/span&amp;gt;’ 줄여서 PPP 대출이라고 불리는 총 6,7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기업들이 PPP 대출을 받아 &amp;amp;#91;폐업하지 않고&amp;amp;#93; 고용을 유지하게 하고, 다운 이후에 다시 문을 열고 모두가 일터로 돌아오면 &amp;amp;#91;정해진 조건을 만족했을 때&amp;amp;#93; 대출이 전부 또는 일부 탕감되었다. 길고 가혹한 락다운으로 큰 고통을 겪은 다양한 영역의 사업체들에 잠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백만 개 사업체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PPP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5%로 들어갔다. 이 숫자마저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협소한 부분에서만 영향이 있었는지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지출된 PPP 자금의 전체 중 25%는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1%에 들어갔다. 이 기업들은 대형 로펌, 전국적인 식품 체인점 등이었고 PPP 지원금 최대 한도인 1,000만 달러를 받았다. 이러한 수혜자에는 레스토랑 체인인 보스턴 마켓, 저명한 로펌인 보이스쉴러앤플렉스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준 등의 분석에 따르면 PPP는 230만 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자리 하나당 비용이 28만 6,000달러나 들었다. 트럼프가 이 프로그램이 5,000만 개 일자리를 구하거나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한 다음에 말이다.&lt;br /&gt;
&lt;br /&gt;
  CARES법이 승인한 지출 중 6,510억 달러가량은 세제 혜택의 형태로 기업에 지출되었다. 이 혜택은 받기가 매우 복잡하다. 이 말은, 뛰어난 세무 관련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큰 기업들에 세제 혜택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체인인 치즈케이크팩토리는 4만 1,000명을 해고했는데도 5,000만 달러의 세제 혜택을 청구했다. 총 세제 혜택 중 2,500억 달러 규모는 팬데믹으로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산업의 어떤 기업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사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은 1,35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았는데, 이 말은 연 100만 달러 이상 버는 4만 3,000명이 160만 달러어치를 각각 받았다는 뜻이었다. 대체로 이 돈은 기업의 금고와 개인의 계좌로 조용히 흡수되었다. 이 같은 매우 불평등한 분배는 몇 개월이 지나서 &amp;amp;lt;워싱턴포스트&amp;amp;gt;가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하고서야 드러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으로 최대 6,000억 달러어치의 부채를 사들일 예정이었지만 12월에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을 때 사들인 규모는 170억 달러어치에 불과했다.&lt;br /&gt;
  연준의 구제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진짜 구제 프로그램, 성공한 구제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신속했는데, 이것은 자산 소유자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이었다. 주식 소유자들은 팬데믹 붕괴 이후 9개월간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고 기업 부채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월에 연준이 개입하고부터 주식시장은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호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은 3월 중반에 저점을 쳤고 이때 미국채 시장도 급락했지만 그날부터 6월 중순까지 불과 3개월 사이에 시장 가치가 35% 올랐고 그다음 3개월간 다시 7%가 올랐다. 그 무렵이면 주식시장은 식당, 극장, 호텔, 크루즈 등이 영업을 하던 시절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월평균 레버리지론 수익률도 이르게는 4월부터 회복되었다. 8월에는 투자 등급 신규 채권이 어찌나 많이 발행되었던지, 이전 신기록이던 2017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lt;br /&gt;
  늘 그랬듯이 자산 인플레는 언론에서 ‘호황’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호황은 너무나 강력해서 초현실적일 정도였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퇴거 위험에 처하고 식당들은 문을 닫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부채 시장과 주식시장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구제 금융은 ZIRP와 QE 정책에 의해 크고 강력해진 곳들에 주로 들어갔다. 빌린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거대 기업들에, 미국 전체 자산 중 방대한 부분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글로벌 마켓에서 위태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월가의 가장 위험한 금융 투기 세력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고 다들 믿게 된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말이다.&lt;br /&gt;
&lt;br /&gt;
  ZIRP 시기에 득을 본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경제 영역은 자산 시장이었다. 주식시장 가치는 2010년대 동안 두 배가 되었고, 심지어 2020년의 붕괴 이후에도 자산 시장들은 계속 놀라운 성장세와 수익률을 보였다.&lt;br /&gt;
&lt;br /&gt;
  이렇게 레버리지론, 주식, CLO, 그밖에 월가가 십수 년 동안 부지런히 만들어내었던 온갖 위험한 금융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면, 파월의 연준은 익숙한 선택의 기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될 터였다. 위험한 금융상품 가치가 붕괴하게 두거나, 다시 개입해 양적완화와 긴급 구제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돌리거나. 2018년 말에 위험한 자산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갔을 때 파월은 이러한 기로에 선 적이 있었고 더 많은 돈을 풀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투기와 자산 인플레를 부추겼다.&lt;br /&gt;
&lt;br /&gt;
  12월 16일에 파월은 중대 발표를 했다. 봄에 연준이 긴급 처방으로 시행했던 일 중 몇 가지가 이제 준영구적인 것이 될 예정이었다. 메인 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은 조용히 끝났지만 구제안에 포함되었던 다른 것들은 지속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유지할 터였고 앞으로 한동안 매달 1,200억 달러어치의 양적완화를 실시할 것이었다. 과거에 일반적이던 속도에 비추어 보면 10년 동안 창출되어야 할 만큼의 돈을 30일마다 내놓겠다는 의미였다. 파월은 경제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이 더 있을 때까지’ 이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lt;br /&gt;
  파월은 물가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하지 않는 한 연준이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었다. 몇몇 항목의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것은 공급 교란 때문이었고, 약한 성장과 약한 수요가 소비자 물가를 전반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은 제약 없이 가속화되고 있었다.&lt;br /&gt;
  12월에 주식시장은 너무나 호황이어서 거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웹 기반 음식 배달 업체 도어대시는 그달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온라인 숙소 공유회사 에어비앤비도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이 회사들로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상장 직후에 이렇게 급격히 주가가 뛰었다는 말은 회사의 원래 소유주들이 많은 돈을 밑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모가를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mp;amp;lt;월스트리트저널&amp;amp;gt;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 회사 로블록스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12월 예정이던 상장을 연기했다. &amp;amp;#91;공모가 산정이 어려워&amp;amp;#93;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면서 말이다. 닷컴 붐이 불었던 시기 이래로 기업들의 실제 매출 활동에 비해 주가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계속될 것이었다. 이후 몇 개월간 시장은 계속 기록을 깨고 또 깼다.&lt;br /&gt;
&lt;br /&gt;
  노동자의 가치는 줄었는데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준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많은 중요한 면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였다.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금융 붕괴는 미국의 민주적 기관들이 가진 역량의 긴 붕괴로 한층 더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 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폭했다.&lt;br /&gt;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ca7e45246af04d5e9671f03cf3737035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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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깃털 도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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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h3&amp;gt;p. 67~70&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월리스는 열이 내리자마자 꼬박 이틀 동안 떠올랐던 생각들을 글로 정리했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던 찰스 다원에게 편지를 썼다. 월리스는 이렇게 밝혔다. “제 생각이 선생님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라며,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lt;br /&gt;
  1858년 6월 18일, 찰스 다윈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월리스에게서 편지를 받고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다윈은 윌리스의 편지를 읽으면서 열세 살이나 어린 독학 박물학자가 자신이 수십 년간 발전시켜온 이론을 혼자 찾아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놀라운 우연의 일치는 본 적이 없다.” 다윈은 지질학자인 친구 찰스 라이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harles Lyell&amp;lt;/span&amp;gt; 경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심지어 월리스가 사용한 용어는 내 책의 서두에 나오는 것들과 같다.”&lt;br /&gt;
  다윈은 “내 이론의 독창성이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고 했다. 아직 자신의 이론을 출간할 계획이 없었던 다윈은 월리스의 편지를 받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월리스의 생각을 훔쳤다는 비난은 받고 싶지 않았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다져온 내 입지가 무너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내 책을 모두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비열한 인간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lt;br /&gt;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학자 협회인 린네협회에 모인 다윈의 동료들은 누구를 ‘종의 기원’ 창시자로 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월리스는 뉴기니에서 계속 극락조를 찾고 있었다.&lt;br /&gt;
  1858년 7월 1일, 라이엘은 협회에서 이렇게 생각을 밝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종의 출현과 영속을 설명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동시에 정립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종의 기원이라는 중요한 연구에 있어서 공평하게 독창적인 학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 74&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설명한 월리스의 놀라운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표본마다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고 지리적 분포에 끈질기게 주목한 덕분에 월리스는 생물지리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창시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월리스는 발리와 롬복사이에 있는 깊은 해협을 경계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붕과 아시아 대륙붕에서 발견되는 종들이 나뉜다는 것을 알아 냈고 이 지점은 현재 지도상에 ‘월리스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llace Line&amp;lt;/span&amp;gt;’으로 표시된다. 말레이제도 동쪽에 펼쳐진 33만 7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은 ‘월러시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llacea&amp;lt;/span&amp;gt;’라 불리는 생물지리학적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91&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왜가리와 타조 같은 새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전 세계 곳곳에 기업형 농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왜가리 같은 새는 새장에서 기르기 힘든 종이기에 가느다란 면실로 위아래 눈꺼풀을 꿰매어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길들이기도 했다. 새들은 이렇게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배에서 가장 값나가고 보험료가 높았던 물건도 바로 깃털 상자 40개였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92&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미국 식민지 초창기에는 강에 연어가 너무 많아서 밭을 가는 쇠스랑으로 강가를 한 번 훑기만 해도 연어를 잡아 올릴 수 있었다. 농부들은 이렇게 잡은 연어들을 갈아서 비료로 썼다. 철새 떼는 한번 날아들면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을 정도였다. 1813년 존 제임스 오듀본은 비행하는 여행비둘기 떼 아래에서 3일 내내 이동한 적도 있었다. 초원에 들소가 너무 많아서 어떤 군인은 말을 타고 들소 무리를 뚫고 지나가는 데 꼬박 6일이 걸렸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92&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미국인들은 ‘명백한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서부로 눈을 돌리고는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라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들은 미국 전역을 산업사회로 만드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땅에서 캐내는 구리와 철과 금은 부족해질 리가 없었고, 물고기와 새도 무한히 새로 태어날 것이며, 숲속의 떡갈나무도 영원히 새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했다. 1900년 당시에는 자원에 굶주리던 인구가 1억에서 16억으로 늘었지만,  기계가 나타나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원재료를 캐내고 가공하게 되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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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lt;br /&gt;
  연발총으로 무장한 미국인들은 신의 축복 아래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을 휩쓸었다. 알렉시 드 토크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lexis de Tocqueville&amp;lt;/span&amp;gt;은 1831년에 미국을 여행한 뒤, 그곳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했다.&lt;br /&gt;
“그들은 생기를 잃은 자연 앞에서도 무감각하다. 그들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황야를 가르며 행진하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늪을 말려버리고, 강의 경로를 바꾸고, 불모지를 사람으로 채우고, 자연을 굴복시켰다.  19세기 말, 미국 들소는 6억 마리에서 300마리까지 줄었다. 개척민들이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심심풀이로 들소들을 쏘아 죽였기 때문이다. 수십억 마리였던 여행비둘기는 1901년경 거의 멸종될 정도로 총질을 당했다. 에버글레이즈에서는 엽총을 휴대한 운동선수들이 보트를 타고 악어와 왜가리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총소리와 화약연기와 죽음의 향연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숲에서 셰익스피어보다 더 나이 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가 제재소로 보내졌다. 그동안에도 깃털 열병은 계속됐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 102&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로비스트들은 깃털 사업을 막는 법안을 만들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경제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경고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301&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나는 새를 보존하는 일이 인류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큐레이터들은 인류가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표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곤충, 햇빛, 독일군의 폭격, 화재, 도난으로부터 소장품을 보호해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내고 있는 표본들이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327&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몇 주가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됐다. 그동안에도 사라진 새들을 찾겠다는 내 집념은 점차 자신만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랐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337&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야생동물 불법 거래가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알리려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어요.” 그가 말했다. “그곳 뉴저지에서는 온갖 열대 지방 새들이 그렇게 버젓이 팔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lt;br /&gt;
  다른 연구 활동들 때문에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박사도 한동안 에드윈 리스트를 쫓아다녔다고 했다. 피해를 본 종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트링박물관을 압박하고, 그로서는 없어지기를 바라는 취미 활동의 실상을 파헤쳐줄 기자를 찾아다녔다.&lt;br /&gt;
  “당신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왔소.” 그는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으며 말했다. 책상에는 몇 년간 모았을 메모지와 학술지, 고장난 컴퓨터 모니터, 각종 서류 봉투, 황금앵무새 깃털이 담긴 대형 지퍼백이 있었다. 머그잔은 적어도 일곱 개 이상 있었고 &amp;amp;lt;스타워즈&amp;amp;gt; 캐릭터인 다스 베이더 얼굴의 보블헤드? 인형도 하나 놓여 있었다. 박사는 심포지엄에 관한 노트를 한참 만에야 찾아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 341&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내가 보기에 그들은 진정성을 추구한답시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을 만들려는 거죠”&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7f552089d609497fac844c85fa85163c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C%9D%B8%ED%94%8C%EB%A0%88%EC%9D%B4%EC%85%98&amp;diff=16374</id>
		<title>인플레이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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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4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0568405 인플레이션]&lt;br /&gt;
&lt;br /&gt;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지은이), 강영옥 (옮긴이) &amp;amp;#124; 다산북스 &amp;amp;#124; 2017년 10월&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물론 처음에 국가는 국민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약속하는 지폐를 주고 국민들은 이 지폐에 적힌 가치만큼 상품을 구매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굳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화폐 발행권을 갖고 있던 국가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화폐에는 명시된 금액만큼의 가치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화폐 주조 비용이 공제된 금액이다. 이것을 화폐주조차익&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netary Seigniorage&amp;lt;/span&amp;gt; (중앙은행이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함으로써 얻는 수입)이라고 한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53~54&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차용증은 발행자의 상환 능력만큼 가치가 있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면 차용증은 가치가 없어진다. 이 경우에는 아무도 차용증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차용증이 있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현대의 지폐는 차용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발행자가 이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라는 것이다. 지폐에 명시된 가치는 그만큼 되돌려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다. 지폐의 가치는 국민이 벌어들일 수 있는 GNP, 즉 화폐의 범위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서 보장된다.&lt;br /&gt;
&lt;br /&gt;
   당신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내면 ‘GNP’라고 부르는 케이크의 큰 조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이 돈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GNP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실적이 점점 떨어지면 이 돈으로는 재미를 볼 수 없다. 당신은 이 화폐를 기피하고 다른 화폐나 다른 지불수단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으려고 할 때 보여주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도 유사한 행동을 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방법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이것이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현대 화폐의 맹점이다. 국민들이 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지 신뢰할 때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된다. 화폐는 곧 신뢰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화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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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h4&amp;gt;비공식 환율&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내 돈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가치를 상실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국가에서 발표하는 공식 인플레이션율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언제든 조작될 수 있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이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암시장의 비공식적 환율이다(공식 주가도 간혹 정부에서 조작을 한다). 자국 통화에 문제가 있을 때 보이는 조짐이 있다. 1차 신호로, 비공식 환율이 급락한다. 2차 신호로, 국제 투자자들이 대출 금리 인상을 요구한다. 해당 국가의 유가물(有價物,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 가격이 인상되고 정부는 인플레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신을 한다. 이런 상황의 국가에 여행을 할 때는 현금인출기나 환전소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현금인출기나 환전소에서는 공식 환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손해가 훨씬 크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68&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디오클레티아누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iocletianus&amp;lt;/span&amp;gt; 황제는 파탄난 로마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먼저 그는 모든 재화에 최고가를 적용하고 최고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형에 처한다는 명문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대형 돌판에 새겼다. 다음으로 그는 물가 상승을 법으로 억제시키려 했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lt;br /&gt;
&lt;br /&gt;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각국에서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돌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우리는 수천 년 전의 인플레이션 억제책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고가 규정을 도입한 국가에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고가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정부에서도 갈피를 못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국가에서는 물건을 파는 것보다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71&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화폐의 가치는 흑사병과 함께 사라져갔다. 모든 영역의 물가가 하락하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생산 제품의 잠재적 소비자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여 재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를 디플레이션 시기라고 말한다. &lt;br /&gt;
&lt;br /&gt;
   다행히 흑사병으로 인한 1차 쇼크가 잠잠해지는가 싶을 때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죽지만 동전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상품생산량이 감소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정부는 로마제국이 했던 것과 똑같은 정책을 실시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급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은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흑사병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다. 연 인플레이션율은 6퍼센트에 조금 못 미쳤으나 이는 앞으로 닥칠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77&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전쟁이 양산한저질동전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17세기 초반 독일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키퍼 운트 비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Kipper und Wipper&amp;lt;/span&amp;gt; 시대라고 말한다. 키퍼 운트 비퍼라는 표현은 동전 함량을 재는 당시의 관행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동전에 귀금속 함량을 줄여 동전을 위조하는 일이 빈번했다. 키퍼 운트 비퍼는 동전을 양팔저울에 올려놓은 다음 저울대를 기울이면서 무겁고 품질이 좋은 동전을 추려내고 품질이 떨어지는 동전에는 납, 구리, 주석을 섞던 관행에서 유래한다. &lt;br /&gt;
&lt;br /&gt;
   이를 악용한 통치자들에 의해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익히 일어난 일이 벌어졌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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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난을 해결하고자 페터 리터 폰 보어는 직접 화폐를 찍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가 제조한 위폐는 당시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에서 전부 받아줄 정도로 정교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보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그의 아내가 위조지폐로 엄청난 고가의 시계를 사면서 이 행복이 날아가버렸다. 시계상 주인은 자신이 받은 돈이 위조지폐라는 걸 눈치 채는 순간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보어와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징역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국가적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이후 70년 동안 이 사건 관련 보도는 전면 금지됐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97~99&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큰소리를 빵빵 쳤던 존 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대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어떻게 돌려준단 말인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여 그 수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는 망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폰지게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onzi game&amp;lt;/span&amp;gt;(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수법을 말한다. 1925년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여 명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끌어모은 사기범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용어)이었다. &lt;br /&gt;
&lt;br /&gt;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존 로의 주식을 사겠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식 덕을 본 하녀들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주가 등귀 현상을 두고 ‘하녀의 강세’라는 이름도 붙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ouis Philippe&amp;lt;/span&amp;gt;의 아내 리제로테 폰 데어 팔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ieselotte von der Pfalz&amp;lt;/span&amp;gt;가 쓴 편지 구절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lt;br /&gt;
&lt;br /&gt;
   “지금 프랑스에는 부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백만 단위가 아니면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재물의 신이 파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과열된 주식의 가치,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 식민지의 실상, 은행권의 가치, 은행의 안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현금이 부족해진 중앙은행은 지폐를 발행하여 적자를 메웠다. 그러자 경기는 과열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1717년과 1720년 사이 연 인플레이션율은 26퍼센트에 이르렀다. 물가뿐만 아니라 주가도 폭등했다. 거액을 잃은 프랑스인들은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존 로는 은행과 무역회사가 파산하자 몸을 피해 벨기에를 거쳐 베네치아로 도주했다. &lt;br /&gt;
&lt;br /&gt;
   존 로의 대서사를 겪고 난 프랑스는 1720년 10월 금과 은을 다시 지불수단으로 돌려놓았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 볼테르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Voltaire&amp;lt;/span&amp;gt;가 지적하듯 지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지폐의 내재가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trinsic value&amp;lt;/span&amp;gt;는 0에 가까웠다.&lt;br /&gt;
&lt;br /&gt;
   존 로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온 나라를 망쳐 놓은 도박꾼이자 사기꾼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양한 사상을 앞장서 실천했던 최초의 금융이론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존 로의 일부 사상은 이후 국민경제에 편입되었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는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lt;br /&gt;
&lt;br /&gt;
   6세기 중국의 비전, 17세기 스웨덴에 도입된 지폐, 18세기에 사용된 여타의 지폐들은 금, 은, 동을 본위로 하였고 이 지폐들은 명목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는 화폐였다. 반면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액면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지폐의 담보가치는 약속, 믿음, 평판, 희망뿐이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화폐를 ‘위험화폐’라고 한다. (귀금속을 본위로 가치가 보장되는 화폐와 대조적으로) 이러한 화폐는 보장가치가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내재가치만 남는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98&amp;lt;/h3&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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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4&amp;gt;주가 붕괴에서도 버텨내기 &amp;lt;/h4&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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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lt;br /&gt;
주가가 붕괴된다고 해서 모든 투자자들이 돈을 잃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경제학자 리처드 캉티용(&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ichard Cantillon&amp;lt;/span&amp;gt;)은 로의 체제에서 투자 금액의 두 배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먼저 주가가 상승하기를 기다렸다. 그만큼 치고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그는 프랑스 통화에 투자했다. 그는 프랑스에 통화량이 넘치면 파운드 대비 프랑스화 환율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경험법칙상 주식을 팔아야 할 시기는, 여러분의 지인 중 금융이나 주식업계 종사자들이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장담할 때다. 이런 때는 과감하게 주식을 팔고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05&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lt;br /&gt;
&lt;br /&gt;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의회에서 발행한 이른바 대륙지폐&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ntinental currency&amp;lt;/span&amp;gt;의 가치는 급속도로 하락하여, ‘대륙지폐만큼의 가치도 없다’라는 표현까지 생길 정도였다. 전후에는 인플레이션 진정 조치가 필요했다. 지폐 발행이 중단되면서 물가와 경제활동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시절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심지어 농부와 군인들까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철창신세로 전락했다. &lt;br /&gt;
&lt;br /&gt;
   100년도 채 안 되어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부와 북부 모두 경쟁하듯 지폐 발행을 남발한 것이다. 그 바람에 북부의 인플레이션율은 28퍼센트, 남부의 인플레이션율은 209퍼센트로 또다시 치솟았다. 이래서 역사를 교훈 삼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11~113&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인플레이션 게임&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h5&amp;gt;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친숙한 사건들&amp;lt;/h5&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대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다음 수순을 따른다. 일단 정부는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가격 동결 조치를 시행한다. 그다음에는 원치 않는 화폐 인수 강요, 해외 귀금속 제조 금지, 금화 및 은화 거래 금지, 금은 및 재산 몰수와 같은 조치를 실시한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당시 전시 상태였던 영국에서 영국 정부의 승인하에 프랑스의 아시냐는 대량으로 복제됐다. &lt;br /&gt;
&lt;br /&gt;
   프랑스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재산을 해체하고 분배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혁명의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민중의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lt;br /&gt;
&lt;br /&gt;
   혁명 후에 반혁명이 일어났다. 국민의 권한을 장악하던 독재자와 지폐가 사라지고 금속 화폐가 재등장했다. 1795년 화폐개혁이 단행되면서 만들어진 프랑스의 새 금속 화폐의 이름은 ‘프랑’이었다. 1796년이 되자 아시냐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 시민들이 움켜쥐고 있던 금속 동전은 차츰 경제순환의 사슬로 편입됐다. 나폴레옹 정복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부를 쌓으며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화폐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았다. 이는 나폴레옹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황제 나폴레옹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현금으로만 거래를 한다.” &lt;br /&gt;
&lt;br /&gt;
   처음에 정부는 새로 발행한 지폐는 언제든 금속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정부는 지폐를 대량으로 발행했다. 지폐의 가치가 하락하자 정부는 지폐를 경화&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ard currency&amp;lt;/span&amp;gt;로 교환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lt;br /&gt;
&lt;br /&gt;
   지금까지 살펴봤던 친숙한 사건들은 유럽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11세기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은 훨씬 오래 전부터 지폐를 사용했다. 1024년 중국이 인류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해 발달해온 지폐는 화폐의 가치를 보장해주지 않을뿐더러 지긋지긋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장본인이었다. 지폐 발행, 예산 적자, 지폐 발행량 증가, 인플레이션의 순서로 진행되는 이 게임은 왕조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13세기 중국에서 지폐는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송나라 황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10년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조치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송 황제는 지폐를 환수하고 불태우기까지 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1264년 이 화폐는 붕괴되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인플레이션으로 가장 큰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독일에서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기업가 휴고 슈티네스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ugo Stinnes&amp;lt;/span&amp;gt;다. 1870년에 태어난 그는 1887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코블렌츠에서 상업 교육을 받고 베를린공과대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서부 도시 뭘하임의 광산에서 실습 교육을 받았다. 1890년에는 가족 기업인 마티아스 슈티네스 합자회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thias Stinnes KG&amp;lt;/span&amp;gt;에 합류했다. 슈티네스 일가는 뭘하임에서 루르지역 선원, 석탄거래상, 선주를 거쳐 나중에는 광산업까지 뛰어들며 부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집안에서 휴고 슈티네스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1904년 젊은 나이에 대부호가 됐다. &lt;br /&gt;
&lt;br /&gt;
   전쟁 후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슈티네스는 돈을 벌었다. 그는 대출을 받아 기업, 호텔, 신문사를 사들였다. 수백 개 업체가 합병되어 탄생한 대기업의 종업원 수만 60만 명이었다. 두뇌 회전이 빨랐던 그는 화폐의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출금을 상환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 중에도 돈을 벌 기회를 찾은 것이다. &lt;br /&gt;
&lt;br /&gt;
   휴고 슈티네스의 돈 놀음에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의 방식이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야망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독일국가자유당원&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ationalliberale Deutsche Volkspartei&amp;lt;/span&amp;gt;으로 제국의회 국회의원 자리까지 올랐지만 사람들은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이유가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돈에 끼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인플레이션으로 큰돈을 번 그가 간과했을 리 없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23&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대체 초인플레이션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한계값 5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초인플레이션은 1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다소 비학문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면, 돈 뭉치가 가득 실린 트럭이 대기하고 있거나 강도가 돈보다 타이어를 훔치려 한다면 초인플레이션 상태다. 이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초인플레이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25~129&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일반적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겪은 후 경제는 불안정해진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았는데, 이 전쟁배상금이 1920년대 독일에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한마디로 전쟁배상금이 사실상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공식 기록상 1920년대 독일에서 20세기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마침내 20세기의 금융 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fan Zweig&amp;lt;/span&amp;gt;는 1920년대 독일의 경제사정을 보면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금융거래 수치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 시기에 제국 은행은 총 524,000,000,000,000,000,000마르크를 지출했다. 여기에 700,000,000,000,000,000,000마르크 상당의 비상화폐가 투입되었다. 1923년에는 세계 최고권인 100조 마르크 권이 발행되었다. 1923년 가을, 133개 해외업체에서 1783대의 조폐기로 24시간 내내 지폐를 찍는 동안 30곳의 제지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했다. 29개 전기 제판술 공장에서 약 40만 개의 인쇄 조판을 제작하고, 3만 명의 인력이 약 100억 장의 ‘인플레이션 지폐’를 인쇄했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대량으로 화폐를 찍어댔지만 재정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리하여 5800개 도시, 지역,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비상화폐를 찍어 시장에 유통시켰다. 1923년 말에는 빵 1킬로그램 가격이 4280억 마르크였고, 신문 한 부는 2000억 마르크, 우표 한 장은 1000억 마르크였다. &lt;br /&gt;
&lt;br /&gt;
   매일 천문학적인 숫자로 치솟는 물가를 보며 질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큰 자릿수에 대한 피로감’은 1923년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상病狀이었다. 가격표에 붙어 있는 0의 개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났고 사람들은 0만 봐도 피로감을 느꼈다. 1910 년부터 1923년까지 독일의 연 인플레이션율은 1174퍼센트였다. 1923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10억 대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월 최고치는 3만 퍼센트였다. 1910년에서 1923년의 기간 동안 물가지수는 1,430,000,000,000였다. 0의 개수만 무려 10개다.&lt;br /&gt;
&lt;br /&gt;
   술집과 카페에서는 음료 두 개를 동시에 주문받았다. 첫 번째 주문과 두 번째 주문을 받는 사이에 음료 가격이 오를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하루 단위로 지불됐고 노동자의 아내들은 수레를 가지고 와서 지폐 더미를 실어 날랐다. 이것도 그나마 사람들이 돈의 가치를 인정하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급기야 돈을 실은 수레를 가지고 와서 물건을 사는 동안 돈이 가득한 수레는 그대로 두고 빈 수레만 훔쳐가기 일쑤였다. 앞에서 다렸던 초인플레이션의 정의가 기억나는가? 초인플레이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러한 경제적 재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의 과잉 부채와 무변별한 지폐 발행에 있었다. 1914년 독일은 거액의 빚을 져가며 전쟁을 했다. 국민들도 독일이 승리하리라는 기대감에 들떠 애국하는 마음으로 전쟁채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r bonds&amp;lt;/span&amp;gt;을 샀다. 이때 진 빚에 1918년 승전국이 패전국에 부과한 전쟁배상금, 군대 해산, 고용 창출 정책, 지방분권화 재정 지출 등으로 독일 정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23년 독일 북서부의 루르 지역이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하자 독일의 채무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lt;br /&gt;
&lt;br /&gt;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이론도 있었다. 마르크 투기꾼들 책임이라는 것이다(예나지금이나자본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기에 만만한 대상이 투기꾼이긴 하다). 반면에 독일 경제학자들은 전쟁배상금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독일은 수출을 늘려야 했고, 수출을 증가시키려면 마르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하나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 가치는 급락했다. 1923년 4월 1달러대 마르크 환율이 2만 마르크였던 것이 8월에는 460만 마르크, 11월 초에는 2조 2000억 마르크로 올라갔다가, 1923년 11월 20일에는 4조 2000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lt;br /&gt;
&lt;br /&gt;
   마르크 환율은 연일 고공행진을 하며 화폐가 광기를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1920년대 초반 사람들이 노후를 대비하여 모아둔 돈은 1923년이 되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돈으로는 노후 대비는커녕 신문 한 장도 사볼 수 없었다.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중산층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상점은 화폐를 받지 않고 물물거래를 했다. 이것은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하는 산업화 된 국민경제체제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lt;br /&gt;
&lt;br /&gt;
   한편 이 틈을 타 돈을 번 투기꾼들과 암거래 상인들은 벼락부자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가물(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소유한 자가 곧 왕이었다. 유가물은 해외로 반출되었고 약삭빠른 투기꾼들은 대출받은 돈(몇 달 후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 거의 공짜로 물건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으로 재산과 지배권을 얻었다. &lt;br /&gt;
&lt;br /&gt;
   얼핏 보면 독일 정부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화폐를 마구 찍어 부채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정부가 정말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lt;br /&gt;
&lt;br /&gt;
   앞으로 자세히 살펴볼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은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과세다.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인플레이션 사례들을 들여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문학은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독일 문학계의 거장인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fan Zweig&amp;lt;/span&amp;gt; 처럼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도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lt;br /&gt;
&lt;br /&gt;
   “사회는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얼마에 팔리는지 몰랐다. 물가는 마구 치솟았다. 심성이 바른 사람도 전날 다른 상점에서 산 성냥 한 갑을 양심의 가책 없이 웃돈을 붙여 팔았다. 그런데 이 성냥은 다음 날 다른 상점에서 20배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 사람들은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이렇게 사고 되팔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금붕어나 골동품 망원경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사람들은 지폐 대신 자산을 움켜쥐고 있으려 했다. 임대료는 기형적인 양상으로 폭등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회 계층의 대다수인) 임차인을 보호하고 임대인의 손해를 막기 위해 임대료 인상을 법으로 금지시켰다.”&lt;br /&gt;
&lt;br /&gt;
   츠바이크는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lt;br /&gt;
&lt;br /&gt;
   “40년 동안 부지런히 저축한 돈을 애국심 때문에 전쟁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빈털터리가 됐고, 그 덕분에 채무자들은 빚에서 해방됐다. 정직하게 자신에게 할당된 식료품만 받는 사람들은 배를 곯았다. 뻔뻔스럽게 법을 어기는 사람들만 배불리 먹었다.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출세를 하고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정가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도둑들의 표적이었고, 정직하게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은 속여 먹기 좋은 대상밖에 되지 않았다. 돈은 녹아서 증발된 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어떤 기준도 가치도 없었다.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아첨을 일삼고 뻔뻔해야 살 수 있고, 말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말 위에 올라타야 하는 세상이었다.” &lt;br /&gt;
&lt;br /&gt;
   츠바이크는 해외 자본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한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3년 동안 급속히 진행되어 화폐 가치가 불안정해지면 해외자본만 남는다. ······ 오스트리아는 ‘해외자본의 집결지’가 되었고 숙명적인 ‘외국인 특수’를 누렸다. 비엔나의 모든 호텔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돈독이 오른 자들은 호텔에 모여 칫솔에서 토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궁지에 몰린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골동품이 강도나 약탈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헐값에 팔렸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이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싹쓸이해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최고급 호텔 ‘드 유롭 인 잘츠부르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e l&amp;amp;#39;Europe in Salzburg&amp;lt;/span&amp;gt;’는 영국 실업자들에게 장기 임대를 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실업자 지원 혜택은 상당히 좋았다. 그 돈으로는 영국의 빈민가를 전전해야 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lt;br /&gt;
&lt;br /&gt;
   츠바이크의 결론은 우울하다. &lt;br /&gt;
&lt;br /&gt;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과 전쟁 채권을 발행하고 화폐발행을 남발하여 경제적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 책임져야 할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이 떠맡은 것이다. 독일 민족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하고 증오심에 불타올랐다. 정부가 조장한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된 국민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중앙은행은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할까?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중앙은행이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인지에 관해 다양한 이론이 있다. &lt;br /&gt;
&lt;br /&gt;
   첫 번째 이론은 연간 화폐 유통량을 정하고 수치를 공식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연방은행이 1974년부터 실천해온 방식이다. 이러한 관행이 정착된 배경은 화폐 발행량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는다면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 &lt;br /&gt;
&lt;br /&gt;
   두 번째 이론은 테일러 준칙&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aylor&amp;amp;#39;s rule&amp;lt;/span&amp;gt;을 따르는 것이다. 테일러 준칙은 미국 경제학자 존 테일러 교수가 제시한 통화 정책 운용준칙으로, 적정 인플레이션율과 잠재 GDP 아래에서의 균형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평가하는지표로 테일러 준칙을 활용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중앙은행은 테일러 준칙에 따라 한 국민경제의 가동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pacity utilization&amp;lt;/span&amp;gt; (실질 GDP와 잠재적 GDP의 관계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과 실제 인플레이션 경향을 조정한다. 경제의 가동률이 중앙은행에서 목표로 하는 실질 인플레이션율보다 높을수록 금리가 더 높아야 한다. &lt;br /&gt;
&lt;br /&gt;
   셋째, 중앙은행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물가안정목표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flation targeting&amp;lt;/span&amp;gt;라고도 한다. 중앙은행이 명시적인 중간목표 없이 일정 기간 또는 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통화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발표하고 이 목표치에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86&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자본과 시기의 상관관계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자본 시장에는 주시해야 할 날들이 있다. 투자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러한 날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령 당신이 지난 10년 동안 독일 증시 DAX에 투자해오며 대략 6퍼센트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자. 그런데 이 10년 동안 수익률이 좋은 날은 단 10일뿐이다. 이 날들을 놓치면 수익률은 마이너스 1퍼센트로 감소한다. 만약이 기간에 수익률이 좋은 날이 20일(30일)이라고 하면 이 기간을 놓쳤을 때 수익률은 마이너스 5퍼센트(9퍼센트)로 떨어진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96~197&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금융 위기를부른 마법의 주문&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여기서 사태가 깔끔하게 마무리될 리가 없다. 1997년 3월 10일에 이어 2008년 9월 15일에도 대사건이 터졌다. 164년 전통을 자랑하는 리먼 브라더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ehman Brothers&amp;lt;/span&amp;gt; 투자은행이 파산하면서 전 세계가 술렁였다. 실업자 신세가 된 고연봉 직원들이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부동산 위기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며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감염력이 워낙 강력하여 다른 지역에서도 금융 위기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lt;br /&gt;
&lt;br /&gt;
   직격탄을 맞은 국가는 그리스였다. 2009년 4월 23일 요르요스 파판드레우&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Georgios Papandreou&amp;lt;/span&amp;gt; 전 그리스 총리는 화창한 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카스텔리조섬에서 그리스가 과도한 채무로 파산 직전이라고 공식 선언을 했다. 유럽연합의 핵심 프로젝트인 그리스 구제 금융정책은 혼란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lt;br /&gt;
&lt;br /&gt;
   화폐수량설 지지자들은 세 차례의 금융 위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바로 마법의 주문, 자산 인플레이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sset Price Inflation&amp;lt;/span&amp;gt; 이었다. &lt;br /&gt;
&lt;br /&gt;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보면 인플레이션율을 계산할 때 주식, 채권, 금, 수집품, 파생상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erivatives&amp;lt;/span&amp;gt; 혹은 기타 투자상품의 가격은 반영하지 않고 재화와 용역의 가격만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폐 유통량을 증가시키면, 즉 양팔저울의 왼쪽 접시가 더 무거워지면, 자금이 투자되지 않기 때문에 GNP가 증가하지 않는다. 즉, 유통속도에 변함이 없다. 이 경우에는 원래 물가가 상승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뜬금없이 중국이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저가와 물량 공세로 재화의 가격을 떨어뜨리거나 국민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딘가 다른 곳에 잉여 자금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lt;br /&gt;
&lt;br /&gt;
   국민들이 재화와 용역 대신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금융자산 가격은 상승하지만 재화의 가격에는 변동이 없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재화가 아닌 금융자산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자본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pital goods&amp;lt;/span&amp;gt; 가격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양팔저울을 평형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첫째, 통화량이 증가했는데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고 둘째, 2015년까지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호황기가 아니라도 자본시장 경기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경기가 좋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 자금이 재화 시장이 아닌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교환방정식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통화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자본시장이 과열되어 결국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212&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금융억압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중앙은행의 금융 정책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저금리 유지 정책에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금융 정책은 사실상 정부에 유리하도록 국민, 즉 예금자들의 재산을 국유화하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원래 국가가 진 빚에 대한 이자는 국가에서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교묘한 금융 정책을 이용하여 시장 세력들 간 자유로운 경쟁으로 인해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것처럼 만든다. 이처럼 국가는 예금자를 희생시켜 부채 탕감 의무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켜 은밀하게 국가의 부채 규모를 축소시키는 행위를 ‘금융 억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에 투자되었을 자금을 국가로 돌리는 정책이다. 금융 억압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며 국가와 시기에 따라 결과도 다르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금융 억압으로 거둬들인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수익은 GNP의 평균 2퍼센트, 국가 재정 수입의 약 9퍼센트에 해당되는 액수다. 가장 높은 경우 20~30퍼센트까지 이를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국가 세금 수입의 100 퍼센트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화폐 수량이란 무엇인가?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화폐 수량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quantity theory of money&amp;lt;/span&amp;gt;(물가 변동을 화폐 수량의 변동으로 설명하는 견해. 화폐 수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르고 화폐 수량이 감소하면 물가가 내린다는 것)에서는 항상 화폐 수량이 본래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고 개념을 사용한다. &lt;br /&gt;
&lt;br /&gt;
   화폐 수량은 여러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정확한 설명이 어려운 개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에서 직접 조달하는 화폐 수량을 본원 통화&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netary base&amp;lt;/span&amp;gt; (통화량 증감의 원천이 되는 돈. 어느 시점의 화폐 발행고와 예금 은행 지급 준비 예치금의 합계로 표시된다. 고성능 통화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현금 유통량과 시중 은행 예금의 총합을 화폐 수량이라고 한다(즉 중앙은행의 총 보유액과 일치한다). &lt;br /&gt;
&lt;br /&gt;
   한편 화폐 수량을 M1에서 M3의 단계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반영된 예금의 유동성에 따라 화폐 수량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M1은 비금융 부문에서 유통되는 현금과 비은행권의 1일 예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emand deposit&amp;lt;/span&amp;gt; (예금주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지급할 수 있는 예금)의 총합이다. &lt;br /&gt;
&lt;br /&gt;
   M2에는 2~3개월 해지 기간이 있는 보통 예금과 최대 2년 기간의 정기예금이 포함된다. M3의 경우 주로 단기 은행 채권(최대 2년 만기 지급 기일)과 머니마켓펀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ney Market Funds&amp;lt;/span&amp;gt; (단기금융상품에 집중 투자해 단기금리의 등락이 펀드 수익률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한 공사채형 금융상품)가 추가된다. &lt;br /&gt;
&lt;br /&gt;
   과거에는 통화 승수라고 하는 본원 통화와 화폐 수량의 상관관계가 명확했다 가령 본원 통화가 10단위 상승하고 M3가 20단위 상승하는 경우 통화 승수는 2다. 그러나 통화승수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본원 통화는 인플레이션을 진단하는 지표로 적합하지 않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238~243&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일단 국가는 최대한 빚을 많이 지고 본다. 그다음에 빚더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그러니까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서 부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릴 방안을 찾다가 최악의 경우에 파산 신청을 할 것이다. 국가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 먼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한다.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에 몰리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유권자인 국민에게는 좋을 것이 없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환영받을 만한 선택은 아니다. &lt;br /&gt;
&lt;br /&gt;
   그런데 국가에는 한 가지 카드가 더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앞서 페터의 사례에서 보았던 단순한 전략이다. 국가는 적당히 빚을 지고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 국가에 돈을 빌려준 국제 자금 시장과 국민은 예상치 못했던 고인플레이션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경제는 예상 시나리오대로 돌아간다. 국가의 부채가 평가절하되면서 실질 부채 부담이 감소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정말 국가는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일까? 미국 경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미국 경제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1946년에서 1974년까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채 감소 효과는 20퍼센트에 불과했다. 80퍼센트는 미국 경제 발전에 속도가 붙으면서 정부의 부채 성향이 세전 기준 흑자를 기록하고 부채가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 안정기였던 1974년 이후부터 인플레이션은 미국 정부의 부채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했다. &lt;br /&gt;
&lt;br /&gt;
   196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경제에 관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예산 적자의 주된 원인은 기초 재정 수지 적자였다(국가의 부채에 대해 이자를 부과하지 않아서 발생한 적자). 반면 인플레이션의 부채 감소 효과는 10퍼센트에 불과했고, 90퍼센트는 GNP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이 연구 결과대로 인플레이션이 국가의 부채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설불리 낙관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연구 대상 기간에 이 국가들은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은 줄였으나, 앞서 살펴보았던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었다. 이미 설명했지만 국가는 납세자의 주머니를 은근슬쩍 털어가고 있었다. 금융 억압으로 국민으로부터 착취한 금액은 조세 수입의 20~30퍼센트에 달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100퍼센트를 초과했다. 이렇게 좋은 무기가 있는데 국가들이 굳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겠는가? &lt;br /&gt;
&lt;br /&gt;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세계화되고 자본 이동성이 높은 시대에는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조장 정책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인플레이션으로 국가의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lt;br /&gt;
&lt;br /&gt;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회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도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는 조작도 가능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 라면 전문가인 아르헨티나 경제 장관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있을까?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인플레이션을 국채 해결사로 보는 이유가 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채는 국가적 사안에 가까웠다. 각국은 특히 자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이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는 자국민에게 돈을 빌려서, 즉 내국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ternal debts&amp;lt;/span&amp;gt;를 발행하는 동시에 세금을 인상하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국가는 국민에게 돈을 빌리고 세금을 인상시켜서 세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셈이다. 신사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국채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는 일본의 국채 비율이 300퍼센트에 달하는데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은 다른 국가에 비해 국민에게 지고 있는 빚이 특히 많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빚을 지기 시작하면 이 방법으로는 국채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국가는 자국의 경제소득을 포기하고 해외로 보내야 한다. 다른 국가에 빚을 지면 상품이나 서비스로만 상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은 상품이나 서비스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원치 않으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해외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lt;br /&gt;
&lt;br /&gt;
   결국 인플레이션만큼 국가의 채무를 해결하기에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 앞 장에서 우리는 국가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앞장 서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온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처럼 오랜 교훈을 정치인들이 잊을 리 없다. &lt;br /&gt;
&lt;br /&gt;
   여기에서 반론이 제기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중앙 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1923년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쓴 맛을 한번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또다시 인플레이션을 조작하라는 유혹이 손짓을 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원칙적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은 정부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다. 1922년 독일 라이히스방크가 화폐 발행권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거부할 수 없다고 공언하자, 사람들은 “이 경우에는 결국 불미스런 정치적 개입으로 국가 재정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중앙은행이 끝까지 정치적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lt;br /&gt;
&lt;br /&gt;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비춰보건대 중앙은행은 정치적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법은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다. 이러한 까닭에 유럽중앙은행은 유럽연합 부채국의 부채를 경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이 끝까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고집했더라면 유로는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을 올리는 데 중앙은행은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 덫에 걸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는 단발성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중앙은행의 결정에 자유롭게 개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 덫에서 벗어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각국이 추진해왔던 통화량 증가 정책도 정부가 통화 정책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는 못 했다. 이제 이러한 의혹의 전말을 파헤쳐야 할 때가 왔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336~&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3. 쓸데없는 집착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100유로를 지불하고 산 주식의 주가가 20유로로 하락했다고 하자. 이럴 때 우리는 100유로에서 20유로로 떨어졌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100유로로 상승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 그래서 이 100유로가 마음속에 닻처럼 박혀서 절대 이 주식을 팔려 하지 않는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4. 처분효과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연구결과에 의하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본 주식은 보유하고 수익을 낸 주식은 파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학자들은 이를 ‘처분 효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isposition Effect&amp;lt;/span&amp;gt;’라고 한다. 사람들은 손해 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손해를 피할 수만 있다면 고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손해 본 주식이 평균 시세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가가 떨어지면 언젠가는 다시 오르지 않겠느냐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처분 효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4.4퍼센트였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5. 객관성을 잃은 희망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경제학 원칙이 있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unk is sunk&amp;lt;/span&amp;gt;’. 우리는 이미 잃은 상태인데 또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추가 매입’이라고 한다. 주가가 떨어져서 이미 잃었는데 상담가들은 더 사야 한다고 부추긴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둬야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주가가 다시 오르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잃을 대로 잃은 상태에서 주식을 또 사야 할까? 당신 머릿속에서 사지 말아야겠다고 결론이 나오면 과감하게 남은 주식도 처분하라.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4&amp;gt;6. 과도한 낙관주의 &amp;lt;/h4&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자동차 운전자의 80퍼센트가 자신이 평균 이상 수준의 운전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과도한 낙관주의’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괜찮고, 똑똑하고, 재주가 많으며, 좋은 일은 자신에게, 나쁜 일은 남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향이 있어 거액을 무모하게 투자하곤 한다. &lt;br /&gt;
&lt;br /&gt;
   디스카운트 브로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iscount Broker&amp;lt;/span&amp;gt;(증권거래에 있어서 증권사의 위탁수수료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성사시켜주는 업체)에서 집계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주식을 매입하고 보유하는 투자자는 세금 공제 기준으로 연평균 18.5퍼센트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거래량이 많은 투자자는 수익률이 평균 11.4퍼센트라고 한다(이 연구는 1990년대 초반 통계이므로 수익률이 더 높게 나왔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통계에 의하면 세금 공제 기준 가계 수익은, 새로운 주식을 매입하고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더 줄어든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www.notion.so/8c038739fae2481081eacbae22cfaa05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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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플레이션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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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5개)&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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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시대 - 풀린 돈이 몰고 올 부의 재편&lt;br /&gt;
2017년 8월&lt;br /&gt;
김동환,김일구,김한진 &lt;br /&gt;
448쪽 152*223mm (A5신) 778g ISBN : 9791130613895&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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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2005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미국에 있었는데요, 미국에서 살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라든지 도시와 농촌 간에 큰 격차가 있습니다만, 미국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 외곽지역의 가난한 지역을 가보면 이게 정말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정말 피폐한 지역이 많습니다. 이들 지역에는 흑인과 히스패닉계뿐 아니라 저소득 블루칼라 백인들도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꿈이 없어요. 교육 시스템은 무너졌고, 공공병원은 낙후됐고, 교량은 통행료를 지불하고 건너면서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노후되어 있습니다. (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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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말씀하셨듯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가 내수 부양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지구촌 모두가 국경의 문을 닫고 인위적으로 자국 일자리 늘리는 데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 정부도 내수부양책을 계속 펼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한계가 있는 일입니다. 설비투자율이 떨어진 것은 세계교역이 위축되기 시작한 2011 년경과 일치합니다. 중국인들의 임금이 오르고, 그에 따라 생산비용이 올라가고, 투자 동인이 줄고, 기존 설비의 가동률마저 떨어지기 시작했죠. 그리니 이제는 투자율을 떨어뜨린 요인인 임금 상승과 도시화 현상이 소비로 이어져 GDP 대비 소비 비율이 올라가야 할 시점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중국 경제는 거대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거시적인 변화에는 시간이 좀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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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도 반도체 호황으로 비슷한 착시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2017년 상장기업 전체 영업이익은 200조 원(650 개 기업 기준)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이 중 약 27%인 53조 원을 삼성전자 한 기업이 낼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이나 가계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산업들이 중국 경제나 중간재 수요 둔화 등 구조적인 이유로 성장탄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호황을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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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반도체를 말씀하셨는데, 반도체는 최근 호황이죠. 컴퓨터, 자동차 전장화부터 사물인터넷, 각종 모바일 기기가 반도체를 더 많이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몇몇 대기업에 국한된 일입니다. 물론 반도체 장비나 기자재 업체에 낙수효과가 있긴 하지만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제한적이죠. 이런 현상은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국가 간 낙수효과와 산업 간 분업이나 상호 선순환의 고리가 약해진 듯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수출해야 하는 산업 가운데 상대 교역국이 반드시 수입을 원하는 산업의 수효가 줄고 있어요. 신흥국 경제 발전이 과거처럼 한국의 모든 범용 수출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세상도 아니고요. 미국과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교역재의 교역 증대를 가져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대한 자기네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죠.(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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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동환&#039;&#039;&#039; 가끔 저한테 부동산에 대한 문의를 해오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럴 때 아주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충분한 자산이 있으면 강남 등 이른바 프라임 지역에 집을 사시고, 그 정도 돈이 없으면 그냥 평생 살 집을 구하시라고요. 사실 고가권 아파트라고 하면 서울시의 강남이나 서초, 그리고 용산 일부 지역 등에 있는 아파트를 얘기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울과 인근 지역의 최고가 아파트와 최저가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열 배가 됐습니다. 압구정동이나 반포의 30평대는 20억 원에 육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10분의 1 가격이면 비슷한 아파트를 찾아볼 수 있잖아요. 이건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또 30년 전에는 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었고요. &lt;br /&gt;
  그럼 왜 이렇게 아파트 가격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갭이 메워질 것인가, 아니면 더 벌어질 것인가? 저는 장기적으로 보면 캡이 더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집값은 어디나 엇비슷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를 보면 한 블록 차이에 따라 집값이 크게 다른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같은 동네인 건가 싶을 정도로 신호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에요. 맨해튼의 그 많은 아파트와 콘도미니엄들이 9·11 사태와 금융위기 때 가격이 속절없이 내려갈 것 같아도 다시 오른단 말이죠. 맨해튼만 하더라도 세계의 모든 부자가 이곳에 집을 갖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올라갑니다. &lt;br /&gt;
  서울 중에서도 살고 싶은 동네라고 하는 지역의 아파트들 역시, 김 센터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서울시는 아파트 공급을 틀어막는 정책을 시종일관 펼치고 있잖아요? 이런 규제로 인해 서울 지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서울과 주변부 신도시들 간의 아파트 가격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를 용인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지역간 격차는 더 벌어질 거예요. &lt;br /&gt;
  또 하나는 몇 년 전만 해도 ‘지금 집을 사라고 하면 친구도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논객들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었죠. 부동산 필패론이 한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때와는 거꾸로 요즘은 ‘당시 집을 사지 말라고 한 사람은 친구도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잖아요. 그럼 집값이 왜 이렇게 오르느냐? 기본적으로 저금리 때문입니다. 만약 2016년에 집을 샀다면 2%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유혹이거든요. 예를 들어 1억을 대출받아 집을 살 경우 한 달에 20만 원만 내면 된다는 얘긴데, 이것은 월급 생활자들에게 굉장한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저금리 구조가 순간적으로 훼손되어서 예전처럼 6~8% 정도까지 오르지 않고 제도권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3~4% 정도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한다면 괜찮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지방과 수도권의 노후 주택과 아파트들입니다. 바로 빈집의 위험인데요. 현재 일본의 경우 전국적으로 빈집이 800만 채가 넘습니다.&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네. 도쿄에도 빈집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그 빈집들이 많은 곳이 교통이 좋지 않은 외곽지역이라는 건데요. ‘일본 가정식’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때 가정(家庭)에서 ‘정(庭)’은 정원을 말합니다. 일본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나서 정원이 있는 집에 살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크기는 작더라도 정원 있는 집에 사는 것이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노인이 된 단카이 세대가 이제는 병원과 복지시설이 가깝고 편리한 공동주택에 살고 싶어 합니다. 800만 채가 넘는 일본의 빈집들은 단독주택과 외곽의 아파트들입니다. 단카이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대규모 빈집이 발생하는 단절효과가 나타난 거죠.&lt;br /&gt;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처럼 단절효과가 급격하게 나타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인분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주택은 이미 노후화가 많이 진행되어 집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들은 일부가 귀농·귀촌 인구들의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수요로 충당될 것이고, 결국은 다른 목적의 토지로 전용될 것입니다.&lt;br /&gt;
  사실 문제는 지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1기 신도시 일부와 지방의 나홀로 아파트들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용적률을 크게 높여줘야 재건축의 상업성이 생깁니다. 그것도 입지에 따라 선호가 크게 엇갈리죠. 이렇게 상업성이 떨어지는 노후화된 신도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리 주택시장과 관련된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lt;br /&gt;
  부동산시장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전체 시장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지역적 편차가 더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저 집 한 채 있으면 다 같지’라는 생각을 했다가는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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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4&amp;gt;부동산시장을 바라보는 기준&amp;lt;/h4&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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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일구&#039;&#039;&#039; 문제는 금리인 것 같습니다. 주택 공급량으로 보면 이제 총량에서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계산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기준에 따르면 2014년 주택보급률은 서울이 104%이고 전국이 118%입니다. 2000년 서울 77%, 전국 96%였던 것과 비교하면 공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오피스텔 등을 포함하면 더 높아지겠죠?&lt;br /&gt;
&lt;br /&gt;
&#039;&#039;&#039;김일구&#039;&#039;&#039; 그렇죠. 그런데 집을 지을 때 거기에 몇 가구가 살지 모릅니다. 구분이 잘 가지 않거든요. 오피스텔과 달리 다가구 주택은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건물에 몇가구가 들어와 있는지를 집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최근에는 전력요금계가 몇 개 있는가로 다가구주택의 가구수를 집계한다고 합니다.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주택보급률은 이미 충분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lt;br /&gt;
  이제 문제는 주택 공급 총량이 아닙니다. 양질의 주택은 여전히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을 텐데, 이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지난 몇 년간 수도권 외곽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많이 지으면서, 2015~16년 2년간 약 100만 호씩 주택 공급이 늘어났습니다. 주택 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총량을 늘리는 정책은 대규모 미분양과 빈집을 양산할 위험이 큽니다. &lt;br /&gt;
  주택 총량이 지나치게 많아져도 저금리가 지속될 때는 투기적 수요가 따라붙습니다. 금리가 낮으니 결국 부동산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투기심리가 가세하는 거죠. 그러나 금리가 올라가면 이 투기적 수요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부동산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이후에 팔려고 할 때 누가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투기적 수요자가 살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실수요자가 내 부동산을 이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권합니다.&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저는 앞으로 우리나라 집값이 이자율과 금융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리라 봅니다. 최근 글로벌 집값은 모두 저금리에 힘입어 튀었습니다. 주택시장에 어떤 다른 변화가 없더라도 금리 변동과 대출환경의 변화만으로도 주택 수요가 급변하고 가격 변동성이 커질 것입니다. 부동산투자나 집값 전망이 이제부터는 금리 전망, 금융 조건 전망과 일맥상통하게 된다는 뜻이죠.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주식시장으로 치자면 신용물량이 많아진 거네요. &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정부가 투기 수요를 지혜롭게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 투기 수요는 서민들의 거주비와 임대료 상승을 통해 소득분배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우리는 밥을 사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건물주에게 너무 많은 돈을 갖다 주면서 살아가고 있죠. 심하게 표현하면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또한 투기 수요는 주택시장에 과도한 변동성을 만들어 실제 거주 목적으로 집이 필요한 서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합니다. 간혹 발생하는 주택 경기 급랭은 부자들에게만 또다시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요.&lt;br /&gt;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부동산시장을 통한 소득 불평등, 부의 불평등은 더욱 골이 깊어만 갑니다. 과도한 주거비용은 내수경기 전체를 끌어내리고 갈등을 키우며, 새롭게 경제활동에 진입하는 청년들을 무기력하게 합니다&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어쨌든 우리가 부동산시장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우리는 지난 40~50년 동안 부동산 불패라는 자산시장의 큰 흐름속에서 살아왔거든요. 물론 삼성전자 주식을 30년 동안 갖고 있는 경우보다 수익률 측면에서는 덜했겠죠. 하지만 워낙 큰 자산이고 거래비용이 크기 때문에 회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었다고 할 때 투자수익률이 가장 높지 않았겠습니까? 여기에 강남과 같은 입지 좋은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얻은 가치들, 예를 들어 교육환경과 부유층 커뮤니티로부터 얻은 정보와 인맥 등을 고려하면 단순한 수익률 계산은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결국 부동산, 특히 아파트를 비롯한 거주용 부동산시장은 일방적인 강세, 약세를 논하기보다 어디에 내 삶의 터전을 잡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가격의 양극화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삶의 질 양극화에 이르기까지를 바로 이 삶의 터전에 대한 선택이 좌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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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지만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 풀렸던 돈이 19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낳았던 것처럼,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풀려나간 돈이 곧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는 정부가 재정정책을 펴면서 돈을 썼기 때문에 나중에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아니었던 데 반해, 이번에 풀려나간 돈은 중앙은행이 빌려준 돈이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거둬들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정정책은 정부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돈을 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높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성도 크다. 반면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춰서 돈을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작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성도 낮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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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일구&#039;&#039;&#039;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이 문제가 심각했죠. 건설투자에 의존한 양적인 성장은 정말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들이 쓰는 정책입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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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한진&#039;&#039;&#039; 그간의 정부나 정치권에서 구조개혁, 생산성 개선, 창조경제, 부가가치 증대···, 뭐 이런 슬로건을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나 생산성 증대는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김 센터장께서 말씀하셨듯이 교육과 창의적 사고, 탈규제, R&amp;amp;amp;D 생태계 등 총체적 환경 개선이 꾸준히 추진돼야 합니다. 특히 저는 현재의 대기업 중심 성장구조에서는 혁신적인 성장 모델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스타트업 기업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art-up enterprise&amp;lt;/span&amp;gt;, 신생 벤처기업)에서 벤처기업, 중소기업,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기업 군락, 혁신기업 생태계가 끈끈하게 구축되어야 합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혁신을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기술혁신도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많이 언급되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 사회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지름길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득과 자본의 극단적인 편재가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협의가 온전히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운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봅니다. 투자도 소비도 하지 않는 돈이 늘고 노동소득 대비 자본소득이 일방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걸 방치한다면 사회는 더욱 불안해질 겁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맞습니다. 그간 우리 성장 모델은 앞서 말씀드린 바처럼 자본주의 원리대로 자본가에게 성장의 몫이 더 많이 배분돼왔습니다. 노동자의 몫은 계속 줄었고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졌고, 근로자 중에는 대기업을 다니는 소수의 사람이 성장의 과실을 월등히 많이 누렸습니다. 여기에 집값 상승이 소득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했죠. 이 총체적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지금 한국은 양극화의 길을 너무 많이 달려온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lt;br /&gt;
  무조건 분배를 앞세워 복지만 늘리자는 뜻은 아니고요, 진정한 성장동력을 장착하기 위한 시스템을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수출로 성장을 높이고 부가가치의 파이를 키우되, 이를 배분하는 시스템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도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그러니까 이걸 바로잡는다면, 잠재성장률을 어느 정도까지는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겠죠. 하지만 소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돈을 쓰고 남아서 저축하고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나도 소비가 따라서 늘지 않죠? &lt;br /&gt;
  예를 들어 한계가구, 즉 처분가능소득에서 기본적인 이자만 내도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최근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계가구가 150만 4,000가구까지 확대됐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잉여소득이 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비가 다소간 개선될 것입니다. 다만 어떤 방법을 통해서 시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lt;br /&gt;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가 2017년 상반기에만 약 24조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어요. 그런데 이 돈이 투자, 배당, 급여, 납품업체의 납품 단가 등으로 이전되지 않는다면 사실 삼성전자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결국 편재되어 있는 돈이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야 우리 경제의 파이가 커질 겁니다. 피가 순환하면서 영양분을 퍼트려 인체가 성장하듯 말이죠. &lt;br /&gt;
&lt;br /&gt;
(후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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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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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한진&#039;&#039;&#039; 저출산의 요인은 많겠지만 저는 청년실업이 결정적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9년 이래 최고치인 10.5%(2017년 6월)이고 실질 체감(구직 단념자 등 포함) 청년실업률은 23.4%에 달합니다. 청년이 백수라는 것은 30대 일자리 역시 부족하다는 뜻이고요, 통계상 고용으로 잡힌다 해도 고용의 질이 썩 좋지 않은 상태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결혼이 늦어지고, 이는 출산을 어렵게 합니다. 일자리가 불안정한데 어찌 편하게 결혼하고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겠습니까? 살인적인 주거비는 근로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릴 수준으로 치솟고, 여기에 각박한 보육환경, 교육비 부담이 더해지면서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편안하게 가지지 못하는 거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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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일구&#039;&#039;&#039;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주식시장의 가장 큰 호재는 일본처럼 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물론 2008년 이후 우리 정부가 써온 정책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시기에 일본 정부가 쓴 정책과 비슷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4대강 사업으로 정부가 빚을 늘렸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대규모 아파트 분양으로 가계가 빚을 늘렸습니다. 이렇게 늘린 빚으로 건설투자를 하게 해서 추락하는 경제성장률을 붙잡아두려고 했죠. 이런 정책은 일본도 1990년대 이후 빈번하게 썼고 또 매번 빚만 늘어나고 경제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데 실패했던 것들입니다. 일본에서 실패한 경제정책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건데, 그럼에도 제가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국민이 이제 이러한 소모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노’라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건설투자 중심의 보여주기식 경제정책은 자산 가격만 끌어올리고 일자리는 만들지 못한다, 소득 양극화만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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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동환&#039;&#039;&#039; 저는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고 하지 말라고 제언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평가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정책이라는 건 그 정권의 리더십들이 가진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 가치가 정책으로 발현되는 것이 그 정부를 특징짓는 경제정책이잖아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성장에 방점을 둘 것인가, 분배에 방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없어요. 그냥 땜질이에요. 해외 변수가 터지면 그때마다 응급처치를 하는 데 급급했는데, 심지어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그 과정에서 왜곡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증세 없는 복지’였잖아요? &lt;br /&gt;
  새 정부는 차라리 증세를 비롯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웬만큼 경제적 규모가 있는 거의 모든 국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중략)&lt;br /&gt;
  그래서 저는 초고소득자 개인이나 일정 금액 이상의 이익을 내는 기업에 대해서는 명목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공제 축소 등 실질 세율로 어떻게 조정을 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미덥지가 않아요. 그냥 솔직하게 증세하겠다고 고백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결국 증세의 목적이 복지가 됐든 성장의 잠재력을 높이는 데 쓰이든 우리 경제를 저성장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인 부의 편재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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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한진&#039;&#039;&#039;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은 부채 증가와 자산 가격(특히 미국 집값) 거품, 그 거품을 도운 파생상품이었습니다. 여기서 파생상품은 CDS(&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redit Default Swap&amp;lt;/span&amp;gt;, 신용부도스와프)와 CDO(&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amp;lt;/span&amp;gt;, 부채담보부증권)를 말하는데, CDS는 대상 자산이 부도날 확률에 투자하는 상품이고 CDO는 새로운 신용등급의 합성 부채담보증권이죠. 그런데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1929년 주가 폭락과 기업의 연쇄파산으로 대변되는 미 대공황의 원인도 부풀려진 자산과 신용팽창에 있었습니다. 빚을 내서 소비하고 빚내서 집 사는 과정에서 거품이 만들어졌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파산한 거죠. 금융위기의 빤한 레퍼토리라 할 만큼 반복된 역사입니다. 1980~90년대 미국 저축대부조합 파산과 2000년의 닷컴 버블, 그리고 가장 근래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위기의 원인과 현상 그리고 처방과 결과까지 얼추 비슷합니다. 거품의 대상이 되는 자산은 시대에 따라 부동산, 주식, 원자재 부실채권 등으로 다양합니다. 대개는 다 함께 등장하고 다 함께 퇴장하죠. 자산 가격의 거품은 그 이전의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잉태됩니다. 무분별한 통화팽창과 신용팽창, 저금리는 처음에는 위기 수습과 경기부양의 수단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서 보면 거품의 불을 지피는 땔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위기 발생 → 금리 인하와 통화팽창 → 위기 수습과 경기회복→ 팽창된 통화로 인한 자산 가격(집값, 주가) 급등 → 자산시장의 거품과 경기 과열 → 자산 가격 거품 붕괴 →금융 부실화, 정부의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 → 금리 인하와 통화팽창···.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온 셈입니다. 그사이에 경제 주체들의 부채는 팽창해왔고 국가재정은 악화됐으며 경제 불평등은 한없이 심화되어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lt;br /&gt;
  세계 금융시장에는 1970년 이후 약 37번의 크고 작은 변동성이 있었습니다. 1년에 대략 한 번꼴로 주가, 환율, 금리 등 가격변수들이 위아래로 제법 세게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그중에 8번은 매우 쇼킹한 금융위기로 기록됐는데요, 그러니까 대략 6년에 평균 한 번쯤은 정말 큰 위기가 꼬박꼬박 찾아왔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하지만 반복적인) 위기를 두고 분석가들이나 언론은 그때마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기라고 떠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위기가 왔다 해서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위기로 인해 당국은 미친 듯이 돈을 풀었고, 그결과 다음의 자산 거품이 또다시 잉태됐죠.&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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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략)&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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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플레이션의 시대 175쪽 도표.png|frameless|700px|alt=미국 민간 부문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순자산 비율]]&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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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저는 다음 위기의 트리거를 자산시장의 가격 조정에서 찾고 싶습니다. 저금리에 힘입어 오른 자산 가격의 부담 정도가 관건인데요. 앞의 그림 &amp;amp;lt;미국의 민간 부문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순자산 비율&amp;amp;gt;은 일종의 거시 멀티플 지표죠. 지금 이 비율은 2000년 닷컴 버블 수준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닷컴 버블 때보다 민간소득 대비 순자산 규모가 더 팽창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주요인은 주가와 집값 상승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좀더 이어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도 부담이 커 보입니다. 자산을 담을 그릇(소득)은 제한돼 있는데 자산 규모가 너무 커지면 자산 가격 자체가 조정을 받을 위험이 커집니다. 소득 증가 속도와 자산 가격 상승 속도 간에 괴리가 커지면 금융위험이 커지고요. 자산 가격 하락이 경기를 끌고 내려갈 때 과잉 부채자의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이들이 자산을 처분해 신용을 유지하려고 하는 바람에 자산 가격은 역버블(과도한 하락)을 향해 더 내려갑니다. &lt;br /&gt;
  금융시장의 긴장감이나 요동이 다행히 잠시 딸꾹질 정도로 지나가면 괜찮겠지만 길어지면 위험이 일파만파 확산됩니다. 사실 빚을 늘려 세계 경제가 무한한 성장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돈 공장’만 돌아가면 되죠. 사람들은 지금 각국 중앙은행과 미국 연준의 놀라운 솜씨에 그저 감탄하고 경의를 표하고 있지만, 실은 그 이면에 누군가의 희생이 또 예정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쉬운 길은 진리일 리가 없습니다. (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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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볼륨이 커진 상황에서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통제가 온전히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자산시장입니다. 이런 현상은 수백 년 동안 반복되어온 레퍼토리입니다. 아무튼 이런 시각에서 위험을 좀더 관찰해가면서 의견을 계속 나누시죠. (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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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현재도 그렇습니다. 경제가 원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금리를 아주 천천히 올리면 됩니다. 그러면 그 피해를 누가 받느냐? 저축을 할 수밖에 없는 은퇴 예정자들입니다. 그분들은 지금 저축을 해야만 합니다. 은퇴 후 생활을 대비해야 하니까요. &lt;br /&gt;
  이분들이 비용을 다 지불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금리를 빨리 올리자는 말이 나올 때 미국의 매파(보수강경파)들이 이야기하는 게 은퇴자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고 있는지 아느냐, 저금리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은퇴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저금리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층에게 비용 부담 주지 않고 저금리를 더 끌고 가려는 재닛 엘런 연준 의장이 나이 드신 분들한테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겠습니까. 금리가 제일 낮을 때는 100만 달러를 예금해도 하루에 코카콜라 하나 사 먹을 이자밖에 안 나왔다고 해요.&lt;br /&gt;
  저는 금리를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가가 올라도 컨트롤할 수 있어요. 트럼프도 저금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옐런도 저금리를 좋아합니다. 무조건 낮은 거 좋은 게 아니고 경제 펀더멘털보다 느리게 올려야 한다는 거죠. 그 비용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세상의 문제를 키울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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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기업들에 대한 주식투자가 열려 있는 홍콩H지수를 보면, 2006년과 지금 주가지수는 1만 포인트로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지수의 시가총액은 1.4조 홍콩달러에서 2.8조로 두 배가 늘어났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거의 200조 원의 시가총액 증가입니다. 홍콩H지수의 80%는 금융인데,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신규 상장도 하고 증자도 했다는 얘기죠. &lt;br /&gt;
  저는 이 사실을 중국 사람들이 굉장히 스마트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아주 뛰어나다는 걸 방증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들은 금융이 가장 위험하고 또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어서, 금융만 쏙 빼서 홍콩 시장에 상장시켜놓고 외국인 투자를 허용한 겁니다. 빚으로 성장하다 보면 부실의 위험이 따르게 되는데, 그러한 위험을 안고 있는 금융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처음부터 개방해서 투자를 받고 있는 거죠. (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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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동환&#039;&#039;&#039; 누가 농담 삼아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세기 세계사에 가장 큰 미스터리가 중국이 사회주의를 채택한 거라고요.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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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일구&#039;&#039;&#039; 맞습니다. 중국 사람들을 괜히 ‘왕서방이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돈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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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 그랬듯이,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경제의 성장은 기업이 돈을 많이 빌려서 투자를 함으로써 이뤄집니다. 잘되면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빚을 못 갚는 부실기업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부실은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이 떠안습니다. 신흥국의 주가지수를 보면 대부분 금융주 비중이 엄청 높아요. 주식시장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국가에서는 주식을 금융기관이 먼저 발행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발행하죠. 그리고 기업이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니까 금융이 그렇게 커지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형 기업 500개로 구성된 S&amp;amp;amp;P500지수만 보더라도 금융의 비중은 20% 미만입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경제 개발을 위해 주식시장을 만든 한국이나 중국, 이머징 국가들은 제일 먼저 은행부터 상장시킵니다. 은행이 자금을 모아서 기업들에 대출을 하도록 하는 거죠. &lt;br /&gt;
  이것이 경제 개발 정책의 핵심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흥국 주가 지수에서는 금융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런데 금융회사들은 장기적으로 주가가 올라가는 기업은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199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신흥국에서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기업 부실을 털어내느라 주가가 올라갈 겨를이 없습니다. (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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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외환시장을 개방한다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외환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거죠. 개방하면 공매도가 가능해지니까요. 중국 정부가 공매도에 대응하려면 금리를 확 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부동산시장이 붕괴되면서 망합니다. 중국은 공매도가 안 되니까 사람들이 홍콩에서 하죠. 그런데 홍콩달러는 아무리 공매도를 해봤자입니다. 홍콩은 통화에 대해서 공격이 들어오면 공매도 세력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금리를 60~100%씩 올려버립니다. 그렇게 올려도 국내 경제에는 거의 영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때 통화에 대한 공격을 금리를 올려서 막지는 못했습니다. 경제가 박살 나는 게 두려웠으니까요. 결국엔 막지 못하고 경제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간 거죠. 중국 역시 외환시장을 개방하면 망합니다. (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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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과정에서 B급 이미지를 활용한 것도 닮았다. 보통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귀족 집안에서 자란 반듯한 인물이어서 가난한 백인들의 지지를 받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레이건은 젊은 시절 주로 B급 영화에 출연한 배우여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와튼스쿨 출신에 갑부로서 서민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주류 언론을 비아냥거리며 트위터로 직접 소통하고 막말을 자주 쓰면서 서민에 친숙한 B급 이미지를 만들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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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트럼프와 비슷한 리더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푸틴만 보더라도 헌법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재임까지만 한 후에, 자기 부하를 대통령 한 번 시키고 다시 본인이 세 번째 대통령 하고 있잖아요. 두테르테는 어떻습니까? 본인이 관리하는 자경단을 시켜 마약사범 수천 명을 즉결처분했는데, 그래도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터키 개헌이 있었죠. 에르도안이 술탄, 그러니까 군주가 되겠다는 겁니다. 계산해보니까 대통령을 20년은 더 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 예순이니까 여든까지 하겠다는 거죠. 왕정 시대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시도인 개헌입니다. 말 그대로 스트롱맨들의 전성시대죠. &lt;br /&gt;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스트롱맨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느냐 하는 건데요, 결국 빈곤의 문제 때문입니다. 1960년대도 스트롱맨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한국의 박정희, 필리핀의 마르코스 등 전제 군주적인 개발 독재 스트롱맨들이 있었죠. 그런데 개발 독재를 할 때는 보통 성장률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양극화가 진행됐지만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경제성장률이 저하되고 빈곤의 확대, 부의 편재, 양극화가 동시에 심해지다 보니까 빈곤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주던 독재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향수가 생긴 겁니다. 그것이 이러한 마초적 정치 리더십을 다시 탄생시킨 배경이죠. (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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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환보유고를 쌓을 필요가 없는 나라입니다. 달러가 약세여도 미국 국채는 잘 팔립니다. 달러 약세, 곧 상대국 통화의 강세는 앞서 말씀드린 미국의 비교우위 상품을 해외로 밀어내는 데 아주 유리한 조건입니다. 미국의 막강한 금융 산업도 상대국 통화가 강세일 때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돈 벌기가 유리합니다. 한편 국채는 미국의 부채인데요, 미국 국채의 매력은 통화정책과도 연관성이 높습니다. 달러표시 국채를 각국에 팔 때 아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종이에 알록달록한 잉크로 잘 인쇄를 해서 수입대금으로 달러지폐를 지불해주면 상대 교역국 사람들은 그걸 받고 매우 좋아합니다. 교역국들은 그것으로 미 국채를 다시 사줍니다. 이게 바로 달러 리사이클링(&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ollar recycling&amp;lt;/span&amp;gt;) 과정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에 쌓여가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lt;br /&gt;
  가끔 달러를 평가절하시켜서 상대방이 미국 물건을 더 많이 사 주도록 유도할 수도 있고, 대외부채의 장부 금액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채가 잘 안 팔리거나 달러 강세가 필요한 경우에는 글로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방법도 종종 동원됩니다. 전통적 비교우위재인 국방재를 수출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으니 평 먹고 알 먹는 셈이죠. &lt;br /&gt;
  트럼프 집권 기간에 이러한 범주의 일들은 더욱 빈번해질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우위에서 가능한 일들입니다. 특히 미국의 군사력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세계에서 절대우위인 상태이고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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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자산시장의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 겁니다. 지금도 사실 미국은 완전고용 수준 아닙니까. 실업률이 4%대잖아요. 지표로 나타나는 고용률을 더 좋게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소득을 올려야 하는 거죠. 최저임금도 높이고요. 결국 일반 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여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득을 높여주려면, 기본적으로 미국에 공장 짓고 자동차 팔고 냉장고 파는 기업들의 재고가 없어져야 합니다. 결국 잘 팔려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잘 팔리기 위한 조건이 뭘까요. 집값이 오르든 주식값이 오르든 아니면 이자율을 높이든 간에, 하여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가 더 빨리 늘 테니까요. (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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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자산 가격 버블을 만들 거라고 제가 계속 주장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도 질 좋은 일자리의 임금은 계속 올랐잖아요. 월스트리트도 그렇고 구글,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의 직장은 복지도 좋고 급여도 굉장하죠? 하지만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미국 청년들은 여전히 10달러 안쪽의 시급을 받고 있단 말이죠. 렌트비, 유류비, 통신비 내면 쓸 돈이 없어요. 미국의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이거잖아요. 돈 있는 사람은 계속 잘 벌고 하층민들은 소득이 안 올라요. 그러니 실업률이 4%대에 불과한데도 소비가 늘지 않는 거죠. 트럼프노믹스는 그걸 해결하려는 거고, 하부구조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을 늘려서 잘살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양질의 직업을 만들고 시급, 주급을 올려주면 당연히 소비가 살아납니다. &lt;br /&gt;
  우리나라가 미국에 무역이나 경제 의존도가 높기는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가 버블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추세대로 가면 미국 경기는 지금보다 단기적으로는 더 좋아질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로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보다 이 버블화의 과정이 우리 경제에 숨통을 틔워 주는 시기가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수출과 제조업 위주의 소규모 개방 경제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빨리, 직접적으로 올 수 있습니다. &lt;br /&gt;
  그러면 주식시장,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다우지수가 계속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죠. 차트만 보면 매우 위험해 보이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를 거기에 대입해 상상해 보면 ‘다우지수, 이거 뭐 1~2배는 더 올라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매우 위험하지만 트럼프의 행태가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입니다. 디벨로퍼의 특징은 레버리지입니다. 뉴욕 맨해튼에 100만 달러로 건물 지어서 110만 달러에 팔아 돈을 벌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모델은 자기 돈 100만 달러에다 은행에서 몇천만 달러를 더 빌려 분양한 다음에 100만 달러의 수십 배를 버는 겁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죠. (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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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동환&#039;&#039;&#039; 트럼프의 정책과 세계 경제의 순환에 연결되는 이야기로 보이는데요. 이건 순전히 제 예상이지만 만약 트럼프 2기가 가능하다면 2년 차 정도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버블 붕괴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 박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미국 월스트리트의 오류와 실패로 금융위기가 또 한 번 발생하더라도 그 비용을 다른 나라에 전가할 테니까요. &lt;br /&gt;
  어떻게 보면 규모의 경제가 워낙 큰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고 버블을 만드는 징후보다 다른 나라들의 버블이 먼저 튀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버블이라는 잠재적인 리스크를 키우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버블이 만들어지고 그 버블이 트럼프 연간에 붕괴한다고 전제하면, 신흥국 중에서 비교적 펀더멘털이 있고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버터내면서 비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강국들의 자산가치 상승이 미국보다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미국의 자산가치가 재차 상승하는 거죠. 그리고 버블의 붕괴 역시 같은 순서로 이뤄질 것입니다. 먼저 올랐던 나라가 먼저 꺼지고 미국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끝낼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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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4&amp;gt;버블의 형성과 모순 &amp;lt;/h4&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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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한진&#039;&#039;&#039; 제가 우려하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지난 10년간의 이례적인 초저금리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이러한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행위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미국 경제가 당연히 탄탄한 초호황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더욱이 트럼프의 재정정책이 미국 경기의 보험 역할을 해줄 테니 경기하강 위험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단 말이죠. &lt;br /&gt;
  다시 말해 트럼프 정부는 지금 3% 성장을 확신하고 있고, 투자자들은 구조적인 저금리와 더딘 금리 인상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순입니다. 앞뒤가 안 맞습니다. 둘 중 하나는 틀릴 공산이 크죠. 앞으로 경기가 실망을 주거나 금리가 예상보다 빨리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과거와는 다른 비탄력적인 ‘고용-임금-물가’ 관계라 해도, 또 통화당국이 저금리정책을 계속 고수한다고 해도, 물가와 금리가 경기에 전혀 반응을 안 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일구&#039;&#039;&#039; 경제는 좋아지는데 금리를 안 올리면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죠. 제가 볼 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 채권 시장에서 만기구조가 엄청 장기화됐습니다.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이 노후를 위해서 그 낮은 금리의 비싼 채권을 다 샀어요. 그분들이 이미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여기서 금리가 높아지지 않으면 이분들이 비용을 다 지불하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은퇴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거죠.&lt;br /&gt;
  그래서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이 빨리 금리 올리라고 난리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피해자는 은퇴를 위해 연금을 든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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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에 현지화하려는 회사들 주식을 지금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에는 주가가 좋을 겁니다. 수출도 좋을 거고, 현지화하면 더 잘 팔릴 거라는 장밋빛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완공되고 제품을 출하할 무렵이면 트럼프가 만든 버블이 꺼지는 시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고, 재고는 쌓이고, 약속을 지켜야 하니 고용은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버블 붕괴의 상징적인 모습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에 현지화한 중국, 일본, 타이완 등의 제조업체들이 당할 심각한 후유증입니다. (동)&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시장은 눈을 아홉 개 가진 괴물’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미스터 마켓(&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r. Market&amp;lt;/span&amp;gt;)은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죠. 우리 기업에 트럼프의 정책으로 인한 편익보다 잠재적 비용이 더 크다면 시장은 이를 알게 모르게 반영할 것입니다. 통상마찰, 보호무역, 환율, 외교 안보, 통화정책 괴리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 그리고 남북긴장 비용 등이 그것입니다. 물론 이런 비용들은 단기적인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 발톱을 숨기고 있지만, 시장이 약해질 만할 때 표면으로 부각돼 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그런데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버블이 생겨선 안 됩니다. 2008년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거죠. 제가 버블이 생길 거라고 믿는 이유는 사람은 탐욕과 공포를 반복하기 때문이죠. &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지난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주가나 집값이 조금만 올랐거나 연준이 금리를 좀더 많이 올려놓았다면 이제부터는 좋아질 일만 남았죠. 하지만 시장은 좋은 것은 미리 다 반영했고 부담될 만한 일들은 뒤로 다 미뤄놓은 것 같습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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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3&amp;gt;273~275&amp;lt;/h3&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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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모두 금리를 크게 낮춰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차입자들에게 유리한 경제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들이 돈을 빌려 소비와 투자에 나선 것이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지나치게 낮은 금리가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이자수입에 의존하는 금융 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부작용도 드러났다. 초저금리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올라 자산이 많은 고소득층은 더 부유해졌지만,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저소득층의 삶은 팍팍해졌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미국과 영국 및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저소득층의 성향이 국수주의, 보호주의로 바뀌었다. 이는 영국의 EU 탈퇴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은행과 보험사의 수익성이 현저히 악화되면서 새로운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도 생겨나고 있다. 예금과 대출 사이의 금리차가 줄어들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주가가 폭락했다. 보험사도 금리 하락으로 인해 계약자에게 약속한 보험금과 연금을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대규모 증자를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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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그것을 통해 얻은 것도 일부 있지만 잃은 것이 워낙 커서, 앞으로 2008년과 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이러한 극단적인 통화정책은 사용되지 않을 것 같다. 버냉키의 뒤를 이은 재닛 엘런 FRB 의장도 ‘금리가 지나치게 낮으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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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민주적인 스트롱맨이 세계 주요국에서 동시에 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바로 저성장의 결과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 진행된 중산층의 붕괴와 경제 침체, 예전 독재자들이 다스리던 때만 하더라도 고성장을 구가했고 오히려 양극화가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는 향수가 있다. 절차적인 정당성은 다소 약하더라도 고도성장을 해낼 수 있고 나라의 적폐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리더라면 민주주의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러스트 벨트의 백인 실업자들에게는 그의 기행과 막말도 싫지만 매번 세계평화를 외치고 관념적인 수사에만 갇혀 있는 기존의 워싱턴 정가 출신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좋은 사람도 아니고 도덕적인 사람도 아니지만, 일단 판을 바꿔야 한다는 희구가 그들에게 있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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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4&amp;gt;트럼프에 대한 오해와 진실 &amp;lt;/h4&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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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5&amp;gt;왜 아무도 트럼프 당선을 점치지 못했나? &amp;lt;/h5&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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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lt;br /&gt;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과TV 경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필자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공화, 민주 양당의 예선전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많은 전문가와 인터뷰를 해봤다. 기억하기에, 단 한 명의 전문가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리라고, 더 나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단 한 명, 국내의 언론은 너무 일방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한다고 걱정하는 분이 있었는데 바로 미국 현지의 한인 교포분이었다. 그의 설명은 이런 것이었다.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 가보면 언론에 비친 판세와 전혀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트럼프의 유세장에는 수만 명이 운집하는 데 반해 힐러리의 유세장은 고작해야 수천 명이라고 했다.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가 언론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lt;br /&gt;
&lt;br /&gt;
  그의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단 한 차례도 예외 없이 힐러리가 완승할 거라는 전망을 했고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됐을 때 출구조사마저도 힐러리가 이길 거라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거꾸로 트럼프의 완승이었다. 왜일까? 왜 이런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까? &lt;br /&gt;
&lt;br /&gt;
  나는 언론사의 생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을 가만히 들어보면, 물론 매우 과격한 언급도 간혹 있으나, 그는 항상 미국이 어떻게 변해야 하며 그 변화를 자신이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시종일관 얘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유세장의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에게 무례한 짓도 했고, 야유하는 청중을 끌어내는 상식 밖의 행동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이런 언행은 전체 연설이나 캠페인 과정을 고려하면 그저 극히 일부분이고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신문의 헤드라인은 바로 그 해프닝으로 채워졌고 방송의 브레이크 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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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미국의 주류 언론은 왜 이런 보도 태도를 보일까? 왜 트럼프를 이렇게도 싫어할까? &lt;br /&gt;
&lt;br /&gt;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그들을 싫어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를 활용해 발행부수를 늘리고 시청률을 늘리기 위해서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주류 언론의 보도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중요한 코멘트를 기성 언론이 아닌 트위터를 통해서 하고 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언론이 있을까?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면 점잖게 백악관에 초청하고 인터뷰도 하고 파티도 열어줄 텐데, 이런 거친 이단아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랄까? 언론과 권력의 조화로운 틀을 깨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또 하나,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가? 부동산으로 꽤 큰돈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또는 워런 버핏에 대면 그의 부는 그저 동네 부자 수준이다. 여기에 그가 실제로 부자인지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시각도 많다. 대중이 생각하는 트럼프는 NBC의 리얼리티 쇼 &amp;amp;lt;어프렌티스&amp;amp;gt;에서 “당신 해고야!”를 외치는 우스꽝스러운 방송 스타다. 일종의 셀럽인 것이다. 그에게 익숙한 매체는 &amp;amp;lt;워싱턴포스트&amp;amp;gt;나 &amp;amp;lt;뉴욕타임스&amp;amp;gt;가 아니다. 오히려 타블로이드판 옐로 저널리즘에 가깝다. 셀럽이 주는 화제는 정치적 이념이나 공공에 대한 신념이 아닌 자신들의 생활, 그것도 특이한 행동 즉 가십거리다. 그래야 시청률이 올라가고 신문이 더 잘 팔린다. 미국 주류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가 그런 화제를 뿌리는 셀럽으로 남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본인들을 위해서 말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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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지향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미국에 커넥션을 가진다. 강남과 용산 일부 지역에 가보면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 기득권층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안 보이던 젊은이들이 압구정동과 이태원 길거리를 메운다. 그들은 영어로 통화를 하고 친구들과는 우리말로 대화를 한다. 어딘가 분위기만으로도 방학 맞아 귀국한 유학생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공부를 마치면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엘리트 코스로 편입되고, 그들이 이 나라의 상층부가 된다.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말이다. &lt;br /&gt;
&lt;br /&gt;
  홍미로운 얘기를 하나 해보겠다. 몇 년 전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는 공원이 된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의 초대를 받아 용산 미군기지 부근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필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회장님 좋으시겠네요? 미군기지 나가고 공원이 되면 흡사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되니, 조망권도 좋아지고 또 아침저녁으로 산책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으십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고, 이 친구야. 그렇게 감이 없냐’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이것 봐요, 공원이 뭐가 좋아요. 어차피 운동은 피트니스센터에서 하면 되는 거고, 돈 버느라 바쁜데 공원 갈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북한에 뭔가 낌새가 안 좋으면 미군 부대로 쏙 들어가 바로 헬기 타고 괌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이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가니 나도 따라서 평택으로 이사를 할 수도 없고, 이거 참 난처해요”&lt;br /&gt;
&lt;br /&gt;
  여러분 주변에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의외로 많다. 그들이 왜 한남동, 이태원동에 몰려 사는지 잘 생각해보라. 그들에게 미국 대통령은 단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들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국 대통령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한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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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가 너무 오르면 어찌 되는가? 소득이 늘어나는 것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제대로 된 소비를 하지 못한다. 집을 사려던 사람이라면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저축을 늘려야 한다. 제대로 된 소비가 이뤄지지 않고 왜곡된다. 주가는 비정상적으로 오르고 집값도 천정부지로 뛴다. 버블이다. 중앙은행은 부랴부랴 금리를 올려서 버블을 관리하려고 하겠지만 이미 때는 늦다. 2008년의 상황이 다시 올 것이다.&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나는 트럼프 경제를 한마디로 버블을 만들기 위한 경제라고 정의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연원은 세계화의 산물인 양극화와 중산층 이하 미국 사람들의 가난이다. 트럼프는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경기를 살리려고 한다. 그 결과로 미국 경제는 회복을 넘어 버블 경제가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블은 자산가와 엘리트들의 부를 더 키운다.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버블 이코노미의 초기에서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자산가는 자산가대로 트럼프를 찬양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트럼프가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할 것이다. 이런 배경 위에서 트럼프 임기의 전반부는 표면적으로나마 성장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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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오바마가 만들어놓은 활주로로 비행기를 몰고 가 이륙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대통령이 됐다. 여기에 그는 부동산 개발업자라는 산업, 버블 이코노미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풀려서 떠돌아다니는 막대한 유동성에다 어떤 경제정책이라도 받아낼 수 있는 건강한 경제체력 그리고 고성장을 갈구하는 미국 사람들의 열망이라는 버블 이코노미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거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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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3&amp;gt;341&amp;lt;/h3&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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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고민되는 것은 이러한 반도체 경기가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이어서 고용기여도가 낮으니까요. 4차 산업의 정체성이나 경기 전반에 대한 파급효과 등은 솔직히 아직도 모호합니다. 혁신 기술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좋으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소비자가 적응하고 실제 소비로 연결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무인자동차 기술이 자동차의 안전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지금까지 전혀 없던 자동차 수요를 당장 ‘혁명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생산 분야의 기술혁신도 초기에는 노동력 투입이 감소(예컨대 스마트 공장은 기존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수입을 대체함)하기 때문에 세계 전체로 보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되고 생산성 함정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거죠. (한)&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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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시세는 근심의 벽을 타고 오른다’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근심은 사실 적재적소에서 해야 하는데, 너무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근심과 걱정 또 왜곡된 시각을 갖다 보면 큰 흐름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죠. 요즘의 장세를 보면서 개인투자자들이 그런 입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일구&#039;&#039;&#039; 요즘 여의도는 저녁에 식당가가 썰렁합니다. &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맞습니다. 언론도 책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1분기 경제성장률 잠정치를 보도하는 헤드라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성장률 몇 분기째 0%대’ 이런 식입니다. 사실 0%라는 게 0.1% 있고 0.9%도 있는 거 아닙니까? 1분기 성장률이 0.9%라는 건 최근 들어 가장 좋은 성적이죠. 그런데도 그걸 ‘0%대’라고 써버리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리 경제가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고 생각하겠죠. 그럼 또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안 하려고 하겠죠. 경제를 다루는 언론이나 여론을 조성하는 기관들이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있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한 왜곡도 존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어요.&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376~378&amp;lt;/h3&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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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4&amp;gt;부동산시장의 흐름&amp;lt;/h4&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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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039;&#039;김동환&#039;&#039;&#039; 마지막으로 부동산 얘기를 다뤄봅시다. 어쩌면 가장 관심이 많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가계자산의 70~80%가 부동산이고, 그 부동산 대부분이 거주용이고, 또 대부분이 아파트로 되어 있는 게 우리 자산구성이니까요. 근데 요즘 다들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정부의 정책 기조도 헷갈리고, 금리도 고려해야 하고, 지역별로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죠?&lt;br /&gt;
&lt;br /&gt;
&#039;&#039;&#039;김일구&#039;&#039;&#039; 가장 어려운 시장이 부동산시장일 것 같습니다. 부동산시장은 기본적으로 경기 사이클하고는 무관하고,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도 강합니다. 그리고 사이클이 길어서 약17년을 주기로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합니다. 대체로 가구나 인구구조의 변화, 도시화, 도시로의 인구 이동, 인플레이션이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lt;br /&gt;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경우 GDP가 성장하는 것만큼 집값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이나 이머징 국가들은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려는 압축 성장 전략을 쓰다 보니 몇몇 대도시에 인구가 몰려들어 이들 지역의 집값이 GDP 성장을 능가해 급등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또 인플레이션이 있으면 당연히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부동산투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책으로 최선이라고도하죠. 그리고 금융 완화가 장기화되면 레버리지를 일으켜, 즉 많은 돈을 빌려서 집을 시는 사람들이 많아지죠. 그러면 주택 수요가 갑작스럽게 증가하면서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lt;br /&gt;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없고, 지난 2008년 이후로 지속돼오던 금융 완화를 더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많이 늘어난 가계부채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긴축할 것인가를 놓고 정책적인 고민을 하고 있죠.&lt;br /&gt;
&lt;br /&gt;
&#039;&#039;&#039;김동환&#039;&#039;&#039; 적어도 추가적인 완화를 하는 국면은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 쪽으로의 큰 물줄기가 더 늘어나거나 깊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고요. 김 박사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lt;br /&gt;
&lt;br /&gt;
&#039;&#039;&#039;김한진&#039;&#039;&#039;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거시 관점에서 김 센터장 의견에 동의합니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지금 대출총량이 더 늘어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최근 3~4년간 저금리에 의존한 투자에 한 번쯤 제동이 걸릴 만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lt;br /&gt;
  최근 부동산 경기는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를 특징으로 합니다. 지방 집값 조정은 공급 과잉에 따른 것이고, 수도권 아파트의 가격 상승은 저금리의 역할이 컸는데요. 당장 속도가 느릴 뿐이지 금리는 상승 사이클을 탔습니다. 시중의 과잉 유동성과 전셋값 상승 여파로 일부 주택시장에서 과열이 나타났고, 여기에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려는 투기 수요와 실수요가 겹쳐졌습니다. 하지만 금리 상승과 대출규제, 그리고 이미 공급된 주택물량이 이런 동기를 억누를 것 같습니다.&lt;br /&gt;
  저금리를 자금시장의 파이프에 비유한다면 대출규제는 인위적으로 레버를 잠그는 일과 같습니다. 하지만 어설프게 잠갔다가는 유속이 더 빨라지거나 다른 쪽으로 전이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죠. 주택 관련 정책은 그래서 어렵고 매우 예민한 정책입니다. 주택 가격 역시 장기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대세적으로 강세를 보일 만한 환경은 아닌 듯 합니다. 금리와 정부규제라는 양대 변수에 의해 수급적인 순환 사이클은 만들어가겠지만요. 부동산시장 역시 차별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자산인 듯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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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본위제냐 은본위제냐, 재량적 통화정책이냐 준칙에 따른 통화정책이냐 하는 대립이 돈에 대한 두 갈래 생각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은 은본위제 또는 재량적 통화정책이 주장하는 방식에 따라 돈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을 언제까지고 쓸 수는 없습니다. ‘돈은 엄격하게 관리해야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돈을 마구 풀면 투기가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갉아먹고 사회를 좀먹게 할 것이다’라는 반대파의 주장도 역사적으로 검증된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개선된 2013년부터 미국은 돈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한 버냉키가 직접 양적완화 정책의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아마 유럽과 일본도 2018년에는 양적완화 정책 종료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lt;br /&gt;
  돈을 마구 찍어대니 돈이 흔해지고, 당연히 돈의 값인 금리도 낮아졌습니다. 제로도 부족해서 심지어 마이너스로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통화정책이 방향을 바꾸었으니 돈이 예전보다 귀해질 것이고, 돈의 값인 금리도 올라갈 것입니다. 다만 금리를 너무 빨리 올리면 경제 성장이 다시 멈출 우려가 있어서 아주 천천히, 이것저것 다 확인하면서 천천히 올릴 것입니다. (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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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0대 급여생활자분들은 현재의 생활, 경제 수준에서 탈출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 계신 두 분도 급여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제가 20년 이상 급여생활자로 살아오면서 알게된 사실이 있습니다. 회사는 정확히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정도로만 월급을 준다는 겁니다. 더 많이 주면 회사를 떠나게 되어 있거든요. 물론 삼성 그룹 CEO가 된다든지 하면 몇백억씩 받기는 하겠지만, 그건 나머지 99.9퍼센트를 머물게 하기 위한 거예요. 그렇게 환상을 줘야지 그 조직에 목매고 충성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계속 월급 받는 걸로 적금 들고 생활비 쓰고 연금 들고 하면, 언제까지나 그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로밖에 살 수 없거든요. &lt;br /&gt;
  남보다 더 잘살고 싶으면 김 센터장께서 얘기하신 것처럼 뭔가 변동성을 줘야 해요. 충격이 아닌 건강한 변동성을 줘야 하고, 변동성을 즐기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공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주식 시장 2400포인트 넘었다고 10년 동안 애지중지하던 적금 해약해서, 듣도 보도 못 한 주식 추천받아 덜컥 사놓고, 주가 빠졌다고 술 드시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 &lt;br /&gt;
  그러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습니다. 자본소득을 만들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어요. 기본적으로 급여 생활자든 자영업자든 일정 부분은 자산배분을 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동)&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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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 주식투자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런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절대로 처음에 투자한 금액을 늘리지 마십시오. ‘이건 물타기 하라고 하늘이 주신 기회야!’라는 생각이 들어도 절대로 금액을 늘리지 마십시오. 금액을 늘리다가 손실을 보면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1년째 되는 날 곰곰이 따져보십시오. 자신이 주식투자에 자질이 있는지 따져보고, 투자 금액을 늘릴지 결정하십시오.&lt;br /&gt;
  주식투자를 하면 삶에 변동성이 생기게 됩니다. 주가가 오르면 들뜨고, 주가가 내려가면 의기소침해집니다. 이러한 변동성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합리적인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돈벌 욕심에 갑자기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 그로 인한 변동성에 휘둘리게 되고, 그러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집니다.&lt;br /&gt;
  처음에 투자한 금액을 1년간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새롭게 생긴 변동성을 잘 관리하는 훈련을 쌓아가면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봅니다. (일)&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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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lt;br /&gt;
  지친 일상과 반복되는 삶의 여정이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한번쯤 생각해 보시라. 퇴근길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어”, “그때 그 주식만 안 팔았더라도···”라는 말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안주거리로 삼고 있는지 말이다. &lt;br /&gt;
&lt;br /&gt;
  부자가 되는 일은 이런 체념 섞인 후회를 “그때 사길 정말 다행 이야” 혹은 “그때 그 친구 말을 안 듣길 정말 잘 했어” 이런 자랑거리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번 우리의 결정을 후회하고 또 그것을 반복하는가? &lt;br /&gt;
&lt;br /&gt;
  먼저 세상이 나를 배제하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바꾸기를 권한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하고 있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종속적 객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만들고 또 그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는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투자 세계의 승자가 되는 출발점이다.&lt;br /&gt;
&lt;br /&gt;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고 낙관론자는 돈을 번다”라는 격언이 있다. 거의 매일 세상과 시장에 대한 관을 놓고 토론과 논쟁을 하는 입장에서 참 공감이 가는 말이다, 우리들의 투자는 토론의 승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고 현실적인 부를 만들기 위함이다. &lt;br /&gt;
&lt;br /&gt;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부자가 되는 건지 부자가 되더니 낙관론자가 된 건지 따지기에 앞서 적어도 “나만 사면 빠진다, 내가 팔면 비로소 올라간다”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극단적인 비관론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세상의 잡다한 소음에 반응하지 않고 본인의 인생에 점철된 합리적 의사 결정이 그르지 않았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실패를 피하는 노력 대신 성취를 위한 연습을 해야 한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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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www.notion.so/26fadd454fa742c7a7cccd812dfe169d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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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9 메트릭 스튜디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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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문병로 교수의 메트릭 스튜디오     &lt;br /&gt;
문병로 (지은이)김영사2014-03-07&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7~3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돈이 많을수록 증식되는 속도가 빠르다?&#039;&#039;&#039; &lt;br /&gt;
&lt;br /&gt;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한다. 같은 대상에 같은 액수를 투자해도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버는 반면 빠듯한 사람은 잃는 일이 발생한다. 증권 계좌 잔고의 100%를 주식에 투자한 사람은 잔고가 점점 줄어드는 데, 똑같은 종목으로 같은 시간에 매매해도, 잔고의 50%만 투자한 사람은 잔고가 늘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현상 중의 하나다. 돈의 흐름은 누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리적으로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상해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엄밀한 수리적 근거가 있다.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lt;br /&gt;
 매달 60% 상승하거나 40% 하락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주식이 있고, 상승과 하락 확률은 반반이라고 하자. +60%와 40%를 산술 평균하면 10% 이익이다. 언뜻 생각하면 매달 평균 10%씩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자신이 가진 전부를 투자한다면 이 사람은 월평균 2%씩 잃는다. 항상 자신이 가진 재산의 반만 투자한다면 이 사람은 장기적으로 월평균 2%씩 수익을 낸다. 시간이 흘러 재산이 1000만원이었던 사람은 36개월이 지나면 잔고가 480만원으로 줄어든다. 재산이 2000만원이었던 사람은 36개월 후 잔고가 4080만원으로 불어난다. &lt;br /&gt;
&lt;br /&gt;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것도 산술 평균과 기하 평균의 차이 때문이다. 위험 관리, 변동성 관리와 상관이 있는데 이는 5장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게 될 것이다. 5장에서는 샤논, 켈리 같은 천재들이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명하고,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 주제를 가능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볼 것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5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케인스는 동물적 낙관주의에 근거한 비합리적 행동이 경기 순환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았다. 즉,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이 기껏 동물적 느낌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군중의 동물적 비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인지안 경제 이론으로 연결된다.(우습게도 많은 정부들이 시장보다 더 심한 동물적 기상에 의지하여 정책 결정을 함으로써 나라를 더 말아먹는다. 우리나라 여러 지방 정부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군중의 비 합리성에 대한 탁월한 담론을 듣고 싶으면 애커로프와 쉴러가 쓴 《야성적 충동&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nimal Spirits&amp;lt;/span&amp;gt;》&amp;lt;ref&amp;gt;A. Akerlof and R. Shiller, Animal Spirits, Princeton Univ. Press, 2009.(《야성적 충동》, 김태훈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amp;lt;/ref&amp;gt;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쉴러는 2013년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lt;br /&gt;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거기다가 감정적인 가중치까지 더해지니 감정 없이 투자하는 기계에 비해 많이 불리하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좋은 수익을 내려면 감정적 가중치에 의해 결론이 왜곡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모델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주 단순한 모델로 시간의 횡포를 견디며 투자하는 것이 그나마 시장 수익률을 이길 수 있는 현명한 길이다. 복잡한 모델로 승부하려면 방대한 탐색 능력을 가진 컴퓨터 알고리즘을 당해 낼 수 없으니 단순하게 가는 것이 좋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이런 특성으로 인해 주식 시장의 단기적 움직임은 예측하기가 힘든 반면, 장기적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장기적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도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고 노이즈가 산재해 있어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데이터 처리 능력이 제한된 개인이 이런 일을 하려면 인자의 수를 대폭 줄이고 모델을 최대한 간명하게 하면 장기적으로 유의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한 예는 PBR이 1 미만이고, PER이 7 미만인 주식을 20개 사서 1년을 기다린다는 식의 모델이다. 이런 장난감 같은 모델만으로도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너끈하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정말 개인 투자자가 이런 방법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90%는 못 얻는다. 안 되기 때문이 아니고, 못 기다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1년 동안 온갖 일이 다 일어난다. 장기적 움직임에 대한 지식과 확신, 훈련된 행동 양식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좋은 선택을 해 놓고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2장에서 좀 더 소개하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만 살짝 들여다보자. &lt;br /&gt;
 지난 2000년부터 12년간의 우리나라 모든 상장 주식을 조사해 보면, 임의의 주식을 매입하고 1년 기간 내에 30% 이상 상승을 경험할 확률은 2/3다. 3분의 2가 30% 이상 상승을 경험한다고 하니 1년을 견디기는 쉬울 것 같지만 이 중 절반이 23% 이상의 하락 경험을 하게 된다(30% 상승과 같은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하락은 23%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런 단기적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다. 하락하면 불안해서 처분하고, 상승하면 도로 돌아갈까 봐 처분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섀넌이 주식 투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섀넌은 많은 주식 관련 노트를 남겼고 실제로도 성공한 투자자였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달리 노이즈가 많은 주식 시장이기에 그 속에서 정보의 본류를 찾는 정보 이론의 창시자인 섀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관심의 확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모르면 과학자 섀넌과 주식 연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지인들에게 왜 컴퓨터 공학자가 ‘엉뚱하게’ 투자 공학을 연구하냐는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섀넌의 이야기로 설명을 대신한다. &lt;br /&gt;
 섀넌은 동전을 던져서 2배를 받거나 반을 돌려받는 게임에서의 배팅 금액을 결정하는 균형 복원 포트폴리오라는 간단한 운용 전략이 수백 회 반복되면 잔고가 수백만 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 전략의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일반화한 것이 같은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켈리인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켈리 베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궁극적으로 기하 평균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기하 평균은 대략 ‘장기 복리 수익’과 비슷한 의미라 생각하면 된다. 5장에서 이와 관계된 내용이 소개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7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피카소 작품의 진화를 보면서도 공학의 창의적 프로세스를 연관시킬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절박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은유적 연관성을 발견할 때가 많다. 고등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긴장도가 높은 은유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lt;br /&gt;
 같은 현상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자신의 머릿속에 형성된 지적 기본 빌딩 블록들이 어떤 수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물에 대해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들은 단지 우리 의식의 내부 구조들의 표상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새로이 만들 수 있는 산출물은 자신이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지적 빌딩 블록들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1단계의 추상화 수준에 있는 사람과 10단계의 추상화 수준에 있는 사람은 애초에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통할 수도 없다. 투자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고 15분이 지나면 그가 가진 추상화 레벨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단계 이상 차이나면 대화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다양한 상황에 대해 이런 수치적 결론을 여럿 갖고 있는 선수와 대충 느낌으로 하는 선수는 상대가 되겠는가? 시중에서 제법 한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계량적 기준이 없으면,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봉이다. 포커의 고수는 상대가 베팅하는 모양과 결과를 몇 판만 보면 당장 자신의 적수인지 봉인지를 안다. 버튼 맥키엘이 포커 판의 격언을 하나 소개했다. “포커 판에서 누가 봉인지 모르겠거든 당장 자리를 뜨도록 하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다시 한 번 포커 판의 속담을 상기하자. “포커 판에서 누가 봉인지 알 수 없다면 자리를 뜨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봉들로 인해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면 시장을 뜨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039;&#039;&#039;주식을 사고 나면 1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039;&#039;&#039; &lt;br /&gt;
&lt;br /&gt;
 겨울이 왔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없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올 확률이 100%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해서, 손실을 포함한 모든 것이 확률적 전개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편한 잠을 청할 수 있다.&lt;br /&gt;
 주식을 1년 동안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는 정말 드물다. 평균적인 투자자에게 1년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워런 버핏 같은 사람에게는 1년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일반적인 주식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일들을 알고 있다면 1년간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비교적 느긋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강한 확신이 있으면 시간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8~13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주가는 장기적으로 합리적이다.&#039;&#039;&#039; &lt;br /&gt;
&lt;br /&gt;
주식 시장에 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견고한 확률로 작동하는 불변의 법칙! 다행히 주식 시장에 불변의 법칙에 가까운 것들이 존재한다. 단, 장기적 관점으로 시장을 볼 때만 그렇다.&lt;br /&gt;
&lt;br /&gt;
&#039;&#039;&#039;주가와 장부 가치의 동행&#039;&#039;&#039;&lt;br /&gt;
&lt;br /&gt;
 2000년부터 2013년까지의 한국 주식 시장이 보인 강한 패턴 중 하나는 순자산의 증가와 주가 지수의 장기적 동행이다. 주가 지수의 증가율이 순자산 증가율을 못 따라가면 이어 주식 시장이 상승하고, 그 반대면 조만간 하락한다. 그림 22는 자본 총계(순자산과 거의 같다)와 지수의 흐름을 비교해 본 것이다. 분기별로 표시했는데, 시작은 2000년 1분기 말이고 끝은 2013년 3분기 말이다. 나의 팀에서 우리나라 상장 기업 전체의 자본 총계 변화를 종합지수 산정과 같은 방식으로 지수화하여 계산했는데 이를 ‘자본 총계 지수’라 하자. 주가 지수는 KOSPI와 KOSDAQ 상장 기업을 모두 포함하는 매경-FnGuide 지수인 MKF2000을 사용하였다. 두 지수의 상대적 흐름을 보기 위해 시작 시점의 자본 총계 지수를 100으로 놓고 MKF2000을 자본 총계 지수의 회귀선에 맞추었다.&lt;br /&gt;
[[image:metric139.png]]&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7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이런 가설이 매년 만족되는 것은 아니다. 연도별 수익률은 들쑥날쑥하다. 10년 이상의 데이터를 놓고 보면 아주 강력하게 만족된다. 장기적인 호흡을 갖지 못한 투자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도 투자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주, 1개월, 3개월의 수익에 일희일비한다면 몇 년이라는 시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사실,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건강하다. 기다리지 못하면 알고도 수익을 낼 수 없다. 기다릴 수 있는 힘은 확신의 크기에 비례한다. 2008년 외환 위기 때나, 2011년 3월의 일본 대지진, 2011년 8월의 폭락장 같은 시기에 느긋하게 장을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강한 확신은 공부와 성공적인 경험의 누적으로만 가질 수 있다. &lt;br /&gt;
[[image:metric171.png]]&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9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주가는 정규 분포가 아니다. 블린저밴드의 통계적 약점을 보완하면 더 유용해지는가?&#039;&#039;&#039;&lt;br /&gt;
 볼린저밴드는 통계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큰 약점이 있다. 볼린저밴드는 최근 종가들의 평균과 표준 편차를 사용한다. 이것은 정규분포를 가정한 것인데 주가는 사실 정규 분포가 아니다. 복잡한 논의는 제쳐 두고, 주가에 로그를 씌우면 주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정규 분포에 훨씬 가까워진다.(로그를 씌운 다음 만들어지는 정규 분포를 로그 정규 분포라 한다.) 그래서 로그를 씌운 주가의 평균과 표준 편차를 구해서 이로부터 밴드를 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더 합리적이다. 이렇게 밴드를 구해서 다시 추가로 환원해 그리면 평균을 중심으로 위쪽 밴드가 아래쪽 밴드보다 넓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볼린저밴드를 바꾸어서 상단 돌파의 예후를 보아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볼린저밴드가 정규 분포 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로그 볼린저밴드가 더 합당하지만 조사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이럴 때 투자 공학자는 시장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더 합리적이지만 시장의 역사가 지원하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0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이러한 하나의 조정 구간에는 다양한 수익과 손실을 본 사람들이 혼재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대표하는 심리는 있을 수 없고 다양한 군상들의 집단 심리가 통계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양한 군상은 다양한 노이즈를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 속했을 때 역사적 추이를 아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이 역사적 데이터로 볼 때 확률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lt;br /&gt;
 주식 시장의 흐름엔 군데군데 이런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 운 좋게 위에서 처분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고통의 기간을 견디거나 참지 못하고 처분하게 된다. 고점 근처에서 팔고 조정의 바닥 근처에서 다시 사는 것이 좋을 듯하지만 그것은 극히 운이 좋아야 한다. 고점을 맞춘다거나 저점을 맞추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들 하는데 말이 쉽지 이것조차도 만만치 않다.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판다고 해 보았는데, 지나고 보니 무릎인 줄 알았던 것은 어깨였고, 어깨인 줄 알았던 것은 무릎이었던 경우가 흔하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이런 것을 기가 막히게 아는 도사가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경험으로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 특히 매도는 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들이 주로 시장에 머무르면서 손해 볼 때는 보고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전략을 취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8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섀년의 천재성에 경외감을 표한 권위자들은 수없이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amp;lt;ref&amp;gt;W. Poundstone, Fortunes Formula: The Untold Story of the Scientific Betting System That Beat the Casinos and Wall Street, Brockman, 2006.(〈머니 사이언스〉, 김현구 역, 도서출판 소소, 2006)&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그것은 단 한 사람이 그 영역을 구축하고 모든 적절한 질문을 제기했을 뿐 아니라. 그 질문의 대부분을 증명하고, 단번에 그 모든 것에 대해 답을 내린, 역사상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다. — 토비 버거 &lt;br /&gt;
&lt;br /&gt;
 어떤 사람은 섀넌을 아인슈타인에 비교하는 것은 섀넌에게 억울한 일이라고 한다. — 윌리엄 파운드스톤&lt;br /&gt;
&lt;br /&gt;
 디지털 시대에 섀넌의 업적을 말해 보라고 하는 것은 알파벳의 발명자가 문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얘기해 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솔로몬 골롬&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0906_%EC%9D%BC%EB%B2%A0%EC%9D%98_%EC%82%AC%EC%83%81&amp;diff=16371</id>
		<title>0906 일베의 사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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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lt;br /&gt;
박원익 (지은이)오월의봄2013-10-30&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그리고 무엇보디 정당이 구축해놓은 도덕적인 프레임이 유권자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상 단순히 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보수정치에 대할 수 없다. 이를테면 사회보장 정책이 가족을 해체시키고 나태함을 만연하게 하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뒤흔든다는 프레임이 사람들에게 한 번 확립되고 나면, 사회의 불안정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대기업과 자본의 냉혹한 탐욕이라는 진상을 아무리 알려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보수적인 프레임 자체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이야기해도 결국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보수파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이 역으로 그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복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치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도덕적 프레임을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13&amp;lt;/h3&amp;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젊은 우익들의 집단행동&#039;&#039;&#039; &lt;br /&gt;
우선 일베 유저들은 과거의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달리 길거리에 나서거나 시위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존재의의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그보다 더 은밀하고 교활하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2002년과 2008년 때처럼 시위용 플래카드를 들고서 길거리 인증샷을 찍는 대신 정치인들과 시위대를 희화화하는 짤방과 콘텐츠를 생산해낸다. 거기서 촛불시위대는 촛불좀비로, 전라도는 홍어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김치녀로 희화화된다. 그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논증을 펼치기보다는 과거의 행적과 발언에서 논리적인 모순점들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그들을 ‘저격’한다. 보수정권의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이 논란이 되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집권 시절 강경 진압 사진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들은 문제가 되는 인물과 단체를 찾아가 항의와 농성을 벌이는 대신 그들의 신상을 털며 학력과 외모 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그들은 거리와 학교 그리고 공장에서 자신의 ‘대의’를 선전하는 대신 진보정치를 희화화하거나 비웃는 자신들의 ‘은어’와 ‘유머 코드’를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일상 속에서 확산시킨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더 이상 국가로부터 결정적인 변화나 개혁을 기대하지 않는다. 국가는 안보와 외교를 잘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안보에 기반을 두고 대외적인 국격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과거 진보정권들에 의해 부정당했던 국가의 기본 목적이자 존재이유다. &lt;br /&gt;
 일베는 ‘인터넷 공론장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ternet as a public sphere&amp;lt;/span&amp;gt;’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담론들을 무력화시켜버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베에서 표출되는 젊은 우익들의 집단행동은 이전의 선례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론장이라는 용어는 인터넷에서의 의견 교환과 집단행동을 이른바 시민사회에서 행해지는 의사소통 행위, 즉 공적인 숙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eliberation&amp;lt;/span&amp;gt;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에 기초해 있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이란 현실의 공론장이 지닌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2의 시민사회 같은 것이 된다. 그러나 일베는 본질적으로 유머 사이트이기 때문에 공론장을 성립시키는 합리적인 논증과 토론, 시민적 윤리, 혹은 그것에 대한 규범적 요청 같은 것이 없다.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유머감각이 결여된 씹선비질’이라며 격하하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물리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토론이나 논증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단번에 희화화하고 규정짓는 유머감각이다. &lt;br /&gt;
 그러나 일베에서 공론장에 필요한 규범과 정당화 기제가 거부된다고 해서 그 유저들이 비이성적이거나 불합리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러한 것은 그들의 인터넷 문화에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일베 유저들의 집단적 행동양식은 오히려 과거의 진보적인 논객들에게 시대를 앞선 것으로 칭찬받은 인터넷 환경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공론장의 합리성과 시민 의식 같은 윤리적 규범을 타인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고서도 서로 재미를 추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베는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존재이며, 역설적이게도 촛불시위 때 구현되었던 네트워크 연대와 교류 방식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터넷 환경의 변화는 비단 일베만의 특성이 아니다. 과거의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나 카페, 클럽에서 통용되었던 공론장의 규범이 오늘날에는 쇠퇴했다. 긴 글은 세 줄 요약으로 대체되고, 상황에 대한 분석보다는 상황을 한눈에 요약하는 사진이나 짤방이 각광을 받으며,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보 같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더 좋은 인정 방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은 더 이상 시민적 이성을 구현할 ‘논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베에서는 이러한 인터넷 논객들의 비판이 아무런 매력도 권위도 갖지 않는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1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앞서 보았듯이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이 있다. 그리고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적 의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컬트문화로 그치지 않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상적 입장이 아이러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잔혹한 유머 역시도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외면적인 진지함을 경멸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내적인 진지함과 인정욕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일본의 극우파들도 그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단지 농담으로밖에 볼 수 없는 과격한 언행과 행동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후에 감춰진 일베의 무의식적인 사상을 재구성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또 다른 사상적인 분석틀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9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그렇다고 해서 과연 당시의 디시인사이드가 진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당시 인터넷의 정치적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것은 진보나 좌파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반한나라당 정서에 더 가까웠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혐오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거대 보수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구꼴통’, 친일독재 정당쯤으로 인식되고 비난당했다. &lt;br /&gt;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 문화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어떤 명확한 가치나 이념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혐오와 안티 정서가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정치적 분위기에 푹 빠졌던 사람들은 당시의 반미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인 외교,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훔쳐간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 장갑차에 여중생들이 깔려 숨진 사건에 미국이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가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 오늘날 반북 정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02~108&amp;lt;/h3&amp;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자유로운 욕망의 주체인 나 자신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나아가 그 욕망을 몸소 실현해주길 바라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예전에 미국이라는 존재가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면 오늘날에는 그것이 북한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 천안함 침몰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민족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어떠한 정치세력도 이러한 감정의 상처를 우회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면서까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현실을 북한 정권(과 그들을 비호하는 종북 세력) 탓으로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반북 정서는 각자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했던 과거의 반공주의 이념과 다르다. 젊은이들의 반북 의식은 이미 스스로를 상호 평등한 욕망의 주체로 인식하는 문화와 정서에서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북한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며 대결 구도를 불사하는 것이 곧바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묘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제적/정치적 보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2002년 당시 네티즌들의 ‘자신감’과 닮아 있다. 과거에 한미동맹 관계가 흔들리면 군사적/정치적 지원이 끊길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보수언론이 찌질한 존재였다면 현재는 북한과의 대결이 냉전의 고착화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겁을 먹는 진보진영이 오히려 찌질한 것으로 여겨진다. &lt;br /&gt;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정치적 풍경은 2002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감정적인 전이 대상이 옮겨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상국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국가란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 반대급부로 (과거에 ‘딴나라 당’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노완용’(노무현), ‘핵대중’(김대중), ‘촛불좀비’가 유행하고 있다. 정상국가의 실현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안티 정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터넷을 관통하는 문화적/정치적 코드이다. 국가와 인터넷 간의 이러한 상상적인 관계(정상국가에 대한 열망)는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오늘날에는 북한도 상상적인 인정투쟁의 상대가 되어버린다. 오늘날 네티즌들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쓸 때 ‘김정은 보고 있냐’라는 투로 일관한다. 실제로는 보고 있을 리 없는데 마치 인터넷 논쟁 상대를 대하듯이 북한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며 기분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2002년 우리도 이처럼 부시 전 대통령과 안톤 오노를 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우리는 길거리에서 “부시야, 부시야, X라이 부시야”로 시작하는 유행가를 불렀다. &lt;br /&gt;
&lt;br /&gt;
&#039;&#039;&#039;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끼친 영향 &#039;&#039;&#039;&lt;br /&gt;
&lt;br /&gt;
여하튼 200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노무현에 대한 집단적인 감정 전이는 정상국가의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 전이(안티 정서)에 힘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무현에 대한 추종 분위기가 거세어지면 거세어질수록 노무현에 대한 ‘안티 정서’도 자라났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노빠’라는 노무현 팬덤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이 확산되었다. 인터넷상에는 “빠(팬덤)는 까(안티)를 양성한다”라는 오랜 말이 있는데 실제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고 난 이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광범위한 팬덤 현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대한 지지가 급속하게 사그라진 것이다. &lt;br /&gt;
 무엇보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추진, 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노무현도 대통령이 된 이상 별수 없이 현실 정치와 국가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국가, 현실의 대통령에게 불가능한 이상을 제멋대로 한 개인에게 투사했기 때문에 종국에는 ‘이건 내가 아는 노무현이 아니야’라며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이상과 어긋나게 행동했지만 여전히 지속되었던 그의 톡톡 튀는 화법과 돌발행동은 이러한 실망감을 이내 짜증과 환멸로 뒤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lt;br /&gt;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욕망을 ‘무대화’할 수 있는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안티 정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감정 전이의 대상이 시대와 정세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근래에 들어서 노무현/김대중에 대한 고인드립이 난무하게 되었다고 인터넷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만일 인터넷에 문제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애초에 인터넷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한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수직적인 위계 질서가 아닌 상호 평등한 네트워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보에 더 친화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수평적이고 네트워크적인 연대에 기반을 둔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lt;br /&gt;
[[image:roh_jjal.png]]&lt;br /&gt;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의 분위기가 결코 ‘진보적’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유력한 증거는 바로 인터넷이 초창기 때부터 반여성주의, 반외국인 정서를 담아냈다는 데 있다. 가령 디시인사이드, 다음 아고라, 웃긴대학과 같은 주요 커뮤니티들에서도 군가산점제 폐지(2000)와 성매매특별법(2004) 그리고 호주제 폐지(2005) 같은 의제들은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여성주의적 의제가 전혀 인터넷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이 남성중심적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기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군필자 남성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안티 정서가 인터넷상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이른바 ‘노빠’라고 불리는 집단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표출되었다. 한나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했던 지역에 대한 지역 비하 발언 역시 과거에 존재했다. 가령 대구는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시티에 비유되어 ‘고담대구’로 표현되었고 범죄로 가득 찬 낙후된 도시로 묘사되곤 했다. 2004년 지율스님이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는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과 같은 지역적/생태적 이슈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lt;br /&gt;
 반대로 노무현 집권기의 이라크 파병 문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대외적 지위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은 한국 사회의 지역적, 생태적, 여성주의적, 다문화적 가치들을 담아낼 만큼 ‘진보적’이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런 가치들은 현실의 국가도 이상 속의 국가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진보적 가치들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속에서, 이를테면 지역사회, 성소수자 커뮤니티, 협동 조합, 노조, 진보적 학생서클에서 지속적으로 지지받아야 한다. 정치인이 정책을 대신 실현해줄 수 있어도 그/녀가 그 ‘이상’을 대리해줄 수 없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강행하고, 노동법을 개악하고,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실망한 사람들은 그보다 한 술 더 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비극을 낳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 급속한 심리적 환멸과 실망이 사람들을 차악이 아닌 최악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lt;br /&gt;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에서 얼마나 실망하든, 옳은 것을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꾸준히 외쳐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환경단체에 가입해서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꾸준히 문제의식을 느껴온 사람들은 현실의 정치인에 대해 아무리 실망을 해도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주변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함께 작게라도 행동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무언가 막연한 정의감에 북받쳐 인터넷에 시시비비를 논해온 쪽이 오히려 쉽게 절망하고 전향하는 것이다. &lt;br /&gt;
[[image:Ilbe_jungeun.png]]&lt;br /&gt;
 앞으로도 보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없이는 현실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할 수 없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적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국가를 향한 강박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진보는 보수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서 유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국가는 그러한 네티즌들의 이상을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진보적 네티즌들이 추종했던 노무현 정권도 그랬고, 최근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적 네티즌들이 추종하는 국정원도 마찬가지였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0~115&amp;lt;/h3&amp;gt;&lt;br /&gt;
&amp;lt;h3&amp;gt;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일베의 은어와 혐오 문화&#039;&#039;&#039; &lt;br /&gt;
일베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그 안에서 유행하는 독특한 은어와 말투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넷의 유행어들은 상당수가 비꼬거나 조롱하는 대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베의 유행어들을 보면 그들 중 상당수가 지역에 대한 비하, 여성에 대한 비하, 진보적 시민에 대한 비하, 정치인에 대한 비하로 이루어져 있다.&lt;br /&gt;
 우선 일베에서는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해왔던 호남지역에 대한 반감이 두드러진다. 전라도는 라도, 전라디언, 홍어, 심지어 ‘7시 방향’으로 불리고 있다. ‘7시 방향’이란 스타크래프트라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빗댄 표현인데, 게임맵상에서 보면 전라도가 7시 방향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까보칠과, 알보전과 같은 모욕적인 표현이 있다. 알보전은 ‘알고 보니 전라도’, 까보칠은 ‘까보니까 일곱시 방향’이라는 뜻인데, 과격한 진보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하나같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몇 시 방향’이라는 표현 자체가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상대편 기지로 러시(공격)를 가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전라도는 말하자면 정복 혹은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라도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된 이유, 그리고 호남과 영남이 지역 갈등을 빚게 된 역사적 배경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또한 전라도 사람들을 수식하는 말로서 ‘통수’(전라도인들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속설을 반영한 말), ‘오오미’(‘오메~’라는 전라도식 감탄사를 뒤튼 말), ‘~랑께’등이 있다. 가령 “오오미~ 라도는 역시 통수가 갑이랑께”. 또한 상대편에 대한 동의를 가장하면서 상대의 이중 잣대와 위선을 비꼴 때 ‘암 그라제잉’과 같은 전라도 방언을 흉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암 그라제잉, MB정부가 하면 민간인 사찰이고,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하는 건 정의랑께”등이다. &lt;br /&gt;
 진보적 시민들은 일베에서 대개 ‘촛불좀비’, ‘좌빨’, ‘좌좀’등의 이미지로 희화화된다. 이들은 짤방이나 정치적인 비하 발언 속에서 의식 있는 척하지만 실은 머리가 비어 있거나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아무 생각 없이 휘둘리는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표상되곤 한다. ‘알보칠’이나 ‘까보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지역 출신이 때로는 ‘신상털이’의 대상이 되기 한다. &lt;br /&gt;
 무엇보다 일베에서는 진보적 시민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관용적으로 비꼬아 표현하는 말들이 유행한다. 가령 노무현은 ‘놈현’, ‘운지’, ‘노완용’, ‘노알라’ 등으로 표현되고 김대중은 ‘슨상님’, ‘핵펭귄’(다리가 불편했던 그의 장애를 조롱하는 표현), ‘다이쥬’(김대중이 창씨 개명한 이름) 등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정치 풍자 짤방에서 예외 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비굴한 행동을 하거나 은연중에 북한의 김부자 정권에게 동조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특히 노무현과 김대중을 조롱하는 일상적인 유행어 중에 ‘앙망하옵니다’와 ‘~하盧’ 등이 있다. ‘앙망하다’는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의고적 표현인데, 과거 김대중이 군사정권하에서 수감되었을 때 옥중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면을 부탁하는 편지에서 사용한 단어다. 일베 이용자들은 이것을 빗대어 다른 유저들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앙망한다”는 표현을 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희귀한 연예인들의 노출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거기에 대고 댓글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고 “앙망합니다”를 다는 식이다. 정치적 탄압 앞에 목숨을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 드러난 서글픈 인간적 단면이 웃음거리의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은연중에 조롱하기 위한 의도로 ‘~하盧’의 노를 구태여 노무현의 성으로 표현하거나 ‘전 노무현 고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단어를 뒤바꿔서 희화화하기도 한다. &lt;br /&gt;
 무엇보다 일베 게시물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젊은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가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베인들은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 ‘김치녀’, ‘김치년’이라고 부른다. 물론 한국인을 통틀어 김치녀, 김치맨 등과 같은 단어로 비하하는 것은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일상적이다. 하지만 일베에서 김치녀는 한층 더 부정적인 용례로 사용된다. 그녀들은 대개 허영심이 많고 물질적으로 남성을 이용하려 하면서도 매사에 피해 의식을 갖는 위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소위 ‘김치년’은 독립심 강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외국 여성들과 종종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일베인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꽃뱀질은 김치년 종특(종족 특성)”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은어들을 조합해서 표현한다. 이러한 반여성주의적 감수성은 여성을 비하하는 수많은 하위주체 개념들을 파생시켰는데, 가령 남성을 물질적으로 이용하는 여성은 ‘보슬아치’(벼슬아치라는 단어에 여성의 성기를 빗댄 것)라고 불린다. 물론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은 현실 어디에나 있다. 필자가 즐겨 다니는 (오타쿠 성향의) 루리웹 유머 게시판에도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서 김치녀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루리웹을 포함해서 다수 커뮤니티에서 김치녀 운운하는 것이 농담 수준을 넘어서면 “그러는 너의 자매나 어머니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도 김치녀 아니냐”는 반격(?)이 들어온다. 반면 일베에서 이러한 반여성적 경향에 대한 자정 작용 같은 것은 없다. &lt;br /&gt;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베 게시판에서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게시물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밝힐 때 일베 유저들이 “김치녀 벤(접속차단)” 혹은 “김치녀 OUT”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amp;lt;ref&amp;gt;게시판에서 자신의 얼굴이나 몸을 인증한 여성 유저를 중심으로 게시판 내 친목 카르텔이 형성되었던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경향에 대한 반발감으로 이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amp;lt;/ref&amp;gt; 애초에 여성이라는 것을 밝혀봤자 아무런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혐오가 극에 달한 일부 유저들은 여성을 ‘삼일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다소 충격적이지만,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의 준말이다. 이밖에도 일베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빗댄 ‘봇물 터진다’, ‘부왘’ 등의 여성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 유저들이 현실에서도 노골적인 여성 혐오자이거나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베의 ‘고민 게시판’을 들어가보면 여느 남초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이성교제에 대한 고민상담이 올라오기도 한다. 일베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이를테면 ‘주먹’ 같은 유행어에 극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활자상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아무리 소위 김치녀라 해도 ‘주면 먹는다’는 식이다. 일베의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초 사이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혐오 성향 내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이가 있다. 일베의 경우 “우리는 여성들의 위선과 가식에 관해서 완전히 계몽되어 있다”는 태도를 더욱 공공연하게 과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시적인 태도가 여성을 공공연히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발언을 부추기는 것이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13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러한 혐오 문화가 일베에서 시작되지는 않았다. 인터넷의 혐오 문화, 타인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능력의 과시 등은 오히려 진보적인 인터넷 논객 쪽에서 시작되었다. 일베의 새로움은 그러한 혐오 문화를 집단적인 문화, 집단적인 권리로 공유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일베는 일종의 인터넷의 민주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6~14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팩트 위주의 사회&#039;&#039;&#039; &lt;br /&gt;
&lt;br /&gt;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일베 유저들이 일베 바깥의 사회와 소통하는 데서 사용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그들은 우선 재미를 내세우며 그들의 은어와 특유의 화법을 현실과 가상세계의 커뮤니티에 확산시킨다. 가령 ‘오오미’라는 감탄사라든가, 자살을 포함해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하는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운지’와 같은 용어들은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별 생각 없이 일상 속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 일베가 내세우는 것은 ‘재미’라는 코드다. ‘좌좀’, ‘운지’, ‘노알라’ 라는 용어를 퍼뜨리면서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너희도 ‘쥐박이’, ‘닭그네’, ‘수꼴’과 같은 용어를 쓰며 상대를 풍자하지 않느냐? 우리의 행위를 어디까지나 재미로 받아들여라.” 이러한 일베의 메시지는 정치를 ‘재미’와 ‘즉흥성’ 이라는 코드로 사고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lt;br /&gt;
 무엇보다 그들은 현실의 공론장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나 혐오 문화를 단도직입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 주장이 지닌 논리적인 허점이나 공백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서 일베 유저들이 일베 바깥에서 행동하는 방식은 일베 안에서 하는 행동과 전혀 다르다. 일베 유저들이 다른 이들과의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른바 ‘팩트’다. 상대방의 주장이 근거를 두고 있는 팩트 중 무언가 하나라도 틀렸다면, “거봐, 너희들은 항상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나 일면적인 진실만을 가지고 감성팔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해온 것이 아니냐?”며 몰아붙이는 식이다.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노정태라는 한 진보 논객은 어떤 주장이 담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관보다는 그것이 기반을 두고 있는 팩트를 중요시하는 해태를 일컬어 ‘팩트 골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파편적인 정보를 종합해서, 통일적인 인식을 구성하거든요. 하지만 팩트 골룸 여러분께는 바로 그 종합적 기능이 대단히 부족해요.”&amp;lt;ref&amp;gt;노정태, 〈팩트 골룸 여러분들에게〉 (http://basil83.egloos.com/4905765) &amp;lt;/ref&amp;gt; 이러한 발언은 인터넷 블로그상에서 이른바 팩트 골룸 논란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지금의 인터넷 문화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팩트 골룸이 될 수밖에 없다. 일베가 인터넷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바로 그러한 팩트 중시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lt;br /&gt;
 오늘날 인터넷 문화는 언어의 수사적이고 상징적인 측면, 내면적인 진실성보다는 언어의 논리적인 정합성과 외면적인 사실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논객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경향과도 잇닿아 있다. 논객이 공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수행성(이념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호소력)에 있는데 그것이 인터넷에서 점점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정태의 반응은 저 인터넷의 경향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확실히 오늘날 네티즌들은 모두가 마치 아마추어 ‘논리실증주의자’&amp;lt;ref&amp;gt;1924년경 M. 슐리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오스트리아 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ien&amp;lt;/span&amp;gt;) 학파의 철학적 입장을 지칭한다. 명제의 분석적이고 검증 가능한 의미들만을 수용하거나 중시하는 철학적 입장.&amp;lt;/ref&amp;gt;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이는 일베의 등장 이후 더 두드러지게 된 현상이다. &lt;br /&gt;
[[image:ilbe_fact.png]]&lt;br /&gt;
 더 나아가 팩트에 어긋나거나, 검증 불가능한 선전/선동들은 일베 유저들에게 이른바 ‘감성팔이’로 공격당한다. 가령 2013년 상반기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적자’와 ‘방만한 경영’ 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때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이 쏟아졌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환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팩트들이 있을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에도 이른바 노조의 직장 세습 의혹이나 재정적자 문제도 불거졌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료체계가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일베 유저들의 관점에서 후자와 같이 ‘구조’에 입각하여 사회를 통합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베 유저들의 눈에 비치는 팩트란 이른바 진주의료원 노조가 자신의 부당한 ‘특권’을 지키기 위해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주 시민들은 진주의료원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가 갑자기 이슈로 터지니까 군중심리와 같잖은 정의감으로 발광하는 것이다.”&amp;lt;ref&amp;gt;〈진주의료원 폐원〉(http://www.ilbe.com/1327363594) &amp;lt;/ref&amp;gt; 바로 이 같잖은(?) 정의감을 일베 유저들은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lt;br /&gt;
 이렇듯 그들은 진보주의자들이나 좌파의 주장들 중 상당수가 사실관계와 어긋나거나 검증될 수 없는 감성팔이라고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주장이든 가치판단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현실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보자. 진주의료원이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이른바 ‘착한 적자’라는 사업비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의 전환도 가능하다. 국가가 행하는 정당한 복지 지출을 ‘적자’라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발상 자체도 박근혜에게서 나왔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감성팔이를 일삼는 좌빨이란 말인가? 결국 진주의료원 문제도 가치관의 문제이다. 일베 유저들이 비난하듯 ‘원래는 존재감이 없던’ 진주의료원이 노조와 좌익의 선동 때문에 ‘논란’ 이 된 것이라면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을 제도적으로 더욱 ‘확산’ 시켜서 굳이 ‘논란’을 만들지 않고도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일베 유저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lt;br /&gt;
 일베 유저들은 커뮤니티 ‘바깥’에서 논쟁할 때 흔히 회의론적인 상대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물론 이러한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가령 자신이 해야 할 사실 검증을 타인에게 전가한다든지, 자신은 신념을 말하면서 타인이 신념을 밝히는 걸 가로막는다든지 — 한편 그것은 일베 ‘안’에서처럼 자신의 혐오감과 타인에 대한 편견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서 일베 유저가 사뭇 중립적이고 무사 공평한 태도로 “5·18이 폭동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미 의문이 제기된 이상 폭동 여부에 대한 의혹을 역사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커뮤니티로 돌아가 ‘홍어’니 ‘전라디언’이니 하며 5·18을 폭동으로 단정을 지은 채 본인 스스로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이중성을 자주 볼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44~14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렇듯 일베가 바깥에 자신의 ‘사상’을 퍼뜨리는 방식은 무엇보다 ‘팩트 위주’의 사고방식을 설파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요점은 단순한 상대주의적 회의론을 넘어선다. 일베의 사상은 팩트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팩트를 초월한 이념과 이상이 사람들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결의에 더 가깝다. 일베 유저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중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명확한 이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베 유저들은 ‘몰이상’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몰이상성 역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념적이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야말로 어떤 이상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심리적인 경향마저 부정하고 조소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적’이다. 여기서 일베 유저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놓치고 있다.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것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사람들의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을 모아야 할 때가 있다. 비록 그 안에서 ‘닭그네 탄핵!’과 같은 과격한 구호가 나오더라도 어쨌든 광장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나와 촛불을 들지 않는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작업은 금방 흐지부지될 것이다. 팩트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행동에 나서서 정치인과 국가기관에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lt;br /&gt;
 하지만 어차피 이런 이야기는 일베 유저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어차피 ‘선동’이나 ‘감성팔이’로 들릴 것이다. 앞으로도 일베 유저들은 감성팔이와 팩트 사이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명한 구분에 집착할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천안함 장병들을 애도하는 것은 ‘감성팔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고집스러운 자신들만의 구분에서 ‘일베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일베의 사상이란 한마디로 몰이상의 이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일베 유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와도 같은 것이다. 한 트위터 유저는 팩트를 중시하는 일베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상향’을 발견한다. “제가 보는 일베저장소는 이상향입니다. 좋든 싫든 일베저장소의 모습이 우리가 민주주의의 검은 면을 피하려는, ‘더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도달해야 할 토론장의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amp;lt;ref&amp;gt;이 글은 현재 인터넷 게시판에서 삭제되어 확인할 수 없다. &amp;lt;/ref&amp;gt; 그들에게 광우병 촛불시위는 물론이고,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 노무현 후보의 당선 모두 진보와 좌파의 감성팔이에 의해 속아 넘어간 정치적 결과이다. 물론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이해할 수 없는 실정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고, 촛불시위 때 나왔던 주장 중에서 사실관계에 어긋난 괴담들이 상당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서 생겨난 혼란들이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과정들을 거치면서 교훈을 얻을 것인지, 그렇게 교훈을 얻고 발전할 가능성을 철저하게 불신할 것이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전자가 부정→부정의 부정→긍정으로 나아가는 헤겔 변증법에 가깝다면, 후자는 부정 → 부정의 부정→더 철저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더 가까울 것이다.&lt;br /&gt;
 일베 유저들은 명확히 부정변증법의 편에 서 있다. 애초에 변증법적인 여론의 형성과 자기자정 기능을 불신하는 측에서 ‘민주적 토론장’ 이라는 이상향을 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일베 유저 자신들이 토론장을 신뢰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베의 그러한 몰이상주의가 정치적 이상에 의해서 스스로 좌절하거나 상처받아본 인간들에게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베 유저들 중에서는 자신이 과거 노무현의 지지자였거나 촛불시위에 나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일베의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경험이 일베의 집단 무의식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감성적인 이상주의에 또 한 번 휘둘리느니 철저하게 몰이상성을 유지하겠다’라는 것이 일베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행태는 그들의 몰이상, 아니 몰이상의 이상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다. &lt;br /&gt;
[[image:ilbe_confession.png]]&lt;br /&gt;
 일베의 담론은 이렇듯 사실을 감성과 이상에 대립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베 유저들이 중요시하는 팩트란 실상은 지극히 감성적인 인간관,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가령 ‘팩트 대 감성팔이’라는 저 구분 자체가 감성적이고 이념적이다. 예를 들어 일베 유저들 자신이 항상 논쟁 과정에서 팩트에 강하냐 하면(나중에 보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5·18이 폭동이라는 의혹을 제기할 때 단번에 논박될 수 있는 사실관계에서 어긋난 주장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팩트의 중요성은 오히려 이념적인 것이다. 팩트를 운운하며 그들이 실제로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나도 병신이지만 너도 그 못지않은 병신이다”라는 사상이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유일무이한 팩트이다. 일베의 팩트 중시는 따라서 팩트 이외의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무미건조한 팩트와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은 타인과 혐오감, 경멸감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없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당한 시민을 ‘홍어’라고 조롱하는 과정 속에서 ‘무엇이 팩트냐?’라는 것은 사실 전혀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조롱은 오히려 상대에 관한 이런저런 팩트를 넘어 그 인격의 전체 본질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조롱을 통해서 우리는 나름대로 팩트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표출된 욕설과 조롱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일베의 특이함은 그러한 사실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인정한다는 데 있다. 네가 병신인 만큼 나도 병신이라는 것을 쿨하고 재미있게 인정하는 것에서 일베의 유대관계와 상호인정의 질서가 만들어진다.&lt;br /&gt;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부정적인 호수성만이 현실의 국가와 사회 속에서 구현된 인간관계와 질서를 넘어선 집단적이고 평등한 ‘유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 ‘너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 이것 역시도 일베 나름의 ‘이상’ 이다. 한편으로는 일베의 ‘이상’ 과 전혀 다른 ‘이상주의’에 기초해서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야말로 일베 유저들이 궁극적으로 경멸하는 대상이다. &lt;br /&gt;
 따라서 일베가 인터넷에서 전개하는 담론 투쟁은 단순히 진보와 좌파 사이의 정치 대립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상상의 차이로 요약할 수 있다. 일베와 인터넷 진보/좌파들의 차이는 그들 간의 공동체관의 차이로 수렴된다. 우리는 일베가 단순한 냉소주의나 몰이상에만 근거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일베 자체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두가 동등하게 혐오할 권리를 나눠 갖는 평등한 형제애의 공간에 관한 유토피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보좌파 세력에 대해 갖는 반감은 바로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지지하고 신봉하는 유토피아적 사상에서 유래한다.&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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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0906_%ED%8C%A9%ED%8A%B8%ED%92%80%EB%8B%88%EC%8A%A4&amp;diff=16370</id>
		<title>0906 팩트풀니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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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0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lt;br /&gt;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은이),이창신 (옮긴이)김영사2019-03-08원제 : Factfulness (2018년)&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대개는 낡은 지식이고 더러는 수십 년 묵은 지식도 있었다. 사람들의 세계관이 형성된 시기는 그들을 가르친 교사가 학교를 떠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한마디로 세상에 대해 생각하라. 전쟁, 폭력, 자연재해, 인재, 부패⋯⋯. 상황은 안 좋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는 것만 같다. 안 그런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며, 빈곤충은 더욱 늘어간다.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원은 곧 동나고 말 것이다. 적어도 서양인 대부분이 언론에서 보고 머릿속에 담아둔 그림은 그렇다. 나는 그것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그런 세계관은 스트레스와 오해를 불러온다. &lt;br /&gt;
 사실은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가 중간 소득수준을 유지한다. 이들이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극빈층도 아니다. 딸아이는 학교에 가고, 아이들은 예방접종을 받고, 자녀 둘과 함께 살고, 휴가 때는 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해외여행을 꿈꾼다.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면에서 해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더러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제까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8~17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테러 데이터를 찾아서&#039;&#039;&#039;&lt;br /&gt;
이 책에서 테러 관련 추세만큼은 2016년에서 끝난다. 세계 테러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자료는 2016년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이곳 연구원들은 기록을 하나하나 입력할 때마다 소문과 가짜 정보를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원을 신중하게 조사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과학 연구의 좋은 사례일 수 있지만, 나는 좀 이상했다. 에볼라 사례처럼, 그리고 이후에 논의할 이산화탄소 배출 사례처럼 중요하고 우려스러운 일을 조사할 때는 완벽한 데이터보다 최신 데이터를 되도록 빨리 수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으면 테러가 증가 추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lt;br /&gt;
 위키피디아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ikipedia&amp;lt;/span&amp;gt;에는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난 테러 공격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 사건이 처음 뉴스에 나오고 몇 분 만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놀랍도록 빨리 자료를 업데이트한다. 나는 위키피디아를 정말 좋아한다. 내용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추세를 재빨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뢰성을 점검하기 위해 위키피디아(영어판)를 세계 테러 데이터베이스 2015년 자료와 비교해보기로 했다. 겹치는 부분이 100%에 가깝다면 위키피디아의 2016년과 2017년 자료도 꽤 완벽하다고 신뢰할 수 있으며, 최신 테러 추세를 추적할 좋은 출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lt;br /&gt;
 비교 결과, 위키피디아는 의도치 않게 매우 왜곡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시각은 서양의 사고방식에 따라 체계적으로 왜곡되었다.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2015년 테러 사망자 중 78%가 위키피디아에서 빠졌다. 서양에서 일어난 테러 사망 사고는 거의 모두 기록한 반면, ‘그 밖의’ 지역에서 일어난 테러 사망 사고는 25%만 기록해놓았다. &lt;br /&gt;
 내가 위키피디아를 아무리 좋아해도, 신뢰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려면 여전히 진지한 연구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 연구원들은 데이터를 더 빨리 업데이트하도록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하나의 사례, 즉 눈에 보이는 피해자 한 명의 중요성을 오판하는 것은 본능에서 나온다. 이 두 성향이 크기 본능의 두 가지 핵심이다. &lt;br /&gt;
 언론은 이러한 본능의 친구다. 주어진 사건, 사실, 수치를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언론인의 직업적 의무에 가깝다. 언론인은 고통받는 개인에게서 눈을 돌리는 행위가 비인간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잘 안다. &lt;br /&gt;
 크기 본능의 두 가지 측면은 부정 본능과 더불어 세상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세계 인구와 관련한 여러 비율 중에 기본 욕구를 충족하며 사는 사람의 비율을 물으면, 대부분 일관되게 약 20%라는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답은 80%, 나아가 90%에 가깝다. 예방접종을 받는 아이의 비율은 88%,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85%다. 초등학교를 나온 여자아이의 비율은 90%다. 그러나 자선단체와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이는 숫자를 고통받는 개인의 모습과 함께 끊임없이 보여주다 보니 사람들은 왜곡된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다른 모든 비율과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lt;br /&gt;
 그러면서 일부 비율은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스웨덴에 이주한 사람의 비율이며,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 등이 그렇다. 적어도 미국인과 유럽인은 두 비율을 현실보다 더 극적으로 이해한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7~18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큰 전쟁&#039;&#039;&#039; &lt;br /&gt;
베트남전쟁은 내 세대로 치면 시리아 내전 정도에 해당한다. &lt;br /&gt;
 1972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박마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ach Mui&amp;lt;/span&amp;gt; 병원에 폭탄 7개가 떨어져 환자와 의료진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나는 스웨덴 웁살라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스웨덴에는 의료 장비와 노란 담요 등이 풍족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이런 것들은 수집해 상자에 담아 박마이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lt;br /&gt;
 15년 뒤, 나는 스웨덴 원조 프로젝트를 평가하기 위해 베트남에 갔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베트남 동료 의사인 니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iem&amp;lt;/span&amp;gt;과 밥을 먹으며 그의 과거를 물었다. 그는 폭탄이 떨어질 때 박마이 병원에 있었고, 그 후 세계 각지에서 온 보급품 상자를 뜯는 일을 했다고 한다. 나는 혹시 노란 담요를 기억하느냐고 물었고, 그가 노란 담요의 무늬를 말하자 소름이 돋았다. 순간 우리 둘이 마치 평생의 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lt;br /&gt;
 그 주말에 나는 니엠한테 베트남전쟁비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가 물었다. “‘대미항전’ 말하는 거죠?” 나는 그가 ‘베트남전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니엠은 나를 태우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거기엔 황동 판이 붙은 1m정도 높이의 돌이 있었다. 나는 농담이겠지 싶었다. 서양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활동가 세대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할 정도였다. 내가 담요와 의료 기구를 보낸 것도 거기에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에서 150만 명 넘는 베트남인과 5만 8,000명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가 그런 대재앙을 기억하는 방식이 고작 이런 식이라니! 내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니엠은 나를 차에 태우고 더 큰 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m가 넘는 대리석 비로,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큰둥했다.&lt;br /&gt;
 니엠은 내게 비다운 비를 볼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를 태우고 조금 더 가더니 창밖을 가리켰다. 나무 꼭대기 너머로 금색으로 덮인 거대한 돌탑이 보였다. 100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여기가 전쟁 영웅을 추모하는 곳이에요. 멋지죠?” 베트남이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을 기리는 비였다. &lt;br /&gt;
 중국과의 전쟁은 싸움과 휴전을 반복하며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가 점령한 기간은 200년이었다. 대미항전은 고작 20년 지속되었다. 비의 크기는 그런 기간을 완벽하게 반영했다. 나는 여러 개의 비를 비교한 뒤에야 비로소 지금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작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1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인도 케랄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kerala&amp;lt;/span&amp;gt;주 티루바난타푸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iruvananthapuram&amp;lt;/span&amp;gt;이나 우간다 캄팔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Kampala&amp;lt;/span&amp;gt;에 가면, 도착 첫날에 학생들은 대개 매우 잘 정돈된 도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신호등도 있고, 하수처리 시설도 있다. 그뿐 아니라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lt;br /&gt;
 도착 둘째 날에는 대개 공공 병원을 둘러본다. 벽에 페인트칠도 안 되어 있고, 에어컨도 없고, 병실 하나에 환자 60명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학생들은 서로 귓속말로 여기는 극도로 가난한 곳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극빈층 지역은 아예 병원이 없다고 설명한다. 극빈층 여성은 어둠을 뚫고 맨발로 걸어온,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산파의 도움으로 흙바닥에서 아이를 낳는다. 병원 관리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벽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 것은 2, 3단계 나라의 전략적 결정이지, 페인트칠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페인트칠이 떨어져 나간 벽을 그대로 두면 상대적으로 잘사는 환자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환자는 시간이 많이 드는 값비싼 치료를 요구하는 탓에 이들을 받지 않아야 병원의 한정된 자원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사용하고, 비용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28~23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amp;lt;u&amp;gt;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하라&amp;lt;/u&amp;gt;&lt;br /&gt;
나는 한때 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치명적인 엉터리 일반화를 믿고 널리 퍼뜨린 적이 있다. 공공 의료 사회가 잘못된 일반화에 좀 더 날카롭게 의문을 제기했더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던 일이다.&lt;br /&gt;
 1974년 어느 날 저녁, 스웨덴 작은 도시의 슈퍼마켓에서 빵을 사던 중에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한 아기를 발견했다. 아기가 탄 유모차는 빵 판매대 근처에 있고, 아기 엄마는 등을 돌린 채 빵을 고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위험을 눈치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내 머릿속에서는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아기 엄마가 놀랄까 봐 뛰지 않으려 꾹 참았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걸어가 유모차에 등을 기댄 채 잠든 아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기 몸을 뒤집어 엎드린 자세로 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기는 깨지 않았다. &lt;br /&gt;
 그때 아기 엄마가 손에 빵을 든 채 몸을 돌리더니 나를 공격하려 했다. 나는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의사다, 영아돌연사증후군이라는 게 있는데 그와 관련해 부모가 알아야 할 새로운 공중 보건 지식이 있다. 위를 보고 누운 자세로 아기를 재우지 마라, 토하다가 질식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기는 이제 무사했다. 놀란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린 아기 엄마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장을 마저 보았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쇼핑을 마쳤다.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lt;br /&gt;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의사와 간호사는 의식을 잃고 들것에 실려온 군인 중 위를 보고 똑바로 누운 사람보다 바닥에 엎드린 사람의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위를 보고 누우면 토할 경우 토사물에 질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엎드려 누우면 구토를 하더라도 기도에 틈이 생겨 질식할 위험이 적었다. 이를 관찰한 덕분에 군인 외에도 다른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이 ‘회복 자세’는 전 세계에서 표준이 되어 지구상의 모든 응급조치 훈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2015년 네팔 지진 때 활동한 구조대원 역시 모두 이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다). &lt;br /&gt;
 하지만 새로운 발견은 아주 쉽게, 지나치게 널리 일반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 회복 자세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하자 1960년대에는 이것이 거의 모든 전통적 방식을 대체해 새로운 공중 보건 지식이 되어, 아기까지 엎드려 재우기 시작했다. 힘없는 사람은 모두 그래야 하는 것처럼. &lt;br /&gt;
 이렇듯 우리 머리가 어설프게 일반화를 해도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논리 전개는 맞는 것 같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논리에다 좋은 의도까지 합쳐지면 일반화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영아 돌연 사망이 줄기는커녕 되레 높아진다는 데이터가 나왔는데도 아무런 해명을 못 하다가 1985년에 비로소 홍콩에서 일단의 소아과 의사들이 엎드린 자세가 영아 돌연사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유럽 의사들은 그 말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7년이 흐른 뒤, 스웨덴 당국은 실수를 인정하고 정책을 바꿨다. 의식을 잃은 군인이 똑바로 누운 채 구토를 하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군인과 달리 잠자는 아기는 반사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서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구토가 나면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런데 아직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어린 아기가 엎드려 있으면, 기도를 확보할 만큼 고개를 돌리지 못할 수 있다(엎드린 자세가 더 위험한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lt;br /&gt;
 빵을 구입하던 엄마는 내가 아기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알아챌 방법이 있었을까? 그 엄마는 내게 증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의식 잃은 군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게 다시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그 일반화가 정말 유효한가요? 잠자는 아기는 의식을 잃은 군인과 많이 다르지 않나요?” 아기 엄마가 내게 그렇게 물었다 한들 내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lt;br /&gt;
 나는 질식을 막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10년 넘게 똑바로 누운 많은 아기를 내 손으로 직접 엎드려 눕혔다. 홍콩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도 18개월이 더 지나 마침내 그 방식이 뒤집힐 때까지 유럽과 미국의 많은 의사와 부모가 그랬다. 광범위한 일반화 때문에 수천 명의 아기가 죽었고, 그중에는 그런 일반화가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온 후에 목숨을 잃은 아기도 있었다. 광범위한 일반화는 좋은 의도라는 명분 뒤에 쉽게 숨을 수 있다. &lt;br /&gt;
 나는 빵 판매대 근처에 있던 그 아기가 살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현대사회 사람들이 그 엄청난 공중 보건의 실수를 교훈으로 삼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비교 불가능한 여러 집단을 일반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우리 논리에 숨은 광범위한 일반화를 찾아내려고 또 노력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지 예전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재평가해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기꺼이 시인해야 한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5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할아버지의 큰딸은 1930년대에 콘돔 사용을 불법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한 용감한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일곱 번째 아이를 낳은 뒤 큰딸이 피임을 권유하자, 자상하고 조용한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며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할아버지의 가치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그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스웨덴 문화는 변했다. (여담으로, 할아버지는 책을 싫어하고 전화기도 쓰려 하지 않았다). &lt;br /&gt;
 오늘날 스웨덴 사람은 거의 다 여성의 낙태 권리를 지지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적극 옹호하는 것이 이제 우리 문화가 됐다. 내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1960년대의 학창 시절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입을 딱 벌린다. 그때까지도 낙태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 말고는 여전히 불법이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비밀 자금을 모아 임신한 여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 무사히 낙태 수술을 받도록 했다. 내가 그 여학생들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폴란드라고 말하면 학생들의 입은 더 크게 벌어진다. 폴란드라니? 폴란드는 기독교 국가 아닌가. 그리고 5년이 지나 폴란드는 낙태를 금지하고, 스웨덴은 낙태를 합법화했다. 그러자 젊은 여성들이 정반대로 이동했다. 요컨대 지금 상황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화는 변한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8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039;&#039;&#039;망치와 못&#039;&#039;&#039; 도구를 잘 다룬다면 그 도구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고 싶을 수 있다. 문제를 깊이 분석하다 보면, 그 문제나 내 해결책의 중요성을 과장할 수 있다. 모든 것에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망치라면, 드라이버나 스패너 또는 줄자를 가진 동료를 찾아보라. 다른 분야의 생각도 마다하지 마라.&lt;br /&gt;
• &#039;&#039;&#039;수치를 보되, 수치만 봐서는 안 된다&#039;&#039;&#039; 세계를 수치 없이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진짜 삶을 말해주는 수치를 사랑하라. &lt;br /&gt;
• &#039;&#039;&#039;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039;&#039;&#039;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 안아라,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하라. 문제는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하라.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1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039;&#039;&#039;사회 기반&#039;&#039;&#039; &lt;br /&gt;
사회 발전과 경제 발전이 제자리걸음인 국가는 지도자가 대단히 파괴적이고 무력 충돌이 잦은 몇몇 나라뿐이다. 그 밖의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무능해도 사회와 경제가 발전한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아마도 ‘아니다’일 것이다. 사회를 꾸려나가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인 다수의 사람들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5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4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투자 결정과 관련해서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그리고 언론 탓에 오늘날까지도 이어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순진한 시각을 버리고, 오늘날 최고의 투자 기회는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lt;br /&gt;
 업계는 조만간 철자 실수보다는 사실 오해를 바로잡는 데 신경을 쓰고, 직원과 고객이 세계관을 반드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lt;br /&gt;
&lt;br /&gt;
&#039;&#039;&#039;언론인, 활동가, 정치인&#039;&#039;&#039; &lt;br /&gt;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도 인간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들도 극적인 세계관의 피해자일 뿐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정기적으로 세계관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9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039;&#039;&#039;열 가지 본능과 인지심리학&#039;&#039;&#039; 우리가 열 가지 본능을 생각하기까지는 훌륭한 많은 인지심리학자의 저서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중 정신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을 바꾸고, 세계에 관한 사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관한 우리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은 다음과 같다. 댄 애리얼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an Ariely&amp;lt;/span&amp;gt;의 《상식 밖의 경제학&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redictably Irrational&amp;lt;/span&amp;gt;》(2008), 《경제 심리학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Upside of Irationality&amp;lt;/span&amp;gt;》(2010),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amp;lt;/span&amp;gt;》(2012), 스티븐 핑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ven Pinker&amp;lt;/span&amp;gt;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ow the Mind Works&amp;lt;/span&amp;gt;》(1997), 《생각의 언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Stuff of Thought&amp;lt;/span&amp;gt;》(2007), 《빈 서판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Blank Slate&amp;lt;/span&amp;gt;》(2002),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amp;lt;/span&amp;gt;》(2011), 캐럴 태브리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rol Tavris&amp;lt;/span&amp;gt;와 엘리어트 애런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Elliot Aronson&amp;lt;/span&amp;gt;의 《거짓말의 진화&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istakes Were Made(But Not by Me)&amp;lt;/span&amp;gt;》(2007),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2011), 월터 미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lter Mischel&amp;lt;/span&amp;gt;의 《마시멜로 테스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Marshmallow Test&amp;lt;/span&amp;gt;)(2014), 필립 E. 테틀록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hilip E. Tetlock&amp;lt;/span&amp;gt;과 댄 가드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an Gardner&amp;lt;/span&amp;gt;의 《슈퍼 예측, 그들은 어떻게 미래를 보았는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uperforecasting&amp;lt;/span&amp;gt;》(2015), 조너선 갓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nathan Gottschall&amp;lt;/span&amp;gt;의 《스토리텔링 애니멀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Storytelling Animal&amp;lt;/span&amp;gt;》 (2012), 조너선 헤이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nathan Haidt&amp;lt;/span&amp;gt;의 《행복의 가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Happiness Hypothesis&amp;lt;/span&amp;gt;》(2006), 《바른 마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Righteous Mind&amp;lt;/span&amp;gt;》(2012), 토머스 길로비치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omas Gilovich&amp;lt;/span&amp;gt;의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ow We Know What Isn&#039;t So&amp;lt;/span&amp;gt;》(1991).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0903_%EB%94%94%EB%94%94%EC%9D%98_%EC%9A%B0%EC%82%B0&amp;diff=16369</id>
		<title>0903 디디의 우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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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lt;br /&gt;
황정은 (지은이)창비2019-01-20&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7~6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d가 그들을 알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d는 헐거워진 모자를 고쳐 쓰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를 아느냐고? 이 장소를 벗어난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자신을 아느냐고 물으면, d는 그 얼굴을 몰라볼 것이고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르니까. 모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알 이유도 없으니까. d가 혐오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같이, 그들도 같을 것이다. 똑같이 혐오스러울 것이다. 혀를 내밀어 음식을 먹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치고 다니고, 자신이 지닌 사물로 사람을 찌르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며, 알고도 굳이 개의치 않고, 비대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감이 뒤죽박죽 섞인 인격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타인. 거짓말로 살아가는 사람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3~9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물론 사람이 늘면 상권은 형성될 것이다. 지금과는 뭔가 다른 형태의 상권이. 여소녀는 창을 통해 3층 보행 데크를 내려다보았다. 60년대에 그 이름처럼 원대한 계획으로 설계되었다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애매하게 끊어진 형태로 구현되었고 한차례 그야말로 끊어졌다가 이제 다시 원대한 계획의 일부가 된 공중가로는 지금 2월 태양의 싸늘하고도 엷은 빛을 받고 있었다. 길거리 구둣방처럼 생긴 박스들이 데크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문을 닫았고 문을 연 박스 속에서는 젊은 남자가 햇빛을 등지고 앉아 컴퓨터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비아그라나 담배, 감시용 카메라를 판다고 적힌 짧은 입간판이 그늘에 놓여 있었다. 어쨌거나 저곳을 오가는 사람이 늘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 임대인들은 즉시 세를 올려받으려 할 것이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자들의 계획에 따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 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 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여소녀는 생각했다. 상가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 &lt;br /&gt;
 무릎에 펼쳐진 신문이 바람에 부풀었다. 여소녀는 신문을 두 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3~114&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런데 그것을 아시나요?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이유가 환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북측에서 해변을 산책하다가 남쪽에서 생산된 라면 봉지를 주웠는데 이런 안내문이 적혀 있었대요. 불량품은 판매처에서 교환이나 환불을 해드립니다. 그것을 읽고, 남쪽엔 라면을 쌓아놓고 파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속한 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된 나머지 귀순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그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두 손으로 조종간을 붙들고 목적지를 향해 전투기를 몰아갔을 그 새끼가 너무 부럽다⋯⋯ 남쪽의 가요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두고 음악이 흐르는 전투기에 실려 북측과 남측의 경계를 향해 날아가던 순간, 그 아득한 허공을 날던 순간의 그가 말입니다.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lt;br /&gt;
내게는 그것이 없어. &lt;br /&gt;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러게요, d는 생각했다. &lt;br /&gt;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lt;br /&gt;
모르겠다고 d는 대답하려고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니 입에 힘이 들어가고 턱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웃는 얼굴이 되었을 거라고 d는 생각했다. 귀가 딱딱하게 뒤로 젖혀지고 입이 당기고 턱이 굳고 눈도 좁아졌다. 이것이 웃음일까? d는 생각했다. 지금 내 얼굴의 상태, 이 불편한 구겨짐, 이것이 웃음일까? 그런데 뭐가 웃겼지? 아버지의 질문이 웃겼나? 명치가 간질거렸다. d는 폭소를 터뜨릴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다고 d는 대답할 수도 있었다. 모르겠는데 실은 모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왜 함께 오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너무 하찮기 때문이라고. 나도 dd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가 너무 하찮아서, 충돌 한 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7~16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서수경은 괜찮은 기록을 내는 선수였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육상부도 없고 제대로 된 훈련체계도 없는 학교의 선수로 출전했지만 출전한 종목에서는 대개 우승했다. 서수경이 달리면 선생들과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 그것을 보러 모였다. 언젠가 나는 군중 속에서 서수경이 달리는 모습에 무언가가 있다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모습에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무언가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달릴 때 서수경은 그저 달렸다. 욕심이나 걱정 없이, 바로 옆 트랙에서 출발한 경쟁자나 골라인이나 기록에 대한 관심 없이, 불필요한 움직임이나 괜한 버릇도 없이 꼭 필요한 동작만으로 서수경은 달렸고 그 모습에 훗날 내가 생떽쥐뻬리의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기둥이나 배의 밑바닥, 비행기 동체의 곡선을 묘사하며 그가 말한 바와 같이,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lt;br /&gt;
&lt;br /&gt;
내가 서수경을 처음 본 순간에도 서수경은 달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의 장거리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간식으로 받은 델몬트 주스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냉장장비도 없이 궤짝에 보관되어 미지근하고 달짝지근할 뿐 갈증 해소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오렌지 음료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 남학생 장거리 그룹이 마지막 바퀴를 돌아 골라인을 향해 갔고 그 얼마 뒤, 흰 저지 팬츠와 셔츠를 입은 선수 한 명이 가볍고도 맹렬한 기세로 트랙을 달려 내 앞을 지나갔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7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보지는 어떻게 씻었냐 드러운 년들.” (연세대를 포위한 9일간 경찰은 학생들에게 식량도, 의약품도, 심지어 여성용 위생용품조차 반입 시키지 않았다. (⋯) 8월 20일 연세대 내에 진입한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없는 성적 추행과 폭력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 이들은 건물에서 여대생들을 연행하며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몸을 숙여 이동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학생이 몸을 숙이면 그 뒤에서 여학생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다고 한다. (⋯)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꼭 데모질이야. 아무도 안 놀아 주니까 꼭 데모를 해요. 야. 맞지? 남자애들한테 퇴짜를 맞으니까. 야. ×× (여자 성기 표현)는 어떻게 씻었냐? 어휴, 드러운 년들. 열흘 동안 닦지도 않았지? 암컷 내 난다. 야, 얼마나 대줬냐? 사수대 수고했다고 그 짓 해줬지? ×같은 년들.’” 고상만 「‘초선’  추미애가 국감장서 쌍욕 읊은 이유」, 『오마이뉴스』 2016.8.29.)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4~18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나는 악기를 다루는 것이 좋았고 오로지 그것 때문에 동아리방에 드나들었다. 북과 장구를 두들길 때 말고, 대학 생활이란 여름 아침 안개처럼 내게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정말 여름 안개 속에서, 동아리 동기생인 J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었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밤새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큼한 공기와 곰팡내를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와 선선한 아침 공기를 바라며 거기에 앉아 있었지만 아침부터 기온은 높았고 바람은 전혀 없었으며 무릎 높이로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아침 벤치에서 J가 내 어깨에 머리를 얹은 채로 말하는 연애담을 들었다. 여자들이 자기 때문에 자꾸 죽는다. ⋯⋯두 명의 여성이 자기 때문에 싸우다가 목숨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자기는 지금 괴롭고 앞으로도 평생 괴로울 예정이라는 이야기부터 그가 가장 경애한다는 아티스트가 미시마 유끼오라는 이야기까지. J는 미시마 유끼오가 다자이 오사무를 추남이라며 공개적으로 혐오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나 자기가 쓴 소설 내용처럼 할복이라는 형식을 택해 삶을 마감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탐미를 추구하다가 문학과 삶이 일치되어버려 죽음에 이른 그의 삶을 미학적으로 높이 평가한다는 J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장의 냄새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재래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의 마지막 코스인 좁은 골목에 보신용 고기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오가며 맡은 닭과 개의 냄새로 잡식하는 몸의 내장 냄새를 알았다. 그 냄새를⋯⋯ 미시마 유끼오가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말하지는 않았고 다만 여름 안개 때문에⋯⋯ 가뜩이나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옷 위에 기묘한 각도로 얹힌 그의 머리통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보다 키가 크고 허리도 길고 마른 그가 이렇게 내 어깨에 머리를 얹으려면 자세가 많이 어색하고 불편할 텐데 굳이 왜 이러고 있을까.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자신에게는 여자들이 죽어나갈 정도의 매력이 있다고 내게 고백하면서, 이렇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가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고 해도 거절할 텐데 왜냐하면 그가 입은 옛날풍의 양복저고리와 어깨뽕이 너무 거슬려서⋯⋯ 그만하자.&lt;br /&gt;
1996년에 내가 연세대학교에 있었던 이유는 그것과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여름 아침 안개처럼 부유하다가 엉뚱하게 굴러들어간 장소가 거기였다. &lt;br /&gt;
&lt;br /&gt;
1996년 8월 이후에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명기 한총련 의장은 수배된 뒤 구속되었으며 운동권에 대한 대학사회의 혐오, 특히 연세대 학내의 운동권 혐오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시위·집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감정도 악화되었다. 체감상 학생운동은 끝났다. 8월의 연세대학교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바로 그 장소에서의 마지막 슬로건이었던 “집에 가고 싶다” 에 대한 수치심과 무력감을 지닌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세수와 양치를 했으며 단 며칠간 경험으로 바싹 야위고 만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엔 자기 앞마당이나 쓸자는 생각을 깨달음으로 간직한 채 학교로 돌아갔다가 이윽고 몰아닥친 구제금융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학교를 영영 떠나거나⋯⋯ 자기 앞마당 관리에 집중했다. 국민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잔혹하게 진압한 정부로부터 싸울 이유를 찾아낸 사람들도 있었으나 소수였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이들은 더욱 소수였다. &lt;br /&gt;
&lt;br /&gt;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 &lt;br /&gt;
&lt;br /&gt;
2008년 6월에 광화문 대로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벽은 시위대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기름이 도포되어 있었고 명박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즉시 많은 이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샀지만 이 벽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서수경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명박산성 이후 빠르게 발전해 마침내 세련된 형태로 완성된 차벽 봉쇄는 아마도⋯⋯ 96년 학생운동권의 고립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는 게 서수경의 추측이었다. 96년이 체제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고 서수경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관리자들은 90년대 대학 운동권의 몰락으로 학습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위대를 향한 대중의 혐오 같은 것. 1996년의 연세대 사태는 ‘폭력적’ 시위대를 향한 대중의 혐오라는 것을 국가세력과 시위대가 동시에 목격한 사건이기도 했는데, 전자에게는 그 양상이 꽤 흥미롭게 여겨졌을 것이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1996년 8월 15일에 연세대학교의 그 육중한 철문이 포클레인으로 뜯겼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뜯어낸 쪽이 정부였는데도 시위대의 폭력성을 개탄했지. 유레카. 고위 관리 중에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폭력이라는 틀을 씌운다. 수단으로써 그것은 철저하고도 완전한 발견이었을 거야. 물리적 봉쇄와 이념적 봉쇄, 운동과 일상의 격리. 말하자면 일상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의⋯⋯ 박리. 뭐가 됐든 차벽이 그것을 완성시킬 것이다.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 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에 손을 대고 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 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 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둔 뒤, 시위대가 다녀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파손된 차벽과 도로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서진 재물, 재산을. 운동이 아닌 관리자의 방향으로 대중의 공감이나 이입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되도록 하는 데에 재산 손괴,만큼 효과적인 광경도 없을 거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 더 쉬우니까. 왜 그게 더 쉬운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더 쉽고, 뭐가 더 쉬우면 쉬운 쪽으로 되어간다. 뭐가 그렇게 되기 쉬우면 뭐는 곧 그렇게 되지 여기서는.&lt;br /&gt;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 뒤로 K의 화가 내게 쏟아졌다. 사적인 접근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공적으로 내게 폭언을 쏟아내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업무를 지시하고 내가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면 최대한 미적거리다가 내 실수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는 즉시 내 자리로 찾아와서 얼굴 앞에 그걸 들이밀며 소리를 지르고 그러고도 마치 분한 사람처럼 한동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씩씩거리며 서 있다가 가버리고는 한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악의가 너무 분명해 관리부 부장이 그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자 그는 자기가 뭘 했느냐고 반문하며 왜요, 나 때문에 사람 하나 또 그만둘까봐요? 라고 대꾸했다. 나는 그 대화로 K에게는 패턴이 있고 이 사무실에서 전례가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래에 와서야. 그런 전례를 알고도 내게 K를 밀어붙인 사무실 사람들은 요즘도 이따금 내게 와서 K가 어제 회식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무슨 말을 했다느니 어쨌다느니, 소식을 전하며 내게 묻는다. 그런데 정말 그에게 마음이 없었느냐고.&lt;br /&gt;
&lt;br /&gt;
야, 이 야차 같은 인간들아.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김소리와 내가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낸 집에는 어두운 밤색 마루를 깐 시원한 거실이 있었다. 거실의 북쪽 벽면엔 유리 문짝이 달린 책장이 있었고 그 선반들엔 우리 자매가 사촌들에게 물려받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어린 시절을 보낸 사촌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 그 중에 가장 특별한 책은 계몽사에서 출간된 소년소녀세계 문학전집이었다. 1976년 판본이었으며 총 50권으로, 읽은 흔적이 거의 없고, 엉성한 듯 아름다운 삽화가 실린 책들 이었다. 각각의 낱권은 붉은색 마분지 껍데기에 담겨 있었고 책의 겉장 역시 딱딱한 마분지였으며 속 지질이 몹시 거칠었는데 펼치면 책장에서 보릿가루나 옥수수빵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책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며 책의 물성에 대한 애착을 키웠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19~22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글에서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김선욱,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역자 서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Eichmann in Jerusalem&amp;lt;/span&amp;gt; (한길사 2006)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말인 듯하다.(“한국의 학자들 대부분은 ‘banality’라는 단어를 ‘평범성’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 아렌트는 1965년 증보판의 후기에 그 개념을 ‘무사유’로 해석했다. 여기서 무사유란 상투어만을 사용하기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얄팍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뻔하다는 것이다.”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amp;lt;/span&amp;gt; 1권 역자 서문, 개마고원 2008)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어떤 측면은 평범성이라기보다는 상투성에 그 기원이 있을 것이다. &lt;br /&gt;
종북과 좌빨. &lt;br /&gt;
몇십년 동안 구독해온 신문의 어휘와 논조를 그대로 닮은 아버지의 말에서 나는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 식의 상투성을 본다. 즉 말하기, 생각하기, 공감하기의 무능성을. &lt;br /&gt;
&lt;br /&gt;
아버지는 이제 칠십대에 접어들었고 누군가가 식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곤경에 빠지고, 어느 서랍에 자기 양말이며 바지가 들었는지를 잘 모르고, 잘 씻지 않고, 아파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서 어머니를 안달복달한 상태로 밀어 넣고, 자신을 내버려둔다고 딸들을 원망하며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하는 데 전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음도 늙음도 혐오하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노조 활동과 폭로와 노무현인데, 파업은 빨갱이 활동이고 삼성의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비열한 배신자이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당찮은 자리까지 올라간 범인凡人이다. 막노동에 나보다 많이 버는 것들이 무슨 노조며 파업이냐,라는 그의 불쾌에는 노동 혐오와 노동자 혐오가 동시에 있고, 그보다 더 근본에는 약함을 혐오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분노나 혐오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말이 ‘권위도 뭣도 없다’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노동자, 김용철, 노무현을 향한 그의 혐오는 같은 물줄기가 아닐까,라고 김소리와 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그는 힘없음無力을 혐오한다. 그는 약함을 혐오한다. &lt;br /&gt;
아버지에게 힘이란 무엇이고 권위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1980년대에 우리 가족이 사용했던 양철 밥상이 생각난다. 꽃과 이파리와 공작 그림이 색색으로 프린트된 둥근 은색 밥상. 1986년 아시안게임 체조 종목에서 서선앵(86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후 부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 선수가 금메달을 딴 날에도 우리는 그 밥상을 사용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서선앵 선수의 평균대 경기를 보도한 그날 뉴스의 끝자락쯤에 전두환과 노신영(18대 국무총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임)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아빠, 대통령이 죽으면 국무총리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는 거지요?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양철 밥상이 튀어 오르도록 다급히 몸을 기울여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나는 단지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을 뿐인데&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30~23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재작년에 존 클라센의 그림책인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is Is Not My Hat&amp;lt;/span&amp;gt;를 함께 읽었을 때에도 그랬지. 우연한 기회에 작은 모자를 훔친 물고기가 모자를 숨기려고 물속을 나아가며 모자에 관해 몽상하다가 모자의 본래 주인인 거대한 물고기가 따르는 후방을 알지 못한 채 물풀 속으로 천진하게 사라지는 그 이야기 말이야. 작은 물고기는 아무도 자길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며 물풀 속으로 들어가지만 큰 물고기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고, 이윽고 모자를 되찾은 큰 물고기가 물풀 숲을 유유히 떠난 뒤 마지막 페이지에 물풀 숲이 남는다. 이 마지막 장에 이르자 정진원은 몹시 당황하면서 그림책을 자기 앞으로 당기더니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겉장에 접착된 마지막 장을 손가락으로 긁어 떼어내려고 하면서 그 속에 한장이 더 있을 거라고 믿는 것처럼,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더니 물고기가 어디로 갔느냐고 내게 물었다. &lt;br /&gt;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몹시 놀란 참이라서. 물풀이 우거진 마지막 페이지는 너무 고요해 보였고 그게 내게 뜻하는 바는 곧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화자의 죽음이었다. 작은 물고기의 죽음. 존 클라센은 그 페이지에 검은색, 갈색, 자주색 물풀만을 그려놓았지만 나는 작가가 그 속에 작은 물고기의 사체를 감춰두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 작은 물고기의 사체가 감춰져 있다. 두 번을 보고 세 번을 보아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보면서 물고기의 행방을 묻는 조카의 곁에서 나는 당혹스러웠고 무능했다. 내게는 죽었다,거나 먹혔다, 밖엔 답이 없었으니까. &lt;br /&gt;
&lt;br /&gt;
그날 퇴근해 돌아온 서수경에게 정진원과 내가 그 책을 펼쳐 보이며 하소연하자 서수경은 웃었다.&lt;br /&gt;
작은 물고기는 지금 숨어 있는 거야. &lt;br /&gt;
왜? &lt;br /&gt;
부끄러워서. 조금 있다가 나올 거야. &lt;br /&gt;
언제? &lt;br /&gt;
네가 안 볼 때, 아무도 안 볼 때.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40~24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내가 왜 그랬지? &lt;br /&gt;
&lt;br /&gt;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 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 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 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 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엔 일어나 서수경의 방으로 건너가 서수경에게 그 사람 야비하다고, 야비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lt;br /&gt;
그래 그 사람 좀 야비하다. &lt;br /&gt;
이야기를 들은 서수경은 김소리의 수치심과 내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김소리가 수치심에서 부끄러움으로 이동하며 어른을 경험했고 소리 자신도 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 그 경험의 계기가 그 수학선생의 말이었으니 그 역시 중요한 사람 아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우연하게 있었고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아닐까? 그게 그의 최선은 아니었을까? &lt;br /&gt;
그 밤엔 서수경의 질문까지 품고 내 잠자리로 돌아와서 한동안 잠들 수가 없었다. 선생, 그가 김소리에게 준 것과 같은 ‘ 계기’는 서글프다고 나는 생각했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6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서수경은 내 머리에 손을 올리며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니 나는 속상하다고 진짜 속상해서 그 사람들을 일일이 방문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 사람이 말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렇지. 적나라赤裸裸. 그 광경은 마치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남의 집 베란다처럼⋯⋯ 우리는 왜 때때로 베란다를 청소하듯 그것을 점검해보지 않는 것일까. 모조리 끄집어내서 거기 뭐가 쌓였는지도 확인을 좀 해보고 먼지도 털어보고 곰팡이 끼거나 망가진 것은 닦거나 내다버리고 하면서 정리도 다시 해보고 새로운 질서로 쌓아보거나⋯⋯ 하지를 않는 걸까 좀처럼. &lt;br /&gt;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74~27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lt;br /&gt;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 &lt;br /&gt;
나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 주 뒤에 내가 본 것을 지금 이 식탁 앞에서 기억해낸다. 토요일 오전 열한시에 나는 ITX 열차를 타려고 용산역 1번 플랫폼에 서 있었다. 손이 너무 차서 코트에 두 손을 넣었지만 공기가 너무 싸늘해 별 소용이 없었다. 경의중앙선 전철과 춘천행 열차가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 진입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고 안내방송이 뒤따랐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이번 열차가 어떤 열차인지를 알리는 다음 공지를 기다렸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냥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어떤 열차이고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가는지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광판에 안내되는 ‘지평’이라는 묵자를 볼 수 없는 사람은 지금 들어온다는 그 열차가 지평행 전철인지 춘천행 ITX 열차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그것을 깨닫고 몹시 당황한 채로 지평,이라는 글자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지평행이다. 그것은 안내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lt;br /&gt;
보면 되니까. &lt;br /&gt;
토요일 오전 열한시라는 묵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묵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산역 1번 플랫폼에도 있을 수 있으며 그가 동행인 없이 홀로 서서 열차를 기다릴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 고려되지 않는다. 용산역 1번 플랫폼의 상식에 그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없다⋯⋯ 나는 아직 그것을 볼 수 있었으므로 거기 있었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상식의 세계라는 묵자의 플랫폼에서, 다시 한번.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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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826 부메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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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4개)&lt;/p&gt;
&lt;hr /&gt;
&lt;div&gt;부메랑 - 새로운 몰락의 시작, 금융위기와 부채의 복수     &amp;lt;br&amp;gt;&lt;br /&gt;
마이클 루이스 (지은이),김정수 (옮긴이)비즈니스북스2012-02-10원제 : Boomerang (2011년)&lt;br /&gt;
&lt;br /&gt;
p. 23&lt;br /&gt;
&lt;br /&gt;
당시 미국 정부는 베어 스턴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저질러놓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조 달러에 이르는 부실 증권 관련 위험을 다양한 형식으로 흡수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다른 부유한 선진국 정부들이 취하는 것과 동일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간 금융기관의 고액 봉급자들이 저지른 부실 대출을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떠안았던 것이다. &amp;lt;br&amp;gt;카일 배스의 견해에 따르면 금융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부유한 선진국들의 전적인 신뢰와 신용으로 억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배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 토론에 집중하다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들은 일부 채권의 부도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부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amp;lt;br&amp;gt;그들의 번뜩이는 투자이론은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amp;lt;br&amp;gt;2002년부터 부유한 여러 선진국들에 거품 경기가 있었다. 외형상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사람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돈을 빌려 이룬 것이었다. 2002년 이후 전 세계의 부채는 공채와 사채를 합해 대략 84조 달러에서 195조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배스는 “세계 역사상 이토록 엄청난 부채가 쌓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lt;br /&gt;
&lt;br /&gt;
p. 63&lt;br /&gt;
&lt;br /&gt;
현재 세계 금융위기의 감춰진 원인 중 하나는 위기가 올 것을 예상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널리 알리려 하기보다 매도포지션으로 많은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슬란드를(혹은 리먼 브러더스를) 금융 범죄로 확실하게 고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이익만 돌보는 어리석은 모리배 취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p. 69&lt;br /&gt;
&lt;br /&gt;
사실 아이슬란드에서는 누구나 총리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대여섯 명 정도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amp;lt;br&amp;gt; “아이슬란드인은 모두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세계적인 금융인으로 대접받는 겁니다.” &amp;lt;br&amp;gt;그들이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총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아이슬란드인에게 국가 붕괴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슬란드 금융정책 수립자들은 금융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상무장관은 철학자, 재무장관은 수의사, 중앙은행 총재는 시인이었다. 호르데 총리는 교육을 받은 경제학자지만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대학 경제학과는 그를 B- 학생으로 평가했다. &amp;lt;br&amp;gt;독립당의 지도자들은 금융에 무지하면서도 유능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금융 공황을 전공한 런던 대학 경제학부의 아이슬란드인 교수 욘 다니엘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n Danielsson&amp;lt;/span&amp;gt;)이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이는 아이슬란드 대학의 다른 저명한 금융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똑똑한 중앙은행장들의 충고도 무시했다. &amp;lt;br&amp;gt;독립당과 그 총리가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을 차에 태우고 가다가 유명한 건물을 찾지 못해 헤맬 때, 아내가 불평을 해도 차를 세우고 방향을 물어보지 않는 부류다. &lt;br /&gt;
&lt;br /&gt;
pp. 75~76&lt;br /&gt;
&lt;br /&gt;
새로운 부를 통해 아이슬란드는 변모했다. 1,100년 동안 외딴 벽지이던 그곳은 비외르크를 낳은 곳으로 바뀌었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이 나온 이유는 그들에게 음악 연주를 비롯해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유학을 가는 것은 물론 온갖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어업 정책으로 변화가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 ‘대구’는 박사학위를 위한 도구로 탈바꿈했다. &amp;lt;br&amp;gt;물론 그런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무언가 다른 일을 찾았다. 그 일이 아이슬란드의 다른 천연자원, 즉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에 취직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포와 펄펄 끓는 용암은 어마어마한 동력을 생산했지만 석유와 달리 이 에너지는 수출이 불가능해 수익성이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동력은 아이슬란드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그 문제 앞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막대한 양의 동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일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찾아낸 해답은 알루미늄 제련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amp;lt;br&amp;gt; “아이슬란드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이슬란드인은 어떤 일에 적합할까?” &amp;lt;br&amp;gt;자신이 알루미늄 제련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아이슬란드인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2004년 거대한 제련공장 건설에 착수한 아이슬란드 최대의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lcoa&amp;lt;/span&amp;gt;)는 아이슬란드에만 존재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민속 문화에 깊이 젖은 아이슬란드인 중에 엘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elf&amp;lt;/span&amp;gt;) 요정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알코아는 제련소를 세우기에 앞서 울타리로 둘러싼 공장 부지를 샅샅이 조사해 땅 위나 밑에 엘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알코아 대변인이 내게 말한 대로 그것은 정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공장 부지에 엘프가 없다고 선언하려면 전문가를 고용해 작업을 하느라 돈과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변인은 “회사로서는 엘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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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93&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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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 부문의 거의 세 배나 된다. 가령 국영철도는 연간 임금이 4억 유로에 기타 지출이 3억 유로인데 비해 연간 수익은 1억 유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영철도 직원의 연간 소득은 평균 6만 5,000 유로(약 9,500만 원)다. 재무장관을 지낸 스테파노스 마노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fanos Manos&amp;lt;/span&amp;gt;)가 그리스의 철도 승객 전체를 택시에 태우는 것이 더 싸게 먹힐 것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노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amp;lt;br&amp;gt;“우리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파산한 국영철도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평균 임금 수준이 그렇게 높은 민간회사는 단 한 곳도 없어요.” &amp;lt;br&amp;gt;그리스의 공립학교 제도도 기막힌 비효율성의 현장이다. 유럽에서 최저 등급에 속하면서도 공립학교 학생당 교사 수는 최고 등급인 핀란드보다 네 배나 많다. 여기에다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그리스인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과외교사를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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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01&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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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탈세가 적발될지라도 세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잘 무마할 수 있다. 물론 뇌물을 받는 세무원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그건 허울뿐이다. &amp;lt;br&amp;gt;“세무원을 적발할 경우 기소하는 데만 7, 8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amp;lt;br&amp;gt;소득에 대한 조직적인 속임수 때문에 탈세가 어려운 세금, 즉 부동산세와 판매세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었다. 부동산은 각 주택에 대해 소위 객관적 가치를 산출하는 공식(산출 과정에서 세무원을 배제하기 위한)에 따라 과세를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에 걸쳐 그리스 경제가 호황을 이룬 까닭에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자산의 실제 가치가 컴퓨터를 통한 평가액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감안해 산출 공식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amp;lt;br&amp;gt;그러자 그리스 시민들은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대로 보고하지 않고, 허위 가격을 보고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응했다. 그 허위 가격은 대개 낡은 공식이 평가한 낮은 가격과 일치했다. 가령 구매자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을 경우 객관적 가치로 대출을 받고 그 차액은 현금 혹은 사채로 해결했다. 물론 객관적 가치는 실제 대지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다. 놀랍게도 그리스 의회의 의원 300명 모두 자기 집의 실제 가치를 컴퓨터가 산출한 객관적 가치로 신고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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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19&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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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물질적인 세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 괴상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세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도 아닌 수도사들이 어떻게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에서 그리스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혔을까? &amp;lt;br&amp;gt;두 시간쯤 지난 뒤 내가 용기를 내서 묻자, 놀랍게도 그는 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캐비닛에 붙여놓은 표지판을 가리키더니 그리스어로 적힌 내용을 번역해주었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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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고집한다.’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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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광부로 출장을 갔을 때 그것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수도원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도 적용되는 성공의 비결” 이라고 말한 다음, ‘자신에게 던져진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확장하라’는 말과 ‘아니요, 하지만’보다 ‘네, 그리고’ 라는 말을 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amp;lt;br&amp;gt;“어리석은 자는 자존심에 얽매입니다. 늘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요. 이는 남을 속이거나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생활에 밝은 사람은 겸손하지요.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즉 비판이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협력합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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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47&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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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중반쯤 내 학생이던 젊은 은행원들이 일제히 TV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훌륭한 젊은이로 지금은 금융경제 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연착륙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lt;br /&gt;
&amp;lt;br&amp;gt;켈리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단정했다. 부동산 거품은 연착륙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품을 부풀리는 가장 확실한 요소는 사람들의 기대감이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이 영원히 상승하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순간, 그들은 부동산이 얼마나 무서운 장기투자인지 깨닫고 신속하게 시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즉시 시장은 붕괴하고 만다. 부동산 붐의 끝은 붕괴라는 얘기다. 켈리는 자신의 제자들이 TV에 출연해 금융 전문가 노릇을 하면서 엉터리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amp;lt;br&amp;gt;검색을 통해 켈리는 아일랜드 노동력의 5분의 1 이상이 현재 주택 건설업에 고용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흥미롭게도 아일랜드 건설업은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팽창한 상태였다(정상적인 경제의 경우 10퍼센트 미만). 아일랜드는 해마다 영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택을 새로 지었는데, 주택을 제공할 인구는 영국이 아일랜드보다 15배나 많았다. &amp;lt;br&amp;gt;켈리는 1994년 이후 더블린 주택의 평균 가격이 50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더블린의 일부 지역에서는 임차료가 구입 가격의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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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176~178&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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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결정은 이상하다 못해 자멸적으로 보인다. 소수의 금융인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1000억 유로에 가까운 빚을 졌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짓을 했다. 그들의 부채는 분명 개인적인 것이었음에도 아일랜드 국민은 그것이 마치 나라의 부채인 것처럼 상환할 책임을 졌다. 2년 동안 그들은 끽소리 못 하고 불가능한 짐을 지고 허덕여왔다. 더구나 2008년 9월 29일 이후에 이루어진 정책 결정은 모든 국민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옭아맸다. &amp;lt;br&amp;gt;2009년 1월, 아일랜드 정부는 앵글로 아이리시 뱅크를 국유화하고 340억 유로에 이르는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손실액을 떠맡았다. 2009년 말, 그들은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roubled Asset Relief Program&amp;lt;/span&amp;gt;)의 아일랜드판인 국가 자산 관리 공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AMA, National Asset Management Agency&amp;lt;/span&amp;gt;)를 설립했지만, 미국 정부와 달리 끝까지 손실을 떠맡아 아일랜드 은행들로부터 800억 유로에 이르는 쓰레기 같은 자산을 매입했다. &amp;lt;br&amp;gt;단 한 번의 결정으로 아일랜드는 침몰했다. 내가 레니한에게 그것에 대해 묻자 그는 마치 대화에 부적합한 주제라도 되는 듯 짜증을 냈다. 그는 그것이 좋은 결정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아일랜드의 금융 시장 규칙은 영국의 법률을 본뜬 것으로 채권자는 영국의 법률 아래 일반 예금자와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다시 말해 아일랜드 은행 채권 소유자를 구제하지 않고 예금한 일반 대중을 보호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었다.&amp;lt;br&amp;gt;어디서 들어본 듯한 얘기가 아닌가. 미국의 재무장관 행크 폴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ank Paulson&amp;lt;/span&amp;gt;) 역시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킨 것은 용감하고 원칙적인 행위가 아니라 파멸적인 행위였음을 깨달은 뒤, 법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amp;lt;br&amp;gt;두 경우 모두 법을 존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거짓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선순위 채권 소유자에게도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다. 모건 켈리의 설명을 들어보자. &amp;lt;br&amp;gt;“선순위 채권 소유자들은 정부에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정부는 국민을 징집할 수도 있고 사지로 보낼 수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amp;lt;br&amp;gt;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30일, 레니한은 은행의 부채를 보증하기 위해 메릴린치와 똑같은 주장을 폈다. 즉, ‘금융위기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금융 시장에 아일랜드 은행에 대한 대출은 곧 아일랜드 정부에 대한 대출이라고 알려라. 그러면 투자자들은 안심할 것이다.’ 이것이 레니한의 생각이었다. 그 누가 아일랜드 정부의 신용을 의심할 것인가? &amp;lt;br&amp;gt;몇 달 후, 은행의 손실이 너무 커져 정부를 파산시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일자, 레니한은 정부가 개인 투자자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시했다. 즉, 은행 채권을 저축 은행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손실을 떠맡지 않으면 예금자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amp;lt;br&amp;gt;그런 주장에 대해 채권을 소유하지 않은 저축 은행들로부터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정부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선물을 베푸는 것에 반대했다. ‘귀도 포크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Guido Fawkes&amp;lt;/span&amp;gt;)라는 금융 관련 폭로 블로그는 외국인 채권자 목록을 입수했다. 그 목록에는 독일 은행과 프랑스 은행, 독일 투자펀드, 골드만삭스가 포함되어 있었다(그렇다. 아일랜드인은 골드만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amp;lt;br&amp;gt;아일랜드는 분명 은행 손실로 파산했지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듬해 여름까지도 내게 여러 차례나 “아일랜드는 자금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 정부는 이듬해 6월까지 부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한 현금을 은행에 비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깨닫지 못했다. &amp;lt;br&amp;gt;사실 아일랜드는 2008년 9월 이후부터 갈수록 심하게 채권자들에게 휘둘려왔다. 이제 정부 소유가 된 은행은 파산을 막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에서 850억 유로에 달하는 단기대출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레니한은 재무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유럽 연합의 압력으로 IMF를 불러들이고 종합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이게 될 터였다.&lt;br /&gt;
&lt;br /&gt;
p. 213&lt;br /&gt;
&lt;br /&gt;
주차장으로 은폐한 그 벙커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명패만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에 벙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베를린 거리는 잘 꾸며놓은 성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amp;lt;br&amp;gt;개인적으로 책임을 덜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뉘우치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독일인이 조상들의 죄를 그토록 떠들썩하게 표현하는 까닭은 그것이 더 이상 개인적이거나 혹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물론 모두가 학살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amp;lt;br&amp;gt;만약 어떤 화성인이 그 역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베를린에 나타난다면, ‘유태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떻게 이곳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하며 궁금해할 것이다. 사실 독일에는 유태인이 거의 없거나 드물다. 베를린의 아메리칸 아카데미 소장 게리 스미스는 보다 현실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amp;lt;br&amp;gt; “독일인은 유태인을 거의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유태인은 거리가 먼 존재지요. ‘유태인’ 하면 그들은 먼저 희생자들을 떠올립니다.” &amp;lt;br&amp;gt;독일인은 희생자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더 유난스럽게 그들을 기념한다.&lt;br /&gt;
&lt;br /&gt;
pp. 225~226&lt;br /&gt;
&lt;br /&gt;
이들은 골드만삭스의 프롭 트레이딩과 월스트리트의 다른 대형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에 역배팅을 하려는 영악한 헤지펀드를 위해 공들여 설계한 베팅의 먹이가 될 사람들이었다. 뢰티그는 IKB의 포트폴리오가 2005년 100억 달러에서 2007년 200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말했다.&amp;lt;br&amp;gt; “매입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마 그 액수는 더 커졌을 겁니다. 그들은 시장 붕괴했을 때도 여전히 매입하고 있었죠. 300억 달러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amp;lt;br&amp;gt;2007년 중반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모든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월스트리트의 여러 인사가 내게 말했듯 ‘전 세계’의 마지막 채권 매입자들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고집 센 독일인이었다. IKB가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로 1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지 않은 것은 오로지 시장이 기능을 멈춘 덕분이었다. 어떤 사건, 어떤 사실, 어떤 정보도 그들의 투자 방향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amp;lt;br&amp;gt;외형상 IKB의 독일인 채권 트레이더들은 시티그룹, 메릴 린치, 모건 스탠리의 무모한 트레이더들과 비슷했다. 그들 역시 어리석은 베팅을 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그들이 전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의 위험을 모른 체함으로써 자기 회사를 무너뜨렸지만, 그들 자신은 그 거래로 돈을 벌었고 대부분 그에 따른 해명을 요구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은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고도 돈을 벌었으며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독일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1년에 대략 10만 달러를 받았고 상여금도 기껏해야 5,000달러 정도였다. 이처럼 독일의 은행원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은행을 파산시킨 대가를 쥐꼬리만큼 받았는데, 이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트레이더들과 달리 독일 대중에게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 IKB의 전 CEO 슈테판 오르자이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efan Ortseifen&amp;lt;/span&amp;gt;)은 징역형을 받았고(이후 집행 정지됨) 은행으로부터 봉급 80만 5,000유로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lt;br /&gt;
&lt;br /&gt;
pp. 253~260&lt;br /&gt;
&lt;br /&gt;
===— 미국 안의 그리스 사태, 캘리포니아===&lt;br /&gt;
주지사 소환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중에 〈터미네이터 3&amp;gt;가 개봉되었다. 그때 문득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amp;lt;br&amp;gt; “갑자기 정치에 마음이 끌리더군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난 제이 레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ay Leno&amp;lt;/span&amp;gt;, 미국 ABC방송 &amp;lt;투나잇 쇼&amp;gt; 진행자 — 옮긴이)에게 출마하겠다고 말했죠. 그리고 2개월 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amp;lt;br&amp;gt;해변을 벗어나 평면 도로를 달리던 그는 4차선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 이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amp;lt;br&amp;gt;사람들이 내게 물었어요.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참모들은 누구인가? 난 계획도 없었고 참모도 없었죠. 제이 레노한테 갈 때까지 출마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amp;lt;br&amp;gt;그는 뜻하지 않게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는 정부가 해결책이라기보다 오히려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부는 주민보다 정치인이나 다른 공무원들을 위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슈워제네거는 미국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행동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담한 결정을 내렸고 대가를 받고 청탁을 들어주는 일이 없었으며 반대자를 공정하게 대우했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신속하게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amp;lt;br&amp;gt;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자신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한 보기 드문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어긋나는 의제를 추진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즉각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그의 전 수석보좌관 수잔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lt;br&amp;gt;“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죠. 하지만 그는 늘 상관없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한 일 중 90퍼센트는 좋은 결과를 얻었죠.” &amp;lt;br&amp;gt;하긴 평생 민주당원으로 살아온 수잔을 고용한 것도 공화당원 지사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amp;lt;br&amp;gt;임기 2년째로 접어든 2005년 중반, 그는 장기적으로 모든 주민에게 유익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단기적인 욕구를 버리도록 설득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캘리포니아 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했다.&amp;lt;br&amp;gt; “내게 충격적인 순간들이 있었지요. 교도관의 연금을 개혁하려 하자 갑자기 공화당원들이 일제히 결집해 반대를 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일은 되풀이해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그래요, 이건 최고의 아이디어군요! 그 안에 찬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찬성표를 던지면 어떤 이익집단이 내게 화를 낼 겁니다. 그게 내가 찬성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군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 가는데, 그들은 정치 생명이 위태롭다는 이유로 옳은 일을 마다했으니까요.” &amp;lt;br&amp;gt;결국 슈워제네거는 비장의 카드, 즉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2005년 11월, 4대 개혁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4대 개혁이란 정부 지출 제한, 선거구의 게리맨더링(&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gerrymandering&amp;lt;/span&amp;gt;,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 — 옮긴이) 금지, 공무원 노조의 선거 지출 제한 그리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전임교사가 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4대 개혁안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주 정부의 점점 심각해지는 재정 위기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투표에서 패배했고, 그는 임기 말까지 사실상 권력 누수에 시달렸다. &amp;lt;br&amp;gt;&amp;lt;캘리포니아 붕괴&amp;gt;(&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liformia Crackup&amp;lt;/span&amp;gt;)라는 흥미로운 책은 이 문제를 좀 더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는 언론인이자 초당파적 싱크탱크인 조 매튜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e Mathews&amp;lt;/span&amp;gt;)와 마크 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rk Paul&amp;lt;/span&amp;gt;)인데, 그들은 슈워제네거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amp;lt;br&amp;gt;캘리포니아 주는 극히 당파적인 선거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대개는 당파적인 사람을 공직에 선출하며 그들이 새로운 조세 제도를 시행하거나 규모가 큰 지출을 결정하려면 의회에서 3분의 2의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 만약 공통적인 의제가 생길 경우, 주 정부는 주도적으로 유권자의 힘을 빌려 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기 제한을 감안하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최대한 경멸을 조장할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비선출직 공무원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오래 근무하므로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정치인에 대한 주민의 혐오감은 깊어진다. 마크 폴이 말한 대로 ‘경멸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선출한 사람을 최대한 경멸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amp;lt;br&amp;gt;마크는 깊이 살펴보면 그러한 상황은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amp;lt;br&amp;gt;“모든 여론조사를 보면 주민들은 서비스를 원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민들은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얻고 있다.” &amp;lt;br&amp;gt;정부를 경멸한다고 주장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빚을 지게 되었다. 2011년에 캘리포니아의 일반 주민은 수입이 4만 3,000달러인데 비해 부채는 7만 8,000달러였다. 지도자들은 짧은 임기일망정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취임하지만, 이내 그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mp;lt;br&amp;gt;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 정치의 문제는 개인적이며, 제도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정치를 초월해 지도자가 독립적으로 주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는 슈워제네거의 등장은 최고의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amp;lt;br&amp;gt; “주지사 소환 자체는 새로운 정부, 새로운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이었다. 슈워제네거는 임기 중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공화당원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민주당원처럼 굴기도 했다. 그는 최대한 의회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없을 경우 그는 의원들을 가리켜 계집애 같은 사내들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런 다음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의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amp;lt;br&amp;gt;&lt;br /&gt;
===— 미래를 저당잡히다===&lt;br /&gt;
슈워제네거의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주지사로서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근로자 보상제도를 개혁하고 공개 예비 선거를 치를 수 있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의회가 아닌 공정한 위원회가 선거구를 정하게 했다. 그러나 주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고 지출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사실상 모두 패배했다. &amp;lt;br&amp;gt;임기 첫해에 슈워제네거는 지출을 삭감하려 했지만 삭감할 수 있는 것은 정부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항목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해 임기 말에 그는 공화당 의원 네 명을 설득해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절대 다수를 확보한 뒤, 소폭의 세금 인상안을 간신히 통과시켰다. 그를 도와준 공화당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의석을 잃었다. &amp;lt;br&amp;gt;2003년 7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그는 자신에게 주 정부의 재정 문제를 바로잡을 권한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2011년 25퍼센트 미만의 지지율에다 바로잡은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amp;lt;br&amp;gt; “나는 상식에 따라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전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를 소환한 것은 유권자였고 나를 선출한 것도 유권자였습니다. 그러니 주지사 임무를 수행할 도구를 건네주는 것도 유권자여야 하겠지요. 그런데 유권자들은 그 도구를 빼앗아가더군요.” &amp;lt;br&amp;gt;슈워제네거의 경제 담당 보좌관 데이비드 크레인은 우울한 재정 통계 수치의 긴 목록을 작성했다. 예컨대 슈워제네거가 사임할 때 주 공무원들의 연금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취임할 때보다 두 배나 늘어나 있었다. 주 정부가 공무원에게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액수와 당장 지급할 수 있는 액수의 공식적인 차이는 대략 1,050억 달러였다. 그것은 회계상의 조작일 뿐 실제 수치의 절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크레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amp;lt;br&amp;gt; “2011년에 주 정부는 공무원의 봉급과 복지 혜택을 위해 320억 달러를 직접 지출할 예정인데, 이는 지난 10년에 걸쳐 65퍼센트가 상승한 수치입니다. 반면 고등교육에 대한 주 정부 지출은 5퍼센트 감소하고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는 단 5퍼센트 상승했죠. 공원과 오락시설도 약간 감소했습니다. 전체 예산에서 급속히 상승하는 고용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amp;lt;br&amp;gt;&lt;br /&gt;
크레인은 정부에 대해 특별히 적대감이 없는 평생 민주당원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그 수치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2010년 주 정부는 3만 명 미만의 교도관과 다른 교도소 시설 직원에게 60억달러를 지출했다. 마흔다섯 살에 교정직에 근무하기 시작한 교도관은 5년 뒤 봉급에 가까운 연금을 받고 은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공무원은 주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가석방 심사 담당 정신과의사다. 2010년에 그는 83만 8,706달러를 벌었다. 교도소에 60억 달러를 지출한 그 회계연도에 고등교육, 즉 학생 67만 명이 있는 서른세 개 캠퍼스에는 겨우 47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30년에 걸쳐 주 예산 가운데 캘리포니아 대학을 위한 몫은 30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1980년에는 한 학생이 수업료로 연간 776달러를 지불했지만 2011년에는 1만 3,218달러를 지불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캘리포니아 주의 장기적인 미래가 희생을 당하고 있었다. &amp;lt;br&amp;gt;이런 일련의 사실과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접한 보통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년간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를 지낸 슈워제네거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뜻대로 정치를 펼치지 했음에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amp;lt;br&amp;gt; “그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린 멋진 시간을 보냈죠! 물론 좌절할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같은 삶을 원하죠. 난 특이한 상황에서 선출되었고 특이한 상황에서 떠났을 뿐입니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이처럼 떼를 써서는 안 되지요.” &amp;lt;br&amp;gt;특이한 상황이란 끝없이 지속되어온 재정 위기를 뜻한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인터넷 거품 뒤에 파산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고 주택 거품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물러났다. &amp;lt;br&amp;gt;그가 캘리포니아 경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처음 알아챈 것은 2007년 중반이었다. 예산 협의를 마무리한 그는 비록 거짓이긴 했지만 예산이 균형을 이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치에 도달했다. 그때 한 보좌관이 그에게 그달의 세수입이 예상보다 적다는 경고를 날렸다. &amp;lt;br&amp;gt;“갑자기 그달의 세수입이 3억 달러나 부족했습니다. 아차, 싶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amp;lt;br&amp;gt; 그 직후 그는 백악관을 방문해 늘 그렇듯 낙관적인 연설을 했다. &amp;lt;br&amp;gt;“마지막에 그 친구가 내게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밖에 나가 떠들어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주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죠. 딱 한마디 하더군요. ‘수치를 몇 가지 살펴봤는데 문제가 추해질 겁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는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았어요.” &lt;br /&gt;
&lt;br /&gt;
p. 283 &lt;br /&gt;
&lt;br /&gt;
그런 협상 과정에서 그들은 미래에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은연중 암시한다. 그들이 그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결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낙관주의는 때로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을 보상해주는 묘한특성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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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09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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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5개)&lt;/p&gt;
&lt;hr /&gt;
&lt;div&gt;[[image:Successluck.png]]&lt;br /&gt;
&lt;br /&gt;
머리말이 가장 중요한 논지를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하므로&amp;lt;ref&amp;gt;물론 누진소득세이야기로 책 말미를 가득채운 저자는 그렇게 생각 안할 수도 있다&amp;lt;/ref&amp;gt;, 머리말을 모두 옮겨두기로 했다. 중간중간 옮기고 싶은 부분들도 물론이다.&amp;lt;ref&amp;gt;이게 다 거저에 가까운 [https://cloud.google.com/vision/ 구글OCR]의 힘이다&amp;lt;/ref&amp;gt; 머리말 만큼이나 [[1009_실력과_노력으로_성공했다는_당신에게#241|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이다. 등장하는 사례나 연구의 출처를 알고자 하는이는 책을 사서 보기로. ㅎㅎ&lt;br /&gt;
&lt;br /&gt;
===머리말(pp.11~20)===&lt;br /&gt;
행운이란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lt;br /&gt;
이보다 확실하게 구분하는 질문도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lt;br /&gt;
주장하는 것처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재능이 &lt;br /&gt;
뛰어나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lt;br /&gt;
지적대로, 비슷한 재능으로 비슷하게 노력하는 다른 수많은 &lt;br /&gt;
사람은 왜 그만큼 부를 이루지 못할까.&lt;br /&gt;
&lt;br /&gt;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운이 인생의 &lt;br /&gt;
중대한 성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lt;br /&gt;
나는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제대로 &lt;br /&gt;
바라보기 위해서, 이런 사실이 일으키는 흥미롭고도 때로는&lt;br /&gt;
예상치 못한 영향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부제는 원래 ‘개인적 견해’였다. 내 이야기가 행운에&lt;br /&gt;
대한 나 자신의 경험을 많이 담고 있다고 확실히 언급해두지 않으면&lt;br /&gt;
독자들이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서 이 부제를 택했다.&lt;br /&gt;
하지만 프린스턴대 출판부 편집자들은 ‘개인적 견해’라는 부제가 &lt;br /&gt;
이 책을 자서전이라고 오해할 여지를 남긴다며 나를 설득했다.&lt;br /&gt;
그들의 걱정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지극히 타당한 이야기였는데,&lt;br /&gt;
바로 유명 인사가 아닌 저자의 자서전은 독자들에게 그다지 &lt;br /&gt;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나는 대부분 선진국 경제의 시장 구조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lt;br /&gt;
훨씬 더 실력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기 때문에, &lt;br /&gt;
출판사에서 대안으로 제안했던 부제 ‘행운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가 &lt;br /&gt;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내 우려는 오랜 시간을&lt;br /&gt;
함께한 어느 동료에게 책표지 시안을 보여주었을 때 그가 내비친&lt;br /&gt;
반응으로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회사가 가장 실력이 뛰어난 &lt;br /&gt;
지원자를 뽑으면 안 되는 거야?” 사실 나는 그 동료만큼이나 &lt;br /&gt;
족벌주의 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이다.&lt;br /&gt;
&lt;br /&gt;
물론 현실적으로 그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게 실력주의를 반영할 &lt;br /&gt;
수는 없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연줄이 있거나 금수저를&lt;br /&gt;
물고 태어나야 하는 세태가 지속되리라는 우려에서 부제를 ‘행운 &lt;br /&gt;
그리고 실력주의라는 신화’로 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주의의&lt;br /&gt;
지나친 미화가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실력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1958년 영국 사회학자(이후에는 상워의원) &lt;br /&gt;
마이클 영이 영국의 교육제도를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처음 &lt;br /&gt;
고안해낸 것이다. 『능력주의의 등장』이라는 책에서 그는 큰&lt;br /&gt;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 그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라고 &lt;br /&gt;
확대 해석하게끔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결국 모든 문제를 &lt;br /&gt;
실제로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2001년, 이 책을&lt;br /&gt;
되돌아보는 칼럼에서 그는 “직장에서 사람들을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lt;br /&gt;
것은 타당하지만, 일단 이들이 어떤 일에 유능하다고 인식되고 &lt;br /&gt;
나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여지가 없는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lt;br /&gt;
굳어지는데, 이런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lt;br /&gt;
그리고 비판의 의미로 만들었던 이 용어가 찬사에 가까운&lt;br /&gt;
수식어로 멋대로 쓰이고 있다는 점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lt;br /&gt;
&lt;br /&gt;
실력주의를 앞세우며 개인주의를 찬양하는 사회에서 돈을 가장 &lt;br /&gt;
많이 버는 사람들한테 그 성공에 약간의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면, &lt;br /&gt;
이는 그들이 실제로는 최고가 아니며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lt;br /&gt;
대단한 존재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들은 실력주의라는 &lt;br /&gt;
듣기 좋은 말로 성공과 실패가 종종 개인이 전혀 통제할 수 &lt;br /&gt;
없는 사건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숨겨왔던 것 같다. &lt;br /&gt;
2012년 프린스턴대 졸업 연설에서 마이클 루이스는 일어날&lt;br /&gt;
것 같지 않았던 일련의 우연한 사건이 그가 부유하고 유명한 작가가 &lt;br /&gt;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인정했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하루는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lt;br /&gt;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살로먼브라더스에 있는 거물급 인사의 부인 &lt;br /&gt;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를 좋게 봤는지 그녀는 저에게 괜찮은&lt;br /&gt;
자리 하나를 주라고 남편에게 거의 강요하다시피 굴더군요. 저는&lt;br /&gt;
살로먼브라더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월가가 오늘날 &lt;br /&gt;
우리 모두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장소로 변모하기 시작하던&lt;br /&gt;
시절이었는데, 살로먼브라더스가 바로 그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lt;br /&gt;
그곳에서 저는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는 금융시장을 주시하는 데&lt;br /&gt;
가장 좋은 자리를 덜컥 배정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 덕분에 &lt;br /&gt;
저는 주택 파생상품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1년 반&lt;br /&gt;
정도 지난 뒤로는 여러 전문적인 투자자에게 금융 파생상품에&lt;br /&gt;
대한 조언을 하는 대가로 살로먼브라더스로부터 수십만 달러를 받게 &lt;br /&gt;
되었습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루이스는 살로먼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월가의 새로운 금융&lt;br /&gt;
전략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한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를&lt;br /&gt;
1989년에 출간했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책 제목은 『거짓말쟁이의 포커』였습니다. 100만 부 이상 팔렸죠.&lt;br /&gt;
당시 스물여덟 살이던 저는 작가라는 경력과 약간의 명성 그리고 &lt;br /&gt;
엄청난 돈과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일거에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lt;br /&gt;
그러자 사람들은 내가 타고난 작가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lt;br /&gt;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사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하는 편이 &lt;br /&gt;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일 겁니다.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살로먼브라더스의 &lt;br /&gt;
거물급 인사의 부인 옆에 앉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lt;br /&gt;
이른 나이에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게 해준 월가 최고의 회사에서 &lt;br /&gt;
일하게 될 확률, 월가의 경제 상황을 가장 잘 지켜볼 수&lt;br /&gt;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앉게 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요? 아들과&lt;br /&gt;
의절하는 대신 한숨지으며 “네가 꼭 해야 한다면 해보라”고 말해주는 &lt;br /&gt;
부모를 만날 확률은요? 프린스턴대의 예술사 교수님이 하고&lt;br /&gt;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마음속 깊이 심어줄 확률, 무엇보다 &lt;br /&gt;
애초에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할 확률은 얼마일까요? &lt;br /&gt;
&lt;br /&gt;
그저 겸손한 척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 안에는 &lt;br /&gt;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어요. 제 사례는 성공이 항상 어떻게 &lt;br /&gt;
합리화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성공이 운 때문이었다는 &lt;br /&gt;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죠. &lt;br /&gt;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고 계속 성공을 이루어가면서 사람들은 그 &lt;br /&gt;
성공이 자신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lt;br /&gt;
인생에서 그저 운이 좋아 생겼던 일들이 결국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lt;br /&gt;
결코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도 이와 비슷한 &lt;br /&gt;
주제를 이따금 언급한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착각은&lt;br /&gt;
자신이 성공한 이유가 오직 좋은 머리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amp;lt;br/&amp;gt;&lt;br /&gt;
사실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리틀야구 &lt;br /&gt;
리그의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비게 해주고 도서관에서 책 읽는 &lt;br /&gt;
습관을 길러주고, 음악 레슨을 받게 해주면서 그들을 키웠던&lt;br /&gt;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부모가 그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이미 커다란&lt;br /&gt;
행운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이런 착각의 어두운 면은 자신의 행운에 대해 잘 느끼지 &lt;br /&gt;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불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잘 &lt;br /&gt;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라고 크리스토프는 주장한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그 결과는 정치세계의 천박함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살림살이가&lt;br /&gt;
팍팍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 부족으로 나타난다. 저소득층 &lt;br /&gt;
의료보장제도의 확대나 장기실업수당 지급, 물가 인상에 맞춘 최저임금&lt;br /&gt;
인상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면서 말이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크리스토프는 오리건주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고향 친구&lt;br /&gt;
릭 고프의 인생사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고프가 불과 다섯 살일&lt;br /&gt;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코올 중독자였던&lt;br /&gt;
아버지마저 고프와 세 형제자매를 버렸다. 고프를 아는 사람들은&lt;br /&gt;
하나같이 그가 아주 진실하고 믿음직한 친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lt;br /&gt;
그는 머리가 좋았지만 학교 성적은 형편없었다. 주의력결핍장애를&lt;br /&gt;
발견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lt;br /&gt;
제재소와 기계 조립 공장에서 매 순간 열심히 일했고 나중에는&lt;br /&gt;
유능한 주문 제작 자동차 도장공이 되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lt;br /&gt;
사고로 손을 심하게 다친 뒤, 장애연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얼마&lt;br /&gt;
안 되는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다. 결국 재정적으로 &lt;br /&gt;
어려움에 처한 전 부인을 돕겠다며 600달러를 지출하고는 중요한 &lt;br /&gt;
약물 치료를 받을 여력이 안 돼서 2015년 7월에 65세라는&lt;br /&gt;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lt;br /&gt;
&lt;br /&gt;
크리스토프의 결론은 이렇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사람들은 보통 성공을 전적으로 ‘선택’과 ‘개인적 책임’에 관한 &lt;br /&gt;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lt;br /&gt;
스탠퍼드대 사회학자인 숀 리어든이 지적하듯, “부유한 집 아이들은 나쁜 선택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 또한 항상&lt;br /&gt;
나쁜 것만은 아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마이클 루이스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심리학자들이 &lt;br /&gt;
진행한 실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프린스턴대 졸업 연설을 맺었다. &lt;br /&gt;
학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세 명씩 같은 성별로 묶고 작은 방에 &lt;br /&gt;
들여보낸 뒤 복잡한 도덕적 문제들을 풀도록 했다. 이를테면 &lt;br /&gt;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일에 대한 대처법 같은 문제였다.&lt;br /&gt;
각 집단에서는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을 임의로 골라 리더로&lt;br /&gt;
선정하도록 했다. 각 집단이 30분 동안 토의하고 나면,&lt;br /&gt;
심리학자들은 쿠키 네 개가 놓인 쟁반을 들고 방에 들어갔다.&lt;br /&gt;
&lt;br /&gt;
누가 나머지 한 개의 쿠키를 먹었을까? 그것은 바로 각 집단의&lt;br /&gt;
리더였다. 루이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리더로 뽑힌 사람에게 &lt;br /&gt;
특별한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30분 전에 가위바위보나&lt;br /&gt;
제비뽑기 같은 임의의 방법으로 뽑힌 사람이었다. 즉 리더라는 &lt;br /&gt;
지위는 단순한 운이었다. 그런데도 나머지 한 개의 쿠키는 리더의&lt;br /&gt;
몫이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lt;br /&gt;
&lt;br /&gt;
루이스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프린스턴대 졸업생들에게 이렇게 &lt;br /&gt;
말했다.&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대체로 여러분은 이런 집단의 리더로 지명되어왔습니다. 여러분이&lt;br /&gt;
리더로 선정된 것은 전적으로 임의의 방법을 통한 결과가 아닐 수도 &lt;br /&gt;
있습니다. 하지만 임의적인 측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인정해야 &lt;br /&gt;
합니다. 여러분은 운 좋은 소수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는 행운, &lt;br /&gt;
좋은 나라의 국민이라는 행운, 그리고 이렇게 운 좋은&lt;br /&gt;
여러분을 받아들여 또 다른 운 좋은 사람들과 사귀게 해주고 훨씬 &lt;br /&gt;
더 큰 행운을 누릴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프린스턴대학 같은 &lt;br /&gt;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여러분이 누리는 행운이지요.&lt;br /&gt;
여러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고, 어느&lt;br /&gt;
누구도 그 어떤 것을 위해 여러분의 이익을 희생하길 바라지 않는 &lt;br /&gt;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입니다.&amp;lt;br/&amp;gt;&lt;br /&gt;
여러분 모두는 항상 이런 식으로 여분의 쿠키를 즐겨왔습니다. &lt;br /&gt;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여분의 쿠키가 여러분 앞에 놓일 것입니다.&lt;br /&gt;
조만간 여러분은 그런 쿠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lt;br /&gt;
생각하게 될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lt;br /&gt;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면, 최소한 그런 체라도 한다면 &lt;br /&gt;
여러분은 더 행복해질 것이고 이 세상도 더더욱 좋아질 것입니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물론 자신의 성공에 행운이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는 &lt;br /&gt;
사람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환경을 창출하고 &lt;br /&gt;
유지하는 일종의 공공 투자를 다른 사람보다 더 지지하는 &lt;br /&gt;
경향이 있다. 또한 루이스가 예상한 대로, 이들은 다른 사람에&lt;br /&gt;
비해 훨씬 더 행복하다. 그리고 이들이 감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lt;br /&gt;
더 큰 물질적 풍요를 향해서 이들을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lt;br /&gt;
&lt;br /&gt;
앞으로 내가 펼칠 주장은 이렇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에 &lt;br /&gt;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lt;br /&gt;
인해 모든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러 공공 투자에&lt;br /&gt;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lt;br /&gt;
거슬리지 않는 공공 정책을 펼치면 이 공공 투자의 부족분을&lt;br /&gt;
메우고도 남을 충분한 자원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가 제시할 논거는 흔들리는&lt;br /&gt;
부분이 거의 없으며 그 전제 또한 논란의 여지가 없다. 프린스턴대 출판부의 &lt;br /&gt;
논평가들은 처음에 내가 다룰 수 있는 여러 주제를&lt;br /&gt;
추가하기 위해 많은 것을 제안했고, 그중에는 흥미로운 주제도&lt;br /&gt;
여럿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 논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주제는 &lt;br /&gt;
아니었기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책을 구상하면서부터 &lt;br /&gt;
목표가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독자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책을 쓰자, &lt;br /&gt;
독자들이 부담 없이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도록 두껍지 않은&lt;br /&gt;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 가장 진심 어린 바람은 이 책의 &lt;br /&gt;
내용이 여러분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그&lt;br /&gt;
울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픈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34~35===&lt;br /&gt;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가 지적하듯, 미국에서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 사이의 &lt;br /&gt;
상관관계는 0.5나 된다.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부모의 키와 자식의 키 사이에서&lt;br /&gt;
나타나는 연관성의 크기와 거의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lt;br /&gt;
여러분이 명석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각자가 &lt;br /&gt;
취해야 마땅한 첫 번째 조치는 바로 그런 부모를 선택하는&lt;br /&gt;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명석하고 열정이 넘치는 &lt;br /&gt;
사람이었다면, 과연 어떤 이론을 갖다 붙여야 그런 자질을 자기 &lt;br /&gt;
스스로 획득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부모를 선택하지도 &lt;br /&gt;
않았고, 자라온 환경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lt;br /&gt;
&lt;br /&gt;
===39~41===&lt;br /&gt;
사람들이 잘못된 믿음 탓에 계속 노력한다는 두 번째 측면은 &lt;br /&gt;
인간의 흥미롭고도 별난 특성을 암시한다. 여러 학자가 밝혀낸 &lt;br /&gt;
바에 따르면, 우리 중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도 &lt;br /&gt;
자신의 재능이 상위 50퍼센트 안에 든다고 믿는다. 이 말은&lt;br /&gt;
우리가 어떤 경쟁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현실과 달리&lt;br /&gt;
낙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현실을&lt;br /&gt;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면, 실제로 성공할 가능성이 생각했던 것보다&lt;br /&gt;
낮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면 노력 자체를 단념하거나 적어도 &lt;br /&gt;
힘이 빠지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lt;br /&gt;
&lt;br /&gt;
(중략) 언젠가 워런 버핏이 (중략)&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이 나라에서 혼자 힘으로 부를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lt;br /&gt;
저 밖에 공장 하나를 지었다고 칩시다. (⋯) 그러면 여기 우리가&lt;br /&gt;
낸 세금으로 건설한 도로를 통해 시장으로 상품을 운반할 것입니다. &lt;br /&gt;
역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가르친 직원들을 고용하겠죠. 여러분의 &lt;br /&gt;
공장은 안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금으로 유지하는 &lt;br /&gt;
경찰과 소방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이 공장을 지었고 &lt;br /&gt;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지요. 공장을 &lt;br /&gt;
키워서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회적 계약이 바탕을&lt;br /&gt;
이루고 있다는 점, 여러분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우리 사회의 &lt;br /&gt;
구성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81===&lt;br /&gt;
심지어 이름의 첫 글자가 성취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설명하는 &lt;br /&gt;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 예로, 상위 10위 안에 드는 각 대학 &lt;br /&gt;
경제학부 조교수들을 조사한 결과, 성의 첫 알파벳이 빠를수록 &lt;br /&gt;
종신재직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lt;br /&gt;
있다. 이 연구를 기획한 사람은 공동으로 쓴 논문일 경우 저자의&lt;br /&gt;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기재하는 경제학계의 관례가 이런 결과를&lt;br /&gt;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적지 않는 심리학계에서는 &lt;br /&gt;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131~137===&lt;br /&gt;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행동 연구를 통해 잘못된 믿음을 손에서 &lt;br /&gt;
놓지 않으려는 경향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한 예로, 왜 우리 &lt;br /&gt;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어떤 재능이든 간에 자신이 &lt;br /&gt;
상위 50퍼센트 안에 들리라고 믿는 것일까? 왜 그토록 많은&lt;br /&gt;
사람이 아주 명백한 근거 앞에서도 행운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lt;br /&gt;
것일까? 내가 제시하고 싶은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자신의&lt;br /&gt;
재능과 행운의 중요성에 대해서 더 현실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lt;br /&gt;
성공으로 가는 길 위에 산재해 있는 온갖 난관을 불굴의&lt;br /&gt;
의지로 극복하며 전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lt;br /&gt;
실제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무언가를 기꺼이 믿어버리는 습성이 &lt;br /&gt;
있다. 이 습성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새뮤얼슨은&lt;br /&gt;
비록 행동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lt;br /&gt;
검증된 수준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대체로 높게 평가한다는&lt;br /&gt;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실제로 9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lt;br /&gt;
운전 실력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lt;br /&gt;
자기 과실이 큰 교통사고로 입원한 운전자들조차 그렇게 평가한&lt;br /&gt;
비율이 80퍼센트 이상이다.&lt;br /&gt;
&lt;br /&gt;
자신이 속해 있는 인구 집단의 평균치보다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lt;br /&gt;
습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다리를 하나 이상 잃은 &lt;br /&gt;
소수의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다리가 셋 이상인 사람은 존재하지 &lt;br /&gt;
않으므로, 어떤 인구 집단의 평균적인 다리 개수는 2에 살짝 못 미치기 마련이다. &lt;br /&gt;
바꿔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평균보다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평균적인 운전 실력을 수치로 나타내는 척도는 무슨 수로 &lt;br /&gt;
정의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조사&lt;br /&gt;
대상자들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평균 이상의 운전자’라고 말한다면, &lt;br /&gt;
이는 ‘평균적인 운전자보다 더 능숙하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lt;br /&gt;
물론 전체적으로도 불가능한 그림이다. 전체 분포에서&lt;br /&gt;
절반에 해당되는 사람들 상위 50퍼센트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amp;lt;ref&amp;gt;문장이 어색한데 이 책 곳곳에, 특히 뒤로 갈수록 심하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우리는 스스로 꽤 잘하고 있다는 부정확한 믿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lt;br /&gt;
경향이 있다. 덕분에 관련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lt;br /&gt;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대학에 재직하는 교수들 가운데 70퍼센트가 &lt;br /&gt;
교수로서 자신의 능력이 상위 25퍼센트 안에 든다고&lt;br /&gt;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어느 경영대학원에&lt;br /&gt;
재학 중인 우수생들 가운데 87퍼센트가 자신의 학업 성적이 상위&lt;br /&gt;
50퍼센트 안에 든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왔다.&lt;br /&gt;
&lt;br /&gt;
이러 경향을 워비곤 호수 효과&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ake Wobegon Effect&amp;lt;/span&amp;gt;라 부른다. &lt;br /&gt;
워비곤 호수는 미국의 풍자작가 개리슨 케일러의 라디오 드라마에 나오는&lt;br /&gt;
‘모든 아이가 평균 이상’인 가상의 마을이다. 이 효과는&lt;br /&gt;
운전 실력처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특성이나 자질에서&lt;br /&gt;
한층 두드러진다. 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 가운데 오직 2퍼센트만이 &lt;br /&gt;
자신의 리더십 능력이 평균 이하라고 응답했으며, 사실상&lt;br /&gt;
모든 학생이 친구들과 잘 지내는 능력에서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lt;br /&gt;
평가했다.&lt;br /&gt;
&lt;br /&gt;
행운에 대한 잘못된 믿음 역시 흔하다. 이를테면 복권 당첨자들이 &lt;br /&gt;
당첨 번호를 콕 집어서 찾아낸 기법이나 통찰력에 대해 이따금 &lt;br /&gt;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식이다. 찰스 클롯펠터와 필립 쿡은 1991년 논문에서, &lt;br /&gt;
꿈에 나타난 이미지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lt;br /&gt;
당첨 번호를 알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인기 있는 책들을 검토했다. &lt;br /&gt;
여기에 등장하는 책들 가운데 저자들이 하버드 야드의 노점에서 구입한 &lt;br /&gt;
『알리 왕자의 행운별 다섯 개』를 보면 사과가 나오는 꿈은 416번, 벌레가 나오는 꿈은 305번, 무덤이 나오는 꿈은&lt;br /&gt;
999번, 목사가 나오는 꿈은 001번을 선택하라는 지침이 나온다.&lt;br /&gt;
&lt;br /&gt;
하지만 무작위로 당첨 번호를 뱉어내는 난수 발생기에 대해&lt;br /&gt;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당첨 번호를 예측하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잘 안다. 모든 가능한 번호가 균일한 &lt;br /&gt;
확률로 선택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lt;br /&gt;
사람들은 당첨 번호를 알아내는 기법이나 능력을 어떻게든 얻을&lt;br /&gt;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은 실패를 설명할 때는 운이 나빴다는 사실을 기꺼이&lt;br /&gt;
그리고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성공을 설명할 때는 행운의 영향을&lt;br /&gt;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근거와 믿음 사이에 또 &lt;br /&gt;
다른 단절이 발생한다.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는 투자자들 사이에서도&lt;br /&gt;
이런 경향이 흔히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동기가 부여된 &lt;br /&gt;
인식&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tivated cognition&amp;lt;/span&amp;gt;의 결과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사람들은 &lt;br /&gt;
자신에 대해서 좋게 느끼기를 원하고, 그래서 자신이 매우 유능하다고 &lt;br /&gt;
여기는 동시에 실패를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면 &lt;br /&gt;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가 더욱 빛날 것으로 본다는 주장이다.&lt;br /&gt;
&lt;br /&gt;
심리학자 로런 앨로이와 린 이본 에이브럼슨은 1979년 ‘더 슬프게, &lt;br /&gt;
그러나 더 현명하게’라는 부제가 달린 논문에서 이 이론에&lt;br /&gt;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앨로이와 에이브럼슨은 우울한 사람이 세상과 &lt;br /&gt;
자신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부정적인 믿음을 품게 하는 인지적 &lt;br /&gt;
편향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하는 기존 학설에 이의를 제기했다. &lt;br /&gt;
그들이 제시한 대안적 가설은 ‘우울증적 현실주의’였다.&lt;br /&gt;
이 가설에 따르면, 겉으로 정상인 사람보다 우울한 사람의 자기평가가 &lt;br /&gt;
실제로 더 정확하다.&lt;br /&gt;
&lt;br /&gt;
이 가설은 임상적으로 우울증이 있는 학생 집단과 우울증이&lt;br /&gt;
없는 통제집단을 비교하는 실험에서 비롯되었다. 두 집단의 실험&lt;br /&gt;
참가자들은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고 자신이 얼마나 잘했는지 스스로 &lt;br /&gt;
평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우울증이 있는 학생들의 자기평가는 &lt;br /&gt;
외부 관찰자의 평가와 유사했다. 하지만 통제집단의 학생들은 &lt;br /&gt;
달랐다. 성공한 과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여도를 시종일관 &lt;br /&gt;
과대평가했고, 실패한 과제에서는 자신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했다.&lt;br /&gt;
&lt;br /&gt;
이 논문은 상당한 논쟁을 불러왔고, 아직도 연구 결과에 대해서 &lt;br /&gt;
확고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을 견지하는 &lt;br /&gt;
것이 단기적으로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lt;br /&gt;
식으로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이들도 이런 믿음이 장기적으로는&lt;br /&gt;
상당한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까지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lt;br /&gt;
&lt;br /&gt;
장기적 손실의 가능성은 우리가 행복감을 선사하는 신경체계가 &lt;br /&gt;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동에 박차를 가하는 신경체계를 &lt;br /&gt;
적자생존 과정에서 형성했다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일맥상통한다. &lt;br /&gt;
자신이 어떤 경쟁에서도 승리할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lt;br /&gt;
승산이 없는 여러 경쟁에 발을 들임으로써 불필요한 손실을 &lt;br /&gt;
입을 수 있다. 아울러 자신의 실패를 운이 나쁜 탓으로 돌리는 &lt;br /&gt;
경향이 강한 사람들은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들여 성과를&lt;br /&gt;
개선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두 경향 모두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lt;br /&gt;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lt;br /&gt;
&lt;br /&gt;
잘못된 믿음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lt;br /&gt;
하지만 이 행복한 사람들이 현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lt;br /&gt;
수 있다면, 물질적인 측면에서 좀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lt;br /&gt;
이와 관련하여 내가 다음 장에서 검토할 한 가지 가능성은,&lt;br /&gt;
능력과 행운에 대한 더 정확한 믿음이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의&lt;br /&gt;
물질적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공공 정책에 대한 지원을 증가시킬 &lt;br /&gt;
수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믿음을 견지하는 자세가&lt;br /&gt;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경제학자 마이클 마노브는 그럴듯한&lt;br /&gt;
예를 든다. 그는 경제학부 부학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경제학자로서 &lt;br /&gt;
주특기를 발휘했다. (중략) 그는 부학장이라는 직책 탓에 동료들보다 &lt;br /&gt;
덜 행복해졌지만 더 부유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다윈주의적&lt;br /&gt;
투쟁에서는 얼마나 행복한가보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더&lt;br /&gt;
중요하다고도 했다. 마노브 자신이 생각하는 그 경험의 교훈은,&lt;br /&gt;
순진한 낙관주의가 필요한 때도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만약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 직면하게 되는 엄청난 어려움에 &lt;br /&gt;
대해 현실적인 평가를 내렸다면, 계속해서 전진하겠다는 용기를 &lt;br /&gt;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험에 뛰어든 사람들은 성공을 &lt;br /&gt;
향해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일을 해내는 &lt;br /&gt;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순진한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lt;br /&gt;
자체가 행운일지 모른다.&lt;br /&gt;
&lt;br /&gt;
===148~150===&lt;br /&gt;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인생에서 행운의 중요성을 기꺼이 &lt;br /&gt;
받아들일 확률이 더 높다는 사회 통념은 심리학자들이 진행한 &lt;br /&gt;
여러 연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패턴에는&lt;br /&gt;
수많은 예외가 있고, 그래서 정반대 견해도 있다. 상충하는 두 견해의 &lt;br /&gt;
차이점들을 살피면, 사회적 통념 수준을 넘어서는 미묘한&lt;br /&gt;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중도우파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lt;br /&gt;
브룩스는 2012년 대선 기간에 게재한 한 편의 칼럼으로&lt;br /&gt;
그 타협점을 훌륭하게 포착했다. 그 칼럼은 오하이오주에 거주하는 &lt;br /&gt;
어느 사업가의 편지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여론면 편집자님께&amp;lt;br/&amp;gt;&lt;br /&gt;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구어왔습니다. 정말&lt;br /&gt;
열심히 일했고, 제가 이룬 모든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lt;br /&gt;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기를, 사회적·정치적인 힘들이 제 사업의 성공을 도왔다는 겁니다. 밋 롬니는 이스라엘 방문에서 문화적인 힘이 &lt;br /&gt;
국가별 부의 격차를 설명해준다고 하더군요. 혼란스럽습니다.&lt;br /&gt;
제가 이룬 성공 가운데 제 힘으로 이룬 것은 얼마만큼이고, 남의&lt;br /&gt;
힘으로 이룬 것은 또 얼마만큼일까요? &amp;lt;br/&amp;gt;&lt;br /&gt;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amp;lt;br/&amp;gt;&lt;br /&gt;
어느 혼란스러운 독자 올림&amp;lt;/blockquote&amp;gt;&lt;br /&gt;
브룩스는 외적인 힘의 영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lt;br /&gt;
여러분의 인생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이&lt;br /&gt;
앞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뒤를 돌아보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다고 &lt;br /&gt;
답했다. 그가 콜럼버스의 어느 혼란스러운 독자에게 보낸 구체적인 &lt;br /&gt;
조언은 다음과 같다.&lt;br /&gt;
&amp;lt;blockquote&amp;gt;선생님은 앞으로 이루어나갈 모든 성취의 유일한 주인공이자 &lt;br /&gt;
과거에 이룬 모든 성공에 감사해야 하는 수혜자라고 스스로를 그렇게&lt;br /&gt;
여겨야 합니다 ⋯⋯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오롯이 &lt;br /&gt;
선생님의 힘만으로 이루어냈는지 생각해보는 단계를 거치기&lt;br /&gt;
마련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lt;br /&gt;
있다는 착각 속에서 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을만한 &lt;br /&gt;
것보다 대체로 더 좋은 것을 받았다는 인정과 함께 삶을 매듭지어야 합니다⋯⋯.&lt;br /&gt;
야심 찬 기업가로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에 대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lt;br /&gt;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lt;br /&gt;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정답일세, 브룩스 선생!&amp;lt;br/&amp;gt;&lt;br /&gt;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말했듯, “최고의 지성이란 두 가지 상반된 &lt;br /&gt;
생각을 동시에 품으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는 지성이&lt;br /&gt;
다”. 이 기준에 따르면, 행운이라는 문제를 명료하게 고찰하는 것은 &lt;br /&gt;
매우 높은 수준의 지성을 요구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 정치적 &lt;br /&gt;
스펙트럼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이 완전히 모순되는 &lt;br /&gt;
두 견해를 각각 지지하고 있으며, 우리는 상충하는 두 견해를 &lt;br /&gt;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반된 두 견해 모두&lt;br /&gt;
진실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lt;br /&gt;
없을 것이다.&lt;br /&gt;
&lt;br /&gt;
===153===&lt;br /&gt;
만약 여러분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회가 좋은 것이라는 내&lt;br /&gt;
생각에 동의한다면, 개인의 행운에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하는 &lt;br /&gt;
가장 중요한 행운은 바로 고도로 발전한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lt;br /&gt;
것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재능 있고 야심으로 가득 차 있다&lt;br /&gt;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다면 물질적 성공이란 &lt;br /&gt;
그림의 떡일 확률이 높다.&lt;br /&gt;
&lt;br /&gt;
===191~193===&lt;br /&gt;
왜 사람들은 조금 더 자제력을 발휘해서 이 무의미한 경쟁을&lt;br /&gt;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집을 구입하라고&lt;br /&gt;
의회가 명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가지 이유는 경쟁에서&lt;br /&gt;
손을 떼는 경우 진짜 고통이 뒤따르는데, 이 고통을 모면하기가&lt;br /&gt;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이웃들이 하는 만큼 집에 돈을 들일 수 없다는 사실은 그저&lt;br /&gt;
작고 불편해 보이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는 &lt;br /&gt;
여러분의 자녀들이 평균 이하의 학교에 가야 한다는 뜻일 수도 &lt;br /&gt;
있다. ‘좋은학교란 상대적인 개념이고, 대개 더 좋은 학교는&lt;br /&gt;
더 비싼 동네에 자리잡기 마련이다. 최소한 평균 수준의 학교에&lt;br /&gt;
보내려면 중산층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지역에서 평균적인 가격대의 &lt;br /&gt;
집을 사야 한다. 최상위 소득계층이 집에 더 많은 돈을 쓰는 &lt;br /&gt;
현상은 중산층의 주택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간접적인&lt;br /&gt;
원인이 된다.&lt;br /&gt;
&lt;br /&gt;
[[image:table71.jpg]]&lt;br /&gt;
&lt;br /&gt;
나는 중산층이 평균 수준의 학군에 있는 집을  임대하려면 한 달에&lt;br /&gt;
몇 시간이나 일해야 하는지 추적 조사하기 위해 ‘노역지수&lt;br /&gt;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oil index&amp;lt;/span&amp;gt;’ (도표 7.1을 보라)라는 단순한 척도를&lt;br /&gt;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동안 모든 사람의 소득이 &lt;br /&gt;
동일한 비율로 증가할&lt;br /&gt;
때, 이 지수는 거의 완벽하게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1970년 이후로 &lt;br /&gt;
소득 불균형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노역지수도 &lt;br /&gt;
더불어 올라갔다. 지난 10년 동안 노역지수는 한 달에 100시간 &lt;br /&gt;
정도였다. 하지만 1970년에는 42시간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요즘 미국 남성의 평균 실질 시급은 1980년대보다 낮다. 오늘날 &lt;br /&gt;
중산층 가정이 기본적인 목표들을 이루는 데 예전보다 더 많이 &lt;br /&gt;
지출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인구조사 자료를 &lt;br /&gt;
살펴보면 중산층 사람들에게 가중되는 경제적 고통의 여러 증상이&lt;br /&gt;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 가장 큰 카운티 100개 가운데&lt;br /&gt;
소득 불균형이 가장 급속도로 진행된 곳은 세 가지 중요한 경제적&lt;br /&gt;
고통의 증상인 이혼율과 장거리 출퇴근, &lt;br /&gt;
파산 신고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이기도 했다.&lt;br /&gt;
경제협력개발기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OECD&amp;lt;/span&amp;gt;에서 추적 조사한 선진국들의 경우,&lt;br /&gt;
소득 불균형의 악화는 (국가를 막론하고 시간이&lt;br /&gt;
호를수록) 노동 시간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lt;br /&gt;
&lt;br /&gt;
지출 폭포는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lt;br /&gt;
발생한다. 이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는 앞서 거론했던&lt;br /&gt;
결혼 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가장 부유한 &lt;br /&gt;
가정에서 벌이는 수백만 달러짜리 성년의 날 파티는 훨씬 낮은 &lt;br /&gt;
소득계층 가정의 성년식 지출을 결정하는 기준을 비슷한 방식으로 &lt;br /&gt;
올려놓는다.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중산층 아이들은 생일 &lt;br /&gt;
파티에 전문 광대나 마술사가 출연하지 않으면 실망한다. 부모에게는 &lt;br /&gt;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lt;br /&gt;
&lt;br /&gt;
===201===&lt;br /&gt;
누진소비세로 인해 열심히 일하고 미래에 투자하려는 동기가&lt;br /&gt;
약해질 거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 삶에서 중요한&lt;br /&gt;
것은 상대적 위치라는 다윈의 통찰을 깊이 음미한다면, 그렇지 &lt;br /&gt;
않다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어떤 규제나 세금 정책의 변화도 &lt;br /&gt;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다. &lt;br /&gt;
하지만 성공이란 거의 전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경쟁자보다 &lt;br /&gt;
더 낫다는 의미다. 누진소비세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이 &lt;br /&gt;
쓴다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lt;br /&gt;
&lt;br /&gt;
===218===&lt;br /&gt;
나는 학생들에게 누누이 이야기한다. 자신이 행운을 바라보는&lt;br /&gt;
방식은 결국 남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lt;br /&gt;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우연한 사건들은 언제, 누가 봐도 &lt;br /&gt;
이채로운 것이어서, 성공이 전적으로 자기 덕이라고 주장한다면 &lt;br /&gt;
실제 자기 몫에 비해 더 많은 공을 주장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lt;br /&gt;
이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리는 없다. &lt;br /&gt;
&lt;br /&gt;
===222~223===&lt;br /&gt;
어떤 사람을 매력적인 팀원으로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lt;br /&gt;
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자기 성취에 대해 너무&lt;br /&gt;
많은 공적을 주장하는 사람은 팀원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사실,&lt;br /&gt;
그리고 자기 성공에 행운이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lt;br /&gt;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한다는 사실에 우리가 동의할&lt;br /&gt;
수 있으면 좋겠다.&lt;br /&gt;
&lt;br /&gt;
===235~236===&lt;br /&gt;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우리 아이들』에서 주장하듯, 성공을 &lt;br /&gt;
촉진하는 환경을 재건하는 과업에는 중대한 도덕적 이유도 있다. &lt;br /&gt;
퍼트넘은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포트클린턴에 있는 가정에 &lt;br /&gt;
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소득 격차의 증가가 저소득층&lt;br /&gt;
가정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여러 기회를 어떻게 박탈하는지를 &lt;br /&gt;
설명했다. 이 사례 연구의 결과는 미국 교육부가 교육 추적&lt;br /&gt;
조사에서 확보한 체계적 데이터를 통해서 재확인할 수 있다. 대학 &lt;br /&gt;
졸업장 없는 성공이란 점점 더 어려운 도전 과제가 되었고, 이런 &lt;br /&gt;
추세는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lt;br /&gt;
한 예로 &amp;lt;도표 8.2&amp;gt;를 보자.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 중 8학년 &lt;br /&gt;
수학 점수가 상위 25퍼센트에 드는 아이들이 하위 25퍼센트에 &lt;br /&gt;
속하는 고소득층 가정의 아이들보다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쥘&lt;br /&gt;
확률은 더 낮게 나온다. 대학을 겨우 졸업한다고 해도 의료비보다 &lt;br /&gt;
더 빠른 속도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 탓에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lt;br /&gt;
학자금 대출의 엄청난 부담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lt;br /&gt;
&lt;br /&gt;
[[image:table82.jpg]]&lt;br /&gt;
&lt;br /&gt;
===238===&lt;br /&gt;
변화는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변화에 실패하면 더 큰 어려움이 &lt;br /&gt;
찾아오곤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빗장 공동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gated community&amp;lt;/span&amp;gt;’(담장으로 &lt;br /&gt;
둘러싸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고급 주택단지)같은 폐쇄적 공간에&lt;br /&gt;
거주하는 식으로 온갖 형태의 회피 전술을 동원해 최근 기간시설 &lt;br /&gt;
투자의 급격한 축소로 인한 폐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lt;br /&gt;
이외에 무수한 폐해로부터 벗어나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lt;br /&gt;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헬리콥터를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lt;br /&gt;
사람들로 넘쳐나는 공항이나 정비가 제대로 안 된 도로의 불편함 &lt;br /&gt;
및 위험성이 부자들만 비켜가는 것도 아니다. 공장을 소유한다고 &lt;br /&gt;
해서 유능한 인재를 배출해내지 못하는 학교 교육의 실패로부터 &lt;br /&gt;
자유로울 수도 없다.&lt;br /&gt;
&lt;br /&gt;
===241===&lt;br /&gt;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비교적 간단한 몇 가지 정책적 변화가&lt;br /&gt;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발전을 선사하는 까닭을 설명하려고 꾸준히 &lt;br /&gt;
애써왔다. 여러분도 이 책에서 제시한 아이디어가 말이 된다고&lt;br /&gt;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기 바란다. 만약 우리가 &lt;br /&gt;
현재 상황을 바꾸게 된다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 &lt;br /&gt;
덕분일 것이다. 여론의 형성 과정은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그러나 &lt;br /&gt;
중요한 사실은, 대화 상대가 무언가를 믿으면 자신도 그 무언가를 &lt;br /&gt;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lt;br /&gt;
용기를 내자. 나도 그랬다. 결론은, 비록 사회적 통념이 현실과 &lt;br /&gt;
동떨어진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좋은 주장이 한번&lt;br /&gt;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여론은 놀라운 속도로 뒤집힐 수 있다는 &lt;br /&gt;
것이다. 그리고 좋은 주장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lt;br /&gt;
대화를 통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여론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lt;br /&gt;
&lt;br /&gt;
===253===&lt;br /&gt;
[[image:tablea11.jpg]]&amp;lt;ref&amp;gt;우승자의 평균 행운점수. 참가자 수가 많을수록 행운이 매우 작게 작용하더라도 우승은 실력보다는 행운점수가 높은 사람의 차지가 된다. 실력이 높은 사람이 그만큼 많이 경쟁하기 때문&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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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03 아주 짧게 소개하는 수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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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1개)&lt;/p&gt;
&lt;hr /&gt;
&lt;div&gt;&lt;br /&gt;
Timothy Gowers (지은이), 박기현 (옮긴이) | 교우사(교재) | 2013-03-02&lt;br /&gt;
&lt;br /&gt;
얼마 전에 읽은 ‘수학이 필요한 순간’&amp;lt;ref&amp;gt;김민형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18-08-03&amp;lt;br/&amp;gt;&lt;br /&gt;
양장본 | 328쪽 | 130*197mm | 425g | ISBN : 9791186560785&amp;lt;/ref&amp;gt;보다 훨씬 더 좋은 책이다.&lt;br /&gt;
&lt;br /&gt;
===2=== &lt;br /&gt;
이러한 반대 의견에 ― 그중 일부는 분명히 다른 것들보다 더 심각한데 ― 비추어 볼 때, 계산과 거기서 나오는 예측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한 가지 접근법은 가능한 많은 반대 의견을 고려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나 훨씬 더 합리적인 대책은 정반대이다. 즉 어느 수준의 정밀도가 필요한지 정한 다음 가능하면 단순하게 이에 맞추는 것이다. 어떤 단순화 가정이 답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작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면, 그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lt;br /&gt;
&lt;br /&gt;
===20~21===&lt;br /&gt;
체스에서 흑의 왕은 무엇인가? 이 별난 질문에 대처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약간 옆으로 피하는 것인 듯하다.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듯 체스판을 가리고 게임의 규칙을 흑의 왕에게 특히 주의를 기울여 설명하는 이상 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흑의 왕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의 존재 또는 그 내재적 본질이 아니라 게임에서 하는 역할이다.&lt;br /&gt;
&lt;br /&gt;
수학에서 종종 말하는 추상적 방법은 수학적 대상에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음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학적 대상은 곧 그것의 역할이다. 비슷한 슬로건이 언어철학에도 여러 번 출현했으며, 이런 슬로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쉬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Ferdinand de Saussure&amp;lt;/span&amp;gt;)는 ‘언어에는 단지 차이만 있다’라고 하였고 비트겐슈타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udwig Wittgenstein&amp;lt;/span&amp;gt;)은 ‘단어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의 용법이다’라고 하였다(추가 참고 도서를 참조하라). 또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구호인 ‘한 명제의 의미는 그것의 검증방법이다’도 있다. 철학적 이유로 내 말이 탐탁지 않다면, 내 말을 독단적 선언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사실은, 내가 보이고자 하는 것처럼, 고등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lt;br /&gt;
&lt;br /&gt;
===39===&lt;br /&gt;
그 개념들을 구체화하여 이해하려고 하면 수수께끼같이 느껴지겠지만, 그것들이 &#039;&#039;&#039;무엇인가&#039;&#039;&#039;를 알려고 고민하지 말고 느긋하게 추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불가사의하지 않게 된다.&lt;br /&gt;
&lt;br /&gt;
===73===&lt;br /&gt;
다시 한번 우리는 무한을 포함하는 명제는 근사에 관한 더 복잡한 명제를 표현하는 편리한 방식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더 시사하는 바가 많을 수도 있는 또 다른 단어로 ‘극한’이 있다. 무한 소수는 유한 소수 수열의 극한이고, 순간 속도는 점점 더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재어 계산한 근사치의 극한이다. 수학자들은 종종 ‘극한에’ 또는 ‘무한에’ 무엇이 벌어지는지 말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이 말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하라고 하면 수학자들은 대신 근사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lt;br /&gt;
&lt;br /&gt;
===77===&lt;br /&gt;
넓이에 관해 다른 식으로, 어쩌면 더 명확하게, 말할 수도 있다. 만일&lt;br /&gt;
경계가 곡선인 도형이 정확하게 넓이가 12 제곱센티미터이고, 내가&lt;br /&gt;
이를 정사각형 격자를 이용하여 보여야 한다면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 무한히 많은 정사각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12가 &#039;&#039;&#039;아닌&#039;&#039;&#039;&lt;br /&gt;
예를 들어 11.9를 나에게 제의한다면 정사각형 격자를 이용하여 그&lt;br /&gt;
도형의 넓이가 그 수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남은&lt;br /&gt;
넓이가 0.1 제곱센티미터보다 작을 정도로 충분히 세밀한 격자를&lt;br /&gt;
택하기만 하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넓이가 12라는 것을 증명하는&lt;br /&gt;
대신에 넓이가 12 외의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면&lt;br /&gt;
무한을 사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도형의 넓이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수이다.&lt;br /&gt;
&amp;lt;ref&amp;gt;매우 인상적이어서 옮겨둠&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26===&lt;br /&gt;
사람들은 대개 수학이 몹시 깔끔하고 정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lt;br /&gt;
학교에서는 수학 문제가 간결하게 서술되면 그 답도 짧고 대체로&lt;br /&gt;
간단한 수식으로 주어질 것이라 기대하게 만든다. 대학 수준에서&lt;br /&gt;
수학 공부를 계속하면, 특히 수학을 연구하게 되면 곧 진실을 알게&lt;br /&gt;
된다. 많은 문제에 있어 해에 대한 정확한 공식을 찾았다면 이는&lt;br /&gt;
기적과 같고 완전히 뜻밖의 일로 여겨질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lt;br /&gt;
그저 대략적인 근사치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사치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근사치들이 보기 흉하고 성이 차지 않게 보인다.&lt;br /&gt;
그러나 수학에서 가장 위대한 정리들과 가장 흥미로운 미해결 문제&lt;br /&gt;
중 많은 것을 계속 놓치지 않으려면 근사치들을 음미할 수 있어야&lt;br /&gt;
한다.&lt;br /&gt;
&lt;br /&gt;
===143~145===&lt;br /&gt;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수학자 상은 ― 어쩌면 매우 &lt;br /&gt;
똑똑하지만, 또한 독특하고, 옷을 이상하게 입고,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모호하며, 반 자폐적인 ― 호감을 주는 모습이 아니다. 몇몇 수학자는 어느 정도 이런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만, 이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수학을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lt;br /&gt;
사실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 아마 괴짜보다 여러분이 우위에&lt;br /&gt;
있을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 중 단지 극소수만 마침내 수학연구자가 된다. 대부분 그 이전 단계에서, 예를 들면 흥미를 잃어서,&lt;br /&gt;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여, 박사 학위는 취득했지만 대학에서&lt;br /&gt;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다른 길로 가고 만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lt;br /&gt;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데, 이런 다양한&lt;br /&gt;
단계에서 생존한 사람들 중 괴짜의 비율은 처음에 학생들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보통 더 적다.&lt;br /&gt;
&lt;br /&gt;
수학자에 관한 이런 부정적 묘사가 수학을 즐기고 잘했을 사람들의&lt;br /&gt;
의욕을 떨어뜨려 해를 끼쳤을 수 있지만, ‘천재’ 라는 말이 끼친 폐해는 숨어서 작용하며 더 심각하고 클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천재의&lt;br /&gt;
정의는 대강 다음과 같다. 천재란 쉽게 그리고 젊은 나이에 아무도,&lt;br /&gt;
혹시 한다고 해도 몇 년의 수련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lt;br /&gt;
사람이다. 천재들의 성취에는 마법같은 특성이 있다 ― 그들의 두뇌는&lt;br /&gt;
우리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동작할 뿐 아니라 작동 방식 자체가&lt;br /&gt;
달라 보인다. 매 1, 2년마다 그 학생을 가르칠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lt;br /&gt;
사람들이 몇 시간이나 걸려 푸는 문제들을 어김없이 몇 분 안에&lt;br /&gt;
풀어내는 학생이 캠브리지에 입학하고 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lt;br /&gt;
그저 뒤로 물러서서 경탄할 뿐이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이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 항상 연구자로 가장 성공하는 것은&lt;br /&gt;
아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전에 다른 전문 수학자들이 시도하였지만&lt;br /&gt;
풀지 못한 문제를 풀고 싶어한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할 많은 자질 중에 &lt;br /&gt;
내가 위에서 정의한 천재성은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lt;br /&gt;
극단적인 예로, 앤드류 와일즈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ndrew Wiles&amp;lt;/span&amp;gt;)는 (40을 갓 넘긴 나이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x, y, z\)와 \(n\)이 양의 정수이고 \(n\)이 \(2\)보다&lt;br /&gt;
크면,  \(x^n + y^n\)은 \(z^n\)과 같을 수 없다)를 증명하여 세계에서 가장&lt;br /&gt;
유명한 미해결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그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lt;br /&gt;
똑똑하지만, 내가 앞서 정의한 의미의 천재는 아니다.&lt;br /&gt;
&lt;br /&gt;
여러분은 그러면 그가 어떻게 어떤 신비로운 특별한 두뇌 능력없이도&lt;br /&gt;
그런 일을 해냈는지 물을 것이다. 대답은, 그의 성취가 범상치&lt;br /&gt;
않기는 하지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범상치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lt;br /&gt;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lt;br /&gt;
대단한 용기, 결단력, 인내, 다른 수학자들이 한 매우 어려운 연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수학 분야를 연구하는&lt;br /&gt;
행운, 그리고 예외적인 전략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궁극적으로 마지막 자질이 유별난 두뇌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 &lt;br /&gt;
수학에서 가장 심오한 공헌은 많은 경우 토끼보다 거북이가 이룬다.&lt;br /&gt;
수학자들은 성장하면서, 다른 수학자들의 연구에서, 또 수학을 생각하면서 보낸 많은 시간의 결과로 다양한 요령을 배운다. 자신의 &lt;br /&gt;
전문지식을 사용하여 악명높은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lt;br /&gt;
것은, 크게 보면 조심스러운 계획의 문제이다. 조심스런 계획이란&lt;br /&gt;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시도하기, (하기 힘든 결정인)&lt;br /&gt;
언제 포기할지 알기, 가끔씩 세부 내용을 어떻게든 채우기 전에 미리&lt;br /&gt;
논증의 큰 윤곽을 그리기 등이다. 여기에는 천재성과 양립할 수&lt;br /&gt;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재성에 자동으로 딸려오는 것은 아닌 일정&lt;br /&gt;
수준의 성숙함이 필요하다.&lt;br /&gt;
&lt;br /&gt;
===146&amp;lt;ref&amp;gt;‘왜 여성 수학자들이 그렇게 적은가?’에 대한 대답&amp;lt;/ref&amp;gt;===&lt;br /&gt;
게다가 수학적 재능이 있는 소녀들은 역할 모델이 거의 없어서 상황이&lt;br /&gt;
악순환된다. 그다음 단계에서 작용할 수 있는 사회적 요인은&lt;br /&gt;
수학은 대부분의 학문보다 더 어떤 한 일에만 마음 쓰는 것(&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ingle-mindedness&amp;lt;/span&amp;gt;)이&lt;br /&gt;
필요한데, 이는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모성과&lt;br /&gt;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에 소설가 캔디아 맥윌리엄(&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ndia&lt;br /&gt;
McWilliam&amp;lt;/span&amp;gt;)이 자녀 한 명을 키울 때마다 책 두 권을 희생했다고 말한&lt;br /&gt;
적이 있다. 그래도 적어도 그녀는 소설에서 손을 뗀 지 몇 년 지난&lt;br /&gt;
뒤에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수학은 몇 년 쉰다면 공부하던 &lt;br /&gt;
흐름에서 벗어날 것이고 수학으로 복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lt;br /&gt;
&lt;br /&gt;
===150===&lt;br /&gt;
그러한 학생들은 더 추상적인 접근으로부터 얻는 바가 있을 수 있다. &lt;br /&gt;
2장에서 지적했듯이, 거듭제곱에 관해 알아야할 모든 것은 몇 개의 &lt;br /&gt;
매우 간단한 규칙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고, 그 중에서 가장&lt;br /&gt;
중요한 것은 \(x^{a+b} = x^ax^b\)이다. 만일 이 규칙이 강조되었다면, 위의&lt;br /&gt;
실수가 애초에 덜 생길 뿐만 아니라 고치기도 더 쉽다. 실수를 한&lt;br /&gt;
어린이에게 간단하게 적절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을 잊었다고 말해주면 &lt;br /&gt;
된다. 물론, 이 \(x^3\)이 \(x\) 곱하기 \(x\) 곱하기 \(x\) 라는 기본적인 사실에&lt;br /&gt;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은 규칙에 대한 정당화라기보다&lt;br /&gt;
규칙의 결과로 제시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나는 학생들에게 추상적 접근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lt;br /&gt;
싶지 않다. 다만 교사는 그 결과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lt;br /&gt;
하고 싶다. 요점은 어떤 수학적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밀하게&lt;br /&gt;
말할 수 없어도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lt;br /&gt;
이것이 좋지 않은 생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용법이 때로&lt;br /&gt;
더 가르치기 쉽고, 사용법을 넘어서 그리고 초월하여 어떤 의미가&lt;br /&gt;
있다면, 종종 그 의미에 대해 저절로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lt;br /&gt;
&lt;br /&gt;
===152===&lt;br /&gt;
6. 수학에서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가?&lt;br /&gt;
&lt;br /&gt;
역으로 수학적 연구의 가능성에 관해 무엇이 그렇게 역설적으로&lt;br /&gt;
보이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미해결&lt;br /&gt;
문제들을 언급하였는데, 수학적 연구는 주로 그것들과 그에 유사한&lt;br /&gt;
것들을 풀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7장을 읽었다면 문제를 생성하는&lt;br /&gt;
좋은 방법은 명확하게 분석하기에 너무 어려운 수학적 현상을 택&lt;br /&gt;
하여 그에 관한 근사적인 서술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lt;br /&gt;
다른 방법은 6장 끝에 제시되었는데, 4차원 다양체와 같은 어려운&lt;br /&gt;
수학적 개념을 선택하면, 그에 관한 간단한 질문일지라도 대체로&lt;br /&gt;
쉽게 답할 수 없다.&lt;br /&gt;
&lt;br /&gt;
수학적 연구에 관하여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lt;br /&gt;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 사실 불가능하게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lt;br /&gt;
내는 것은 아주 쉽다 ― 수천 명의 수학자를 열중하게 만들 적절한&lt;br /&gt;
난이도를 가진 문제가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수학자를 열중하게&lt;br /&gt;
하려면 그 문제들이 확실하게 도전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해결될 수&lt;br /&gt;
있다는 막연한 희망도 품게 만들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52~155===&lt;br /&gt;
7. 유명한 수학 문제가 어느 아마추어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까?&lt;br /&gt;
&lt;br /&gt;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하고 오해의 소지가 제일 적은 답은 솔직히&lt;br /&gt;
아니오이다. 전문 수학자는 아주 일찍 잘 알려진 문제에 관해 그가&lt;br /&gt;
생각한 그 어떤 아이디어도 그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었다는&lt;br /&gt;
것을 배운다. 어떤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이려면 왜 아무도 이전에&lt;br /&gt;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한다. 단순히&lt;br /&gt;
그 아이디어가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lt;br /&gt;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대체로 어떤 아이디어가 출현한다면 그저&lt;br /&gt;
갑자기 떠오르기보다 합당한 이유로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떠오른다면 왜 다른 이에게는 떠오르지 않아야 하는가?&lt;br /&gt;
더 그럴듯한 이유는 그 아이디어가 특별히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lt;br /&gt;
여러분이 배우고 소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다른 아이디어들과&lt;br /&gt;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다른 이들이 여러분 이전에&lt;br /&gt;
생각했을 확률을, 0 까지는 아니지만, 줄여준다.&lt;br /&gt;
&lt;br /&gt;
세계 곳곳에 있는 수학과에서는 꾸준하게 유명한 문제를 풀었다고&lt;br /&gt;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거의 예외 없이 이 ‘풀이’ 들은&lt;br /&gt;
그저 틀린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게 틀렸다. 일부는, 확실하게&lt;br /&gt;
오해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의 올바른 증명과는 너무 닮지 않아서&lt;br /&gt;
결코 풀이를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수학을 발표하는 관례를&lt;br /&gt;
조금이라도 따르는 것들은 논법이 맞는다면 수 세기 전에 발견되었을&lt;br /&gt;
매우 초보적인 논법을 사용한다. 이런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lt;br /&gt;
수학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독창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충분한&lt;br /&gt;
지식과 경험을 개발하기 위해 몇 년의 노력이 필요한지, 또는 수학을&lt;br /&gt;
할 때 협동 활동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이 없다.&lt;br /&gt;
&lt;br /&gt;
많은 연구 논문이 두 명 혹은 세 명의 저자로 되어 있긴 하지만, 내가&lt;br /&gt;
협동 활동이라 말할 때 수학자들이 큰 집단으로 연구한다는 뜻이&lt;br /&gt;
아니다. 그보다 내 말은 수학이 발전함에 따라 어떤 종류의 질문에&lt;br /&gt;
답하려면 없어서 안 될 새로운 기법이 발명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lt;br /&gt;
수학자 각 세대는 이전 수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한때 닿을 수 없는&lt;br /&gt;
것으로 여겨졌던 문제를 푼다. 여러분이 수학의 주류에서 고립되어&lt;br /&gt;
연구한다면 이러한 기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고, 그래서&lt;br /&gt;
여러분은 심하게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lt;br /&gt;
&lt;br /&gt;
이는 아마추어는 수학에서 결코 의미있는 연구를 할 수 없다는 뜻은&lt;br /&gt;
전혀 아니다. 사실 한두 사례가 있다. 1975년에 수학적 훈련을&lt;br /&gt;
거의 받지 않은 주부인 샌디에고의 마조리 라이스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rjorie Rice&amp;lt;/span&amp;gt;)는&lt;br /&gt;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cientific American&amp;lt;/span&amp;gt;)에서 문제를 읽고 평면을&lt;br /&gt;
(정오각형은 아닌) 오각형으로 덮는 새로운 방법 세 가지를 발견&lt;br /&gt;
하였다. 그리고 1952 년에 58세인 독일의 학교 교장 쿠르트 헤그너&lt;br /&gt;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Kurt Heegner&amp;lt;/span&amp;gt;)는 일세기 동안 미해결이었던 가우스의 유명한 추측을&lt;br /&gt;
증명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내가 말하는 바와 모순되지 않는다. 수학의&lt;br /&gt;
본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더러 있으며, 그리고&lt;br /&gt;
그러한 문제에는 기존의 수학적 기법을 아는 것이 특별히 도움이&lt;br /&gt;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오각형 덮기를 찾는 문제도 그런 종류였다. &lt;br /&gt;
전문 수학자가 재능있는 아마추어보다 그것을 풀기에 더 잘&lt;br /&gt;
갖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이스의 성취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는&lt;br /&gt;
아마추어 천문가의 성취와 꽤 유사하다 ― 그에 따르는 명성은 오랜&lt;br /&gt;
탐색에 대한 아주 당연한 보상이다. 헤그너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lt;br /&gt;
전문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고립되어 연구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lt;br /&gt;
모듈라 함수에 관하여 가르쳤다. 여기서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lt;br /&gt;
없다 ― 사실 그것은 보통은 학부 수학 과목으로서도 너무 상급으로&lt;br /&gt;
여겨진다.&lt;br /&gt;
&lt;br /&gt;
흥미롭게도 헤그너는 증명을 완전하게 통용되는 방식으로 상세하게&lt;br /&gt;
쓰지 않아서 논문이 마지못해 게재되었지만 여러 해 동안 틀린 것으로 &lt;br /&gt;
여겨졌었다. 1960년대 말에, 독립적으로 알란 베이커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lan&lt;br /&gt;
Baker&amp;lt;/span&amp;gt;)와 해롤드 스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arold Star&amp;lt;/span&amp;gt;)에 의하여 그 문제는 다시 풀렸고, &lt;br /&gt;
그때서야 헤그너의 연구가 조심스럽게 다시 조사되어 결국 옳은 &lt;br /&gt;
것으로 밝혀졌다. 유감스럽게도 헤그너는 1965년에 세상을 떠서&lt;br /&gt;
생전에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lt;br /&gt;
&lt;br /&gt;
===156~157===&lt;br /&gt;
==추가 참고도서==&lt;br /&gt;
수학의 중요한 측면들 중에 이 책에서 다를 여유가 없었던 것들이&lt;br /&gt;
다소 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려 한다. 수학의 역사에&lt;br /&gt;
관해서는, 이 책보다 더 많은 수학 지식을 요구하지만, 이 주제에&lt;br /&gt;
관한 모리스 클라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rris Kline&amp;lt;/span&amp;gt;)의 권위 있는 세 권짜리 책,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수학적 사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thematical Thought from Ancient&lt;br /&gt;
to Modern Times&amp;lt;/span&amp;gt;, Oxford University Press, 1972)를 능가하는 책은 거의 &lt;br /&gt;
없을 것이다. 수학 지식이 일상 생활에서 좋은 판단을 하는데,&lt;br /&gt;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한 책으로는 존 알렌 파울로스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John Allen Paulos&amp;lt;/span&amp;gt;)의 ‘수학 문맹’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numeracy&amp;lt;/span&amp;gt;, Viking, 1989)이 있는데 이 책은 이에 관해 고전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톰 코너&lt;br /&gt;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om Korner&amp;lt;/span&amp;gt;)의 ‘계산의 즐거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Pleasures of Counting&amp;lt;/span&amp;gt;, Cambridge&lt;br /&gt;
University Press, 1996)은 수학의 응용에 관하여 내가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재치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커런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urant&amp;lt;/span&amp;gt;)와 로빈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obbins&amp;lt;/span&amp;gt;)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hat is Mathematics?&amp;lt;/span&amp;gt;,&lt;br /&gt;
Oxford University Press, 2nd edn., 1996)는 또 다른 고전이다. 그 책은&lt;br /&gt;
이 책과 의도가 비슷하지만, 더 길고 조금은 더 형식적이다. 데이비스&lt;br /&gt;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avis&amp;lt;/span&amp;gt;)와 허시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ersch&amp;lt;/span&amp;gt;)의 ‘수학적 경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Mathematical Experience&amp;lt;/span&amp;gt;,&lt;br /&gt;
Birkhiiuser, 1980)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에세이집으로서 철학적&lt;br /&gt;
성향을 띠고 있다. 나는 확률에 관하여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대신 이바르 에케란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var Ekeland&amp;lt;/span&amp;gt;)가 무작위와&lt;br /&gt;
그의 철학적 함의에 관하여 ‘수학과 예측 곤란’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thematics and the Unexpected&amp;lt;/span&amp;gt;,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lt;br /&gt;
&lt;br /&gt;
21쪽에 있는 인용문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urse in General Linguistics&amp;lt;/span&amp;gt;, McGraw-Hill, 1959)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hisosophical Investigations&amp;lt;/span&amp;gt;, Blackwell, 3rd edn., 2001)에서 온 것이다. 이 책과 ‘철학적 탐구’를 읽은 사람이라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나의 철학적 견해, 특히 추상적 방법에 관한 견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것이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수학의 원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rincipia Mathematica&amp;lt;/span&amp;g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n.,&lt;br /&gt;
1973)는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초보적인 사실에 관한 나의 몇몇&lt;br /&gt;
증명이 장황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1+1 = 2의 증명을 찾아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8장에서 논의한 수학에서의 여성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최근에 나온 책으로 클로디아 헨리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laudia Henrion&amp;lt;/span&amp;gt;)&lt;br /&gt;
의 ‘수학 속의 여성 : 차이의 합’(&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omen in Mathematics: The Addition&lt;br /&gt;
of Difference&amp;lt;/span&amp;gt;, Indiana University Press, 1997)과 마가렛 머리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argaret&lt;br /&gt;
Murray&amp;lt;/span&amp;gt;)의 ‘수학자가 된 여성들 : 2차대전후 미국에서 직업적 정체성 만들기’(&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omen Becoming Mathematicians: Creating a Professional&lt;br /&gt;
Identity in Post-World War II America&amp;lt;/span&amp;gt;, MIT Press, 2000)가 훌륭하다.&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면 내가 이 책을 짧게&lt;br /&gt;
하려고 초고에서 마지못해 여러 절과 완전한 한 장을 통째로 들어냈다는 것을 알면 좋을 수도 있겠다. 그 자료 중 일부를 나의 홈페이지(http://www.dpmms.cam.ac.uk/~wtg10)&lt;br /&gt;
에서 찾아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amp;gt;&amp;lt;/span&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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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3 라이어스 포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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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6개)&lt;/p&gt;
&lt;hr /&gt;
&lt;div&gt;===38===&lt;br /&gt;
여기에는 ‘안정심리’가 작용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투자은행을 선호할수록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나중에 트레이딩을 하면서 배운 것중 하나는 주식이든 채권이든 일자리든 많은 사람이 같은 상품을 추구하면 그 상품의 가치는 빠르게 과대평가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나는 이런 트레이딩의 기초도 모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59===&lt;br /&gt;
어떤 시장에든 어떤 포커 게임에든 바보는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빈틈없는 투자자 워렌 버핏(&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Warren Buffett&amp;lt;/span&amp;gt;)은 시장에서 바보가 누구인지 모르고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시장의 바보라고 말했다.&lt;br /&gt;
&lt;br /&gt;
===72===&lt;br /&gt;
모든 선택과정이 그렇듯 승자와 패자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과정은 너무도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능력을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에 좋은 부서에 배치를 받는 것은 운 혹은 인품에 달려 있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므로 우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것은 나를 끌어줄 줄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 내 실세들에게 언제, 어떻게 눈도장을 찍을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lt;br /&gt;
&lt;br /&gt;
===106===&lt;br /&gt;
성공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죠.” 또한 그는 내가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은 시장 정보에 대한 황금철칙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말이 많은 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뭔가 아는 놈은 말이 없다.”&lt;br /&gt;
&lt;br /&gt;
===155===&lt;br /&gt;
이것이 바로 살로먼 채권 트레이더들이 돈을 버는 노하우다. 이들은 시장의 움직임을 느끼기 위해 조심스럽게 맥을 짚는다. 그러다가 만약 시장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예를 들어 두려움이나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살로먼의 트레이더들은 겁먹은 양들을 코너로 몰 듯 시장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그런 불확실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살로먼의 트레이더에게는 시장이 돈을 토해내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lt;br /&gt;
&lt;br /&gt;
===159~161===&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라니에리의 소년시절 꿈은 이탈리안 식당의 주방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꿈은 부르클린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천식이 재발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1968년 당시 세인트존스대학 영문과 2학년생이던 그는 살로먼 우편실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1주일에 70달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으로 눕게 되면서 당장 1만달러라는 거금이 필요했다. 병원비는 쌓여 가는데 아버지가 열세 살 때 돌아가신 터라 부모로부터 지원받을 상황도 아니었고, 그의 수입원은 살로먼에서 주는 주급이 전부였다.&lt;br /&gt;
  열아홉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그는 고민 끝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살로먼 임원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라니에리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 임원이 나를 해고할 거라고 생각했지. 정말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나 라니에리의 걱정과 달리 그 임원은 “병원비는 살로먼이 책임질 것” 이라고 말했다. 라니에리는 살로먼이 주급을 가불해주는 것으로 알고 나중에라도 그런 큰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때, 그 임원은 “살로먼이 책임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제로 살로먼은 우편실에서 근무한 지 몇 개월밖에 안되는 직원의 1만달러나 되는 병원비를 대신 내줬다. 어려운 직원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논리였다.&lt;br /&gt;
  살로먼이 공식적으로 말한 것은 없지만, 라니에리는 그 뜻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살로먼은 직원을 책임진다.” 라니에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살로먼과 직원 사이의 서약, 충성심에 대해 얘기할 때 그는 이런 관대함을 떠올리곤 했다. 모기지 부서의 한 트레이더는 “이런 경험 때문에 라니에리는 정말로 회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지 사업상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라니에리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직원을 책임진다는 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 것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직원들은 이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형제애로 묶여 있고,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서약이다.”&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163===&lt;br /&gt;
라니에리는 모기지 부서로 옮길 때까지 가는 곳마다 부서를 장악했다. 회사는 공격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을 북돋웠고, 정글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가 온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모기지 부서는 라니에리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라니에리의 강한 성격에 심지어 달마저도 쿠데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달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자리를 비웠는데, 그가 없는 동안 라니에리는 리서치 부서를 출범시켰다. 늘 “모기지는 사실상 수학”이라고 강조하던 그는 최고의 수학자인 마이클 왈드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ichael Waldman&amp;lt;/span&amp;gt;)을 초빙해 왔고, 왈드만은 “루이의 강렬함에 이끌려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lt;br /&gt;
&lt;br /&gt;
===240===&lt;br /&gt;
프루덴셜-바체 증권으로 옮긴 앤디 스톤은 한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월가는 현업에서 최고로 돈을 잘 번 인물을 경영진에 앉힌다. 이들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경쟁력 있으며 종종 신경질적이고 편집증적이다. 이런 인물이 경영자가 되면 이들은 서로를 따라잡기에 바쁘다. 따라서 더 이상 현업에서와 같은 본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통상적으로 이들은 경영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결국 절반은 성적이 좋지 않아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4분의 1은 정치를 잘 못해서 거세된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나머지는 그야말로 무자비한 부류다. 이것이 월가에 경기 사이클이 있는 이유다. 살로먼이 지금 흔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자비한 사람들에겐 사업을 망치고도 실패를 흔적 없이 감추는 재주가 있다.”&lt;br /&gt;
&lt;br /&gt;
===295~298===&lt;br /&gt;
&amp;lt;poem&amp;gt;  알렉산더가 제안한 많은 트레이딩 기법은 두 가지 형태 중 하나에 속했다. 첫째, 모든 투자자가 같은 것을 할 때 반대편으로 간다. 이런 기법을 쓰는 사람을 ‘콘트라리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ntrarian&amp;lt;/span&amp;gt;)’(역발상 전략가)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이 역발상 전략을 쓰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투자자가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고독의 두려움만큼 강하지는 않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회피한 위험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서 돈을 잃게 되면 그 실수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투자자도 변명거리가 필요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들은 수천명이 함께한다면 절벽 끝이라도 기꺼이 서 있으려 할 것이다. 시장이 나쁜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널리 인정되면, 그 문제가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많은 투자자가 시장에서 발을 빼곤 한다.&lt;br /&gt;
  그 좋은 예가 미국의 ‘팜 크레디트 코퍼레이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Farm Credit Corporation&amp;lt;/span&amp;gt;)’사태다. 한때 팜 크레디트가 파산할 것처럼 보이자, 투자자들은 이 은행의 채권을 내다 팔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고 가능성만으로도 이들은 자신의 평판이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신는 정부에서 거대 기업의 실패를 그대로 보고 넘어가지 않던 시기였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국익을 위해 크라이슬러 자동차와 컨티넨탈 일리노이즈 뱅크를 파산에서 구해냈다. 팜 크레디트 역시 파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정부가 분명 구제 금융을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농부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8백억 달러 규모의 은행을 구제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팜 크레디트 채권을 헐값에 내다파는 바보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체면 때문에 그 채권을 들고 있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득을 챙겼다.&lt;br /&gt;
  둘째, 엄청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건의 일차적 초점에서 멀리 떨어진 이차적, 삼차적 효과를 찾아낸다. 엄청난 사건이란 주식시장 대폭락, 자연재해, OPEC의 감산처럼 시장에 쇼크를 주는 사건을 말한다.&lt;br /&gt;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다. 그 뉴스가 나온지 수분 만에 알렉산더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콰트론에서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사이, 그는 이미 2개의 커다란 탱크를 가득 채울 원유를 매수했다. 투자자들은 뉴욕 주식시장만 주시했고 그들의 초점은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회사에 맞춰졌다. 관련 회사의 주가는 폭락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주가 하락에 신경 쓰지 말고 고객의 입장에 서서 원유 선물을 매수하라고 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전력 공급이 줄어들면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그의 고객은 원유 선물 매수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내 고객도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내 고객들에게 원유 선물을 매수하라고 설득하고 난 지 몇 분 후 알렉산더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lt;br /&gt;
  “감자를 사. 빨리 움직여.” 그는 속사포처럼 말하고 끊었다.&lt;br /&gt;
  그랬다. 방사능 낙진이 감자를 포함한 유럽의 농작물과 식수를 위협하고 있었고, 미국의 오염되지 않은 대용물들의 가격이 치솟았다. 물론 러시아 원전이 폭발하고 수분 만에 미국의 감자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농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농부를 만나보지 못했다.&lt;br /&gt;
  체르노빌과 원유는 비교적 직설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실전에서는 ‘만약에’라고 부르는 게임이 흔하게 벌어진다. 모든 복잡함은 ‘만약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상상해 보라.  예를 들어 당신이 수십억 달러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이고, 만약 도쿄에 엄청난 지진이 강타했다면? 도쿄는 가루가 되고 일본의 투자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이들은 엔화를 팔고 일본 주식시장에서 빠져 나오려고 아우성칠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lt;br /&gt;
  알렉산더의 투자 패턴 첫째를 따른다면, 그는 일본 시장에 돈을 넣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빠져나가려 한다면 싼 값에 물건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 주식을 헐값에 매수할 것이다. 아마도 일차적으로 일본 보험사 주식을 구입할 텐데, 그것은 일반적인 보험사는 엄청난 보험금 지급 부담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은 대부분 서방의 주요 보험사와 일본의 지진 전문보험사에 전가된다. 그 쇼크로 수십 년간의 프리미엄이 사라질 것이므로, 일반 보험사 주가는 쌀 수밖에 없다.&lt;br /&gt;
 이어 알렉산더는 수억 달러 규모의 일본 국채를 매수할 것이다. 경제는 일시적으로 위축될 것이고, 일본 정부는 금리를 낮춰 재건활동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중 은행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하도록 독려할 것이고 그러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lt;br /&gt;
  또한 국내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여 일본 자국의 본국 송환이 시작되면 금융시장의 단기적인 공황은 쉽게 진압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 많은 자금을 투자한 일본 기업들은 분명 해외투자를 거둬들여 공장 재건과 상처 치유, 자사주 매수 등에 사용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lt;br /&gt;
  알렉산더에게 이것은 엔화 매수를 뜻한다. 일본 기업들이 엔화를 본국에 송환하려면 달러를 팔고 엔화를 거둬들여야 한다. 하지만 엔화는 일본 기업이 실제로 엔화를 사기 때문에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 거래자들이 일본 기업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 매수에 나서면서 고공비행을 하게 된다. 지진 직후 엔화가 붕괴한다면, 항상 예상치 않은 일을 추구하는 알렉산더에게는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반면, 엔화가 오르면 그는 아마도 엔화를 팔게 될 것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366~368===&lt;br /&gt;
&amp;lt;poem&amp;gt;  밀켄이 말한 것은 미국의 신용평가시스템에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할 때 이 시스템은 과거에 집착했고, 바보같은 신중함의 무게에 짓눌리곤 했다. 밀켄은 이런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는 『포춘』이 선정한 100대 우량기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위험도가 높긴 했지만 동시에 금리도 높은 정크본드로 눈을 돌렸다. 심지어 정크본드 금리가 우량기업 회사채 금리보다 4~6퍼센트 포인트나 높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회사가 조기에 채권을 상환할 경우에는 높은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또한 이런 회사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초과이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회사가 발행한 정크본드의 값도 치솟았다. 물론 회사의 손실이 커지면 부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므로 정크본드의 값도 폭락한다. 간단히 말해 정크본드는 정통 채권보다는 주식에 더 가까운 행태를 보이곤 했다.&lt;br /&gt;
  드렉셀의 리서치 부서는 기업 내부 정보에 은밀히 접근할 수 있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과 드렉셀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밀켄의 비밀이 있다. 살로먼은 결코 이런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밀켄이 정크본드를 거래할 때, 그는 이미 기업 내부 정보를 갖고 있었다. 주식거래에서 내부자거래는 불법이지만, 채권과 관련해서는 그런 법이 없었다(법을 만들 때 그 누가 주식과 같은 성격의 채권이 이렇게 많이 거래될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lt;br /&gt;
  부채(채권)와 주식 사이에서 살로먼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한쪽에 편향돼 있었기 때문에(주식은 달라스에서나 거래하는 것이다!) 드렉셀의 채권 트레이더들이 간파했던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흔들리는 기업의 부채를 쥐고 있다는 것은 경영 지배권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자를 제때에 내지 못하면, 채권 보유자는 담보를 확보하고 회사 자체를 청산해 버릴 수도 있다. 마이크 밀켄은 레피드-아메리칸 코퍼레이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apid-American Corporation&amp;lt;/span&amp;gt;)의 사실상 소유주인 메슐람 리크릴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eshulam Riklis&amp;lt;/span&amp;gt;)에게 이를 증명해 보였다. 1970년대 후반 레피드-아메리칸은 다량의 정크본드를 발행했고, 이것이 밀켄의 손에 넘어갔다. 무슨 이유에선지 밀켄은 레피드-아메리칸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어느 날 조찬 미팅에서 리크릴스는 자신이 레피드-아메리칸 주식 4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청산은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lt;br /&gt;
  이때 밀켄은 “우리는 당신 회사가 발행한 1억 달러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요. 만약 이자를 단 한 번만 제때에 내지 못하더라도, 회사를 공중분해시킬 겁니다”라고 말했다.&lt;br /&gt;
  이 말은 나처럼 투자자를 등쳐먹는 데 신물이 나기 시작한 채권 세일즈맨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자를 단 한 번만 제때에 내지 못해도, 회사를 공중분해시키겠다.” 데쉬 립록은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 밀켄은 사업 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어.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를 빨아 먹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 쓰는 기업을 쥐어짜는 것이지.” 밀켄의 돈 외에는 갈 곳이 없는 기업들은 압박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밀켄의 제안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 즉 투자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밀켄은 자신을 따르는 투자자들에게 돈을 벌어주었던 것이다. 밀켄의 요점은 이렇다. “여러 회사의 다양한 정크본드에 투자하십시오. 이 중 몇 개 회사가 부도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분명 대박이 터지는 회사가 나올 것이고 손실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드렉셀은 기업을 놓고 도박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투자자 여러분,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갑시다! 미국의 미래에 투자하십시오. 소규모 성장 회사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 &lt;br /&gt;
  밀켄은 대중 선동가다. 초창기 정크본드 투자자는 모기지 투자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큰돈을 벌었고, 심리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했다. 드렉셀 뉴욕 본사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비버리 힐즈에서 매년 열리는 정크본드 세미나(‘약탈자들의 연회’라고 알려진 행사)에서 마이크가 행한 연설을 들었다면, 당신은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423~424===&lt;br /&gt;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그 어처구니없는 머니게임의 한가운데 있다면, 당신의 사회적 가치(내가 받을 만한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에 비례해 보수를 받는다면, 당신 주위에 그럴 만한 일을 하지 않고도 엄청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사람이 수백 명씩 깔려 있다면, 돈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겐 단순히 부(富) 그 자체가 믿음을 강화시켜 줄 수도 있다. 이들은 심각하게 돈을 추구하고, 돈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전화기를 붙잡고 그로부터 돈을 버는 재주가 엄청난 장점이라는 ‘가정’을 철썩 같이 믿는다(이것이 가정인 이유는 명백하게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인과응보로 고통 받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고통 따위는 없다. 단지 더 큰 부자가 될 뿐이다. 나는 이들이 포동포동 살이 찐 채로 행복하게 죽을 것이라고 확신한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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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투자전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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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8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투자전쟁 ―헤지펀드 사람들의 영광과 좌절 &lt;br /&gt;
이경식 역 | 휴먼앤북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uman&amp;amp;Books&amp;lt;/span&amp;gt;) | 2017년 01월 31일&lt;br /&gt;
&lt;br /&gt;
- ebook이 3천원이어서 싼맛에 사서 봄. 조판이 역시 엉망.&lt;br /&gt;
- 저자가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인 티가 나지만, 한두가지 특정 분야에 조예가 깊어보이지는 않고 그저 &amp;lt;del&amp;gt;돈이 많아서&amp;lt;/del&amp;gt; 취미로 이런저런 독서를 즐겼던 사람으로 보임. &amp;lt;ref&amp;gt;저자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D%84%B4_%EB%B9%84%EA%B7%B8%EC%8A%A4 바턴 빅스]는 2012년에 작고했다. 그의 작고 후 그가 세운 트랙시스 파트너스도 문을 닫았다. [http://www.institutionalinvestorsalpha.com/IssueArticle/3267379/Archive-AR-Magazine/Barton-Biggs-Founded-Traxis-Partners-is-Shutting-its-Doors.html]&amp;lt;/ref&amp;gt; &amp;lt;del&amp;gt;말이 드럽게 많음&amp;lt;/del&amp;gt;&lt;br /&gt;
- 헤지펀드 하는 사람들이 골프를 엄청 좋아하나보다. 아무리 바쁘네 뭐하네 해도 골프는 엄청들 쳐댐.&lt;br /&gt;
- 번역에 문제가 많다. 주술호응이나 은/는/이/가 같은 기본적 조사도 문제가 많고, ‘하지만의’ 같은 말도 안되는 단어도 있다.&amp;lt;ref&amp;gt;그런데 이게 ①번역문제인지 원문이 이모양인지 아니면, ②전자책만 이모양 이꼴인지 헷갈리는 부분도 조금 있다. 예를들어, ‘피아노 건반은 흰색 건반 8개와 검은색 건반 5개로 기본 13옥타브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있는데 원문도 이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amp;lt;del&amp;gt;내가 저자를 너무 무시하나.&amp;lt;/del&amp;gt;&amp;lt;/ref&amp;gt; ‘자산관리’를 ‘자신관리’라고 해놓은 부분이 인상깊었다. ㅎㅎ &lt;br /&gt;
- 엘리엇의 파동이론이나 피보나치 수열같은 &amp;lt;del&amp;gt;개&amp;lt;/del&amp;gt;헛소리도 실려있다. 물론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적어도 책에 실은 것으로 보아, 그리고 &amp;lt;del&amp;gt;개&amp;lt;/del&amp;gt;헛소리가 아니고 그저 신빙성이 떨어지는 방법 정도로 적은 것으로 보아 이 책은 그냥 심심풀이 에세이인 듯.&lt;br /&gt;
- 전자책으로 읽어서 인용의 쪽수를 적을 수 없음. &lt;br /&gt;
- 전자책은 역시 줄을 너무 헤프게 쳐댄다. &amp;lt;del&amp;gt;옮기기 힘들다&amp;lt;/del&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장 황금손의 헤지펀드 사람들, 피를 흘리며 사라지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윈스턴 처칠은 거대하고 더러운 검은 개가 하수도 냄새를 풍기며 수시로 나타나서 자기 가슴을 타고 앉아 짓눌렀다고 말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장 석유공매도의 쓰라린 경험&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들은 최적의 분석을 통해서 가격이 상승할 주식을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가격이 하락할 주식을 찾아내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lt;br /&gt;
 *&lt;br /&gt;
 매수 포지션으로 투자하는 사람보다 매도포지션으로 투자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적으므로&lt;br /&gt;
 *&lt;br /&gt;
([[어느 투자가의 회상]]에서 인용됨)&lt;br /&gt;
&amp;lt;blockquote&amp;gt;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지나치게 거래하지 마라. 옳으면서도 동시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배우기 힘든 원칙이었다. 하지만 주식 투자가라면 이 원칙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큰돈을 벌 수 있다.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우리 펀드의 투자자 가운데 평생 상품선물 거래자로 일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올드 터키&amp;lt;ref&amp;gt;[[어느 투자가의 회상]]에서 리버모어의 대역으로 나온 사람의 이름. 즉, 리버모어 자신이라고 보면 된다는데 정작 그 책에서는 리버모어가 뭔가 소설을 쓰는 것 같지 않던데. 리버모어 대신 누가 나오는 그런 대목은 읽은 기억이 안난다. 너무 대충 읽었나. &amp;lt;/ref&amp;gt;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이런 질문을 했다.&lt;br /&gt;
 “제시 리버모어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아시오?”&lt;br /&gt;
 모른다고 했다.&lt;br /&gt;
 “1920년대 후반에 매도포지션으로 계속 투자하다가 마침내 1929년 중반에 두 손을 들고 말았지요. 그리고 매수포지션으로 많은 투자를 했다가 대공황 때 거덜났다오. 그리고 몇 년 뒤에 빌트모아 호텔의 남자화장실에서 자살했답니다.”&lt;br /&gt;
 이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amp;lt;ref&amp;gt;나무위키에 보면 1940년 11월 28일 모든 자산을 날리고 거래소에서도 쫓겨난 후 한 호텔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https://namu.wiki/w/%EC%A0%9C%EC%8B%9C%20%EB%A6%AC%EB%B2%84%EB%AA%A8%EC%96%B4]&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5장 헤지펀드의 출범, 그 필사적인 모험&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성공은 필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오만을 낳는다. 그리고 이 오만은 다시 필연적으로 그 사람을 거꾸러뜨린다. 오만 때문에 자가용 제트비행기를 사고 골프 클럽 회원권을 여러 장 사고 프랑스 남부 지역과 메사추세츠의 난투켓 섬에 집을 사고 아내를 여러 번 바꾼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은퇴해서 어린 시절 꿈꾸었던 대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압력솥 같은 헤지펀드 판을 미련 없이 훌훌 떠나서 18세기 프랑스 문학을 연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치가나 자선사업가로 변신해서 자기 이름을 세상에 떨치려고 한다.&amp;lt;ref&amp;gt;이 뒷문장이 ‘예를 들어서 조지 소로스는 영국 은행을 물 먹인 위대한 투기꾼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자선사업가이자 리플렉시티 법칙&amp;lt;sub&amp;gt;많이 쓰면 쓸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론 ―역주&amp;lt;/sub&amp;gt;을 발견한 철학자로 기억되길 원한다’인데 아무래도 저자는 소로스를 물먹이고 싶은 듯. &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온통 곰들의 세상이 된 것 같았고 황소들은 꽁무니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증시에서 곰은 하락 장세를 나타내고 황소는 상승장세를 나타낸다 ―역주)&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장 땀과 피눈물로 얼룩진 투자 설명회&amp;lt;ref&amp;gt;이건 원문도 ‘피눈물’일지 궁금하다. 이런저런 책만 보면, 투자로 성공한 사람들은 &amp;lt;del&amp;gt;실패하기 전까지&amp;lt;/del&amp;gt; 자부심이 남다른 경향이 있다.&amp;lt;/ref&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건 스탠리의 개인자산 운용팀에는 개인 투자자와 소규모 기관투자가를 관리하는 영업 및 투자관리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매우 영악하다. 영리하면서도 탐욕스럽다. 이들은 금전적인 보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회사보다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자기 고객들이야말로 자기들의 장기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성장주가 추락할 때는 특히 큰 폭으로 추락한다&lt;br /&gt;
 *&lt;br /&gt;
 션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 헤지펀드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사실을 알아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수익률의 적은 규모만이 아니다. 성공과 부는 투자가의 초심을 흔들어서 오만에 빠지게 하거나 은퇴하도록 유혹한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7장 펀드개시 직전, 나쁜 기억에 시달리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독자들은 내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별 어려움 없이 헤지펀드 회사를 설립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틀리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성공한 전문 투자가였다. 뉴욕 은행의 최고 투자책임자였으며 수많은 주식회사의 이사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는 아들 셋이 18세가 되었을 때, 전체 자산 구성의 합계 금액이 대략 15만달러가 되는 포트폴리오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보라고 당부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다. 우리가 더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집 식탁에는 늘 시장과 경제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우리 가족만 참가하는 주식 투자 대회를 열었다. 각자 다섯 개 종목을 선택하는 게 아버지가 정한 규정이었다. 이 대회에서 내가 꼴찌를 했고 주식시장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어머니가 우승을 차지했다. 어머니가 종목을 선택한 기준은 당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정서적으로 이끌리는 회사였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선택해서 크게 성공한 회사 가운데 두 개는 프록터 앤 갬블과 아이오와 파워였는데, 어머니는 카드게임을 좋아했고 또 아이오와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amp;lt;ref&amp;gt;이 부분을 옮긴 이유는 ①이렇게 성장배경이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것과 ②역시 투자란 운칠기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시장이 붕괴할 때 유동성이 급격하게 사라질 뿐만 아니라, 어떤 결정을 내린다 하더라도 적자를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빠르게 떨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가장 나쁜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amp;lt;ref&amp;gt;‘최악만 피해라’이런 건가 보다&amp;lt;/ref&amp;gt;⋯하지만 아버지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경험한 실패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지는 마라.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 나오는 개구리는 되지 마란 말이다. 이 개구리는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았다가 혼이 난 뒤로는 다시는 난로 가까이 가지 않았고, 결국 난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에도 얼어 죽고 말았지.” &lt;br /&gt;
 *&lt;br /&gt;
 경험이 가르치는 교훈에 따르려면 온갖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대신 그냥 우리가 위치하고 싶고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가면 된다.&lt;br /&gt;
 *&lt;br /&gt;
 결국 그 나라의 투자가가 외국 투자가를 이긴다.&lt;br /&gt;
 *&lt;br /&gt;
약삭빠른 투자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만일 어떤 운용자가 상당 기간 동안 좋은 성적을 내다가 갑자기 성적이 나빠져서 적자로 돌아가서 불가피하게 펀드를 청산하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나설 경우 이 운용자에게 투자금을 다시 맡기는 것이다. 이 투자자들은 ‘평균 회귀원칙’&amp;lt;sub&amp;gt;reversion to the mean : 수익률이 단기간에는 크게 변동하지만 5년이나 10년이라는 장기간으로 보면 변동 폭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이론―역주&amp;lt;/sub&amp;gt;이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헤지펀드 수익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적자를 낸 이 운용자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 절치부심 결사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와 똑같은 이치가 반대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이 투자자들은 이삼 년 연속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헤지펀드에서는 돈을 회수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내가 아는 헤지펀드 운용자인 제프에게 일어났다. 그는 여러해 동안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2년 연속으로 4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의 투자자들 가운데 일부가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유는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제프는 이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제프처럼 확실한 불사조&amp;lt;ref&amp;gt;‘확실한 불사조’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수익률이 좋았던 모양이다&amp;lt;/ref&amp;gt;가 아니라면 이렇게 외면당하는 운용자는 얼마나 황당할까? 지나치게 성적이 나빠도 투자금을 회수당하지만 성적이 좋아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lt;br /&gt;
 *&lt;br /&gt;
 이 공간은 어둡고 더럽고 낡았고 구식이다. 회의실에 깔린 양탄자에서는 곰팡내가 나서 여기에 들어갈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하지만 마드하브, 시릴, 더글러스 그리고 나는 각자 자기 방을 가지고 있고 이 방에는 모두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어 이 창문으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나무 꼭대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나는 보통 이 창문을 열어 둔다. 그러면 광장에서 밴드의 연주나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방안으로 날아든다. 아무리 황량한 볼모의 사무실 환경이라 하더라도 신선한 공기와 거리의 소음만 있으면 유쾌하다.&amp;lt;ref&amp;gt;이런 사무실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 완벽하지 않은가!&amp;lt;/ref&amp;gt;⋯(나중에 알게 되지만 우리는 첫해에 세 번이나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 사무실 환경은 점차 좋아졌고 마지막에는 5번가&amp;lt;sub&amp;gt;맨해튼의 중앙 부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 역주&amp;lt;/sub&amp;gt;의 장엄한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사치스럽지 않고 안락한 독자적인 공간에 안착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거두는 수익률은 우리 사무실이 누추할 때 높았고 반대로 사무실이 그럴듯하게 세련되면 낮았다. 우리는 곰팡내가 나는 지독한 사무실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록을 그 뒤로는 결코 깰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amp;lt;blue&amp;gt;주식의 움직임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 주식 운용에서 상상력을 무시하는 사람들 혹은 주가 등락의 기술적 근거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재앙을 맞이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게임은 감정이라는 3차원과 꿈이라는 4차원에서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로지 사실과 수치라는 평범한 2차원 공간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amp;lt;/blue&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장 헤지펀드 업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운용자들은 손실 최대허용치를 설정해 두고 이 대원칙 아래 기계적으로 자기 대신 투자 결정을 해주는 온갖 종류의 위험관리 프로그램에 의지한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에 의존해서 내리는 결정들은 대부분 좋은 결정이 아니다. ⋯ 그 결과 이 운용자들은 단기 모멘텀 투자가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기복이 심한 변동성을 기꺼이 감수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고 팀은 말한다.⋯ 투자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느냐고 그에게 묻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생각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지식을 쌓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어떤 사건이나 정보를 접하는 순간 투자 기회가 눈에 보인다고 했다. 그 기회를 억지로 이끌어낼 수는 없고 끈질기게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투자 포트폴리오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하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여러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표는 가능한 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지 회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나 유능한 분석가들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lt;br /&gt;
 *&lt;br /&gt;
단기 금리가 올라가면 할부 상환 금액은 올라가고 주택 가격은 내려갑니다. &lt;br /&gt;
 *&lt;br /&gt;
주로 물가인상과 전쟁 그리고 유가증권에 대한 두려움이 금 가격을 결정하므로 금은 내재적인 투자가치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금을 모은다는 것은 소극적인 투자 방법이다.&lt;br /&gt;
 *&lt;br /&gt;
고대 그리스의 시인 필로스트라투스는 &amp;lt;blue&amp;gt;‘신은 미래의 사실을 지각하고 평범한 사람은 현재의 사실을 지각하며 현명한 사람은 지금 막 일어날 일을 지각한다’&amp;lt;/blue&amp;gt;라고 했다. &lt;br /&gt;
 *&lt;br /&gt;
평범한 정도의 수익률이나 중요 기준 지수보다 약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전문 투자가들은 다른 업종의 전문가들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다&amp;lt;ref&amp;gt;역시 이런데로 어떻게든 가야 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버핏의 이 글&amp;lt;ref&amp;gt;전미 동전던지기 토너먼트&amp;lt;/ref&amp;gt;이 말하는 요지는 투자업계의 슈퍼스타 역시 전미 동전 던지기 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른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헤지펀드 판에 있는 사람들은 워낙 경쟁심리와 자의식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골프와 핸디캡에 완전히 빠져있다. 이 사람들은 돈과 관련된 압박감을 잠시 제쳐 둔 채 280야드 밖으로 골프공을 날리고 3미터 퍼팅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남성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담하게 경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자기가 냉철하면서도 담대한 배짱의 소유자임을 과시하려고 한다. &lt;br /&gt;
 *&lt;br /&gt;
헤밍웨이는 용기를 &amp;lt;blue&amp;gt; ‘압박감 속에서 발휘하는 우아함’&amp;lt;/blue&amp;gt;이라고 표현했다&lt;br /&gt;
 *&lt;br /&gt;
부유함의 영역에는 강도, 질투, 납치등의 단어가 연상되는, 차라리 피하고 싶은 최고 수준의 부유함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르는 어떤 분수령이 있다.&amp;lt;ref&amp;gt;여기가 어딘지 정말 궁금하다&amp;lt;/ref&amp;gt;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5억달러를 벌고 나면 이제 가장 만족스러운 성취감을 골프 실력을 높이는 것, 다시 말해서 핸디캡을 줄이는 것에서 찾는다.⋯그들의 일상에서 골프는 펀드를 운용해서 수익을 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lt;br /&gt;
 *&lt;br /&gt;
 쉰 살이 넘어가면 실력은 거의 좋아지지 않는다.&amp;lt;ref&amp;gt;글에는 골프 얘기지만, 사실 모든 방면이 다 이런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장 추세적 경기 순환의 폭력성&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든 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따뜻한 느낌은 보통 수많은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체온이다.&lt;br /&gt;
 *&lt;br /&gt;
일반 투자자의 돈은 펀드가 잘되기 전이 아니라 잘된 뒤에 대규모로 몰려든다. 그리고 이 투자금은 성과가 좋지 않을 때 그리고 이제 정말 막 좋은 성과를 내려고 할 때 우르르 빠져나간다.&lt;br /&gt;
 *&lt;br /&gt;
&amp;lt;blue&amp;gt;일반 투자자가 시장 변동의 시점을 맞추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또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러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amp;lt;/blue&amp;gt; 평균적인 미국인이라면 자기의 사회 보장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자산의 안정과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배분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 역주)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다.&lt;br /&gt;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의 뮤추얼펀드 모델은 관련기업과 개인, 즉 투자회사, 주식중개인, 그리고 포트폴리오 운용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안겨 주었다.&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그 방법으로 인덱스(지수) 펀드를 선택해야 한다.&amp;lt;/ired&amp;gt;&lt;br /&gt;
 *&lt;br /&gt;
교수들과 투자 자문 전문가들은 투자금 운용자들이 아무리 애써도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으며 전문적인 투자라는 개념이 아예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기사를 쓰고 책을 펴냈다.&lt;br /&gt;
 *&lt;br /&gt;
 &amp;lt;sblue&amp;gt;기존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한 채 재구성만 한다면 아무런 편견 없이 냉정하게 매매할 수 없다. 편견과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mp;lt;/sblue&amp;gt;기존의 어떤 소유의식이 오히려 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짐은 투자자가 최상의 선택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어떤 투자가에게든 시장이 바보같아 아직 알아보지 못하지만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하는 포지션들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포지션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하는 순간 반등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또 편견 때문에 당연히 팔아야 할 종목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이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 마찬가지 원리로 승리의 기쁨을 더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팔아야 할 종목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lt;br /&gt;
 *&lt;br /&gt;
20세기 전반기의 최고 개인투자가라고 할 수 있는 버나드 바룩과 제시 리버모어는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이 어쩐지 낡은 것 같다거나 불확실하거나 불편하면 곧바로 현금화한 다음에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0장 생존을 위한 전투&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ired&amp;gt;바보들만이 꼭대기 종목과 바닥 종목을 찾는다&amp;lt;/ired&amp;gt;&lt;br /&gt;
 *&lt;br /&gt;
어떤 주식의 주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절대 그 주식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주식도 절대 사지 않는다. 저평가, 저소유 그리고 비호감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올라갈 주식을 사고 보유할 것 그리고 내려가거나 보합세를 유지할 주식은 팔아 치우고 쳐다보지도 말 것. &amp;lt;ref&amp;gt;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amp;lt;blockquote&amp;gt;이것이 그의 투자 원칙이다. 데이비드의 수익률은 늘 변동성이 높아 기복이 심하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그에게 투자금을 맡기지 않는 게 좋다&amp;lt;/blockquote&amp;gt;&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시장을 주도하던 주식들이 호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강도를 잃기 시작할 때, 그리고 구매력이나 매도 약점등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얼른 주식을 털어버리고 나와라. 이미 게임은 끝났다.&amp;lt;ref&amp;gt;[[어느 투자가의 회상]]을 인용한 것&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만일 어떤 거래가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조건이 좋게 보인다면, 아마도 그것은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건이 좋은 게 분명하다.’ &amp;lt;ref&amp;gt;이것도 [[어느 투자가의 회상]]인용&amp;lt;/ref&amp;gt;&lt;br /&gt;
 *&lt;br /&gt;
62개 회사 이익, 22개 회사 손해, 8개 회사 본전. 이걸 가지고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주식 종목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적중률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amp;lt;ref&amp;gt;아니 그럼 얼마나 더 잘 맞춰야 하는 거냐&amp;lt;/ref&amp;gt;&lt;br /&gt;
 *&lt;br /&gt;
네드 데이비드 리서치社의 네드 데이비드는 여러 해 동안 체감적 지표들을 연구했는데, 그는 시장이 변동할 때 군중은 늘 잘못 판단하며 또 주가가 바닥에 있거나 천장에 있을 때 이를 감지하는 군중의 체감적 정서도 늘 잘못 작동한다고 지적한다.&lt;br /&gt;
 “만일 누가 바닥과 천장을 앞서서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역투자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늘 성공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시장 가격이 10%이상 떨어질 때 손절매 주문이 실행되도록 해 두어 시장이 막 변동하려고 할 때 매도하였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시기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손절매 주문을 내놓았을 때 혹은 그 주문이 스페셜리스트&amp;lt;sub&amp;gt;미국 거래소의 회원이며 거래소가 지정하는 종목을 전문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업자. 스페셜리스트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매매를 통해 공정가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다른 회원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처리하기도 한다 ― 역주&amp;lt;/sub&amp;gt;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을 때 마켓메이커&amp;lt;sub&amp;gt;특정 주식을 소유하고 항상 매매에 응할 용의가 있는 업자 혹은 투자 전문기관 ― 역주&amp;lt;/sub&amp;gt;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그 자산을 반등하기 직전에 팔아버리는 꼴이 되고 마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말이다.&lt;br /&gt;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amp;lt;sblue&amp;gt;무조건 반대로 나갈 수는 없다. 체감적 지표들이 특별히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군중의 대규모 움직임은 거의 대부분 옳기 때문이다. 끈기를 가지고 최고점 혹은 최저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네드 데이비드는 이렇게 말했다.&amp;lt;/sblue&amp;gt;&lt;br /&gt;
 &amp;lt;sblue&amp;gt;“최고점이나 최저점에 도달해서 막 바뀌려고 할 때까지는 대세의 흐름과 함께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가 결국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amp;lt;/sblue&amp;gt;&lt;br /&gt;
 (중략)&lt;br /&gt;
 이 연구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이 지표들이 비록 최저점을 예측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최고점에 대한 예측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또 하나의 체감적 지표는 언론이다. 언론은 언제나 변함없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이미 과거에 일어나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게 훨씬 더 좋은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이다. &amp;lt;비즈니스 위크&amp;gt;의 특집 기사는 오랜 세월 동안 반대지표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lt;br /&gt;
 *&lt;br /&gt;
쌍둥이 적자&amp;lt;sub&amp;gt;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역주&amp;lt;/sub&amp;gt;&lt;br /&gt;
 *&lt;br /&gt;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또 하나의 체험적 지표는, 추세적 약세시장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항복을 받아내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장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투자&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1930년대에 윈스턴 처칠은 권력에서 밀려나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려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학 강의를 했다. 어느 날 오후였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그는 어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lt;br /&gt;
 “사람의 신체 부위 중 외부 자극을 받으면 평소보다 열두배로 커지는 곳이 어디인가?” &lt;br /&gt;
 학생들은 놀라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처칠은 그런 상황을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학생들을 죽 둘러보다가 열 번째 줄에 앉은 여학생을 지목했다. &lt;br /&gt;
 “자, 답이 뭔가 학생?” &lt;br /&gt;
 그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다.&lt;br /&gt;
 “네, 답은⋯⋯, 남자의 성기입니다.” &lt;br /&gt;
 “틀렸네!” &lt;br /&gt;
 처칠이 고함을 질렀다.&lt;br /&gt;
 “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lt;br /&gt;
 그러자 다른 여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lt;br /&gt;
 “정답은 안구의 동공입니다. 동공은 어둠 속에서는 평소 크기의 열두배로 커집니다.” &lt;br /&gt;
 “정답이네!” &lt;br /&gt;
 처칠은 이렇게 외친 다음에, 틀린 답을 말한 학생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lt;br /&gt;
 “학생에게는 세 가지 지적을 하겠네. 하나는 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학생이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인생에 대해서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일세. 그건 열두배씩 커지지 않는단 말이지.” &lt;br /&gt;
 *&lt;br /&gt;
비스마르크는 후손들에게 주식이나 채권을 물려줄 경우 이 후손들이 제대로 운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고 제2의 블라이흐뢰더와 같은 투자 자문가를 옆에 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 끝에 삼림지와 같은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자산을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토지와 목재는 굳이 천재 투자가 없이도 후손들이 잘 관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냥 삼림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목재 수확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비가 오면 나무가 잘 자라니까 비가 오는 것도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터였다. &lt;br /&gt;
 *&lt;br /&gt;
1985년에 그가 대학교 기금의 운용 책임을 맡은 뒤로 이 기금은 연평균 16.1%라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다른 대학의 기금이 기록한 수익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것으로(하버드 대학교가 14.9%로 예일 대학교에 이어 2위이다) 전체 대형 기관투자가의 기록을 놓고 보면 상위 1%안에 드는 기록이다. &amp;lt;ref&amp;gt;예일기금을 운용했던 데이비드 스웬센의 이야기&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맥조지 번디. 예일기금을 1970년대에 운용&amp;lt;/ref&amp;gt;가 옹호했던 모멘텀 투자 방식을 따른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기관투자가는 다른 데도 있었다.&lt;br /&gt;
 *&lt;br /&gt;
불완전한 정보와 유동성 부족을 특징으로 하는 비공개 시장(비상장 시장)에 대해서 차별화된 강점을 가지고 있는 자산 운용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영역이 바로 예일 기금 운용팀이 힘쓰는 점이다&amp;lt;ref&amp;gt;역시 스팩인가&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장 자연의 신비와 집단 순응의 악취&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나는 지지선&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upport level&amp;lt;/span&amp;gt;이나 저항선&amp;lt;sub&amp;gt;resistance level. 하락시세에서 가격이 더 떨어지면 매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이상 내려가지 않는 가격이 형성되는데 이 가격대를 ‘지지선’이라고 한다. 저항선은 지지선의 반대이다. ― 역주&amp;lt;/sub&amp;gt;은 매도나 매수의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참조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참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자가들이 기술적 분석 결과가 예측하는 수치를 믿는다.(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게을러서 경제 상황의 제반 요소들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예측치가 전혀 터무니없다고 믿는 나와 같은 투자가들도 최소한 거기에 관심은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기술적 분석의 결과가 그 투자가들의 행동 및 시장 가격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고도로 지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지 않고 여태 동의해 왔던 합의된 의견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이런 의견이 제시하는 방향은 보통 쉽고 편한 길이다. (중략) 집단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부정적인 역학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애초부터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개인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에 개인이 혼자 내리는 결정이 집단에서 내린 결정보다 더 나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중략)&amp;lt;sblue&amp;gt;광기는 개인에게서는 예외적으로 나타나지만 집단에서는 반드시 나타난다고 한 니체의 말은 진리를 담고 있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집단의 지도자가 자기가 원하는 의견만을 들으려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구하려고 할 때조차도 그 집단에서는 순응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난다. 또 집단의 구성원들이 매우 지적이며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고 또 자기 의견을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lt;br /&gt;
 *&lt;br /&gt;
 그 집단이 전체 조직에서 중요하면 할수록 집단 내의 순응적인 사고방식은 더 많이 나타난다. &lt;br /&gt;
 *&lt;br /&gt;
 윌프레드 트로터는 ≪전쟁과 평화 상황에서의 집단적 본능≫이라는 고전적인 책에서 사람은 무리를 지어 사는 집단적인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의 기본적인 성품은 동일성과 통일성이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의 구성원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는데 그 교육 내용의 핵심은, 소속 집단에서 모나지 않게 행동해서 집단의 일부분이 되어야지 집단에서 너무 다르게 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트로터는 이렇게 지적한다. &lt;br /&gt;
 「사회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동원해서 새로운 의견을 압살해 왔으며, 집단의 의지나 의견을 거스르는 사람에게는 늘 가차 없이 지하 감옥과 교수대와 십자가의 형벌을 내렸다.」&lt;br /&gt;
 만일 당신이 어떤 투자위원회의 위원이라면 당신이 다른 위원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표현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의 잘못된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정말 불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당신 의견이 잘못된 것이고 또 다른 사람과 다를 경우 당신은 이제 그 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격이 실질적으로 박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당신이 옳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참석자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악역을 맡아서 전체 위원회의 공통된 의견을 반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마지막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최고 책임자이다. 보기에는 모든 참석자들의 의견을 고루 존중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으로 투표하는 대규모 집단이 바람직할 것 같지만 투자 결정을 하는 데는 민주주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민주주의적 경로를 통해서 도달한 결론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의사 결정과 책임은 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lt;br /&gt;
 *&lt;br /&gt;
 &amp;lt;ref&amp;gt;아인 랜드의 《파운틴헤드》에서 재인용&amp;lt;/ref&amp;gt;마음의 속성은 개인적이다. 여러 사람의 두뇌를 합친 총체적인 두뇌라는 것은 없다(중략)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동의한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타협한 내용이거나 아니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평균값을 구한 것일 뿐이다. (중략) 추론 과정이라는 기본적인 행위는 사람마다 각자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이 상징적인 능력은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다. 어디까지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에게만 속할 뿐이다&lt;br /&gt;
 *&lt;br /&gt;
 한 해에 한 차례씩 여러 동업자들이 기록한 수익률에 따라서 그들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회사들은 훨씬 투명하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아온 바로는 이런 방식이 결국은 동업자 사이를 갈라놓는 결과를 초래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장 인터넷 거품&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춤추고 있는 사람들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 &amp;lt;ref&amp;gt;니체&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과거만 바라보면 눈 하나를 잃는다. 하지만 과거를 무시하면 두 눈 다 잃고 만다’&amp;lt;ref&amp;gt;러시아 속담&amp;lt;/ref&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4장 위대한 투자가는 집중력 있는 잘 훈련된 미치광이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자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나쁜 포지션은 청산하고 좋은 포지션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첫 번째 거래가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그 주식을 다시 거래하지 마라. 손실이 발생하는 종목은 언제든 팔아 버려라. 바보만이 계속 내려가는 종목을 사들인다. &amp;lt;ref&amp;gt;이것도 [[어느 투자가의 회상]]. 저자가 엄청나게 인상적으로 읽은 모양.&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장기적으로 볼 때 주가가 상승하는 힘이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게 좋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그는 자기가 매수한 주식이 힘을 잃고 비틀거리면 그 순간 곧바로 팔아 치웠다. 여태 힘 있게 움직이던 주식이 어떤 자극을 받은 뒤에도 웬일인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이것은 그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조짐이며, 따라서 그 주식을 팔아치워야 한다는 게 그의 이론이었다. &lt;br /&gt;
 물론 힘 있는 주식을 사고 힘 없는 주식을 파는 것은 모멘텀 투자방식이다.&lt;br /&gt;
 *&lt;br /&gt;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에는 최소한 그 포지션의 반은 팔아야 한다.&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찰리 문거라는 저자의 친구인 모양. 실명인지 가명인지는 모르겠음. ‘강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는 독서가’라고 함&amp;lt;/ref&amp;gt;는 전체 읽을 거리중 10%정도만 꼼꼼하게 읽고 연구한다.&lt;br /&gt;
 *&lt;br /&gt;
 문제는 내게 필요한 10%를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90%를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lt;br /&gt;
 *&lt;br /&gt;
투자전략가들이 쓴 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최근의 경향을 보고 미래를 추정할 뿐이다. 이들은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순히 미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의 경제관련 수치나 시장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지시하는 방향에 기초해 미래에 대해 자기들이 추정한 것들을 조금씩 수정만 할 따름이다. 그 결과 이들은 늘 실제 현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5장 투자가에게는 가장 최근의 성적만이 있을 뿐이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사실 많이 거래하는 경우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lt;br /&gt;
 *&lt;br /&gt;
모멘텀 투자가였던 그녀로서는 1990년대 후반 5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필요한 정보제공자들을 많이 개발했고 이들을 통해서 수익을 올렸을 때는 이들에게 충분히 보상했다.&lt;br /&gt;
 *&lt;br /&gt;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투자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을 관리하는 투자가가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그다음에 떼어 놓는 발도 잘못 디디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lt;br /&gt;
 *&lt;br /&gt;
투자가는 오로지 가장 최근에 기록한 수익률로만 평가를 받는다&amp;lt;ref&amp;gt;어느 바닥이나 그런 것 같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사실, 낮은 수익률이라는 오랜 슬럼프가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최고의 신호는 중요한 고객이 투자금을 빼내갈 때이다.&lt;br /&gt;
 *&lt;br /&gt;
‘평균회귀원칙’이 투자의 황금률이라고 믿는다면(나는 이렇게 믿는다.) 그리고 명석한 투자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일반 지수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낸다는 사실을 믿는다면(나는 이렇게 믿는다.) 현재 손해를 본 상태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lt;br /&gt;
 *&lt;br /&gt;
낮은 수익률의 규모는(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작았고 높은 수익률의 규모는 컸으며 때로는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지수에 비해서 이들&amp;lt;ref&amp;gt;버핏을 비롯한 스타 투자가들&amp;lt;/ref&amp;gt;의 수익률이 주춤거렸던 시기를 살펴보면 대체로 지수들의 평균이 크게 뛰었던 시기였다.&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상대적인 수익률은 3년에서 5년 주기로 반복되었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 투자가의 투자 방식과 특정 시장의 중심 테마주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amp;lt;/ired&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장 격변기의 위험한 사회에서 자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개인자산 운용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투자수준은 매우 낮다&lt;br /&gt;
 *&lt;br /&gt;
펀드를 홍보하고 투자자를 모으는 사람들의 이해는 투자자들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석유와 가스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 거래는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결과를 보면 늘 운용자나 펀드 설립자들은 부자가 되고 투자자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끝난다. &lt;br /&gt;
 *&lt;br /&gt;
“이상적으로 말하면, 주식시장이 완전히 파산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어야 할 정도가 되겠지요.” &amp;lt;ref&amp;gt;부자는 어느 정도의 금액을 비과세금융상품에 묻어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샘’이라는 사람의 답. 이 사람은 15년 전쯤 투자업계를 떠나 노후를 보내며, 일반적인 방법의 재산증식에 성공했다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유동성은 겁쟁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뭔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기미가 보이면 유동성은 꼬리를 감추고 달아나 버린다는 말이다.&lt;br /&gt;
 *&lt;br /&gt;
그들이 자기들이 직접 개발했다면서 이상한 것을 들고 나와 투자의 새로운 계산법이라고 설명하려 들면 역시 작별 인사를 던져야 한다.&lt;br /&gt;
 *&lt;br /&gt;
2003년 3월까지 5년 동안 계속된 활황-불황기간에 S&amp;amp;P 500지수는 연평균 마이너스 3%감소했지만, 이 기간에 중간 성적을 낸 FOF의 연평균 수익률은 6.3%였고, 상위 25%와 상위 5%는 각각 9.2%와 15.7%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했다. &lt;br /&gt;
 *&lt;br /&gt;
아트100지수&amp;lt;ref&amp;gt;미술품들의 가격도 S&amp;amp;P 500지수처럼 뭔가 지표가 있긴 있나보다. 구글에서 검색해봐도 바로 뭔가 나오지는 않는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이 통계치들&amp;lt;ref&amp;gt;여러 미술품들의 매매기록&amp;lt;/ref&amp;gt; 가운데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매소와 거래상들이 온 힘을 기울여서 좋은 미술품은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환상을 조장해 왔기 때문이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7장 투자의 세 가지 종교 ― 성장, 가치, ‘몰라’ &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상적으로 성장주 투자자들은 멋진 사업 분야의 주식을 가지길 원하며 주식의 가격이 올랐을 때가 아니라 그 사업이 주춤거릴 때 그 주식을 판다.&lt;br /&gt;
 *&lt;br /&gt;
투자가가 어떤 주를 성장주로 인식할 때면 이미 그 주식은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lt;br /&gt;
 *&lt;br /&gt;
‘우리 회사에서는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서 주당 순이익이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 보이는 소수의 기업들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amp;lt;ref&amp;gt;캐피탈 가디언社의 밥 파커. 성장주의 정의를 말하면서&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lt;ired&amp;gt;가치투자자는 다른 주식과 비교할 때뿐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도 가격이 싼 주식을 찾는다&amp;lt;/ired&amp;gt;&lt;br /&gt;
 * &lt;br /&gt;
 이때 그 기업의 현재 경상이익은 그 기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 능력보다 낮아야 함은 물론이다.&lt;br /&gt;
 *&lt;br /&gt;
 성장주 투자자들은 번듯하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보유자산으로 구성하는 데 비해서 가치 투자자들은 주가가 싸고 현재로서는 볼품없는 기업들을 보유자산으로 구성한다.&lt;br /&gt;
 *&lt;br /&gt;
버핏은 비록 모순적인 투자행위이긴 하지만 자기소유의 버크셔 해서웨이社의 엄청난 규모의 자본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기보유전략&amp;lt;sub&amp;gt;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함으로써 투자할 때 미리 수익을 확정짓는 전략으로 이자율이 변동할 때 기회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투자위험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역주&amp;lt;/sub&amp;gt;을 구사하는 가치투자자가 되었다. &amp;lt;sblue&amp;gt;그는 비싼 가격이라도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사고 싶다&amp;lt;/sblue&amp;gt;고 말한다.&lt;br /&gt;
 *&lt;br /&gt;
 ‘몰라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선다. 이들은 투자사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바뀔 거야’가 그들의 경전이다. 어느 것이든 열광적으로 믿다가는 바로 그 종교적인 확신 때문에 화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성장주가 상대적으로 싸고 경제 환경이 이들에게 우호적이면 성장주를 매수한다. 그리고 가치가 있는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고 성장주의 가격이 바싸지면 가치를 쫓는다. 때로는 둘을 동시에 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가치와 성장은 끊임없이 변동하는데 똑똑한 투자가라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하나만 믿는 골수 투자방식을 따르면 반드시 실패할 뿐이라고 대꾸한다. &lt;br /&gt;
 *&lt;br /&gt;
&amp;lt;red&amp;gt;성장대 가치의 수익률역사는 분명하다. 오랜 세월 동안 가치가 성장을 앞질러 왔고 그중에서도 소형 가치주는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해왔다.&amp;lt;/red&amp;gt;&lt;br /&gt;
 *&lt;br /&gt;
&amp;lt;red&amp;gt;만일 당신이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개인퇴직계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RA&amp;lt;/span&amp;gt;)와 장기 인덱스펀드가 포함되는 소형 가치주일 것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주식분야는 고수익 자산군이다. 특히 소형주일 경우에는 최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성장주든 가치주든 소형주는 대형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쌌다. 지난 6년 동안 소형주는 대형주보다 훨씬 나은 수익을 냈고 특히 소형 가치주는 소형 성장주보다 월등하게 앞섰다. 나라면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며 어느 쪽이든 소형주지수를 선택하겠다. &amp;lt;/red&amp;gt;&lt;br /&gt;
 *&lt;br /&gt;
MSCI는 소형주를 규정할 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볼 때 751위에서 2500위 사이에 놓인 기업이라고 정의한다.&lt;br /&gt;
 *&lt;br /&gt;
아마추어가 개별 주식들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역사적으로 볼 때 성장주의 수명은 그다지 길지 않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서 쌓인 자산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8장 대형 투자회사를 피해야 하는 이유&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sblue&amp;gt;집착은 하되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투자가가 최고의 투자가이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버핏은 한때 투자가가 되는 것은 투수가 스트라이크 공을 던지지 않는 야구경기에서 타자가 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투수가 GE를 시속 100킬로미터로 던질 수 있지만 굳이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를 시속 70킬로미터로 던질 수 있지만 굳이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투수는 계속 던져야 하지만 타자는 칠 필요가 없다.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큰 것 한방을 터뜨리면 된다고 했다. 여섯달 아니 2년 동안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다보면 투수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공을 던질 때가 있다. 기다려야 한다!&lt;br /&gt;
 *&lt;br /&gt;
건강하고 강인한 투자 운용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외로운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압력 행사를 적당하게 하라. 둘째, 오랜 실전 경험과 가능하면 민간 투자자의 태도와 가장 가까운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라. 셋째, 함께 있어 편안하고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고 있는 투자회사를 찾아라. 넷째, 투자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와 함께 하라. 건실하면서도 허풍을 떨지 않는 투자 컨설턴트나 운용자들이 직접 상당한 금액의 자기 돈을 투자해서 운용하는 헤지펀드를 이런 예로 들 수 있다. 또 대형 투자회사 안에도 개인자산 운용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9장 거품과 진정한 믿음&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든 거품은 처음에 강력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합법적인 기회로 출발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미래의 결과를 합리적인 추론과정이 아니라 과거의 결과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믿음만으로 장밋빛으로 전망할 때 이것은 거품(혹은 알맹이가 없는 투기 열풍)이 된다. 아무리 인터넷이 보급되고 누구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공인 금융 분석가들이 수천 명씩 쏟아지고 또 증권거래위원회가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려고 애쓰며 여러 정책들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시장은 보다 효율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고 또 거품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리지어살고자 하는 군거群居본능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거품은 금융시장과 군중심리에 통달한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가진다.&lt;br /&gt;
 *&lt;br /&gt;
거품이 완전히 꺼졌을 때 소위 ‘합성의 오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fallacy of composition&amp;lt;/span&amp;gt;가 작용해 군중심리로 작용한다. ‘합성의 오류’이론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개인에게는 이성적인 행동이 집단 전체로서는 비합리적이며 참혹한 결과를 빚어낸다.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칠 경우 관객 개개인으로서는 살기 위해서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할 경우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금융 공황상황에서도 개인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시장에 파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만 합리적이다. 즉,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합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전체를 파탄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장기 파동론을 점성학占星學이나 수상학手相學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lt;br /&gt;
 *&lt;br /&gt;
 혼돈의 세상을 오래 바라보면 네 자신이 혼돈의 세상이 되고 만다&amp;lt;ref&amp;gt;니체. 그런데 이게 그 ‘심연도 너를 바라본다’ 그것과 동일한 문장인지 아닌지 모르겠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구약성경은 기원전 600년에 1온스의 금으로 350덩이의 빵을 살 수 있다고 적었다. 오늘날에도 1온스의 금으로 미국에서 빵 350덩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금이 변변찮은 투자수단이었음을 반증한다. 2600년이나 지났지만 구매력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그&amp;lt;ref&amp;gt;책속 등장인물&amp;lt;/ref&amp;gt;는 경제학과 옵션 이론을 전공한 뒤 1980년에 모건 스탠리에 입사해 파생상품부서에서 일했고 그 뒤에는 온갖 일들을 다 했다. 1987년 여름에 그는 자기가 개발한 일련의 계량모델을 이용해서 3표준편차에 속하는 동적 불균형 사건이 임박했다고 확신했다. 그는 회사와 몇몇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S&amp;amp;P 500종목 중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고 자기가 직접 증명한 종목들을 사게 했다.(그리고 자기도 직접 돈을 투자해서 그 종목을 샀다.) 그런데 그 주식은 대규모로 폭락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장 월스트리트괴담&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신문을 읽음으로써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려고 애쓰는 것은 시계의 초침을 보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려고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1장 동성애자, 경제학자, 헤지펀드 운용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사도회 런던 지회인 블룸스버리 집단 (중략) 블룸스버리는 사도회보다 한층 더 진보적인 태도를 가졌는데,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합리성을 경멸하고 감각성과 관능성을 더 높이 쳤다.&lt;br /&gt;
 *&lt;br /&gt;
이제 그들은 그의 맹렬한 지성과 그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 그리고 그의 상상력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lt;br /&gt;
 *&lt;br /&gt;
슘페터는 케인스와 그가 쓴 책을 놓고 ‘통찰력은 같지만 용기가 모자라는 사람들과, 용기는 같지만 통찰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침묵을 지킬 때,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활 타올랐다’고 표현했다.&lt;br /&gt;
 * &lt;br /&gt;
이 기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차입금 비중이 높았던 그의 펀드를 빈 깡통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가 입은 손실은 초기에 환 투기로 벌었던 수익의 3배가 넘었다. 뿐만 아니라 주식중개인에게도 상당한 빚을 졌다. 그의 순자산은 마이너스 상태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블룸스버리의 투자자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은 케인스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는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고 이 펀드는 투자자들의 손실을 말끔하게 메워 주었다. 그리고 케인스도 막대한 재산을 다시 모았다.&lt;br /&gt;
 *&lt;br /&gt;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장기적인 관점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고 한 유명한 구절도 바로 이 책&amp;lt;ref&amp;gt;《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amp;lt;/ref&amp;gt;에 들어있다.&lt;br /&gt;
 *&lt;br /&gt;
명목금리가 떨어질 때조차도 실질금리는 상승&lt;br /&gt;
 *&lt;br /&gt;
케인스는 대규모의 추세적 약세시장에서는 금융자산이든 실물자산이든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lt;br /&gt;
 *&lt;br /&gt;
아무리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한다 하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지면서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얼마든지 이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에 그는 주식에만 집중했다.&lt;br /&gt;
 *&lt;br /&gt;
케인스는 투자게임을 좋아했다. 이 게임이 자기 정신과 직관으로 하여금 시장과 맞붙어 싸우게 했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지적인 영향을 받은 적이 없으며 자기는 오로지 실무적인 일밖에 모른다고 믿는 사람은 사실은 흔히 어떤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인 경우가 많다.&lt;br /&gt;
 *&lt;br /&gt;
폴 새뮤얼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lt;br /&gt;
 “이 책은 글이 조잡하고 구성도 엉성하다(중략) 거만하며 모질고 시비를 건다. 인식의 관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중략) 대단한 발견인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리고 혼란스러운 쓰레기들이 수두룩하다. (중략) 통찰력과 직관의 섬광이 지루한 대수학을 뒤흔들고 쫓아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까지 도달하고 나면, 그제야 이 책에서 시도하는 분석이 선명하게 우리 앞에 떠오른다. 전혀 새로운 분석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책은 천재가 쓴 위대한 저작물이다” &lt;br /&gt;
 *&lt;br /&gt;
우리가 보다 도덕적이라면, 그래서 보다 더 절약한다면, 그래서 개인재정이나 국가 재정이 보다 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다면, 금리가 자본의 한계 효율에 비례해서 오를 때 수입은 그만큼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amp;lt;ref&amp;gt;일반적으로 자본의 한계효율이 이자율을 상회하는 경우 투자가 지속되며 이자율과 자본의 한계효율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에서 투자량이 결정된다. ― 역주&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는 주식시장에 관한 케인스의 뛰어난 통찰력도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그는 &amp;lt;sblue&amp;gt;주식시장을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고 최고의 미인을 예측해서 맞히는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는 미인 선발대회에 비유했다.&amp;lt;/sblue&amp;gt;&lt;br /&gt;
 &amp;lt;sblue&amp;gt;이 경우 각자가 판단하기에 실제로 가장 예쁜 여자를 뽑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여론으로 볼 때 가장 예쁜 여자를 뽑으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한 차원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 평균적인 여론이 어떤지에 대한 평균적인 여론을 추적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중층화 과정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amp;lt;/sblue&amp;gt;&lt;br /&gt;
 *&lt;br /&gt;
 때로 보유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태연하게 그리고 아무런 자책감 없이 지켜보는 것도 진지한 투자가의 의무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책을 마치면서&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자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이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역자&amp;lt;ref&amp;gt;이경식&amp;lt;/ref&amp;gt; 후기&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투기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국내에 상륙한 뒤 2000년까지는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일을 주로 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빌딩등의 부동산 매입을 거쳐 기업과 금융기관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 규모를 키웠다. 또 얼마 전에는 스틸파트너스라는 펀드가 KT&amp;amp;G주식을 대거 사들인 뒤에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했다. 소버린은 SK그룹의 경영권을 넘봤다. 뉴브리지 캐피탈은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사서 1조 1800원을 벌어들였고, 칼라일은 한미은행을 사서 7000억원을 챙겼따. 미국 월스트리트에선 한국을 흐름만 잘 타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 헤지펀드의 놀이터라는 말까지 나타났을까.&lt;br /&gt;
 이들이 경영권을 노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경영권을 확보해서 주주에 대한 배당을 늘리고 기업의 성장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저평가된 주식의 가치를 높인 뒤에 매각해서 차익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다. 외환 위기 직후에 정부는 외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렇게 나타난 외자는 생산적인 투자자본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투기 자본들이었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순이익을 높이고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다음에 되팔아서(통째로 되팔기도 하고 잘게 쪼개서 하나씩 되팔기도 한다) 단기수익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이 해체되거나 말거나 혹은 그 회사의 직원들이 실업자가 되거나 말거나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주주가운데 이미 다수가 외국인 혹은 외국 자본이다. 예를 들면, 2006년 2월 17일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54.16%, 포스코가 68.48%, 한국전력이 30.50%, 현대자동차가 45.62%, KT&amp;amp;G가 60.76%, LG전자가 43.84%, SK가 51.98%, 삼성화재가 54.32%, 대우조선해양이 37.12%, 삼성중공업이 37.01%등이다. ‘국민 기업’이라는 이유로 때로 특혜를 베푼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정부가 혜택을 아끼지 않았던 기업들의 주식이 상당 부분 외국인의 손에 들어가 있다.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재벌 가문을 제외하면 어쩌면 순수 내국인 주주는 외국인 주주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금융시장 개방과 무능한 경제관료 그리고 무지한 투자정보 및 일천한 투자역량이 만들어 낸 놀라운 ‘마술’이 아닐 수 없다.&lt;br /&gt;
 *&lt;br /&gt;
어떤 전문가는&amp;lt;ref&amp;gt;이런경우, 전문가가 아닐 확률도 높고 그냥 저자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자극적으로 끼워맞추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amp;lt;del&amp;gt;하지만 내 입맛에도 맞으므로 옮겨두겠다. ㅎㅎ&amp;lt;/del&amp;gt;&amp;lt;/ref&amp;gt;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및 그로 인한 엄청난 부의 유출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lt;br /&gt;
 “이른바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이 일개 사모펀드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실력에서 졌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게 론스타가 남긴 교훈의 첫단추라고 본다. 하지만 경제관료나 은행가 그리고 옆에서 훈수를 두던 경제학자들까지 그 누구도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용어해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 뮤추얼 펀드&lt;br /&gt;
뮤추얼펀드란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 회사를 설립하여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한 후 그 운용 수익을 투자자 즉 주주에게 배당금 형태로 나누어 주는 회사형 투자신탁을 말한다. 초기에는 일정 기간 환매가 되지 않는 폐쇄형 뮤추얼 펀드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환매가 자유로운 개방형 뮤추얼펀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주식투자비중이 높은가, 채권비중이 높은가에 따라 주식형과 채권형으로 구분한다.&lt;br /&gt;
 투자자가 수익 증권을 사고 나중에 이익 배당을 하는 계약형 투자신탁도 포함해 개방형 투자신탁을 총칭하기도 한다. (하략)&lt;br /&gt;
● 투자전략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trategist&amp;lt;/span&amp;gt;&lt;br /&gt;
 (전략) 이들은 분석가와 달리 개별 종목이나 업종이 아니라 주식보유비중을 줄이고 채권비중을 늘리라는 식으로 투자 포트폴리오 자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lt;br /&gt;
● 블룸버그&lt;br /&gt;
 마이클 블룸버그가 1981년에 창업한 미국의 경제전문 통신사. 자체개발한 단말기를 통해서 채권수익률계산등의 금융정보를 증권회사에 제공하다가 1990년부터 뉴스공급도 병행하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와 주가, 기업정보등 수많은 정보들을 문자와 그래프, 수치로 제공한다.&amp;lt;ref&amp;gt;마침 블룸버그 앱이 애플 광고에 등장하길래 깔아봤더니 무슨 OTP같은 것도 있어야 하고 유료이고 해서 로그인도 못해봄&amp;lt;/ref&amp;gt;&lt;br /&gt;
● 선물거래&lt;br /&gt;
 (전략) 즉 현재 매수의 선물계약을 보유한 투자자는 동일한 종목을 매도하면 계약이 청산된다. 반대로 매도의 선물계약을 보유한 투자자는 동일한 종목을 매수하면 계약을 청산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ong liquidation&amp;lt;/span&amp;gt;, 후자의 경우는 환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hort covering&amp;lt;/span&amp;gt;라고 한다.&lt;br /&gt;
● 선물거래의 유형&lt;br /&gt;
 (전략)스프레드거래: 거래대상 상품은 같으면서 결제월이 서로 다른 선물계약 간 또는 거래 대상 상품은 다르나 가격 움직임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결제월이 같은 선물계약 간 가격관계를 이용하여 (중략) 가격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매수·매도 포지션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lt;br /&gt;
● 주가수익비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ER&amp;lt;/span&amp;gt;&lt;br /&gt;
 (전략) 대체적으로는 13~14배정도가 타당하다고 하지만, 각국의 경제사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또 품목별 이익신장률에 따라서도 관점이 달라진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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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재들의 머니게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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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6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http://www.yes24.com/24/Goods/4400176?Acode=101 천재들의 머니게임]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천재들의 음모&lt;br /&gt;
로저 로웬스타인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0년 11월 30일&lt;br /&gt;
&lt;br /&gt;
68&lt;br /&gt;
메리웨더와 같이 10대 때부터 투자를 해온 뮬린스는 아칸소 대학 총장의 아들로 하버드에서는 대단히 인기 있던 교수였다. &amp;lt;ref&amp;gt;10대 때부터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은 모양&amp;lt;/ref&amp;gt;&lt;br /&gt;
&lt;br /&gt;
90&lt;br /&gt;
 그들은 불확실한 큰돈을 위해 도박하기보다 작은 돈을 확실히 줍는 일을 더 선호했다. 잔돈을 한두 푼 끌어들이는 과정을 수천 배로 늘리고, 차입 투기를 통해 그 미미한 마진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할 수 있었다. 물론 잔돈이라도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펀드매니저 스테인하트가 실감했듯이, 차입 투기의 경우 틀린 대가는 감당 불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4년에 LTCM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그들이 손댄 모든 거래가 황금으로 변했다.&lt;br /&gt;
&lt;br /&gt;
101&lt;br /&gt;
 ⋯풍부한 자금을 손에 쥔 자신감 넘치는 파트너들은 통 큰 거래를 했고, 다른 사람들이 오래전에 그만둔 곳에서 잔돈들을 짜내었다. 한 트레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들보다 자그마한 불일치에 주목했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헤지도 더 잘하고 차입거래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lt;br /&gt;
&lt;br /&gt;
108&lt;br /&gt;
 JP모건의 한 고위 경영자는 리스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물음에 ‘평균을 둘러싼 변동성’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lt;br /&gt;
&lt;br /&gt;
115&lt;br /&gt;
 ⋯케이퍼는 머턴의 금융학 강의를 들은 후 수리금융학이 과학이라기보다 믿음, 다시 말해서 ‘모델의 힘에 눈이 먼’ 공상가들의 신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질서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에게는 매력적이더라도 시장이 모델과 다르게 움직이면 그들을 재앙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lt;br /&gt;
&lt;br /&gt;
122&lt;br /&gt;
 작가 마크 트웨인이 지적했듯이, 역사는 운율을 맞출 뿐이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lt;br /&gt;
&lt;br /&gt;
143&lt;br /&gt;
 LTCM은 증서의 개념을 체이스맨해튼 전체에 퍼뜨렸다. 메리웨더는 심지어 체이스맨해튼의 CEO 월터 시플리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렸다. 힐리브랜드는 숄스를 파견하여 옵션 가격에 대한 강의를 해주겠다고 제의까지 했지만, 플러지는 공식을 창안한 장본인과 그에 관한 지식을 겨룰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플러지는 옵션 거래 공식의 ‘알파 베타 감마’를 가리키며 일갈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그리스 문자를 써넣고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들어가야 할 그리스 문자는 빠져있구료. 바로 ‘오만’이란 단어요.” &lt;br /&gt;
 플러지가 지적한 ‘오만’이란 어떤 것인가? 파트너들의 매너나 말투에 오만함은 없었다. 오만함은 더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은 하버드나 MIT를 다닌 사람들의 오만, 자신이 남들보다 더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만이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지 알아?” 한번은 그레고리 호킨스가 살로먼 시절부터의 오랜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야.” 또 한번은 그가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동료의 아내에게 분자생물학 강의를 하려고 든 적도 있었다. “당신, 순 엉터리네요.” 마침내 그녀가 한마디 했다. &lt;br /&gt;
&lt;br /&gt;
156&lt;br /&gt;
⋯파트너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손을 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상업용 저당권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다. 보통주, 즉 거래 중인 주식이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이는 신천지로 떠올랐다. 그것은 LTCM의 트레이더들 대부분이 수학적 경향이 강한 탓에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던 미개척 분야였다. 채권 가격을 매기는 것은 훨씬 주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와 학계)는 치밀한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단기적으로 주식은 흔히 감정적인 트레이더들의 변덕에 휘둘렸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회사들의 경영 실적에 따라 달라졌는데, 경영 실적은 매우 불확실할뿐더러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요컨대 단순히 수학뿐 아니라 어떤 컴퓨터도 발휘할 수 없는 능력, 즉 판단력이 필요했다. 경제학자 버턴 몰키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utton Malkiel&amp;lt;/span&amp;gt;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보통주의 적절한 ‘가격―수익배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rice-earning multiple&amp;lt;/span&amp;gt;’는 알지 못하실 것이다.” 그러나 LTCM은 알았다. 또는 최소한 그들은 대담하게도 자신들의 모델을 주식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lt;br /&gt;
&lt;br /&gt;
163～164&lt;br /&gt;
 여기서 잠깐 LTCM이 어떻게 그런 거액을 빌려 주식에 투자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규제 T&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Regulation T&amp;lt;/span&amp;gt;’라는 법 조항에서 ‘마진’이라고도 하는 브로커의 주식 자금 대출에 대한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연준은 마진 대출금의 한도를 전체 투자액의 50%로 규정하고 있다. LTCM이 주식을 사들였을 때, 그것은 물론 T 조항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LTCM은 실제로 주식을 사지는 않고 주식 포지션 계약을 맺었다. 주식의 등락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LTCM이 CBS 주식에서 3년 동안에 걸처 약1억달러의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면, 가령 스위스 은행과 스왑 계약을 맺는 것이다 LTCM은 매년 1억 달러에 대한 이자를 계산해서 고정 불입금을 내게 된다. 그리고 스위스 은행은 얼마가 되든지 간에 LTCM이 실제로 주식을 소유했을 경우에 벌었을 만큼의 수익을 지불하는 것이다(만약 주가가 떨어지면, LTCM이 스위스 은행에 지불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스위스 은행은 실제로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리스크를 헤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LTCM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lt;br /&gt;
 메리웨더와 LTCM에 중요했던 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CBS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과 대개 밝혀야만 하는 사항들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T 조항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합법적이었다. 연준은 단지 주식 자금 대출액만을 규제했을 뿐이다. &lt;br /&gt;
&lt;br /&gt;
173&lt;br /&gt;
⋯돈을 더 벌기 위한 그들의 열망은 끝을 몰랐고 위험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성의 신봉자로 자부하는 사람들이 칼날 위에서 발버둥치게 된 결말은 , 더욱 부유해져야만 자신들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lt;br /&gt;
&lt;br /&gt;
194&lt;br /&gt;
 “시장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비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lt;br /&gt;
&lt;br /&gt;
200&lt;br /&gt;
 1998년 1월의 시장은 흐름이 좋았다. 국제통화기금&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International Monetary Fund : IMF&amp;lt;/span&amp;gt;은 한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여 아시아의 안정 기조를 다졌다. 유로화의 출범이 1년도 남지 않은 유럽에서는 투자가들이 낙관주의에 젖어 있었고, 미국에서는 다우지수가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투자가들이 자신감을 회복함에 따라 채권 스프레드는 줄어들었다. 1998년 첫 달에(포드자동차 같은 우량 기업이 발행한) A등급 채권은 재무부 채권보다 75bp를 더 받았다. 2월이 되자 스프레드는 70포인트로 줄어들었다. &amp;lt;ref&amp;gt;우리나라는 IMF이후 개고생하고 있을 적에 미국애들은 다우지수 신기록 갱신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274&lt;br /&gt;
 교수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던 만고의 진리, 즉 시장에서 양 극단은 항상 부풀어 있다는 진리를 외면했다. 그들은 뉴욕의 수많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들의 유리 궁전 속에서 트레이더들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분자나 힐리브랜드와 같이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욕심과 공포에 의해 움직이며 극단적인 행동이나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8년 늦여름에 채권시장의 사람들은 특히 위험한 신용에 대해 극단적으로 공포에 질렸다. 이것을 교수들은 모델링하지 못했다. 그들은 시장을 정확하게 예언 가능한 것으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정작 현실의 트레이더들을 지배하고 있는 본능, 약탈적이고 탐욕적이며 무조건 보호받으려는 본능은 망각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인간적 요소&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human factor&amp;lt;/span&amp;gt;’를 잊었던 것이다. &lt;br /&gt;
&lt;br /&gt;
283&lt;br /&gt;
 당연히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공포에 질렸다. “우린 그들이 문제에 부딪히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리스크 관리 전문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바로 그들이 리스크 관리를 고안하고 가르쳤단 말입니다.” 파트너들과 아일랜드에서 골프를 치며 즐겼던 메릴린치의 리스크 매니저 대니얼 나폴리는 말했다. “하느님도 잘 아시지만, 우린 노벨상 수상자들과 일했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단히 지적인 깡패만이 월스트리트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만한 자금을 얻지도 못할 것이고, 그런 거품을 낳게 한 추종자도 끌어들이지 못한다. &lt;br /&gt;
&lt;br /&gt;
297&lt;br /&gt;
⋯이것은 펀드가 헤지하지 않은&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irectional&amp;lt;/span&amp;gt;, 그러니까 공공연한 투기를 했다는 의미였다.&amp;lt;ref&amp;gt;헤지하지 않으면 대개 투기로 간주되는 모양. 개미들의 주식투자는 결국 다 전문가의 눈에는 투기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300&lt;br /&gt;
⋯모건의 애널리스트들은 LTCM의 거래가 그렇게 신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점점 더 놀라던 중이었다. 크게 투자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LTCM은 주로 채권을 거래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방대한 주식 투자 장부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lt;br /&gt;
&lt;br /&gt;
306&lt;br /&gt;
⋯편리하게도 파트너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는 잊어버리고 왜 친구들이 갑자기 자신들을 버렸는지 영문을 몰라했다. &lt;br /&gt;
&lt;br /&gt;
311&lt;br /&gt;
⋯이제 LTCM과 조사 은행들 간의 회의는 구태의연한 것이 되고 말았다. 파트너들은 주저하는 구혼자들에게 권태를 느꼈다. &lt;br /&gt;
&lt;br /&gt;
369&lt;br /&gt;
 머턴과 숄스의 효율적인 시장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교수들은 실제로 가격이 모델이 말하는 대로 곧장 가리라고 믿었다. 교수들의 자만은 모델이 행동의 한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은 데 있다. 사실 모델은 무엇이 논리적이고, 과거에 기초할 때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줄 수는 있다. 다만 교수들은 트레이더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항상 논리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amp;lt;ref&amp;gt;더 정확하게 표한하자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비논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쯤 될 것 같다.&amp;lt;/ref&amp;gt; 이것이 바로 LTCM이 남긴 진실한 교훈이다. 모델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트레이더들은 실리콘 칩에 의해 통제되는 기계가 아니다. 그들은 감수성이 강하고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떼지어 다니고 무리 속으로 피한다.&lt;br /&gt;
&lt;br /&gt;
370&lt;br /&gt;
 가장 아이러니컬한 것은 교수들이 리스크를 해체한 다음 최소화하고자 했지 리스크를 극복하고자 하는 생각은 해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LTCM은 평범한 펀드에 불과하다. 사실 LTCM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펀드로서, 금융경제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두 원칙을 이용하여 시장에 고삐를 채우려는 일대 실험이었다. 미래의 리스크를 과거의 가격과 변동성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의 모든 투자 은행과 트레이딩 부서에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LTCM의 기본적인 실수였고, 그들의 엄청난 손실은 현대 금융학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풀기 어려운 결점을 폭로한 것이다. &lt;br /&gt;
&lt;br /&gt;
371&lt;br /&gt;
 ⋯ 월스트리트는 거의 배운 것이 없었다. 1999년 11월에 JWM(메리웨더와 그의 파트너들, 즉 메리웨더, 하가니, 힐리브랜드, 레하이, 로센펠드, 그리고 아준 크리슈나마차르)은 ‘Relative Opportunity Fund II’에 관한 자료를 뿌리고 다녔다. 이들에 따르면, 새로운 펀드의 차입비율은 15대 1의 평범한 수준으로 제한될 것이고, 더 엄격한 원칙들이 적용되며, “포트폴리오 회사가 1998년에 경험한 바와 같은 유형의 극단적인 사건에도 견딜 수 있는 실용성을 보증하기 위해” 고안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었다.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위기에 근거하여 고안된 어떤 수학적 시스템이 미래의 몰락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메리웨더에게 JWM의 성공적인 출발은 또 다른 화려한 재기였다(사실 이런 일은 월스트리트에 비일비재하다). 그가 45억달러의 손실을 입어 월스트리트 전체와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과 함께 몰락시킬 것처럼 보였던 대사건이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난 1999년 12월, 메리웨더는 주로 불운했던 LTCM의 옛 투자가들로부터 2억 5,000만달러의 자본을 모아 재출발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82%EB%85%84%EC%83%9D_%EA%B9%80%EC%A7%80%EC%98%81&amp;diff=16362</id>
		<title>82년생 김지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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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2개)&lt;/p&gt;
&lt;hr /&gt;
&lt;div&gt;민음사의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 13권&lt;br /&gt;
&lt;br /&gt;
&amp;lt;br&amp;gt;출간일	2016년 10월 14일&amp;lt;br&amp;gt;&lt;br /&gt;
쪽수,무게,크기	192쪽 | 294g | 127*188*20mm&amp;lt;br&amp;gt;&lt;br /&gt;
ISBN13	9788937473135&amp;lt;br&amp;gt;&lt;br /&gt;
ISBN10	8937473135&lt;br /&gt;
&lt;br /&gt;
&lt;br /&gt;
저자 조남주씨의 이력&amp;lt;ref&amp;gt;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http://www.yes24.com/24/Goods/32972572?Acode=101]&amp;lt;/ref&amp;gt;을 보면 알 수 있듯,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듯한 말투로 서술되어 있다. 물론 감정이 모두 배제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조차 제3자의 건조한 시선으로 묘사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인용된 객관적 자료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82년생 여성의 삶을 그려내는데,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좀 더 극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여 여성의 삶을 더 격렬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여지가 많아 보이나 (그렇게 해서 많은 여성들의 이 사회에 대한 분노에 불을 지피고자 했으면 충분히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았을 여지가 보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 이건 조금 오바 아닌가’ 싶은 부분들도 꽤나 보편성 있는 것으로 인정하게(‘내 생각에나 오바지 여성들 입장에서는 이런 사건이 꽤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인가보다. 80년대 전반 출생한, 혹은 출생시기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적지 않게 이런 일을 겪고 살았나보다’싶게)만든다.&lt;br /&gt;
&lt;br /&gt;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性)적 경험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 성추행등 성장기의 여성들이 적지 않게 겪는 그런 일들이나, 이성교제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경험이 아주 간략하게만 나오거나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소설이 한 여성의 삶 전체를 조명한다기보다, 우리사회(흔히 ‘여성혐오사회’라고 불러도 좋은 면들을 많이 가진 사회)의 불합리를 드러내는 데 무게가 있다보니 그런 것도 같다. &lt;br /&gt;
&lt;br /&gt;
책 말미에 작품해설이라고 여성학자의 글이 나오는데 글쓴이는 그 여성학자의 해설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조금 궁금하다. 「PD수첩」등의 작가를 했던 전적(&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areer&amp;lt;/span&amp;gt;)을 보아 전적으로(&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fully&amp;lt;/span&amp;gt;) 동의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또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lt;br /&gt;
&lt;br /&gt;
딱히 옮겨놓고 싶을 만큼 눈에 띄는 문장이 없고, 전반적으로 문장력을 드러내기보다는 사실적인 서술에 초점을 둔 글이라 특정 부분 인용은 하지 않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C%9E%AC%EB%8A%A5%EC%9D%98_%ED%83%84%EC%83%9D&amp;diff=16361</id>
		<title>재능의 탄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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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베르너 지퍼 저 / 송경은 역 | 타임북스 | 2010년 04월 06일 | 원제 : Das Genie in mir&lt;br /&gt;
&lt;br /&gt;
38 재능을 평가할 때 순환논법에 따른 논리가 전개되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면, 그런이유로 재능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왜 재능이 있다고 하는지 묻는다면 그가 더 잘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재능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인 대화체에서 사용될 때는 이처럼 방법적으로 문제가 된다.&lt;br /&gt;
&lt;br /&gt;
82 사람이 발전하는 데에는 수많은 길이 열려 있는 듯 보인다. 이 길들은 꼬불꼬불하고 한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다 끝도 없이 길다. 하지만 아무리 고되고 험난할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목표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한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래도 가장 잘 보여주는 최선의 예측기준은 바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연구 논문들이 입증하고 있듯이 정신을 집중하여 연습과 훈련,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 수년 뒤 대가가 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142 사고능력을 개선시키는 운동으로는 수영이나 자전거타기, 조깅, 스케이팅, 산책, 댄스, 축구, 핸드볼, 배구, 테니스를 꼽았다. (중략) 모든 운동이 뇌에 좋은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칭이나 등장성운동(관절변화와 근육수축운동으로서 웨이트트레이닝에 속하는 운동), 파워 트레이닝은 인지능력을 높이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lt;br /&gt;
&lt;br /&gt;
202 사춘기가 되면 뇌의 감정을 주관하는 부분에서 이른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의 3분의 1이 없어진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했는데도 말이다. 같은 수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이들의 뇌는 점점 더 극적이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lt;br /&gt;
&lt;br /&gt;
214 몇 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 천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취학 연령이 되기 전까지 제2언어를 습득한다면 유리한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게이머 빈 부이 탄은 세살 때 부모와 함께 하노이를 떠나 독일로 왔기 때문에 독일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한다.&lt;br /&gt;
 ‘조기’라는 나이제한은 2개 국어를 말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아이들 가운데 한 그룹은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를 사용하며 자란 경우였고, 다른 한 그룹은 나중에, 예컨대 열한 살이 되어서야 제2 언어를 접한 경우였다. MRI 촬영을 해 본 결과 두 그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조기에 배운 아이들은 뇌에서 언어를 관할하는 부분인 브로카영역에서 하나의 같은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 반면에, 나중에 배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므로 언어중추가 성장을 멈추기 전까지는 2개 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자연적으로 적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뇌가 각 언어마다 네트워크를 따로 활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lt;br /&gt;
 바젤 대학교의 신경해부학 교수인 Cordula Nitsch와 동료들이 알아낸 것처럼 놀랍게도 이러한 연관성은 3개 국어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연구진은 두 그룹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다. 첫 번째 그룹은 태어날 때부터 2개 국어를 먼저 습득하고 아홉 살 이후에 제3 언어를 익힌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은 제2언어와 제3언어를 한참 후에야 습득한 아이들이었다. MRI 촬영결과 두 번째 그룹 아이들은 세 가지 언어마다 각기 다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음이 나타났다. 하지만 첫 번째 그룹 아이들에게서는 하나의 네트워크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기에 다국어를 사용하는 양식으로 일단 맞춰지면 뇌는 그 밖에 다른 언어를 습득할 때마다 − 훨씬 나중에 그 언어를 습득하더라도 − 이중언어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실험들이 보여주듯, 이는 특히 문법적 규칙을 통달하는 데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 감각을 키우기란 풍부한 어휘력을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기억력은 얼마든지 더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니까.&lt;br /&gt;
 조기라고 하는 나이제한이 정확히 몇 살인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서너 살까지는 이중 언어 네트워크가 확실하게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여덟 살 때까지 외국어를 배우면 그래도 두 영역이 겹치는 부분, 다시 말해 부분적인 이중 언어 네트워크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중략) 하지만 표준어 한 가지만  사용하면서 성장한 사람에게도 가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런 이들도 노력과 동기부여 그리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 용의만 있으면 어느 정도 격차를 없앨 수 있다. 실험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나중에 배우는 사람은 1년 이상 외국에서 지내면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속도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251 에릭슨 교수는 경험이 있다고 저절로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학습에도 특정한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계획적인 훈련(&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eliberate practice&amp;lt;/span&amp;gt;)라고 표현했다. 이는 목표를 정해 놓고 하는 훈련으로서 초보자가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훈련시간이 걸린다. 이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지 파악하여 그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을 함으로써 매일 작은 진전이 있게 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동화에나 나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252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를 주고 싶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골프에서 더 이상 좋아지지 않고 그대로인 이유는 코스에서 공을 한 번만 칠 수 있기 때문에 실수 샷을 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이 때는 다시 칠 수 있는 곳에 가서 같은 위치에서 같은 클럽으로 5번, 10번, 20번 연습을 하면 스윙감각을 익힐 수 있고 교정도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256 취약 부분을 알고 노력한다면 특별한 결과가 따를 것이다. 이 노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의 감정을 어떻게 이겨 내는지를 분명하게 배우게 된다. 연습 자체에서 근원적인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lt;br /&gt;
&lt;br /&gt;
286 “배움에 대한 애정은 배워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교사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 아인슈타인&lt;br /&gt;
&lt;br /&gt;
---&lt;br /&gt;
Posted via email&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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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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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html&amp;gt;&lt;br /&gt;
&amp;lt;style&amp;gt;&lt;br /&gt;
div.xxx { padding:1em; border-radius:1em; background-color: rgb(219,232,251);}&lt;br /&gt;
&amp;lt;/styl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제프콜빈&lt;br /&gt;
Talent is overrated - Geoff Colvin&lt;br /&gt;
&lt;br /&gt;
72  새로 주어진 과제를 처음 해 볼 때는 IQ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더 잘 해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익숙해질수록 IQ와 성과의 상관관계는 점차 느슨해지다가 결국엔 아예 무관해진다.&lt;br /&gt;
&lt;br /&gt;
94  연습은 굉장히 힘든 활동이어서 일상생활의 패턴까지 바꾸게 했다. 최우수 집단과 우수 집단 학생들은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연습량의 대부분을 소화한 반면, 보통 집단 학생들은 대개 오후 늦게 연습했다. 즉 더 피곤한 상태에서 연습을 했다는 말이다. 한편 이들은 다른 면에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상위 두 집단은 보통 집단 학생들보다 수면시간이 길었다. 밤에 자는 시간만 긴 것이 아니라 낮잠 시간도 길었다. 연습량이 많을수록 회복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108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제대로 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골프 연습장에서 또는 피아노 앞에서 단지 과거에 해오던 일을 반복하며, 이미 예전에 도달한 수준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lt;br /&gt;
&lt;br /&gt;
109 어떤 부분을 훈련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기술이다.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크로톤빌에 있는 GE의 경영 개발 센터를 이끌었던 노엘 티치&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oel Tichy&amp;lt;/span&amp;gt;는 세 개의 동심원으로 이 기술의 핵심을 설명했다. 세 개의 동심원은 가장 안쪽부터 각각 ‘안전 영역&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comfort zone&amp;lt;/span&amp;gt;’, ‘성장 영역&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earning zone&amp;lt;/span&amp;gt;’, ‘공황영역&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anic zone&amp;lt;/span&amp;gt;’이라고 부른다. 성과 향상은 성장 영역에 포함된 활동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계를 넘어선 기술과 능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 영역에서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이 영역의 활동들은 이미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공황 영역의 활동들은 너무 어려워서 접근 방법조차 파악하기 힘들다.&lt;br /&gt;
 성장 영역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식별한 후에는 그 영역이 바뀔 때까지 스스로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것이 성장 영역을 식별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런 것들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lt;br /&gt;
&lt;br /&gt;
112 이 부담은 오래 견디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심하다. 어떤 유형이든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최대 4~5시간 정도이며, 대개 한 시간에서 한시간 반 단위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베를린 연구에서 최우수 집단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보통 하루 세 시간 반 정도를 두세 번으로 나누어 연습했다. 다른 많은 최고 수준의 음악가들의 연습량 역시 최대 4~5시간을 넘지 않았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조차 연습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밝혔다.&lt;br /&gt;
&lt;br /&gt;
116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연습이 지루한 이유는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성한다는 것 자체가 고되고 단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127 흔히 사람들은 위대한 성과자들이 아주 오랫동안 연습해 왔고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해 왔으니까 그 일을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연습을 통해 습득한 것은 반사적으로 하지 않는 능력이다.&lt;br /&gt;
&lt;br /&gt;
140 재정 분석가 로라 리튼하우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Laura Rittenhouse&amp;lt;/span&amp;gt;는 기업 CEO들이 주주에게 보낸 연례보고서에서 ‘나’라는 단어를 사용한 횟수를 세어 기업의 성과를 예측하는 자료로 삼았다. 그녀는 이런 데서 얻는 자료들이 기업 성과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나’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자기중심적인 경영인은 성과도 나쁘다.)&lt;br /&gt;
&lt;br /&gt;
171 말로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도 프랭클린식 접근법이 유용하다. 우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보고 각 부분의 요점을 기록한다.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렸을 때쯤 요점을 기록한 노트를 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본다. 전체 내용이 완성되면 연습을 한 뒤 그 장면을 녹화해서 본으로 삼은 프레젠테이션과 비교해 보라.&lt;br /&gt;
&lt;br /&gt;
181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에서와 마찬가지로 핵심은 현재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비교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너무 기준이 높으면 의지가 꺾이고 너무 낮으면 진전을 보지 못한다.&lt;br /&gt;
&lt;br /&gt;
238 컨설팅 회시 나비센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aviscent&amp;lt;/span&amp;gt;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인터넷 기업가 더글러스 듀인&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Douglas K. Duyne&amp;lt;/span&amp;gt;은 타임스에 마그라프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직관적 통찰이라는 개념은 모든 것이 실제보다 더 쉽다고 믿고 싶어 하는 몽상가들의 꿈이다.”&lt;br /&gt;
&lt;br /&gt;
252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스물여섯 살(1928년)에 완성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폴 디랙&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Paul Dirac&amp;lt;/span&amp;gt;은 정확히 이런 관점에서 유명한 시를 남겼다. “나이는 당연히 모든 물리학자가 두려워해야 하는/ 몸서리쳐지는 뜨거운 열/ 서른 번째 해가 지나고 나면/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네.”&lt;br /&gt;
 하지만 아마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서른 전에 죽은 물리학자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존스는 그가 연구한 인물들이 1900년에는 평균23세에 자기 분야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기 시작했지만, 1999년에는 31세로 8년이나 차이가 났고, 물론 그들이 가장 큰 성과를 이룬 시기는 그보다 더 늦은 나이였음을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다른 혁신가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이유는 수명이 길어져서가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맨 처음 큰 기여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amp;lt;div class=xxx&amp;gt;257 이런 현실로 인해 일찍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경쟁 이득이 따른다. 모든 사람이 어릴 때 뛰어드는 분야에 늦게 뛰어든 사람은 영원히 그들의 등만 봐야 하는 서글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의 최상위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직업 연주자가 된 뒤에도 연습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주당 평균 30시간으로 연습량을 늘렸다. 이것이 1년 동안 누적되면 1500시간이 넘는다. 늦게 시작하는 모험을 감행하려는 사람은 계산기를 꺼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258 이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가르칠 적절한 교사를 찾았다. 이것이야말로 자식들이 발전하고 최고 수준의 인재로 발돋움하는 데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아이들의 첫 번째 교사는 대개 거주 지역 내에 있는 코치나 선생님, 친척 등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곧 이 아이들에게는 실력이 더 뛰어난 교사가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고, 그런 교사들은 대개 먼 곳에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교사를 물색해서 찾은 다음 아이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먼 거리를 오가며 많은 시간을 바쳐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자식과 부모, 양쪽 모두 상당한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관련 분야 최고의 교사에게로 옮겨 갔다.&lt;br /&gt;
&lt;br /&gt;
259 위의 부모들은 아이의 발전 정도에 따라 그에 맞는 교사를 선택하는 일 이외에 직접 아이를 지켜보면서 충분한 시간 동안 제대로 연습하는지 확인했다. 연습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연습이 뛰어난 성과의 핵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들이란 워낙에 연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ihaly Csikszentmihalyi&amp;lt;/span&amp;gt;와 그의 동료들은 왜 일부 청소년들이 계획된 연습과 위대한 성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중력 유지와 힘겨운 공부를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쉽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가정환경에 초점을 맞추어 격려와 지원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평가했다. 격려 환경은 풍부한 학습 기회와 학업 성과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의미했고, 지원 환경은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따지지 않고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명확한 규칙과 의무를 의미했다. 학자들은 연구 대상자들의 가정환경을 ‘격려하는’과 ‘격려하지 않는’, 그리고 ‘지원하는’과 ‘지원하지 않는’이라는 구분에 따라 네 가지 조합이 가능하도록 분류했다. 네 가지 조합 중 세 조합에 속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습에 대한 관심도 및 열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머지 한 집단, 즉 ‘격려하는’ 및 ‘지원하는’ 환경에 속하는 학생들은 자기 공부에 훨씬 더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였으며, 열의도 많았다.&lt;br /&gt;
&lt;br /&gt;
268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다른 모든 분야에도 적용된다. 경영, 비행기, 조종,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구를 통해 뛰어난 성과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속도와 일반적인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자기 전문 분야만큼만은 예외였다. 예를 들어, 노령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조사한 결과 일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속도가 그들 나이대의 평균 수준으로 느려져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이런 증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은 화면에 나타난 질문을 보고 얼마나 빨리 버튼을 누르는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동작을 얼마나 빨리 하는지, 또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잘 조정할 수 있는지 측정했다. 이 모든 실험에서 반응 속도는 나이가 많을수록 느려졌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들 역시 화면에 나오는 문제를 보고 버튼을 누르는 동작처럼 피아노 연주기술과 거의 상관없는 실험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을수록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두드리거나 손가락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것처럼 피아노 연주와 연관이 있는 기술에서는 속도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기술에서는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문 분야와 관련된 일이 주어졌을 때 뛰어난 성과자들은 다른 방면의 능력이 떨어진 이후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발휘했다.&lt;br /&gt;
 우리가 지금까지 위대한 성과의 본질에 관해 살펴본 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결국 탁월한 성과가 뛰어난 일반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뿐이다. 탁월한 성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각별한 노력으로 발전시킨 고유한 기술로 얻어진다. 따라서 노화로 인해 일반 능력의 기능이 떨어진다 해도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적 기술 능력까지 떨어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노화 때문에 전문적 기술 능력이 떨어진 사례도 많기 때문에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탠리 더러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분야에서 짧은 성공을 거두고 이내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왜 누구는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누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lt;br /&gt;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그들이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 계획된 연습에 있다. 수십 년의 경험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전문 분야라 해도 나이의 영향에 겨우 맞서는 정도로는 예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수많은 연구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건축가는 뛰어난 공간 능력&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spatial ability&amp;lt;/span&amp;gt;을 키워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건축가들을 조사한 결과 나이가 들면서 공간 능력이 저하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뛰어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의도적으로 특정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한 연습이다. 고령의 나이인데도 뛰어난 실력을 유지하는 피아노 연주자와 일반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들을 비교해 본 결과, 아마추어 연주자들 중 일부는 경력이 40년이나 되었지만 계획된 연습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전문가들과 달리 그런 아마추어들은 분야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화로 인한 실력 저하로 고통스러워했다.&lt;br /&gt;
&lt;br /&gt;
&amp;lt;div class=xxx&amp;gt;282 시카고 대학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내재적 동기를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과 연결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연구에서, ‘몰입’이란 시간이 천천히 가고 즐거움이 커지며, 전혀 힘들지 않게 느껴질 만큼 어떤 일에 빠져든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런 ‘황홀감’은 자신이 도전하는 과업과 자기가 가진 기술이 잘 맞아떨어질 때 느껴지는 기분이다. 만약 과업이 너무 쉬우면 그 경험은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몰입을 경험해 본 사람은 한 가지 일을 달성하면 반드시 더 큰 도전 과제를 찾고, 몰입의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기술 수준을 갖추려 한다.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은 자신의 현재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꿀어올리도록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획된 연습 과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lt;br /&gt;
 몰입의 개념은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에 관한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연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 비춰볼 때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이론에는 작은 모순들이 존재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연습은 ‘즐길 만한 일이 아니다.’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따라서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종종 이와 정반대 경험을 한다고 보고했다. 레슬링 선수, 스케이트 선수, 축구 선수, 필드하키 선수, 격투기 선수를 조사한 결과 연습은 유희성 측정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였던 모니카 셀레스&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Monica Seles&amp;lt;/span&amp;gt;는 1999년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lt;br /&gt;
 이런 반응은 에릭슨의 연구에 참여한 바이올린 연주자들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연주자들은 연습을 꽤 끔찍한 일로 여겼다. 생각해보면 운동선수들이 연습을 즐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사회 활동이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연습은 사회 활동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우리는, 어쨌든 연습이 몇 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연습을 통해 그 사람의 내적 욕구가 채워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연습이 황홀감을 경험하는 몰입의 상태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lt;br /&gt;
 확실히 연습하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심오한 일이 진행될 법도 하다. 과학이나 수학 같은 분야에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한 매혹은 뛰어난 학자들이 탐구에 매진하는 원동력이다. 벤저민 블룸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젊은 인재들 중 일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새로운 문제 해결법을 찾는 기쁨을 좋은 성적을 내거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와 마주치고 그 해결책을 찾아낸 순간의 기쁨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lt;br /&gt;
 (중략)&lt;br /&gt;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비록 내적 동기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성과자들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적 동기에 반응을 보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구조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 있을 때 거의 쉬지도 않고 일했다. 자칫하면 다른 연구팀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외적 동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일부는 창의성을 제약하지만 일부는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외적 동기는 꽤 효율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창의성 향상에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기대는 창의성을 감소시키는 반면, 개인적인 피드백이 적절히 이루어지기만 하면, 애머빌의 표현을 빌자면 “건설적이고 비위협적이며 사람 중심이 아닌 과업 중심의 피드백”일 때, 창의성은 강화된다. 즉 자신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게 밀어주는 피드백은 효과적이다. 보통은 창의성을 억제하기 마련인 직접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도 그것이 바람직한 유형의 보상 - 더 많은 시간, 자유, 또는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찾아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 - 일 때는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애머빌은 이런 발견들에 힘입어 자신의 가설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여전히 가장 강력한 것은 내적 동기이고 사람을 통제하는 외적 동기가 창의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외적 동기는 매우 효과적이다.”&lt;br /&gt;
 창의성과 관련한 동기를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그것이 ‘위대한 성과 달성에 요구되는 힘겨운 과정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폭넓은 주제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외적 동기가 특정 환경에 유용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는 많다. (중략)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특정 분야의 기술 습득에서 특히 초기 단계에는 외적 동기가 도움이 된다. 블룸의 연구 대상이었던 다양한 분야의 젊은 인재들도 자기 분야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는 외적 동기에 크게 의지했다. 그들의 부모들은 적절한 방법으로 유도해서 아이들이 연습을 하게 만들었다. 이때 부모들의 직접적인 압력이 아이들의 내적 동기로 작용하는 일이 많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연습을 시킬 때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으면 외출 약속 취소야.”가 아니라 “피아노를 팔아 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수영 연습에 안 가면 토용일 밤에 못 나갈 줄 알아.”라고 하기보다는 “팀에서 탈퇴시킬 거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이들이 피아노나 수영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 위협이 통했을 리는 없다.&lt;br /&gt;
 다른 외적 원동력들 역시 중요했는데, 그런 것들이 아이로 하여금 계획된 연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 애머빌이 제시한 효과적인 외적 동기와 완전히 일치했다. 코치나 교사의 피드백은 과제와 실력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 여러 교사들이 아이에게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 주고 성과를 주시했다. 발표회나 대회가 동기를 부여했는데, 좋은 성적을 얻거나 상을 받으면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성과에 따른 관심과 환호는 중요한 외적 동기로 작용했다.&lt;br /&gt;
 하지만 블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생들이 점점 자기 자신의 동기에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했다. 외적 동기도 여전히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은 공식적인 대회나 연주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확실하게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또한 이런 일들이 이 학생들을 다른 뛰어난 사람들과 하나로 이어주었고, 거기서 이들은 최고 성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을 것이다. 즉 이들의 동기는 단지 뛰어난 성과에 따르는 타인들의 환호가 아니라, 점점 최고가 되고자 하는 내적 원동력으로 바뀌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299 승수 효과를 일으키는 비슷한 방법 중 하나는 경쟁이 거의 없는 장소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래 아이들이 100명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사는 것이 1000명이 있는 마을에서 사는 것보다 수학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기가 훨씬 쉽다. 블룸의 연구에서 어린 성취가들의 대다수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보고했다.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경쟁지대로 넘어가야만 자기만큼 잘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아노 연주자 중 한 명은 음악 영재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에 고립되어 있으면 정말 멋진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이런 경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더 실력을 갈고 닦아 나갈 동기를 키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을 전혀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환경에 살았다면 그런 동기를 키웠을까? 하워드 가드너는 아인슈타인과 스트라빈스키 등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대도시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들은 더 작은 환경에서 자신의 기술을 개발한 다음에 큰 무대로 나아갔다.&lt;br /&gt;
 정반대로도 승수 효과를 촉발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달성했는지에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또는 작은 지역에서 얻은 약간 괜찮은 정도의 성과가 남들로부터 칭찬을 유도해 더 강도 높은 연습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한다는 설명은 꽤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이 과정은 순환적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성과가 아니라 칭찬으로 그 순환고리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실제 실력에 상관없이 단지 잘한다는 칭찬만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성과 향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 가정도 실현가능해 보인다. 블룸의 연구 대상자들이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지만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블룸은 “교사는 그 학생을 ‘특별한 학생’으로 대했고, 그런 대접을 받는 학생은 이를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런 학생들에게는 대부분 실제 증거와 상관없이 그들을 특별하다고 말해 주는 부모가 있었다. 즉 여기서도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요소가 승수 효과의 선순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그리고 어쨌든 해볼 만한 시도 아닌가.&lt;br /&gt;
&lt;br /&gt;
[[image:howtalent.jpg]]&lt;br /&gt;
&lt;br /&gt;
 저자가 포춘지 칼럼니스트라 그런지 각종 예시나 상황제시가 금융계 종사자나 경영자들로 되어있어 그 외 종사자들은 나름의 고민이 있어야 적용 가능할 듯하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뜻을 알 수 없는 직역투의 문장이 많다. 마지막 챕터(‘열정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는 일반론이지만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p.106 부터 목차로 나와 있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특성&lt;br /&gt;
 - 성과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설계된다.&lt;br /&gt;
 - 수없이 반복할 수 있다.&lt;br /&gt;
 - 끊임없이 결과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lt;br /&gt;
 -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다.&lt;br /&gt;
 - 별로 재미는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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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냥한 폭력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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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개)&lt;/p&gt;
&lt;hr /&gt;
&lt;div&gt;정이현 소설집&lt;br /&gt;
&lt;br /&gt;
ISBN-10 8932029091&lt;br /&gt;
&lt;br /&gt;
ISBN-13 9788932029092&lt;br /&gt;
&lt;br /&gt;
http://www.yes24.com/24/Goods/32682607?Acode=101&lt;br /&gt;
&lt;br /&gt;
&lt;br /&gt;
==영영, 여름==&lt;br /&gt;
===122===&lt;br /&gt;
&amp;amp;emsp;메이의 런치박스 안은 휘황찬란했다. 소스까지 제대로 뿌린 두툼한 햄버그스테이크와 새우튀김, 닭튀김이 가득했고 두꺼운 햄과 치즈를 넣고 양상추가 밖으로 비어져 나올 만큼 커다랗게 싼 샌드위치도 여러 조각이었다. 다른 통에는 알알이 곱게 씻은 청포도와 한입 크기로 조각낸 멜론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amp;lt;ref&amp;gt;음식에 대한 묘사가 너무 리얼해서 퍼옴&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23~124===&lt;br /&gt;
&amp;amp;emsp;일곱번째로 같이 밥을 먹고 난 뒤 메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반들거리는 흰 조약돌이 모두 다섯 알이었다. 본 적 있어? 메이가 물었다. 돌이잖아. 내가 대꾸했다. 공깃돌 같아서 주웠어. 공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메이의 말을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공기라면, 디 에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the air&amp;lt;/span&amp;gt;? 메이가 시범을 보였다. 메이의 손은 자그마했고 손가락들은 짧고 뭉툭했다. 메이는 먼저 조약돌들을 책상에 가지런히 뿌리고는 한 알을 수직으로 높이 던졌다. 한 알이 공중에 머무는 찰나, 나머지 네 개 중에서 하나를 재빨리 집고는 낙하하는 돌을 같이 받았다. 그렇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의 돌들이 메이의 주먹 안에 다시 모였다. 꺾기! 이번에 메이는 그 다섯 알을 한꺼번에 휙 던졌다가 손등으로 받았다. 그러곤 손등을 다시 튕기면서 얼른 손을 뒤집었고, 붕 떴던 다섯 개의 돌들은 메이의 작은 손바닥 안에 완전히 휘감겼다. 나는 입을 벌리고 메이의 묘기를 지켜보았다. 그건 조약돌과 공기(空氣)와 인간이 함께 벌이는 마술의 한 장면 같았다.&lt;br /&gt;
&lt;br /&gt;
==밤의 대관람차==&lt;br /&gt;
===139===&lt;br /&gt;
&amp;amp;emsp;명예퇴직의 꿈을 또다시 접은 초겨울 아침, 양은 어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눈뜨자마자 머리맡의 안경을 찾아 쓰고, 세수를 하고, 간소한 화장을 하고, 간밤 끓여놓은 국에 밥을 말아 반 공기쯤 먹고, 이를 닦은 뒤, 지난 세기의 어느 날 장만한 겨울 정장 중 하나를 꺼내 입었다. 역시 지난 세기의 어느 날 학부모에게서 선물 받은 목도리를 꺼내 두르고, 입을 만한 몇 벌의 코트 중에 하나를 골라 걸쳤다. 남편이 잠든 81제곱미터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서 양은 자신의 몸이 25년의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lt;br /&gt;
&lt;br /&gt;
===151===&lt;br /&gt;
&amp;amp;emsp;양은 그들의 사랑이 불투명한 도기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청주 같은 것이었다고 의심해야 했다. 한 잔씩 따라 달게 홀짝이다 보면 이윽고 비어버리는 것.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술병은 없었다. &lt;br /&gt;
&lt;br /&gt;
==해설==&lt;br /&gt;
문학평론가 백지은 &amp;lt;공허와 함께 안에서 밀고 가기&amp;gt;&lt;br /&gt;
===231===&lt;br /&gt;
&amp;amp;emsp;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로 옮겨가기가 수십 해 반복되다 보면, ‘세월’이라 불러도 되는 시간들에 그 단어에 값하는 숱한 일들이 쌓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나 영원한 이별, 또는 남에게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경험 같은 것도 더러 겪었으리라. 인생의 모서리가 퍽 닳아서 세상살이에 길들여진 이들을 ‘기성세대’라 부르면 되려나. &lt;br /&gt;
&lt;br /&gt;
==작가의 말==&lt;br /&gt;
===248~249===&lt;br /&gt;
&amp;amp;emsp;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인 것만 같다.&lt;br /&gt;
&amp;lt;br&amp;gt;&lt;br /&gt;
&amp;amp;emsp;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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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는 언젠가 죽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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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3개)&lt;/p&gt;
&lt;hr /&gt;
&lt;div&gt;*56&amp;lt;br&amp;gt;나는 철저한 프로이트적인 관점을 지닌 아버지의 주치의에게 왜 10대 딸은엄마에게 그렇듯 비판적이냐고 물어보았다. 의사가 대답했다. “10대의 몸에는 호르몬 에너지가 미친 듯이 돌고 있는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엄마에 대한 분노로 표출됩니다. 딸은 자신이 가임기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가족이 자기를 더 존중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것 같아요. 가족의 영속은 이제 딸에게 달렸지요. 딸이 그 영역으로 들어옴과 맞물려 엄마는 그 영역을 떠납니다. 엄마와 딸의 분쟁을 놓고 가족이 의논을 한다면 아빠들은 틀림없이 딸 편을 듭니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누이에 대해 그런 입장을 취했던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니가 계속 집안을 호령했던 것 같은데.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딸 편을 들지요. 가족이 생산력 높은 여성을 우선 보호하도록 유전자가 몰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딸이 엄마에게 느끼는 분노는 가임 능력을 통해 얻은 권력의 맛과 아이 낳는 사람으로 지정된 데에 대한 부담감이 섞인 것입니다.” &lt;br /&gt;
*135&amp;lt;br&amp;gt;어떤 나이게 머물러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몇 살이기를 택하겠는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이도 높아진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람들은 27세라고 답하고, 25세에서 29세 사이는 31세, 30세에서 39세 사이는 37세, 40세에서 49세 사이는 40세, 50세에서 64세 사이는 44세, 그리고 64세를 넘은 사람들은 59세라고 대답한다.&amp;lt;br&amp;gt;&amp;amp;nbsp;우리의 지능지수는 18세에서 25세 사이에 가장 높다. 뇌는 25세에 최대 크기가 되고, 이후에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여 무게가 줄고 빈 공간이 액체로 채워진다. &lt;br /&gt;
*136&amp;lt;br&amp;gt;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로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 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위안이 필요하다면 지식적인 면을 생각하자. 어휘력은 20세일 때보다 45세일 때 3배 풍성하다. 60세의 뇌는 20세 때보다 정보를 4배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lt;br /&gt;
*143&amp;lt;br&amp;gt;미국의 철학자 니컬러스 머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Nicholas Murray&amp;lt;/span&amp;gt;는 말했다. ‘“30세에 죽었으나 60세에 묻혔다”라고 묘비에 써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생의 첫 30년은 삶은 사는 데 쓰이고, 이후 40년은 삶을 이해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는 숫자를 역전시켜서 말했다.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루소는 뭐라고 했을까.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같다. 10세에는 사탕에 휘둘리고, 20세에는 이성에, 30세에는 쾌락에, 40세에는 야망에, 50세에는 탐욕에 휘둘린다. 그 후에는 달리 남은 것이 없으니 지혜를 추구한다.’ &lt;br /&gt;
*151&amp;lt;br&amp;gt;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기이다. 50세는 노년의 청춘기이다’ &lt;br /&gt;
*209&amp;lt;br&amp;gt;에머슨은 말했다. ‘60세가 된 사람들이 일본인들처럼 할복해 죽는 게 유행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한느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계속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lt;br /&gt;
*215&amp;lt;br&amp;gt;토머스 핀천은 말했다. “소설의 ‘진지함’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가령 등장인물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또는 죽음이 가깝지 않을 때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 것인가.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젊은 작가들이 이런 주제를 다루는 일은 거의 없다. 습작을 쓰는 나이의 사람들은 그런 충고를 받아봤자 절실하게 느끼지 못해서일 것이다.” &lt;br /&gt;
*218&amp;lt;br&amp;gt;나이가 들면 각막이 누리끼리하게 변해서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푸른 계통의 색은 더 짙어보이고 노란 계통의 색은 더 밝아 보이며 보라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화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짙은 푸른색이나 보라색을 덜 사용한다. &lt;br /&gt;
*220&amp;lt;br&amp;gt;미국의 금융인이자 정치가 버너드 바루크는 85세에 말했다. ‘노인이란 언제나 나보다 15세 많은 사람을 말한다.’ &lt;br /&gt;
*221&amp;lt;br&amp;gt; 죽기 한 달 전, 97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아내에게 ‘세상을 떠나는 게 정말 싫소’라고 말했다.&amp;lt;br&amp;gt; 프랑스 학자 베르나르 드 퐁타넬&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ernard de Fontanelle&amp;lt;/span&amp;gt;은 말했다. ‘존재를 지속하기가 다소 힘들다는 기분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100세에 죽었다. &lt;br /&gt;
*232&amp;lt;br&amp;gt;시야가 넓어지고 마침내 ‘그저 게임일 뿐’임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나는 아파했다. 아, 얼마나 아파했던가. 브루클린 범스라는 애정어린 별명으로 불렸던 나의 사랑하는 다저스는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다. 다저스가 연패를 하면 나는 신을 원망했다. 무한한 지혜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양키스 팬으로 만들지 않으셨나이까. &lt;br /&gt;
*235&amp;lt;br&amp;gt;보르쉬트 벨트 &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Borscht Belt&amp;lt;/span&amp;gt;&amp;amp;nbsp;: 미국 유대 극장에서 유행했던 코미디 양식으로, 자기비하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특징 &lt;br /&gt;
*249&amp;lt;br&amp;gt;기원전 44년에 키케로는 말했다. ‘아무리 늙은 사람이라도 1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기원전 43년에 죽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미국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말했다. ‘누구나 죽어야 하지만 나는 늘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에드워드 영은 ‘누구나 사람의 생명이 유한한 것을 알지만 누구나 자신을 빼놓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이런 문답이 있다.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주변에서 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lt;br /&gt;
*267&amp;lt;br&amp;gt;캘리포니아-어바인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마이클 로즈는 느지막이 번식한 초파리들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실험했다.(사람으로 치면 25세가 넘는 여성들만 아이를 낳게 하고, 그 딸들도 26세 이후에만 생식하도록 하여 여러 세대를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랬더니 초파리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조금씩 수명이 길어졌다. 지속적인 선택적 육종으로 탄생한 초파리들은 조상들보다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다. 로즈는 사람에게 비슷한 실험을 해본다면 열 세대 만에 기대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lt;br /&gt;
*269&amp;lt;br&amp;gt;‘인생은 늘 6대 5로 지는 도박이다’ - 데이먼 러니언(미국의 기자이자 작가) &lt;br /&gt;
*281&amp;lt;br&amp;gt;Elaine Scarry는 ‘The Body in Pain’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어 다른 대상들의 자리를 삼켜버린다. 아주아주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의 세상은 자기 몸에서 반경 60센티미터 안의 원으로 좁혀진다. 무엇을 먹었고, 배출에 어떤 문제가 있고, 통증의 진행 정도는 어떻고, 의자나 침대가 편하네 편하지 않네 하는 내용이 생각과 말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lt;br /&gt;
*284&amp;lt;br&amp;gt;테니슨의 시 ‘Tithonus’에서 티토노스는 불멸을 원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원히 늙는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티토노스는 죽고 싶다고 결정을 내린다.&amp;lt;br&amp;gt;&amp;lt;br&amp;gt;… 나를 놓아달라. 선물을 도로 가져가라.&amp;lt;br&amp;gt;사람이 타고난 제 족속과 달라지려고,&amp;lt;br&amp;gt;또는 모든 자에게 합당하게 내려진&amp;lt;br&amp;gt;운명의 관문을 벗어나려고&amp;lt;br&amp;gt;조금이라도 욕망할 필요가 있겠는가?&amp;lt;br&amp;gt;나를 풀어달라, 나를 땅으로 돌려달라. &lt;br /&gt;
*287&amp;lt;br&amp;gt;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말했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느님 권좌 앞에 나아갔겠는가. 죽음 앞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lt;br /&gt;
*289&amp;lt;br&amp;gt;다 빈치는 말했다. ‘나는 신통치 못한 업적을 남겨 신과 인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lt;br /&gt;
*296&amp;lt;br&amp;gt;나는 말 더듬는 버릇에 관해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은 사랑, 미움, 기쁨, 깊은 고통처럼 전형적이고 진정 중요한 감정들을 표현할 때에도 자의식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다. 적나라하게 감정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 아니고 그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더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먼저이다보니, 감정은 타인들에게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행복한 사람들의 소유일 뿐이지 내 것은 될 수 없으며, 솔직하지 못하게 돌려 표현할 수 있을 뿐이지 온전히 가질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amp;lt;br&amp;gt; &lt;br /&gt;
*315&amp;lt;br&amp;gt;랩 가수 아이스티는 말했다. ‘우리 인생은 물 위로 잠깐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가라앉는 것이다. 인간도 이 거대한 정글에 사는 한 동물일 뿐이다. 우리가 가진 많은 본능은 전부 동물적이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식량이 필요해서 남을 죽인다. (중략) 아이를 낳으면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아, 이러자고 내가 태어난 거구나”하고 깨닫는다. 인생은 정말로 짧고 나도 곧 죽을 테니까, 나 대신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을 다른 사람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저 다음 세대가 자랄 때까지 버티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lt;br /&gt;
*“죽음은 언제나 추해요. 언제나. 존엄한 죽음 따위는 없어요. 존엄하게 살 수 있을 뿐이지.” - ‘닥터하우스’중. (책의 본문이 아니라 ‘옮긴이의 말’중에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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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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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43: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원어 병기를 작은 글씨와 낮은 기준선으로 표시 (1개)&lt;/p&gt;
&lt;hr /&gt;
&lt;div&gt;박범신&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67&amp;lt;br/&amp;gt;&lt;br /&gt;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 &lt;br /&gt;
&lt;br /&gt;
191&amp;lt;br/&amp;gt;&lt;br /&gt;
사로잡고 싶어서 못살겠구나&amp;lt;br/&amp;gt;&lt;br /&gt;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는&amp;lt;br/&amp;gt;&lt;br /&gt;
애정의 나라 골짜기에&amp;lt;br/&amp;gt;&lt;br /&gt;
사향풀이 향기를 품는 금렵구(禁獵區)&amp;lt;br/&amp;gt;&lt;br /&gt;
—G. 아폴리네르(&amp;lt;span class=&amp;quot;wiki-original-term&amp;quot;&amp;gt;Apollinaire&amp;lt;/span&amp;gt;), ‘토끼’에서&amp;lt;br/&amp;gt;&lt;br /&gt;
&lt;br /&gt;
202&amp;lt;br/&amp;gt;&lt;br /&gt;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lt;br /&gt;
&lt;br /&gt;
393&amp;lt;br/&amp;gt;&lt;br /&gt;
너는 의젓한 어미 닭같이 동생들을 품고 있었다. 내 가슴이 한순간 요동쳤다. 너의 피가 양쪽으로 공평하게 흘러나가 네 동생들의 피와 뜨겁게 섞이는 것을 보았고, 동생들의 숨결이 껴안은 네 팔을 타고 흘러가 너의 가슴, 고동치는 숨결에 짙푸르게 고여드는 것도 나는 보았다. 그것은 일찍이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너는, 너희는 살아 있었고, 함께 있었다. 해는 더욱 찬란해졌다. 나는 비로소 그동안 네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이삿짐에 끼여 두 동생을 안고 있는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세상의 살아 있는 길로, 나아가는, 트럭 위의 너와 네 동생들이 얼마나 근사했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두 동생을 양팔로 싸안고 있는 너의 모습은 햇빛보다 환했다. 일상적 삶에 깃든 너의 참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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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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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여느 천재와 달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알았던 노이만은 결코 나대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타고난 천재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위그너는 “노이만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는 완전히 깨어 있고 나는 반쯤 잠든 기분이었다”고 했다.&lt;br /&gt;
  노이만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관찰하는 눈으로’ 동급생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1850년대에,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리만의 논문을 읽고 “찬란하게 빛나는 창조성의 극치”라며 감탄을 자아냈다.&lt;br /&gt;
&lt;br /&gt;
  모든 종류의 치즈케이크로 이루어진 집합을 상상해보자. 여기에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치즈케이크(뉴욕식 치즈케이크, 독일식 치즈케이크, 레몬 리코타 등)가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집합 자체는 치즈케이크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치즈케이크의 집합’은 그 집합(자기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있다.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여전히 치즈케이크가 아니기 때문이다.&lt;br /&gt;
  러셀은 ‘자신의 원소가 아닌 집합의 집합’을 생각해보았다. 이 집합이 자신의 원소가 아니면 애초의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원소이면 역시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발견한 역설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문장은 거짓이다”)도 이런 종류의 역설에 속한다.&lt;br /&gt;
&lt;br /&gt;
  독일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그레테 헤르만Grete Hermann은 노이만의 책이 출간된 후 그의 증명을 철저히 확인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lt;br /&gt;
  헤르만은 괴팅겐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분명하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원칙적으로 김나지움에 입학할 수 없었고, 굳이 입학을 하려면 학교 재단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헤르만은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했는데, 그녀의 지도교수는 당시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의 유일한 여교수였던 에미 뇌터Emmy Noether였다. 몇 년 전, 괴팅겐의 사학과와 언어학과 교수들이 뇌터의 채용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힐베르트가 그들을 향해 날렸던 대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저는 지원자의 성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긴 대학교잖아요. 목욕탕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 속에서 헤르만과 뇌터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두 여인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그러나 헤르만은 1925년 2월에 박사학위 과정 졸업시험을 통과한 후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당시 뇌터는 헤르만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기에, 제자의 변심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수학 공부를 그토록 열심히 해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철학적 재능을 발견하다니, 축하를 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구나!”&lt;br /&gt;
&lt;br /&gt;
  몇 가지 증거에 의하면 독일은 이미 1943년 3월부터 미국의 핵폭탄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독일에 투하한 핵폭탄이 불발되었을 경우, 독일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분해하여 그들만의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며 폭탄 투하를 반대해왔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과학기술이 독일보다 못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인은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자를 몹시 경멸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직후 미국 정부는 수천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둬놓고 평범한 시민을 범죄자로 모는 등 인종차별과 전시 히스테리wartime hysteria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것은 전시상황에 벌어진 비상대책이라기보다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에 가깝다. 혹자는 핵폭탄을 ‘진주만 공습의 복수’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차출된 비-미국 출신 과학자들에게 “여기서 만든 핵폭탄은 독일이 아니라 일본에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통보했다면, 그들은 도중에 그만두거나 애초부터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lt;br /&gt;
&lt;br /&gt;
  ENIAC은 1930년대에 미국을 강타한 경제 대공황 때문에 학자의 꿈을 접은 전직 물리학 교사 존 모클리John W. Mauchly의 작품이다. 그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학부 과정을 속성으로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1932년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잠시 동안 연구조교로 재직하면서 적당한 일자리를 물색했는데, 때마침 사상 최악이자 최장의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번듯한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모클리와 에커트는 노이만이 수백만 달러를 훔쳤다며 맹렬히 비난했고. 노이만이 그들(모클리와 에커트)의 가장 큰 경쟁사로부터 수천 달러를 받고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했다. 그때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두 사람의 분노는 노이만이 죽은 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노이만이 세상을 떠나고 무려 20년이 지난 1977년에 에커트는 한 인터뷰 자리에서 노이만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노이만은 우리가 개발한 모든 아이디어를 IBM에 알뜰히 팔아넘겼습니다. 그것도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말이죠.”&lt;br /&gt;
&lt;br /&gt;
  그가 바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과학자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의 아들인 로이드 섀플리Lloyd Shapley였다.&lt;br /&gt;
&lt;br /&gt;
  “동전을 허공에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 그리고 옆으로 똑바로 설 확률이 모두 같으려면, 동전의 두께와 반지름의 비율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화젯거리로 떠올랐는데, 노이만이 즉석에서 답을 제시하자 윌리엄스는 기술자에게 당장 그런 동전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고, 노이만의 처방에 따라 절삭기로 갈아서 만든 두툼한 동전은 정말로 모든 확률이 똑같았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과학자들 중에는 두 분야를 고립된 채로 놔두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두뇌를 일종의 컴퓨터(정보처리장치)로 간주하는 노이만식 관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바람에 신경과학이 오히려 퇴보했다. 두뇌와 컴퓨터의 유사성을 추적하는 연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도 없이 실행되었는데도 얻은 것이 거의 없으니, 이제 ‘DELETE 키’를 누를 때가 되었다.”&lt;br /&gt;
  하지만 컴퓨터 말고 딱히 비유할 대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lt;br /&gt;
&lt;br /&gt;
  노이만의 암은 참으로 잔인한 시기에 찾아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53년에 노이만의 초청을 받아 고등연구소에 합류했던 브누아 델브로Benoit Mandelbrot는 그 시기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프린스턴에 머무는 동안 노이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수학자들은 그를 더 이상 수학자로 취급하지 않았고, 물리학자들도 그가 단 한순간도 진정한 물리학자인 적이 없었다며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컴퓨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프린스턴으로 초빙했는데, 기존의 학자들은 그들을 ‘프로그래머’라 부르며 고매한 학문의 전당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으로 취급했다. 한마디로 노이만은 고등연구소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lt;br /&gt;
&lt;br /&gt;
  미클로스는 자신의 형이 단 하루 만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노이만과 가까운 친구들도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울람은 스트라우스에게 “신앙심이 그토록 초단기 속성으로 자랄 수 있다니, 내 마음이 다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마리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파스칼의 내기Pascal&amp;amp;#39;s wager’ (신의 존재 여부에 따른 득과 실을 따져서 종교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옮긴이)를 떠올렸던 겁니다, 그분은 지옥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0이 아니라면,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신도가 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 선택이라고 생각했지요. 또 아버지는 천주교가 신자로 살아가기에 매우 힘든 종교지만, 신자로 죽기에는 아주 좋은 종교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lt;br /&gt;
  노이만의 몸을 잠식하던 암이 어느새 뇌까지 도달했다. 그는 잠결에 헝가리어로 잠꼬대를 했고, 병실을 지키던 군인들을 불러서 “본부에 급히 전할 메시지가 있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지구에서 가장 예리했던 한 사람의 지성은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갔다. 마지막 순간에 노이만은 마리나에게 “7+4” 같은 단순한 산수 문제를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마리나가 던진 몇 개의 문제에 노이만은 하나도 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lt;br /&gt;
&lt;br /&gt;
  1981년에 천문학자 로버트 제스트로Robert Jastrow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컴퓨터란 순수한 사고만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컴퓨터에게 전력과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간이 컴퓨터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컴퓨터의 재생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컴퓨터의 번식을 수행하는 생식기관인 셈이다.”&lt;br /&gt;
  그의 말은 거의 옳았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에는 20억 대의 컴퓨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막강한 번식력을 능가하는 새로운 오토마타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다. 이 기계는 2014년에 전 세계 인구수를 추월했고, 지금 사용 중인 SIM 카드는 100억 개가 넘는다.&lt;br /&gt;
  2019년 한 해 동안 15억 개가 넘는 스마트폰이 팔려나갔다. 증가율로 따져도 인구 증가율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지금은 이 많은 SIM 카드를 인간이 사용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동안, 이 기계도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27b64672154947df9e19353d2fc5dd20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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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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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각 인용의 정확한 위치를 생략했고, 순서만 지킴)&lt;br /&gt;
&lt;br /&gt;
  호니그가 양적완화에 반대한 이유는 이것이 전례 없는 양의 화폐를 공급하게 될 테고 그 돈이 월가의 거대 은행으로 먼저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호니그는 이 돈이 매우 부유한 사람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는 혜택을 보겠지만 월급 받아 살면서 저축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될 터였다.&lt;br /&gt;
&lt;br /&gt;
  티파티가 위력을 발휘한 선거 이후 의회는 어느 방식으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호니그와 의장인 버냉키의 관계는 원래도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적대적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버냉키가 펴낸 회고록에 남에 대한 옹졸한 험담은 그리 많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상당수가 호니그를 향한 것이었다. 버냉키는 호니그를 충성심이 없고 고집이 세며 심지어는 다소 편향된 사람처럼 묘사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의 피셔는 이 계획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근사한 은유로 발언을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적완화는 시장 운영의 칡뿌리와 같습니다. 계속 자라고 또 자라기 때문에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제거하거나 쳐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피셔는 이 계획이 본질적으로 거대 은행과 금융 투기 세력에 혜택을 주고 은퇴를 위해 저축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격이 된다는 호니그의 우려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 정책을 실행하면 가난한 사람, 대부분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사람, 저축을 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결과가 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봅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소비자 물가만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산 가격도 올리고 있었다. 호니그 같은 은행 감독관들이 보기에 자산 인플레이션은 매우 경악스러운 종류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캔자스시티 연은 관할 지역의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핵심 자산은 농지였는데, 농지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도, 유정도 그랬다. 이러한 자산이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올라와 있었는데, 이 자산들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은행들은 더 공격적인 대출을 하도록 부추겨졌다. 중서부 지역 전역에서 은행들은 농지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르리라는 전제에서 농민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었다. 상승하는 담보 가치가 대출금을 충분히 지탱해주리라고 본 것이다. 석유 산업도, 부동산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호니그는 부동산 가치가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만큼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재융자가 가능하리라는 전제하에 건설 분야로 단기 대출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lt;br /&gt;
  이러한 상황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몰아갔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는 은행과 투자자가 돈을 저축하려 할 유인을 없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저축으로 약간의 이자를 얻어도 오히려 손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 돈을 가지고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은행들은 점점 더 수익률 곡선의 먼 쪽으로 내몰렸다. 호니그의 팀은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산 가격이 올랐으므로 은행들이 자신이 내어준 대출이 안전하고 은행 건전성도 안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은 감독관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 해도 장부의 숫자들이 은행 편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이 예기치 못하게 뚝 멎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될 터였다.&lt;br /&gt;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막대한 붕괴가 발생하게 됩니다. 줄도산과 줄손실과 줄위기가 이어집니다.”&lt;br /&gt;
&lt;br /&gt;
  그는 경제학자들이 ‘자산버블’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력하고 지극히 다루기 어려운 현상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수십 년 뒤인 오늘날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은 대개 자산버블이라고 묘사되지 않는다. 오늘날 1970년대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재앙의 절반만 이야기한다. 고깃값이나 휘발윳값 같은 소비재 물가가 충격적으로 올랐던 시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인플레이션이 파괴적이었던 진짜 이유는 두 종류의 인플레이션이 상호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 절반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며,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후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다. 2000년의 닷컴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고 2008년 주택시장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으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시장이 전례 없이 붕괴했을 때도 큰 요인 중 하나가 자산버블이었다.&lt;br /&gt;
&lt;br /&gt;
  처음에 사람들은 볼커가 금리 인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그가 정말로 금리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1979년 10월에는 그가 압력 때문에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준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볼커는 토요일 저녁에 에클스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연준은 금리 인상에 진지하다고 선언했다. “최근 돌고 있는 소문과 달리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 주 주말에 11.6%이던 단기 금리는 그달 말에 16%가 되었고 1년도 안 되어 20%에까지 도달했다.&lt;br /&gt;
  그 토요일 저녁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제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질문했는데, 볼커는 이 질문을 대체로 일축했다. “저는 이러한 조치의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불확실한 세계에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지표들을 보건대, 경제의 조정 과정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lt;br /&gt;
  볼커의 이 말은 틀렸다. 어떤 것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의 경제 생태계는 저금리를 북극성 삼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볼커가 느닷없이 북극성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재조정되어야 했다. 지난 10년간의 자원 배분 양상이 달라져야 했고 모든 것이 수익률 곡선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안쪽으로, 덜 위험한 쪽으로 돌아와야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에 대한 연준의 긴급 융자는 재할인 창구를 통해 나가는데, 호니그는 1980년대 초에 캔자스시티 연은의 재할인 창구를 관리했다. 그의 팀이 어느 은행이 이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지를 결정할 때, 이것은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선고를 내리는 격이었다.&lt;br /&gt;
  1982년에 진정한 은행 패닉이 터졌고, 이는 대공황 이래 최악이었다. 8 그해에 100개 넘는 은행이 도산했는데, 한 해 도산 건수 기준으로 1930년대 이래 어느 해보다도 많은 수였다. 1986년에는 심지어 이 숫자가 더 늘어서 200개가 넘는 은행이 도산했다. 1980년에서 1994년 사이에 총 1,600개 이상의 은행이 도산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호니그는 어리석은 대출이 전적으로 은행들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은행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그에 비해 낮은 금리, 그리고 상승하는 자산 가격이라는 거시 경제 환경에 반응해 의사결정을 했을 뿐이었다.&lt;br /&gt;
  그리고 그러한 거시 경제 환경은 은행들이 만든 게 아니라 호니그가 일하는 기관, 바로 연준이 만든 것이었다.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자산 가치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던 환경에서 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환경은 10년이나 너무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했던 잘못에서 야기된 면이 컸습니다.” 이 부분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1980년대의 침체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자주 간과되곤 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끝냈고 살아남은 건전한 은행을 구제해주었다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나온 연구는 이 재앙 전체에 연준이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순전한 실수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먼 훗날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연준이 고려했던 몇몇 데이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잘못된 데이터 중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연준이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관되게 저평가한 것이었다. 이것은 곡사포 관제병이 오류가 있는 기상관측기구가 보내오는 정보에 기초해 발사 지시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실제 여건이 벙커 안에 있는 팀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연준은 그 시기의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연준과는 관련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비용을 밀어올려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거대 노조가 노동 비용을 밀어올린다거나 중동의 석유 카르텔이 유가를 밀어올린다는 식으로 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은 단지 자산버블만 부추긴 것이 아니었다. 연준은 버블이 커지던 동안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던 은행들을 버블이 붕괴할 때 구제하는 일에도 나서야 하게 되었다. 어떤 은행들은 너무 크고 너무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lt;br /&gt;
&lt;br /&gt;
  예보와 연준은 대안을 마련했다. 예보는 이례적인 구제 패키지를 제공해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주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보가 원래 10만 달러 이내의 예금자만 보전해주게 되어 있는 규정을 넘어 그 이상 예금한 예금 보유자와 채권 보유자까지 모두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돈을 넣었을 은행들에까지 안전망을 크게 넓혀준 것이다. 이제 납세자들이 그 손실 모두를 메워주게 될 터였다. 예보의 구제 금융과 동시에 연준도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콘티넨탈에 긴급 융자를 제공하기로 했다.&lt;br /&gt;
  콘티넨탈 구제 금융은 대인플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에 위험을 충분히 많이 퍼뜨려 놓았다면 그 은행은 위기 때 구제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까지 존재하던 규정은 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간단히 무시될 것이었다. 이 선례는 미국 은행의 어휘집에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다. 콘티넨탈 구제 금융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코네티컷주 출신 공화당 의원 스튜어트 매키니Stewart McKinney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했다. “의장님, 돌려 말하지 맙시다. 우리 앞에는 이제 새로운 종류의 은행이 있습니다.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큰’ 은행 말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성장이 부채로 일으킨 성장이었고 그것이 은행들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린스펀이 묘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되고 강화되면서 21세기 미국 경제의 핵심 특징이 된다. 값싼 부채는 한동안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긴 붕괴와 오랫동안의 약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차차로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새로운 패턴을 더 잘 파악하게 되고 1990년의 불황이 그린스펀이 짐작했던 대로 정말로 전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업과 가계는 여전히 1980년대의 빚을 갚고 있어서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이것은 금융 침체 버전의 지독한 숙취라고 할 만했다.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전에는 불황 때도 해고 영향을 덜 받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이 주도한 조치들은 단기적인 응급 처방이 아니었다. 이 조치들은 ‘이지 머니easy money’의 새로운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다. 그린스펀이 1992년 동안 진행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더 나중의 완화적 정책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1년에 연준이 일조한 악성 부채 오버행도 이후의 오버행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린스펀은 이 시기에 유명인이 되었고 연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라는 인물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질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대중이 점점 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10년 동안 연준은 경제 정책의 장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매우 신경을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전에 폴 볼커의 방정식에는 ‘사촌지간’인 두 인플레이션(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린스펀의 연준은 점차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는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지 않는 한에서 화폐 공급을 계속 늘리고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은 제어 불가능한 본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방치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탄탄한 근거 논리가 있었다.  우선, 추적이 더 쉬웠다. 휘발유, 빵, 텔레비전 등의 가격은 수집하기가 쉽다.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다. 연준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릴 때는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자산버블을 터뜨리면 즉각적으로 고통이 일고 특히 매우 부유한 가구에 고통이 일었다. 금융 기자 세바스천 맬러비Sebastian Mallaby는 ‘버블에 직면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불확실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치솟는 시장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는 정치인과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가 쓴 그린스펀 전기 &amp;amp;lt;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The Man Who Knew&amp;amp;gt;는 그린스펀 시기 연준의 정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로 한 의사결정이 점진적으로, 하지만 1990년대 무렵이면 거의 분명하게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그린스펀 시기만의 특징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패턴을 설정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이 결정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양당 모두의 의원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그를 칭송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린스펀은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금융 엔지니어로 보였고, 이러한 성공과 그것이 갖는 신비한 아우라의 핵심은 그가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은 채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하지만 1998년 무렵이면 자산 인플레이션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우려를 별로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호황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말의 자산버블은 상당 부분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주가에서 벌어진 것만큼의 가격 상승이 버터나 휘발유에서 벌어졌다면 모두 경악했을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주가 지수가 1999년에 19.5%나 상승했다. 기술주들이 주로 있는 나스닥 지수는 80%가 넘게 뛰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는 물가 인플레이션만 통제하기로 하고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무시했고, 그다음에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자산 가격이 붕괴하면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했다. &lt;br /&gt;
&lt;br /&gt;
  물가 인플레이션은 통제하되 자산버블은 무시하기로 하는 그린스펀의 정책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연준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로 이어질 커다란 자산버블에 불을 때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몇 년 동안 연준은 하나의 자산버블을 다른 하나의 자산버블로 대체하면서 경기를 진작했다. 주식시장 버블이 주택 버블로 선수 교체되었다. 주택 시장의 활황이 다른 영역으로도 넘쳐흐르는 ‘스필오버’ 효과를 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 지출과 대출을 촉진하리라는 것이 이에 대한 논리였고, 이 논리는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동안 부동산 산업은 호황을 구가했고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1970년대에 값싼 부채가 농지 가격을 밀어올렸듯이 낮은 모지기 금리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게 더 쉬워지게 했다. 그래서 매년 경쟁이 높아졌고 이것이 가격을 더 밀어올렸다. 대체로 이러한 동태적 과정은 1990년대 말에 주식시장 인플레이션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호황’이었다. 주식처럼 주택은 중산층이 부를 일구는 핵심 원천이자 중요한 노후 대비 투자라고 이야기되었다. 주택 가치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흠 없이 좋은 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랬듯이,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게 된 것은 &amp;amp;#91;주택 시장 인플레이션이 아니라&amp;amp;#93; 물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서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물론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적하는 게 물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시장 교란 없이, 또 자산 가격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멈추기도 더 어렵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산 가격이 조정되는 시점이 오면(자산 인플레이션은 언젠가는 반드시 조정이 된다) 막대한 금융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연준이 자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 5%를 달성했다 해도 조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실업률 10%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산버블의 피해를 다루기 위해 연준은 한층 더 크게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그 영향이 경제 시스템 전체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고 시스템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교란은 2007년 8월에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의 황폐화가 명백해진 2008년 말에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2년 사이에 8조 달러가 사라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들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보였고, 이 이미지는 긴급 대출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이국적인 야생동물원을 보는 것처럼 TAF(term auction facity, 기간물입찰대출제도)라든가 TSLF (term securties ending facity, 기간물증권담보대출제도)라든가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ty, 프라이머리딜러신용제도)와 같은 불가해한 영문 약어들로 되어 있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연준어이고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하나였다. 돈을 찍어서 소수의 프라이머리 딜러 계좌로 내보냄으로써 월가에 돈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연준은 이것을 전례 없는 규모로 실시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행히도, 호니그가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의 통로로만 나갈 수 있었다. 케이블뉴스, 신문, 금융 통신 서비스, 그리고 점점 더 인기가 높아져가던 당파적인 웹사이트 등으로 구성된 미국의 언론 생태계였다. 그런데 2010년 무렵에 이 생태계는 분절되어 있었고 질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민주적 기관들이 쇠락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자 쇠락을 가속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양적완화와 제로금리가 지난 10년간의 경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대중 담론에서 가장 논의되지 못한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은 트레이더들은 새로 만들어진 달러를 써서 금융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것이 경제와 은행 시스템에 연준이 미치는 영향력의 토대다.&lt;br /&gt;
&lt;br /&gt;
  흔히 FOMC가 단기 금리를 ‘설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FOMC는 단기 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뉴욕 연의 트레이더들이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든다. 수십 년 동안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증권을 사고팔아서 돈의 비용이 FOMC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래 연준은 단기 채권 거래로만 통화 공급을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기 채권을 사들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월가 투자자들이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었던 금고 하나를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이 수익률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자산을 구매한다. 이는 자산 수요를 증가시켜 회사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미술품에 대한 가격까지 밀어올린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의 목적이었고, 자산 가격이 높아지면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일으키고 이 이득이 더 폭넓은 경제로 확산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리라는 기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러한 자산 효과가 일어나려면 제로금리가 우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부터 이득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연준의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산 소유가 폭넓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 자체의 분석으로도 그렇다. 2012년 초에 미국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했고 하위 50%가 소유한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에 불을 땠을 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기별이 없이 상층의 매우 소수에게만 이득을 주었다.&lt;br /&gt;
  이러한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가장 적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헤지펀드 운영자 중 ZIRP가 소득 불평등을 강화하고 투기적인 부채 버블을 일으킨다고 소리 높여 비판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월가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거래가 수익이 높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이 그리로 우르르 몰려 거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적완화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계속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종말론자들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었고, 그러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호니그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무시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동시에 같은 액수의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단기를 비트는&amp;amp;#91;트위스트&amp;amp;#93; 공개 시장 운영&amp;amp;#91;오퍼레이션&amp;amp;#93;을 한다.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서 퇴장시킴으로써 수요를 높여 장기 국채의 금리를 낮춘다. 하지만 같은 액수의 단기 채권을 매도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에 새로운 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장기 국채를 매입할 때 추가되는 만큼의 달러가 단기 국채를 매도할 때 다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이 조치의 목적은 은행 시스템에 존재하는 화폐량을 늘리지는 않으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에 돈을 묻어두고자 할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듀크는 ‘재닛은 제한 없는 양적완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회상했다. “재닛은 매우 영향력이 컸습니다. 자신감이 넘쳤고 견해를 밀어붙이는 데 아주 유능했어요.” 옐런과 버냉키의 확신에 찬 주장은 한 가지의 단순한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즉 무엇을 하더라도 오류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하는 쪽으로 오류를 저지르는 게 낫다는 의견이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점차로 여기에 매우 능숙해졌다. 7월 말의 FOMC 회의에서 그는 점점 더 확장적이고 강한 개입 정책을 밀어붙이는 버냉키의 주장에 대해 길고 열정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피셔는 ZIRP 정책의 이론적인 장단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ZIRP 정책이 이미 경제에 미치고 있는 위험한 왜곡의 실제 사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lt;br /&gt;
  피셔는 최근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재무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회사가 ZIRP 시대에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얼마 전에 낮은 비용으로 15억 달러의 부채를 조달했는데, 이 돈을 공장을 짓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쓸 계획이 아니었다. 그 돈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쓸 계획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부채 조달 비용은 0.45~1.6%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식에는 2.5%의 배당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부채를 늘리고 주가를 올리며 주주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주는 정교한 금융 공학 기법이었다. 피셔는 그 재무 임원과의 대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핵심을 지적했다. “그가 말하길, 아,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인용해도 좋다고 했는데요, 그 회사는 그 돈을 일자리를 하나라도 창출하는 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값싼 돈을 공급하면 기업들이 차입을 늘려 그 돈을 자본재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리라는 가정하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lt;br /&gt;
&lt;br /&gt;
  7월 회의에서 제이 파월은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그는 QE가 자산 가격부터 먼저 올리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경로, 그러니까 자산 가격을 통한 경로가 우리의 모델이 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lt;br /&gt;
&lt;br /&gt;
  아무튼 이 오류들은 새로운 라운드의 QE가 긴급히 필요한 조치이고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그다음에는 철회되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연준이 사용하는 다른 수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령 금리 인하처럼 시행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빠르게 철회할 수 있는 수단 말이다.&lt;br /&gt;
  하지만 양적완화는 그렇지 않음이 곧 드러났다. 양적완화가 일으킨 왜곡은 깊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으며 양적완화는 일단 시행되면 끝내기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lt;br /&gt;
  이러한 예측 오류는 그날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중앙은행 모두가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해 일관되게 스스로를 오도했다. 2020년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한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양적완화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외부 연구자들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양적완화의 효과를 더 크게 잡은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더 승진을 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그들의 분석이 바로 그 프로그램을 미는 중앙은행 고위 인사들에게 보고되는 것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lt;br /&gt;
&lt;br /&gt;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벳시 듀크는 집무실의 텔레비전과 실시간 블룸버그 통신 터미널에서 테이퍼 탠트럼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듀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것은 연준이 한 일 전부를 한꺼번에 쓸어 없애고 있었다. 연준이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가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것이었는데 그 금리 하락이 사라지고 있었다. 듀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점에, 상황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지속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매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테이퍼링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자산 매입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고 양적완화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수준의 부채를 일으키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QE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QE의 목적이었다.&lt;br /&gt;
&lt;br /&gt;
  매년 생존을 해내는 것만으로는,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칼라일의 경영진이 투자했을 때 기대한 수익을 아직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대개 투자한 뒤 5년 이내에 두 자릿수 수익을 내고자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숫자다. 가장 일반적인 전술은 부채를 더 일으켜서 회사를 더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회사는 부채가 증가하지만 즉각적으로 새로운 제품군과 고객층을 보탤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합병을 하면 비용 절감의 지름길이 생기기도 한다. 호니그였다면 이것을 ‘자원의 잘못된 배분’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돈 빌리는 게 쉬워지면 기업들은 빌린 돈을 합병이나 바이아웃에 쓴다. 이러한 활동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혁신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 대중의 임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lt;br /&gt;
&lt;br /&gt;
  이것이 ZIRP 전까지 브라이언이 내내 일해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ZIRP로 기업 부채 시장의 다이내믹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14년과 2015년에 브라이언은 중대한 폭로를 해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는 연준이 2010년에 시작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한 정책의 결과였습니다. 이제 인공적인 바닥이 생겼고 연준이 그 바닥의 상당 부분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장에서는 잃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잃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것은 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설명했다.&lt;br /&gt;
  잃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레버리지론과 CLO의 새로운 시장으로 그 모든 돈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2010년 말에는 미국에 CLO 잔액이 3,000억 달러가 채 안 되었는데 2014년 말에는 4,000억 달러가 되었고 2018년에는 6,170억 달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몇 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위험한 기업 부채의 탑을 쌓았다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을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은 연준이 인센티브를 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 중 어느 것도 연준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FOMC가 가장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진행하던 2013년에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명시적으로 이 정책이 주로 사모펀드에만 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 파월이 있었던 칼라일그룹 같은 곳 말이다. 피셔는 높은 자산 가격이 버냉키가 기대한 방식대로 ‘자산 효과’를 일으켜&amp;amp;#91;즉 주식, 주택 등 자산 소유자들이 부가 증가했다고 느끼게 되면 이들의 소비가 촉진되어&amp;amp;#93;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lt;br /&gt;
  피셔는 그때 FOMC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자산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자들과 시장을 잘 읽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버핏이나 KKR이나 칼라일이나 골드만삭스나 파월 같은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마 피셔 같은 사람들도요. 이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돈을 빌려서 채권과 주식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피셔는 이것이 연준이 바라는 정도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lt;br /&gt;
&lt;br /&gt;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한한 부작용 중 하나는 그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거대 은행들의 권력이 더 강화되고 공고화되었다는 점이었다. 2008년 시점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은 더욱 커져서 망하게 두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은행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산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이대로 그냥 둘 생각인 것 같았다. 이것은 호니그가 수년 동안 경계했던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소수의 거대 은행이 가진 자산이 점점 더 늘어나는 동안 지역공동체 은행은 수천 개가 사라졌다. 은행 업계는 현대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중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행동에 나서게 부추기고 있었다. 또한 위험은 ‘그림자’ 은행 시스템으로도 퍼지고 있었다. 그림자 은행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방대한 양의 돈을 대부하면서 은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lt;br /&gt;
&lt;br /&gt;
  대공황 때 루스벨트 행정부와 의회는 은행의 권력을 제한하고 은행이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은행 업계를 완전히 개편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은 이와 달랐다. 은행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기는 했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라는 규제 기관도 새로 생기긴 했지만, 은행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보다는 거대 은행들이 지켜야 할 매우 복잡한 새 규칙을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거대 은행이 계속 거대하게 있을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세세하게 감독과 관리를 받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것이 수백 쪽에 달하는 도드-프랭크법과 은행 관련 국제 협약인 ‘바젤 II’의 내용이다.&lt;br /&gt;
  하지만 호니그는 이것이 지는 게임이라고 보았다. 은행을 규제하는 규칙은 목적에 비추어 간명하게 작성되어야 하고 쉽게 이해되어야 하며 분명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뉴딜 시기에 그랬듯이 은행들이 다시 분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보험으로 보호되는 소비자 예금은 상업은행이 취급하게 하고 더 위험한 파생 상품 거래는 투자은행에 허용하는 식으로 은행 산업이 기능에 따라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분리하면 납세자들의 돈은 상업은행의 예금, 즉 예보가 보장하는 예금을 보호하는 데만 들어갈 것이고 이 안전망이 고객의 예금도 받으면서 위험한 투기성 거래도 하는 거대 은행들로까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호니그는 일단 은행들이 이렇게 기능별로 분리되면, 그 다음에는 위기에 대비해 자본을 얼마나 많이 보유해야 하는가의 간단한 규칙에 따라 감독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lt;br /&gt;
&lt;br /&gt;
  호니그 규칙의 핵심은 은행 업계에서 더 위험한 부분과 경제적으로 더 필요한 기업 대출 같은 부분을 분리해서,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이 베팅을 잘못했을 때 전체 시스템을 함께 위험으로 끌고 내려가지 말고 혼자 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양적완화는 주식시장에 인플레를 일으킬 목적으로 고안되고 실행되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2010년 이후 10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준이 개입 근거로 들었던 것처럼 전반적인 경제성장은 약세였고 임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해외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7%나 상승했다. 천성이 다소 신랄한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던 2016년의 주식시장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에 갑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에 빗댔다. 갑판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갑판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과 호니그 모두 연준이 노동 시장에서 얻을 상대적으로 작은 이득을 위해 위험한 자산버블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파월은 본인이 제기한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다. 그리고 호니그와 달리 파월은 비판의 어조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한때 FOMC의 닫힌 회의장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정책을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때가 파월이 명실공히 권력의 위치로 떠오른 시점이다.&lt;br /&gt;
&lt;br /&gt;
  공개된 경제 포럼에서 그는 현재로서는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에서 ‘한참 멀리 있다’고 말했다. 중립 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저해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하는데, 아직 이보다 낮다는 의미였고 이는 금리 인상이 더 있으리라는 암시였다.&lt;br /&gt;
  그 발언 이후 시장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이틀 만에 5%가 떨어졌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종목에는 은행과 에너지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와 시장의 요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가려지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을 설명할 그날의 뉴스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예를 들면 기술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뉴스는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테크 기업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정치계의 관심을 이유로 들었다. 맞긴 맞았다. 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실제로 세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 하락의 배경에 있는 더 큰 요인은 연준의 정상화 조치였다. 연준이 돈이 주식으로 몰려가게 하는 압력을 줄이자 투자자들은 가치가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던 데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기술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가차없는 경제 요인의 힘이 자신의 모습과 범위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파월이 항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lt;br /&gt;
&lt;br /&gt;
  하지만 곧 분명해지듯이 정상화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배전이 엉망이라 벽 뒤에서 전선이 녹고 있는, 잘못 지어진 거대한 건물과 같았다. 몇몇 방은 풀풀 연기가 났고 몇몇 방은 공기가 탁해지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화염이 타오를 것 같았다.&lt;br /&gt;
&lt;br /&gt;
  7월에 파월의 연준은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실업률은 3.7%로 5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임금도 상승하고 있었다. 경기 순환의 이러한 국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 그래야 둔화 국면에 연준이 개입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경기를 둔화시켜 할 국면에 이례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이유로 연준은 이것이 일종의 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이 보험이 시작일 뿐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물 시장에서 가격은 그해 말까지 세 차례 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반영해 형성되었다. 유럽, 중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 다시 완화를 시작했다. 중앙은행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고 8월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침체와 싸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시장이 안정적이고 건전한 상태라고 여겨지던 때에 말이다. 그러한 위기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연준이 거의 곧바로 개입해서 레포시장 구제에 4,000억 달러를 지출했기 때문이었다. 전례 없는 구제 조치였고, 이러한 대규모 구제 조치는 레포시장을 공중 납치해 위험한 도박의 도구로 사용하던 소수의 헤지펀드에 큰 이득을 주었다. 연준이 그들을 그들의 도박이 일으킨 결과에서 구제해준 격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이 거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4,000억 달러의 긴급한 현금 주입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연준은 이것이 일상적인 유지 보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이날 아침에 레포 금리는 9.5%였고 이것은 금융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날 연준은 전례 없는 레포시장 개입을 시작했다. 오버나이트 레포 론 시장에 750억 달러를 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긴 구제금융의 시작이었고 나중에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치들을 발표할 때 연준은 아주 많은 전문 용어를 사용했고 전체를 일상적인 유지 보수 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대한 현실 하나를 가리고 있었다. 연준이 뿌리는 돈이 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돈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었다.&lt;br /&gt;
&lt;br /&gt;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lt;br /&gt;
  헤지펀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레포시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이것이 헤지펀드들에 준 금전적 이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레포시장 구제 금융은 레포 대출 자체에서 상당한 돈을 구제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이 베이시스 거래에 잘못 베팅한 결과를 피하게 해줌으로써도 거의 헤아릴 수 없는 금액을 구제했다. 연준 덕분에 헤지펀드들은 가진 자산을 뭐든 투매해서 현금으로 유동화하지 않아도 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레포시장 개입을 발표하면서 헤지펀드나 베이시스 거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오버나이트 론 금리를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임시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레포 구제 금융은 수주, 수개월 간 지속되었는데 파월, 로건, 윌리엄스 같은 연준 고위 당국자들은 내내 이것이 일상적인 시스템 유지 보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실제의 번영은 경제 시스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만 누리고 있었다. 헤지펀드가 돈을 빌려서 그 돈을 주식시장에 부었을 때 뉴스 보도들은 상당히 신나 보였다. “다우는 오늘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마감했습니다.” 누가 여기에 불평할 수 있었겠는가?&lt;br /&gt;
  돌아보면, 호니그가 스타벅스에 온 날은 특히 통렬한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국 경제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장이었다. 곧 신문은 날마다 바이러스 소식으로 뒤덮이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3월 4일까지 감염자가 158명 발생했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날 호니그와 손님들은 스타벅스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나눴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였다. 이날 같은 좋은 날이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lt;br /&gt;
&lt;br /&gt;
  지난 9월에 레포시장이 붕괴했을 때 연준은 75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날 3월 12일 목요일에 연준은 5,00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고 다음 날 다시 1조 달러어치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연준이 월가에 즉각적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보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우는 계속 급락해 그날 전일 대비 2,300포인트, 비율로는 10% 하락했다. &lt;br /&gt;
&lt;br /&gt;
  파월의 연준은 벤 버냉키가 2008년과 2009년에 했던 것을 모두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달에 걸쳐서가 아니라 1주일 만에 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거의 제로로 낮추었고 외국의 중앙은행들과 스왑 라인을 열어 그들의 통화와 달러를 맞교환했다(많은 글로벌 부채가 달러 표시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총 7,000억 달러 규모로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를 개시했고 전보다 빠른 속도로 국채를 매입했다. 연준은 그다음 화요일이 되기 전에 8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했는데 이전의 양적완화에서 한 달에 푼 돈을 48시간 만에 푼 것이었다. 또 연준은 금리가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제로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다 시작되었다. FOMC는 이 긴급 조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클리블랜드 연은 행장 로레타 메스터Loretta Mester가 반대표를 던졌는데, 금리가 0.1%가 아니라 최대 0.5%까지로만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이 3월 15일에 시작한 긴급조치는 어느 기준으로 보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연준이 했던 어느 개입보다 범위도 넓었고 규모도 컸고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3월 20일 금요일 저녁까지 벌어진 1주일간의 금융판 대학살은 연준의 조치들이 패닉을 누르기에 충분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lt;br /&gt;
  이 시점에 이미 파월은 연준 구제책의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연준을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가게 할 것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연준은 회사채, CLO, 심지어는 정크본드까지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 풋을 거의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부채 시장을 영원히 바꾸어놓게 될 것이었다. 이 조치는 공식적인 FOMC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FOMC 회의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지만 이 계획은 제이 파월, 존 윌리엄스(뉴욕 연은),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등 연준 이사들 사이의 정신없는 전화 통화에서 만들어졌다.&lt;br /&gt;
&lt;br /&gt;
  첫 두 개의 SPV는 연준이 기업 부채를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목적은 명백했다. 연준은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줄도산하면 그것의 연쇄효과로 CLO 가치가 급락하고 은행들이 피해를 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연준은 연준 풋을 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때쯤이면 주식 거래인들은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연준이 구제안을 가지고 달려와줄 것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업 부채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을 훨씬 넘어선 곳까지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기업 부채의 금리는 그 부채의 기저에 있는 위험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통념이었다. 위험이 큰 회사는 높은 이자를 내고 안전한 회사는 이자를 더 적게 냈다. 그런데 이제 연준이 기업 부채를 사들이는 큰 손이 되어서 이 시장에 바닥을 제공했고, 이는 부채에 매겨지는 금리의 속성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금리는 그 회사의 위험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이 그 부채를 매입할 의지를 반영하게 되었다. 매우 중요하게, 연준이 일단 기업 부채를 매입하는 일에 나서면 나중에 이 역할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월가의 열렬한 눈이 전에 보았던 것을 늘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개입할 때마다 미래에도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lt;br /&gt;
&lt;br /&gt;
  그날 아침 연준이 발표한 구제안은 급진적이었고 패닉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연준은 대략 90일 사이에 3조 달러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2008년 위기 이전 시기의 정상적인 속도였다면 연준이 300년간 만들었을 돈에 맞먹었다.&lt;br /&gt;
  연준의 행동에 대중의 반대는 사실상 없었고, 파월은 연준의 행동을 확대했다. 첫 구제안이 나간 지 3주도 되지 않아서 이제까지 한 것에 더해 새로운 조치들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도 FOMC 전체 회의의 표결을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새 조치들의 근거와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치들의 일부는 4월 8일에 비공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4월 9일에 회사채를 사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정크 등급의 더 위험한 채권도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크본드를 무조건 매입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연준은 팬데믹 이전에 투자 등급이었던 것만 사들일 것이었다. 이러한 채권을 월가에서는 ‘추락한 천사’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포드자동차 같은 회사의 부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락한 천사’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연준은 기존에도 정크 등급이었던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위험한 채권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가령, 렉스노드 같은 곳의 채권 말이다. 기존에는 정크 등급이 아니었던 부채의 등급이 강등되어 ‘추락한 천사’가 되면 이것들이 기존의 정크본드들을 대체하게 되고 기존의 정크본드는 투자자에게 매력이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연준은 이러한 폭포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었다.&lt;br /&gt;
  또한 그날 연준은 별도의 새 프로그램 하나를 업데이트했다. ‘기간물자산담보부증권대출제도TALF: term asset 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라고 불리는 것인데, 연준 사상 처음으로 레버리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구성된 CLO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이 제공하는 안전망의 적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한 것이었고, 이는 가치가 강등되어 수천억 달러 규모의 CLO가 약정상의 정크 등급 비율 상한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수천억 달러어치의 CLO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은행들에도 도움이 되었다.&lt;br /&gt;
  이 중 어느 것도 대중 담론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조치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로 둘둘 싸여 있었다. 일례로, 연준의 표현을 빌리면 SMCCF는 수정, 확장될 것이었고, TALF는 새로운 자산군을 추가해 가정과 기업으로 흘러가는 신용 흐름을 지지할 것이었는데, 이는 대중의 눈길을 확 당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코로나 확진자가 3만 5,000명 나온 날(한 달 전 하루 확진자는 201명이었다), 그리고 주 정부들이 식당과 상점 문을 닫도록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금융 용어는 더더욱 관심을 끌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채권을 거래하는 사람들, 채권을 만들고 꾸러미로 묶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역사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만했다. SPV 이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SPV 이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 조치들이 극적이긴 했지만 여기에서 직접 혜택을 본 사람은 소수였다.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 혹은 자산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았다.&lt;br /&gt;
&lt;br /&gt;
  CARES법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용도로 2조 달러의 지출을 승인했다. 여기에는 납세자의 돈으로 연준의 SPV에 출자할 돈 4,540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CARES법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부분은 약 2,920억 달러 규모의, 사람들에게 직접 지급될 돈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의 계좌로 직접 들어간 돈이 CARES법의 가장 가시적인 부분이었지만, 의회가 승인한 지출 액수 전체 중에서는 작은 비중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급여 보장 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 줄여서 PPP 대출이라고 불리는 총 6,7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기업들이 PPP 대출을 받아 &amp;amp;#91;폐업하지 않고&amp;amp;#93; 고용을 유지하게 하고, 다운 이후에 다시 문을 열고 모두가 일터로 돌아오면 &amp;amp;#91;정해진 조건을 만족했을 때&amp;amp;#93; 대출이 전부 또는 일부 탕감되었다. 길고 가혹한 락다운으로 큰 고통을 겪은 다양한 영역의 사업체들에 잠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백만 개 사업체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PPP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5%로 들어갔다. 이 숫자마저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협소한 부분에서만 영향이 있었는지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지출된 PPP 자금의 전체 중 25%는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1%에 들어갔다. 이 기업들은 대형 로펌, 전국적인 식품 체인점 등이었고 PPP 지원금 최대 한도인 1,000만 달러를 받았다. 이러한 수혜자에는 레스토랑 체인인 보스턴 마켓, 저명한 로펌인 보이스쉴러앤플렉스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준 등의 분석에 따르면 PPP는 230만 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자리 하나당 비용이 28만 6,000달러나 들었다. 트럼프가 이 프로그램이 5,000만 개 일자리를 구하거나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한 다음에 말이다.&lt;br /&gt;
&lt;br /&gt;
  CARES법이 승인한 지출 중 6,510억 달러가량은 세제 혜택의 형태로 기업에 지출되었다. 이 혜택은 받기가 매우 복잡하다. 이 말은, 뛰어난 세무 관련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큰 기업들에 세제 혜택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체인인 치즈케이크팩토리는 4만 1,000명을 해고했는데도 5,000만 달러의 세제 혜택을 청구했다. 총 세제 혜택 중 2,500억 달러 규모는 팬데믹으로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산업의 어떤 기업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사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은 1,35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았는데, 이 말은 연 100만 달러 이상 버는 4만 3,000명이 160만 달러어치를 각각 받았다는 뜻이었다. 대체로 이 돈은 기업의 금고와 개인의 계좌로 조용히 흡수되었다. 이 같은 매우 불평등한 분배는 몇 개월이 지나서 &amp;amp;lt;워싱턴포스트&amp;amp;gt;가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하고서야 드러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으로 최대 6,000억 달러어치의 부채를 사들일 예정이었지만 12월에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을 때 사들인 규모는 170억 달러어치에 불과했다.&lt;br /&gt;
  연준의 구제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진짜 구제 프로그램, 성공한 구제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신속했는데, 이것은 자산 소유자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이었다. 주식 소유자들은 팬데믹 붕괴 이후 9개월간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고 기업 부채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월에 연준이 개입하고부터 주식시장은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호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은 3월 중반에 저점을 쳤고 이때 미국채 시장도 급락했지만 그날부터 6월 중순까지 불과 3개월 사이에 시장 가치가 35% 올랐고 그다음 3개월간 다시 7%가 올랐다. 그 무렵이면 주식시장은 식당, 극장, 호텔, 크루즈 등이 영업을 하던 시절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월평균 레버리지론 수익률도 이르게는 4월부터 회복되었다. 8월에는 투자 등급 신규 채권이 어찌나 많이 발행되었던지, 이전 신기록이던 2017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lt;br /&gt;
  늘 그랬듯이 자산 인플레는 언론에서 ‘호황’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호황은 너무나 강력해서 초현실적일 정도였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퇴거 위험에 처하고 식당들은 문을 닫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부채 시장과 주식시장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구제 금융은 ZIRP와 QE 정책에 의해 크고 강력해진 곳들에 주로 들어갔다. 빌린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거대 기업들에, 미국 전체 자산 중 방대한 부분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글로벌 마켓에서 위태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월가의 가장 위험한 금융 투기 세력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고 다들 믿게 된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말이다.&lt;br /&gt;
&lt;br /&gt;
  ZIRP 시기에 득을 본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경제 영역은 자산 시장이었다. 주식시장 가치는 2010년대 동안 두 배가 되었고, 심지어 2020년의 붕괴 이후에도 자산 시장들은 계속 놀라운 성장세와 수익률을 보였다.&lt;br /&gt;
&lt;br /&gt;
  이렇게 레버리지론, 주식, CLO, 그밖에 월가가 십수 년 동안 부지런히 만들어내었던 온갖 위험한 금융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면, 파월의 연준은 익숙한 선택의 기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될 터였다. 위험한 금융상품 가치가 붕괴하게 두거나, 다시 개입해 양적완화와 긴급 구제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돌리거나. 2018년 말에 위험한 자산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갔을 때 파월은 이러한 기로에 선 적이 있었고 더 많은 돈을 풀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투기와 자산 인플레를 부추겼다.&lt;br /&gt;
&lt;br /&gt;
  12월 16일에 파월은 중대 발표를 했다. 봄에 연준이 긴급 처방으로 시행했던 일 중 몇 가지가 이제 준영구적인 것이 될 예정이었다. 메인 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은 조용히 끝났지만 구제안에 포함되었던 다른 것들은 지속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유지할 터였고 앞으로 한동안 매달 1,200억 달러어치의 양적완화를 실시할 것이었다. 과거에 일반적이던 속도에 비추어 보면 10년 동안 창출되어야 할 만큼의 돈을 30일마다 내놓겠다는 의미였다. 파월은 경제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이 더 있을 때까지’ 이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lt;br /&gt;
  파월은 물가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하지 않는 한 연준이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었다. 몇몇 항목의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것은 공급 교란 때문이었고, 약한 성장과 약한 수요가 소비자 물가를 전반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은 제약 없이 가속화되고 있었다.&lt;br /&gt;
  12월에 주식시장은 너무나 호황이어서 거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웹 기반 음식 배달 업체 도어대시는 그달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온라인 숙소 공유회사 에어비앤비도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이 회사들로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상장 직후에 이렇게 급격히 주가가 뛰었다는 말은 회사의 원래 소유주들이 많은 돈을 밑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모가를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mp;amp;lt;월스트리트저널&amp;amp;gt;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 회사 로블록스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12월 예정이던 상장을 연기했다. &amp;amp;#91;공모가 산정이 어려워&amp;amp;#93;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면서 말이다. 닷컴 붐이 불었던 시기 이래로 기업들의 실제 매출 활동에 비해 주가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계속될 것이었다. 이후 몇 개월간 시장은 계속 기록을 깨고 또 깼다.&lt;br /&gt;
&lt;br /&gt;
  노동자의 가치는 줄었는데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준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많은 중요한 면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였다.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금융 붕괴는 미국의 민주적 기관들이 가진 역량의 긴 붕괴로 한층 더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 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폭했다.&lt;br /&gt;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ca7e45246af04d5e9671f03cf3737035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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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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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홍희정 장편소설&lt;br /&gt;
2013년 10월&lt;br /&gt;
168쪽 145*210mm 250g ISBN : 9788954622554&lt;br /&gt;
&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e03e3e;&amp;quot;&amp;gt;주의&amp;lt;/span&amp;gt; :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amp;lt;span style=&amp;quot;color: #e03e3e;&amp;quot;&amp;gt;혹평을 포함함&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298919 가슴 뛰는 소설]’의 ‘앓던 모든 것’이 훌륭해서 같은 저자의 것을 구해 읽은 것인데, 같은 저자가 맞나 싶을 정도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55&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이런 나를 잘 아는 할머니는 비겁한 사람이 쓸데없는 생각을 잘하는 법이라고 했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82&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 공룡처럼 거대해지다가 언젠가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멸종하고 말 거야.&lt;br /&gt;
─ 뭐가?&lt;br /&gt;
─ 더 빠르고 더 부유하게 살고픈 사람들.&lt;br /&gt;
─ 다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아?&lt;br /&gt;
─ 사람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 돼.&lt;br /&gt;
  집회현장에서 들려오는 북소리가 내 마음을 자극했다. 율이가 대형마트에서 일한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할머니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84&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차라리 잠에 빠져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잠을 자야 노인이 될까. 쓸데없이 싱그러운 청춘이 성가셨다. 단번에 나이를 먹어 안타까움도 그리움도 없는, 밟으면 바삭, 하고 소리가 나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들이 서로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산골에서 매일 새벽 소리없이 일어나 밭을 매고 가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변화 없이, 똑같은 날을 사는 노인이 되고 싶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일만 주워 먹고 수십 년간 친구를 만나지도 않고 살다가 죽은 후에는 근처 가까운 산에 묻혔으면 좋겠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예전에 읽은 홍진경씨의 글 중에 비슷한 것이 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흰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lt;br /&gt;
이 잠을 몇 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 걸까.&lt;br /&gt;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lt;br /&gt;
&lt;br /&gt;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lt;br /&gt;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lt;br /&gt;
&lt;br /&gt;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lt;br /&gt;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lt;br /&gt;
&lt;br /&gt;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lt;br /&gt;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lt;br /&gt;
&lt;br /&gt;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홍진경씨가 백배는 잘 썼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15&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  그녀가 불판에 고기를 올리며 흰 얼굴을 조금 붉힌 채, 배시시 웃었다. 율이 얘기를 하며 이런 식으로 웃는 여자들을 나는 몇 번이나 봐왔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꼬리를 흔드는 이름 모를 강아지처럼, 하늘하늘 공중을 떠돌다 불현듯 손바닥 위로 떨어진 봄날의 벚꽃잎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웠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진부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다.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내용인데 뭐가 문제일까. 감정을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서인가. 수식어가 진부해서인가.&lt;br /&gt;
&lt;br /&gt;
‘목뼈를 서로 눌러준다’—는 행위도 그닥.&lt;br /&gt;
이상하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아서인가. 공감도 안되고.&lt;br /&gt;
무엇이 황정은을 위대하게 만드는가.&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35&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 — 이런 대목이 진부한 듯.&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43&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눈앞에 보이는 것이 이국적인 에메랄드빛 바다라든가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진 대나무 숲 같은 그럴싸한 풍경은 아니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모든 묘사가 이렇게 진부함&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43&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나는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솟아난 작은 돌기들이 마치 밤하늘에 그려진 별자리처럼 특별해 보였다. 나는 턱을 괴고 서서 시멘트 아래, 깊속한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읽어나갔다. 이야기의 씨앗들은 나의 시선을 먹고 한없이 자랐다. 그 상상의 독서 속에서 나는 인디언처럼 자유로웠다. 지구의 중심에 닿을 때까지 맨손으로 깊이 땅을 파기도 하고, 오백 일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자다 눈을 번쩍 뜨기도 했으며, 토성의 띠를 밟으며 소리 높여 구구단을 외우기도 하다가, 너구리와 개미가 발라먹고 남은 내 뼈를 쌓아 성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또 아흔아홉 쌍의 말 많은 쌍둥이 엄마를 갖기도 했다. 그때 내가 처음 쓴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게 궁금하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참혹한 수준으로 진부하다. 자동생성한 문장인가.&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145&amp;lt;/h3&amp;gt;&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amp;lt;poem&amp;gt;자동우산이 활짝 펼쳐지듯 웃음을 짓던&amp;lt;/poem&amp;gt;&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www.notion.so/02ea40ffd065429dadc098a2dde70099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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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7 가벼운 나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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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가벼운 나날     &lt;br /&gt;
제임스 설터 (지은이),박상미 (옮긴이)마음산책2013-06-10원제 : Light Years (1975년)&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65~6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해가 차갑게 빛나는 날이었다. 육 년 전 이날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제도사 두 명이 나와 있고, 그들 앞에는 평면도가 펼쳐져 있었다.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그 바람에 그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부모는 성자의 유골처럼 갈색으로 변해 땅 밑에 누워 있었다. 장례식 의복은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서른둘이고, 일과 꿈이 있고, 세상에 혼자였다. &lt;br /&gt;
 그가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그는 1928년, 한 전쟁이 끝나고 다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태어났다. 실제로 위기의 해였고, 20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였다. 다들 그런 것처럼 그도 시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병원은 이제 없어졌고 의사는 은퇴하고 남부로 갔다. &lt;br /&gt;
 그는 위대함을 믿었다. 위대함이 마치 하나의 덕목인 양, 자기가 가질 수 있는 덕목인 양 여겼다. 그는 어떤 종류의 인생을 생각했다. 커다란 바위나 그늘 밑에 있듯, 표면에선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빛나는 영예가 발견될, 언젠가 떠올라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그런 가능성이 있는 인생. 그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의 가치를 명확하게 볼 줄 알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선 어느 정도 괜찮다고 믿는 편이었다. 그의 믿음 속에는, 그 상상의 중심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사진들이 있었다. 그 속에 들어 있을, 그가 설계한 유명한 건물, 어떤 비평이나 질투에도 끄떡없고, 설사 건물을 허물어도 변하지 않을 부동의 사실. &lt;br /&gt;
 물론 그는 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네드라만 예외였다. 그의 꿈은 해를 더하면 더할수록 점점 보이지 않는 사실이 되어갔다. 대화 속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그의 삶 속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꿈은 언제나, 마지막 날까지, 거대하고 훌륭한 범선이 썩어가듯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lt;br /&gt;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는 차라리 혐오되기를 원했다. 나는 너무 약해, 그가 말했다. &lt;br /&gt;
 “그게 당신의 스타일이야.” 네드라가 말했다. “기왕이면 써먹는 게 좋아.”&lt;br /&gt;
 그는 그녀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래, 그가 말했다. 계속 해야만 해. 나는 작더라도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건물 하나를 지어야 해. 그러고 나면 더 큰 거.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해.&lt;br /&gt;
 완벽한 하루는 죽음 안에서,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완전한 굴복에서. 몸은 나른하고 영혼은 온 힘을 다해 앞서 나간다. 숨조차 따라간다. 선이나 악을 생각할 기운은 없다. 다른 세계의 빛나는 표면이 가까이서 몸을 감싸고, 밖에선 나뭇가지들이 떨린다. 아침이고, 그는 천천히 일어난다. 마치 햇빛이 다리를 건드렸다는 듯이. 그는 혼자다. 커피 향이 난다. 개의 황갈색 털은 타오르는 빛을 빨아들인 듯하다. &lt;br /&gt;
 앞으로 펼쳐질 하루는 그 푸름 속에 있어야 했다. 그 거대함 속에 그가 살아내야 하는 음모가 숨겨져 있다. 숨겨져 있지만 그 속에 있었고 대낮 하늘의 별처럼 보이지 않았다.&lt;br /&gt;
 그는 한 가지를 원했다. 한 가지의 가능성, 유명해지는 거였다. 그는 인류의 중심에 있고 싶었다. 그거 말고 열망할 것이, 희망할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확신하듯 벌써부터 겸손하게 거리를 걸었다. 그는 가진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부르주아의 삶의 꾸러미를 조심스레 펼쳐놓았을 뿐이고, 머리 밑으로 두피가 보이기 시작했고, 손은 깨끗했다. 그리고 지식, 그렇다, 지식이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농부가 헛간을 알듯 그에게 익숙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뉴타운’과 대성당과 홍예석과 코니스와 모퉁이돌을 알았다. 그는 알베르티와 크리스토퍼 렌의 삶을 알고 있었다. 설리번은 춤꾼의 아들이었고 브로이어는 헝가리 의사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식은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인생은 지식을 경멸한다. 지식따윈 대기실에서, 밖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인생이 숭배하는 건 열정과 에너지와 거짓말이다. 그래도 인류가 보고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참을 수 있다. 순교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 속에 산다. 꽃이 해를 향하듯 우리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lt;br /&gt;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우리는 아이들을 가졌기에 이제 애 없는 부부가 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는 온건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인생을 내던지는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을 거라고⋯⋯.&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그리고 비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매일 밤 물을 주듯, 발밑에 흙을 골라주듯 책을 읽어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디딤돌이었다. 이 이야기들, 심지어 이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이 상상물들, 왕자, 나무꾼, 오두막에 사는 정직한 어부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이 과거의 삶과 새로운 삶을 모두 가지기를 원했다. 과거의 모든 삶으로부터 나뉠 수 없는 삶, 과거로부터 성장하고 과거를 초월하는 삶, 그리고 또 하나의 삶, 독창적이고 순수하고 자유로운 삶, 우리를 보호하는 편견과 삶의 형태를 주는 습관을 넘어서는 삶. 그는 아이들이 삶의 하락과 상승을 모두 알기를 원했다. 굴욕 없는 전자와 무지 없는 후자를 말이다. 그는 이 여정을 위해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있다. 마치 이 한 시간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 한 시간 안에 여물을 모두 모아두고 조언을 모두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아이들이 항상 기억할 한 문장을 생각해 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갈 길을 알려주는 그런 하나의 경구. 하지만 그는 그 문장을 찾아내지도, 생각해내지도 못했다. 그들이 소유한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될 텐데 그에겐 그게 없다. 대신 그는 차분하고 감각적인 목소리로 유럽과 눈 오는 러시아, 아시아의 작은 신화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최고의 교육은 오직 한 권의 책을 아는 데서 온다고, 그는 네드라에게 말한다. 순도 높고 균형 잡힌 교육이 거기서 온다고. 그리고 그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데서 위안이 온다고.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는 보드카를 두 잔 마시고 아이들에게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고 뚜껑이 열렸다. 새우와 완두콩, 닭고기 조림, 밥이 나왔다. 이중생활이란 건 완벽하게 자연스러워. 그는 마름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생각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 얘기했다. 황제들의 전설, 베이핑&amp;lt;sup&amp;gt;베이징의 옛 이름&amp;lt;/sup&amp;gt;의 보트 놀이. 네드라는 조심하는 듯, 말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조심스러워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뭔가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웠다. 그가 모르고 지나친, 무언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그 무엇, 그게 뭐였을지 생각해보았다. 미숙한 자의 죄의식은 의사 질병처럼 그를 적셨다. 그는 차분하려고, 현실적이려고 애썼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98~9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지반은 자기 친구라고, 마르셀마스는 말하곤 했다. 그는 다른 친구가 없었다. 심지어 아내조차 친구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혼할 거였다. 그녀는 너무 신경증적이었다. 예술가는 복잡하지 않은 여자와 살아야 했다. 보나르의 여자처럼 구두만 신고 포즈를 취해주는, 그 나머지는 따라올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나머지란 매일 금방 만들어주는 점심 식사였다. 그게 없이는 일을 못했다. 그는 아일랜드 노동자처럼 더러운 손으로 식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감자와 고기와 두꺼운 빵조각을 먹었다. 그는 유머 감각이 없었다. 자기가 먹는 동안 모든 것이 저절로, 뭔가 예기치 않고 흥미로운 형태로 해결되길 바랐다. 욕조에서 미세한 거품이 다리를 덮을 때처럼.&lt;br /&gt;
 “케이트, 엄마는 어디 갔냐?” 그가 말했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lt;br /&gt;
 케이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케이트에겐 배달부 남자애 같은, 절대 상처 받을 수 없는 사람의 권태로움이 있었다. 그녀는 난방도 안 되는 방과 밀린 공과금 속에서 자랐다. 아빠는 떠났다가 돌아왔고, 아빠가 돌아오면 사과나무를 깎아 색칠한 아름다운 새 조각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어렸을 때는 아빠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녀는 그 일부를 기억했다. 아빠가 골라준 색깔 속에서 살았고, 해의 광선을 받듯 그 색들의 광선을 받았다. 찢어낸 스케치북에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보았고, 자기 방에서 두꺼운 가문비나무 판자 위에 얼굴을 묻고 취해 뻗은 아빠를 보기도 했다. 그녀는 아빠를 배신할 수 없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마치 주먹싸움에서 얻어터지듯, 그렇게 딸 앞에서 패배자처럼 살았다.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때로 그림에 대해 얘기했고, 나무 가지치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 안에는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의 숭고함이 있었다. 생각들은 눈부실 정도였지만 무학자의 것이었고, 꿈은 거대했다. 버는 돈은 한 푼도 남김없이 가족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 돈을 썼다.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날은 모니카가 죽은 날이었다. 다리가 하나뿐이었던 그 아이. 외과 의사가 다리를 충분히 자르지 않았던 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다리에 다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두 헛일이었다는 듯이. 그 통증이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다음에 열이 났고 두통이 왔다.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물론 몇 주가 걸렸다. 결국, 그날 저녁이었고, 비리는 나무를 들이고 있었다. 한 아름 안고 있어 나무껍질이 소매에 걸렸다. 그가 잔 나무들을 모아 둑을, 겨울을 날 작은 흉벽을 만들려 할 때 아이가 죽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직장에 있었다. 어머니는 접의자에 앉아 아이가 숨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아이는 갑자기 가벼워졌다. 훨씬 가벼워진 채로, 무서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아이를 떠났다. 순진무구함, 울음, 아버지와의 의무적인 놀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 이 모든 것에 무게가 있었다. 그것들은 떠나가고 용해되어 먼지처럼 흩어졌다. &lt;br /&gt;
&lt;br /&gt;
 날들이 온기를 잃었다. 때로 정오가 되면 작별 인사를 하듯 한두 시간 여름 같다가 금세 온기가 사라졌다. 근처 과수원 가판대에는 진한 과즙으로 가득 찬 단단하고 노란 사과들이 놓였다. 이가 닿으면 사과는 몸을 터뜨렸고, 언쟁 같은 흰 조각들이 이에 남았다. 멀리 있는 밭,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축축한 대지에선 아직 토마토가 덩굴에 달려 있었다. 언뜻 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토마토는 그 안에서 숨겨지고 보호되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거였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결혼에 관해 내가 좋아하는 점들이 있어. 그 익숙함이 좋아.” 네드라가 말했다. “마치 타투 같아. 어느 순간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피부에 새겨져 있으니 없앨 수도 없고, 심지어 했는지조차 몰라. 나는 좀 구식인가 봐.”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2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진짜로 친하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고, 나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라고 절대로 요구하지 않는, 그런 사람하고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 우리가 그랬어요.” &lt;br /&gt;
 “하지만 헤어졌잖아요.” 이브가 말했다.&lt;br /&gt;
 “물론 다른 문제들도 있었죠.”&lt;br /&gt;
 네드라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조용하고 권태로워 보였다. 네드라는 그의 셔츠 소매가 더럽고 손은 깨끗하다는 사실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유태인이었다. 그녀는 보자마자 알았다. 그들에겐 같은 비밀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남편과 비슷했다. 실제로 비리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비리 같았다. 어찌어찌 피해 간 그의 부정적 자아.&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어떤 이들은 절망감이 너무 깊어서 가만히 있을 때에도,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삶을 소모했다. 나중을 위해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다. 아껴둘 필요를 못 느낀다. 매 시간이 추락이었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려는 시도였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4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이브가 웃었다. 그녀는 치아 뒤에 금을 해 넣었고, 그래서 그 가장자리가 검어 보였다. 창녀의 이처럼 검게 빛났다. 그녀는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웃겼다. 그녀의 삶에는 단단한 기반이 없었다. 그냥 애매하게 열중했고 사는 걸 가볍게 여겼다. 그 웃음들, 그 근심 없는 분위기, 그녀의 매력은 거기 있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6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는 그녀를 안고 바다로 갔다.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그의 팔 위로 그녀의 긴 다리가 흔들거렸다. 파도는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계단 아래서 짖던 핫지도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lt;br /&gt;
 이브도 나이가 들었다고 네드라는 생각했다. 아직 배는 안 나왔지만 피부가 늘어졌다. 허리도 굵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그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더 사랑했다. 이마에 슬슬 나타나는 가는 주름마저 아름다웠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그녀의 머리끝은 젖었고 몸은 물로 반짝였다. 젖은 팬티 위로 치구가 비쳐 보였다. 그녀는 애정에 푹 빠져 아노드에게 기댔다. 그의 스웨터를 입었는데, 스웨터가 엉덩이를 덮어 그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허리로 그가 팔을 둘렀다. “문제는,” 그녀가 말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거야. 나는 유태인을 좋아하니까.”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74~17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그해 그들의 친구는 마리나와 제럴드 트로이였다. 마리나는 배우였다. 스트린드베리의 연극에 출연했었다. 그녀의 눈은 강렬한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자였다. 오래된 부자였고, 부유함이 구석구석에서 빛났다. 피부와 세련된 미소에서까지.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헬스클럽에 갔는데, 레온이라는 늙은 그리스인이 트레이너였다. 여든이나 된 그의 팔은 아직 단단했고 머리는 새하얬다. &lt;br /&gt;
 네드라도 거기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 스포츠엔 관심이 없었지만 처음 몇 시간을 해보고는, 찻길 위 더러운 창문이 있는 텅 빈 헬스클럽에서 나이 든 트레이너의 헌신적이고 친구 같은 태도를 보고는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샤워실은 깨끗하고 넓었다. 초록색 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몸은 깨어났다. 갑자기 몸 안에 깊은 강인함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트레칭 할 때, 거꾸로 매달릴 때, 근육이 더워지고 이완되었다는 걸 느낄 때, 젊은 육상 선수가 된 것처럼 느낄 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이 몸을, 언젠가는 자신을 배반할 이 몸을 사랑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아니, 그녀는 그걸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몸을 배반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몸의 불멸성을 느끼는 시간들이 있었다. 서늘한 아침, 또는 여름밤 침대 커버 위에 옷을 벗고 혼자 누워 있을 때, 목욕할 때, 옷을 입을 때, 섹스하기 전, 바다에서, 피곤한 팔다리로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9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집은 그들 위로 빛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박공지붕 양 끝에 굴뚝이 있었고 슬레이트 지붕은 비에 탈색되어 회색이었다. 커다란 헛간처럼 집은 날씨에 얼룩져 있었고, 바다를 건너온 배 같았다. 주춧돌을 따라서 쥐가 살았고 집의 끝자락에는 잡초가 자랐다. &lt;br /&gt;
 광대한 날이 그들을 에워쌌다. 땅은 따뜻했고 강은 햇살에 반짝거렸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미풍이 목소리를 날렸고 5미터만 떨어져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대화가 보이기만 하고 들리지는 않았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당신은 무명이 아니야, 사람들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당신은 친구들이 있어. 사람들은 당신 작품을 좋아해. 그리고 결국 그는 좋은 아빠였다. 다시 말하면 무능한 남자라는 얘기였다. 진정으로 좋은 것, 훌륭한 것은 달랐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고 살인적인 것이다. 다른 공격 행위처럼 피해자가 생겼다. 간단히 말해 그건 정복이었다. 우리는 모호해야 하고, 우리는 부드러워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의도야 어쨌든, 눈부신 비전 속에서 사람들을 짓누르게 되는 것이다. 실패자는 바보고 허약한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게 미덕이란 없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0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그날 밤 네드라는 운전을 했다.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쯤 출발했다. 라디오에서는 시벨리우스가 쾅쾅 울렸고 바람이 차를 때렸다. 떨리는 가슴으로 조선소와 정제소를 지나쳤고, 허름한 마을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를 먹여 살리던 산업이 있는 곳이었다. 차는 양방향으로 이어졌다. 전조등은 더욱 밝아졌다. 어둠이 내린 것이다. &lt;br /&gt;
 그녀는 쉬지 않고 달렸다. 라디오가 지지직거렸고, 주파수가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음악이 들렸다가 유령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가, 마치 낡아가는 거대한 차양이 드리운 것 같았다. 가난한 동네에, 물이 새는 지붕들 아래 있는 것 같았다. 값싼 광고판과 값싼 감상과 무분별한 소음으로 넘치는 동네에. 이 혼돈이 귀를 채웠고 맞은편의 전조등이 눈을 찔렀다. 까만 나무 위의 하늘이 도시들과 함께 빛났다. &lt;br /&gt;
 그녀는 어둠 속으로 달렸다. 옛날 동네들, 지치고, 배타적인, 팔고 되팔렸던 땅으로, 깊은 밤 속으로 달렸다. 길은 텅 비었다. 서스쿼해나 강을 건널 때 처음으로 졸음이 엄습했다. 운전하는 길은 꿈이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생각했고 되찾아갈 과거를 생각했다. 끝없는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무기력함과 절망을 느꼈다. 벌써 했던 여행을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거였다. 병원의 복도 같은, 블루 마운틴의 길고 하얀 터널을 지나쳤다. 그러곤 투스카로라였다.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 이름들은 그녀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녀가 돌아오리라 확신하면서.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38~23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가정이 화목해도, 가족끼리 항상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프랑카와 얘기하는 걸 즐겼고, 프랑카에 대해서도 얘기를 잘했다. 현재는 과거의 반영이라는 맥락에서, 이 여자가 바로 자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딸을 통해 삶을 발견하고, 두 번째로 맛보고 싶었다.&lt;br /&gt;
 휴가 중 하루는 데이나 집에서 파티가 있었다. 데이나의 얼굴엔 벌써 알 수 없는 무감각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거의 적개심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네드라의 말대로 아빠는 주정뱅이에 엄마는 바보였다. 네드라는 그날 밤 칸딘스키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반질거리는 종이로 만든, 무겁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구겐하임에서 전시를 본 후 칸딘스키에 빠져 있었다. 저녁의 조용한 시간, 할 일을 다 한 후에 책을 펼쳤다. 책에서 칸딘스키는 늦게 그림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른 둘의 나이에. &lt;br /&gt;
 그녀는 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이 책 너무 좋아.”&lt;br /&gt;
 “좋을 것 같았어.”&lt;br /&gt;
 “이제 막 읽기 시작했어.” 네드라가 말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뮌헨에서 살다가 러시아로 돌아갔대. 십 년 동안 같이 살던 여자를 남겨두고, 이 여자도 화가였다네. 그녀를 다시 본 건 한 번뿐이었대. 상상해봐. 1927년에 열린 전시회에서였대.”&lt;br /&gt;
 책은 그녀의 무릎 위에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하나의 문단, 하나의 진술이다. 우리의 내부로 파고 들어오는 문장들은 가느다랗다. 수영할 때 민물 가자미가 몸속으로 들어오듯. 그녀는 흥분했다.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이 그렇듯, 윤이 나게 닦인 문장들이 딱 적당한 때 도착한 기분이었다. 타인의 삶이 비추지 않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우리는 농담도 하죠.” 알바가 말했다. “그렇지, 클레어?” &lt;br /&gt;
 “가끔씩요.” &lt;br /&gt;
 그들은 남자와 여자였다. 그 순간 그들은 더 좋아질 수 없는 한 장의 사진 같아 보였다. 정원에 서 있을 배나무와 물이 스민 자갈 깔린 진입로, 다 큰 딸이 가진 문제들까지 그대로 멈추어, 이 커플의 섭정 속에서 평화로웠다. &lt;br /&gt;
 비리는 이 이미지에 다소 놀란 채로 앉아 있었다. 그 자신이 종종 남들을 놀라게 하던 그런 이미지, 결혼 생활이 가장 순수하고 관대한 형태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연약해짐을,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들 부부의 만족감 속에서 흠을 찾고 싶었지만 그 표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없었고, 그 가늘고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들이 혼란스러웠다. 그녀 뺨의 모양과 그녀의 무릎, 그는 무서웠다. 자신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공포는 고백할 수 없는 종류였다. &lt;br /&gt;
 네드라도 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삶은 이기적이고 고립되어야 한다는 증거를, 심지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전혀 모르는 여자가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다. 알바 부부는 다른 삶이 아닌 어떤 특정한 삶을 원했고, 운 좋게도 그 삶을 함께 찾았다. 런던의 포토벨로 로드에서 그녀는 건초 색깔의 아름다운 랄리크 크리스털 병을 샀다. 그 병을 클레어에게 선물로 보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32~33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어젯밤에 피터와 캐서린 집에 갔었어. 피터는 정말 훌륭해. 물론 당신 안부를 물었고.” &lt;br /&gt;
 “잘 지낸대?” &lt;br /&gt;
 “음, 뭐, 그 사람들은 아주 신기해. 서로 애정은 대단하지 않은 것 같은데 헌신적이야.” 그가 잠시 멈췄다. “우리도 그랬던 것 같지만.”&lt;br /&gt;
 “뭐, 다들 그렇지.”&lt;br /&gt;
 “당신은 잘 지냈어?” &lt;br /&gt;
 “아, 나쁘지 않아. 당신은?” &lt;br /&gt;
 “나는 가끔⋯⋯ 실제로는 수없이 그리로 날아갈 생각을 했어.”&lt;br /&gt;
 “아, 비리, 생각은 고맙고, 당신을 보면 반갑겠지만, 하지만 그건⋯⋯ 아, 알잖아, 우리는 그러기엔 늦었지.” &lt;br /&gt;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아.” &lt;br /&gt;
 “쉽지 않지.”&lt;br /&gt;
 그녀는 그의 간청을 지혜롭게 넘겼다. 그게 그에게는 언제나 놀라웠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기 위해서 더 붙어 있고 싶었다.&lt;br /&gt;
 “이 주 있으면 당신 마흔넷이 되네.” 그녀가 말했다.&lt;br /&gt;
 “그래.”&lt;br /&gt;
 “당신 생일 함께 못 있겠네.” &lt;br /&gt;
 “마흔넷.” 그가 말했다. “이제 그 나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아.”&lt;br /&gt;
 “쉬운 부분은 지났지.” &lt;br /&gt;
 “쉬웠어?”&lt;br /&gt;
 “우리는 지하의 강으로 들어가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lt;br /&gt;
 “응, 알아.”&lt;br /&gt;
 “그게 우리 앞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용기조차 도움이 안 된다는 거야.”&lt;br /&gt;
 “당신 알마 말러 또 읽고 있어?” &lt;br /&gt;
 “아니.”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예리했다.&lt;br /&gt;
 지하의 강, 낮아진 천장은 축축해지고, 물은 어둠 속을 흐른다. 공기는 습하고 차가워졌고 수로는 좁아졌다. 빛과 소리는 여기에 없다. 커다랗고 건널 수 없는 널빤지 밑으로 물살이 흐르기 시작한다.&lt;br /&gt;
 “용기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건 무슨 말이야?” &lt;br /&gt;
 “용기, 지혜, 아무것도 안 돼.” &lt;br /&gt;
 “네드라⋯⋯.”&lt;br /&gt;
 “응.” &lt;br /&gt;
 “아무 일 없는 거야?”&lt;br /&gt;
 “물론.”&lt;br /&gt;
 “아니, 정말로 말이야. 네드라, 알지, 나는 항상⋯⋯ 여기 있어.”&lt;br /&gt;
 “비리, 나는 괜찮아.”&lt;br /&gt;
 “당신 행복해?” 그가 물었다.&lt;br /&gt;
 그녀는 웃었다. 행복. 그녀는 자유로워지고자 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51~35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집에서는 맨 다리로, 맨발로 지냈다. 팔과 다리는 그을었고, 눈은 같은 회색이었고, 입술은 매끄럽고 창백했다. 안온한 날들. 우정이 있었고, 근심은 햇빛에 여과되었고, 해복했다. 아침에 그 집 앞을 지나가면, 아름다운 여자가 꽃에 물을 주고 딸이 그 옆에서 길고 하얀 고양이를 팔에 안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들이 집을 비웠을 때는, 창문은 조용하고 나무 상자위에 손바닥만 한 수영복들이 널려 있고, 검은 머리의 울새들이 비바람을 맞은 몸으로 잔디 위를 빠르게 날았다.&lt;br /&gt;
 그들이 바깥에서 볕을 쬐는 곳에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작은 노란 벌들이 치즈 껍데기를 먹고 있었다. 네드라는 양 손바닥을 볕에 달궈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8월 초였다. 바다는 노래를 했다. 아침에, 점심 직후 텅 빈 시간에, 바다 위로 은색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 몇이 소리를 지르며 놀았다.&lt;br /&gt;
 그들은 피터와 캐서린의 집을 방문했다. 커다란 나무 아래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그들은 앉아서 비리 얘기를 했다. 네드라는 드레스의 단추를 몇 개 풀고 배를 문질렀다. 소화에 좋다고, 그녀가 말했다. 머리 위 어둠 속으로 비행기가 희미한 소리를 흘리며 지나갔다. 별들 사이로 그 불빛이 지나갔다.&lt;br /&gt;
 “지난 달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 좀 지쳐 있어요⋯⋯ 사는 데. 그동안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나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lt;br /&gt;
 “아, 이유는 간단하지 않은가요?” 피터가 말했다.&lt;br /&gt;
 “추측은 종종 틀리니까⋯⋯.”&lt;br /&gt;
 “맞아요, 하지만 당신과 비리든, 누가 됐든 헤어질 때는 통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아요. 그 잘라진 조각이 똑같지 않은 거죠. 둘 중 한 명이 그 중심부를 가져가죠.” &lt;br /&gt;
 “비리는 그 사람 일이 있어요.” &lt;br /&gt;
 “하지만 당신이 그 신성한 일부를 가져갔어요. 당신은 살고, 행복할 수 있지만 그는 그러지 못해요.” &lt;br /&gt;
 “아빠 요즘 훨씬 나아지셨어요.” 프랑카가 말했다.&lt;br /&gt;
 “우린 본 지가 한참 됐죠.”&lt;br /&gt;
 “훨씬 좋아지셨어요.” 그녀가 안심을 시켰다.&lt;br /&gt;
 “아직 그 집에 살아?” 캐서린이 물었다.&lt;br /&gt;
 “아, 그럼요.”&lt;br /&gt;
 그들은 음식과 옛날 친구 얘기, 유럽과 읍내의 상점들, 바다얘기를 했다. 중요한 얘기는 나중에 꺼내는 사업가처럼 피터가 물었다. “네드라, 당신은 어때요?” &lt;br /&gt;
 “저요?” &lt;br /&gt;
 “그래요.”&lt;br /&gt;
 “글쎄요, 오늘 저녁을 너무 잘 먹었고, 내 침대는 편안하고⋯⋯.”&lt;br /&gt;
 “그래요⋯⋯.”&lt;br /&gt;
 “생각 중이에요. 그런 질문에 답하는 건 좀 익숙하지가 않네요. 특히 나를 이해할 사람이라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어때 보여요?”&lt;br /&gt;
 “피터” 캐서린이 설명을 했다. “네드라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거야.”&lt;br /&gt;
 “실제로요,” 피터가 말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당신은 좋아 보여요. 전과 전혀 다름없이.”&lt;br /&gt;
 “전과 다름없다⋯⋯ 아녜요. 누구도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옮겨 가고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에요.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이상한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끝은 까만 망토를 입은 해골이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나를 데려간 건 캐딜락을 탄 뚱뚱한 유태인 남자였어요. 그 시가를 피우는, 매일 보는 종류의 남자. 차는 새 차였고 창문은 닫혀 있어요. 그는 아무 할 말이 없어요. 너무 바쁘니까. 그러곤 그와 함께 가는 거죠. 그게 다예요. 어둠 속으로. 내가 왜 이리 말이 많죠?” 그녀가 물었다. “브랜디 때문인가 봐요. 이제 가야 해요.”&lt;br /&gt;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삶은 잘 보낸 한 시간 같았다. 그 비결은 그녀가 후회나 자기 연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화된 자신을 느꼈다. 날들은 바닥나지 않는 채석장에서 캐내는 돌 같았다. 그 안에는 책과 사소한 볼일들, 해변, 그리고 가끔씩 오는 우편물이 있었다. 그녀는 볕에 앉아,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편물들을 읽었다. 마치 해외에서 날아오는 신문을 읽듯.&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비리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는 썩는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애매한 프로젝트와 약속들이 있었지만, 정작 할 일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죽어가는 벌레처럼 미끄러져 내렸다. 힘도 없고, 이유도, 싸울 기력도 없었고, 그 시간들 속에서 흔들리고, 비척거렸다. 아, 그저 미친 사람처럼, 신자처럼 죽음을 향해 뛰어갈 수 있다면, 정신이 혼미해진 채, 멍하게, 사랑에게 뛰어가던 그 빠른 걸음으로, 그러다가 어느 조용한 이른 오후, 어딘가 앉아서 신문을 펼치는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41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죽음의 기미가 느껴졌고, 연약해 보였다.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실이 벌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노인이 될 것이다. 그는 믿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하고 허락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생의 의미가 아니던가.&lt;br /&gt;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아모레?” &lt;br /&gt;
 “응.” 그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가운을 입었다. “그래, 나 괜찮아.” &lt;br /&gt;
 “이리 와요.” 그녀가 말했다. “차를 만들어드릴게요.”&lt;br /&gt;
 날이 가듯 더디긴 했지만 그는 나아졌다. 어느 시점이 되자 테라초 바닥의 차가움도, 찢어지는 듯한 전화벨 소리도, 가뭄처럼 찔찔 나오는 수돗물도 거슬리지 않았다. 끝도 없는 우울증을 겪은 후, 불면의 밤들을 보내며 가망 없는 비참한 삶 속에 들어왔다는 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천천히 머리가 맑아졌고, 심지어 차분해졌다. 다시 읽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날이 조용히 밝아왔다. 지나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조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자신에게 남은 것을 챙겼다. 자신의 팔다리와 얼굴을 만지며, 지나간 일을 잊는 중요한 작업을 시작했다.&lt;br /&gt;
 그는 일상에 행복해하는, 평화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감사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완벽하게 실감은 나지 않았다. 기차에 앉은 사람이 창밖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때로는 생생한 풍경이, 때로는 텅 빈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416~41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 우체통에 또박또박한 글씨가 쓰인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그는 바로 필체를 알아봤다. 복도에서 봉투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비리에게⋯⋯.’ 이렇게 멀리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어제처럼 와 닿았다. 그의 눈이 빠르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항상 모든 게 실수였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그녀가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녀의 그 말에 즉각 굴복의 대답을 하지 않을 날은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없었다. 마치 출전 명령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퇴역한 지 오래된 군인 같았다. 아무것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다시 뛰는 가슴을 안고, 장비를 꺼내 늘어놓고, 결국엔 집과 고향을 떠나는 노병.&lt;br /&gt;
 그녀는 1만 달러를 빌려달라고 했다. 필요하다고, “살다 보면 그렇잖아”라고 했다. 꼭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lt;br /&gt;
 1만 달러. 리아에게는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할지 뻔했다. 이탈리아 삶에서의 돈의 중요성, 그 엄격함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 청소하러 오는 여자에게 일주일에 2만 리라&amp;lt;sup&amp;gt;약 10유로&amp;lt;/sup&amp;gt;정도 주었고, 베네토 거리에서 파는 구두의 값은 돈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로마는 남부의 도시였고, 자본은 돈과 부라는 쇠도끼 위에 놓여 있고, 은행은 영안실 같았다. 이탈리아 사람은 돈이라면 개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lt;br /&gt;
 리아가 편지를 읽었다. 말이 없고, 싸늘했다.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왜 돈이 필요하다는 거죠?” &lt;br /&gt;
 “그 사람 뭘 요구한 적 없었어.” &lt;br /&gt;
 “그 여자 당신을 빨아먹을 거예요. 그 여자 돈에 신경 안 쓴다고,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요. 그냥 물 쓰듯 하는 거라고요. 지금 돈을 주면, 육 개월 후에 또 달라고 할 거예요.”&lt;br /&gt;
 “그럴 사람이 아니야.” &lt;br /&gt;
 그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의심을 하고 경계를 품은 이 여자에게는 아니었다. 가냘픈 이 여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세상사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lt;br /&gt;
 그날 저녁을 먹을 때 그녀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음울한 포크 소리가 공기에 걸렸다.&lt;br /&gt;
 “아모레, 내가 부탁 하나 할게요.”&lt;br /&gt;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그는 알고 있었다.&lt;br /&gt;
 “맞아요, 물론 당신은 알고 있지요.” 그녀가 동의했다.&lt;br /&gt;
 그녀는 의기소침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이 다른 여자의 존재를 인정하듯이.&lt;br /&gt;
 “보내지 말아요.” 그녀가 간청했다.&lt;br /&gt;
 “리아, 왜?” &lt;br /&gt;
 “보내지 말아요.”&lt;br /&gt;
 “알았다고.” 그가 말했다.&lt;br /&gt;
 “아모레, 날 믿어요. 내가 알아요.” 그녀는 냉소적인 견해의 수호자였다.&lt;br /&gt;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은 몰라.” &lt;br /&gt;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부엌으로 그릇을 가져갔다. 그리고 돌아왔다.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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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6 일베의 사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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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lt;br /&gt;
박원익 (지은이)오월의봄2013-10-30&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그리고 무엇보디 정당이 구축해놓은 도덕적인 프레임이 유권자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상 단순히 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보수정치에 대할 수 없다. 이를테면 사회보장 정책이 가족을 해체시키고 나태함을 만연하게 하여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뒤흔든다는 프레임이 사람들에게 한 번 확립되고 나면, 사회의 불안정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대기업과 자본의 냉혹한 탐욕이라는 진상을 아무리 알려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보수적인 프레임 자체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이야기해도 결국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보수파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이 역으로 그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복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치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도덕적 프레임을 구축하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13&amp;lt;/h3&amp;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젊은 우익들의 집단행동&#039;&#039;&#039; &lt;br /&gt;
우선 일베 유저들은 과거의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달리 길거리에 나서거나 시위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존재의의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그보다 더 은밀하고 교활하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2002년과 2008년 때처럼 시위용 플래카드를 들고서 길거리 인증샷을 찍는 대신 정치인들과 시위대를 희화화하는 짤방과 콘텐츠를 생산해낸다. 거기서 촛불시위대는 촛불좀비로, 전라도는 홍어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김치녀로 희화화된다. 그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논증을 펼치기보다는 과거의 행적과 발언에서 논리적인 모순점들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그들을 ‘저격’한다. 보수정권의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이 논란이 되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집권 시절 강경 진압 사진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들은 문제가 되는 인물과 단체를 찾아가 항의와 농성을 벌이는 대신 그들의 신상을 털며 학력과 외모 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그들은 거리와 학교 그리고 공장에서 자신의 ‘대의’를 선전하는 대신 진보정치를 희화화하거나 비웃는 자신들의 ‘은어’와 ‘유머 코드’를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일상 속에서 확산시킨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더 이상 국가로부터 결정적인 변화나 개혁을 기대하지 않는다. 국가는 안보와 외교를 잘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안보에 기반을 두고 대외적인 국격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과거 진보정권들에 의해 부정당했던 국가의 기본 목적이자 존재이유다. &lt;br /&gt;
 일베는 ‘인터넷 공론장 Internet as a public sphere’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담론들을 무력화시켜버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베에서 표출되는 젊은 우익들의 집단행동은 이전의 선례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론장이라는 용어는 인터넷에서의 의견 교환과 집단행동을 이른바 시민사회에서 행해지는 의사소통 행위, 즉 공적인 숙의deliberation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에 기초해 있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이란 현실의 공론장이 지닌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2의 시민사회 같은 것이 된다. 그러나 일베는 본질적으로 유머 사이트이기 때문에 공론장을 성립시키는 합리적인 논증과 토론, 시민적 윤리, 혹은 그것에 대한 규범적 요청 같은 것이 없다.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규범들을 유머감각이 결여된 씹선비질’이라며 격하하고 도리어 적극적으로 물리친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토론이나 논증의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단번에 희화화하고 규정짓는 유머감각이다. &lt;br /&gt;
 그러나 일베에서 공론장에 필요한 규범과 정당화 기제가 거부된다고 해서 그 유저들이 비이성적이거나 불합리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러한 것은 그들의 인터넷 문화에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일베 유저들의 집단적 행동양식은 오히려 과거의 진보적인 논객들에게 시대를 앞선 것으로 칭찬받은 인터넷 환경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공론장의 합리성과 시민 의식 같은 윤리적 규범을 타인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고서도 서로 재미를 추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베는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존재이며, 역설적이게도 촛불시위 때 구현되었던 네트워크 연대와 교류 방식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터넷 환경의 변화는 비단 일베만의 특성이 아니다. 과거의 인터넷 커뮤니티, 블로그나 카페, 클럽에서 통용되었던 공론장의 규범이 오늘날에는 쇠퇴했다. 긴 글은 세 줄 요약으로 대체되고, 상황에 대한 분석보다는 상황을 한눈에 요약하는 사진이나 짤방이 각광을 받으며,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보 같고 익살스러운 모습이 더 좋은 인정 방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은 더 이상 시민적 이성을 구현할 ‘논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베에서는 이러한 인터넷 논객들의 비판이 아무런 매력도 권위도 갖지 않는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17&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앞서 보았듯이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이 있다. 그리고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적 의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컬트문화로 그치지 않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상적 입장이 아이러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잔혹한 유머 역시도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외면적인 진지함을 경멸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내적인 진지함과 인정욕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일본의 극우파들도 그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단지 농담으로밖에 볼 수 없는 과격한 언행과 행동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후에 감춰진 일베의 무의식적인 사상을 재구성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또 다른 사상적인 분석틀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9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그렇다고 해서 과연 당시의 디시인사이드가 진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당시 인터넷의 정치적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것은 진보나 좌파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반한나라당 정서에 더 가까웠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혐오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거대 보수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구꼴통’, 친일독재 정당쯤으로 인식되고 비난당했다. &lt;br /&gt;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 문화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어떤 명확한 가치나 이념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혐오와 안티 정서가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정치적 분위기에 푹 빠졌던 사람들은 당시의 반미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인 외교,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훔쳐간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 장갑차에 여중생들이 깔려 숨진 사건에 미국이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가 반미 감정에 불을 지폈다. 오늘날 반북 정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02~108&amp;lt;/h3&amp;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자유로운 욕망의 주체인 나 자신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나아가 그 욕망을 몸소 실현해주길 바라는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예전에 미국이라는 존재가 대한민국이 ‘정상국가’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가 되었다면 오늘날에는 그것이 북한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 천안함 침몰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민족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어떠한 정치세력도 이러한 감정의 상처를 우회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면서까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현실을 북한 정권(과 그들을 비호하는 종북 세력) 탓으로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반북 정서는 각자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했던 과거의 반공주의 이념과 다르다. 젊은이들의 반북 의식은 이미 스스로를 상호 평등한 욕망의 주체로 인식하는 문화와 정서에서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북한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며 대결 구도를 불사하는 것이 곧바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묘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제적/정치적 보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2002년 당시 네티즌들의 ‘자신감’과 닮아 있다. 과거에 한미동맹 관계가 흔들리면 군사적/정치적 지원이 끊길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보수언론이 찌질한 존재였다면 현재는 북한과의 대결이 냉전의 고착화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겁을 먹는 진보진영이 오히려 찌질한 것으로 여겨진다. &lt;br /&gt;
 이런 점에서 인터넷의 정치적 풍경은 2002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감정적인 전이 대상이 옮겨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상국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국가란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 반대급부로 (과거에 ‘딴나라 당’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노완용’(노무현), ‘핵대중’(김대중), ‘촛불좀비’가 유행하고 있다. 정상국가의 실현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안티 정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터넷을 관통하는 문화적/정치적 코드이다. 국가와 인터넷 간의 이러한 상상적인 관계(정상국가에 대한 열망)는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오늘날에는 북한도 상상적인 인정투쟁의 상대가 되어버린다. 오늘날 네티즌들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을 쓸 때 ‘김정은 보고 있냐’라는 투로 일관한다. 실제로는 보고 있을 리 없는데 마치 인터넷 논쟁 상대를 대하듯이 북한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며 기분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2002년 우리도 이처럼 부시 전 대통령과 안톤 오노를 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우리는 길거리에서 “부시야, 부시야, X라이 부시야”로 시작하는 유행가를 불렀다. &lt;br /&gt;
&lt;br /&gt;
&#039;&#039;&#039;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끼친 영향 &#039;&#039;&#039;&lt;br /&gt;
&lt;br /&gt;
여하튼 200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노무현에 대한 집단적인 감정 전이는 정상국가의 실현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 전이(안티 정서)에 힘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무현에 대한 추종 분위기가 거세어지면 거세어질수록 노무현에 대한 ‘안티 정서’도 자라났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노빠’라는 노무현 팬덤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이 확산되었다. 인터넷상에는 “빠(팬덤)는 까(안티)를 양성한다”라는 오랜 말이 있는데 실제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고 난 이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광범위한 팬덤 현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대한 지지가 급속하게 사그라진 것이다. &lt;br /&gt;
 무엇보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추진, 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노무현도 대통령이 된 이상 별수 없이 현실 정치와 국가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국가, 현실의 대통령에게 불가능한 이상을 제멋대로 한 개인에게 투사했기 때문에 종국에는 ‘이건 내가 아는 노무현이 아니야’라며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이상과 어긋나게 행동했지만 여전히 지속되었던 그의 톡톡 튀는 화법과 돌발행동은 이러한 실망감을 이내 짜증과 환멸로 뒤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lt;br /&gt;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욕망을 ‘무대화’할 수 있는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안티 정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감정 전이의 대상이 시대와 정세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근래에 들어서 노무현/김대중에 대한 고인드립이 난무하게 되었다고 인터넷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만일 인터넷에 문제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애초에 인터넷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한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수직적인 위계 질서가 아닌 상호 평등한 네트워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보에 더 친화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수평적이고 네트워크적인 연대에 기반을 둔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lt;br /&gt;
[[image:roh_jjal.png]]&lt;br /&gt;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의 분위기가 결코 ‘진보적’이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유력한 증거는 바로 인터넷이 초창기 때부터 반여성주의, 반외국인 정서를 담아냈다는 데 있다. 가령 디시인사이드, 다음 아고라, 웃긴대학과 같은 주요 커뮤니티들에서도 군가산점제 폐지(2000)와 성매매특별법(2004) 그리고 호주제 폐지(2005) 같은 의제들은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여성주의적 의제가 전혀 인터넷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이 남성중심적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기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군필자 남성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안티 정서가 인터넷상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이른바 ‘노빠’라고 불리는 집단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표출되었다. 한나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했던 지역에 대한 지역 비하 발언 역시 과거에 존재했다. 가령 대구는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시티에 비유되어 ‘고담대구’로 표현되었고 범죄로 가득 찬 낙후된 도시로 묘사되곤 했다. 2004년 지율스님이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는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과 같은 지역적/생태적 이슈들도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lt;br /&gt;
 반대로 노무현 집권기의 이라크 파병 문제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대외적 지위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 진보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로 표출된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은 한국 사회의 지역적, 생태적, 여성주의적, 다문화적 가치들을 담아낼 만큼 ‘진보적’이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런 가치들은 현실의 국가도 이상 속의 국가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진보적 가치들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속에서, 이를테면 지역사회, 성소수자 커뮤니티, 협동 조합, 노조, 진보적 학생서클에서 지속적으로 지지받아야 한다. 정치인이 정책을 대신 실현해줄 수 있어도 그/녀가 그 ‘이상’을 대리해줄 수 없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강행하고, 노동법을 개악하고, 한미 FTA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실망한 사람들은 그보다 한 술 더 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비극을 낳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 급속한 심리적 환멸과 실망이 사람들을 차악이 아닌 최악으로 치닫게 한 것이다.&lt;br /&gt;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에서 얼마나 실망하든, 옳은 것을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꾸준히 외쳐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환경단체에 가입해서 국가와 자본의 폭력에 꾸준히 문제의식을 느껴온 사람들은 현실의 정치인에 대해 아무리 실망을 해도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주변에는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함께 작게라도 행동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무언가 막연한 정의감에 북받쳐 인터넷에 시시비비를 논해온 쪽이 오히려 쉽게 절망하고 전향하는 것이다. &lt;br /&gt;
[[image:Ilbe_jungeun.png]]&lt;br /&gt;
 앞으로도 보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없이는 현실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할 수 없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적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국가를 향한 강박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진보는 보수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서 유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국가는 그러한 네티즌들의 이상을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진보적 네티즌들이 추종했던 노무현 정권도 그랬고, 최근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적 네티즌들이 추종하는 국정원도 마찬가지였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10~115&amp;lt;/h3&amp;gt;&lt;br /&gt;
&amp;lt;h3&amp;gt;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일베의 은어와 혐오 문화&#039;&#039;&#039; &lt;br /&gt;
일베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그 안에서 유행하는 독특한 은어와 말투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넷의 유행어들은 상당수가 비꼬거나 조롱하는 대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베의 유행어들을 보면 그들 중 상당수가 지역에 대한 비하, 여성에 대한 비하, 진보적 시민에 대한 비하, 정치인에 대한 비하로 이루어져 있다.&lt;br /&gt;
 우선 일베에서는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해왔던 호남지역에 대한 반감이 두드러진다. 전라도는 라도, 전라디언, 홍어, 심지어 ‘7시 방향’으로 불리고 있다. ‘7시 방향’이란 스타크래프트라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빗댄 표현인데, 게임맵상에서 보면 전라도가 7시 방향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까보칠과, 알보전과 같은 모욕적인 표현이 있다. 알보전은 ‘알고 보니 전라도’, 까보칠은 ‘까보니까 일곱시 방향’이라는 뜻인데, 과격한 진보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하나같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몇 시 방향’이라는 표현 자체가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상대편 기지로 러시(공격)를 가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여기서 전라도는 말하자면 정복 혹은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라도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된 이유, 그리고 호남과 영남이 지역 갈등을 빚게 된 역사적 배경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또한 전라도 사람들을 수식하는 말로서 ‘통수’(전라도인들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속설을 반영한 말), ‘오오미’(‘오메~’라는 전라도식 감탄사를 뒤튼 말), ‘~랑께’등이 있다. 가령 “오오미~ 라도는 역시 통수가 갑이랑께”. 또한 상대편에 대한 동의를 가장하면서 상대의 이중 잣대와 위선을 비꼴 때 ‘암 그라제잉’과 같은 전라도 방언을 흉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암 그라제잉, MB정부가 하면 민간인 사찰이고,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하는 건 정의랑께”등이다. &lt;br /&gt;
 진보적 시민들은 일베에서 대개 ‘촛불좀비’, ‘좌빨’, ‘좌좀’등의 이미지로 희화화된다. 이들은 짤방이나 정치적인 비하 발언 속에서 의식 있는 척하지만 실은 머리가 비어 있거나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아무 생각 없이 휘둘리는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표상되곤 한다. ‘알보칠’이나 ‘까보전’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지역 출신이 때로는 ‘신상털이’의 대상이 되기 한다. &lt;br /&gt;
 무엇보다 일베에서는 진보적 시민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관용적으로 비꼬아 표현하는 말들이 유행한다. 가령 노무현은 ‘놈현’, ‘운지’, ‘노완용’, ‘노알라’ 등으로 표현되고 김대중은 ‘슨상님’, ‘핵펭귄’(다리가 불편했던 그의 장애를 조롱하는 표현), ‘다이쥬’(김대중이 창씨 개명한 이름) 등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정치 풍자 짤방에서 예외 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비굴한 행동을 하거나 은연중에 북한의 김부자 정권에게 동조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특히 노무현과 김대중을 조롱하는 일상적인 유행어 중에 ‘앙망하옵니다’와 ‘~하盧’ 등이 있다. ‘앙망하다’는 지금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의고적 표현인데, 과거 김대중이 군사정권하에서 수감되었을 때 옥중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면을 부탁하는 편지에서 사용한 단어다. 일베 이용자들은 이것을 빗대어 다른 유저들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앙망한다”는 표현을 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희귀한 연예인들의 노출 영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거기에 대고 댓글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적고 “앙망합니다”를 다는 식이다. 정치적 탄압 앞에 목숨을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 드러난 서글픈 인간적 단면이 웃음거리의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은연중에 조롱하기 위한 의도로 ‘~하盧’의 노를 구태여 노무현의 성으로 표현하거나 ‘전 노무현 고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단어를 뒤바꿔서 희화화하기도 한다. &lt;br /&gt;
 무엇보다 일베 게시물의 유행어들을 살펴보면 젊은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가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베인들은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 ‘김치녀’, ‘김치년’이라고 부른다. 물론 한국인을 통틀어 김치녀, 김치맨 등과 같은 단어로 비하하는 것은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일상적이다. 하지만 일베에서 김치녀는 한층 더 부정적인 용례로 사용된다. 그녀들은 대개 허영심이 많고 물질적으로 남성을 이용하려 하면서도 매사에 피해 의식을 갖는 위선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소위 ‘김치년’은 독립심 강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외국 여성들과 종종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일베인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꽃뱀질은 김치년 종특(종족 특성)”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은어들을 조합해서 표현한다. 이러한 반여성주의적 감수성은 여성을 비하하는 수많은 하위주체 개념들을 파생시켰는데, 가령 남성을 물질적으로 이용하는 여성은 ‘보슬아치’(벼슬아치라는 단어에 여성의 성기를 빗댄 것)라고 불린다. 물론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은 현실 어디에나 있다. 필자가 즐겨 다니는 (오타쿠 성향의) 루리웹 유머 게시판에도 한국 여성들을 싸잡아서 김치녀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루리웹을 포함해서 다수 커뮤니티에서 김치녀 운운하는 것이 농담 수준을 넘어서면 “그러는 너의 자매나 어머니 그리고 미래의 배우자도 김치녀 아니냐”는 반격(?)이 들어온다. 반면 일베에서 이러한 반여성적 경향에 대한 자정 작용 같은 것은 없다. &lt;br /&gt;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베 게시판에서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게시물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밝힐 때 일베 유저들이 “김치녀 벤(접속차단)” 혹은 “김치녀 OUT”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amp;lt;ref&amp;gt;게시판에서 자신의 얼굴이나 몸을 인증한 여성 유저를 중심으로 게시판 내 친목 카르텔이 형성되었던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경향에 대한 반발감으로 이를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amp;lt;/ref&amp;gt; 애초에 여성이라는 것을 밝혀봤자 아무런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혐오가 극에 달한 일부 유저들은 여성을 ‘삼일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다소 충격적이지만, ‘삼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의 준말이다. 이밖에도 일베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빗댄 ‘봇물 터진다’, ‘부왘’ 등의 여성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 유저들이 현실에서도 노골적인 여성 혐오자이거나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베의 ‘고민 게시판’을 들어가보면 여느 남초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이성교제에 대한 고민상담이 올라오기도 한다. 일베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이를테면 ‘주먹’ 같은 유행어에 극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활자상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아무리 소위 김치녀라 해도 ‘주면 먹는다’는 식이다. 일베의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남초 사이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혐오 성향 내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이가 있다. 일베의 경우 “우리는 여성들의 위선과 가식에 관해서 완전히 계몽되어 있다”는 태도를 더욱 공공연하게 과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시적인 태도가 여성을 공공연히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발언을 부추기는 것이다.&amp;lt;/poem&amp;gt; &lt;br /&gt;
&amp;lt;h3&amp;gt;132&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러한 혐오 문화가 일베에서 시작되지는 않았다. 인터넷의 혐오 문화, 타인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능력의 과시 등은 오히려 진보적인 인터넷 논객 쪽에서 시작되었다. 일베의 새로움은 그러한 혐오 문화를 집단적인 문화, 집단적인 권리로 공유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일베는 일종의 인터넷의 민주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6~140&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039;&#039;&#039;팩트 위주의 사회&#039;&#039;&#039; &lt;br /&gt;
&lt;br /&gt;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일베 유저들이 일베 바깥의 사회와 소통하는 데서 사용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그들은 우선 재미를 내세우며 그들의 은어와 특유의 화법을 현실과 가상세계의 커뮤니티에 확산시킨다. 가령 ‘오오미’라는 감탄사라든가, 자살을 포함해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하는 것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운지’와 같은 용어들은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별 생각 없이 일상 속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 일베가 내세우는 것은 ‘재미’라는 코드다. ‘좌좀’, ‘운지’, ‘노알라’ 라는 용어를 퍼뜨리면서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너희도 ‘쥐박이’, ‘닭그네’, ‘수꼴’과 같은 용어를 쓰며 상대를 풍자하지 않느냐? 우리의 행위를 어디까지나 재미로 받아들여라.” 이러한 일베의 메시지는 정치를 ‘재미’와 ‘즉흥성’ 이라는 코드로 사고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lt;br /&gt;
 무엇보다 그들은 현실의 공론장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나 혐오 문화를 단도직입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 주장이 지닌 논리적인 허점이나 공백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서 일베 유저들이 일베 바깥에서 행동하는 방식은 일베 안에서 하는 행동과 전혀 다르다. 일베 유저들이 다른 이들과의 정치적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른바 ‘팩트’다. 상대방의 주장이 근거를 두고 있는 팩트 중 무언가 하나라도 틀렸다면, “거봐, 너희들은 항상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나 일면적인 진실만을 가지고 감성팔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해온 것이 아니냐?”며 몰아붙이는 식이다.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노정태라는 한 진보 논객은 어떤 주장이 담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관보다는 그것이 기반을 두고 있는 팩트를 중요시하는 해태를 일컬어 ‘팩트 골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파편적인 정보를 종합해서, 통일적인 인식을 구성하거든요. 하지만 팩트 골룸 여러분께는 바로 그 종합적 기능이 대단히 부족해요.”&amp;lt;ref&amp;gt;노정태, 〈팩트 골룸 여러분들에게〉 (http://basil83.egloos.com/4905765) &amp;lt;/ref&amp;gt; 이러한 발언은 인터넷 블로그상에서 이른바 팩트 골룸 논란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지금의 인터넷 문화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팩트 골룸이 될 수밖에 없다. 일베가 인터넷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바로 그러한 팩트 중시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lt;br /&gt;
 오늘날 인터넷 문화는 언어의 수사적이고 상징적인 측면, 내면적인 진실성보다는 언어의 논리적인 정합성과 외면적인 사실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논객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경향과도 잇닿아 있다. 논객이 공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수행성(이념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호소력)에 있는데 그것이 인터넷에서 점점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정태의 반응은 저 인터넷의 경향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확실히 오늘날 네티즌들은 모두가 마치 아마추어 ‘논리실증주의자’&amp;lt;ref&amp;gt;1924년경 M. 슐리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오스트리아 빈(Wien) 학파의 철학적 입장을 지칭한다. 명제의 분석적이고 검증 가능한 의미들만을 수용하거나 중시하는 철학적 입장.&amp;lt;/ref&amp;gt;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이는 일베의 등장 이후 더 두드러지게 된 현상이다. &lt;br /&gt;
[[image:ilbe_fact.png]]&lt;br /&gt;
 더 나아가 팩트에 어긋나거나, 검증 불가능한 선전/선동들은 일베 유저들에게 이른바 ‘감성팔이’로 공격당한다. 가령 2013년 상반기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적자’와 ‘방만한 경영’ 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때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이 쏟아졌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환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팩트들이 있을 것이다. 진주의료원 사태에도 이른바 노조의 직장 세습 의혹이나 재정적자 문제도 불거졌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의료체계가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일베 유저들의 관점에서 후자와 같이 ‘구조’에 입각하여 사회를 통합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일베 유저들의 눈에 비치는 팩트란 이른바 진주의료원 노조가 자신의 부당한 ‘특권’을 지키기 위해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주 시민들은 진주의료원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가 갑자기 이슈로 터지니까 군중심리와 같잖은 정의감으로 발광하는 것이다.”&amp;lt;ref&amp;gt;〈진주의료원 폐원〉(http://www.ilbe.com/1327363594) &amp;lt;/ref&amp;gt; 바로 이 같잖은(?) 정의감을 일베 유저들은 참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lt;br /&gt;
 이렇듯 그들은 진보주의자들이나 좌파의 주장들 중 상당수가 사실관계와 어긋나거나 검증될 수 없는 감성팔이라고 의심한다. 이러한 의심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주장이 지나치게 당위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주장이든 가치판단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현실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보자. 진주의료원이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이른바 ‘착한 적자’라는 사업비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의 전환도 가능하다. 국가가 행하는 정당한 복지 지출을 ‘적자’라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발상 자체도 박근혜에게서 나왔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감성팔이를 일삼는 좌빨이란 말인가? 결국 진주의료원 문제도 가치관의 문제이다. 일베 유저들이 비난하듯 ‘원래는 존재감이 없던’ 진주의료원이 노조와 좌익의 선동 때문에 ‘논란’ 이 된 것이라면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을 제도적으로 더욱 ‘확산’ 시켜서 굳이 ‘논란’을 만들지 않고도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일베 유저들의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lt;br /&gt;
 일베 유저들은 커뮤니티 ‘바깥’에서 논쟁할 때 흔히 회의론적인 상대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물론 이러한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가령 자신이 해야 할 사실 검증을 타인에게 전가한다든지, 자신은 신념을 말하면서 타인이 신념을 밝히는 걸 가로막는다든지 — 한편 그것은 일베 ‘안’에서처럼 자신의 혐오감과 타인에 대한 편견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서 일베 유저가 사뭇 중립적이고 무사 공평한 태도로 “5·18이 폭동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미 의문이 제기된 이상 폭동 여부에 대한 의혹을 역사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커뮤니티로 돌아가 ‘홍어’니 ‘전라디언’이니 하며 5·18을 폭동으로 단정을 지은 채 본인 스스로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는 이중성을 자주 볼 수 있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44~14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이렇듯 일베가 바깥에 자신의 ‘사상’을 퍼뜨리는 방식은 무엇보다 ‘팩트 위주’의 사고방식을 설파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요점은 단순한 상대주의적 회의론을 넘어선다. 일베의 사상은 팩트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팩트를 초월한 이념과 이상이 사람들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결의에 더 가깝다. 일베 유저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중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명확한 이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베 유저들은 ‘몰이상’을 철저하게 고수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몰이상성 역시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념적이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야말로 어떤 이상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의 심리적인 경향마저 부정하고 조소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적’이다. 여기서 일베 유저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놓치고 있다.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것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사람들의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을 모아야 할 때가 있다. 비록 그 안에서 ‘닭그네 탄핵!’과 같은 과격한 구호가 나오더라도 어쨌든 광장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나와 촛불을 들지 않는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작업은 금방 흐지부지될 것이다. 팩트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행동에 나서서 정치인과 국가기관에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lt;br /&gt;
 하지만 어차피 이런 이야기는 일베 유저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어차피 ‘선동’이나 ‘감성팔이’로 들릴 것이다. 앞으로도 일베 유저들은 감성팔이와 팩트 사이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명한 구분에 집착할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천안함 장병들을 애도하는 것은 ‘감성팔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고집스러운 자신들만의 구분에서 ‘일베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일베의 사상이란 한마디로 몰이상의 이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일베 유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와도 같은 것이다. 한 트위터 유저는 팩트를 중시하는 일베에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상향’을 발견한다. “제가 보는 일베저장소는 이상향입니다. 좋든 싫든 일베저장소의 모습이 우리가 민주주의의 검은 면을 피하려는, ‘더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도달해야 할 토론장의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amp;lt;ref&amp;gt;이 글은 현재 인터넷 게시판에서 삭제되어 확인할 수 없다. &amp;lt;/ref&amp;gt; 그들에게 광우병 촛불시위는 물론이고,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 노무현 후보의 당선 모두 진보와 좌파의 감성팔이에 의해 속아 넘어간 정치적 결과이다. 물론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이해할 수 없는 실정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고, 촛불시위 때 나왔던 주장 중에서 사실관계에 어긋난 괴담들이 상당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서 생겨난 혼란들이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과정들을 거치면서 교훈을 얻을 것인지, 그렇게 교훈을 얻고 발전할 가능성을 철저하게 불신할 것이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전자가 부정→부정의 부정→긍정으로 나아가는 헤겔 변증법에 가깝다면, 후자는 부정 → 부정의 부정→더 철저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더 가까울 것이다.&lt;br /&gt;
 일베 유저들은 명확히 부정변증법의 편에 서 있다. 애초에 변증법적인 여론의 형성과 자기자정 기능을 불신하는 측에서 ‘민주적 토론장’ 이라는 이상향을 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일베 유저 자신들이 토론장을 신뢰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베의 그러한 몰이상주의가 정치적 이상에 의해서 스스로 좌절하거나 상처받아본 인간들에게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베 유저들 중에서는 자신이 과거 노무현의 지지자였거나 촛불시위에 나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일베의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경험이 일베의 집단 무의식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감성적인 이상주의에 또 한 번 휘둘리느니 철저하게 몰이상성을 유지하겠다’라는 것이 일베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행태는 그들의 몰이상, 아니 몰이상의 이상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다. &lt;br /&gt;
[[image:ilbe_confession.png]]&lt;br /&gt;
 일베의 담론은 이렇듯 사실을 감성과 이상에 대립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베 유저들이 중요시하는 팩트란 실상은 지극히 감성적인 인간관,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는 점이다. 가령 ‘팩트 대 감성팔이’라는 저 구분 자체가 감성적이고 이념적이다. 예를 들어 일베 유저들 자신이 항상 논쟁 과정에서 팩트에 강하냐 하면(나중에 보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5·18이 폭동이라는 의혹을 제기할 때 단번에 논박될 수 있는 사실관계에서 어긋난 주장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팩트의 중요성은 오히려 이념적인 것이다. 팩트를 운운하며 그들이 실제로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나도 병신이지만 너도 그 못지않은 병신이다”라는 사상이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유일무이한 팩트이다. 일베의 팩트 중시는 따라서 팩트 이외의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무미건조한 팩트와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은 타인과 혐오감, 경멸감을 주고받는 것 외에는 없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당한 시민을 ‘홍어’라고 조롱하는 과정 속에서 ‘무엇이 팩트냐?’라는 것은 사실 전혀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조롱은 오히려 상대에 관한 이런저런 팩트를 넘어 그 인격의 전체 본질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조롱을 통해서 우리는 나름대로 팩트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표출된 욕설과 조롱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일베의 특이함은 그러한 사실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인정한다는 데 있다. 네가 병신인 만큼 나도 병신이라는 것을 쿨하고 재미있게 인정하는 것에서 일베의 유대관계와 상호인정의 질서가 만들어진다.&lt;br /&gt;
 일베 유저들은 그러한 부정적인 호수성만이 현실의 국가와 사회 속에서 구현된 인간관계와 질서를 넘어선 집단적이고 평등한 ‘유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진보/좌파들이 ‘너도 나도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상호적이고 평등한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면, 일베는 정반대로 ‘너도 나도 병신이다’라는 상호인정에서 출발한다. 이것 역시도 일베 나름의 ‘이상’ 이다. 한편으로는 일베의 ‘이상’ 과 전혀 다른 ‘이상주의’에 기초해서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야말로 일베 유저들이 궁극적으로 경멸하는 대상이다. &lt;br /&gt;
 따라서 일베가 인터넷에서 전개하는 담론 투쟁은 단순히 진보와 좌파 사이의 정치 대립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공동체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상상의 차이로 요약할 수 있다. 일베와 인터넷 진보/좌파들의 차이는 그들 간의 공동체관의 차이로 수렴된다. 우리는 일베가 단순한 냉소주의나 몰이상에만 근거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일베 자체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모두가 동등하게 혐오할 권리를 나눠 갖는 평등한 형제애의 공간에 관한 유토피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보좌파 세력에 대해 갖는 반감은 바로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지지하고 신봉하는 유토피아적 사상에서 유래한다.&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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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903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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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lt;br /&gt;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은이),이언숙 (옮긴이),오찬호 (해제)민음사2014-12-20&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23&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이 책은 2011년 일본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다. 지금도 일본은 여전히 ‘절망의 나라’ 이지만, ‘행복한 젊은이들’ 또한 건재하다.&lt;br /&gt;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고, 일단 ‘아베노믹스’의 약진에 따라 일본의 분위기는 다소 좋아진 듯 보인다. 그러나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 발전소 문제,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등 여전히 많은 골칫거리가 산적해 있다.&lt;br /&gt;
 그런데 젊은이들이 느끼는 생활 만족도와 행복 지수는 더욱 상승했다. 최근에 내각부(內閣府)에서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생활 만족도는 78.3%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NHK 방송문화연구소의 한 조사를 보면,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95%가 자신은 ‘행복하다.’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lt;br /&gt;
 하지만 이 책의 2장에서 언급했듯이, 젊은이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반드시 ‘행복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lt;br /&gt;
 한국의 독자들은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도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비행기로 불과 2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에서 봐도, 한국은 가까우면서 먼 나라다. 이 책의 내용이 한국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또 마치 대단한 연구자라도 된 양 이것저것 다소 까다로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식으로 기술된 부분을 발견한다면, 좀 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읽어 줬으면 한다. 나를 포함해 본디 연구자라는 존재는, 논의에 자신감이 없을수록 다소 애매하고 난해한 방식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41&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사람들이 젊은이에 대해 말할 때, 곧잘 인용하는 짤막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요즘 젊은이는 발칙하다.”라는 명문이 적힌 출토품이 수천 년 전의 유적에서 발굴됐다는 이야기 말이다. 종종 이 이야기의 무대는 메소포타미아가 됐다가, 이집트가 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변종이 존재하지만, 여하튼 한 번쯤은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lt;br /&gt;
 사실 이 이야기는 출처가 의심스러운 일종의 도시 전설[각주]이지만, 옛사람들이 “요즘 젊은이는 발칙하다.”라고 말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lt;br /&gt;
—&lt;br /&gt;
[각주] &lt;br /&gt;
출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는, 1939년에 초판이 발행된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의 『목면 이전의 일(木綿以前の事)』(이와나미쇼텐)이다. 이 책에는 ‘영국의 센스 노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집트의 어느 고적에서 발견한 ‘중세 왕조 한 서기의 기록(中世王朝の一書役の手錄)’을 전한다. 거기에는 “요즘 젊은이들은 재주만 믿고 경박한 풍조를 즐기고”, 그 점이 “개탄스럽다.”라고 적혀 있었다. 즉,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은 정보인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기원전 8세기 무렵에 활약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시오도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깊이 삼가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매우 약아빠지고 인내력이 없다.” 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여러 논문에서 Pumpian-Mindlin, Eugene(1965) “Omnipotentiality, Youth, and commitment”,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Psychiatry》(4-1)을 참조하고 있는데, 이 논문에는 원전에 관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59&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양측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자리해 있는 생각은, ‘젊은이’를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타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타자이므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고, 또 그들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담보할 수 있게 된다. &lt;br /&gt;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이해력이 좋은 어른’인 양 가장해 가며 “젊은이는 희망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해력이 좋은 어른들’은 실재하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그들은 단지 ‘이상적인 젊은이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자신과 비교해 볼 필요도 없고 부러워할 이유도 없다. 또한 ‘이해력이 좋은 어른들’은 이런 ‘이상적인 젊은이들’이 대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어른들)에게 ‘젊은이’는 ‘이질적인 타자’라기보다 ‘편리한 협력자’인 것이다.&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133~136&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amp;lt;h4&amp;gt; ‘행복한 젊은이들의 정체’ &amp;lt;/h4&amp;gt;&lt;br /&gt;
전 교토 대학교(京都大學) 교수인 오사와 마사치(大澤眞幸, 52세, 나가노 현)는 조사에 회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오사와 마사치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lt;br /&gt;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lt;br /&gt;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lt;br /&gt;
 실제로 다양한 조사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고령자는 ‘행복도’나 ‘생활 만족도’에서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체력적으로 노쇠한 고령자가 아직 젊은 사람들보다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언뜻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고령자는 이제 더 이상 ‘지금보다도 훨씬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따라서 고령자들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lt;br /&gt;
 이런 오사와 마사치의 가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20대의 ‘생활 만족도’가 상승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불황’이라고 하는 ‘어두운 시대’일 때가 많다.[그림13] 예컨대 1980년대 때 ‘생활 만족도’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거품경제가 붕괴하기 직전인 1985년이었다. 1990년대의 절정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옴진리교 사건과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 이듬해인 1996년이었다. 2000년대의 절정기는 ‘격차사회론’이 빈번하게 논의됐던 2006년도였다. &lt;br /&gt;
[[file:japanbook1.png]]&lt;br /&gt;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말하자면,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lt;br /&gt;
 이를테면 1950년대에 집단 취직에 성공해 아키타 현(秋田縣)에서 도쿄로 상경한 한 젊은이 (20세, 남성)가 있었다. 그는 자동차 정비 공장에서 매일 10시간 정도(실질 노동 시간) 일했다. 그 와중에 회사 선배들의 욕설과 따돌림, 비난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아키타 사투리가 콤플렉스여서 휴일에도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나날이었지만, 그는 “이런 고생 끝에 분명 찬란한 미래가 있을 것이다.”라는 신념을 버팀목으로 삼아 견뎠다.&lt;br /&gt;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lt;br /&gt;
&amp;lt;h4&amp;gt;자기 충족화하는 젊은이들&amp;lt;/h4&amp;gt;&lt;br /&gt;
 행복한 젊은이들의 정체는, ‘컨서머토리’라는 용어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컨서머토리란 자기 충족적이라는 의미로,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한다. 딱 이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lt;br /&gt;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어울려 여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생활 방식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듯하다. 다시 말해, 미리 ‘더 행복한 미래’를 상정해 두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주 행복하다.’라고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젊은이들의 증가, 바로 여기에 ‘행복한 젊은이’의 정체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lt;br /&gt;
 이것으로써 ‘생활 만족도’라는 ‘작은’ 생각에 대해 질문했을 때보다 ‘사회’라는 ‘큰’ 생각에 대해 질문했을 때, 젊은이들의 만족도가 하락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사회’라고 하는 ‘커다란 세계’에는 불만을 느끼지만, 자신들의 머물고 있는 ‘작은 세계’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04~305&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amp;lt;h4&amp;gt; ‘농민공’이 되어 가는 일본의 젊은이들&amp;lt;/h4&amp;gt;&lt;br /&gt;
 중국에서 농민공의 생활 만족도가 높고 개미족의 생활 만족도는 낮다는 점을 통해, 나는 다소 안타까운 결론 하나를 도출하게 되었다. 만약 일본이 격차가 고정된 계급 사회, 또는 신분제 사회로 바뀐다면 ‘혹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결론 말이다. &lt;br /&gt;
 객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농민공과 자기실현 욕구, 상승 지향을 떨쳐 내지 못하는 탓에 불행한 개미족은 일본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현시점에 매우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20대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벌써 일본의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농민공화’되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까. &lt;br /&gt;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충분히 받은 이전 세대를 ‘자신들과는 다르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주변에서 행복을 찾고 동료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지낸다. 이제 젊은이들은 무언가를 쟁취함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던 시대와 선을 긋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소소한 상호 승인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lt;br /&gt;
 이것은 이 시대에 적합하고, 또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부자’를 삶의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영영 그것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따라서 ‘넘버원’을 목표로 하는 레이스는 고될 뿐이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런 경주에서 내려와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lt;br /&gt;
 아무리 선량한 어른들이 ‘젊은이 빈곤’을 사회 문제로 다루고, ‘젊은이들이 가엾다.’라고 부르짖는다고 해도, 정작 젊은이들은 그런 ‘우려’에서 현실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든,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든, ‘넘버원’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근대’가 마침내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amp;lt;/poem&amp;gt;&lt;br /&gt;
&amp;lt;h3&amp;gt;318&amp;lt;/h3&amp;gt;&lt;br /&gt;
&amp;lt;poem&amp;gt;고작 26년이라는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되돌아보니 거기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시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던 일, 그때의 수상 경력을 특기로 게이오 대학교 SFC(慶 應大學SFC)에 AO(Admissions Office) 입시로 합격했던 일, 그리고 SFC에서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일.&amp;lt;ref&amp;gt;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놀랐으나, 글 여기저기에서 그 정도의 미숙함을 엿볼 수 있기는 하다. 문장구성력 철학적 사고력 모두 비슷한 연배의 박가분(박원익)이 두세수 위.&amp;lt;/ref&amp;gt;&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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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0826 부메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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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부메랑 - 새로운 몰락의 시작, 금융위기와 부채의 복수     &amp;lt;br&amp;gt;&lt;br /&gt;
마이클 루이스 (지은이),김정수 (옮긴이)비즈니스북스2012-02-10원제 : Boomerang (2011년)&lt;br /&gt;
&lt;br /&gt;
p. 23&lt;br /&gt;
&lt;br /&gt;
당시 미국 정부는 베어 스턴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저질러놓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조 달러에 이르는 부실 증권 관련 위험을 다양한 형식으로 흡수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다른 부유한 선진국 정부들이 취하는 것과 동일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간 금융기관의 고액 봉급자들이 저지른 부실 대출을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떠안았던 것이다. &amp;lt;br&amp;gt;카일 배스의 견해에 따르면 금융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부유한 선진국들의 전적인 신뢰와 신용으로 억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배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 토론에 집중하다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들은 일부 채권의 부도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부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amp;lt;br&amp;gt;그들의 번뜩이는 투자이론은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amp;lt;br&amp;gt;2002년부터 부유한 여러 선진국들에 거품 경기가 있었다. 외형상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사람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돈을 빌려 이룬 것이었다. 2002년 이후 전 세계의 부채는 공채와 사채를 합해 대략 84조 달러에서 195조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배스는 “세계 역사상 이토록 엄청난 부채가 쌓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lt;br /&gt;
&lt;br /&gt;
p. 63&lt;br /&gt;
&lt;br /&gt;
현재 세계 금융위기의 감춰진 원인 중 하나는 위기가 올 것을 예상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널리 알리려 하기보다 매도포지션으로 많은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슬란드를(혹은 리먼 브러더스를) 금융 범죄로 확실하게 고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이익만 돌보는 어리석은 모리배 취급을 받았다.&lt;br /&gt;
&lt;br /&gt;
p. 69&lt;br /&gt;
&lt;br /&gt;
사실 아이슬란드에서는 누구나 총리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대여섯 명 정도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amp;lt;br&amp;gt; “아이슬란드인은 모두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세계적인 금융인으로 대접받는 겁니다.” &amp;lt;br&amp;gt;그들이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총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아이슬란드인에게 국가 붕괴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슬란드 금융정책 수립자들은 금융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상무장관은 철학자, 재무장관은 수의사, 중앙은행 총재는 시인이었다. 호르데 총리는 교육을 받은 경제학자지만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대학 경제학과는 그를 B- 학생으로 평가했다. &amp;lt;br&amp;gt;독립당의 지도자들은 금융에 무지하면서도 유능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금융 공황을 전공한 런던 대학 경제학부의 아이슬란드인 교수 욘 다니엘슨(Jon Danielsson)이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이는 아이슬란드 대학의 다른 저명한 금융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똑똑한 중앙은행장들의 충고도 무시했다. &amp;lt;br&amp;gt;독립당과 그 총리가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을 차에 태우고 가다가 유명한 건물을 찾지 못해 헤맬 때, 아내가 불평을 해도 차를 세우고 방향을 물어보지 않는 부류다. &lt;br /&gt;
&lt;br /&gt;
pp. 75~76&lt;br /&gt;
&lt;br /&gt;
새로운 부를 통해 아이슬란드는 변모했다. 1,100년 동안 외딴 벽지이던 그곳은 비외르크를 낳은 곳으로 바뀌었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이 나온 이유는 그들에게 음악 연주를 비롯해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유학을 가는 것은 물론 온갖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어업 정책으로 변화가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 ‘대구’는 박사학위를 위한 도구로 탈바꿈했다. &amp;lt;br&amp;gt;물론 그런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무언가 다른 일을 찾았다. 그 일이 아이슬란드의 다른 천연자원, 즉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에 취직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포와 펄펄 끓는 용암은 어마어마한 동력을 생산했지만 석유와 달리 이 에너지는 수출이 불가능해 수익성이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동력은 아이슬란드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그 문제 앞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막대한 양의 동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일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찾아낸 해답은 알루미늄 제련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amp;lt;br&amp;gt; “아이슬란드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이슬란드인은 어떤 일에 적합할까?” &amp;lt;br&amp;gt;자신이 알루미늄 제련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아이슬란드인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2004년 거대한 제련공장 건설에 착수한 아이슬란드 최대의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Alcoa)는 아이슬란드에만 존재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민속 문화에 깊이 젖은 아이슬란드인 중에 엘프(elf) 요정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알코아는 제련소를 세우기에 앞서 울타리로 둘러싼 공장 부지를 샅샅이 조사해 땅 위나 밑에 엘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알코아 대변인이 내게 말한 대로 그것은 정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공장 부지에 엘프가 없다고 선언하려면 전문가를 고용해 작업을 하느라 돈과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변인은 “회사로서는 엘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p. 93&lt;br /&gt;
&lt;br /&gt;
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 부문의 거의 세 배나 된다. 가령 국영철도는 연간 임금이 4억 유로에 기타 지출이 3억 유로인데 비해 연간 수익은 1억 유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영철도 직원의 연간 소득은 평균 6만 5,000 유로(약 9,500만 원)다. 재무장관을 지낸 스테파노스 마노스(Stefanos Manos)가 그리스의 철도 승객 전체를 택시에 태우는 것이 더 싸게 먹힐 것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노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amp;lt;br&amp;gt;“우리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파산한 국영철도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평균 임금 수준이 그렇게 높은 민간회사는 단 한 곳도 없어요.” &amp;lt;br&amp;gt;그리스의 공립학교 제도도 기막힌 비효율성의 현장이다. 유럽에서 최저 등급에 속하면서도 공립학교 학생당 교사 수는 최고 등급인 핀란드보다 네 배나 많다. 여기에다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그리스인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과외교사를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lt;br /&gt;
&lt;br /&gt;
p. 101&lt;br /&gt;
&lt;br /&gt;
설사 탈세가 적발될지라도 세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잘 무마할 수 있다. 물론 뇌물을 받는 세무원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그건 허울뿐이다. &amp;lt;br&amp;gt;“세무원을 적발할 경우 기소하는 데만 7, 8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amp;lt;br&amp;gt;소득에 대한 조직적인 속임수 때문에 탈세가 어려운 세금, 즉 부동산세와 판매세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었다. 부동산은 각 주택에 대해 소위 객관적 가치를 산출하는 공식(산출 과정에서 세무원을 배제하기 위한)에 따라 과세를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에 걸쳐 그리스 경제가 호황을 이룬 까닭에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자산의 실제 가치가 컴퓨터를 통한 평가액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감안해 산출 공식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amp;lt;br&amp;gt;그러자 그리스 시민들은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대로 보고하지 않고, 허위 가격을 보고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응했다. 그 허위 가격은 대개 낡은 공식이 평가한 낮은 가격과 일치했다. 가령 구매자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을 경우 객관적 가치로 대출을 받고 그 차액은 현금 혹은 사채로 해결했다. 물론 객관적 가치는 실제 대지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다. 놀랍게도 그리스 의회의 의원 300명 모두 자기 집의 실제 가치를 컴퓨터가 산출한 객관적 가치로 신고했다.&lt;br /&gt;
&lt;br /&gt;
p. 119&lt;br /&gt;
&lt;br /&gt;
또한 물질적인 세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 괴상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세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도 아닌 수도사들이 어떻게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에서 그리스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혔을까? &amp;lt;br&amp;gt;두 시간쯤 지난 뒤 내가 용기를 내서 묻자, 놀랍게도 그는 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캐비닛에 붙여놓은 표지판을 가리키더니 그리스어로 적힌 내용을 번역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현명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고집한다.’ &lt;br /&gt;
&lt;br /&gt;
그는 관광부로 출장을 갔을 때 그것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수도원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도 적용되는 성공의 비결” 이라고 말한 다음, ‘자신에게 던져진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확장하라’는 말과 ‘아니요, 하지만’보다 ‘네, 그리고’ 라는 말을 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amp;lt;br&amp;gt;“어리석은 자는 자존심에 얽매입니다. 늘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요. 이는 남을 속이거나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생활에 밝은 사람은 겸손하지요.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즉 비판이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협력합니다.”&lt;br /&gt;
&lt;br /&gt;
p. 147&lt;br /&gt;
&lt;br /&gt;
“2006년 중반쯤 내 학생이던 젊은 은행원들이 일제히 TV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훌륭한 젊은이로 지금은 금융경제 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연착륙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lt;br /&gt;
&amp;lt;br&amp;gt;켈리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단정했다. 부동산 거품은 연착륙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품을 부풀리는 가장 확실한 요소는 사람들의 기대감이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이 영원히 상승하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순간, 그들은 부동산이 얼마나 무서운 장기투자인지 깨닫고 신속하게 시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즉시 시장은 붕괴하고 만다. 부동산 붐의 끝은 붕괴라는 얘기다. 켈리는 자신의 제자들이 TV에 출연해 금융 전문가 노릇을 하면서 엉터리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amp;lt;br&amp;gt;검색을 통해 켈리는 아일랜드 노동력의 5분의 1 이상이 현재 주택 건설업에 고용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흥미롭게도 아일랜드 건설업은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팽창한 상태였다(정상적인 경제의 경우 10퍼센트 미만). 아일랜드는 해마다 영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택을 새로 지었는데, 주택을 제공할 인구는 영국이 아일랜드보다 15배나 많았다. &amp;lt;br&amp;gt;켈리는 1994년 이후 더블린 주택의 평균 가격이 50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더블린의 일부 지역에서는 임차료가 구입 가격의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lt;br /&gt;
&lt;br /&gt;
pp. 176~178&lt;br /&gt;
&lt;br /&gt;
돌이켜보면 그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결정은 이상하다 못해 자멸적으로 보인다. 소수의 금융인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1000억 유로에 가까운 빚을 졌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짓을 했다. 그들의 부채는 분명 개인적인 것이었음에도 아일랜드 국민은 그것이 마치 나라의 부채인 것처럼 상환할 책임을 졌다. 2년 동안 그들은 끽소리 못 하고 불가능한 짐을 지고 허덕여왔다. 더구나 2008년 9월 29일 이후에 이루어진 정책 결정은 모든 국민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옭아맸다. &amp;lt;br&amp;gt;2009년 1월, 아일랜드 정부는 앵글로 아이리시 뱅크를 국유화하고 340억 유로에 이르는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손실액을 떠맡았다. 2009년 말, 그들은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의 아일랜드판인 국가 자산 관리 공사(NAMA, National Asset Management Agency)를 설립했지만, 미국 정부와 달리 끝까지 손실을 떠맡아 아일랜드 은행들로부터 800억 유로에 이르는 쓰레기 같은 자산을 매입했다. &amp;lt;br&amp;gt;단 한 번의 결정으로 아일랜드는 침몰했다. 내가 레니한에게 그것에 대해 묻자 그는 마치 대화에 부적합한 주제라도 되는 듯 짜증을 냈다. 그는 그것이 좋은 결정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아일랜드의 금융 시장 규칙은 영국의 법률을 본뜬 것으로 채권자는 영국의 법률 아래 일반 예금자와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다시 말해 아일랜드 은행 채권 소유자를 구제하지 않고 예금한 일반 대중을 보호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었다.&amp;lt;br&amp;gt;어디서 들어본 듯한 얘기가 아닌가. 미국의 재무장관 행크 폴슨(Hank Paulson) 역시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킨 것은 용감하고 원칙적인 행위가 아니라 파멸적인 행위였음을 깨달은 뒤, 법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amp;lt;br&amp;gt;두 경우 모두 법을 존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거짓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선순위 채권 소유자에게도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다. 모건 켈리의 설명을 들어보자. &amp;lt;br&amp;gt;“선순위 채권 소유자들은 정부에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정부는 국민을 징집할 수도 있고 사지로 보낼 수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amp;lt;br&amp;gt;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30일, 레니한은 은행의 부채를 보증하기 위해 메릴린치와 똑같은 주장을 폈다. 즉, ‘금융위기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금융 시장에 아일랜드 은행에 대한 대출은 곧 아일랜드 정부에 대한 대출이라고 알려라. 그러면 투자자들은 안심할 것이다.’ 이것이 레니한의 생각이었다. 그 누가 아일랜드 정부의 신용을 의심할 것인가? &amp;lt;br&amp;gt;몇 달 후, 은행의 손실이 너무 커져 정부를 파산시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일자, 레니한은 정부가 개인 투자자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시했다. 즉, 은행 채권을 저축 은행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손실을 떠맡지 않으면 예금자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amp;lt;br&amp;gt;그런 주장에 대해 채권을 소유하지 않은 저축 은행들로부터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정부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선물을 베푸는 것에 반대했다. ‘귀도 포크스’(Guido Fawkes)라는 금융 관련 폭로 블로그는 외국인 채권자 목록을 입수했다. 그 목록에는 독일 은행과 프랑스 은행, 독일 투자펀드, 골드만삭스가 포함되어 있었다(그렇다. 아일랜드인은 골드만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amp;lt;br&amp;gt;아일랜드는 분명 은행 손실로 파산했지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듬해 여름까지도 내게 여러 차례나 “아일랜드는 자금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 정부는 이듬해 6월까지 부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한 현금을 은행에 비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깨닫지 못했다. &amp;lt;br&amp;gt;사실 아일랜드는 2008년 9월 이후부터 갈수록 심하게 채권자들에게 휘둘려왔다. 이제 정부 소유가 된 은행은 파산을 막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에서 850억 유로에 달하는 단기대출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레니한은 재무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유럽 연합의 압력으로 IMF를 불러들이고 종합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이게 될 터였다.&lt;br /&gt;
&lt;br /&gt;
p. 213&lt;br /&gt;
&lt;br /&gt;
주차장으로 은폐한 그 벙커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명패만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에 벙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베를린 거리는 잘 꾸며놓은 성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amp;lt;br&amp;gt;개인적으로 책임을 덜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뉘우치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독일인이 조상들의 죄를 그토록 떠들썩하게 표현하는 까닭은 그것이 더 이상 개인적이거나 혹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물론 모두가 학살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amp;lt;br&amp;gt;만약 어떤 화성인이 그 역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베를린에 나타난다면, ‘유태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떻게 이곳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하며 궁금해할 것이다. 사실 독일에는 유태인이 거의 없거나 드물다. 베를린의 아메리칸 아카데미 소장 게리 스미스는 보다 현실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amp;lt;br&amp;gt; “독일인은 유태인을 거의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유태인은 거리가 먼 존재지요. ‘유태인’ 하면 그들은 먼저 희생자들을 떠올립니다.” &amp;lt;br&amp;gt;독일인은 희생자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더 유난스럽게 그들을 기념한다.&lt;br /&gt;
&lt;br /&gt;
pp. 225~226&lt;br /&gt;
&lt;br /&gt;
이들은 골드만삭스의 프롭 트레이딩과 월스트리트의 다른 대형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에 역배팅을 하려는 영악한 헤지펀드를 위해 공들여 설계한 베팅의 먹이가 될 사람들이었다. 뢰티그는 IKB의 포트폴리오가 2005년 100억 달러에서 2007년 200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말했다.&amp;lt;br&amp;gt; “매입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마 그 액수는 더 커졌을 겁니다. 그들은 시장 붕괴했을 때도 여전히 매입하고 있었죠. 300억 달러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amp;lt;br&amp;gt;2007년 중반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모든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월스트리트의 여러 인사가 내게 말했듯 ‘전 세계’의 마지막 채권 매입자들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고집 센 독일인이었다. IKB가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로 1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지 않은 것은 오로지 시장이 기능을 멈춘 덕분이었다. 어떤 사건, 어떤 사실, 어떤 정보도 그들의 투자 방향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amp;lt;br&amp;gt;외형상 IKB의 독일인 채권 트레이더들은 시티그룹, 메릴 린치, 모건 스탠리의 무모한 트레이더들과 비슷했다. 그들 역시 어리석은 베팅을 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그들이 전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의 위험을 모른 체함으로써 자기 회사를 무너뜨렸지만, 그들 자신은 그 거래로 돈을 벌었고 대부분 그에 따른 해명을 요구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은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고도 돈을 벌었으며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독일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1년에 대략 10만 달러를 받았고 상여금도 기껏해야 5,000달러 정도였다. 이처럼 독일의 은행원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은행을 파산시킨 대가를 쥐꼬리만큼 받았는데, 이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트레이더들과 달리 독일 대중에게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 IKB의 전 CEO 슈테판 오르자이펜(Stefan Ortseifen)은 징역형을 받았고(이후 집행 정지됨) 은행으로부터 봉급 80만 5,000유로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lt;br /&gt;
&lt;br /&gt;
pp. 253~260&lt;br /&gt;
&lt;br /&gt;
===— 미국 안의 그리스 사태, 캘리포니아===&lt;br /&gt;
주지사 소환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중에 〈터미네이터 3&amp;gt;가 개봉되었다. 그때 문득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amp;lt;br&amp;gt; “갑자기 정치에 마음이 끌리더군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난 제이 레노(Jay Leno, 미국 ABC방송 &amp;lt;투나잇 쇼&amp;gt; 진행자 — 옮긴이)에게 출마하겠다고 말했죠. 그리고 2개월 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amp;lt;br&amp;gt;해변을 벗어나 평면 도로를 달리던 그는 4차선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 이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amp;lt;br&amp;gt;사람들이 내게 물었어요.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참모들은 누구인가? 난 계획도 없었고 참모도 없었죠. 제이 레노한테 갈 때까지 출마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amp;lt;br&amp;gt;그는 뜻하지 않게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는 정부가 해결책이라기보다 오히려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부는 주민보다 정치인이나 다른 공무원들을 위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슈워제네거는 미국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행동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담한 결정을 내렸고 대가를 받고 청탁을 들어주는 일이 없었으며 반대자를 공정하게 대우했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신속하게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amp;lt;br&amp;gt;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자신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한 보기 드문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어긋나는 의제를 추진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즉각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그의 전 수석보좌관 수잔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amp;lt;br&amp;gt;“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죠. 하지만 그는 늘 상관없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한 일 중 90퍼센트는 좋은 결과를 얻었죠.” &amp;lt;br&amp;gt;하긴 평생 민주당원으로 살아온 수잔을 고용한 것도 공화당원 지사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amp;lt;br&amp;gt;임기 2년째로 접어든 2005년 중반, 그는 장기적으로 모든 주민에게 유익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단기적인 욕구를 버리도록 설득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캘리포니아 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했다.&amp;lt;br&amp;gt; “내게 충격적인 순간들이 있었지요. 교도관의 연금을 개혁하려 하자 갑자기 공화당원들이 일제히 결집해 반대를 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일은 되풀이해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그래요, 이건 최고의 아이디어군요! 그 안에 찬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찬성표를 던지면 어떤 이익집단이 내게 화를 낼 겁니다. 그게 내가 찬성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군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 가는데, 그들은 정치 생명이 위태롭다는 이유로 옳은 일을 마다했으니까요.” &amp;lt;br&amp;gt;결국 슈워제네거는 비장의 카드, 즉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2005년 11월, 4대 개혁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4대 개혁이란 정부 지출 제한, 선거구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 — 옮긴이) 금지, 공무원 노조의 선거 지출 제한 그리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전임교사가 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4대 개혁안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주 정부의 점점 심각해지는 재정 위기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투표에서 패배했고, 그는 임기 말까지 사실상 권력 누수에 시달렸다. &amp;lt;br&amp;gt;&amp;lt;캘리포니아 붕괴&amp;gt;(Califormia Crackup)라는 흥미로운 책은 이 문제를 좀 더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는 언론인이자 초당파적 싱크탱크인 조 매튜스(Joe Mathews)와 마크 폴(Mark Paul)인데, 그들은 슈워제네거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amp;lt;br&amp;gt;캘리포니아 주는 극히 당파적인 선거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대개는 당파적인 사람을 공직에 선출하며 그들이 새로운 조세 제도를 시행하거나 규모가 큰 지출을 결정하려면 의회에서 3분의 2의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 만약 공통적인 의제가 생길 경우, 주 정부는 주도적으로 유권자의 힘을 빌려 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기 제한을 감안하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최대한 경멸을 조장할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비선출직 공무원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오래 근무하므로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정치인에 대한 주민의 혐오감은 깊어진다. 마크 폴이 말한 대로 ‘경멸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선출한 사람을 최대한 경멸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amp;lt;br&amp;gt;마크는 깊이 살펴보면 그러한 상황은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amp;lt;br&amp;gt;“모든 여론조사를 보면 주민들은 서비스를 원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민들은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얻고 있다.” &amp;lt;br&amp;gt;정부를 경멸한다고 주장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빚을 지게 되었다. 2011년에 캘리포니아의 일반 주민은 수입이 4만 3,000달러인데 비해 부채는 7만 8,000달러였다. 지도자들은 짧은 임기일망정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취임하지만, 이내 그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mp;lt;br&amp;gt;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 정치의 문제는 개인적이며, 제도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정치를 초월해 지도자가 독립적으로 주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는 슈워제네거의 등장은 최고의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amp;lt;br&amp;gt; “주지사 소환 자체는 새로운 정부, 새로운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이었다. 슈워제네거는 임기 중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공화당원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민주당원처럼 굴기도 했다. 그는 최대한 의회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없을 경우 그는 의원들을 가리켜 계집애 같은 사내들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런 다음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의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amp;lt;br&amp;gt;&lt;br /&gt;
===— 미래를 저당잡히다===&lt;br /&gt;
슈워제네거의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주지사로서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근로자 보상제도를 개혁하고 공개 예비 선거를 치를 수 있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의회가 아닌 공정한 위원회가 선거구를 정하게 했다. 그러나 주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고 지출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사실상 모두 패배했다. &amp;lt;br&amp;gt;임기 첫해에 슈워제네거는 지출을 삭감하려 했지만 삭감할 수 있는 것은 정부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항목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해 임기 말에 그는 공화당 의원 네 명을 설득해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절대 다수를 확보한 뒤, 소폭의 세금 인상안을 간신히 통과시켰다. 그를 도와준 공화당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의석을 잃었다. &amp;lt;br&amp;gt;2003년 7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그는 자신에게 주 정부의 재정 문제를 바로잡을 권한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2011년 25퍼센트 미만의 지지율에다 바로잡은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amp;lt;br&amp;gt; “나는 상식에 따라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전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를 소환한 것은 유권자였고 나를 선출한 것도 유권자였습니다. 그러니 주지사 임무를 수행할 도구를 건네주는 것도 유권자여야 하겠지요. 그런데 유권자들은 그 도구를 빼앗아가더군요.” &amp;lt;br&amp;gt;슈워제네거의 경제 담당 보좌관 데이비드 크레인은 우울한 재정 통계 수치의 긴 목록을 작성했다. 예컨대 슈워제네거가 사임할 때 주 공무원들의 연금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취임할 때보다 두 배나 늘어나 있었다. 주 정부가 공무원에게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액수와 당장 지급할 수 있는 액수의 공식적인 차이는 대략 1,050억 달러였다. 그것은 회계상의 조작일 뿐 실제 수치의 절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크레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amp;lt;br&amp;gt; “2011년에 주 정부는 공무원의 봉급과 복지 혜택을 위해 320억 달러를 직접 지출할 예정인데, 이는 지난 10년에 걸쳐 65퍼센트가 상승한 수치입니다. 반면 고등교육에 대한 주 정부 지출은 5퍼센트 감소하고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는 단 5퍼센트 상승했죠. 공원과 오락시설도 약간 감소했습니다. 전체 예산에서 급속히 상승하는 고용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amp;lt;br&amp;gt;&lt;br /&gt;
크레인은 정부에 대해 특별히 적대감이 없는 평생 민주당원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그 수치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2010년 주 정부는 3만 명 미만의 교도관과 다른 교도소 시설 직원에게 60억달러를 지출했다. 마흔다섯 살에 교정직에 근무하기 시작한 교도관은 5년 뒤 봉급에 가까운 연금을 받고 은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공무원은 주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가석방 심사 담당 정신과의사다. 2010년에 그는 83만 8,706달러를 벌었다. 교도소에 60억 달러를 지출한 그 회계연도에 고등교육, 즉 학생 67만 명이 있는 서른세 개 캠퍼스에는 겨우 47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30년에 걸쳐 주 예산 가운데 캘리포니아 대학을 위한 몫은 30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1980년에는 한 학생이 수업료로 연간 776달러를 지불했지만 2011년에는 1만 3,218달러를 지불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캘리포니아 주의 장기적인 미래가 희생을 당하고 있었다. &amp;lt;br&amp;gt;이런 일련의 사실과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접한 보통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년간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를 지낸 슈워제네거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뜻대로 정치를 펼치지 했음에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amp;lt;br&amp;gt; “그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린 멋진 시간을 보냈죠! 물론 좌절할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같은 삶을 원하죠. 난 특이한 상황에서 선출되었고 특이한 상황에서 떠났을 뿐입니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이처럼 떼를 써서는 안 되지요.” &amp;lt;br&amp;gt;특이한 상황이란 끝없이 지속되어온 재정 위기를 뜻한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인터넷 거품 뒤에 파산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고 주택 거품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물러났다. &amp;lt;br&amp;gt;그가 캘리포니아 경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처음 알아챈 것은 2007년 중반이었다. 예산 협의를 마무리한 그는 비록 거짓이긴 했지만 예산이 균형을 이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치에 도달했다. 그때 한 보좌관이 그에게 그달의 세수입이 예상보다 적다는 경고를 날렸다. &amp;lt;br&amp;gt;“갑자기 그달의 세수입이 3억 달러나 부족했습니다. 아차, 싶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amp;lt;br&amp;gt; 그 직후 그는 백악관을 방문해 늘 그렇듯 낙관적인 연설을 했다. &amp;lt;br&amp;gt;“마지막에 그 친구가 내게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밖에 나가 떠들어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주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죠. 딱 한마디 하더군요. ‘수치를 몇 가지 살펴봤는데 문제가 추해질 겁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는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았어요.” &lt;br /&gt;
&lt;br /&gt;
p. 283 &lt;br /&gt;
&lt;br /&gt;
그런 협상 과정에서 그들은 미래에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은연중 암시한다. 그들이 그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결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낙관주의는 때로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을 보상해주는 묘한특성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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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04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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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개)&lt;/p&gt;
&lt;hr /&gt;
&lt;div&gt;읽은 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정리. 일일이 타이핑하기 귀찮아서 구글의 OCR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ㅎㅎ&lt;br /&gt;
&lt;br /&gt;
원제는 Moonwalking With Einstein이고,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이라는 제목으로 전에 나왔다가 새로 디자인 바뀌어서 나옴.&lt;br /&gt;
&lt;br /&gt;
[[image:Bookeins.png]]&lt;br /&gt;
&lt;br /&gt;
===11===&lt;br /&gt;
(Prologue)&lt;br /&gt;
기억술의 핵심은, 우리 뇌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기 쉬운 &lt;br /&gt;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억할 내용을 상대적으로 기억이 &lt;br /&gt;
잘 되는 시각 이미지로 바꾸어 기억의 궁전에 심는 것이다. 이때 재미있고, &lt;br /&gt;
외설스럽고, 기괴한 이미지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 “무엇이든지 &lt;br /&gt;
사소하고,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 반대로 &lt;br /&gt;
아주 비열하고, 치욕스럽고, 놀랍고, 믿기지 않고, 또는 우스꽝스러운 &lt;br /&gt;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향이 있다.”&lt;br /&gt;
&lt;br /&gt;
위대한 기억술사와 그렇지 않은 기억술사는 어떤 장면을 머릿속에서 &lt;br /&gt;
신속하게, 그림 그리듯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를 수 있다. 정상급 &lt;br /&gt;
기억술사들이 자신들의 기억 능력은 창의력에 많이 기댄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략)&lt;br /&gt;
&lt;br /&gt;
===32===&lt;br /&gt;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lt;br /&gt;
똑똑한 사람과 만나면 꽤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철완 아톰과 &lt;br /&gt;
아인슈타인의 만남, 즉 세기의 근육과 두뇌가 만나 서로 보듬고 서 있는&lt;br /&gt;
모습. 내 책상머리에도 이런 자세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이런&lt;br /&gt;
역사적 만남이 실제로 있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lt;br /&gt;
돌아오자마자 검색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바로 찾을&lt;br /&gt;
수 있었다. 1977년에 태어난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라는 사람으로, &lt;br /&gt;
폴란드 비알라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맨손으로 약 419킬로그램을 들어 &lt;br /&gt;
올릴 수 있었다. 이건 두 살 된 내 조카 또래 아이를 한 번에 서른 명이나&lt;br /&gt;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힘이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능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lt;br /&gt;
‘지능 챔피언’,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등 갖가지&lt;br /&gt;
단어로 검색해 보았다. 검색해 보니, 뉴욕 시에 지능지수가 228인&lt;br /&gt;
사람이 있었고, 52명과 동시에 눈가리개 경기(눈을 가린 체스 기사 한 명이&lt;br /&gt;
눈을 가리지 않은 여러 명과 동시에 대결을 벌이는 경기 옮긴이)를 한 헝가리&lt;br /&gt;
출신 체스 기사도 있었다. 또 200자리나 되는 수의 23제곱근을 암산으로 &lt;br /&gt;
50초 만에 푼 인도 여성, 4차원 루빅큐브를 빠르게 맞춘 사람도 &lt;br /&gt;
있었다. 그 밖에도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천재라고 불려도 &lt;br /&gt;
전혀 손색없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똑똑한 정도는 힘의 세기보다 &lt;br /&gt;
계량화하기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lt;br /&gt;
&lt;br /&gt;
===33===&lt;br /&gt;
하지만 벤 프리드모어는 달랐다. 그는 순서를 뒤섞은 포커 카드 &lt;br /&gt;
한벌을 32초 만에 순서대로 암기할 수 있었다. 5분 안에 아흔여섯 가지&lt;br /&gt;
역사적 사실을 날짜대로 암기하기도 했다. 또 원주율 값을 5만 자리까지 &lt;br /&gt;
알고 있었다.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이 평소에 깜박&lt;br /&gt;
잊어버리는 것을 다시 찾거나 만회하느라 1년 365일 중 40일을 &lt;br /&gt;
낭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벤 프리드모어가 잠시 실업자였다는 것을&lt;br /&gt;
접어 두고 본다면,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분명하다.&lt;br /&gt;
&lt;br /&gt;
===34===&lt;br /&gt;
독서라는 것이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lt;br /&gt;
방편이라고 한다면, 나처럼 한나절 만에 책 한 권 뚝딱 읽고 내용이나&lt;br /&gt;
요점을 깊이 새겨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 두는 것만큼&lt;br /&gt;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lt;br /&gt;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있고, 기억해 두면 유용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lt;br /&gt;
잠깐이지, 며칠 지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다.&lt;br /&gt;
책꽂이를 보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를 책이 수두룩하다.&lt;br /&gt;
&lt;br /&gt;
===53~56===&lt;br /&gt;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lt;br /&gt;
1928년 5월 어느 날, 젊은 기자 S가 러시아의 &lt;br /&gt;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R. 루리야의 연구실에 찾아가 자신의 기억력을 &lt;br /&gt;
시험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물론 자진해서 찾아가지는 않았고, &lt;br /&gt;
직장상사가 보내서 간 것이다. 신문사 편집장이던 그의 상사는 매일 아침 &lt;br /&gt;
편집회의에서 취재를 위해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lt;br /&gt;
기자들에게 속사포처럼 불러 줬다. 모든 기자가 수첩에 받아 적느라 정신&lt;br /&gt;
없었지만, 딱 한 사람은 예외였다. S는 멀뚱히 듣기만 한 것이다.&lt;br /&gt;
&lt;br /&gt;
하루는 편집회의 중에 S의 무심한 태도를 참다 못한 편집장이 그를&lt;br /&gt;
따로 불러 제발 소명 의식을 갖고 일하라고 충고했다. 내 목소리가 &lt;br /&gt;
꾀꼬리 소리라서 아침부터 목청껏 사람들 이름과 주소를 불러 준다고 생각하나? &lt;br /&gt;
관련 인물을 취재하지도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나? &lt;br /&gt;
주소도 없이 어떻게 찾아가겠나? 텔레파시로 접촉할 생각인가? &lt;br /&gt;
언론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받아 적는 습관부터 들이라며 대놓고 나무랐다.&lt;br /&gt;
&lt;br /&gt;
S는 자신을 꾸짖는 편집장을 우두커니 쳐다보면서 말이 끝나기를 &lt;br /&gt;
기다렸다가 아침 회의에서 그가 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lt;br /&gt;
읊었다. 기겁한 편집장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S는 나중에 자기 자신이&lt;br /&gt;
편집장보다 더 놀랐다고 고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누구나 &lt;br /&gt;
자기처럼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lt;br /&gt;
&lt;br /&gt;
루리야의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lt;br /&gt;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억력을 시험한 루리야는 ‘그는 자신이 &lt;br /&gt;
특별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무엇보다 자신의 기억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lt;br /&gt;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고 했다. 루리야는 S에게 숫자 목록을 주고 &lt;br /&gt;
암기해 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S는 70 자리나 되는 숫자를, 그것도 앞뒤로&lt;br /&gt;
자유자재로 되뇔 수 있었다. 루리야는 이렇게 기록했다. “단어나 아무&lt;br /&gt;
뜻도 없는 음절, 숫자나 소리를 말로 불러 주든 종이에 써 주든 뭔가를&lt;br /&gt;
기억하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내가 어떤 것을 제시하든 그는&lt;br /&gt;
3, 4초 정도 있다가 별 어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되뇌었다.” S의 기억력을&lt;br /&gt;
계속 시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실험을 계속 하는 &lt;br /&gt;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심리학자로서 많은 실험을 &lt;br /&gt;
했지만 S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갑자기 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솔직히&lt;br /&gt;
누가 보면 심리학자에게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억력 실험을 &lt;br /&gt;
그에게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었다.” 루리야의 기록이다.&lt;br /&gt;
&lt;br /&gt;
그래도 루리야는 그 뒤로 30년 동안 S를 연구해 이상심리학에서 &lt;br /&gt;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lt;br /&gt;
본 기억의 심리학』을 썼다. S는 수학에 관해 문외한이었는데도 복잡한&lt;br /&gt;
수학 공식을 암기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몰랐는데도 &lt;br /&gt;
이탈리아어로 된 시를 암송할 수 있었으며, 아무 뜻도 없는 음절까지 쉽게 &lt;br /&gt;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암기할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더 놀라운&lt;br /&gt;
것은 세월이 흘러도 그의 기억력이 결코 감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하지만 S의 기억력은 망각의 곡선을 따르지 않았다. 어떤 것을 외우든, &lt;br /&gt;
얼마나 많이 외우든, 얼마나 오래전에 외웠든 그는 방금 외운 &lt;br /&gt;
것처럼 정확하게 되뇌었다. 그는 16년 전에 외운 것까지 고스란히 기억하고 &lt;br /&gt;
있었다. 루리야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눈을 감고 앉아 잠시 &lt;br /&gt;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예⋯⋯. 이건 제가 당신 아파트에 &lt;br /&gt;
갔을 때 암기하라고 준 자료네요⋯⋯. 당신은 탁자에 앉아 있었고⋯⋯&lt;br /&gt;
갈색 정장을 입고 있었지요⋯⋯.’ 그러고는 마치 바로 전 실험에서 &lt;br /&gt;
암기하라고 준 자료를 되뇌듯 그때 외운 것을 정확하게 되뇌었다.” &lt;br /&gt;
&lt;br /&gt;
이 기록대로라면 S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었는지도 모른다.&lt;br /&gt;
이상심리학에서 S는 아주 독특한 예외로 취급된다. 하지만 직접 &lt;br /&gt;
기억술을 익힌 나로서는 S의 이야기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lt;br /&gt;
그가 아주 특이하긴 하지만, 그와 반대로 평범하고 쇠약하고 잘 잊는 &lt;br /&gt;
우리의 뇌가 그로부터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의 비상한 재능이&lt;br /&gt;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굳게 믿는다.&lt;br /&gt;
&lt;br /&gt;
===110===&lt;br /&gt;
&amp;lt;span style=color:red&amp;gt;에릭손에 따르면 전문 지식이란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lt;br /&gt;
일하며 획득한 광범위한 지식, 패턴에 기초한 검색, 계획 체제’다. &lt;br /&gt;
다른 말로 하면, 우수한 기억이란 전문 지식의 부산물이 아니라 전문 지식의 정수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121~122===&lt;br /&gt;
기억상실증을 앓으면서 EP에게 공간은 눈앞에 펼쳐지는 협소한 &lt;br /&gt;
범위로 한정됐다. 인간관계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로 &lt;br /&gt;
국한됐다. 그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불빛 한 점 밑에서 살았다. 매일 아침&lt;br /&gt;
눈을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라디오를&lt;br /&gt;
들었다. 하지만 침대로 돌아가 누우면 곧 자신이 아침을 먹었는지, &lt;br /&gt;
방금 일어났는지 항상 헷갈려 했다. 그래서 때로는 다시 아침을 먹고 &lt;br /&gt;
침대로 돌아가 라디오를 들었다. 아마 그러고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lt;br /&gt;
아침을 여러 번 먹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봐도 아주 잠깐씩 흥미를 &lt;br /&gt;
느낄 뿐, 자신이 한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lt;br /&gt;
역사 채널을 좋아했는데,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프로그램을 특히 즐겼다. &lt;br /&gt;
산책도 좋아해서 보통 오전에 짧게 여러 번 동네를 돌고, 가끔 45분&lt;br /&gt;
정도 되는 거리까지 가기도 했다. 뜰에 나가 신문을 읽지만, 지난 일에&lt;br /&gt;
대한 기억이 없는 그로서는 기사가 생뚱맞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아마&lt;br /&gt;
타임머신을 타고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을 &lt;br /&gt;
것이다. 기사 한 편을 끝까지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lt;br /&gt;
신문을 다 보고 나면, 대개는 신문에 실린 사진에 수염을 그려 넣거나&lt;br /&gt;
수저를 올려놓고 테두리를 따라 그리는 등 낙서를 즐겼다. 부동산 시세를 &lt;br /&gt;
볼 때면 매번 놀라워했다.&lt;br /&gt;
&lt;br /&gt;
기억이 없는 EP는 시간관념도 없었다. 그에게 의식은 물줄기가 &lt;br /&gt;
아니라 생기자마자 증발해 버리는 빗방울 같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lt;br /&gt;
벗기거나 시간을 바꿔 놓으면, 그는 정말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을 것이다.&lt;br /&gt;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상상할 수 없는&lt;br /&gt;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망각의 늪에 빠져 영원한 현재를 사는 그에게는&lt;br /&gt;
근심거리, 걱정거리도 없었다. 이웃에 사는 딸 캐럴은 이렇게 말했다.&lt;br /&gt;
“아버지는 항상 행복해하세요. 정말 행복하시죠. 스트레스 받을 일이&lt;br /&gt;
없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아요.” EP는 오히려 만성 기억상실증 덕에 일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lt;br /&gt;
&lt;br /&gt;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스콰이어가 물었다.&lt;br /&gt;
&lt;br /&gt;
그는 뭔가 계산이라도 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잠시 뒤에 말했다. “음, 쉰아홉인가 예순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lt;br /&gt;
가물가물하네요. 기억력은 괜찮은데 가끔 사람들이 뜬금없는 질문을 해요. 당신도&lt;br /&gt;
제 나이 또래 같아 보이는데, 아닌가요?” &lt;br /&gt;
&lt;br /&gt;
스콰이어는 그의 나이를 알면서도 그냥 “예, 맞습니다.” 하고 넘어갔다.&lt;br /&gt;
&lt;br /&gt;
===132===&lt;br /&gt;
기억을 체계화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수면이 중요한 &lt;br /&gt;
구실을 한다. 한 시간 동안 쳇바퀴를 돈 쥐는 잠결에도 똑같이 한 시간 &lt;br /&gt;
동안 쳇바퀴를 돈다. 쳇바퀴를 돌 때 나타나는 신경 발화 패턴이 잘 때도 &lt;br /&gt;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꿈은 실제 생활에서 겪은 일을 초현실적으로 &lt;br /&gt;
재구성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경험이 장기기억으로 &lt;br /&gt;
서서히 굳어 가면서 나오는 부산물이 바로 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lt;br /&gt;
&lt;br /&gt;
===136===&lt;br /&gt;
EP는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lt;br /&gt;
실존적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가 공포에서 벗어날 &lt;br /&gt;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를 잡고 흔들면서 말해 주고 &lt;br /&gt;
싶었다. “당신은 아주 희귀한 기억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지난 50&lt;br /&gt;
년의 기억이 모조리 지워졌어요. 아마 채 1분도 안 돼서 이 대화도 잊을 &lt;br /&gt;
거예요.” 나는 그를 엄습할 공포, 찰나의 깨달음, 눈앞에 잠깐 나타났다 &lt;br /&gt;
사라질 공허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공허감은 옆을 지나는 차들과 &lt;br /&gt;
멀리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lt;br /&gt;
&lt;br /&gt;
===150===&lt;br /&gt;
기억의 궁전이라고 해서 진짜 궁전이거나 건물일 필요는 없다. S의&lt;br /&gt;
것처럼 어떤 마을을 지나는 도로일 수 있고, 철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lt;br /&gt;
역사일 수 있으며, 천문학의 12궁이나 신화에 나오는 동물일 수도 있다. &lt;br /&gt;
크든 작든, 실내든 실외든, 실존하는 것이든 가상의 것이든 상관없다. &lt;br /&gt;
중요한 것은, 한 장소가 다음 장소와 잇닿아 있어야 하고, 눈에 선할 &lt;br /&gt;
만큼 아주 친숙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lt;br /&gt;
네 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 스콧 해그우드는 기억 저장소로 건축&lt;br /&gt;
전문 잡지 『건축 다이제스트』에 소개되는 호화 주택을 썼다. 말레이시아의 &lt;br /&gt;
기억술사인 입 스위 추이 박사는 5만 7,000 단어를 수록한 1,774&lt;br /&gt;
짜리 『옥스퍼드 중영사전』을 통째로 암기하기 위해 자기 몸의 각 부위를 기억의 궁전으로 썼다. 기억의 궁전은 기억해야 하는 것의 종류에&lt;br /&gt;
따라 원하는 만큼 지을 수 있다.&lt;br /&gt;
&lt;br /&gt;
===170===&lt;br /&gt;
무엇을 기억하는가는 인격과 직결됐다.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비결이 지난 &lt;br /&gt;
경기들을 학습하고 숙지하는 것이듯 삶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비결은 옛&lt;br /&gt;
문헌들을 학습하는 것이었다.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때 대처할 방법에&lt;br /&gt;
대해 기억 말고 믿고 의지할 데가 있을까? 내가 책을 머릿속에 &lt;br /&gt;
집어넣으려고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독서와 학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lt;br /&gt;
문헌을 제대로 학습하려면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18세기 초 네덜란드의 &lt;br /&gt;
시인 얀 루이켄은 ‘머리에 새겨 넣은 책 한 권이 책꽂이에 쌓아 둔&lt;br /&gt;
책 1,000권과 맞먹는다’고 했다.&lt;br /&gt;
&lt;br /&gt;
===209===&lt;br /&gt;
맥락을 이해할 만큼 정교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지 &lt;br /&gt;
않는 이상 컴퓨터는 ‘The stuffy nose may dim liquor’ (코가 막히면 술&lt;br /&gt;
맛이 나지 않는다)와 ‘The stuff he knows made him lick her’ (그가 비밀을&lt;br /&gt;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lt;br /&gt;
&lt;br /&gt;
===243~246===&lt;br /&gt;
새로운 능력을 학습하는 사람의뇌를 fMRI로 촬영해 보면 &lt;br /&gt;
단계마다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다른 것을&lt;br /&gt;
확인할 수 있다. 임무를 자동적으로 수행함에 따라 이성적 추론을 &lt;br /&gt;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는 떨어지고 다른 부위는 활성화된다. &lt;br /&gt;
이것을 ‘오케이 플래토’라고 한다. 오케이 플래토란 계속 연습하던 것을 &lt;br /&gt;
어느 순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하는 수준이다. 임무가 &lt;br /&gt;
자동적인 것, 즉 무의식적인 것이 되면서 더는 발전하지 않는다.&lt;br /&gt;
&lt;br /&gt;
우리가 하는 것들이 대부분 어느 순간에는 오케이 플래토에 도달한다. &lt;br /&gt;
10대에 운전하는 법을 배워 조금 시간이 흐르면 신호 위반과 큰 &lt;br /&gt;
사고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다. 아버지가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 &lt;br /&gt;
아버지는 40년 동안 골프를 쳤는데도 전혀 진전이 없다. 40년 동안&lt;br /&gt;
핸디캡이 한 타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실은 &lt;br /&gt;
아버지도 오케이 플래토에 이른 것이다.&lt;br /&gt;
&lt;br /&gt;
초기에 심리학자들은 오케이 플래토가 개인이 타고난 능력의 상한선을 &lt;br /&gt;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우생학자이자 탐험가인 프랜시스 골턴은 &lt;br /&gt;
1869년에 쓴 『유전하는 천재』라는 책에서 사람이 정신적으로나&lt;br /&gt;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큰 벽에 부딪치는데,&lt;br /&gt;
이 벽은 ‘학습이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lt;br /&gt;
주장을 보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에릭손과 그의 동료 심리학자들은 실험 과정에서 골턴의 &lt;br /&gt;
논리와 반대되는 경우를 계속 발견했다. 그들은 골턴의 벽이 선천적 &lt;br /&gt;
한계와는 관련이 없고 우리 자신이 설정한 만족도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lt;br /&gt;
&lt;br /&gt;
전문가는 판에 박힌 일에도 초지일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lt;br /&gt;
점에서 일반인과 구분된다. 에릭손은 전문가들의 이런 태도를 ‘주도면밀한 습관’이라고 &lt;br /&gt;
부른다.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 중의 최고만 연구한 그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lt;br /&gt;
어느 정도 같은 발전 양식을 발견했다. &lt;br /&gt;
그들은 ‘자동화 단계’로 진입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다음 세 가지를&lt;br /&gt;
꾸준히 실천한다. 자신의 기술에 집중하고, 항상 목표를 지향하며, &lt;br /&gt;
결과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인지 단계’에 &lt;br /&gt;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lt;br /&gt;
&lt;br /&gt;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연습 시간에 연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하는 &lt;br /&gt;
경향이 있는 반면, 프로 연주자들은 곡의 특정 부분이나 난해한&lt;br /&gt;
부분에 연습을 집중한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피켜 선수들은 연습 시간에 &lt;br /&gt;
평소 실수가 잦은 점프만 연습하지만, 평범한 선수들은 벌써 완벽하게 &lt;br /&gt;
숙달한 점프를 계속 연습한다. 주도면밀한 습관을 들이는 것은 &lt;br /&gt;
원래 어려운 일이다.&lt;br /&gt;
&lt;br /&gt;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것에 정통하고 싶을 때 연습 시간의 양보다는 &lt;br /&gt;
연습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실 체스에서 &lt;br /&gt;
바이올린과 농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문 분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lt;br /&gt;
그 분야에 얼마나 오래 종사했는가와 성과 수준은 이렇다 할 인과관계를 &lt;br /&gt;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홀컵 대신 깡통을 갖다 놓고&lt;br /&gt;
퍼팅 연습하는 것을 좋은 훈련 습관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무리 &lt;br /&gt;
좋은 습관이라도 주의 깊게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lt;br /&gt;
없다. 좋은 습관을 길들이고 발전하려면 실수를 돌아보고 고칠 것이&lt;br /&gt;
있으면 고쳐야 한다.&lt;br /&gt;
&lt;br /&gt;
(중략)&lt;br /&gt;
&lt;br /&gt;
어떤 것에 정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연습하는 동안 그것을 어느 &lt;br /&gt;
정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동화 단계로 &lt;br /&gt;
넘어가 무의식적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타자에서 오케이 플래토를 &lt;br /&gt;
피하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lt;br /&gt;
방법은 현재의 타자 속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빨리 치도록 자신을 &lt;br /&gt;
다그치는 것, 그리고 일부러 실수하는 것이다. 타자수들에게 평소 그들의&lt;br /&gt;
타자 속도보다 10~15퍼센트 정도 빠르게 단어를 보여 주면서 타자하게 &lt;br /&gt;
한 실험이 있다. 처음에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이&lt;br /&gt;
지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낸 그들은 이를 극복하고 단어가 눈에&lt;br /&gt;
들어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타자할 수 있었다. 자동화 단계에서 벗어나&lt;br /&gt;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지 단계로 되돌아감으로써 그들은 오케이 &lt;br /&gt;
플래토를 극복했다.&lt;br /&gt;
&lt;br /&gt;
===247===&lt;br /&gt;
전문가들은 이렇게 &amp;lt;red&amp;gt;즉각적인 피드백&amp;lt;/red&amp;gt;을 통해 자기 능력을 더욱 &lt;br /&gt;
발전시켜서 오케이 플래토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lt;br /&gt;
&lt;br /&gt;
===248===&lt;br /&gt;
어떻게 하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에릭손은 사람들이&lt;br /&gt;
원래 스스로 심리적 장벽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lt;br /&gt;
장벽을 깨려고 맘만 먹으면, 깨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lt;br /&gt;
&lt;br /&gt;
===295~296===&lt;br /&gt;
그가 말했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lt;br /&gt;
해서 저절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모르고는 &lt;br /&gt;
이해조차 할 수 없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이 알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lt;br /&gt;
가장 중요하다. 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붙잡는 거미줄과 같다. 붙잡는 것이 &lt;br /&gt;
많을수록 거미줄은 커진다. 거미줄이 커질수록 붙잡을 수 있는 것이 &lt;br /&gt;
많아진다.&lt;br /&gt;
&lt;br /&gt;
(중략) (학자들 중에는 아는 것은 많지만 이해 수준이 그에 못 미치는 사람이&lt;br /&gt;
있는가 하면, 나이 탓에 기억력이 떨어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많아도&lt;br /&gt;
통찰력은 여전한 노교수도 있다.) 그런데 기억과 지혜는 근육과 운동의 &lt;br /&gt;
관계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이 둘은 피드백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lt;br /&gt;
새로운 정보가 우리가 벌써 가지고 있는 정보망에 단단히 포착될수록&lt;br /&gt;
기억하기가 쉬워진다. 입력된 기억을 붙잡아 놓을 거미줄 연상이 많은&lt;br /&gt;
사람은 새로운 것도 쉽게 기억한다. 즉 우리는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lt;br /&gt;
더 많이 알 수 있다. 더 많이 기억하면 할수록 세상사를 잘 처리할 수 있다. &lt;br /&gt;
세상사를 잘 처리할수록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323===&lt;br /&gt;
대니얼을 대상으로 한 모든 실험은 귀무가설의 문제를 안고 있다.&lt;br /&gt;
귀무가설이란, 대안으로 수립된 가설들이 거짓으로 입증될 경우 참이&lt;br /&gt;
되는 작업가설이다. 즉 대니얼이 서번트가 아니라면 그는 평범한 &lt;br /&gt;
사람이라야 한다. 하지만 정작 시험이 필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lt;br /&gt;
서번트가 사실은 훈련된 기억술사일 수도 있다는 대안 가설이나 가능&lt;br /&gt;
성이다.&lt;br /&gt;
&lt;br /&gt;
===404===&lt;br /&gt;
타고난 능력에서 시작해 훈련으로 정점에 도달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최근 인터넷 구루들은 카밀로를 네트워크 시대의 역사적 선구자로 본다. 이들은 가장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의 궁전인 인터넷과 맥, 윈도우즈의 운영 체제가 이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맥과 윈도우즈의 폴더와 아이콘이 카밀로의 기술 원리를 차용한 것으로 본다. Peter Matussek (2001), “The Renaissance of the Theater of Memory”, Paragrana 10, no.1, pp. 202~334&lt;br /&gt;
&lt;br /&gt;
===?===&lt;br /&gt;
암산에 대해 조사하다가 우연히 스티븐 스미스라는 심리학자가 쓴 The Great Mental&lt;br /&gt;
Calculators: The Psychology, Methods, and Lives of Calculating Prodigies Past and Present(1983)&lt;br /&gt;
라는 놀라운 책을 알게 됐다. 스미스는 암산 천재들의 뇌가 보통 사람들의 뇌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암산 능력은 계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서 비롯한 것일&lt;br /&gt;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계산과 묘기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장애가 없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묘기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동기가 있는 사람만 묘기를 배울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간 계산기라고 할 수 있는 조지 패커 비더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누구든 암산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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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3개)&lt;/p&gt;
&lt;hr /&gt;
&lt;div&gt;&lt;br /&gt;
Timothy Gowers (지은이), 박기현 (옮긴이) | 교우사(교재) | 2013-03-02&lt;br /&gt;
&lt;br /&gt;
얼마 전에 읽은 ‘수학이 필요한 순간’&amp;lt;ref&amp;gt;김민형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18-08-03&amp;lt;br/&amp;gt;&lt;br /&gt;
양장본 | 328쪽 | 130*197mm | 425g | ISBN : 9791186560785&amp;lt;/ref&amp;gt;보다 훨씬 더 좋은 책이다.&lt;br /&gt;
&lt;br /&gt;
===2=== &lt;br /&gt;
이러한 반대 의견에 ― 그중 일부는 분명히 다른 것들보다 더 심각한데 ― 비추어 볼 때, 계산과 거기서 나오는 예측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한 가지 접근법은 가능한 많은 반대 의견을 고려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나 훨씬 더 합리적인 대책은 정반대이다. 즉 어느 수준의 정밀도가 필요한지 정한 다음 가능하면 단순하게 이에 맞추는 것이다. 어떤 단순화 가정이 답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작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면, 그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lt;br /&gt;
&lt;br /&gt;
===20~21===&lt;br /&gt;
체스에서 흑의 왕은 무엇인가? 이 별난 질문에 대처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은 약간 옆으로 피하는 것인 듯하다.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듯 체스판을 가리고 게임의 규칙을 흑의 왕에게 특히 주의를 기울여 설명하는 이상 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흑의 왕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의 존재 또는 그 내재적 본질이 아니라 게임에서 하는 역할이다.&lt;br /&gt;
&lt;br /&gt;
수학에서 종종 말하는 추상적 방법은 수학적 대상에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음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학적 대상은 곧 그것의 역할이다. 비슷한 슬로건이 언어철학에도 여러 번 출현했으며, 이런 슬로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에는 단지 차이만 있다’라고 하였고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단어의 의미는 언어에서 그의 용법이다’라고 하였다(추가 참고 도서를 참조하라). 또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구호인 ‘한 명제의 의미는 그것의 검증방법이다’도 있다. 철학적 이유로 내 말이 탐탁지 않다면, 내 말을 독단적 선언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사실은, 내가 보이고자 하는 것처럼, 고등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lt;br /&gt;
&lt;br /&gt;
===39===&lt;br /&gt;
그 개념들을 구체화하여 이해하려고 하면 수수께끼같이 느껴지겠지만, 그것들이 &#039;&#039;&#039;무엇인가&#039;&#039;&#039;를 알려고 고민하지 말고 느긋하게 추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불가사의하지 않게 된다.&lt;br /&gt;
&lt;br /&gt;
===73===&lt;br /&gt;
다시 한번 우리는 무한을 포함하는 명제는 근사에 관한 더 복잡한 명제를 표현하는 편리한 방식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더 시사하는 바가 많을 수도 있는 또 다른 단어로 ‘극한’이 있다. 무한 소수는 유한 소수 수열의 극한이고, 순간 속도는 점점 더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재어 계산한 근사치의 극한이다. 수학자들은 종종 ‘극한에’ 또는 ‘무한에’ 무엇이 벌어지는지 말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이 말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말하라고 하면 수학자들은 대신 근사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lt;br /&gt;
&lt;br /&gt;
===77===&lt;br /&gt;
넓이에 관해 다른 식으로, 어쩌면 더 명확하게, 말할 수도 있다. 만일&lt;br /&gt;
경계가 곡선인 도형이 정확하게 넓이가 12 제곱센티미터이고, 내가&lt;br /&gt;
이를 정사각형 격자를 이용하여 보여야 한다면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 무한히 많은 정사각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12가 &#039;&#039;&#039;아닌&#039;&#039;&#039;&lt;br /&gt;
예를 들어 11.9를 나에게 제의한다면 정사각형 격자를 이용하여 그&lt;br /&gt;
도형의 넓이가 그 수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남은&lt;br /&gt;
넓이가 0.1 제곱센티미터보다 작을 정도로 충분히 세밀한 격자를&lt;br /&gt;
택하기만 하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넓이가 12라는 것을 증명하는&lt;br /&gt;
대신에 넓이가 12 외의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면&lt;br /&gt;
무한을 사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도형의 넓이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수이다.&lt;br /&gt;
&amp;lt;ref&amp;gt;매우 인상적이어서 옮겨둠&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26===&lt;br /&gt;
사람들은 대개 수학이 몹시 깔끔하고 정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lt;br /&gt;
학교에서는 수학 문제가 간결하게 서술되면 그 답도 짧고 대체로&lt;br /&gt;
간단한 수식으로 주어질 것이라 기대하게 만든다. 대학 수준에서&lt;br /&gt;
수학 공부를 계속하면, 특히 수학을 연구하게 되면 곧 진실을 알게&lt;br /&gt;
된다. 많은 문제에 있어 해에 대한 정확한 공식을 찾았다면 이는&lt;br /&gt;
기적과 같고 완전히 뜻밖의 일로 여겨질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lt;br /&gt;
그저 대략적인 근사치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사치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근사치들이 보기 흉하고 성이 차지 않게 보인다.&lt;br /&gt;
그러나 수학에서 가장 위대한 정리들과 가장 흥미로운 미해결 문제&lt;br /&gt;
중 많은 것을 계속 놓치지 않으려면 근사치들을 음미할 수 있어야&lt;br /&gt;
한다.&lt;br /&gt;
&lt;br /&gt;
===143~145===&lt;br /&gt;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수학자 상은 ― 어쩌면 매우 &lt;br /&gt;
똑똑하지만, 또한 독특하고, 옷을 이상하게 입고,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모호하며, 반 자폐적인 ― 호감을 주는 모습이 아니다. 몇몇 수학자는 어느 정도 이런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만, 이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수학을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lt;br /&gt;
사실 다른 모든 것이 같다면 아마 괴짜보다 여러분이 우위에&lt;br /&gt;
있을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 중 단지 극소수만 마침내 수학연구자가 된다. 대부분 그 이전 단계에서, 예를 들면 흥미를 잃어서,&lt;br /&gt;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여, 박사 학위는 취득했지만 대학에서&lt;br /&gt;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다른 길로 가고 만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lt;br /&gt;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데, 이런 다양한&lt;br /&gt;
단계에서 생존한 사람들 중 괴짜의 비율은 처음에 학생들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보통 더 적다.&lt;br /&gt;
&lt;br /&gt;
수학자에 관한 이런 부정적 묘사가 수학을 즐기고 잘했을 사람들의&lt;br /&gt;
의욕을 떨어뜨려 해를 끼쳤을 수 있지만, ‘천재’ 라는 말이 끼친 폐해는 숨어서 작용하며 더 심각하고 클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천재의&lt;br /&gt;
정의는 대강 다음과 같다. 천재란 쉽게 그리고 젊은 나이에 아무도,&lt;br /&gt;
혹시 한다고 해도 몇 년의 수련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lt;br /&gt;
사람이다. 천재들의 성취에는 마법같은 특성이 있다 ― 그들의 두뇌는&lt;br /&gt;
우리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동작할 뿐 아니라 작동 방식 자체가&lt;br /&gt;
달라 보인다. 매 1, 2년마다 그 학생을 가르칠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lt;br /&gt;
사람들이 몇 시간이나 걸려 푸는 문제들을 어김없이 몇 분 안에&lt;br /&gt;
풀어내는 학생이 캠브리지에 입학하고 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lt;br /&gt;
그저 뒤로 물러서서 경탄할 뿐이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이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 항상 연구자로 가장 성공하는 것은&lt;br /&gt;
아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전에 다른 전문 수학자들이 시도하였지만&lt;br /&gt;
풀지 못한 문제를 풀고 싶어한다면, 여러분에게 필요할 많은 자질 중에 &lt;br /&gt;
내가 위에서 정의한 천재성은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lt;br /&gt;
극단적인 예로, 앤드류 와일즈 (Andrew Wiles)는 (40을 갓 넘긴 나이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x, y, z\)와 \(n\)이 양의 정수이고 \(n\)이 \(2\)보다&lt;br /&gt;
크면,  \(x^n + y^n\)은 \(z^n\)과 같을 수 없다)를 증명하여 세계에서 가장&lt;br /&gt;
유명한 미해결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그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lt;br /&gt;
똑똑하지만, 내가 앞서 정의한 의미의 천재는 아니다.&lt;br /&gt;
&lt;br /&gt;
여러분은 그러면 그가 어떻게 어떤 신비로운 특별한 두뇌 능력없이도&lt;br /&gt;
그런 일을 해냈는지 물을 것이다. 대답은, 그의 성취가 범상치&lt;br /&gt;
않기는 하지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범상치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lt;br /&gt;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lt;br /&gt;
대단한 용기, 결단력, 인내, 다른 수학자들이 한 매우 어려운 연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수학 분야를 연구하는&lt;br /&gt;
행운, 그리고 예외적인 전략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궁극적으로 마지막 자질이 유별난 두뇌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 &lt;br /&gt;
수학에서 가장 심오한 공헌은 많은 경우 토끼보다 거북이가 이룬다.&lt;br /&gt;
수학자들은 성장하면서, 다른 수학자들의 연구에서, 또 수학을 생각하면서 보낸 많은 시간의 결과로 다양한 요령을 배운다. 자신의 &lt;br /&gt;
전문지식을 사용하여 악명높은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lt;br /&gt;
것은, 크게 보면 조심스러운 계획의 문제이다. 조심스런 계획이란&lt;br /&gt;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시도하기, (하기 힘든 결정인)&lt;br /&gt;
언제 포기할지 알기, 가끔씩 세부 내용을 어떻게든 채우기 전에 미리&lt;br /&gt;
논증의 큰 윤곽을 그리기 등이다. 여기에는 천재성과 양립할 수&lt;br /&gt;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재성에 자동으로 딸려오는 것은 아닌 일정&lt;br /&gt;
수준의 성숙함이 필요하다.&lt;br /&gt;
&lt;br /&gt;
===146&amp;lt;ref&amp;gt;‘왜 여성 수학자들이 그렇게 적은가?’에 대한 대답&amp;lt;/ref&amp;gt;===&lt;br /&gt;
게다가 수학적 재능이 있는 소녀들은 역할 모델이 거의 없어서 상황이&lt;br /&gt;
악순환된다. 그다음 단계에서 작용할 수 있는 사회적 요인은&lt;br /&gt;
수학은 대부분의 학문보다 더 어떤 한 일에만 마음 쓰는 것(single-mindedness)이&lt;br /&gt;
필요한데, 이는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모성과&lt;br /&gt;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에 소설가 캔디아 맥윌리엄(Candia&lt;br /&gt;
McWilliam)이 자녀 한 명을 키울 때마다 책 두 권을 희생했다고 말한&lt;br /&gt;
적이 있다. 그래도 적어도 그녀는 소설에서 손을 뗀 지 몇 년 지난&lt;br /&gt;
뒤에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수학은 몇 년 쉰다면 공부하던 &lt;br /&gt;
흐름에서 벗어날 것이고 수학으로 복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lt;br /&gt;
&lt;br /&gt;
===150===&lt;br /&gt;
그러한 학생들은 더 추상적인 접근으로부터 얻는 바가 있을 수 있다. &lt;br /&gt;
2장에서 지적했듯이, 거듭제곱에 관해 알아야할 모든 것은 몇 개의 &lt;br /&gt;
매우 간단한 규칙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고, 그 중에서 가장&lt;br /&gt;
중요한 것은 \(x^{a+b} = x^ax^b\)이다. 만일 이 규칙이 강조되었다면, 위의&lt;br /&gt;
실수가 애초에 덜 생길 뿐만 아니라 고치기도 더 쉽다. 실수를 한&lt;br /&gt;
어린이에게 간단하게 적절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을 잊었다고 말해주면 &lt;br /&gt;
된다. 물론, 이 \(x^3\)이 \(x\) 곱하기 \(x\) 곱하기 \(x\) 라는 기본적인 사실에&lt;br /&gt;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은 규칙에 대한 정당화라기보다&lt;br /&gt;
규칙의 결과로 제시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나는 학생들에게 추상적 접근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lt;br /&gt;
싶지 않다. 다만 교사는 그 결과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lt;br /&gt;
하고 싶다. 요점은 어떤 수학적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밀하게&lt;br /&gt;
말할 수 없어도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lt;br /&gt;
이것이 좋지 않은 생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용법이 때로&lt;br /&gt;
더 가르치기 쉽고, 사용법을 넘어서 그리고 초월하여 어떤 의미가&lt;br /&gt;
있다면, 종종 그 의미에 대해 저절로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lt;br /&gt;
&lt;br /&gt;
===152===&lt;br /&gt;
6. 수학에서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가?&lt;br /&gt;
&lt;br /&gt;
역으로 수학적 연구의 가능성에 관해 무엇이 그렇게 역설적으로&lt;br /&gt;
보이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미해결&lt;br /&gt;
문제들을 언급하였는데, 수학적 연구는 주로 그것들과 그에 유사한&lt;br /&gt;
것들을 풀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7장을 읽었다면 문제를 생성하는&lt;br /&gt;
좋은 방법은 명확하게 분석하기에 너무 어려운 수학적 현상을 택&lt;br /&gt;
하여 그에 관한 근사적인 서술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lt;br /&gt;
다른 방법은 6장 끝에 제시되었는데, 4차원 다양체와 같은 어려운&lt;br /&gt;
수학적 개념을 선택하면, 그에 관한 간단한 질문일지라도 대체로&lt;br /&gt;
쉽게 답할 수 없다.&lt;br /&gt;
&lt;br /&gt;
수학적 연구에 관하여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려운 문제가&lt;br /&gt;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 사실 불가능하게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lt;br /&gt;
내는 것은 아주 쉽다 ― 수천 명의 수학자를 열중하게 만들 적절한&lt;br /&gt;
난이도를 가진 문제가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수학자를 열중하게&lt;br /&gt;
하려면 그 문제들이 확실하게 도전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해결될 수&lt;br /&gt;
있다는 막연한 희망도 품게 만들어야 한다.&lt;br /&gt;
&lt;br /&gt;
===152~155===&lt;br /&gt;
7. 유명한 수학 문제가 어느 아마추어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까?&lt;br /&gt;
&lt;br /&gt;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하고 오해의 소지가 제일 적은 답은 솔직히&lt;br /&gt;
아니오이다. 전문 수학자는 아주 일찍 잘 알려진 문제에 관해 그가&lt;br /&gt;
생각한 그 어떤 아이디어도 그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었다는&lt;br /&gt;
것을 배운다. 어떤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이려면 왜 아무도 이전에&lt;br /&gt;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한다. 단순히&lt;br /&gt;
그 아이디어가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lt;br /&gt;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대체로 어떤 아이디어가 출현한다면 그저&lt;br /&gt;
갑자기 떠오르기보다 합당한 이유로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떠오른다면 왜 다른 이에게는 떠오르지 않아야 하는가?&lt;br /&gt;
더 그럴듯한 이유는 그 아이디어가 특별히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lt;br /&gt;
여러분이 배우고 소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다른 아이디어들과&lt;br /&gt;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다른 이들이 여러분 이전에&lt;br /&gt;
생각했을 확률을, 0 까지는 아니지만, 줄여준다.&lt;br /&gt;
&lt;br /&gt;
세계 곳곳에 있는 수학과에서는 꾸준하게 유명한 문제를 풀었다고&lt;br /&gt;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거의 예외 없이 이 ‘풀이’ 들은&lt;br /&gt;
그저 틀린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게 틀렸다. 일부는, 확실하게&lt;br /&gt;
오해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의 올바른 증명과는 너무 닮지 않아서&lt;br /&gt;
결코 풀이를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수학을 발표하는 관례를&lt;br /&gt;
조금이라도 따르는 것들은 논법이 맞는다면 수 세기 전에 발견되었을&lt;br /&gt;
매우 초보적인 논법을 사용한다. 이런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lt;br /&gt;
수학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독창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충분한&lt;br /&gt;
지식과 경험을 개발하기 위해 몇 년의 노력이 필요한지, 또는 수학을&lt;br /&gt;
할 때 협동 활동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이 없다.&lt;br /&gt;
&lt;br /&gt;
많은 연구 논문이 두 명 혹은 세 명의 저자로 되어 있긴 하지만, 내가&lt;br /&gt;
협동 활동이라 말할 때 수학자들이 큰 집단으로 연구한다는 뜻이&lt;br /&gt;
아니다. 그보다 내 말은 수학이 발전함에 따라 어떤 종류의 질문에&lt;br /&gt;
답하려면 없어서 안 될 새로운 기법이 발명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lt;br /&gt;
수학자 각 세대는 이전 수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한때 닿을 수 없는&lt;br /&gt;
것으로 여겨졌던 문제를 푼다. 여러분이 수학의 주류에서 고립되어&lt;br /&gt;
연구한다면 이러한 기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고, 그래서&lt;br /&gt;
여러분은 심하게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lt;br /&gt;
&lt;br /&gt;
이는 아마추어는 수학에서 결코 의미있는 연구를 할 수 없다는 뜻은&lt;br /&gt;
전혀 아니다. 사실 한두 사례가 있다. 1975년에 수학적 훈련을&lt;br /&gt;
거의 받지 않은 주부인 샌디에고의 마조리 라이스 (Marjorie Rice)는&lt;br /&gt;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Scientific American)에서 문제를 읽고 평면을&lt;br /&gt;
(정오각형은 아닌) 오각형으로 덮는 새로운 방법 세 가지를 발견&lt;br /&gt;
하였다. 그리고 1952 년에 58세인 독일의 학교 교장 쿠르트 헤그너&lt;br /&gt;
(Kurt Heegner)는 일세기 동안 미해결이었던 가우스의 유명한 추측을&lt;br /&gt;
증명하였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내가 말하는 바와 모순되지 않는다. 수학의&lt;br /&gt;
본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더러 있으며, 그리고&lt;br /&gt;
그러한 문제에는 기존의 수학적 기법을 아는 것이 특별히 도움이&lt;br /&gt;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오각형 덮기를 찾는 문제도 그런 종류였다. &lt;br /&gt;
전문 수학자가 재능있는 아마추어보다 그것을 풀기에 더 잘&lt;br /&gt;
갖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이스의 성취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는&lt;br /&gt;
아마추어 천문가의 성취와 꽤 유사하다 ― 그에 따르는 명성은 오랜&lt;br /&gt;
탐색에 대한 아주 당연한 보상이다. 헤그너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lt;br /&gt;
전문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고립되어 연구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lt;br /&gt;
모듈라 함수에 관하여 가르쳤다. 여기서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lt;br /&gt;
없다 ― 사실 그것은 보통은 학부 수학 과목으로서도 너무 상급으로&lt;br /&gt;
여겨진다.&lt;br /&gt;
&lt;br /&gt;
흥미롭게도 헤그너는 증명을 완전하게 통용되는 방식으로 상세하게&lt;br /&gt;
쓰지 않아서 논문이 마지못해 게재되었지만 여러 해 동안 틀린 것으로 &lt;br /&gt;
여겨졌었다. 1960년대 말에, 독립적으로 알란 베이커 (Alan&lt;br /&gt;
Baker)와 해롤드 스타(Harold Star)에 의하여 그 문제는 다시 풀렸고, &lt;br /&gt;
그때서야 헤그너의 연구가 조심스럽게 다시 조사되어 결국 옳은 &lt;br /&gt;
것으로 밝혀졌다. 유감스럽게도 헤그너는 1965년에 세상을 떠서&lt;br /&gt;
생전에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lt;br /&gt;
&lt;br /&gt;
===156~157===&lt;br /&gt;
==추가 참고도서==&lt;br /&gt;
수학의 중요한 측면들 중에 이 책에서 다를 여유가 없었던 것들이&lt;br /&gt;
다소 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려 한다. 수학의 역사에&lt;br /&gt;
관해서는, 이 책보다 더 많은 수학 지식을 요구하지만, 이 주제에&lt;br /&gt;
관한 모리스 클라인 (Morris Kline)의 권위 있는 세 권짜리 책,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수학적 사고’(Mathematical Thought from Ancient&lt;br /&gt;
to Modern Times, Oxford University Press, 1972)를 능가하는 책은 거의 &lt;br /&gt;
없을 것이다. 수학 지식이 일상 생활에서 좋은 판단을 하는데,&lt;br /&gt;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관한 책으로는 존 알렌 파울로스 (John Allen Paulos)의 ‘수학 문맹’ (Innumeracy, Viking, 1989)이 있는데 이 책은 이에 관해 고전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톰 코너&lt;br /&gt;
(Tom Korner)의 ‘계산의 즐거움’(The Pleasures of Counting, Cambridge&lt;br /&gt;
University Press, 1996)은 수학의 응용에 관하여 내가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재치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커런트 (Courant)와 로빈스(Robbins)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Mathematics?,&lt;br /&gt;
Oxford University Press, 2nd edn., 1996)는 또 다른 고전이다. 그 책은&lt;br /&gt;
이 책과 의도가 비슷하지만, 더 길고 조금은 더 형식적이다. 데이비스&lt;br /&gt;
(Davis)와 허시 (Hersch)의 ‘수학적 경험’(The Mathematical Experience,&lt;br /&gt;
Birkhiiuser, 1980)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에세이집으로서 철학적&lt;br /&gt;
성향을 띠고 있다. 나는 확률에 관하여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대신 이바르 에케란트 (Ivar Ekeland)가 무작위와&lt;br /&gt;
그의 철학적 함의에 관하여 ‘수학과 예측 곤란’ (Mathematics and the Unexpect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lt;br /&gt;
&lt;br /&gt;
21쪽에 있는 인용문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McGraw-Hill, 1959)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Phisosophical Investigations, Blackwell, 3rd edn., 2001)에서 온 것이다. 이 책과 ‘철학적 탐구’를 읽은 사람이라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나의 철학적 견해, 특히 추상적 방법에 관한 견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것이다.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n.,&lt;br /&gt;
1973)는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초보적인 사실에 관한 나의 몇몇&lt;br /&gt;
증명이 장황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1+1 = 2의 증명을 찾아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8장에서 논의한 수학에서의 여성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최근에 나온 책으로 클로디아 헨리언 (Claudia Henrion)&lt;br /&gt;
의 ‘수학 속의 여성 : 차이의 합’(Women in Mathematics: The Addition&lt;br /&gt;
of Difference, Indiana University Press, 1997)과 마가렛 머리 (Margaret&lt;br /&gt;
Murray)의 ‘수학자가 된 여성들 : 2차대전후 미국에서 직업적 정체성 만들기’(Women Becoming Mathematicians: Creating a Professional&lt;br /&gt;
Identity in Post-World War II America, MIT Press, 2000)가 훌륭하다.&lt;br /&gt;
&lt;br /&gt;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면 내가 이 책을 짧게&lt;br /&gt;
하려고 초고에서 마지못해 여러 절과 완전한 한 장을 통째로 들어냈다는 것을 알면 좋을 수도 있겠다. 그 자료 중 일부를 나의 홈페이지(http://www.dpmms.cam.ac.uk/~wtg10)&lt;br /&gt;
에서 찾아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span&amp;gt;&amp;lt;/span&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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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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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2개)&lt;/p&gt;
&lt;hr /&gt;
&lt;div&gt;노명우 저&lt;br /&gt;
&lt;br /&gt;
아주대학교 교수.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 아도르노와 쇤베르크』 『계몽의 변증법 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아방가르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와 ‘자전적 사회학’의 첫 번째 시도였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구경꾼의 탄생』 등이 있다. [http://www.yes24.com/24/goods/11141832?scode=032&amp;amp;OzSrank=1]&lt;br /&gt;
&lt;br /&gt;
출간일	2013년 10월 01일&amp;lt;br&amp;gt;&lt;br /&gt;
쪽수,무게,크기	304쪽 | 376g | 146*210*30mm&amp;lt;br&amp;gt;&lt;br /&gt;
ISBN13	9788997186341&amp;lt;br&amp;gt;&lt;br /&gt;
ISBN10	8997186345&amp;lt;b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26===&lt;br /&gt;
&amp;amp;nbsp;수치심은 우리에게 실제 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한다. 수치심은 자신에게 솔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에게 내밀한 것을 숨기라고, 위험한 것을 감추라고, 은밀한 것을 덮으라고 유혹한다. 또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사소한 것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빼버리거나 거짓으로 미화하게 하고, 빛과 그늘을 교묘하게 배치해 특징적인 성격을 이상적인 성격으로 수정하는 조형기법을 슬그머니 가르친다. 이런 달콤한 압력에 마음 약하게 굴복하는 자는 자기 묘사를 하지 못하고 반드시 자기숭배나 자기변명에 빠지게 된다&lt;br /&gt;
&lt;br /&gt;
Stefan Zweig(2005), 나누리 옮김,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필맥, 12&lt;br /&gt;
&lt;br /&gt;
&lt;br /&gt;
===31===&lt;br /&gt;
... 고백은 많은 경우 자신과 대면하는 성찰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연극적 자아가 스스로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하는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 우리시대의 가장 흔한 고백은 자신의 내면과의 조우가 아니라, 페르소나 즉 ‘연극적 자아’가 행하는 목적의식적 행동이다.&lt;br /&gt;
&lt;br /&gt;
===178~179===&lt;br /&gt;
&amp;amp;emsp;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곧 결혼생활로 들어갔다. 행복한 가정생활의 여러 새로운 환경이 나를 인생의 보편적 의의에 대한 탐구에서 떼어 놓았다. 생활은 완전히 가정과 아내, 자식들에게, 그리고 행복한 가정생활의 조건인 재산 증식에 기울어졌다. 이때 이미 나의 자아완성에 대한 욕망은 완전히 일반적, 보편적 완성에 대한 욕망, 즉 진보에 대한 욕망으로 변했고, 결국 나와 내 가족을 가능한 한 행복하게 하려는 단순한 욕망이 되어 버렸다.&lt;br /&gt;
&lt;br /&gt;
&amp;lt;톨스토이 인생록 참회록&amp;gt;, 육문사, 261&lt;br /&gt;
&lt;br /&gt;
===192===&lt;br /&gt;
&amp;amp;emsp;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적은 고통과 권태라는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적당히 멀어지게 되면 그만큼 다른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우리의 일생은 거의 이 양자의 중간에서 때로는 강하게 진동하고, 때로는 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격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lt;br /&gt;
&lt;br /&gt;
-쇼펜하우어 (권기철 옮김, &amp;lt;세상을 보는 방법&amp;gt;, 동서문화사, 234)&lt;br /&gt;
&lt;br /&gt;
===196===&lt;br /&gt;
혼자 사는 사람은 히키코모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히키코모리는 그가 은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람이다. 왕따가 타인들이 관계를 악용하여 만든 희생자라면, 히키코모리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자신의 은둔을 위해서 써먹고 착취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혼자 사는 것’은 관계의 희생양이 되는 것과는 관계가 없으며, 관계의 착취자가 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혼자라는 것’은 자율적이 된다는 뜻이다. &lt;br /&gt;
&lt;br /&gt;
===198===&lt;br /&gt;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039;&#039;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039;&#039;.&lt;br /&gt;
&lt;br /&gt;
===203===&lt;br /&gt;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가장 훌륭한 존재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수록, 즉 인간이 향락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 많을수록 그는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lt;br /&gt;
&lt;br /&gt;
-쇼펜하우어( &amp;lt;세상을 보는 방법&amp;gt;, 239&amp;gt;&lt;br /&gt;
&lt;br /&gt;
===210===&lt;br /&gt;
... 1인 가구는 인구통계학적 사실의 문제이지만,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은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채로 혼자 살게 된 사람은 때로는 가련하기만 하다. 단순히 부모의 잔소리가 지겨워서 독립에 대한 꿈을 키우다 마침내 혼자 살게 된 젊은이의 돼지우리를 방불케 하는 원룸은 혼자 사는 것과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전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211===&lt;br /&gt;
...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라고 또 한 사람의 현인 파스칼은 말했다.&lt;br /&gt;
&lt;br /&gt;
-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amp;lt;파리의 우울&amp;gt;, 민음사, 147&lt;br /&gt;
&lt;br /&gt;
===214===&lt;br /&gt;
지난 백 년 동안의 위대한 시인들은 누구인가? 콜리지, 워즈워스, 바이런, 셸리, 랜더, 키츠, 테니슨, 브라우닝, 아널드, 모리스, 로제티, 스윈번 - 여기서 멈춰도 될 것이다. 이들 중에서 키츠와 브라우닝, 로제티를 제외하곤 모두 대학출신이며, 이들 세 명 중 한창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긴 키츠만이 유복하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야만적이며 서글픈 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로서, 시적 재능이 내키는 대로 바람처럼 불어 가서 빈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의 진실성이 없다. 엄연한 사실로서, 이 열두 명 중에서 아홉 명이 대학 출신이었고, 이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건 영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엄연한 사실로서, 나머지 세 명 중에서 브라우닝은 알다시피 유복했다. 만약 그가 유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울’이나 ‘반지와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스킨도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지 못했더라면 ‘현대 화가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 아서 퀼러 쿠치경의 ‘글쓰기의 기술’, 버지니아 울프(2006), ‘자기만의 방’, 161-162에서 재인용&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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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탤런트 코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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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8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대니얼 코일 저 / 윤미나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06월 10일 | 원제 : THE TALENT CODE (2009)&lt;br /&gt;
&lt;br /&gt;
36 문제는 주어진 장비나 환경이 아니라 어떻게 ‘연습’하느냐에 달려있다&lt;br /&gt;
&lt;br /&gt;
97 연습만으로 완벽해질 수는 없다. 완벽한 연습을 해야 완벽해진다.&lt;br /&gt;
&lt;br /&gt;
100 인간이 하루이 할 수 있는 심층연습의 양에는 보편적인 한계가 있는 듯 보인다. 에릭슨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피아니스트, 체조선수, 소설가, 운동선수등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 대부분이 하루에 3~5시간정도 연습한다고 한다. 어떤종류의 스킬이든지 간에 대체로 같다.&lt;br /&gt;
&lt;br /&gt;
137 에릭슨은 딱 잘라 말한다. “천재라고 해서 보통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세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하는 강박적인 욕망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심리학자인 엘렌 위너는 그러한 욕망을 가리켜 ‘완벽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른다.&lt;br /&gt;
&lt;br /&gt;
304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런 두뇌개발dvd는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지 못한다. 실제로는 오히려 덜 똑똑하게 만든다. 2007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실시한 실험결과 8~16개월 된 아이들이 1시간 동안 두뇌개발dvd를 보았을 경우 어휘습득능력이 17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미엘린 모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두뇌개발dvd가 효과적이지 못한 이유는 심층연습을 유도하지 않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307 동기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캐롤 드웩은 세상 모든 부모에게 필요한 충고는 딱 두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아이가 무엇에 끌리는지 관심을 기울여라. 둘째 아이의 ‘노력’을 칭찬해 주어라. &lt;br /&gt;
---&lt;br /&gt;
Posted via email&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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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재능의 탄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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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베르너 지퍼 저 / 송경은 역 | 타임북스 | 2010년 04월 06일 | 원제 : Das Genie in mir&lt;br /&gt;
&lt;br /&gt;
38 재능을 평가할 때 순환논법에 따른 논리가 전개되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면, 그런이유로 재능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왜 재능이 있다고 하는지 묻는다면 그가 더 잘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재능이라는 개념이 일반적인 대화체에서 사용될 때는 이처럼 방법적으로 문제가 된다.&lt;br /&gt;
&lt;br /&gt;
82 사람이 발전하는 데에는 수많은 길이 열려 있는 듯 보인다. 이 길들은 꼬불꼬불하고 한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다 끝도 없이 길다. 하지만 아무리 고되고 험난할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목표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한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래도 가장 잘 보여주는 최선의 예측기준은 바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연구 논문들이 입증하고 있듯이 정신을 집중하여 연습과 훈련,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 수년 뒤 대가가 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142 사고능력을 개선시키는 운동으로는 수영이나 자전거타기, 조깅, 스케이팅, 산책, 댄스, 축구, 핸드볼, 배구, 테니스를 꼽았다. (중략) 모든 운동이 뇌에 좋은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칭이나 등장성운동(관절변화와 근육수축운동으로서 웨이트트레이닝에 속하는 운동), 파워 트레이닝은 인지능력을 높이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lt;br /&gt;
&lt;br /&gt;
202 사춘기가 되면 뇌의 감정을 주관하는 부분에서 이른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의 3분의 1이 없어진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했는데도 말이다. 같은 수준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이들의 뇌는 점점 더 극적이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lt;br /&gt;
&lt;br /&gt;
214 몇 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 천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취학 연령이 되기 전까지 제2언어를 습득한다면 유리한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게이머 빈 부이 탄은 세살 때 부모와 함께 하노이를 떠나 독일로 왔기 때문에 독일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한다.&lt;br /&gt;
 ‘조기’라는 나이제한은 2개 국어를 말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아이들 가운데 한 그룹은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를 사용하며 자란 경우였고, 다른 한 그룹은 나중에, 예컨대 열한 살이 되어서야 제2 언어를 접한 경우였다. MRI 촬영을 해 본 결과 두 그룹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조기에 배운 아이들은 뇌에서 언어를 관할하는 부분인 브로카영역에서 하나의 같은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 반면에, 나중에 배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므로 언어중추가 성장을 멈추기 전까지는 2개 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자연적으로 적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뇌가 각 언어마다 네트워크를 따로 활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lt;br /&gt;
 바젤 대학교의 신경해부학 교수인 Cordula Nitsch와 동료들이 알아낸 것처럼 놀랍게도 이러한 연관성은 3개 국어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연구진은 두 그룹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다. 첫 번째 그룹은 태어날 때부터 2개 국어를 먼저 습득하고 아홉 살 이후에 제3 언어를 익힌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은 제2언어와 제3언어를 한참 후에야 습득한 아이들이었다. MRI 촬영결과 두 번째 그룹 아이들은 세 가지 언어마다 각기 다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음이 나타났다. 하지만 첫 번째 그룹 아이들에게서는 하나의 네트워크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기에 다국어를 사용하는 양식으로 일단 맞춰지면 뇌는 그 밖에 다른 언어를 습득할 때마다 − 훨씬 나중에 그 언어를 습득하더라도 − 이중언어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실험들이 보여주듯, 이는 특히 문법적 규칙을 통달하는 데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 감각을 키우기란 풍부한 어휘력을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기억력은 얼마든지 더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니까.&lt;br /&gt;
 조기라고 하는 나이제한이 정확히 몇 살인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서너 살까지는 이중 언어 네트워크가 확실하게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여덟 살 때까지 외국어를 배우면 그래도 두 영역이 겹치는 부분, 다시 말해 부분적인 이중 언어 네트워크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중략) 하지만 표준어 한 가지만  사용하면서 성장한 사람에게도 가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런 이들도 노력과 동기부여 그리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 용의만 있으면 어느 정도 격차를 없앨 수 있다. 실험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나중에 배우는 사람은 1년 이상 외국에서 지내면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속도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251 에릭슨 교수는 경험이 있다고 저절로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학습에도 특정한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계획적인 훈련(deliberate practice)라고 표현했다. 이는 목표를 정해 놓고 하는 훈련으로서 초보자가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훈련시간이 걸린다. 이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지 파악하여 그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을 함으로써 매일 작은 진전이 있게 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동화에나 나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252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를 주고 싶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골프에서 더 이상 좋아지지 않고 그대로인 이유는 코스에서 공을 한 번만 칠 수 있기 때문에 실수 샷을 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이 때는 다시 칠 수 있는 곳에 가서 같은 위치에서 같은 클럽으로 5번, 10번, 20번 연습을 하면 스윙감각을 익힐 수 있고 교정도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256 취약 부분을 알고 노력한다면 특별한 결과가 따를 것이다. 이 노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의 감정을 어떻게 이겨 내는지를 분명하게 배우게 된다. 연습 자체에서 근원적인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lt;br /&gt;
&lt;br /&gt;
286 “배움에 대한 애정은 배워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훨씬 더 뛰어난 교사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 아인슈타인&lt;br /&gt;
&lt;br /&gt;
---&lt;br /&gt;
Posted via email&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C%9E%AC%EB%8A%A5%EC%9D%80_%EC%96%B4%EB%96%BB%EA%B2%8C_%EB%8B%A8%EB%A0%A8%EB%90%98%EB%8A%94%EA%B0%80%3F&amp;diff=16344</id>
		<title>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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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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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amp;lt;html&amp;gt;&lt;br /&gt;
&amp;lt;style&amp;gt;&lt;br /&gt;
div.xxx { padding:1em; border-radius:1em; background-color: rgb(219,232,251);}&lt;br /&gt;
&amp;lt;/styl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제프콜빈&lt;br /&gt;
Talent is overrated - Geoff Colvin&lt;br /&gt;
&lt;br /&gt;
72  새로 주어진 과제를 처음 해 볼 때는 IQ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더 잘 해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익숙해질수록 IQ와 성과의 상관관계는 점차 느슨해지다가 결국엔 아예 무관해진다.&lt;br /&gt;
&lt;br /&gt;
94  연습은 굉장히 힘든 활동이어서 일상생활의 패턴까지 바꾸게 했다. 최우수 집단과 우수 집단 학생들은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늦은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연습량의 대부분을 소화한 반면, 보통 집단 학생들은 대개 오후 늦게 연습했다. 즉 더 피곤한 상태에서 연습을 했다는 말이다. 한편 이들은 다른 면에서도 차이를 보였는데, 상위 두 집단은 보통 집단 학생들보다 수면시간이 길었다. 밤에 자는 시간만 긴 것이 아니라 낮잠 시간도 길었다. 연습량이 많을수록 회복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108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제대로 된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골프 연습장에서 또는 피아노 앞에서 단지 과거에 해오던 일을 반복하며, 이미 예전에 도달한 수준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lt;br /&gt;
&lt;br /&gt;
109 어떤 부분을 훈련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기술이다.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크로톤빌에 있는 GE의 경영 개발 센터를 이끌었던 노엘 티치Noel Tichy는 세 개의 동심원으로 이 기술의 핵심을 설명했다. 세 개의 동심원은 가장 안쪽부터 각각 ‘안전 영역comfort zone’, ‘성장 영역learning zone’, ‘공황영역panic zone’이라고 부른다. 성과 향상은 성장 영역에 포함된 활동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계를 넘어선 기술과 능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 영역에서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이 영역의 활동들은 이미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공황 영역의 활동들은 너무 어려워서 접근 방법조차 파악하기 힘들다.&lt;br /&gt;
 성장 영역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식별한 후에는 그 영역이 바뀔 때까지 스스로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것이 성장 영역을 식별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런 것들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lt;br /&gt;
&lt;br /&gt;
112 이 부담은 오래 견디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심하다. 어떤 유형이든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최대 4~5시간 정도이며, 대개 한 시간에서 한시간 반 단위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앞서 살펴본 베를린 연구에서 최우수 집단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보통 하루 세 시간 반 정도를 두세 번으로 나누어 연습했다. 다른 많은 최고 수준의 음악가들의 연습량 역시 최대 4~5시간을 넘지 않았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조차 연습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밝혔다.&lt;br /&gt;
&lt;br /&gt;
116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연습이 지루한 이유는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성한다는 것 자체가 고되고 단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127 흔히 사람들은 위대한 성과자들이 아주 오랫동안 연습해 왔고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해 왔으니까 그 일을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연습을 통해 습득한 것은 반사적으로 하지 않는 능력이다.&lt;br /&gt;
&lt;br /&gt;
140 재정 분석가 로라 리튼하우스Laura Rittenhouse는 기업 CEO들이 주주에게 보낸 연례보고서에서 ‘나’라는 단어를 사용한 횟수를 세어 기업의 성과를 예측하는 자료로 삼았다. 그녀는 이런 데서 얻는 자료들이 기업 성과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나’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자기중심적인 경영인은 성과도 나쁘다.)&lt;br /&gt;
&lt;br /&gt;
171 말로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도 프랭클린식 접근법이 유용하다. 우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보고 각 부분의 요점을 기록한다.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렸을 때쯤 요점을 기록한 노트를 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본다. 전체 내용이 완성되면 연습을 한 뒤 그 장면을 녹화해서 본으로 삼은 프레젠테이션과 비교해 보라.&lt;br /&gt;
&lt;br /&gt;
181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에서와 마찬가지로 핵심은 현재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비교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너무 기준이 높으면 의지가 꺾이고 너무 낮으면 진전을 보지 못한다.&lt;br /&gt;
&lt;br /&gt;
238 컨설팅 회시 나비센트Naviscent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인터넷 기업가 더글러스 듀인Douglas K. Duyne은 타임스에 마그라프와 같은 생각을 밝혔다. “직관적 통찰이라는 개념은 모든 것이 실제보다 더 쉽다고 믿고 싶어 하는 몽상가들의 꿈이다.”&lt;br /&gt;
&lt;br /&gt;
252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스물여섯 살(1928년)에 완성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폴 디랙Paul Dirac은 정확히 이런 관점에서 유명한 시를 남겼다. “나이는 당연히 모든 물리학자가 두려워해야 하는/ 몸서리쳐지는 뜨거운 열/ 서른 번째 해가 지나고 나면/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네.”&lt;br /&gt;
 하지만 아마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서른 전에 죽은 물리학자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존스는 그가 연구한 인물들이 1900년에는 평균23세에 자기 분야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기 시작했지만, 1999년에는 31세로 8년이나 차이가 났고, 물론 그들이 가장 큰 성과를 이룬 시기는 그보다 더 늦은 나이였음을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다른 혁신가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이유는 수명이 길어져서가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맨 처음 큰 기여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amp;lt;div class=xxx&amp;gt;257 이런 현실로 인해 일찍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경쟁 이득이 따른다. 모든 사람이 어릴 때 뛰어드는 분야에 늦게 뛰어든 사람은 영원히 그들의 등만 봐야 하는 서글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의 최상위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직업 연주자가 된 뒤에도 연습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주당 평균 30시간으로 연습량을 늘렸다. 이것이 1년 동안 누적되면 1500시간이 넘는다. 늦게 시작하는 모험을 감행하려는 사람은 계산기를 꺼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258 이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가르칠 적절한 교사를 찾았다. 이것이야말로 자식들이 발전하고 최고 수준의 인재로 발돋움하는 데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아이들의 첫 번째 교사는 대개 거주 지역 내에 있는 코치나 선생님, 친척 등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곧 이 아이들에게는 실력이 더 뛰어난 교사가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고, 그런 교사들은 대개 먼 곳에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교사를 물색해서 찾은 다음 아이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먼 거리를 오가며 많은 시간을 바쳐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자식과 부모, 양쪽 모두 상당한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관련 분야 최고의 교사에게로 옮겨 갔다.&lt;br /&gt;
&lt;br /&gt;
259 위의 부모들은 아이의 발전 정도에 따라 그에 맞는 교사를 선택하는 일 이외에 직접 아이를 지켜보면서 충분한 시간 동안 제대로 연습하는지 확인했다. 연습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연습이 뛰어난 성과의 핵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들이란 워낙에 연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와 그의 동료들은 왜 일부 청소년들이 계획된 연습과 위대한 성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중력 유지와 힘겨운 공부를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쉽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조사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가정환경에 초점을 맞추어 격려와 지원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평가했다. 격려 환경은 풍부한 학습 기회와 학업 성과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의미했고, 지원 환경은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따지지 않고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명확한 규칙과 의무를 의미했다. 학자들은 연구 대상자들의 가정환경을 ‘격려하는’과 ‘격려하지 않는’, 그리고 ‘지원하는’과 ‘지원하지 않는’이라는 구분에 따라 네 가지 조합이 가능하도록 분류했다. 네 가지 조합 중 세 조합에 속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습에 대한 관심도 및 열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머지 한 집단, 즉 ‘격려하는’ 및 ‘지원하는’ 환경에 속하는 학생들은 자기 공부에 훨씬 더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였으며, 열의도 많았다.&lt;br /&gt;
&lt;br /&gt;
268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다른 모든 분야에도 적용된다. 경영, 비행기, 조종,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구를 통해 뛰어난 성과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수록 속도와 일반적인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자기 전문 분야만큼만은 예외였다. 예를 들어, 노령의 피아노 연주자들을 조사한 결과 일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속도가 그들 나이대의 평균 수준으로 느려져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이런 증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자들은 화면에 나타난 질문을 보고 얼마나 빨리 버튼을 누르는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동작을 얼마나 빨리 하는지, 또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잘 조정할 수 있는지 측정했다. 이 모든 실험에서 반응 속도는 나이가 많을수록 느려졌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들 역시 화면에 나오는 문제를 보고 버튼을 누르는 동작처럼 피아노 연주기술과 거의 상관없는 실험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을수록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두드리거나 손가락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것처럼 피아노 연주와 연관이 있는 기술에서는 속도가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기술에서는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문 분야와 관련된 일이 주어졌을 때 뛰어난 성과자들은 다른 방면의 능력이 떨어진 이후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발휘했다.&lt;br /&gt;
 우리가 지금까지 위대한 성과의 본질에 관해 살펴본 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결국 탁월한 성과가 뛰어난 일반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뿐이다. 탁월한 성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각별한 노력으로 발전시킨 고유한 기술로 얻어진다. 따라서 노화로 인해 일반 능력의 기능이 떨어진다 해도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적 기술 능력까지 떨어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노화 때문에 전문적 기술 능력이 떨어진 사례도 많기 때문에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탠리 더러커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분야에서 짧은 성공을 거두고 이내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왜 누구는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고, 누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lt;br /&gt;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그들이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 계획된 연습에 있다. 수십 년의 경험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전문 분야라 해도 나이의 영향에 겨우 맞서는 정도로는 예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수많은 연구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건축가는 뛰어난 공간 능력spatial ability을 키워 왔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건축가들을 조사한 결과 나이가 들면서 공간 능력이 저하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뛰어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의도적으로 특정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한 연습이다. 고령의 나이인데도 뛰어난 실력을 유지하는 피아노 연주자와 일반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들을 비교해 본 결과, 아마추어 연주자들 중 일부는 경력이 40년이나 되었지만 계획된 연습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전문가들과 달리 그런 아마추어들은 분야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화로 인한 실력 저하로 고통스러워했다.&lt;br /&gt;
&lt;br /&gt;
&amp;lt;div class=xxx&amp;gt;282 시카고 대학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내재적 동기를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과 연결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연구에서, ‘몰입’이란 시간이 천천히 가고 즐거움이 커지며, 전혀 힘들지 않게 느껴질 만큼 어떤 일에 빠져든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런 ‘황홀감’은 자신이 도전하는 과업과 자기가 가진 기술이 잘 맞아떨어질 때 느껴지는 기분이다. 만약 과업이 너무 쉬우면 그 경험은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몰입을 경험해 본 사람은 한 가지 일을 달성하면 반드시 더 큰 도전 과제를 찾고, 몰입의 경험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기술 수준을 갖추려 한다.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은 자신의 현재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꿀어올리도록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획된 연습 과정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lt;br /&gt;
 몰입의 개념은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에 관한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연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 비춰볼 때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이론에는 작은 모순들이 존재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연습은 ‘즐길 만한 일이 아니다.’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따라서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 분야에서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종종 이와 정반대 경험을 한다고 보고했다. 레슬링 선수, 스케이트 선수, 축구 선수, 필드하키 선수, 격투기 선수를 조사한 결과 연습은 유희성 측정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였던 모니카 셀레스Monica Seles는 1999년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lt;br /&gt;
 이런 반응은 에릭슨의 연구에 참여한 바이올린 연주자들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연주자들은 연습을 꽤 끔찍한 일로 여겼다. 생각해보면 운동선수들이 연습을 즐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사회 활동이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연습은 사회 활동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우리는, 어쨌든 연습이 몇 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연습을 통해 그 사람의 내적 욕구가 채워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연습이 황홀감을 경험하는 몰입의 상태를 이끌어 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lt;br /&gt;
 확실히 연습하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심오한 일이 진행될 법도 하다. 과학이나 수학 같은 분야에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한 매혹은 뛰어난 학자들이 탐구에 매진하는 원동력이다. 벤저민 블룸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젊은 인재들 중 일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새로운 문제 해결법을 찾는 기쁨을 좋은 성적을 내거나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와 마주치고 그 해결책을 찾아낸 순간의 기쁨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lt;br /&gt;
 (중략)&lt;br /&gt;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비록 내적 동기가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성과자들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적 동기에 반응을 보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구조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 있을 때 거의 쉬지도 않고 일했다. 자칫하면 다른 연구팀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외적 동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일부는 창의성을 제약하지만 일부는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외적 동기는 꽤 효율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일은 창의성 향상에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기대는 창의성을 감소시키는 반면, 개인적인 피드백이 적절히 이루어지기만 하면, 애머빌의 표현을 빌자면 “건설적이고 비위협적이며 사람 중심이 아닌 과업 중심의 피드백”일 때, 창의성은 강화된다. 즉 자신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게 밀어주는 피드백은 효과적이다. 보통은 창의성을 억제하기 마련인 직접적인 보상에 대한 기대도 그것이 바람직한 유형의 보상 - 더 많은 시간, 자유, 또는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찾아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 - 일 때는 창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애머빌은 이런 발견들에 힘입어 자신의 가설을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여전히 가장 강력한 것은 내적 동기이고 사람을 통제하는 외적 동기가 창의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외적 동기는 매우 효과적이다.”&lt;br /&gt;
 창의성과 관련한 동기를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그것이 ‘위대한 성과 달성에 요구되는 힘겨운 과정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폭넓은 주제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외적 동기가 특정 환경에 유용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는 많다. (중략) 좀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특정 분야의 기술 습득에서 특히 초기 단계에는 외적 동기가 도움이 된다. 블룸의 연구 대상이었던 다양한 분야의 젊은 인재들도 자기 분야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는 외적 동기에 크게 의지했다. 그들의 부모들은 적절한 방법으로 유도해서 아이들이 연습을 하게 만들었다. 이때 부모들의 직접적인 압력이 아이들의 내적 동기로 작용하는 일이 많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연습을 시킬 때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으면 외출 약속 취소야.”가 아니라 “피아노를 팔아 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수영 연습에 안 가면 토용일 밤에 못 나갈 줄 알아.”라고 하기보다는 “팀에서 탈퇴시킬 거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이들이 피아노나 수영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 위협이 통했을 리는 없다.&lt;br /&gt;
 다른 외적 원동력들 역시 중요했는데, 그런 것들이 아이로 하여금 계획된 연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 애머빌이 제시한 효과적인 외적 동기와 완전히 일치했다. 코치나 교사의 피드백은 과제와 실력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 여러 교사들이 아이에게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 주고 성과를 주시했다. 발표회나 대회가 동기를 부여했는데, 좋은 성적을 얻거나 상을 받으면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성과에 따른 관심과 환호는 중요한 외적 동기로 작용했다.&lt;br /&gt;
 하지만 블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생들이 점점 자기 자신의 동기에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했다. 외적 동기도 여전히 영향을 미쳤다. 학생들은 공식적인 대회나 연주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확실하게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또한 이런 일들이 이 학생들을 다른 뛰어난 사람들과 하나로 이어주었고, 거기서 이들은 최고 성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을 것이다. 즉 이들의 동기는 단지 뛰어난 성과에 따르는 타인들의 환호가 아니라, 점점 최고가 되고자 하는 내적 원동력으로 바뀌었다.&amp;lt;/div&amp;gt;&lt;br /&gt;
&lt;br /&gt;
299 승수 효과를 일으키는 비슷한 방법 중 하나는 경쟁이 거의 없는 장소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래 아이들이 100명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사는 것이 1000명이 있는 마을에서 사는 것보다 수학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기가 훨씬 쉽다. 블룸의 연구에서 어린 성취가들의 대다수가 이와 비슷한 경험을 보고했다.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경쟁지대로 넘어가야만 자기만큼 잘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아노 연주자 중 한 명은 음악 영재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에 고립되어 있으면 정말 멋진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이런 경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더 실력을 갈고 닦아 나갈 동기를 키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을 전혀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환경에 살았다면 그런 동기를 키웠을까? 하워드 가드너는 아인슈타인과 스트라빈스키 등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대도시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들은 더 작은 환경에서 자신의 기술을 개발한 다음에 큰 무대로 나아갔다.&lt;br /&gt;
 정반대로도 승수 효과를 촉발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달성했는지에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또는 작은 지역에서 얻은 약간 괜찮은 정도의 성과가 남들로부터 칭찬을 유도해 더 강도 높은 연습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한다는 설명은 꽤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이 과정은 순환적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성과가 아니라 칭찬으로 그 순환고리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실제 실력에 상관없이 단지 잘한다는 칭찬만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성과 향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이 가정도 실현가능해 보인다. 블룸의 연구 대상자들이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지만 교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블룸은 “교사는 그 학생을 ‘특별한 학생’으로 대했고, 그런 대접을 받는 학생은 이를 매우 소중한 경험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런 학생들에게는 대부분 실제 증거와 상관없이 그들을 특별하다고 말해 주는 부모가 있었다. 즉 여기서도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요소가 승수 효과의 선순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그리고 어쨌든 해볼 만한 시도 아닌가.&lt;br /&gt;
&lt;br /&gt;
[[image:howtalent.jpg]]&lt;br /&gt;
&lt;br /&gt;
 저자가 포춘지 칼럼니스트라 그런지 각종 예시나 상황제시가 금융계 종사자나 경영자들로 되어있어 그 외 종사자들은 나름의 고민이 있어야 적용 가능할 듯하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뜻을 알 수 없는 직역투의 문장이 많다. 마지막 챕터(‘열정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는 일반론이지만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p.106 부터 목차로 나와 있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특성&lt;br /&gt;
 - 성과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설계된다.&lt;br /&gt;
 - 수없이 반복할 수 있다.&lt;br /&gt;
 - 끊임없이 결과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lt;br /&gt;
 -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다.&lt;br /&gt;
 - 별로 재미는 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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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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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죄와 속죄의 저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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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마지막 챕터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중에서.&lt;br /&gt;
&lt;br /&gt;
&lt;br /&gt;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한 번은 사소한 일로 내 얼굴을 때렸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지휘권 밑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그렇게 다루는 데 습관이 베어 있었다. 이 순간 내가 더없이 분명하게 느낀 것은 사회에 저항하는 오래된 나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개적인 반란 행위로 십장인 유스첵의 얼굴을 갈겼다. 나의 존엄성은 주먹질을 가한 그의 턱에 놓여 있었다. 그다음 결국 제압당하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이는 당연히 신체적으로 훨씬 나약한 나였고,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고통스럽게 매를 맞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용기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가 우리 자아의 모든 것이고 우리의 전 운명이 되는 삶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몸이었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굶주림과 내가 당했던 구타와 내가 가했던 구타속에서 말이다. 피골이 상접한 채, 때가 덕지덕지 앉은 내 몸은 나의 비참함이었다. 내 몸은 내려치기 위해 힘을 줄 때 나의 신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존엄성이었다. 신체적인 폭력 행위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분열된 인격을 복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구타를 통해 내가 되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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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는 언젠가 죽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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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2개)&lt;/p&gt;
&lt;hr /&gt;
&lt;div&gt;*56&amp;lt;br&amp;gt;나는 철저한 프로이트적인 관점을 지닌 아버지의 주치의에게 왜 10대 딸은엄마에게 그렇듯 비판적이냐고 물어보았다. 의사가 대답했다. “10대의 몸에는 호르몬 에너지가 미친 듯이 돌고 있는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엄마에 대한 분노로 표출됩니다. 딸은 자신이 가임기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가족이 자기를 더 존중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것 같아요. 가족의 영속은 이제 딸에게 달렸지요. 딸이 그 영역으로 들어옴과 맞물려 엄마는 그 영역을 떠납니다. 엄마와 딸의 분쟁을 놓고 가족이 의논을 한다면 아빠들은 틀림없이 딸 편을 듭니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누이에 대해 그런 입장을 취했던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니가 계속 집안을 호령했던 것 같은데.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딸 편을 들지요. 가족이 생산력 높은 여성을 우선 보호하도록 유전자가 몰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딸이 엄마에게 느끼는 분노는 가임 능력을 통해 얻은 권력의 맛과 아이 낳는 사람으로 지정된 데에 대한 부담감이 섞인 것입니다.” &lt;br /&gt;
*135&amp;lt;br&amp;gt;어떤 나이게 머물러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몇 살이기를 택하겠는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이도 높아진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람들은 27세라고 답하고, 25세에서 29세 사이는 31세, 30세에서 39세 사이는 37세, 40세에서 49세 사이는 40세, 50세에서 64세 사이는 44세, 그리고 64세를 넘은 사람들은 59세라고 대답한다.&amp;lt;br&amp;gt;&amp;amp;nbsp;우리의 지능지수는 18세에서 25세 사이에 가장 높다. 뇌는 25세에 최대 크기가 되고, 이후에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여 무게가 줄고 빈 공간이 액체로 채워진다. &lt;br /&gt;
*136&amp;lt;br&amp;gt;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로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 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위안이 필요하다면 지식적인 면을 생각하자. 어휘력은 20세일 때보다 45세일 때 3배 풍성하다. 60세의 뇌는 20세 때보다 정보를 4배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lt;br /&gt;
*143&amp;lt;br&amp;gt;미국의 철학자 니컬러스 머리Nicholas Murray는 말했다. ‘“30세에 죽었으나 60세에 묻혔다”라고 묘비에 써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생의 첫 30년은 삶은 사는 데 쓰이고, 이후 40년은 삶을 이해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는 숫자를 역전시켜서 말했다.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루소는 뭐라고 했을까.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같다. 10세에는 사탕에 휘둘리고, 20세에는 이성에, 30세에는 쾌락에, 40세에는 야망에, 50세에는 탐욕에 휘둘린다. 그 후에는 달리 남은 것이 없으니 지혜를 추구한다.’ &lt;br /&gt;
*151&amp;lt;br&amp;gt;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기이다. 50세는 노년의 청춘기이다’ &lt;br /&gt;
*209&amp;lt;br&amp;gt;에머슨은 말했다. ‘60세가 된 사람들이 일본인들처럼 할복해 죽는 게 유행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한느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계속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lt;br /&gt;
*215&amp;lt;br&amp;gt;토머스 핀천은 말했다. “소설의 ‘진지함’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가령 등장인물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또는 죽음이 가깝지 않을 때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 것인가.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젊은 작가들이 이런 주제를 다루는 일은 거의 없다. 습작을 쓰는 나이의 사람들은 그런 충고를 받아봤자 절실하게 느끼지 못해서일 것이다.” &lt;br /&gt;
*218&amp;lt;br&amp;gt;나이가 들면 각막이 누리끼리하게 변해서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푸른 계통의 색은 더 짙어보이고 노란 계통의 색은 더 밝아 보이며 보라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화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짙은 푸른색이나 보라색을 덜 사용한다. &lt;br /&gt;
*220&amp;lt;br&amp;gt;미국의 금융인이자 정치가 버너드 바루크는 85세에 말했다. ‘노인이란 언제나 나보다 15세 많은 사람을 말한다.’ &lt;br /&gt;
*221&amp;lt;br&amp;gt; 죽기 한 달 전, 97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아내에게 ‘세상을 떠나는 게 정말 싫소’라고 말했다.&amp;lt;br&amp;gt; 프랑스 학자 베르나르 드 퐁타넬Bernard de Fontanelle은 말했다. ‘존재를 지속하기가 다소 힘들다는 기분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100세에 죽었다. &lt;br /&gt;
*232&amp;lt;br&amp;gt;시야가 넓어지고 마침내 ‘그저 게임일 뿐’임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나는 아파했다. 아, 얼마나 아파했던가. 브루클린 범스라는 애정어린 별명으로 불렸던 나의 사랑하는 다저스는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다. 다저스가 연패를 하면 나는 신을 원망했다. 무한한 지혜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양키스 팬으로 만들지 않으셨나이까. &lt;br /&gt;
*235&amp;lt;br&amp;gt;보르쉬트 벨트 Borscht Belt&amp;amp;nbsp;: 미국 유대 극장에서 유행했던 코미디 양식으로, 자기비하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특징 &lt;br /&gt;
*249&amp;lt;br&amp;gt;기원전 44년에 키케로는 말했다. ‘아무리 늙은 사람이라도 1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기원전 43년에 죽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미국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말했다. ‘누구나 죽어야 하지만 나는 늘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에드워드 영은 ‘누구나 사람의 생명이 유한한 것을 알지만 누구나 자신을 빼놓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이런 문답이 있다.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주변에서 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lt;br /&gt;
*267&amp;lt;br&amp;gt;캘리포니아-어바인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마이클 로즈는 느지막이 번식한 초파리들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실험했다.(사람으로 치면 25세가 넘는 여성들만 아이를 낳게 하고, 그 딸들도 26세 이후에만 생식하도록 하여 여러 세대를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랬더니 초파리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조금씩 수명이 길어졌다. 지속적인 선택적 육종으로 탄생한 초파리들은 조상들보다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다. 로즈는 사람에게 비슷한 실험을 해본다면 열 세대 만에 기대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lt;br /&gt;
*269&amp;lt;br&amp;gt;‘인생은 늘 6대 5로 지는 도박이다’ - 데이먼 러니언(미국의 기자이자 작가) &lt;br /&gt;
*281&amp;lt;br&amp;gt;Elaine Scarry는 ‘The Body in Pain’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어 다른 대상들의 자리를 삼켜버린다. 아주아주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의 세상은 자기 몸에서 반경 60센티미터 안의 원으로 좁혀진다. 무엇을 먹었고, 배출에 어떤 문제가 있고, 통증의 진행 정도는 어떻고, 의자나 침대가 편하네 편하지 않네 하는 내용이 생각과 말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lt;br /&gt;
*284&amp;lt;br&amp;gt;테니슨의 시 ‘Tithonus’에서 티토노스는 불멸을 원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원히 늙는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티토노스는 죽고 싶다고 결정을 내린다.&amp;lt;br&amp;gt;&amp;lt;br&amp;gt;… 나를 놓아달라. 선물을 도로 가져가라.&amp;lt;br&amp;gt;사람이 타고난 제 족속과 달라지려고,&amp;lt;br&amp;gt;또는 모든 자에게 합당하게 내려진&amp;lt;br&amp;gt;운명의 관문을 벗어나려고&amp;lt;br&amp;gt;조금이라도 욕망할 필요가 있겠는가?&amp;lt;br&amp;gt;나를 풀어달라, 나를 땅으로 돌려달라. &lt;br /&gt;
*287&amp;lt;br&amp;gt;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말했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느님 권좌 앞에 나아갔겠는가. 죽음 앞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lt;br /&gt;
*289&amp;lt;br&amp;gt;다 빈치는 말했다. ‘나는 신통치 못한 업적을 남겨 신과 인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lt;br /&gt;
*296&amp;lt;br&amp;gt;나는 말 더듬는 버릇에 관해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은 사랑, 미움, 기쁨, 깊은 고통처럼 전형적이고 진정 중요한 감정들을 표현할 때에도 자의식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다. 적나라하게 감정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 아니고 그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더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먼저이다보니, 감정은 타인들에게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행복한 사람들의 소유일 뿐이지 내 것은 될 수 없으며, 솔직하지 못하게 돌려 표현할 수 있을 뿐이지 온전히 가질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amp;lt;br&amp;gt; &lt;br /&gt;
*315&amp;lt;br&amp;gt;랩 가수 아이스티는 말했다. ‘우리 인생은 물 위로 잠깐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가라앉는 것이다. 인간도 이 거대한 정글에 사는 한 동물일 뿐이다. 우리가 가진 많은 본능은 전부 동물적이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식량이 필요해서 남을 죽인다. (중략) 아이를 낳으면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아, 이러자고 내가 태어난 거구나”하고 깨닫는다. 인생은 정말로 짧고 나도 곧 죽을 테니까, 나 대신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을 다른 사람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저 다음 세대가 자랄 때까지 버티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lt;br /&gt;
*“죽음은 언제나 추해요. 언제나. 존엄한 죽음 따위는 없어요. 존엄하게 살 수 있을 뿐이지.” - ‘닥터하우스’중. (책의 본문이 아니라 ‘옮긴이의 말’중에서)&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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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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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개)&lt;/p&gt;
&lt;hr /&gt;
&lt;div&gt;박범신&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67&amp;lt;br/&amp;gt;&lt;br /&gt;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 &lt;br /&gt;
&lt;br /&gt;
191&amp;lt;br/&amp;gt;&lt;br /&gt;
사로잡고 싶어서 못살겠구나&amp;lt;br/&amp;gt;&lt;br /&gt;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는&amp;lt;br/&amp;gt;&lt;br /&gt;
애정의 나라 골짜기에&amp;lt;br/&amp;gt;&lt;br /&gt;
사향풀이 향기를 품는 금렵구(禁獵區)&amp;lt;br/&amp;gt;&lt;br /&gt;
—G. 아폴리네르(Apollinaire), ‘토끼’에서&amp;lt;br/&amp;gt;&lt;br /&gt;
&lt;br /&gt;
202&amp;lt;br/&amp;gt;&lt;br /&gt;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lt;br /&gt;
&lt;br /&gt;
393&amp;lt;br/&amp;gt;&lt;br /&gt;
너는 의젓한 어미 닭같이 동생들을 품고 있었다. 내 가슴이 한순간 요동쳤다. 너의 피가 양쪽으로 공평하게 흘러나가 네 동생들의 피와 뜨겁게 섞이는 것을 보았고, 동생들의 숨결이 껴안은 네 팔을 타고 흘러가 너의 가슴, 고동치는 숨결에 짙푸르게 고여드는 것도 나는 보았다. 그것은 일찍이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너는, 너희는 살아 있었고, 함께 있었다. 해는 더욱 찬란해졌다. 나는 비로소 그동안 네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이삿짐에 끼여 두 동생을 안고 있는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세상의 살아 있는 길로, 나아가는, 트럭 위의 너와 네 동생들이 얼마나 근사했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두 동생을 양팔로 싸안고 있는 너의 모습은 햇빛보다 환했다. 일상적 삶에 깃든 너의 참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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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경꾼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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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34개)&lt;/p&gt;
&lt;hr /&gt;
&lt;div&gt;윤성희 장편소설.&lt;br /&gt;
추천.&lt;br /&gt;
&lt;br /&gt;
&lt;br /&gt;
36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식구들은 오랫동안 간이 맞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너무 짜요.” “엄마, 이건 국이에요, 찌개에요?” “한 달 내내 된장찌개인 거 알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수학 삼십점 맞았을 때 내가 혼냈니? 그리고, 넌 문방구에서 그 뭐냐, 장난감 조립하는 거, 그거 훔쳤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봐.” 옆에서 말없이 밥을 먹던 할아버지가 도둑질을 했는데도 혼을 안냈어? 소리를 질렀다. “당신 돈 조금만 벌어왔다고 내가 잔소리한 적 있어요? 그러니 아무도 내게 잔소리하지 말아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식구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래도 장조림은 잘해요, 라고 중얼거리면서.&lt;br /&gt;
&lt;br /&gt;
44 작은삼촌은 관객이 별로 없는 운동경기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교 육상대회 같은 것들. 포환던지기나 장애물 달리기를 보면 쓸쓸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알 것 같다고 삼촌은 생각했다. 작은삼촌은 거실에 베개를 늘어놓고는 말했다. “한번 넘어봐.” 삼촌은 내가 세 발짝에 한 번씩은 넘어져서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할머니가 물었다. “조기교육.” 작은삼촌이 대답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베개를 넘어보려 했지만 베갯잇의 끝자락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는 할아버지가 쓰던 지압봉이 있었고, 거기에 이마를 부딪쳤다. 작은삼촌은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머니에게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어가며.&lt;br /&gt;
&lt;br /&gt;
80 외할머니는, 세상이 심심해요? 하고 취재를 온 기자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왜 신기한 거요?” 외할머니가 보기에는 뒤집힌 차에서 살아나는 것은 기적에 속하지도 않았다. 외할머니의 단골손님 중에는 트럭에 깔렸지만 뼈 하나 부러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부인이 교통사고가 나서 결혼 십 주년 기념으로 가려던 여행을 포기했는데, 묵을 예정이었던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일을 겪은 사람도 있었다. “시멘트 반죽에 빠졌던 사람 이야기도 해줄까요?” 외할머니는 시멘트 반죽에 빠져 죽다 살아난 남자의 이야기를 내게 세 번이나 들려주었다. 항상 혼자 와서 족발과 소주 두 병을 먹고 갔다고, 그렇게 십 년이나 드나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고, 외할머니는 말했다. 그 사람 좋아했어요?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lt;br /&gt;
&lt;br /&gt;
94 사실, 어머니는 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코를 골면서 자는 척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삼촌의 운동화를 몰래 버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말해주곤 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자기보다 더 커버린 동생을 보게 될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어머니는 그 느낌을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더이상 동생들이 자신의 신발을 물려신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장남의 심정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 심정과 비교할 수 있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쓸쓸하다는 감정이 맞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잠든 아버지의 발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lt;br /&gt;
&lt;br /&gt;
106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운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왔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남자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직장도 그만두었다. “그러니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식당 주인은 사고로 가운뎃손가락의 손마디가 잘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붕대에 감긴 아들의 손을 보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병원 로비였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이 엉덩이 흉터 보이지? 어릴 때 솥뚜껑을 깔고 앉았단다.” “그건 엉덩이잖아요. 전 손가락이고요.” 그러자 다시 바지를 입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당연히 니 손가락이 더 아프지. 하지만 내가 엉덩이를 데었을 땐, 세상 누구도 나보다 더 아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lt;br /&gt;
&lt;br /&gt;
175 저 멀리서 증조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도 그 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이 살짝 들리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면서 집에 가요,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심장이 멈추기 전에 집에 가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처녀 시절의 할머니 목소리와 똑같았다. 할머니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집에 가요, 였다. 그 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애를 할 때, 할머니가 술 취한 할아버지에게 자주 하던 말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210 외할머니는 보일러 온도를 24도에 맞춰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거위털이불을 덮었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생각하면서.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자 외할머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해, 라고 중얼거린 뒤에 외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은 평상에 앉아서 마당에 널린 빨래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보던 아홉 살 무렵에 써보고는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lt;br /&gt;
&lt;br /&gt;
250 슬픈 죽음이란 거의 비슷비슷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웃긴 죽음이란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253 나는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 새끼발가락이라니! 나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는 환자가 되고 싶었다. 눈물이 흘러도 깁스를 한 두 팔 때문에 그 눈물을 닦을 수 없도록. 나는 죽을 때까지 발가락이 낫지 않기를 빌었다. 뼈가 아물 때면 나는 부러진 발가락으로 담벼락을 걷어차곤 했다.&lt;br /&gt;
&lt;br /&gt;
265 작은삼촌은 자신이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 신었던 운동화를 빨았다. 칫솔로 운동화를 빨다가 삼촌은 그 칫솔이 아버지가 쓰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 애 발이 이렇게 자랐어. 형보다 발이 큰 아들을 둔 기분이 어때?’ 작은삼촌은 중얼거렸다. 삼촌은 밤새 드라이어로 운동화를 말렸다. 그리고 자고있는 내 머리맡에 운동화와 운동복을 두었다. 방을 나가기 전에 삼촌은 내 옆에 누워 보았다. 자신이 나보다 조금 더 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쪼그리고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채.&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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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하기 때문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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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2개)&lt;/p&gt;
&lt;hr /&gt;
&lt;div&gt;기욤 뮈소&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23 너는 왜 살아남았는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네가 살아남았는가? 네 자식과 아내, 부모가 아니고 왜 네가 살아남았는가?&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99 ‘지혜의 원숭이 세 마리’를 그린 그림. 세 마리의 원숭이 중에서 한 마리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한 마리는 귀를 가리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입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표한 그림이었다. 세 가지 금언을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따른다고 했다.&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119 내 고통은 나 자산에 대한 복수이다 - 알베르 코헨&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159&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추억들이 있다. 누군가 추억들에&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전기를 통하게 만들어 내 눈썹에 연결해 놓았다.&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추억을 떠올리기 무섭게 두 눈에 불이 붙는다.&amp;lt;br/&amp;gt;&lt;br /&gt;
- 마티아스 말지외&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227 택시 한대가 인도 옆으로 다가와 서자 니콜이 즉시 올라탔다.&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그럼 전화번호라도 알려 주시죠!”&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마크가 간청하듯 말했다.&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아마 전화번호부에 있을걸요.”&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니콜이 관심 없다는 듯 성의 없이 대답했다.&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난 당신 이름도 모르잖아요.”&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그것도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어요.”&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230&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마크: 사랑 없는 인생을 상상해 봐요.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하겠어요. 최소한 사랑을 하면 시간은 잘 지나가잖아요.&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니콜(체념한 듯): 시간이 가면 사랑도 지나가죠&amp;lt;br/&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269&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거든&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라&amp;lt;br/&amp;gt;&lt;br /&gt;
&amp;amp;nbsp;-아프리카 속담&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B%82%A8%EC%95%84_%EC%9E%88%EB%8A%94_%EB%82%98%EB%82%A0&amp;diff=16338</id>
		<title>남아 있는 나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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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8개)&lt;/p&gt;
&lt;hr /&gt;
&lt;div&gt;가즈오 이시구로&lt;br /&gt;
&lt;br /&gt;
24&lt;br /&gt;
물론 내 표정에는 충격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당혹감의 찌꺼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29 말하자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모두 같은 천에서 잘려 나온 사람들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146 우리 세대가 전 세대보다 덜 속물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더 이상주의적인 세대였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164 나는 「한 주에 두 번 혹은 더 자주」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듣는데&lt;br /&gt;
&lt;br /&gt;
&lt;br /&gt;
198 늪지대에서 꽤 먼 거리에 지평선을 군데군데 끊는 헛간과 농가의 형체들이 보이긴 했지만,&lt;br /&gt;
&lt;br /&gt;
&lt;br /&gt;
292~293  “스티븐스 씨,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른답니다. 그래요, 사실입니다. 집을 나온 게 이번까지 세 번째죠.”&amp;lt;br&amp;gt;&lt;br /&gt;
그녀가 잠시 입을 다물었고 나는 도로 맞은편 들판만 내다보고 서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amp;lt;br&amp;gt;&lt;br /&gt;
“스티븐스 씨, 당신은 지금 제게 남편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를 묻고 있는 것 같군요.”&amp;lt;br&amp;gt;&lt;br /&gt;
“그럴 리가요, 벤 부인, 내가 어떻게 감히…….”&amp;lt;br&amp;gt;&lt;br /&gt;
“어쨌든 꼭 답변해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스티븐스 씨. 당신도 말씀하셨듯이 이제 우린 오래도록 다시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요,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처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요. 그 옛날 달링턴 홀을 떠나올 때만 해도 제가 정말, 영원히 떠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답니다. 그저, 스티븐스 씨 당신을 약 올리기 위한 또 하나의 책략쯤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막상 여기로 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후 오랫동안 저는 무척이나 불행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고 전쟁이 지나가고 캐서린이 장성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남편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누구하고든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한테 익숙해지기 마련이죠. 남편은 자상하고 착실한 사람이에요. 그래요, 스티븐스 씨, 이제 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답니다.”&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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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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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18개)&lt;/p&gt;
&lt;hr /&gt;
&lt;div&gt;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lt;br /&gt;
-Jonathan Safran Foer&lt;br /&gt;
&lt;br /&gt;
108 언젠가는 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lt;br /&gt;
&lt;br /&gt;
109 저를 석방해 주신다면 착한 사람이 되어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살겠습니다.&lt;br /&gt;
&lt;br /&gt;
116&amp;lt;br&amp;gt;&lt;br /&gt;
내가 물었어. 당신은 괜찮아요?&amp;lt;br&amp;gt;&lt;br /&gt;
그가 썼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는 아침도 종종 있답니다.&lt;br /&gt;
&lt;br /&gt;
160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내 마음도 그녀를 따라갔어, 하지만 나는 내 껍질과 함께 남겨졌어, 그녀를 다시 만나야 했어, 왜 그래야만 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 욕망이 아름다웠던 거야,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잘못이 있을 수는 없는 거란다.&lt;br /&gt;
&lt;br /&gt;
164 &amp;lt;br&amp;gt;&lt;br /&gt;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 내가 말했다. “지난 엿새 동안 매일 너희 집에 갔었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너를 다시 만나야만 했어.” 그녀는 침묵을 지켰어, 바보짓을 해버린 기분이었단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잘못한 건 아니야,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어, 그렇게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사람은 처음 봤지, 하도 웃어서 눈물이 나더구나, 한번 눈물이 나더니 둑 터진 듯 점점 더 많이 흘렀어, 그러자 나도 웃기 시작했어, 더없이 깊고 완벽한 수치심에서, “난 네게 가던 길이었어,” 기왕 망신당한 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돼서, 내가 다시 말했어, “너를 다시 보고 싶었거든,” 그녀는 웃고 또 웃었어, “이제야 알겠어,” 그녀는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렇게 말했어, “무슨 말이야?” “지난 엿새 동안 네가 집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고.”&lt;br /&gt;
&lt;br /&gt;
200 전화가 거의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장난 전화 한 죄&lt;br /&gt;
&lt;br /&gt;
247 부끄러움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지. 수치심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느끼는 감정이고.&lt;br /&gt;
&lt;br /&gt;
256 순간들 사이의 빈틈으로 여러 해가 지나갔지.&lt;br /&gt;
&lt;br /&gt;
263 고양이들은 8층보다는 20층에서 떨어질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다. 8층 정도 높이까지 내려와야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뒤 몸의 힘을 빼고 자세를 바로잡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321 화장실에 가야 했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단다. 내 배설물 속에 널브러져 있고 싶었어. 나는 그래야 마땅해. 내 오물 속에서 뒹굴고 싶었어. 하지만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단다. 그게 바로 나야.&lt;br /&gt;
&lt;br /&gt;
356 동물은 자기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공포에 질려서 미친 듯이 난리를 친대요. 하지만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주 아주 침착해진대요.&lt;br /&gt;
&lt;br /&gt;
379 “당신이 떠난 건 용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돌아온 건 용서할 수 없어요,”&lt;br /&gt;
&lt;br /&gt;
425 내가 시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만 털어놓겠습니다. 당신은 내가 믿어도 좋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니까요. 나는 내 마음의 눈으로 우주를 관찰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가슴이 벅차도록 보람찬 삶이었습니다. 멋진 삶이었죠. 이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기원을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시인이라면 좋겠습니다.&amp;lt;br&amp;gt;&lt;br /&gt;
나의 영웅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바로 이렇다. 우리는 우리가 열 수 없는 닫힌 상자 앞에 서 있다.”&amp;lt;br&amp;gt;&lt;br /&gt;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amp;lt;br&amp;gt;&lt;br /&gt;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amediff.kr/wiki/index.php?title=%EC%88%9C%EC%88%98%EB%B0%95%EB%AC%BC%EA%B4%80&amp;diff=16336</id>
		<title>순수박물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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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26개)&lt;/p&gt;
&lt;hr /&gt;
&lt;div&gt;* 오르한 파묵 지음&lt;br /&gt;
* 1권엔 오자가 하나였는데 2권부터는 좀 많다. 열개정도 되는 듯.&lt;br /&gt;
&lt;br /&gt;
==1권==&lt;br /&gt;
164 담배가 그렇게 사랑받는 것은 니코틴의 힘 때문이 아니라, 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lt;br /&gt;
&lt;br /&gt;
175 “영리한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지. 그런데 나중에는 바보들만 행복해져.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지?”&lt;br /&gt;
&lt;br /&gt;
273 이스탄불 거리는 일이 초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퓌순의 환영으로 가득했다.(중략) 이 도시는 이제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신호들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lt;br /&gt;
&lt;br /&gt;
284 작은 우주선에 실려 우주의 무한한 어둠속으로 보내진 개처럼 외로울 것&lt;br /&gt;
&lt;br /&gt;
315 이스탄불의 수백만 명이 반세기 동안 이 빵을 주식으로 먹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삶은 반복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매정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lt;br /&gt;
&lt;br /&gt;
356 “문화인이나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모두들 정중하게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고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아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지지.”&lt;br /&gt;
&lt;br /&gt;
383 나는 그녀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놀란 사람처럼 경이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amp;lt;br /&amp;gt;&lt;br /&gt;
“얘야, 장미를 꽃병에 꽂아라.”&amp;lt;br /&amp;gt;&lt;br /&gt;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amp;lt;br /&amp;gt;&lt;br /&gt;
“케말 씨, 라크를 마십니까?”&amp;lt;br /&amp;gt;&lt;br /&gt;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amp;lt;br /&amp;gt;&lt;br /&gt;
“짹, 짹, 짹.”&amp;lt;br /&amp;gt;&lt;br /&gt;
그녀의 카나리아가 말했다.&amp;lt;br /&amp;gt;&lt;br /&gt;
“아, 네, 물론이지요, 라크, 마시지요, 마시지요, 라크…”&amp;lt;br /&amp;gt;&lt;br /&gt;
&lt;br /&gt;
388 푸른 번개 불빛이 바람에 날리는 비단처럼 우리 사이에서 몸서리를 쳤다&lt;br /&gt;
&lt;br /&gt;
==2권==&lt;br /&gt;
30 항상 똑같이 똑딱이는 시계는, 그 똑딱거리는 소리를 매 순간 인식하지 않아도 집이, 물건들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우리가 변하지 않았고 항상 같다고 느끼게 해 주어, 우리를 평온하게 했다.&lt;br /&gt;
&lt;br /&gt;
33 매일 밤 케스킨 씨네 집에 간 것은 단지 퓌순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 있는 세계에서 잠시나마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나는 팔 년 동안 서서히 깨달았다.&lt;br /&gt;
&lt;br /&gt;
97 “배가 채워지고 마음이 머무는 곳이 집이다.”&lt;br /&gt;
&lt;br /&gt;
158 나의 사랑과 수치스러움이 나를 이끌고 가는 곳에서, 나는 더욱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 그저 조용히 있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 혼자 극장에 갔다.&lt;br /&gt;
&lt;br /&gt;
168 박물관에 전시한 다른 모든 물건들처럼, 나중에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이 성냥갑 하나하나를 만져 보면, 퓌순과 같이 식탁에 앉아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의 희열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냥을 식탁에서 집어 모르는 척하며 주머니에 넣을 때 느꼈던 행복에는 또 다른 면도 있었다. 집착적으로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작지만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이었다.&lt;br /&gt;
&lt;br /&gt;
180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주 이상하고 약간은 아둔한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칠판 앞으로 불러 수학 숙제를 했는지 안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 아이도 나처럼 침묵에 잠겼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며, 죄책감과 무기력으로, 몸의 무게를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에 번갈아 실으며 선생님이 머리 끝까지 화가 날 때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사람이 한번 침묵을 하게 되면 입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입을 다물 거라는 것을, 교실에 앉아 그 아이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lt;br /&gt;
&lt;br /&gt;
207 때로 퓌순이 아주 달콤하게 하품을 해서, 그녀가 온 세상을 잊고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더 평온한 삶을, 마치 무더운 여름날 차가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당기듯, 끌어당겼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lt;br /&gt;
&lt;br /&gt;
212 때로 순간적으로 깊은 침묵이 흐르면, 네시베 고모가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었나 봐.”라고 했다.&lt;br /&gt;
&lt;br /&gt;
213 때로 퓌순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화에 얼마나 집중하고 몰입했던지, 나는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lt;br /&gt;
&lt;br /&gt;
240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은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었다.&lt;br /&gt;
&lt;br /&gt;
273 퓌순은 자신의 아버지를 억지 없이, 노력하지 않고도 아주 깊이, 사람이 세상과 해, 거리, 집을 사랑하듯 편하게 사랑했다.&lt;br /&gt;
&lt;br /&gt;
278 그는 나를 증오하는 동시에 용서했던 것이다. 서로의 결점이나 파렴치한 행동을 보지 못하는 척하며 우정을 유지하는 불량배나 도둑처럼 우리는 행동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집주인과 손님이라기보다는 공범자처럼 되었다.&lt;br /&gt;
&lt;br /&gt;
298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을 속이며 믿었던 것을, 퓌순이 더 자신 있게, 절대적으로 믿으라며 명령조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즉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기만당한 것처럼 느껴졌다.&lt;br /&gt;
&lt;br /&gt;
369 나도 다른 이들에게 했던 대답을 여느 때처럼 그에게 해 주었다.&amp;lt;br /&amp;gt;&lt;br /&gt;
“박물관을 만들고 있는데요&amp;amp;hellip;&amp;amp;hellip;.”&amp;lt;br /&amp;gt;&lt;br /&gt;
“그걸 묻는 게 아니오. 이것들을 왜 원하는지 묻는 거요.”&amp;lt;br /&amp;gt;&lt;br /&gt;
강박적으로 혼자 물건을 모으고, 그것들을 한 구석에 쌓아 두는 사람의 뒤에는 상심이나 깊은 고민, 밝히기 어려운 정신적인 상처가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였다.&amp;lt;br /&amp;gt;&lt;br /&gt;
&lt;br /&gt;
396 오렌지, 딸기, 멜론 맛이 나는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진열장을 구경하고 웃고 떠들며 걷던 이 행복한 가족들 중에서 케말은 먼저 귈을 보았고, 그녀의 어머니와 아주 닮은 것에 놀라 “시벨! 시벨! 안녕, 나야 케말.”이라고 하며 다가갔습니다.&amp;lt;br /&amp;gt;&lt;br /&gt;
“귈은 이십 대 때의 나와 아주 닮았지요, 게다가 그날 이 아이는 내가 젊었을 때 입었던 니트 스톨을 입고 있었어요.”&amp;lt;br /&amp;gt;&lt;br /&gt;
시벨 부인은 자랑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amp;lt;br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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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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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황정은 장편소설 : 百의 그림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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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3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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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아주 좋은 책이다) &lt;br /&gt;
&lt;br /&gt;
59 퍼붓듯 쏟아지다가 반짝 갰다가 꾸물꾸물 어두워졌다가 툭툭 떨어지다가 다시 한차례 퍼붓고 점차 가늘어져서 그 비가 밤새 이어지는, 뒤끝 있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lt;br /&gt;
&lt;br /&gt;
144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lt;br /&gt;
&lt;br /&gt;
160-161&amp;lt;br /&amp;gt;&lt;br /&gt;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역시 유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amp;lt;br /&amp;gt; &lt;br /&gt;
유별이요?&amp;lt;br /&amp;gt; &lt;br /&gt;
시끄럽고 분주하고 의미도 없이 빠른 데다 여러모로 사납고. &lt;br /&gt;
&lt;br /&gt;
171-172 작가의 말 &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lt;br /&gt;
&lt;br /&gt;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lt;br /&gt;
&lt;br /&gt;
세계가 그들에게 좀 &lt;br /&gt;
&lt;br /&gt;
덜 폭력적이었으면 &lt;br /&gt;
&lt;br /&gt;
좋겠다는 &lt;br /&gt;
&lt;br /&gt;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lt;br /&gt;
&lt;br /&gt;
진작부터 &lt;br /&gt;
&lt;br /&gt;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lt;br /&gt;
&lt;br /&gt;
이러고 있어 &lt;br /&gt;
&lt;br /&gt;
다만 &lt;br /&gt;
&lt;br /&gt;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lt;br /&gt;
&lt;br /&gt;
바란다거나 하는 초 &lt;br /&gt;
&lt;br /&gt;
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lt;br /&gt;
&lt;br /&gt;
다만 &lt;br /&gt;
&lt;br /&gt;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lt;br /&gt;
&lt;br /&gt;
밤길에 &lt;br /&gt;
&lt;br /&gt;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 &lt;br /&gt;
&lt;br /&gt;
한다 &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모두 건강하고 &lt;br /&gt;
&lt;br /&gt;
건강하길 &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2010년 6월 &lt;br /&gt;
&lt;br /&gt;
황정은 &lt;br /&gt;
&lt;br /&gt;
&amp;lt;/blockquote&amp;gt;&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amp;lt;br&amp;gt; &lt;br /&gt;
&lt;br /&gt;
황정은 - 1976년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로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2010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amp;lt;br&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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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지영 소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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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6: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scrap 본문 인용부호를 여는·닫는 따옴표로 통일 (4개)&lt;/p&gt;
&lt;hr /&gt;
&lt;div&gt;== 오란씨 ==&lt;br /&gt;
http://www.yes24.com/24/goods/3705079?scode=029&lt;br /&gt;
&lt;br /&gt;
그는 벤 존슨이 이기길 염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벤 존슨의 예선 기록이 칼 루이스보다 부진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의 불길한 버릇 중 하나는 늘 질 것 같은 팀만 응원한다는 것이었다.&lt;br /&gt;
그의 생이 가뜩이나 별 볼일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버릇에서 파생되는 일종의 나비효과인지도 몰랐다. 어린 그에게 있어 이길 것이 예상되는 팀을 응원한다는 건 어쩐지 무의미했다. (pp44-45)&lt;br /&gt;
&lt;br /&gt;
== 어느 살인자의 편지 ==&lt;br /&gt;
P192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은 상태가 될 때까지 몸도 마음도 소진되기만을 ‘희망’했습니다&lt;br /&gt;
&lt;br /&gt;
==검정 원피스를 입다==&lt;br /&gt;
P229 단지 나의 마음만이 날개가 뜯긴 파리처럼 비참할 뿐이었다&lt;br /&gt;
&lt;br /&gt;
P237 백 살 먹은 거북이같이 고요한 눈&lt;br /&gt;
&lt;br /&gt;
(오란씨 책에 실린 몇 개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맨 끝 ‘새의 노래’는 별로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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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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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0: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사용자 승인한 scrap 띄어쓰기·오탈자 교정 3곳 반영&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여느 천재와 달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알았던 노이만은 결코 나대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타고난 천재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위그너는 “노이만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는 완전히 깨어 있고 나는 반쯤 잠든 기분이었다”고 했다.&lt;br /&gt;
  노이만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관찰하는 눈으로’ 동급생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1850년대에,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리만의 논문을 읽고 “찬란하게 빛나는 창조성의 극치”라며 감탄을 자아냈다.&lt;br /&gt;
&lt;br /&gt;
  모든 종류의 치즈케이크로 이루어진 집합을 상상해보자. 여기에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치즈케이크(뉴욕식 치즈케이크, 독일식 치즈케이크, 레몬 리코타 등)가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집합 자체는 치즈케이크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치즈케이크의 집합’은 그 집합(자기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반면에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있다. ‘치즈케이크가 아닌 모든 것의 집합’은 여전히 치즈케이크가 아니기 때문이다.&lt;br /&gt;
  러셀은 ‘자신의 원소가 아닌 집합의 집합’을 생각해보았다. 이 집합이 자신의 원소가 아니면 애초의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원소이면 역시 정의에 의해 자신의 원소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발견한 역설이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거짓말쟁이의 역설(”이 문장은 거짓이다”)도 이런 종류의 역설에 속한다.&lt;br /&gt;
&lt;br /&gt;
  독일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그레테 헤르만Grete Hermann은 노이만의 책이 출간된 후 그의 증명을 철저히 확인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lt;br /&gt;
  헤르만은 괴팅겐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분명하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원칙적으로 김나지움에 입학할 수 없었고, 굳이 입학을 하려면 학교 재단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헤르만은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했는데, 그녀의 지도교수는 당시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의 유일한 여교수였던 에미 뇌터Emmy Noether였다. 몇 년 전, 괴팅겐의 사학과와 언어학과 교수들이 뇌터의 채용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힐베르트가 그들을 향해 날렸던 대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저는 지원자의 성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긴 대학교잖아요. 목욕탕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 속에서 헤르만과 뇌터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두 여인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그러나 헤르만은 1925년 2월에 박사학위 과정 졸업시험을 통과한 후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당시 뇌터는 헤르만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기에, 제자의 변심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수학 공부를 그토록 열심히 해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철학적 재능을 발견하다니, 축하를 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구나!”&lt;br /&gt;
&lt;br /&gt;
  몇 가지 증거에 의하면 독일은 이미 1943년 3월부터 미국의 핵폭탄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독일에 투하한 핵폭탄이 불발되었을 경우, 독일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분해하여 그들만의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며 폭탄 투하를 반대해왔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과학기술이 독일보다 못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인은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자를 몹시 경멸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직후 미국 정부는 수천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둬놓고 평범한 시민을 범죄자로 모는 등 인종차별과 전시 히스테리wartime hysteria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것은 전시상황에 벌어진 비상대책이라기보다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에 가깝다. 혹자는 핵폭탄을 ‘진주만 공습의 복수’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이건 간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차출된 비-미국 출신 과학자들에게 “여기서 만든 핵폭탄은 독일이 아니라 일본에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통보했다면, 그들은 도중에 그만두거나 애초부터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lt;br /&gt;
&lt;br /&gt;
  ENIAC은 1930년대에 미국을 강타한 경제 대공황 때문에 학자의 꿈을 접은 전직 물리학 교사 존 모클리John W. Mauchly의 작품이다. 그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학부 과정을 속성으로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1932년에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잠시 동안 연구조교로 재직하면서 적당한 일자리를 물색했는데, 때마침 사상 최악이자 최장의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번듯한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lt;br /&gt;
&lt;br /&gt;
  모클리와 에커트는 노이만이 수백만 달러를 훔쳤다며 맹렬히 비난했고. 노이만이 그들(모클리와 에커트)의 가장 큰 경쟁사로부터 수천 달러를 받고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했다. 그때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두 사람의 분노는 노이만이 죽은 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노이만이 세상을 떠나고 무려 20년이 지난 1977년에 에커트는 한 인터뷰 자리에서 노이만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노이만은 우리가 개발한 모든 아이디어를 IBM에 알뜰히 팔아넘겼습니다. 그것도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말이죠.”&lt;br /&gt;
&lt;br /&gt;
  그가 바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과학자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의 아들인 로이드 섀플리Lloyd Shapley였다.&lt;br /&gt;
&lt;br /&gt;
  “동전을 허공에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 그리고 옆으로 똑바로 설 확률이 모두 같으려면, 동전의 두께와 반지름의 비율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화젯거리로 떠올랐는데, 노이만이 즉석에서 답을 제시하자 윌리엄스는 기술자에게 당장 그런 동전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고, 노이만의 처방에 따라 절삭기로 갈아서 만든 두툼한 동전은 정말로 모든 확률이 똑같았다.&lt;br /&gt;
&lt;br /&gt;
  그러나 과학자들 중에는 두 분야를 고립된 채로 놔두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두뇌를 일종의 컴퓨터(정보처리장치)로 간주하는 노이만식 관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바람에 신경과학이 오히려 퇴보했다. 두뇌와 컴퓨터의 유사성을 추적하는 연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수도 없이 실행되었는데도 얻은 것이 거의 없으니, 이제 ‘DELETE 키’를 누를 때가 되었다.”&lt;br /&gt;
  하지만 컴퓨터 말고 딱히 비유할 대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lt;br /&gt;
&lt;br /&gt;
  노이만의 암은 참으로 잔인한 시기에 찾아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53년에 노이만의 초청을 받아 고등연구소에 합류했던 브누아 델브로Benoit Mandelbrot는 그 시기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프린스턴에 머무는 동안 노이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수학자들은 그를 더 이상 수학자로 취급하지 않았고, 물리학자들도 그가 단 한순간도 진정한 물리학자인 적이 없었다며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컴퓨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프린스턴으로 초빙했는데, 기존의 학자들은 그들을 ‘프로그래머’라 부르며 고매한 학문의 전당에 빌붙어 사는 하층민으로 취급했다. 한마디로 노이만은 고등연구소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lt;br /&gt;
&lt;br /&gt;
  미클로스는 자신의 형이 단 하루 만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노이만과 가까운 친구들도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울람은 스트라우스에게 “신앙심이 그토록 초단기 속성으로 자랄 수 있다니, 내 마음이 다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마리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파스칼의 내기Pascal&amp;amp;#39;s wager’ (신의 존재 여부에 따른 득과 실을 따져서 종교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옮긴이)를 떠올렸던 겁니다, 그분은 지옥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0이 아니라면, 평생 무신론자로 살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신도가 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 선택이라고 생각했지요. 또 아버지는 천주교가 신자로 살아가기에 매우 힘든 종교지만, 신자로 죽기에는 아주 좋은 종교라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lt;br /&gt;
  노이만의 몸을 잠식하던 암이 어느새 뇌까지 도달했다. 그는 잠결에 헝가리어로 잠꼬대를 했고, 병실을 지키던 군인들을 불러서 “본부에 급히 전할 메시지가 있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지구에서 가장 예리했던 한 사람의 지성은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갔다. 마지막 순간에 노이만은 마리나에게 “7+4” 같은 단순한 산수 문제를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마리나가 던진 몇 개의 문제에 노이만은 하나도 답하지 못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lt;br /&gt;
&lt;br /&gt;
  1981년에 천문학자 로버트 제스트로Robert Jastrow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컴퓨터란 순수한 사고만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컴퓨터에게 전력과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인간이 컴퓨터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컴퓨터의 재생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컴퓨터의 번식을 수행하는 생식기관인 셈이다.”&lt;br /&gt;
  그의 말은 거의 옳았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에는 20억 대의 컴퓨터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막강한 번식력을 능가하는 새로운 오토마타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바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다. 이 기계는 2014년에 전 세계 인구수를 추월했고, 지금 사용 중인 SIM 카드는 100억 개가 넘는다.&lt;br /&gt;
  2019년 한 해 동안 15억 개가 넘는 스마트폰이 팔려나갔다. 증가율로 따져도 인구 증가율보다 10배 이상 빠르다. 지금은 이 많은 SIM 카드를 인간이 사용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는 동안, 이 기계도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27b64672154947df9e19353d2fc5dd20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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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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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0: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사용자 승인한 scrap 띄어쓰기·오탈자 교정 9곳 반영&lt;/p&gt;
&lt;hr /&gt;
&lt;div&gt;&amp;lt;poem&amp;gt;&lt;br /&gt;
 (각 인용의 정확한 위치를 생략했고, 순서만 지킴)&lt;br /&gt;
&lt;br /&gt;
  호니그가 양적완화에 반대한 이유는 이것이 전례 없는 양의 화폐를 공급하게 될 테고 그 돈이 월가의 거대 은행으로 먼저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호니그는 이 돈이 매우 부유한 사람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는 혜택을 보겠지만 월급 받아 살면서 저축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될 터였다.&lt;br /&gt;
&lt;br /&gt;
  티파티가 위력을 발휘한 선거 이후 의회는 어느 방식으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호니그와 의장인 버냉키의 관계는 원래도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적대적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버냉키가 펴낸 회고록에 남에 대한 옹졸한 험담은 그리 많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상당수가 호니그를 향한 것이었다. 버냉키는 호니그를 충성심이 없고 고집이 세며 심지어는 다소 편향된 사람처럼 묘사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의 피셔는 이 계획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근사한 은유로 발언을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적완화는 시장 운영의 칡뿌리와 같습니다. 계속 자라고 또 자라기 때문에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제거하거나 쳐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피셔는 이 계획이 본질적으로 거대 은행과 금융 투기 세력에 혜택을 주고 은퇴를 위해 저축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격이 된다는 호니그의 우려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 정책을 실행하면 가난한 사람, 대부분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사람, 저축을 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결과가 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봅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소비자 물가만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산 가격도 올리고 있었다. 호니그 같은 은행 감독관들이 보기에 자산 인플레이션은 매우 경악스러운 종류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캔자스시티 연은 관할 지역의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핵심 자산은 농지였는데, 농지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도, 유정도 그랬다. 이러한 자산이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올라와 있었는데, 이 자산들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은행들은 더 공격적인 대출을 하도록 부추겨졌다. 중서부 지역 전역에서 은행들은 농지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르리라는 전제에서 농민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었다. 상승하는 담보 가치가 대출금을 충분히 지탱해주리라고 본 것이다. 석유 산업도, 부동산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호니그는 부동산 가치가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만큼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재융자가 가능하리라는 전제하에 건설 분야로 단기 대출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lt;br /&gt;
  이러한 상황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몰아갔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는 은행과 투자자가 돈을 저축하려 할 유인을 없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저축으로 약간의 이자를 얻어도 오히려 손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 돈을 가지고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은행들은 점점 더 수익률 곡선의 먼 쪽으로 내몰렸다. 호니그의 팀은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산 가격이 올랐으므로 은행들이 자신이 내어준 대출이 안전하고 은행 건전성도 안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은 감독관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 해도 장부의 숫자들이 은행 편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이 예기치 못하게 뚝 멎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될 터였다.&lt;br /&gt;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막대한 붕괴가 발생하게 됩니다. 줄도산과 줄손실과 줄위기가 이어집니다.”&lt;br /&gt;
&lt;br /&gt;
  그는 경제학자들이 ‘자산버블’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력하고 지극히 다루기 어려운 현상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수십 년 뒤인 오늘날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은 대개 자산버블이라고 묘사되지 않는다. 오늘날 1970년대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재앙의 절반만 이야기한다. 고깃값이나 휘발윳값 같은 소비재 물가가 충격적으로 올랐던 시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인플레이션이 파괴적이었던 진짜 이유는 두 종류의 인플레이션이 상호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 절반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며,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후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다. 2000년의 닷컴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고 2008년 주택시장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으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시장이 전례 없이 붕괴했을 때도 큰 요인 중 하나가 자산버블이었다.&lt;br /&gt;
&lt;br /&gt;
  처음에 사람들은 볼커가 금리 인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그가 정말로 금리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1979년 10월에는 그가 압력 때문에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준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볼커는 토요일 저녁에 에클스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연준은 금리 인상에 진지하다고 선언했다. “최근 돌고 있는 소문과 달리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 주 주말에 11.6%이던 단기 금리는 그달 말에 16%가 되었고 1년도 안 되어 20%에까지 도달했다.&lt;br /&gt;
  그 토요일 저녁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제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질문했는데, 볼커는 이 질문을 대체로 일축했다. “저는 이러한 조치의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불확실한 세계에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지표들을 보건대, 경제의 조정 과정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lt;br /&gt;
  볼커의 이 말은 틀렸다. 어떤 것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의 경제 생태계는 저금리를 북극성 삼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볼커가 느닷없이 북극성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재조정되어야 했다. 지난 10년간의 자원 배분 양상이 달라져야 했고 모든 것이 수익률 곡선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안쪽으로, 덜 위험한 쪽으로 돌아와야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에 대한 연준의 긴급 융자는 재할인 창구를 통해 나가는데, 호니그는 1980년대 초에 캔자스시티 연은의 재할인 창구를 관리했다. 그의 팀이 어느 은행이 이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지를 결정할 때, 이것은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선고를 내리는 격이었다.&lt;br /&gt;
  1982년에 진정한 은행 패닉이 터졌고, 이는 대공황 이래 최악이었다. 8 그해에 100개 넘는 은행이 도산했는데, 한 해 도산 건수 기준으로 1930년대 이래 어느 해보다도 많은 수였다. 1986년에는 심지어 이 숫자가 더 늘어서 200개가 넘는 은행이 도산했다. 1980년에서 1994년 사이에 총 1,600개 이상의 은행이 도산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호니그는 어리석은 대출이 전적으로 은행들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은행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그에 비해 낮은 금리, 그리고 상승하는 자산 가격이라는 거시 경제 환경에 반응해 의사결정을 했을 뿐이었다.&lt;br /&gt;
  그리고 그러한 거시 경제 환경은 은행들이 만든 게 아니라 호니그가 일하는 기관, 바로 연준이 만든 것이었다.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자산 가치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던 환경에서 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환경은 10년이나 너무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했던 잘못에서 야기된 면이 컸습니다.” 이 부분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1980년대의 침체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자주 간과되곤 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끝냈고 살아남은 건전한 은행을 구제해주었다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나온 연구는 이 재앙 전체에 연준이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순전한 실수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먼 훗날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연준이 고려했던 몇몇 데이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잘못된 데이터 중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연준이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관되게 저평가한 것이었다. 이것은 곡사포 관제병이 오류가 있는 기상관측기구가 보내오는 정보에 기초해 발사 지시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실제 여건이 벙커 안에 있는 팀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당시 연준은 그 시기의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연준과는 관련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비용을 밀어올려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거대 노조가 노동 비용을 밀어올린다거나 중동의 석유 카르텔이 유가를 밀어올린다는 식으로 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은 단지 자산버블만 부추긴 것이 아니었다. 연준은 버블이 커지던 동안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던 은행들을 버블이 붕괴할 때 구제하는 일에도 나서야 하게 되었다. 어떤 은행들은 너무 크고 너무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lt;br /&gt;
&lt;br /&gt;
  예보와 연준은 대안을 마련했다. 예보는 이례적인 구제 패키지를 제공해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주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보가 원래 10만 달러 이내의 예금자만 보전해주게 되어 있는 규정을 넘어 그 이상 예금한 예금 보유자와 채권 보유자까지 모두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돈을 넣었을 은행들에까지 안전망을 크게 넓혀준 것이다. 이제 납세자들이 그 손실 모두를 메워주게 될 터였다. 예보의 구제 금융과 동시에 연준도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콘티넨탈에 긴급 융자를 제공하기로 했다.&lt;br /&gt;
  콘티넨탈 구제 금융은 대인플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에 위험을 충분히 많이 퍼뜨려 놓았다면 그 은행은 위기 때 구제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까지 존재하던 규정은 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간단히 무시될 것이었다. 이 선례는 미국 은행의 어휘집에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다. 콘티넨탈 구제 금융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코네티컷주 출신 공화당 의원 스튜어트 매키니Stewart McKinney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했다. “의장님, 돌려 말하지 맙시다. 우리 앞에는 이제 새로운 종류의 은행이 있습니다.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큰’ 은행 말입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성장이 부채로 일으킨 성장이었고 그것이 은행들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린스펀이 묘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되고 강화되면서 21세기 미국 경제의 핵심 특징이 된다. 값싼 부채는 한동안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긴 붕괴와 오랫동안의 약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차차로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새로운 패턴을 더 잘 파악하게 되고 1990년의 불황이 그린스펀이 짐작했던 대로 정말로 전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업과 가계는 여전히 1980년대의 빚을 갚고 있어서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이것은 금융 침체 버전의 지독한 숙취라고 할 만했다.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전에는 불황 때도 해고 영향을 덜 받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이 주도한 조치들은 단기적인 응급 처방이 아니었다. 이 조치들은 ‘이지 머니easy money’의 새로운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다. 그린스펀이 1992년 동안 진행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더 나중의 완화적 정책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1년에 연준이 일조한 악성 부채 오버행도 이후의 오버행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린스펀은 이 시기에 유명인이 되었고 연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라는 인물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질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대중이 점점 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10년 동안 연준은 경제 정책의 장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매우 신경을 썼다.&lt;br /&gt;
&lt;br /&gt;
&lt;br /&gt;
  전에 폴 볼커의 방정식에는 ‘사촌지간’인 두 인플레이션(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린스펀의 연준은 점차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는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지 않는 한에서 화폐 공급을 계속 늘리고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은 제어 불가능한 본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방치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탄탄한 근거 논리가 있었다.  우선, 추적이 더 쉬웠다. 휘발유, 빵, 텔레비전 등의 가격은 수집하기가 쉽다.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다. 연준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릴 때는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자산버블을 터뜨리면 즉각적으로 고통이 일고 특히 매우 부유한 가구에 고통이 일었다. 금융 기자 세바스천 맬러비Sebastian Mallaby는 ‘버블에 직면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불확실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치솟는 시장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는 정치인과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가 쓴 그린스펀 전기 &amp;amp;lt;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The Man Who Knew&amp;amp;gt;는 그린스펀 시기 연준의 정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로 한 의사결정이 점진적으로, 하지만 1990년대 무렵이면 거의 분명하게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그린스펀 시기만의 특징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패턴을 설정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린스펀은 이 결정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양당 모두의 의원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그를 칭송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린스펀은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금융 엔지니어로 보였고, 이러한 성공과 그것이 갖는 신비한 아우라의 핵심은 그가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은 채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하지만 1998년 무렵이면 자산 인플레이션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우려를 별로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호황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말의 자산버블은 상당 부분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주가에서 벌어진 것만큼의 가격 상승이 버터나 휘발유에서 벌어졌다면 모두 경악했을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주가 지수가 1999년에 19.5%나 상승했다. 기술주들이 주로 있는 나스닥 지수는 80%가 넘게 뛰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는 물가 인플레이션만 통제하기로 하고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무시했고, 그다음에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자산 가격이 붕괴하면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했다. &lt;br /&gt;
&lt;br /&gt;
  물가 인플레이션은 통제하되 자산버블은 무시하기로 하는 그린스펀의 정책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연준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로 이어질 커다란 자산버블에 불을 때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몇 년 동안 연준은 하나의 자산버블을 다른 하나의 자산버블로 대체하면서 경기를 진작했다. 주식시장 버블이 주택 버블로 선수 교체되었다. 주택 시장의 활황이 다른 영역으로도 넘쳐흐르는 ‘스필오버’ 효과를 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 지출과 대출을 촉진하리라는 것이 이에 대한 논리였고, 이 논리는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동안 부동산 산업은 호황을 구가했고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1970년대에 값싼 부채가 농지 가격을 밀어올렸듯이 낮은 모지기 금리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게 더 쉬워지게 했다. 그래서 매년 경쟁이 높아졌고 이것이 가격을 더 밀어올렸다. 대체로 이러한 동태적 과정은 1990년대 말에 주식시장 인플레이션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호황’이었다. 주식처럼 주택은 중산층이 부를 일구는 핵심 원천이자 중요한 노후 대비 투자라고 이야기되었다. 주택 가치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흠 없이 좋은 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랬듯이,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게 된 것은 &amp;amp;#91;주택 시장 인플레이션이 아니라&amp;amp;#93; 물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서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물론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적하는 게 물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시장 교란 없이, 또 자산 가격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멈추기도 더 어렵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산 가격이 조정되는 시점이 오면(자산 인플레이션은 언젠가는 반드시 조정이 된다) 막대한 금융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연준이 자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 5%를 달성했다 해도 조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실업률 10%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산버블의 피해를 다루기 위해 연준은 한층 더 크게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그 영향이 경제 시스템 전체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고 시스템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교란은 2007년 8월에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은행의 황폐화가 명백해진 2008년 말에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2년 사이에 8조 달러가 사라졌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들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보였고, 이 이미지는 긴급 대출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이국적인 야생동물원을 보는 것처럼 TAF(term auction facity, 기간물입찰대출제도)라든가 TSLF (term securties ending facity, 기간물증권담보대출제도)라든가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ty, 프라이머리딜러신용제도)와 같은 불가해한 영문 약어들로 되어 있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연준어이고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하나였다. 돈을 찍어서 소수의 프라이머리 딜러 계좌로 내보냄으로써 월가에 돈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연준은 이것을 전례 없는 규모로 실시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행히도, 호니그가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의 통로로만 나갈 수 있었다. 케이블뉴스, 신문, 금융 통신 서비스, 그리고 점점 더 인기가 높아져가던 당파적인 웹사이트 등으로 구성된 미국의 언론 생태계였다. 그런데 2010년 무렵에 이 생태계는 분절되어 있었고 질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민주적 기관들이 쇠락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자 쇠락을 가속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양적완화와 제로금리가 지난 10년간의 경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대중 담론에서 가장 논의되지 못한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연은 트레이더들은 새로 만들어진 달러를 써서 금융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것이 경제와 은행 시스템에 연준이 미치는 영향력의 토대다.&lt;br /&gt;
&lt;br /&gt;
  흔히 FOMC가 단기 금리를 ‘설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FOMC는 단기 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뉴욕 연의 트레이더들이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든다. 수십 년 동안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증권을 사고팔아서 돈의 비용이 FOMC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원래 연준은 단기 채권 거래로만 통화 공급을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기 채권을 사들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월가 투자자들이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었던 금고 하나를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이 수익률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자산을 구매한다. 이는 자산 수요를 증가시켜 회사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미술품에 대한 가격까지 밀어올린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의 목적이었고, 자산 가격이 높아지면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일으키고 이 이득이 더 폭넓은 경제로 확산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리라는 기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러한 자산 효과가 일어나려면 제로금리가 우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부터 이득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연준의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산 소유가 폭넓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 자체의 분석으로도 그렇다. 2012년 초에 미국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했고 하위 50%가 소유한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에 불을 땠을 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기별이 없이 상층의 매우 소수에게만 이득을 주었다.&lt;br /&gt;
  이러한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가장 적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헤지펀드 운영자 중 ZIRP가 소득 불평등을 강화하고 투기적인 부채 버블을 일으킨다고 소리 높여 비판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월가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거래가 수익이 높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이 그리로 우르르 몰려 거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적완화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계속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종말론자들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었고, 그러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호니그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무시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동시에 같은 액수의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단기를 비트는&amp;amp;#91;트위스트&amp;amp;#93; 공개 시장 운영&amp;amp;#91;오퍼레이션&amp;amp;#93;을 한다.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서 퇴장시킴으로써 수요를 높여 장기 국채의 금리를 낮춘다. 하지만 같은 액수의 단기 채권을 매도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에 새로운 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장기 국채를 매입할 때 추가되는 만큼의 달러가 단기 국채를 매도할 때 다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이 조치의 목적은 은행 시스템에 존재하는 화폐량을 늘리지는 않으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에 돈을 묻어두고자 할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듀크는 ‘재닛은 제한 없는 양적완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회상했다. “재닛은 매우 영향력이 컸습니다. 자신감이 넘쳤고 견해를 밀어붙이는 데 아주 유능했어요.” 옐런과 버냉키의 확신에 찬 주장은 한 가지의 단순한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즉 무엇을 하더라도 오류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하는 쪽으로 오류를 저지르는 게 낫다는 의견이었다.&lt;br /&gt;
&lt;br /&gt;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점차로 여기에 매우 능숙해졌다. 7월 말의 FOMC 회의에서 그는 점점 더 확장적이고 강한 개입 정책을 밀어붙이는 버냉키의 주장에 대해 길고 열정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피셔는 ZIRP 정책의 이론적인 장단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ZIRP 정책이 이미 경제에 미치고 있는 위험한 왜곡의 실제 사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lt;br /&gt;
  피셔는 최근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재무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회사가 ZIRP 시대에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얼마 전에 낮은 비용으로 15억 달러의 부채를 조달했는데, 이 돈을 공장을 짓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쓸 계획이 아니었다. 그 돈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쓸 계획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부채 조달 비용은 0.45~1.6%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식에는 2.5%의 배당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부채를 늘리고 주가를 올리며 주주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주는 정교한 금융 공학 기법이었다. 피셔는 그 재무 임원과의 대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핵심을 지적했다. “그가 말하길, 아,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인용해도 좋다고 했는데요, 그 회사는 그 돈을 일자리를 하나라도 창출하는 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값싼 돈을 공급하면 기업들이 차입을 늘려 그 돈을 자본재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리라는 가정하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lt;br /&gt;
&lt;br /&gt;
  7월 회의에서 제이 파월은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그는 QE가 자산 가격부터 먼저 올리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경로, 그러니까 자산 가격을 통한 경로가 우리의 모델이 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lt;br /&gt;
&lt;br /&gt;
  아무튼 이 오류들은 새로운 라운드의 QE가 긴급히 필요한 조치이고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그다음에는 철회되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연준이 사용하는 다른 수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령 금리 인하처럼 시행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빠르게 철회할 수 있는 수단 말이다.&lt;br /&gt;
  하지만 양적완화는 그렇지 않음이 곧 드러났다. 양적완화가 일으킨 왜곡은 깊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으며 양적완화는 일단 시행되면 끝내기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lt;br /&gt;
  이러한 예측 오류는 그날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중앙은행 모두가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해 일관되게 스스로를 오도했다. 2020년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한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양적완화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외부 연구자들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양적완화의 효과를 더 크게 잡은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더 승진을 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그들의 분석이 바로 그 프로그램을 미는 중앙은행 고위 인사들에게 보고되는 것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lt;br /&gt;
&lt;br /&gt;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벳시 듀크는 집무실의 텔레비전과 실시간 블룸버그 통신 터미널에서 테이퍼 탠트럼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듀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것은 연준이 한 일 전부를 한꺼번에 쓸어 없애고 있었다. 연준이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가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것이었는데 그 금리 하락이 사라지고 있었다. 듀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점에, 상황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지속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매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테이퍼링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자산 매입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고 양적완화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수준의 부채를 일으키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QE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QE의 목적이었다.&lt;br /&gt;
&lt;br /&gt;
  매년 생존을 해내는 것만으로는,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칼라일의 경영진이 투자했을 때 기대한 수익을 아직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대개 투자한 뒤 5년 이내에 두 자릿수 수익을 내고자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숫자다. 가장 일반적인 전술은 부채를 더 일으켜서 회사를 더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회사는 부채가 증가하지만 즉각적으로 새로운 제품군과 고객층을 보탤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합병을 하면 비용 절감의 지름길이 생기기도 한다. 호니그였다면 이것을 ‘자원의 잘못된 배분’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돈 빌리는 게 쉬워지면 기업들은 빌린 돈을 합병이나 바이아웃에 쓴다. 이러한 활동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혁신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 대중의 임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lt;br /&gt;
&lt;br /&gt;
  이것이 ZIRP 전까지 브라이언이 내내 일해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ZIRP로 기업 부채 시장의 다이내믹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14년과 2015년에 브라이언은 중대한 폭로를 해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는 연준이 2010년에 시작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한 정책의 결과였습니다. 이제 인공적인 바닥이 생겼고 연준이 그 바닥의 상당 부분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장에서는 잃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잃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것은 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설명했다.&lt;br /&gt;
  잃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레버리지론과 CLO의 새로운 시장으로 그 모든 돈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2010년 말에는 미국에 CLO 잔액이 3,000억 달러가 채 안 되었는데 2014년 말에는 4,000억 달러가 되었고 2018년에는 6,170억 달러가 되었다.&lt;br /&gt;
&lt;br /&gt;
  몇 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위험한 기업 부채의 탑을 쌓았다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을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은 연준이 인센티브를 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 중 어느 것도 연준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FOMC가 가장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진행하던 2013년에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명시적으로 이 정책이 주로 사모펀드에만 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 파월이 있었던 칼라일그룹 같은 곳 말이다. 피셔는 높은 자산 가격이 버냉키가 기대한 방식대로 ‘자산 효과’를 일으켜&amp;amp;#91;즉 주식, 주택 등 자산 소유자들이 부가 증가했다고 느끼게 되면 이들의 소비가 촉진되어&amp;amp;#93;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lt;br /&gt;
  피셔는 그때 FOMC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자산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자들과 시장을 잘 읽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버핏이나 KKR이나 칼라일이나 골드만삭스나 파월 같은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마 피셔 같은 사람들도요. 이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돈을 빌려서 채권과 주식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피셔는 이것이 연준이 바라는 정도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lt;br /&gt;
&lt;br /&gt;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한한 부작용 중 하나는 그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거대 은행들의 권력이 더 강화되고 공고화되었다는 점이었다. 2008년 시점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은 더욱 커져서 망하게 두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은행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산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이대로 그냥 둘 생각인 것 같았다. 이것은 호니그가 수년 동안 경계했던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소수의 거대 은행이 가진 자산이 점점 더 늘어나는 동안 지역공동체 은행은 수천 개가 사라졌다. 은행 업계는 현대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중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행동에 나서게 부추기고 있었다. 또한 위험은 ‘그림자’ 은행 시스템으로도 퍼지고 있었다. 그림자 은행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방대한 양의 돈을 대부하면서 은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lt;br /&gt;
&lt;br /&gt;
  대공황 때 루스벨트 행정부와 의회는 은행의 권력을 제한하고 은행이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은행 업계를 완전히 개편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은 이와 달랐다. 은행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기는 했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라는 규제 기관도 새로 생기긴 했지만, 은행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보다는 거대 은행들이 지켜야 할 매우 복잡한 새 규칙을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거대 은행이 계속 거대하게 있을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세세하게 감독과 관리를 받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것이 수백 쪽에 달하는 도드-프랭크법과 은행 관련 국제 협약인 ‘바젤 II’의 내용이다.&lt;br /&gt;
  하지만 호니그는 이것이 지는 게임이라고 보았다. 은행을 규제하는 규칙은 목적에 비추어 간명하게 작성되어야 하고 쉽게 이해되어야 하며 분명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뉴딜 시기에 그랬듯이 은행들이 다시 분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보험으로 보호되는 소비자 예금은 상업은행이 취급하게 하고 더 위험한 파생 상품 거래는 투자은행에 허용하는 식으로 은행 산업이 기능에 따라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분리하면 납세자들의 돈은 상업은행의 예금, 즉 예보가 보장하는 예금을 보호하는 데만 들어갈 것이고 이 안전망이 고객의 예금도 받으면서 위험한 투기성 거래도 하는 거대 은행들로까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호니그는 일단 은행들이 이렇게 기능별로 분리되면, 그 다음에는 위기에 대비해 자본을 얼마나 많이 보유해야 하는가의 간단한 규칙에 따라 감독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lt;br /&gt;
&lt;br /&gt;
  호니그 규칙의 핵심은 은행 업계에서 더 위험한 부분과 경제적으로 더 필요한 기업 대출 같은 부분을 분리해서,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이 베팅을 잘못했을 때 전체 시스템을 함께 위험으로 끌고 내려가지 말고 혼자 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양적완화는 주식시장에 인플레를 일으킬 목적으로 고안되고 실행되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2010년 이후 10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준이 개입 근거로 들었던 것처럼 전반적인 경제성장은 약세였고 임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해외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7%나 상승했다. 천성이 다소 신랄한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던 2016년의 주식시장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에 갑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에 빗댔다. 갑판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갑판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과 호니그 모두 연준이 노동 시장에서 얻을 상대적으로 작은 이득을 위해 위험한 자산버블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파월은 본인이 제기한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다. 그리고 호니그와 달리 파월은 비판의 어조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한때 FOMC의 닫힌 회의장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정책을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때가 파월이 명실공히 권력의 위치로 떠오른 시점이다.&lt;br /&gt;
&lt;br /&gt;
  공개된 경제 포럼에서 그는 현재로서는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에서 ‘한참 멀리 있다’고 말했다. 중립 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저해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하는데, 아직 이보다 낮다는 의미였고 이는 금리 인상이 더 있으리라는 암시였다.&lt;br /&gt;
  그 발언 이후 시장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이틀 만에 5%가 떨어졌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종목에는 은행과 에너지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의 조치와 시장의 요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가려지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을 설명할 그날의 뉴스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lt;br /&gt;
  예를 들면 기술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뉴스는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테크 기업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정치계의 관심을 이유로 들었다. 맞긴 맞았다. 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실제로 세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 하락의 배경에 있는 더 큰 요인은 연준의 정상화 조치였다. 연준이 돈이 주식으로 몰려가게 하는 압력을 줄이자 투자자들은 가치가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던 데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기술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가차없는 경제 요인의 힘이 자신의 모습과 범위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파월이 항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lt;br /&gt;
&lt;br /&gt;
  하지만 곧 분명해지듯이 정상화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배전이 엉망이라 벽 뒤에서 전선이 녹고 있는, 잘못 지어진 거대한 건물과 같았다. 몇몇 방은 풀풀 연기가 났고 몇몇 방은 공기가 탁해지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화염이 타오를 것 같았다.&lt;br /&gt;
&lt;br /&gt;
  7월에 파월의 연준은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실업률은 3.7%로 5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임금도 상승하고 있었다. 경기 순환의 이러한 국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 그래야 둔화 국면에 연준이 개입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경기를 둔화시켜 할 국면에 이례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이유로 연준은 이것이 일종의 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이 보험이 시작일 뿐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물 시장에서 가격은 그해 말까지 세 차례 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반영해 형성되었다. 유럽, 중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 다시 완화를 시작했다. 중앙은행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고 8월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침체와 싸우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시장이 안정적이고 건전한 상태라고 여겨지던 때에 말이다. 그러한 위기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연준이 거의 곧바로 개입해서 레포시장 구제에 4,000억 달러를 지출했기 때문이었다. 전례 없는 구제 조치였고, 이러한 대규모 구제 조치는 레포시장을 공중 납치해 위험한 도박의 도구로 사용하던 소수의 헤지펀드에 큰 이득을 주었다. 연준이 그들을 그들의 도박이 일으킨 결과에서 구제해준 격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이 거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4,000억 달러의 긴급한 현금 주입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연준은 이것이 일상적인 유지 보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이날 아침에 레포 금리는 9.5%였고 이것은 금융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날 연준은 전례 없는 레포시장 개입을 시작했다. 오버나이트 레포 론 시장에 750억 달러를 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긴 구제금융의 시작이었고 나중에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치들을 발표할 때 연준은 아주 많은 전문 용어를 사용했고 전체를 일상적인 유지 보수 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대한 현실 하나를 가리고 있었다. 연준이 뿌리는 돈이 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돈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었다.&lt;br /&gt;
&lt;br /&gt;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lt;br /&gt;
  헤지펀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레포시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이것이 헤지펀드들에 준 금전적 이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레포시장 구제 금융은 레포 대출 자체에서 상당한 돈을 구제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이 베이시스 거래에 잘못 베팅한 결과를 피하게 해줌으로써도 거의 헤아릴 수 없는 금액을 구제했다. 연준 덕분에 헤지펀드들은 가진 자산을 뭐든 투매해서 현금으로 유동화하지 않아도 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레포시장 개입을 발표하면서 헤지펀드나 베이시스 거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오버나이트 론 금리를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임시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레포 구제 금융은 수주, 수개월 간 지속되었는데 파월, 로건, 윌리엄스 같은 연준 고위 당국자들은 내내 이것이 일상적인 시스템 유지 보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lt;br /&gt;
&lt;br /&gt;
  실제의 번영은 경제 시스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만 누리고 있었다. 헤지펀드가 돈을 빌려서 그 돈을 주식시장에 부었을 때 뉴스 보도들은 상당히 신나 보였다. “다우는 오늘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마감했습니다.” 누가 여기에 불평할 수 있었겠는가?&lt;br /&gt;
  돌아보면, 호니그가 스타벅스에 온 날은 특히 통렬한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국 경제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장이었다. 곧 신문은 날마다 바이러스 소식으로 뒤덮이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3월 4일까지 감염자가 158명 발생했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날 호니그와 손님들은 스타벅스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나눴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였다. 이날 같은 좋은 날이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lt;br /&gt;
&lt;br /&gt;
  지난 9월에 레포시장이 붕괴했을 때 연준은 75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날 3월 12일 목요일에 연준은 5,00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고 다음 날 다시 1조 달러어치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연준이 월가에 즉각적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보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우는 계속 급락해 그날 전일 대비 2,300포인트, 비율로는 10% 하락했다. &lt;br /&gt;
&lt;br /&gt;
  파월의 연준은 벤 버냉키가 2008년과 2009년에 했던 것을 모두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달에 걸쳐서가 아니라 1주일 만에 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거의 제로로 낮추었고 외국의 중앙은행들과 스왑 라인을 열어 그들의 통화와 달러를 맞교환했다(많은 글로벌 부채가 달러 표시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총 7,000억 달러 규모로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를 개시했고 전보다 빠른 속도로 국채를 매입했다. 연준은 그다음 화요일이 되기 전에 8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했는데 이전의 양적완화에서 한 달에 푼 돈을 48시간 만에 푼 것이었다. 또 연준은 금리가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제로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다 시작되었다. FOMC는 이 긴급 조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클리블랜드 연은 행장 로레타 메스터Loretta Mester가 반대표를 던졌는데, 금리가 0.1%가 아니라 최대 0.5%까지로만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lt;br /&gt;
&lt;br /&gt;
  파월이 3월 15일에 시작한 긴급조치는 어느 기준으로 보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연준이 했던 어느 개입보다 범위도 넓었고 규모도 컸고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3월 20일 금요일 저녁까지 벌어진 1주일간의 금융판 대학살은 연준의 조치들이 패닉을 누르기에 충분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lt;br /&gt;
  이 시점에 이미 파월은 연준 구제책의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연준을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가게 할 것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연준은 회사채, CLO, 심지어는 정크본드까지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 풋을 거의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부채 시장을 영원히 바꾸어놓게 될 것이었다. 이 조치는 공식적인 FOMC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FOMC 회의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지만 이 계획은 제이 파월, 존 윌리엄스(뉴욕 연은),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등 연준 이사들 사이의 정신없는 전화 통화에서 만들어졌다.&lt;br /&gt;
&lt;br /&gt;
  첫 두 개의 SPV는 연준이 기업 부채를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목적은 명백했다. 연준은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줄도산하면 그것의 연쇄효과로 CLO 가치가 급락하고 은행들이 피해를 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연준은 연준 풋을 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때쯤이면 주식 거래인들은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연준이 구제안을 가지고 달려와줄 것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업 부채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을 훨씬 넘어선 곳까지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기업 부채의 금리는 그 부채의 기저에 있는 위험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통념이었다. 위험이 큰 회사는 높은 이자를 내고 안전한 회사는 이자를 더 적게 냈다. 그런데 이제 연준이 기업 부채를 사들이는 큰 손이 되어서 이 시장에 바닥을 제공했고, 이는 부채에 매겨지는 금리의 속성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금리는 그 회사의 위험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이 그 부채를 매입할 의지를 반영하게 되었다. 매우 중요하게, 연준이 일단 기업 부채를 매입하는 일에 나서면 나중에 이 역할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월가의 열렬한 눈이 전에 보았던 것을 늘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개입할 때마다 미래에도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lt;br /&gt;
&lt;br /&gt;
  그날 아침 연준이 발표한 구제안은 급진적이었고 패닉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연준은 대략 90일 사이에 3조 달러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2008년 위기 이전 시기의 정상적인 속도였다면 연준이 300년간 만들었을 돈에 맞먹었다.&lt;br /&gt;
  연준의 행동에 대중의 반대는 사실상 없었고, 파월은 연준의 행동을 확대했다. 첫 구제안이 나간 지 3주도 되지 않아서 이제까지 한 것에 더해 새로운 조치들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도 FOMC 전체 회의의 표결을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새 조치들의 근거와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치들의 일부는 4월 8일에 비공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lt;br /&gt;
&lt;br /&gt;
  연준은 4월 9일에 회사채를 사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정크 등급의 더 위험한 채권도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크본드를 무조건 매입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연준은 팬데믹 이전에 투자 등급이었던 것만 사들일 것이었다. 이러한 채권을 월가에서는 ‘추락한 천사’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포드자동차 같은 회사의 부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락한 천사’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연준은 기존에도 정크 등급이었던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위험한 채권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가령, 렉스노드 같은 곳의 채권 말이다. 기존에는 정크 등급이 아니었던 부채의 등급이 강등되어 ‘추락한 천사’가 되면 이것들이 기존의 정크본드들을 대체하게 되고 기존의 정크본드는 투자자에게 매력이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연준은 이러한 폭포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었다.&lt;br /&gt;
  또한 그날 연준은 별도의 새 프로그램 하나를 업데이트했다. &amp;amp;#39;기간물자산담보부증권대출제도TALF: term asset 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amp;amp;#39;라고 불리는 것인데, 연준 사상 처음으로 레버리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구성된 CLO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이 제공하는 안전망의 적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한 것이었고, 이는 가치가 강등되어 수천억 달러 규모의 CLO가 약정상의 정크 등급 비율 상한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수천억 달러어치의 CLO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은행들에도 도움이 되었다.&lt;br /&gt;
  이 중 어느 것도 대중 담론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조치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로 둘둘 싸여 있었다. 일례로, 연준의 표현을 빌리면 SMCCF는 수정, 확장될 것이었고, TALF는 새로운 자산군을 추가해 가정과 기업으로 흘러가는 신용 흐름을 지지할 것이었는데, 이는 대중의 눈길을 확 당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코로나 확진자가 3만 5,000명 나온 날(한 달 전 하루 확진자는 201명이었다), 그리고 주 정부들이 식당과 상점 문을 닫도록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금융 용어는 더더욱 관심을 끌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채권을 거래하는 사람들, 채권을 만들고 꾸러미로 묶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역사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만했다. SPV 이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SPV 이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다.&lt;br /&gt;
&lt;br /&gt;
 이 조치들이 극적이긴 했지만 여기에서 직접 혜택을 본 사람은 소수였다.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 혹은 자산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았다.&lt;br /&gt;
&lt;br /&gt;
  CARES법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용도로 2조 달러의 지출을 승인했다. 여기에는 납세자의 돈으로 연준의 SPV에 출자할 돈 4,540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CARES법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부분은 약 2,920억 달러 규모의, 사람들에게 직접 지급될 돈이었다.&lt;br /&gt;
&lt;br /&gt;
  사람들의 계좌로 직접 들어간 돈이 CARES법의 가장 가시적인 부분이었지만, 의회가 승인한 지출 액수 전체 중에서는 작은 비중에 불과했다.&lt;br /&gt;
&lt;br /&gt;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급여 보장 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 줄여서 PPP 대출이라고 불리는 총 6,7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기업들이 PPP 대출을 받아 &amp;amp;#91;폐업하지 않고&amp;amp;#93; 고용을 유지하게 하고, 다운 이후에 다시 문을 열고 모두가 일터로 돌아오면 &amp;amp;#91;정해진 조건을 만족했을 때&amp;amp;#93; 대출이 전부 또는 일부 탕감되었다. 길고 가혹한 락다운으로 큰 고통을 겪은 다양한 영역의 사업체들에 잠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백만 개 사업체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PPP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5%로 들어갔다. 이 숫자마저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협소한 부분에서만 영향이 있었는지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지출된 PPP 자금의 전체 중 25%는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1%에 들어갔다. 이 기업들은 대형 로펌, 전국적인 식품 체인점 등이었고 PPP 지원금 최대 한도인 1,000만 달러를 받았다. 이러한 수혜자에는 레스토랑 체인인 보스턴 마켓, 저명한 로펌인 보이스쉴러앤플렉스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준 등의 분석에 따르면 PPP는 230만 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자리 하나당 비용이 28만 6,000달러나 들었다. 트럼프가 이 프로그램이 5,000만 개 일자리를 구하거나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한 다음에 말이다.&lt;br /&gt;
&lt;br /&gt;
  CARES법이 승인한 지출 중 6,510억 달러가량은 세제 혜택의 형태로 기업에 지출되었다. 이 혜택은 받기가 매우 복잡하다. 이 말은, 뛰어난 세무 관련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큰 기업들에 세제 혜택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체인인 치즈케이크팩토리는 4만 1,000명을 해고했는데도 5,000만 달러의 세제 혜택을 청구했다. 총 세제 혜택 중 2,500억 달러 규모는 팬데믹으로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산업의 어떤 기업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사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은 1,35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았는데, 이 말은 연 100만 달러 이상 버는 4만 3,000명이 160만 달러어치를 각각 받았다는 뜻이었다. 대체로 이 돈은 기업의 금고와 개인의 계좌로 조용히 흡수되었다. 이 같은 매우 불평등한 분배는 몇 개월이 지나서 &amp;amp;lt;워싱턴포스트&amp;amp;gt;가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하고서야 드러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으로 최대 6,000억 달러어치의 부채를 사들일 예정이었지만 12월에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을 때 사들인 규모는 170억 달러어치에 불과했다.&lt;br /&gt;
  연준의 구제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진짜 구제 프로그램, 성공한 구제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신속했는데, 이것은 자산 소유자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이었다. 주식 소유자들은 팬데믹 붕괴 이후 9개월간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고 기업 부채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월에 연준이 개입하고부터 주식시장은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호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은 3월 중반에 저점을 쳤고 이때 미국채 시장도 급락했지만 그날부터 6월 중순까지 불과 3개월 사이에 시장 가치가 35% 올랐고 그다음 3개월간 다시 7%가 올랐다. 그 무렵이면 주식시장은 식당, 극장, 호텔, 크루즈 등이 영업을 하던 시절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월평균 레버리지론 수익률도 이르게는 4월부터 회복되었다. 8월에는 투자 등급 신규 채권이 어찌나 많이 발행되었던지, 이전 신기록이던 2017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lt;br /&gt;
  늘 그랬듯이 자산 인플레는 언론에서 ‘호황’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호황은 너무나 강력해서 초현실적일 정도였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퇴거 위험에 처하고 식당들은 문을 닫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부채 시장과 주식시장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구제 금융은 ZIRP와 QE 정책에 의해 크고 강력해진 곳들에 주로 들어갔다. 빌린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거대 기업들에, 미국 전체 자산 중 방대한 부분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글로벌 마켓에서 위태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월가의 가장 위험한 금융 투기 세력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고 다들 믿게 된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말이다.&lt;br /&gt;
&lt;br /&gt;
  ZIRP 시기에 득을 본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경제 영역은 자산 시장이었다. 주식시장 가치는 2010년대 동안 두 배가 되었고, 심지어 2020년의 붕괴 이후에도 자산 시장들은 계속 놀라운 성장세와 수익률을 보였다.&lt;br /&gt;
&lt;br /&gt;
  이렇게 레버리지론, 주식, CLO, 그밖에 월가가 십수 년 동안 부지런히 만들어내었던 온갖 위험한 금융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면, 파월의 연준은 익숙한 선택의 기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될 터였다. 위험한 금융상품 가치가 붕괴하게 두거나, 다시 개입해 양적완화와 긴급 구제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돌리거나. 2018년 말에 위험한 자산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갔을 때 파월은 이러한 기로에 선 적이 있었고 더 많은 돈을 풀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투기와 자산 인플레를 부추겼다.&lt;br /&gt;
&lt;br /&gt;
  12월 16일에 파월은 중대 발표를 했다. 봄에 연준이 긴급 처방으로 시행했던 일 중 몇 가지가 이제 준영구적인 것이 될 예정이었다. 메인 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은 조용히 끝났지만 구제안에 포함되었던 다른 것들은 지속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유지할 터였고 앞으로 한동안 매달 1,200억 달러어치의 양적완화를 실시할 것이었다. 과거에 일반적이던 속도에 비추어 보면 10년 동안 창출되어야 할 만큼의 돈을 30일마다 내놓겠다는 의미였다. 파월은 경제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이 더 있을 때까지’ 이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lt;br /&gt;
  파월은 물가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하지 않는 한 연준이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었다. 몇몇 항목의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것은 공급 교란 때문이었고, 약한 성장과 약한 수요가 소비자 물가를 전반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은 제약 없이 가속화되고 있었다.&lt;br /&gt;
  12월에 주식시장은 너무나 호황이어서 거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웹 기반 음식 배달 업체 도어대시는 그달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온라인 숙소 공유회사 에어비앤비도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이 회사들로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상장 직후에 이렇게 급격히 주가가 뛰었다는 말은 회사의 원래 소유주들이 많은 돈을 밑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모가를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mp;amp;lt;월스트리트저널&amp;amp;gt;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 회사 로블록스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12월 예정이던 상장을 연기했다. &amp;amp;#91;공모가 산정이 어려워&amp;amp;#93;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면서 말이다. 닷컴 붐이 불었던 시기 이래로 기업들의 실제 매출 활동에 비해 주가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계속될 것이었다. 이후 몇 개월간 시장은 계속 기록을 깨고 또 깼다.&lt;br /&gt;
&lt;br /&gt;
  노동자의 가치는 줄었는데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준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많은 중요한 면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였다.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금융 붕괴는 미국의 민주적 기관들이 가진 역량의 긴 붕괴로 한층 더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 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폭했다.&lt;br /&gt;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ca7e45246af04d5e9671f03cf3737035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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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깃털 도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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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10-27T04:30: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Maintenance script: 사용자 승인한 scrap 띄어쓰기·오탈자 교정 6곳 반영&lt;/p&gt;
&lt;hr /&gt;
&lt;div&gt;&amp;lt;h3&amp;gt;p. 67~70&amp;lt;/h3&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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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리스는 열이 내리자마자 꼬박 이틀 동안 떠올랐던 생각들을 글로 정리했다. 그리고 가장 존경하던 찰스 다원에게 편지를 썼다. 월리스는 이렇게 밝혔다. “제 생각이 선생님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되기를 바라며,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lt;br /&gt;
  1858년 6월 18일, 찰스 다윈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월리스에게서 편지를 받고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다윈은 윌리스의 편지를 읽으면서 열세 살이나 어린 독학 박물학자가 자신이 수십 년간 발전시켜온 이론을 혼자 찾아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놀라운 우연의 일치는 본 적이 없다.” 다윈은 지질학자인 친구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경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심지어 월리스가 사용한 용어는 내 책의 서두에 나오는 것들과 같다.”&lt;br /&gt;
  다윈은 “내 이론의 독창성이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고 했다. 아직 자신의 이론을 출간할 계획이 없었던 다윈은 월리스의 편지를 받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월리스의 생각을 훔쳤다는 비난은 받고 싶지 않았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다져온 내 입지가 무너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내 책을 모두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비열한 인간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lt;br /&gt;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학자 협회인 린네협회에 모인 다윈의 동료들은 누구를 ‘종의 기원’ 창시자로 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월리스는 뉴기니에서 계속 극락조를 찾고 있었다.&lt;br /&gt;
  1858년 7월 1일, 라이엘은 협회에서 이렇게 생각을 밝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독특한 종의 출현과 영속을 설명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동시에 정립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종의 기원이라는 중요한 연구에 있어서 공평하게 독창적인 학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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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설명한 월리스의 놀라운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표본마다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고 지리적 분포에 끈질기게 주목한 덕분에 월리스는 생물지리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창시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월리스는 발리와 롬복사이에 있는 깊은 해협을 경계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붕과 아시아 대륙붕에서 발견되는 종들이 나뉜다는 것을 알아 냈고 이 지점은 현재 지도상에 ‘월리스선Wallace Line’으로 표시된다. 말레이제도 동쪽에 펼쳐진 33만 7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은 ‘월러시아Wallacea’라 불리는 생물지리학적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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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가리와 타조 같은 새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전 세계 곳곳에 기업형 농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왜가리 같은 새는 새장에서 기르기 힘든 종이기에 가느다란 면실로 위아래 눈꺼풀을 꿰매어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길들이기도 했다. 새들은 이렇게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배에서 가장 값나가고 보험료가 높았던 물건도 바로 깃털 상자 40개였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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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식민지 초창기에는 강에 연어가 너무 많아서 밭을 가는 쇠스랑으로 강가를 한 번 훑기만 해도 연어를 잡아 올릴 수 있었다. 농부들은 이렇게 잡은 연어들을 갈아서 비료로 썼다. 철새 떼는 한번 날아들면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을 정도였다. 1813년 존 제임스 오듀본은 비행하는 여행비둘기 떼 아래에서 3일 내내 이동한 적도 있었다. 초원에 들소가 너무 많아서 어떤 군인은 말을 타고 들소 무리를 뚫고 지나가는 데 꼬박 6일이 걸렸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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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들은 ‘명백한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서부로 눈을 돌리고는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라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들은 미국 전역을 산업사회로 만드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땅에서 캐내는 구리와 철과 금은 부족해질 리가 없었고, 물고기와 새도 무한히 새로 태어날 것이며, 숲속의 떡갈나무도 영원히 새로 자라날 거라고 생각했다. 1900년 당시에는 자원에 굶주리던 인구가 1억에서 16억으로 늘었지만,  기계가 나타나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원재료를 캐내고 가공하게 되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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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발총으로 무장한 미국인들은 신의 축복 아래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을 휩쓸었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1831년에 미국을 여행한 뒤, 그곳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했다.&lt;br /&gt;
“그들은 생기를 잃은 자연 앞에서도 무감각하다. 그들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황야를 가르며 행진하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늪을 말려버리고, 강의 경로를 바꾸고, 불모지를 사람으로 채우고, 자연을 굴복시켰다.  19세기 말, 미국 들소는 6억 마리에서 300마리까지 줄었다. 개척민들이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심심풀이로 들소들을 쏘아 죽였기 때문이다. 수십억 마리였던 여행비둘기는 1901년경 거의 멸종될 정도로 총질을 당했다. 에버글레이즈에서는 엽총을 휴대한 운동선수들이 보트를 타고 악어와 왜가리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총소리와 화약연기와 죽음의 향연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숲에서 셰익스피어보다 더 나이 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가 제재소로 보내졌다. 그동안에도 깃털 열병은 계속됐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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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스트들은 깃털 사업을 막는 법안을 만들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경제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경고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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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나는 새를 보존하는 일이 인류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큐레이터들은 인류가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박물관 표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곤충, 햇빛, 독일군의 폭격, 화재, 도난으로부터 소장품을 보호해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내고 있는 표본들이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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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가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됐다. 그동안에도 사라진 새들을 찾겠다는 내 집념은 점차 자신만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자랐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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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poem&amp;gt;&lt;br /&gt;
  “야생동물 불법 거래가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알리려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어요.” 그가 말했다. “그곳 뉴저지에서는 온갖 열대 지방 새들이 그렇게 버젓이 팔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lt;br /&gt;
  다른 연구 활동들 때문에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박사도 한동안 에드윈 리스트를 쫓아다녔다고 했다. 피해를 본 종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트링박물관을 압박하고, 그로서는 없어지기를 바라는 취미 활동의 실상을 파헤쳐줄 기자를 찾아다녔다.&lt;br /&gt;
  “당신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왔소.” 그는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으며 말했다. 책상에는 몇 년간 모았을 메모지와 학술지, 고장난 컴퓨터 모니터, 각종 서류 봉투, 황금앵무새 깃털이 담긴 대형 지퍼백이 있었다. 머그잔은 적어도 일곱 개 이상 있었고 &amp;amp;lt;스타워즈&amp;amp;gt; 캐릭터인 다스 베이더 얼굴의 보블헤드? 인형도 하나 놓여 있었다. 박사는 심포지엄에 관한 노트를 한참 만에야 찾아냈다.&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h3&amp;gt;p. 341&amp;lt;/h3&amp;g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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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그들은 진정성을 추구한답시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을 만들려는 거죠”&lt;br /&gt;
&amp;lt;/poem&amp;gt;&lt;br /&gt;
&lt;br /&gt;
&amp;lt;!-- 원문: https://tungsten-roundworm-f97.notion.site/7f552089d609497fac844c85fa85163c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Maintenance scrip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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