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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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장편소설. 추천.


36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식구들은 오랫동안 간이 맞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너무 짜요." "엄마, 이건 국이에요, 찌개에요?" "한 달 내내 된장찌개인 거 알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수학 삼십점 맞았을 때 내가 혼냈니? 그리고, 넌 문방구에서 그 뭐냐, 장난감 조립하는 거, 그거 훔쳤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봐." 옆에서 말없이 밥을 먹던 할아버지가 도둑질을 했는데도 혼을 안냈어? 소리를 질렀다. "당신 돈 조금만 벌어왔다고 내가 잔소리한 적 있어요? 그러니 아무도 내게 잔소리하지 말아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식구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래도 장조림은 잘해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44 작은삼촌은 관객이 별로 없는 운동경기를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고교 육상대회 같은 것들. 포환던지기나 장애물 달리기를 보면 쓸쓸하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알 것 같다고 삼촌은 생각했다. 작은삼촌은 거실에 베개를 늘어놓고는 말했다. "한번 넘어봐." 삼촌은 내가 세 발짝에 한 번씩은 넘어져서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할머니가 물었다. "조기교육." 작은삼촌이 대답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베개를 넘어보려 했지만 베갯잇의 끝자락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는 할아버지가 쓰던 지압봉이 있었고, 거기에 이마를 부딪쳤다. 작은삼촌은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머니에게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어가며.

80 외할머니는, 세상이 심심해요? 하고 취재를 온 기자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왜 신기한 거요?" 외할머니가 보기에는 뒤집힌 차에서 살아나는 것은 기적에 속하지도 않았다. 외할머니의 단골손님 중에는 트럭에 깔렸지만 뼈 하나 부러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부인이 교통사고가 나서 결혼 십 주년 기념으로 가려던 여행을 포기했는데, 묵을 예정이었던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일을 겪은 사람도 있었다. "시멘트 반죽에 빠졌던 사람 이야기도 해줄까요?" 외할머니는 시멘트 반죽에 빠져 죽다 살아난 남자의 이야기를 내게 세 번이나 들려주었다. 항상 혼자 와서 족발과 소주 두 병을 먹고 갔다고, 그렇게 십 년이나 드나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고, 외할머니는 말했다. 그 사람 좋아했어요?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94 사실, 어머니는 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코를 골면서 자는 척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삼촌의 운동화를 몰래 버린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말해주곤 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자기보다 더 커버린 동생을 보게 될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어머니는 그 느낌을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더이상 동생들이 자신의 신발을 물려신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장남의 심정을.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 심정과 비교할 수 있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는 쓸쓸하다는 감정이 맞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잠든 아버지의 발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106 남자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운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왔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남자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직장도 그만 두었다. "그러니 아무도 안 만나고 싶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식당 주인은 사고로 가운뎃손가락의 손마디가 잘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붕대에 감긴 아들의 손을 보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병원 로비였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이 엉덩이 흉터 보이지? 어릴 때 솥뚜껑을 깔고 앉았단다." "그건 엉덩이잖아요. 전 손가락이고요." 그러자 다시 바지를 입은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당연히 니 손가락이 더 아프지. 하지만 내가 엉덩이를 데었을 땐, 세상 누구도 나보다 더 아플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175 저 멀리서 증조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도 그 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이 살짝 들리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면서 집에 가요,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심장이 멈추기 전에 집에 가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처녀 시절의 할머니 목소리와 똑같았다. 할머니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집에 가요, 였다. 그 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애를 할 때, 할머니가 술 취한 할아버지에게 자주 하던 말이기도 했다.

210 외할머니는 보일러 온도를 24도에 맞춰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거위털이불을 덮었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생각하면서.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자 외할머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해, 라고 중얼거린 뒤에 외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은 평상에 앉아서 마당에 널린 빨래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보던 아홉 살 무렵에 써보고는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250 슬픈 죽음이란 거의 비슷비슷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웃긴 죽음이란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253 나는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 새끼발가락이라니! 나는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는 환자가 되고 싶었다. 눈물이 흘러도 깁스를 한 두 팔 때문에 그 눈물을 닦을 수 없도록. 나는 죽을 때까지 발가락이 낫지 않기를 빌었다. 뼈가 아물 때면 나는 부러진 발가락으로 담벼락을 걷어차곤 했다.

265 작은삼촌은 자신이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 신었던 운동화를 빨았다. 칫솔로 운동화를 빨다가 삼촌은 그 칫솔이 아버지가 쓰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형, 애 발이 이렇게 자랐어. 형보다 발이 큰 아들을 둔 기분이 어때?' 작은삼촌은 중얼거렸다. 삼촌은 밤새 드라이어로 운동화를 말렸다. 그리고 자고있는 내 머리맡에 운동화와 운동복을 두었다. 방을 나가기 전에 삼촌은 내 옆에 누워 보았다. 자신이 나보다 조금 더 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쪼그리고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