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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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저한 프로이트적인 관점을 지닌 아버지의 주치의에게 왜 10대 딸은엄마에게 그렇듯 비판적이냐고 물어보았다. 의사가 대답했다. "10대의 몸에는 호르몬 에너지가 미친 듯이 돌고 있는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엄마에 대한 분노로 표출됩니다. 딸은 자신이 가임기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가족이 자기를 더 존중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것 같아요. 가족의 영속은 이제 딸에게 달렸지요. 딸이 그 영역으로 들어옴과 맞물려 엄마는 그 영역을 떠납니다. 엄마와 딸의 분쟁을 놓고 가족이 의논을 한다면 아빠들은 틀림없이 딸 편을 듭니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누이에 대해 그런 입장을 취했던 것 같지 않은데. 어머니가 계속 집안을 호령했던 것 같은데.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딸 편을 들지요. 가족이 생산력 높은 여성을 우선 보호하도록 유전자가 몰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딸이 엄마에게 느끼는 분노는 가임 능력을 통해 얻은 권력의 맛과 아이 낳는 사람으로 지정된 데에 대한 부담감이 섞인 것입니다." - 135
어떤 나이게 머물러 영원히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몇 살이기를 택하겠는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이도 높아진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람들은 27세라고 답하고, 25세에서 29세 사이는 31세, 30세에서 39세 사이는 37세, 40세에서 49세 사이는 40세, 50세에서 64세 사이는 44세, 그리고 64세를 넘은 사람들은 59세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지능지수는 18세에서 25세 사이에 가장 높다. 뇌는 25세에 최대 크기가 되고, 이후에는 쪼그라들기 시작하여 무게가 줄고 빈 공간이 액체로 채워진다. - 136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로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사람들이 창조적인 성취를 해내는 것은 대부분 30대 때이다. 드가는 말했다. ‘25세에는 누구나 재능이 있다.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위안이 필요하다면 지식적인 면을 생각하자. 어휘력은 20세일 때보다 45세일 때 3배 풍성하다. 60세의 뇌는 20세 때보다 정보를 4배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 143
미국의 철학자 니컬러스 머리Nicholas Murray는 말했다. ‘“30세에 죽었으나 60세에 묻혔다"라고 묘비에 써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생의 첫 30년은 삶은 사는 데 쓰이고, 이후 40년은 삶을 이해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는 숫자를 역전시켜서 말했다.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루소는 뭐라고 했을까.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같다. 10세에는 사탕에 휘둘리고, 20세에는 이성에, 30세에는 쾌락에, 40세에는 야망에, 50세에는 탐욕에 휘둘린다. 그 후에는 달리 남은 것이 없으니 지혜를 추구한다.’ - 151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기이다. 50세는 노년의 청춘기이다' - 209
에머슨은 말했다. ‘60세가 된 사람들이 일본인들처럼 할복해 죽는 게 유행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한느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계속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 215
토머스 핀천은 말했다. “소설의 ‘진지함'이란 결국 죽음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가령 등장인물들이 죽음에 임박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또는 죽음이 가깝지 않을 때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 것인가.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젊은 작가들이 이런 주제를 다루는 일은 거의 없다. 습작을 쓰는 나이의 사람들은 그런 충고를 받아봤자 절실하게 느끼지 못해서일 것이다.” - 218
나이가 들면 각막이 누리끼리하게 변해서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푸른 계통의 색은 더 짙어보이고 노란 계통의 색은 더 밝아 보이며 보라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화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짙은 푸른색이나 보라색을 덜 사용한다. - 220
미국의 금융인이자 정치가 버너드 바루크는 85세에 말했다. ‘노인이란 언제나 나보다 15세 많은 사람을 말한다.’ - 221
죽기 한 달 전, 97세의 버트런드 러셀은 아내에게 ‘세상을 떠나는 게 정말 싫소'라고 말했다.
프랑스 학자 베르나르 드 퐁타넬Bernard de Fontanelle은 말했다. ‘존재를 지속하기가 다소 힘들다는 기분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100세에 죽었다. - 232
시야가 넓어지고 마침내 ‘그저 게임일 뿐'임을 깨닫게 될 때까지는, 나는 아파했다. 아, 얼마나 아파했던가. 브루클린 범스라는 애정어린 별명으로 불렸던 나의 사랑하는 다저스는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다. 다저스가 연패를 하면 나는 신을 원망했다. 무한한 지혜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양키스 팬으로 만들지 않으셨나이까. - 235
보르쉬트 벨트 Borscht Belt : 미국 유대 극장에서 유행했던 코미디 양식으로, 자기비하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 특징 - 249
기원전 44년에 키케로는 말했다. ‘아무리 늙은 사람이라도 1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는 기원전 43년에 죽었다. 임종의 자리에서 미국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말했다. ‘누구나 죽어야 하지만 나는 늘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었다.’ 에드워드 영은 ‘누구나 사람의 생명이 유한한 것을 알지만 누구나 자신을 빼놓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이런 문답이 있다. ‘세상의 하고많은 놀랄 일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주변에서 남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 267
캘리포니아-어바인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마이클 로즈는 느지막이 번식한 초파리들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실험했다.(사람으로 치면 25세가 넘는 여성들만 아이를 낳게 하고, 그 딸들도 26세 이후에만 생식하도록 하여 여러 세대를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랬더니 초파리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조금씩 수명이 길어졌다. 지속적인 선택적 육종으로 탄생한 초파리들은 조상들보다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다. 로즈는 사람에게 비슷한 실험을 해본다면 열 세대 만에 기대수명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 269
‘인생은 늘 6대 5로 지는 도박이다' - 데이먼 러니언(미국의 기자이자 작가) - 281
Elaine Scarry는 ‘The Body in Pain’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어 다른 대상들의 자리를 삼켜버린다. 아주아주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의 세상은 자기 몸에서 반경 60센티미터 안의 원으로 좁혀진다. 무엇을 먹었고, 배출에 어떤 문제가 있고, 통증의 진행 정도는 어떻고, 의자나 침대가 편하네 편하지 않네 하는 내용이 생각과 말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 284
테니슨의 시 ‘Tithonus’에서 티토노스는 불멸을 원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영원히 늙는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티토노스는 죽고 싶다고 결정을 내린다.
… 나를 놓아달라. 선물을 도로 가져가라.
사람이 타고난 제 족속과 달라지려고,
또는 모든 자에게 합당하게 내려진
운명의 관문을 벗어나려고
조금이라도 욕망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를 풀어달라, 나를 땅으로 돌려달라. - 287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3세는 말했다.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왕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자연 속에서 고독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오직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얼마나 평온하게 죽었겠는가. 얼마나 당당하게 하느님 권좌 앞에 나아갔겠는가. 죽음 앞에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 그 모든 영광과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 289
다 빈치는 말했다. ‘나는 신통치 못한 업적을 남겨 신과 인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 296
나는 말 더듬는 버릇에 관해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말을 더듬는 사람은 사랑, 미움, 기쁨, 깊은 고통처럼 전형적이고 진정 중요한 감정들을 표현할 때에도 자의식을 완전히 떨칠 수가 없다. 적나라하게 감정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 아니고 그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더듬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먼저이다보니, 감정은 타인들에게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행복한 사람들의 소유일 뿐이지 내 것은 될 수 없으며, 솔직하지 못하게 돌려 표현할 수 있을 뿐이지 온전히 가질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 315
랩 가수 아이스티는 말했다. '우리 인생은 물 위로 잠깐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가라앉는 것이다. 인간도 이 거대한 정글에 사는 한 동물일 뿐이다. 우리가 가진 많은 본능은 전부 동물적이다. 우리는 화가 나거나 식량이 필요해서 남을 죽인다. (중략) 아이를 낳으면 자기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아, 이러자고 내가 태어난 거구나"하고 깨닫는다. 인생은 정말로 짧고 나도 곧 죽을 테니까, 나 대신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을 다른 사람이라도 남겨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엔 그저 다음 세대가 자랄 때까지 버티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 - "죽음은 언제나 추해요. 언제나. 존엄한 죽음 따위는 없어요. 존엄하게 살 수 있을 뿐이지." - '닥터하우스'중. (책의 본문이 아니라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