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ph
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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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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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고 싶어서 못살겠구나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는
애정의 나라 골짜기에
사향풀이 향기를 품는 금렵구(禁獵區)
—G. 아폴리네르(Apollinaire), '토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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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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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의젓한 어미 닭같이 동생들을 품고 있었다. 내 가슴이 한순간 요동쳤다. 너의 피가 양쪽으로 공평하게 흘러나가 네 동생들의 피와 뜨겁게 섞이는 것을 보았고, 동생들의 숨결이 껴안은 네 팔을 타고 흘러가 너의 가슴, 고동치는 숨결에 짙푸르게 고여드는 것도 나는 보았다. 그것은 일찍이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너는, 너희는 살아 있었고, 함께 있었다. 해는 더욱 찬란해졌다. 나는 비로소 그동안 네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이삿짐에 끼여 두 동생을 안고 있는 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세상의 살아 있는 길로, 나아가는, 트럭 위의 너와 네 동생들이 얼마나 근사했었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두 동생을 양팔로 싸안고 있는 너의 모습은 햇빛보다 환했다. 일상적 삶에 깃든 너의 참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