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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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저

아주대학교 교수.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 아도르노와 쇤베르크』 『계몽의 변증법 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아방가르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와 ‘자전적 사회학’의 첫 번째 시도였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구경꾼의 탄생』 등이 있다. [1]

출간일 2013년 10월 01일
쪽수,무게,크기 304쪽 | 376g | 146*210*30mm
ISBN13 9788997186341
ISBN10 8997186345


26

 수치심은 우리에게 실제 모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한다. 수치심은 자신에게 솔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에게 내밀한 것을 숨기라고, 위험한 것을 감추라고, 은밀한 것을 덮으라고 유혹한다. 또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사소한 것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빼버리거나 거짓으로 미화하게 하고, 빛과 그늘을 교묘하게 배치해 특징적인 성격을 이상적인 성격으로 수정하는 조형기법을 슬그머니 가르친다. 이런 달콤한 압력에 마음 약하게 굴복하는 자는 자기 묘사를 하지 못하고 반드시 자기숭배나 자기변명에 빠지게 된다

Stefan Zweig(2005), 나누리 옮김,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필맥, 12


31

... 고백은 많은 경우 자신과 대면하는 성찰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연극적 자아가 스스로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하는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 우리시대의 가장 흔한 고백은 자신의 내면과의 조우가 아니라, 페르소나 즉 '연극적 자아'가 행하는 목적의식적 행동이다.

178~179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곧 결혼생활로 들어갔다. 행복한 가정생활의 여러 새로운 환경이 나를 인생의 보편적 의의에 대한 탐구에서 떼어 놓았다. 생활은 완전히 가정과 아내, 자식들에게, 그리고 행복한 가정생활의 조건인 재산 증식에 기울어졌다. 이때 이미 나의 자아완성에 대한 욕망은 완전히 일반적, 보편적 완성에 대한 욕망, 즉 진보에 대한 욕망으로 변했고, 결국 나와 내 가족을 가능한 한 행복하게 하려는 단순한 욕망이 되어 버렸다.

<톨스토이 인생록 참회록>, 육문사, 261

192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적은 고통과 권태라는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적당히 멀어지게 되면 그만큼 다른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 우리의 일생은 거의 이 양자의 중간에서 때로는 강하게 진동하고, 때로는 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격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쇼펜하우어 (권기철 옮김, <세상을 보는 방법>, 동서문화사, 234)

196

혼자 사는 사람은 히키코모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히키코모리는 그가 은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람이다. 왕따가 타인들이 관계를 악용하여 만든 희생자라면, 히키코모리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자신의 은둔을 위해서 써먹고 착취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혼자 사는 것'은 관계의 희생양이 되는 것과는 관계가 없으며, 관계의 착취자가 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혼자라는 것'은 자율적이 된다는 뜻이다.

198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203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가장 훌륭한 존재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수록, 즉 인간이 향락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 많을수록 그는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 <세상을 보는 방법>, 239>

210

... 1인 가구는 인구통계학적 사실의 문제이지만,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은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채로 혼자 살게 된 사람은 때로는 가련하기만 하다. 단순히 부모의 잔소리가 지겨워서 독립에 대한 꿈을 키우다 마침내 혼자 살게 된 젊은이의 돼지우리를 방불케 하는 원룸은 혼자 사는 것과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전적으로 보여준다.

211

...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라고 또 한사람의 현인 파스칼은 말했다.

-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파리의 우울>, 민음사, 147

214

지난 백 년 동안의 위대한 시인들은 누구인가? 콜리지, 워즈워스, 바이런, 셸리, 랜더, 키츠, 테니슨, 브라우닝, 아널드, 모리스, 로제티, 스윈번 - 여기서 멈춰도 될 것이다. 이들 중에서 키츠와 브라우닝, 로제티를 제외하곤 모두 대학출신이며, 이들 세 명 중 한창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긴 키츠만이 유복하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야만적이며 서글픈 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로서, 시적 재능이 내키는 대로 바람처럼 불어 가서 빈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의 진실성이 없다. 엄연한 사실로서, 이 열두 명 중에서 아홉 명이 대학 출신이었고, 이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건 영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엄연한 사실로서, 나머지 세 명 중에서 브라우닝은 알다시피 유복했다. 만약 그가 유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울'이나 '반지와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스킨도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지 못했더라면 '현대 화가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 아서 퀼러 쿠치경의 '글쓰기의 기술', 버지니아 울프(2006), '자기만의 방', 161-162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