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6 부메랑
부메랑 - 새로운 몰락의 시작, 금융위기와 부채의 복수
마이클 루이스 (지은이),김정수 (옮긴이)비즈니스북스2012-02-10원제 : Boomerang (2011년)
p. 23
당시 미국 정부는 베어 스턴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저질러놓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조 달러에 이르는 부실 증권 관련 위험을 다양한 형식으로 흡수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다른 부유한 선진국 정부들이 취하는 것과 동일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간 금융기관의 고액 봉급자들이 저지른 부실 대출을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떠안았던 것이다.
카일 배스의 견해에 따르면 금융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부유한 선진국들의 전적인 신뢰와 신용으로 억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배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 사태가 어 떻게 귀결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 토론에 집 중하다 보니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들은 일부 채권의 부도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부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번뜩이는 투자이론은 새로운 것이었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2년부터 부유한 여러 선진국들에 거품 경기가 있었다. 외형상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사람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돈을 빌려 이룬 것이었다. 2002년 이후 전 세계의 부채는 공채와 사채를 합해 대략 84조 달러에서 195조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배스는 “세계 역사상 이토록 엄청난 부채가 쌓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p. 63
현재 세계 금융위기의 감춰진 원인 중 하나는 위기가 올 것을 예상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널리 알리려 하기보다 매도포지션으로 많은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슬란드를(혹은 리먼 브러더스를) 금융 범죄로 확실하게 고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 분 자기 이익만 돌보는 어리석은 모리배 취급을 받았다.
p. 69
사실 아이슬란드에서는 누구나 총리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대여섯 명 정도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인은 모두가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세계적인 금융인으로 대접받는 겁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총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아이 슬란드인에게 국가 붕괴에 관해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슬란드 금융정책 수립자들은 금융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상무장관은 철학자, 재무장관은 수의사, 중앙은행 총재는 시인이었다. 호르데 총리는 교육을 받은 경제학자지만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대학 경제학과는 그를 B- 학생으로 평가했다.
독립당의 지도자들은 금융에 무지하면서도 유능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금융 공황을 전공한 런던 대학 경제학부의 아이슬란드인 교수 욘 다니엘슨(Jon Danielsson)이 도 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고, 이는 아이슬란드 대학의 다른 저명한 금융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똑똑한 중앙은행장들의 충고도 무시했다.
독립당과 그 총리가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을 차에 태우고 가다가 유명한 건물을 찾지 못해 헤맬 때, 아내가 불평을 해도 차를 세우고 방향을 물어보지 않는 부류다.
pp. 75~76
새로운 부를 통해 아이슬란드는 변모했다. 1,100년 동안 외딴 벽지이던 그곳은 비외르크를 낳은 곳으로 바뀌었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유명한 음악인이 나온 이유는 그들에게 음악 연주를 비롯해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령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유학을 가는 것은 물론 온갖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어업 정책으로 변화가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 '대구'는 박사학위를 위한 도구로 탈바꿈했다.
물론 그런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들은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무언가 다른 일을 찾았다. 그 일이 아이슬란드의 다른 천연자원, 즉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에 취직하는 것은 아니었다. 폭포와 펄펄 끓는 용암은 어마어마한 동력을 생산했지만 석유와 달리 이 에너지는 수출이 불가능해 수익성이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동력은 아이슬란드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그 문제 앞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막대한 양의 동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일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찾아낸 해답은 알루미늄 제련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슬란드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이슬란드인은 어 떤 일에 적합할까?”
자신이 알루미늄 제련에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아이슬란드인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은 그 정반대였다. 2004년 거대한 제련공장 건설에 착수한 아이슬란드 최대의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Alcoa)는 아이슬란드에만 존재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민속 문화에 깊이 젖은 아이슬란드인 중에 엘프(elf) 요정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알코아는 제련소를 세우기에 앞서 울타리로 둘러싼 공장 부지를 샅샅이 조사해 땅 위나 밑에 엘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했다. 알코아 대변인이 내게 말한 대로 그것은 정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공장 부지에 엘프가 없다고 선언하려면 전문가를 고용해 작업을 하느라 돈과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대변인은 “회사로서는 엘프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p. 93
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 부문의 거의 세 배나 된다. 가령 국영철도는 연간 임금이 4억 유로에 기타 지출이 3억 유로인데 비해 연간 수익은 1억 유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영철도 직원의 연간 소득은 평균 6만 5,000 유로(약 9,500만 원)다. 재무장관을 지낸 스테파노스 마노스(Stefanos Manos)가 그리스의 철도 승객 전체를 택시에 태우는 것이 더 싸게 먹힐 것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노스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파산한 국영철도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평균 임금 수준이 그렇게 높은 민간회사는 단 한 곳도 없어요.”
그리스의 공립학교 제도도 기막힌 비효율성의 현장이다. 유럽에서 최저 등급에 속하면서도 공립학교 학생당 교사 수는 최고 등급인 핀란드보다 네 배나 많다. 여기에다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그리스인은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과외교사를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p. 101
설사 탈세가 적발될지라도 세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잘 무마할 수 있다. 물론 뇌물을 받는 세무원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그건 허울 뿐이다.
“세무원을 적발할 경우 기소하는 데만 7, 8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소득에 대한 조직적인 속임수 때문에 탈세가 어려운 세금, 즉 부동산세와 판매세에 대한 그리스 정부의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 었다. 부동산은 각 주택에 대해 소위 객관적 가치를 산출하는 공식(산출 과정에서 세무원을 배제하기 위한)에 따라 과세를 한다. 그런데 지난 10년에 걸쳐 그리스 경제가 호황을 이룬 까닭에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자산의 실제 가치가 컴퓨터를 통한 평가액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감안해 산출 공식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자 그리스 시민들은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대로 보고하지 않고, 허위 가격을 보고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응했다. 그 허위 가격은 대개 낡은 공식이 평가한 낮은 가격과 일치했다. 가령 구매자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을 경우 객관적 가치로 대출을 받고 그 차액은 현금 혹은 사채로 해결했다. 물론 객관적 가치는 실제 대지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다. 놀랍게도 그리스 의회의 의 원 300명 모두 자기 집의 실제 가치를 컴퓨터가 산출한 객관적 가치로 신고했다.
p. 119
또한 물질적인 세상에서 벗어나 있는 그 괴상한 사람들이 어 떻게 그 세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도 아닌 수도사들이 어떻게 하버드 경영대학원 사례 연구에서 그리스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혔을까?
두 시간쯤 지난 뒤 내가 용기를 내서 묻자, 놀랍게도 그는 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캐비닛에 붙여놓은 표지판을 가리키더니 그리스어로 적힌 내용을 번역해주었다.
‘현명한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고집한다.’
그는 관광부로 출장을 갔을 때 그것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수도원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도 적용되는 성공의 비결” 이라고 말한 다음, ‘자신에게 던져진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그것을 토대로 확장하라’는 말과 ‘아니요, 하지만’보다 ‘네, 그리고’ 라는 말을 하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어리석은 자는 자존심에 얽매입니다. 늘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요. 이는 남을 속이거나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생활에 밝은 사람은 겸손하지요.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즉 비판이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협력합니다.”
p. 147
“2006년 중반쯤 내 학생이던 젊은 은행원들이 일제히 TV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훌륭한 젊은이로 지금은 금융경제 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연착륙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켈리는 그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단정했다. 부동산 거품은 연착륙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품을 부풀리는 가장 확실한 요소는 사람들의 기대감이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이 영원히 상승하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 순간, 그들은 부동산이 얼마나 무서운 장기투자인지 깨닫고 신속하게 시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그 즉시 시장은 붕괴하고 만다. 부동산 붐의 끝은 붕괴라는 얘기다. 켈리는 자신의 제자들이 TV에 출연해 금융 전문가 노릇을 하면서 엉터리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을 통해 켈리는 아일랜드 노동력의 5분의 1 이상이 현재 주택 건설업에 고용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흥미롭게도 아일랜드 건설업은 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팽창한 상태였다(정상적인 경제의 경우 10퍼센트 미만). 아일랜드는 해마다 영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택을 새로 지었는데, 주택을 제공할 인구는 영국이 아일랜드보다 15배나 많았다.
켈리는 1994년 이후 더블린 주택의 평균 가격이 50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더블린의 일부 지역에서는 임차료가 구입 가격의 1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
pp. 176~178
돌이켜보면 그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결정은 이상하다 못해 자멸적으로 보인다. 소수의 금융인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1000억 유로에 가까운 빚을 졌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짓을 했다. 그들의 부채는 분명 개인적인 것이었음에도 아일랜드 국민은 그것이 마치 나라의 부채인 것처럼 상환할 책임을 졌다. 2년 동안 그들은 끽 소리 못 하고 불가능한 짐을 지고 허덕여왔다. 더구나 2008년 9월 29일 이 후에 이루어진 정책 결정은 모든 국민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옭아 맸다.
2009년 1월, 아일랜드 정부는 앵글로 아이리시 뱅크를 국유화 하고 340억 유로에 이르는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손실액을 떠맡았다. 2009년 말, 그들은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의 아일랜드판인 국가 자산 관리 공사(NAMA, National Asset Management Agency)를 설립했지만, 미국 정부와 달리 끝까지 손실을 떠맡아 아일랜드 은행들로부터 800억 유로에 이르는 쓰레기 같은 자산을 매입했다.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아일랜드는 침몰했다. 내가 레니한에게 그 것에 대해 묻자 그는 마치 대화에 부적합한 주제라도 되는 듯 짜증을 냈다. 그는 그것이 좋은 결정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아일랜드의 금융 시장 규칙은 영국의 법률을 본뜬 것으로 채권자는 영국의 법률 아래 일반 예금자와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다시 말해 아일랜드 은행 채권 소유자를 구제하지 않고 예금한 일반 대중을 보호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얘기가 아닌가. 미국의 재무장관 행크 폴슨(Hank Paulson) 역시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킨 것은 용감하고 원칙적인 행위가 아니라 파멸적인 행위였음을 깨달은 뒤, 법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두 경우 모두 법을 존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것은 좁은 의 미에서는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거짓이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선순위 채권 소유자에게도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다. 모건 켈리의 설명을 들어보자.
“선순위 채권 소유자들은 정부에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겁니다. 정부는 국민을 징집할 수도 있고 사지로 보낼 수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30일, 레니한은 은행의 부채를 보증하기 위해 메릴린치와 똑같은 주장을 폈다. 즉, ‘금융위기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금융 시장에 아일랜드 은행에 대한 대출은 곧 아일랜드 정부에 대한 대출이라고 알려라. 그러면 투자자들은 안심할 것이다.’ 이것이 레니한의 생각이 었다. 그 누가 아일랜드 정부의 신용을 의심할 것인가?
몇 달 후, 은행의 손실이 너무 커져 정부를 파산시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일자, 레니한은 정부가 개인 투자자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시했다. 즉, 은행 채권을 저축 은행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손실을 떠맡지 않으면 예금자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 주장에 대해 채권을 소유하지 않은 저축 은행들로부터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정부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선물을 베푸는 것에 반대했다. ‘귀도 포크스’(Guido Fawkes)라는 금융 관련 폭로 블로그는 외국인 채권자 목록을 입수했다. 그 목록에는 독일 은행과 프랑스 은행, 독일 투자펀드, 골드만삭스가 포함되어 있었다(그렇다. 아일랜드인은 골드만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아일랜드는 분명 은행 손실로 파산했지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듬해 여름까지도 내게 여러 차례나 “아일랜드는 자금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는 아일랜드 정부는 이듬해 6월까지 부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한 현금을 은행에 비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깨닫지 못했다.
사실 아일랜드는 2008년 9월 이후부터 갈수록 심하게 채권자들에게 휘둘려왔다. 이제 정부 소유가 된 은행은 파산을 막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에서 850억 유로에 달하는 단기대출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레니한은 재무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유럽 연합의 압력으로 IMF를 불러들이고 종합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이게 될 터였다.
p. 213
주차장으로 은폐한 그 벙커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명패만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에 벙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베를린 거리는 잘 꾸며놓은 성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책임을 덜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뉘우치기가 훨씬 더 쉬운 법이다. 독일인이 조상들의 죄를 그토록 떠들썩하게 표현하는 까닭은 그것이 더 이상 개인적이거나 혹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물론 모두가 학살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두 가 죄인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도 죄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만약 어떤 화성인이 그 역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베를린에 나타난다면, ‘유태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떻게 이곳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하며 궁금해할 것이다. 사실 독일에는 유태 인이 거의 없거나 드물다. 베를린의 아메리칸 아카데미 소장 게리 스미스는 보다 현실적인 얘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인은 유태인을 거의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유태인은 거리가 먼 존재지요. ‘유태인’ 하면 그들은 먼저 희생자들을 떠올립니다.”
독일인은 희생자들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더 유난스럽게 그들을 기념한다.
pp. 225~226
이들은 골드만삭스의 프롭 트레이딩과 월스트리트의 다른 대형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에 역배팅을 하려는 영악한 헤지펀드를 위해 공들여 설계한 베팅의 먹이가 될 사람들이었다. 뢰티그는 IKB의 포트폴리오가 2005년 100억 달러에서 2007년 200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매입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마 그 액수는 더 커졌을 겁니다. 그들은 시장 붕괴했을 때도 여전히 매입하고 있었죠. 300억 달러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7년 중반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모든 투자은행이 서브프라임 시장이 붕괴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애썼다. 월스트리트의 여러 인사가 내게 말했듯 ‘전 세계’의 마지막 채권 매입자들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고집 센 독일인이었다. IKB가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로 150억 달 러 이상의 손실을 입지 않은 것은 오로지 시장이 기능을 멈춘 덕분이었다. 어떤 사건, 어떤 사실, 어떤 정보도 그들의 투자 방향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외형상 IKB의 독일인 채권 트레이더들은 시티그룹, 메릴 린치, 모건 스탠리의 무모한 트레이더들과 비슷했다. 그들 역시 어리석은 베팅을 했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그들이 전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서브프라임 채권 시장의 위험을 모른 체함으로써 자기 회사를 무너뜨렸지만, 그들 자신은 그 거래로 돈을 벌었고 대부분 그에 따른 해명을 요구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은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고도 돈을 벌었으며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독일의 채권 트레이더들은 1년에 대략 10만 달러를 받았고 상여금도 기껏해야 5,000달러 정도였다. 이처럼 독일의 은행원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은행을 파산시킨 대가를 쥐꼬리만큼 받았는데, 이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트레이더들과 달리 독일 대중에게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다. IKB의 전 CEO 슈테판 오르자이펜(Stefan Ortseifen)은 징역형을 받았고(이후 집행 정지됨) 은행으로부터 봉급 80만 5,000유로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pp. 253~260
— 미국 안의 그리스 사태,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중에 〈터미네이터 3>가 개봉되었다. 그때 문득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갑자기 정치에 마음이 끌리더군요.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난 제이 레노(Jay Leno, 미국 ABC방송 <투나잇 쇼> 진행자 — 옮긴이)에게 출마하겠다고 말했죠. 그리고 2개월 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해변을 벗어나 평면 도로를 달리던 그는 4차선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 이르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어요.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참모들은 누구인가? 난 계획도 없었고 참모도 없었죠. 제이 레노한테 갈 때 까지 출마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뜻하지 않게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는 정부가 해결책이라기보다 오히려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정부는 주민보다 정치인이나 다른 공무원들을 위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슈워제네거는 미국인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행동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담한 결정을 내렸고 대가를 받고 청탁을 들어주는 일이 없었으며 반대자를 공정하게 대우했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신속하게 인정 하고 그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자신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한 보기 드문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어긋나는 의제를 추진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즉각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그의 전 수석보좌관 수잔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죠. 하지만 그는 늘 상관없다고 했어요. 그렇게 말한 일 중 90퍼센트는 좋은 결과를 얻었죠.”
하긴 평생 민주당원으로 살아온 수잔을 고용한 것도 공화당원 지사가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임기 2년째로 접어든 2005년 중반, 그는 장기적으로 모든 주민에게 유익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단기적인 욕구를 버리도록 설득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캘리포니아 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했다.
“내게 충격적인 순간들이 있었지요. 교도관의 연금을 개혁하려 하자 갑자기 공화당원들이 일제히 결집해 반대를 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일은 되풀이해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그래요, 이건 최고의 아이디어군요! 그 안에 찬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찬성표를 던지면 어떤 이익집단이 내게 화를 낼 겁니다. 그게 내가 찬성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군인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 가는데, 그들은 정치 생명이 위태롭다는 이유로 옳은 일을 마다했으니까요.”
결국 슈워제네거는 비장의 카드, 즉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2005년 11월, 4대 개혁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했다. 4대 개혁이란 정부 지출 제한, 선거구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 — 옮긴이) 금지, 공무원 노조의 선거 지출 제한 그리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전임교사가 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4대 개혁안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주 정부의 점점 심각해지는 재정 위기와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투표에서 패배했고, 그는 임기 말까지 사실상 권력 누수에 시달렸다.
<캘리포니아 붕괴>(Califormia Crackup)라는 흥미로운 책은 이 문제를 좀 더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는 언론인이자 초당파적 싱크 탱크인 조 매튜스(Joe Mathews)와 마크 폴(Mark Paul)인데, 그들은 슈워제네거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극히 당파적인 선거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대개는 당파적인 사람을 공직에 선출하며 그들이 새로운 조세 제도를 시행하거나 규모가 큰 지출을 결정하려면 의회에서 3분의 2의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 만약 공통적인 의제가 생길 경우, 주 정부는 주도적으로 유권자의 힘을 빌려 의회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기 제한을 감안하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최대한 경멸을 조장할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비선출직 공무원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오래 근무하므로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정치인에 대한 주민의 혐오감은 깊어진다. 마크 폴이 말한 대로 ‘경멸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선출한 사람을 최대한 경멸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마크는 깊이 살펴보면 그러한 상황은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여론조사를 보면 주민들은 서비스를 원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민들은 지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얻고 있다.”
정부를 경멸한다고 주장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빚을 지게 되었다. 2011년에 캘리포니아의 일반 주민은 수입이 4만 3,000달러인데 비해 부채는 7만 8,000달러였다. 지도자들은 짧은 임기일망정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취임하지만, 이내 그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 정치의 문제는 개인적이며, 제도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정치를 초월해 지도자가 독립적으로 주민 의 의지를 반영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는 슈워제네거의 등장은 최고의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주지사 소환 자체는 새로운 정부, 새로운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이었다. 슈워제네거는 임기 중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공화당원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민주당원처럼 굴기도 했다. 그는 최대한 의회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효과가 없을 경우 그는 의원들을 가리켜 계집애 같은 사내들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런 다음 주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의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 미래를 저당잡히다
슈워제네거의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주지사로서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근로자 보상제도를 개혁하고 공개 예비 선거를 치를 수 있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의회가 아닌 공정한 위원회가 선거구를 정하게 했다. 그러나 주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고 지출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사실상 모두 패배했다.
임기 첫해에 슈워제네거는 지출을 삭감하려 했지만 삭감할 수 있는 것은 정부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항목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째 해 임기 말에 그는 공화당 의원 네 명을 설득해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절대 다수를 확보한 뒤, 소폭의 세금 인상안 을 간신히 통과시켰다. 그를 도와준 공화당 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모조리 의석을 잃었다.
2003년 7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된 그는 자신에게 주 정부의 재정 문제를 바로잡을 권한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2011년 25퍼센트 미만의 지지율에다 바로잡은 게 거의 없는 상태 에서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상식에 따라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전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를 소환한 것은 유권자였고 나를 선출한 것도 유권자였습 니다. 그러니 주지사 임무를 수행할 도구를 건네주는 것도 유권자여야 하겠지요. 그런데 유권자들은 그 도구를 빼앗아가더군요.”
슈워제네거의 경제 담당 보좌관 데이비드 크레인은 우울한 재정 통계 수치의 긴 목록을 작성했다. 예컨대 슈워제네거가 사임할 때 주 공무원들의 연금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취임할 때보다 두 배나 늘어나 있었다. 주 정부가 공무원에게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액수와 당장 지급할 수 있는 액수의 공식적인 차이는 대략 1,050억 달러였다. 그것은 회계상의 조작일 뿐 실제 수치의 절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크레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2011년에 주 정부는 공무원의 봉급과 복지 혜택을 위해 320억 달러를 직접 지출할 예정인데, 이는 지난 10년에 걸쳐 65퍼센트가 상승한 수치입니다. 반면 고등교육에 대한 주 정부 지출은 5퍼센트 감소하고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는 단 5퍼센트 상승했죠. 공원과 오락시설도 약간 감소했습니다. 전체 예산에서 급속히 상승하는 고용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크레인은 정부에 대해 특별히 적대감이 없는 평생 민주당원으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그 수치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2010년 주 정부는 3만 명 미만의 교도관과 다른 교도소 시설 직원에게 60억달러를 지출했다. 마흔다섯 살에 교정직에 근무하기 시작한 교도관은 5년 뒤 봉급에 가까운 연금을 받고 은퇴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공무원은 주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가석방 심사 담당 정신과의사다. 2010년에 그는 83만 8,706달러를 벌었다. 교도소에 60억 달러를 지출한 그 회계연도에 고등교육, 즉 학생 67만 명이 있는 서른세 개 캠퍼스에는 겨우 47억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30년에 걸쳐 주 예산 가운데 캘리포니아 대학을 위한 몫은 30퍼센트에서 11퍼센트로 떨어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1980년에는 한 학생이 수업료로 연간 776달러를 지불했지만 2011년에는 1만 3,218달러를 지불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캘리포니아 주의 장기적인 미래가 희생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사실과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접한 보통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7년간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를 지낸 슈워제네거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뜻대로 정치를 펼치지 했음에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우린 멋진 시간을 보냈죠! 물론 좌절할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같은 삶을 원하죠. 난 특이한 상황에서 선출되었고 특이한 상황에서 떠났을 뿐입니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이처럼 떼를 써서는 안 되지요.”
특이한 상황이란 끝없이 지속되어온 재정 위기를 뜻한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인터넷 거품 뒤에 파산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고 주택 거품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물러났다.
그가 캘리포니아 경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처음 알아챈 것 은 2007년 중반이었다. 예산 협의를 마무리한 그는 비록 거짓이긴 했지만 예산이 균형을 이뤘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치에 도달했다. 그때 한 보좌관이 그에게 그달의 세수입이 예상보다 적다는 경고를 날렸다.
“갑자기 그달의 세수입이 3억 달러나 부족했습니다. 아차, 싶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그 직후 그는 백악관을 방문해 늘 그렇듯 낙관적인 연설을 했다.
“마지막에 그 친구가 내게 솔직하게 털어놓더군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밖에 나가 떠들어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주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죠. 딱 한마디 하더군요. ‘수치를 몇 가지 살펴봤는데 문제가 추해질 겁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는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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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협상 과정에서 그들은 미래에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은연중 암시한다. 그들이 그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결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낙관주의는 때로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을 보상해주는 묘한특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