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3 디디의 우산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은이)창비2019-01-20
목차
67~68
d가 그들을 알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d는 헐거워진 모자를 고쳐 쓰며 얼굴을 찌푸렸다. 너를 아느냐고? 이 장소를 벗어난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자신을 아느냐고 물으면, d는 그 얼굴을 몰라볼 것이고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르니까. 모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알 이유 도 없으니까. d가 혐오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같이, 그들도 같을 것이다. 똑같이 혐오스러울 것이다. 혀를 내밀어 음식을 먹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치고 다니고, 자신이 지닌 사물로 사람을 찌르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며, 알고도 굳이 개의치 않고, 비대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감이 뒤죽박죽 섞인 인격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타인. 거짓말 로 살아가는 사람들.
93~94
물론 사람이 늘면 상권은 형성될 것이다. 지금과는 뭔가 다른 형태의 상권이. 여소녀는 창을 통해 3층 보행 데크를 내려다보았다. 60년대에 그 이름처럼 원대한 계획으로 설계되었다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애매하게 끊어진 형태로 구현되었고 한차례 그야말로 끊어졌다가 이제 다시 원대한 계획의 일부가 된 공중가로는 지금 2월 태양의 싸늘하고도 엷은 빛을 받고 있었다. 길거리 구둣방처럼 생긴 박스들이 데크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문을 닫았고 문을 연 박스 속에서는 젊은 남자가 햇빛을 등지고 앉아 컴퓨터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비아그라나 담배, 감시용 카메라를 판다고 적힌 짧은 입간판이 그늘에 놓여 있었다. 어쨌거나 저곳을 오가는 사람이 늘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 임대인들은 즉시 세를 올려받으려 할 것이다. 재정비 프로젝트를 준비하는자들의 계획에 따르면 여소녀 자신과 같은 기술자들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콘텐츠였으나⋯⋯ 기술자이자 상인인 그들 모두 결국은 세입자이며⋯⋯ 세가 오르면 특별히 영세한 업체가 많은 이 상가에서 상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될 수도 있었다. 여소녀는 생각했다. 상가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것은 아니지.
무릎에 펼쳐진 신문이 바람에 부풀었다. 여소녀는 신문을 두번 접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싶은 기사를 위로 오게 해두었다.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본문에 다섯차례나 언급된 재생,이라는 말이 여소녀는 마음에 걸렸다. 무엇을 재생한다고?
113~114
그런데 그것을 아시나요?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이유가 환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북측에서 해변을 산책하다가 남쪽에서 생산된 라면 봉지를 주웠는데 이런 안내문이 적혀 있었대요. 불량품은 판매처에서 교환이나 환불을 해드립니다. 그것을 읽고, 남쪽엔 라면을 쌓아놓고 파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속한 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된 나머지 귀순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그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두 손으로 조종간을 붙들고 목적지를 향해 전투기를 몰아갔을 그 새끼가 너무 부럽다⋯⋯ 남쪽의 가요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두고 음악이 흐르는 전투기에 실려 북측과 남측의 경계를 향해 날아가던 순간, 그 아득한 허공을 날던 순간의 그가 말입니다.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139
그러게요, d는 생각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모르겠다고 d는 대답하려고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니 입에 힘이 들어가고 턱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웃는 얼굴이 되었을 거라고 d는 생각했다. 귀가 딱딱하게 뒤로 젖혀지고 입이 당기고 턱이 굳고 눈도 좁아 졌다. 이것이 웃음일까? d는 생각했다. 지금 내 얼굴의 상태, 이 불편한 구겨짐, 이것이 웃음일까? 그런데 뭐가 웃겼지? 아버지의 질문이 웃겼나? 명치가 간질거렸다. d는 폭소를 터뜨릴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모르겠다고 d는 대답할 수도 있었다. 모르겠는데 실은 모르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왜 함께 오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너무 하찮기 때문이라고. 나도 dd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가 너무 하찮아서, 충돌 한 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167~168
서수경은 괜찮은 기록을 내는 선수였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육상부도 없고 제대로 된 훈련체계도 없는 학교의 선수로 출전했지만 출전한 종목에서는 대개 우승했다. 서수경이 달리면 선생들과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 그것을 보러 모였다. 언젠가 나는 군중 속에서 서수경이 달리는 모습에 무언가가 있다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모습에 무언가가 있다기보다는 무언가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달릴 때 서수경은 그저 달렸다. 욕심이나 걱정 없이, 바로 옆 트랙에서 출발한 경쟁자나 골라인이나 기록에 대한 관심 없이, 불필요한 움직임이나 괜한 버릇도 없이 꼭 필요한 동작만으로 서수경은 달렸고 그 모습에 훗날 내가 생떽쥐뻬리의 책에서 읽은 문장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기둥이나 배의 밑바닥, 비행기 동체의 곡선을 묘사하며 그가 말한 바와 같이, “덧붙일 것이 없”는 것이 아니고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내가 서수경을 처음 본 순간에도 서수경은 달리고 있었다. 남학생들의 장거리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간식으로 받은 델몬트 주스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냉장장비도 없이 궤짝에 보관되어 미지근하고 달짝지근할 뿐 갈증 해소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오렌지 음료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 남학생 장거리 그룹이 마지막 바퀴를 돌아 골라인을 향해 갔고 그 얼마 뒤, 흰 저지 팬츠와 셔츠를 입은 선수 한명이 가볍고도 맹렬한 기세로 트랙을 달려 내 앞을 지나갔다.
173
“보지는 어떻게 씻었냐 드러운 년들.” (연세대를 포위한 9일간 경찰은 학생들에게 식량도, 의약품도, 심지어 여성용 위생용품조차 반입 시키지 않았다. (⋯) 8월 20일 연세대 내에 진입한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없는 성적 추행과 폭력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 이들은 건물에서 여대생들을 연행하며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앞사람의 허리 를 잡고 몸을 숙여 이동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여학생이 몸을 숙이면 그 뒤에서 여학생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졌다고 한다. (⋯)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꼭 데모질이야. 아무도 안 놀아 주니까 꼭 데모를 해요. 야. 맞지? 남자애들한테 퇴짜를 맞으니까. 야. ×× (여자 성기 표현)는 어떻게 씻었냐? 어휴, 드러운 년들. 열흘 동안 닦지도 않았지? 암컷 내 난다. 야, 얼마나 대줬냐? 사수대 수고했다고 그 짓 해줬지? ×같은 년들.’” 고상만 「‘초선’ 추미애가 국감장서 쌍욕 읊은 이유」, 『오마이뉴스』 2016.8.29.)
184~189
나는 악기를 다루는 것이 좋았고 오로지 그것 때문에 동아리방에 드나들었다. 북과 장구를 두들길 때 말고, 대학 생활이란 여름 아침 안개처럼 내게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정말 여름 안개 속에서, 동아리 동기생인 J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었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밤새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큼한 공기와 곰팡내를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와 선선한 아침 공기를 바라며 거기에 앉아 있었지만 아침부터 기온은 높았고 바람은 전혀 없었으며 무릎 높이로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아침 벤치에서 J가 내 어깨에 머리를 얹은 채로 말하는 연애담을 들었다. 여자들이 자기 때문에 자꾸 죽는다. ⋯⋯두명의 여성이 자기 때문에 싸우다가 목숨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자기는 지금 괴롭고 앞으로도 평생 괴로울 예정이라는 이야기부터 그가 가장 경애한다는 아티스트가 미시마 유끼오라는 이야기까지. J는 미시마 유끼오가 다자이 오사무를 추남이라며 공개적으로 혐오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나 자기가 쓴 소설 내용처럼 할복이라는 형식을 택해 삶을 마감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탐미를 추구하다가 문학과 삶이 일치되어버려 죽음에 이른 그의 삶을 미학적으로 높이 평가한다는 J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장의 냄새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재래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의 마지막 코스인 좁은 골목에 보신용 고기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오가며 맡은 닭과 개의 냄새로 잡식하는 몸의 내장 냄새를 알았다. 그 냄새를⋯⋯ 미시마 유끼오가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말하지는 않았고 다만 여름 안개 때문에⋯⋯ 가뜩이나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옷 위에 기묘한 각도로 얹힌 그의 머리통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보다 키가 크고 허리도 길고 마른 그가 이렇게 내 어깨에 머리를 얹으려면 자세가 많이 어색하고 불편할 텐데 굳이 왜 이러고 있을까.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자신에게는 여자들이 죽어나갈 정도의 매력이 있다고 내게 고백하면서, 이렇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가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고 해도 거절할 텐데 왜냐하면 그가 입은 옛날풍의 양복저고리와 어깨뽕이 너무 거슬려서⋯⋯ 그만하자.
1996년에 내가 연세대학교에 있었던 이유는 그것과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여름 아침 안개처럼 부유하다가 엉뚱하 게 굴러들어간 장소가 거기였다.
1996년 8월 이후에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명기 한총련 의장은 수배된 뒤 구속되었으며 운동권에 대한 대학사회의 혐오, 특히 연세대 학내의 운동권 혐오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시위·집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감정도 악화되었다. 체감상 학생운동은 끝났다. 8월의 연세대학교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바로 그 장소에서의 마지막 슬로건이었던 “집에 가고 싶다” 에 대한 수치심과 무력감을 지닌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세수와 양치를 했으며 단 며칠간 경험으로 바싹 야위고 만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엔 자기 앞마당이나 쓸자는 생각을 깨달음으로 간직한 채 학교로 돌아갔다가 이윽고 몰아닥친 구제금융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학교를 영영 떠나거나⋯⋯ 자기 앞마당 관리에 집중했다. 국민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잔혹하게 진압한 정부로부터 싸울 이유를 찾아낸 사람들도 있었으나 소수였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이들은 더욱 소수였다.
서수경과 나는 1996년의 고립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각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말이다. 그 고립의 기억은 잊혀지지는 않고 다만 묻혀 있다가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대로에 명박산성이 등장했을 때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남일당 건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을 때 구체적으로 환기되었다.
2008년 6월에 광화문 대로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벽은 시위대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기름이 도포되어 있었고 명박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즉시 많은 이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샀지만 이 벽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서수 경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명박산성 이후 빠르게 발전해 마침내 세련된 형태로 완성된 차벽 봉쇄는 아마도⋯⋯ 96년 학생운동권의 고립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는 게 서수경의 추측이었다. 96년이 체제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고 서수경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관리자들은 90년대 대학 운동권의 몰락으로 학습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위대를 향한 대중의 혐오 같은 것. 1996년의 연세대 사태는 ‘폭력적’ 시위대를 향한 대중의 혐오라는 것을 국가세력과 시위대가 동시에 목격한 사건이기도 했는데, 전자에게는 그 양상이 꽤 흥미롭게 여겨졌을 것이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1996년 8월 15일에 연세대학교의 그 육중한 철문이 포클레인으로 뜯겼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을 뜯어낸 쪽이 정부였는데도 시위대의 폭력성을 개탄했지. 유레카. 고위 관리 중에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폭력이라는 틀을 씌운다. 수단으로써 그것은 철저하고도 완전한 발견이었을 거야. 물리적 봉쇄와 이념적 봉쇄, 운동과 일상의 격리. 말하자면 일상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의⋯⋯ 박리. 뭐가 됐든 차벽이 그것을 완성시킬 것이다.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 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에 손을 대고 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 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 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둔 뒤, 시위대가 다녀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파손된 차벽과 도로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서진 재물, 재산을. 운동이 아닌 관리자의 방향으로 대중의 공감이나 이입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되도록 하는 데에 재산 손괴,만큼 효과적인 광경도 없을 거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 더 쉬우니까. 왜 그게 더 쉬운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여기서는 그게 더 쉽고, 뭐가 더 쉬우면 쉬운 쪽으로 되어간다. 뭐가 그렇게 되기 쉬우면 뭐는 곧 그렇게 되지 여기서는.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
200
그 뒤로 K의 화가 내게 쏟아졌다. 사적인 접근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공적으로 내게 폭언을 쏟아내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업무를 지시하고 내가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면 최대한 미적거리다가 내 실수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는 즉시 내 자리로 찾아와서 얼굴 앞에 그걸 들이밀며 소리를 지르고 그러고도 마치 분한 사람처럼 한동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씩씩거리며 서 있다가 가버리고는 한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악의가 너무 분명해 관리부 부장이 그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자 그는 자기가 뭘 했느냐고 반문하며 왜요, 나 때문에 사람 하나 또 그만둘까봐요? 라고 대꾸했다. 나는 그 대화로 K에게는 패턴이 있고 이 사무실에서 전례가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래에 와서야. 그런 전례를 알고도 내게 K를 밀어붙인 사무실 사람들은 요즘도 이따금 내게 와서 K가 어제 회식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무슨 말을 했다느니 어쨌다느니, 소식을 전하며 내게 묻는다. 그런데 정말 그에게 마음이 없었느냐고.
야, 이 야차 같은 인간들아.
209
김소리와 내가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낸 집에는 어두운 밤색 마루를 깐 시원한 거실이 있었다. 거실의 북쪽 벽면엔 유리 문짝이 달린 책장이 있었고 그 선반들엔 우리 자매가 사촌들에게 물려받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어린 시절을 보낸 사촌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 그 중에 가장 특별한 책은 계몽사에서 출간된 소년소녀세계 문학전집이었다. 1976년 판본이었으며 총 50권으로, 읽은 흔적이 거의 없고, 엉성한 듯 아름다운 삽화가 실린 책들 이었다. 각각의 낱권은 붉은색 마분지 껍데기에 담겨 있었고 책의 겉장 역시 딱딱한 마분지였으며 속 지질이 몹시 거칠었는데 펼치면 책장에서 보릿가루나 옥수수빵 냄새가 났다. 나는 그 책들을 몇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며 책의 물성에 대한 애착을 키웠다.
219~221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글에서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김선욱,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역자 서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한길사 2006)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는 김학이 선생이 지적했던 것처럼 ‘평범성’보다는 ‘상투성’에 가까운 말인 듯하다.(“한국의 학자들 대부분은 ‘banality’라는 단어를 ‘평범성’으로 번역하는데 이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 아렌트는 1965년 증보판의 후기에 그 개념을 ‘무사유’로 해석했다. 여기서 무사유란 상투어만을 사용하기에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얄팍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뻔하다는 것이다.”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 1권 역자 서문, 개마고원 2008)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악의 어떤 측면은 평범성이라기보다는 상투성에 그 기원이 있을 것이다.
종북과 좌빨.
몇십년 동안 구독해온 신문의 어휘와 논조를 그대로 닮은 아버지의 말에서 나는 아렌트가 묘사한 아이히만 식의 상투성을 본다. 즉 말하기, 생각하기, 공감하기의 무능성을.
아버지는 이제 칠십대에 접어들었고 누군가가 식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곤경에 빠지고, 어느 서랍에 자기 양말이며 바지가 들었는지를 잘 모르고, 잘 씻지 않고, 아파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서 어머니를 안달복달한 상태로 밀어 넣고, 자신을 내버려둔다고 딸들을 원망하며 누군가를, 무언가를 혐오하는 데 전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음도 늙음도 혐오하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노조 활동과 폭로와 노무현인데, 파업은 빨갱이 활동이고 삼성의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비열한 배신자이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당찮은 자리까지 올라간 범인凡人이다. 막노동에 나보다 많이 버는 것들이 무슨 노조며 파업이냐,라는 그의 불쾌에는 노동 혐오와 노동자 혐오가 동시에 있고, 그보다 더 근본에는 약함을 혐오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고,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분노나 혐오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말이 ‘권위도 뭣도 없다’라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노동자, 김용철, 노무현을 향한 그의 혐오는 같은 물줄기가 아닐까,라고 김소리와 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그는 힘없음無力을 혐오한다. 그는 약함을 혐오한다.
아버지에게 힘이란 무엇이고 권위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1980년대에 우리 가족이 사용했던 양철 밥상이 생각난다. 꽃과 이파리와 공작 그림이 색색으로 프린트된 둥근 은색 밥상. 1986년 아시안게임 체조 종목에서 서선앵(86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후 부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 선수가 금메달을 딴 날에도 우리는 그 밥상을 사용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서선앵 선수의 평균대 경기를 보도한 그날 뉴스의 끝자락쯤에 전두환과 노신영(18대 국무총리,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임)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아빠, 대통령이 죽으면 국무총리 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는 거지요?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양철 밥상이 튀어 오르도록 다급히 몸을 기울여 손으로 내 입을 막 았다. 나는 단지 내가 아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을 뿐인데
230~231
재작년에 존 클라센의 그림책인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This Is Not My Hat를 함께 읽었을 때에도 그랬지. 우연한 기회에 작은 모자를 훔친 물고기가 모자를 숨기려고 물속을 나아가며 모자에 관해 몽상하다가 모자의 본래 주인인 거대한 물고기가 따르는 후방을 알지 못한 채 물풀 속으로 천진하게 사라지는 그 이야기 말이야. 작은 물고기는 아무도 자길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며 물풀 속으로 들어가지만 큰 물고기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고, 이윽고 모자를 되찾은 큰 물고기가 물풀 숲을 유유히 떠난 뒤 마지막 페이지에 물풀 숲이 남는다. 이 마지막 장에 이르자 정진원은 몹시 당황하면서 그림책을 자기 앞으로 당기더니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겉장에 접착된 마지막 장을 손가락으로 긁어 떼어내려고 하면서 그 속에 한장이 더 있을 거라고 믿는 것처럼, 감춰진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더니 물고기가 어디로 갔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몹시 놀란 참이라서. 물풀이 우거진 마지막 페이지는 너무 고요해 보였고 그게 내게 뜻하는 바는 곧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화자의 죽음이었다. 작은 물고기의 죽음. 존 클라센은 그 페이지에 검은색, 갈색, 자주색 물풀만을 그려놓았지만 나는 작가가 그 속에 작은 물고기의 사체를 감춰두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 작은 물고기의 사체가 감춰져 있다. 두번을 보고 세번을 보아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보면서 물고기의 행방을 묻는 조카의 곁에서 나는 당혹스러웠고 무능했다. 내게는 죽었다,거나 먹혔다, 밖엔 답이 없었으니까.
그날 퇴근해 돌아온 서수경에게 정진원과 내가 그 책을 펼쳐 보이며 하소연하자 서수경은 웃었다.
작은 물고기는 지금 숨어 있는 거야.
왜?
부끄러워서. 조금 있다가 나올 거야.
언제?
네가 안 볼 때, 아무도 안 볼 때.
240~241
내가 왜 그랬지?
김소리는 수년 동안 자신에게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는 데 그는 어땠을까? 그도 그렇게 했을까? 그에게도 그 질문이 있었을까? 바르고 옳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그런 질문조차 없지는 않았을까? 그는 김소리에게 부끄러움을 가지라고 말했지만 당시에 김소리가 가진 것은 수치심이었고 경멸감이었지. 그는 김소리에게 어른을 요구했지만 그 자신도 김소리에게는 어른이었으면서, 그는 김소리의 아무것에도, 김소리의 어른 됨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비난만 하고 갔어. 그의 어른 됨은 김소리를 관찰하고 김소리를 판단하고 사후에 다가와 비난할 때에만 유용하게 작동했는데, 어른 됨이 그런 것이라면 너무 편리하고 야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엔 일어나 서수경의 방으로 건너가 서수경에게 그 사람 야비하다고, 야비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 그 사람 좀 야비하다.
이야기를 들은 서수경은 김소리의 수치심과 내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김소리가 수치심에서 부끄러움으로 이동하며 어른을 경험했고 소리 자신도 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 그 경험의 계기가 그 수학선생의 말이었으니 그 역시 중요한 사람 아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우연하게 있었고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아닐까? 그게 그의 최선은 아니었을까?
그 밤엔 서수경의 질문까지 품고 내 잠자리로 돌아와서 한동안 잠들 수가 없었다. 선생, 그가 김소리에게 준 것과 같은 ‘ 계기’는 서글프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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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경은 내 머리에 손을 올리며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아니 나는 속상하다고 진짜 속상해서 그 사람들을 일일이 방문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 사람이 말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렇지. 적나라赤裸裸. 그 광경은 마치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남의 집 베란다처럼⋯⋯ 우리는 왜 때때로 베란다를 청소하듯 그것을 점검해보지 않는 것일까. 모조리 끄집어내서 거기 뭐가 쌓였는지도 확인을 좀 해보고 먼지도 털어보고 곰팡이 끼거나 망가진 것은 닦거나 내다버리고 하면서 정리도 다시 해보고 새로운 질서로 쌓아보거나⋯⋯ 하지를 않는 걸까 좀처럼.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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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몇주 뒤에 내가 본 것 을 지금 이 식탁 앞에서 기억해낸다. 토요일 오전 열한시에 나는 ITX 열차를 타려고 용산역 1번 플랫폼에 서 있었다. 손이 너무 차서 코트에 두 손을 넣었지만 공기가 너무 싸늘해 별 소용이 없었다. 경의중앙선 전철과 춘천행 열차가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 진입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고 안내방송이 뒤따랐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나는 플랫폼에 서서 이번 열차가 어떤 열차인지를 알리는 다음 공지를 기다렸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냥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게 어떤 열차이고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가는지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광판에 안내되는 ‘지평’이라는 묵자를 볼 수 없는 사람은 지금 들어온다는 그 열차가 지평행 전철인지 춘천행 ITX 열차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그것을 깨닫고 몹시 당황한 채로 지평,이라는 글자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지평행이다. 그것은 안내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보면 되니까.
토요일 오전 열한시라는 묵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묵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산역 1번 플랫폼에도 있을 수 있으며 그가 동행인 없이 홀로 서서 열차를 기다릴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 고려되지 않는다. 용산역 1번 플랫폼의 상식에 그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없다⋯⋯ 나는 아직 그것을 볼 수 있었으므로 거기 있었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상식의 세계라는 묵자의 플랫폼에서,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