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7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 소설 쓰는 판사의 법정 이야기
정재민 (지은이)창비2018-11-15
76~88
정의로는 장난치지 말라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내 고향의 종합병원에는 류머티즘 명의가 있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은 비결은 사기였다. 노화로 인한 퇴행성관절염으로 팔다리가 아픈 노인들에게 “류머티즘이다, 류머티즘은 암보다 무섭다. (손발이 뒤틀어진 류머티즘 환자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중에 이렇게 된다” 라며 거짓 진단을 내렸다. 그러곤 겁먹은 노인들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다정한 표정과 말투로 “걱정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내가 주는 약만 꾸준히 먹으면 악화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특정 제약회사의 류머티즘 약을 장기간 처방했다. 그 대가로 명의는 제약회사로부터 매달 상당한 리베이트를 받고 병원으로부터는 동료 의사들 연봉의 두배를 받았다.
나의 부모님도 그 의사로부터 거짓 류머티즘 진단을 받고 칠 년 동안 항암제나 항말라리아제와 동일한 성분인 독한 류머티즘 약을 먹었다. 약이 독한 만큼 몸에 부작용이 심했고 정신적으로도 불필요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급성 위궤양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류머티즘이라는 공포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위축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류머티즘 환자들 중 절반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그 의사의 정체를 의심하고 처음 그를 찾아간 날의 상황을 있었던 그대로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에 다음과 같이 묘사해놓았다.
우동규의 얼굴은 희멀겋고 두툼하게 살이 오른 데다 이마가 넓게 벗어져서 미끈한 고래의 대가리가 연상되었다. 금테 안경 너머로 눈빛이 둔탁하고 말투가 어눌해서 사기꾼이라기보다는 사기 피해자라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어수룩한 인상이었다.
“판사라고 하셨지요? 저의 어른도 법조계에 계시거든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그가 내게 한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느리고 낮은 톤에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자신의 아버지도 법조인이라는 말로 자신을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를 한 셈이었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
“그건 그렇고요, 제가 뵙자고 한 이유는 제 어머니의 병명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하셨죠?”
“아니요. 이석화씨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라 퇴행성 관절염입니다.”
“네? 어제 저한테도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도 이 병원에 다닌 구년 내내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석화씨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닙니다. 그냥 퇴행성 관절염입니다.”
그는 나의 시선을 피한 채 뻔뻔하게 잡아뗐다.
“그럼 제 어머니가 복용한 약은 항류마티스제가 아니었습니까?”
“약은 항류마티스제가 맞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류마티스가 아닌데 항류마티스제를 준 건 맞는다고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전문 의학적인 내용이라 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걸 보여드릴게요.”
그는 한참 동안 무의미하게 컴퓨터 화면을 뒤졌다.
“아니, 그걸 볼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전 일단 이것부터 여쭤보고 싶습니다. 방금 선생님께서 저희 어머니가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라고 하셨죠?”
“예. 퇴행성 관절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에게 항류마티스제를 주셨다고 했죠?”
“네.”
“류마티스가 아닌데 항류마티스제를 주셨다는 거죠?”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환자분이 처음 오면⋯, 아니, 류마티스 관절염은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일곱가지 진단 기준이 나옵니다. 양쪽 손목이 붓고, 류마티스 수치가 높게 나오고 결절이 생겨야 되고 여러가지가 있는데 어머니는 그렇게까지 안 되셨어요. 저한테 오셨을 때 그냥 관절염이 좀 있었고요, 아니, 처음 올 때 제가 진단명을 뭐라 했느냐면 이랬죠.”
우과장은 밑도 끝도 없는 동문서답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저도 바쁘기 때문에 그냥 점잖게 이야기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가고 싶은데, 계속 말을 돌리시면 좀 갑갑합니다. 제가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제 어머니에게는 류마티스라고 하신거죠?”
“그건 제가 말씀 드릴게요. 류마티스 질환 종류가 백가지가 넘습니다. 그 많은 류마티스들이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있고⋯ 일단 차트를 보시면 염증 수치가⋯”
“그래서 제 어머니에게는 류마티스라고 말하신 거죠?”
“근데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처음 왔을 때는, 처음 오고 하면, 환자가 경우에 따라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진행이 됩니다. 염증성 관절염이 있다가도 증세가 그냥 좋아지기도 합니다. 진단명을 붙이기는 염증성 관절염 내지 염증성 관절염 후기? 이렇게⋯”
그가 의도적으로 동문서답을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내 말의 박자가 점차 빨라졌다.
“류마티스라고 그러셨어요?”
“류마티스 질환은 제가 염증하고⋯”
“류마티스라 그러셨죠?”
“제가 그런 말은 하지 않죠.”
“제 어머니에게 류마티스라고 하지 않았다고요?”
“네,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알고 계시죠?”
“그건 오해를 한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여기가 류마티스 내과이다보니까.”
말을 멈추고 한동안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빛을 피하면서 시선을 컴퓨터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제 어머니를 바보 취급하시는군요.”
“아, 그런 뜻은 절대 아닙니다.”
“좋습니다. 저에겐 솔직하게 말하기 싫으신 것 같네요. 그럼 경찰에서 이야기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가 자리를 박차고 와락 달려들어 내 팔을 붙잡고 자리에 앉혔다.
“잠깐만요.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세요. 제 이야기도 좀 들어보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럼 다른 이야기로 새지 마시고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그 동안 제 어머니에게 류마티스라고 하셨죠?”
“환자가 처음 왔을 때, 이거는 의사의 그걸, 저를 좀 믿어주셔야 합니다. 류마티스는 염증 패턴이 다양합니다. 그래서 모든 환자가, 류마티스의 염증 수치가 안 나오는 관절염이 있고 수치가 나오는 관절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입장에서, 처음 왔을 때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하고 어디 아프시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괜찮다고 하기도 하고, 또 나중에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다른 환자의 예를 보여드릴게요. 한분만요. 딱 한분만요. 오래 안 걸립니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서 제약회사 직원들의 명함을 책상 위에 놓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밖에서 기다리는데 오늘은 그냥 가라고 할까요?”
제약회사 직원들이 그에게 점심을 대접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니, 기다리라고 해.”
그렇게 말할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 명함에 적힌 이름과 소속 제약회사를 눈으로 확인했다. 간호사가 돌아가자 그가 또다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경찰에서 이야기하세요.”
내가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가자 그가 꽁무니에 불이 붙은 개처럼 와락 달려들었다.
“제발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더 들으면 뭣합니까, 동문서답만 하시는데. 그냥 가겠습니다.”
“제가 인정하겠습니다.”
“뭘 인정하겠다는 건가요?”
“류마티스가 아닌데 류마티스라고 한 것을요.”
마침내 그가 실토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뜨거운 물을 급히 들이켠 것처럼 분노가 식도를 타고 끓어올랐다.
“당신 부모님이 구년 동안이나 류마티스의 공포에 떨면서 필요 없는 독한 약을 매일 먹다가 암에 걸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가 휘청거렸다.
“이해해주십시오. 저희도 좁은 도시에서 먹고살려면 쉽지 않습니다. 정부의 의료보험 수가체계가 엉망이거든요. 그대로 하면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어요. 의료보험 수가체계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 말에 관자놀이에서 맥이 펄떡거렸다.
“지금! 그게! 할⋯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 음절은 큰 소리로 내질렀지만 나머지 말은 숨을 몰아쉬고 부들부들 떨면서 한 음절씩 힘겹게 토해냈다. 그의 몸을 꽁꽁 묶어놓고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집어넣듯이, 지난 세월 동안 엄마가 먹은 항류마티스제를 하나씩 그의 목구멍에 쑤셔넣고 싶었다. 거대한 손톱깎이로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잘라내고 싶었다. 분노와 경멸로 번쩍거리는 내 눈빛을 힐끔거리면서 그가 구걸하듯 말했다.
“저를 좀 봐주십시오. 제 아버지가 배추 장수입니다.”
“네? 좀 전에는 아버지가 법조인이라면서요.”
“아, 그건 생각해보니 큰아버지이고요, 제 아버지는 배추 장수입니다. 배추 장사를 하면서 저를 의사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기를 칩니까? 저는 피해자가 제 어머니뿐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모두 다 수사하도록 할 겁니다. 법적으로 가능한 민형사책임을 모두 묻겠습니다.”
“그러시면 안 되죠. 제가 인정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염치가 없으시네요.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해놓고 자신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려 하다니.”
나를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가버렸다. 주차장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동안 내 심장에서 발화된 화염이 나를 뼛속까지 태우는 기분이었다.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을 때 그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한번만 봐주십시오. 제 아버지가 배추 장수입니다.”
나보다 열댓살은 많은 사람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니 더욱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그를 피해서 차를 세워둔 주차 빌딩 삼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계단을 따라 올라와 내 차 옆에서 또다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이것만은 알아주십시오. 제가 이석화씨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을요.”
난 아무런 대꾸 없이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지프차가 그를 향해 몇차례 으르렁거리고는 거칠게 출발했다.
— 『보헤미안 랩소디』 중에서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몇몇 피해자들이 의사를 경찰에 신고했고, 이 사건이 지역 방송국에 보도되자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제보한 사람이 하루 만에 80명을 넘었다. 부모님과 내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제발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던 의사와 병원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범행을 일체 부인하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류머티즘이라고 속여온 환자들에게는 류머티즘이 아니라고 말을 바꾸거나 불치병인 류머티즘이 다 나았다고 둘러대고는 서명을 받았다. 대부분이 노인들인 환자들은 그저 자신에게 병이 없다는 말에 안도할 뿐 의사의 거짓 변명을 문제 삼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서명해주었다. 그 의사와 병원은 내가 병원 업무를 방해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식으로 공갈과 협박을 했다면서 나를 법원과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 아울러 그 의사가 처벌받지 않도록 인맥 을 총동원해서 고향에 있는 지청의 검사들에게 사건 청탁을 했다. 나도 검찰 인맥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지만 그 파렴치한 의사와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고 정정당당하게 해도 진실이 밝혀지고 의사가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훗날 후회로 남게 되었다.
수사 결과, 경찰과 수사검사 및 부장검사는 기소의견을 냈으나 선배 간부들에게 청탁을 받은 지청장은 불기소로 방향을 틀려다가 잘 되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옮길 때까지 결재를 거부해버렸다. 이후 부임한 마당발로 유명하다는 부장검사는 “피의자가 환자들에게 류머티즘이라고 거짓말을 한 사실은 인정 되나 그런 행위는 피의자가 의사로서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한 것이므로 재물죄인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사 생활 동안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결론을 손수 작성해서 당초 기소 의견을 냈던 검사 이름으로 무혐의결정을 내주었다. 의사의 처가에 있는 검찰 간부가 사건 무마를 위해 담당 검사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뜻밖의 무혐의결정을 받고 보니 황망함, 분함, 좌절감, 무력감 등 온갖 나쁜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특히 따귀라도 맞은 듯한 모멸감이 들었다. 내가 믿었던 이 나라가, 나를 초등학생 불량식품 수준의 조악한 논리로 우롱하였다고 느껴서다. 지방 종합병원의 사기꾼 의사 하나를 처벌하기 위해서도, 무지한 노인들을 속여서라도 수익을 올리는 것이 우선인 종합병원, 천주교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사기 진료를 방조하는 종교 재단, 신제품의 연구 개발보다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는 것을 핵심 판매 전략으로 삼는 제약회사, 선배 검사의 청탁을 들어줌으로써 승진을 위해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검사, 특정 지역의 모든 유력 인사와 네트워킹이 구축되어 있는 지방의 대학과 고교 동문회, 큰 광고주가 저지른 비위는 보도하지 않는 지역 언론의 카르텔을 모두 다 뚫어야 했다. 판사조차 못 뚫는 벽인데 법조계에서 일해보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다른 피해자들도 검찰의 그 황당한 결정에 사기 진료보다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반면 가해자들은 멀쩡했다. 그 의사와 그 종합병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다. 선배 간부의 부탁을 잘 들어주면서 인맥을 관리하던 검사들도 잘살고 있다. 이 사건을 불기소로 방향을 틀다가 안 되자 결재를 거부하고 가버린 지청장은 훗날 고검장이 되었고, 불기소 결정문을 직접 써준 마당발 부장검사는 변호사 개업을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이전에도 형사사건 기록을 보면 왜 이 사람은 기소를 하지 않았는지 석연치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내가 직접 사건의 피해자가 되니 비로소 생생하게 깨달았다. 검찰의 진짜 큰 힘은 죄 지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기소권보다 죄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불기소권에 있다는 것을.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 직업에 심각한 회의가 들어서 사표를 내고 싶어졌다. 일단 내 자신이 이처럼 불완전한 사법 시스템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내 부모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무슨 남의 인권을 지키는 일을 하겠느냐는 자괴감도 들었다.
마음을 달래려고 퇴근하면 바닷가 근처 카페에서 밤바다를 흘깃거리며 글을 썼다. 처음 몇달은 벙어리가 하소연하려 용쓰듯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한참 후 문장들이 제법 쌓일 때 즈음 되어서야 격랑 이는 거친 바다 같던 마음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는 바로 그 문장들을 모은 글이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무엇보다도 내가 판사로서 하는 일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오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런 지옥으로 몰아넣었을까. 그 불편하고 두려운 감정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사건 이후 재판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이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마치 운전하다 가족을 잃어본 사람이 다시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법복 안쪽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세줄의 표어가 새겨졌다.
“음식 장사는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되고,
의사는 병으로 장난치면 안 되며,
법조인은 정의로 장난치면 안 된다.”
90
피고인석에 앉아서
어느날 오후 텅 빈 법정에 들어가 피고인석에 우두커니 앉아보았다. 판사 생활을 그만두기 전에 피고인석에 꼭 한번 앉아보고 싶었다. 군대에서 검사도 해보고, 사법연수원생과 법무관시절 국선변호인도 해보아서 검사석과 변호인석은 앉아보았지만 다행히도 아직 피고인석에 앉아본 적은 없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두달 동안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 경구는 진작 알았으면서도 판사석에서 고작 열발 자국 떨어진 피고인석에 앉기까지 십여년이 걸렸으니 나도 참 무심한 판사였다.
94~95
반신불수 환자를 치료하다
처음 형사단독재판부에 부임해서 기존사건 기록들을 검토하다 재판이 삼년째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사건을 발견했다. 삼십대 중반의 피고인 S가 온몸의 근육이 풀려서 움직일 수 없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재판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피고인이 사기죄 전력이 여러차례 있는 데다가 이 사건의 공소사실에서 피고인이 한 거짓말이 너무 황당하고 유치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은 검사로 일하다 관두고 뜻한 바가 있어서 컴퓨터 관련 벤처사업을 하고 있고, 자기 아버지는 부장판사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유력자들과는 대부분 친분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거짓말을 바탕으로 법률문제로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에게는 판검사들에게 말해서 사건을 해결해주겠다고 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하고, 음악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학부형들에게는 교수에게 청탁해주겠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해서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러다 덜미가 잡혀 구속기소되고 나자 갑자기 그는 모든 근육이 풀려버리는 희귀성 난치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다면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서 그의 고향인 어느 지방 소도시의 병원에 장기간 드러누운 채 재판받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 희한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 희귀병에 대한 치료법을 알고 있는 의사가 단 한명밖에 없는데 그 의사가 마침 자기 고향에 있어서 그 의사가 있는 중소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의 중소 병원에도 화타 같은 명의가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사기 전과가 수두룩한 사람이 하필 재판이 시작될 무렵 희귀성 난치병에 걸렸고 그 희귀병을 치료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한 의사가 사기꾼의 고향에 산다는 것은 지나치게 희귀한 일이었다.
127~131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어서요
그러나 역시 잘못이 없는데 잘못이 있다고 하는 경우보다는 잘못이 있어도 뻔뻔하게 부인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혼재판에서 외도를 둘러싼 당사자의 반응이다. 증거가 명확한데도 좀처럼 외도를 시인하지 않는다. 가령 남녀가 함께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이 찍힌 경우에도, 카페가 도청이 될 수도 있어서 비밀리에 사업 논의를 하러 모텔에 갔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어떤 남자는 자기가 원래 「무한도전」 광팬인데 남의 아내와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 다가 갑자기 「무한도전」을 하는 시간이 되어서 급한 대로 가까운 모텔에 들어가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고 변명했다. 그의 말이 예능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말인 것 같아 나는 문득 「무한도전」멤버들이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때처럼 “무한!” 이라고 외치면서 그를 향해 두 손바닥을 벌리고 장풍을 쏘는 시늉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이 “도전!” 이라면서 맞받는 것을 기대하면서.
심지어 배우자가 모텔에 들이닥쳐서 바람을 피우던 남녀가 모두 벌거벗은 채로 누워 있는 사진이 찍혔는데도, 어릴 적부터 화가가 꿈이어서 누드화를 그려보려고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남자도 보았다. 누드화를 그리면 보통 모델만 옷을 벗던데 왜 화가까지 옷을 벗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와 두 눈을 맞추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델이 부끄러워할까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상은 가사재판에서 있었던 일이고,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증거가 너무나 명확한데도 황당한 거짓말로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민사재판이나 가사재판에서는 그런 거짓말을 했다가 통하지 않아도 기껏해야 경제적으로 조금 손해 보고 말겠지만, 형사재판에서는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가 역효과가 나서 감옥에 안 갈 일로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징역 1년을 받을 일로 징역 2년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뻔한 거짓말을 하는 형사 피고인들도 물론 있다.
세번째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었던 피고인도 떠오른다. 피고인은 음주운전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경찰에게 적발되어 주차된 차에서 나왔을 때 고주망태 상태였던 것은 맞지만 자신은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차를 주차할 때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고, 술을 마신 뒤에는 차에서 잠만 잤지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차를 주차한 곳이 왕복 육차로 도로의 한복판인 중앙선 바로 옆 일차로였다는 것이다. 차 안에서 발견될 당시에도 피고인은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된 채였다. 뒤에 오던 자동차 운전자들이 보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정색을 하고 당초부터 차를 대로 한복판에다 주차해 놓았다고 우겼다.
나는 왜 주차를 주차장에 하지 않고 도로 한복판에 주차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땅히 주차할 곳이 잘 보이지 않고 술을 같이 마시기로 한 친구가 오래 기다리고 있어 급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피고인에게는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그는 제법 큰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는데 그간 음주운전 전과가 2회나 있던 터라 음주운전을 한번만 더 하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처지였다. 그래서 형사처벌을 모면해 보려고 이리저리 궁리를 한 결과 그런 해괴한 궤변을 발명해낸 모양이었다. 그렇게 주장하면 주차위반에만 걸릴 뿐, 음주운전의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음주운전에는 걸리지 않으리라고 계산한 것이었다.
피고인은 그날 같이 술을 마신 여성을 증인으로 세웠다. 증인은 피고인의 내연녀였다. 증인은 술을 다 마신 후에 피고인을 도로 한복판에 세워진 차에까지 데려다주고 잘 자라고 옷까지 몸에 덮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당시 취한 채로 운전을 했다는 정황증거는 차고 넘쳤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길가에 제대로 주차가 되어있었던 장면이 담긴 CCTV 화면도 있었다. 경찰에게 발견되어 음주운전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직후에도, 여전히 술에 취한 상태로 경찰서에 세워놓은 자기 차를 타고 가버렸던 사실도 있었다.
나는 피고인에게 몇차례 진실을 말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끝내 자신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우겼다. 나는 할 수 없이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세차례나 반복했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역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완벽한 법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경위와 교도관들에게 끌려가면서도 “판사님, 지금 실수한 겁니다. 오판을 한 것이란 말입니다”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항소심에 가자마자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을 해서 풀려났다. 그 결과 자신을 돕기 위해 위증을 했던 내연녀는 위증죄로 기소되어 처벌받았고 외도 사실도 가족들에게 알려져서 곤경에 처했다.
어느 큰 회사의 회장이던 피고인이 폭력 행위로 기소되었을 때 했던 변명도 떠오른다.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예순이 넘은 피해자를 무릎을 꿇리고 마시고 있던 맥주잔을 얼굴에 던져서 피해자의 코뼈가 부러졌다.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자신은 원래 맥주를 빠르게 마시는데 너무 빠르게 마시다보니 맥주잔이 손에서 쑥 빠져서 피해자의 얼굴로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조직폭력배처럼 피해자의 무릎을 꿇리고 유리잔을 얼굴에 던져서 뼈를 부러뜨린 것만 해도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고 재범의 가능성도 높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 실형에 처할 것도 검토하였다.
나는 피고인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방금 한 그 주장을 진지하게 하는 것인지, 그래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것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피고인과 변호인이 그런 거짓말이 통하지 않겠다는 낌새를 느끼고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결정적으로, 자발적인 것인지 마지못해서 했는지는 몰라도 피해자가 피고인과 합의를 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를 담은 합의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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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을 처벌로 간주하는 세태가 개선되도록 구속된 사람들의 처우도 대폭 나아졌으면 좋겠다. 헌법상 무죄로 추정된다는 사람들의 생활이 왜 거의 수형자와 다름없이 제한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변호인 접견권은 종일 보장되므로 변호사를 매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구치소에서 회사도 운영할 수 있는 반면,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유죄판결을 받은 수형자와 별 다를 바 없는 처지다. 적어도 가족만큼은 종일 만나게 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족 면회를 하루에 십분만 허용하면서, 과연 그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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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은 돌발상황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정범과의 관계가 곤란해질까봐 혹은 정범에게 자신도 똑같은 괴롭힘을 당할까봐 그냥 가만히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비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가 당연히 형사법적으로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의를 인정할 때는 사람의 심리를 전체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미필적고의도, 차용금 사기죄도, 공모공동정범도 지금보다 인정되는 경우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법언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현재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판검사 마음속에 범죄자들이 빠져나갈 빈 틈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로 인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은연중에 자신은 범죄를 저지를 리 없고 처벌받을 일도 없으며 억울한 사람은 자신이 직접 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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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사실 전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판검사 경력이 없더라도 개인적으로 그 판사를 잘 안다면서 광고하는 이른바 ‘지인 마케팅’의 경우도 ‘전관 마케팅’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지방에서 근무할 때 동향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어느 변호사로부터 근무 시간에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는 뜬금없이 나에게 오늘 구속영장을 발부한 사건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황당해서 “네? 그 걸 왜 물어보시죠?” 하니 조만간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다. 아마도 구속된 피고인의 가족이 그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그 가족 앞에서 버젓이 나에게 통화를 해보인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경력도 짧고 눈치도 없어서 변호사가 그러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당했는데, 그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자 나도 “지금 혹시 옆에 재판받는 당사자가 있는 건 아니죠?”라고 받아치게 되었고, 그렇게 말하고 나니 다시는 그런 전화가 오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수법이 판사에게는 먹히지 않더라도 의뢰인들게는 잘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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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오십대 여성 피고인 두명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나의 말에 긴 한숨 끝에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어두운 표정으로 “할 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사지’라는 간판을 걸고 성매매를 하다가 걸린 여성들이었다. 이미 세차례나 동종 전과로 처벌받은 전력도 있었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재산도 없고, 행색도 초라하고, 머리카락도 바싹 타버린 듯 탈색되어 건강도 몹시 나빠 보였다.
그들은 빈말이라도 여느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으니 선처해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들은 그 흔해 빠진 말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이 다시 또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일이 아니면 달리 먹고살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 사실을 판사조차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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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반성문이 형량을 감소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증거가 없으면 그 글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구치소 내에서 대필해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피고인도 아마 그것을 알 것이지만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일 테다.
오히려 반성문 때문에 부작용이 생겨서 형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황당한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속여서 상습사기죄로 구속된 피고인이 자기를 내보내주면 석달 안에 십억원을 벌어서 피해자들에게 모두 변제해주겠다고 장담하는 바람에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싶어서 형을 더 높인 적도 있었다. 비슷한 이유로 자신의 처지가 딱하고 어렵게 되었다면서 옛날에는 수백억원을 굴렸는데 지금은 월급이 고작 천만원뿐이어서 힘들다고 선처를 요구한 피고인도 원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받지 못했다.
어느 피고인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쭉 힘들게 살아왔습니다”라며 읍소했는데 전과기록을 보니 존속살인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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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짜 법정에는 망치가 없다. 진짜 검사에게 권총이 없는 것과 같다. 굳이 망치질을 하지 않아도 판사가 판결을 낭독하면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생긴다. 심지어 판결문에 적힌 형량과 판사가 낭독한 형량이 다를 때에는 판사가 낭독한 형량이 법적으로 유효하다. 판결문에 징역 10년을 적어놓았는데 판사가 실수로 징역 1년을 선고하면 징역 1년이 되는 것이다. 판사도 사람이다보니 이런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검사가 반드시 항소를 하기 때문이다.
선고받는 표정들
집행유예를 할 때에는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고 한 다음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덧붙인다. 집행유예는 쉽게 말해서 피고인이 징역형을 살아야 하지만 몇년간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징역을 산 것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실형을 받을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던 피고인은 “집행을 유예한다”는 선고를 들으면 기뻐한다. 특히 구속되어 있던 피고인은 그 자리에서 석방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쁨이 더하다. 집행유예는 징역형 선고 다음에 “다만.…” 하면서 이어지기 때문에 피고인들은 판사 입에서 “다만” 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
무죄판결을 선고하면 피고인들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다. 거의 예외 없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죄가 없어서 무죄판결을 해준 것이니 사실 피고인 입장에서는 본전인 셈이다. 아니, 죄가 없는데도 그동안 몸도 마음도 고생하고 변호사비를 쓴 것을 생각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무죄를 선고해서 혐의를 벗겨주면 그렇게 좋아하고 판사에게 감사해한다.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이 아니라 징역형을 선고했는데도 유난히 감사해하는 피고인들도 있다. 두번, 세번씩 감사하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인사를 한번 하면 피고인이 예의가 바르고 자존감이 높구나 싶지만, 두번, 세번 하면 내가 형량을 너무 경미하게 책정해서 판결을 잘못한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표정에 판결에 대한 불만이 역력히 나타나는 피고인들도 있다. 돌아서서 긴 한숨을 내쉬면서 구금실로 들어가거나, 아랫 입술을 쭉 내밀며 거칠게 한숨을 내쉬어 앞머리칼을 날리기도 한다. 어느 법정에서는 판사가 피고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는데 판결에 불만을 가진 피고인이 욕설을 하고는 법정 문을 쾅 걷어차고 나갔다. 그러자 재판장이 곧장 다시 불러들여서 징역 2년으로 고쳐서 선고한 일이 있었다. 따지자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판사나 피고인이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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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유엔국제형사재판소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 일본 소설가 나쯔메 소오세끼의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쿄오또대 영문학과 교수직을 거부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친구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네. 다시는 지금까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내가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네. 스스로를 신뢰한 적이 없었네. 이제는 혼자 힘으로 가는 데까지 가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거기서 쓰러지겠네.” ‘위대한’ 운운은 저에게 해당사항이 없어 별 감흥이 없었지만, “스스로를 신뢰한 적이 없었네” 라는 구절은 그날 이후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안전하다는 길만 좇아온 것이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