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ph
이동: 둘러보기, 검색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03월 03일
쪽수,무게,크기 301쪽 | 312g | 125*190*19mm
ISBN13 9788932027173
ISBN10 893202717X

 문장이 굉장히 호흡이 길다. 단어의 활용이 조밀하다. 문장이 긴데도 불구하고 단어들이 제각각의 뜻을 가지고 옹골차게 모여있다는 뜻. 서사나 상징은 잘 모르겠다(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고 정말 나는 잘 모르겠다.) 쉽게 재미로 스토리를 따라가는 단편들은 아니었다. 인상적인 비유들이 많았다.

226, ≪덩굴손 증후군의 내력≫중


세상의 흐지부지된 소요 대부분이 그렇듯 의문부호가 지워진 자리에는 투지를 불태울 만한 공간 또한 남아 있지 않았다.

233-234, 같은 단편


(전략) 혼자 남은 지금은 어떻게든 짜 맞춘 이야기에 약간의 MSG 소스를 쳐서 재구성하는 중이다. 일선 기자들의 부동산 재테크나 사회 문화 관련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자 자신의 친구 및 친인척을 동원하거나 이도 저도 안되면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27세) 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로 시작하는 유의 기사들이라면 U는 앉은 자리에서 몇 꼭지라도 토해낼 수 있었다. 여기에 ‘분통을 터뜨렸다’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처럼 집단 짜증과 격앙을 유도하는 어구를 슬쩍 끼얹으면 변형 및 출력 가능한 사례의 화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가공으로 빚어낸들 그것은 무엇으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유동적인 설정들뿐, 기초 자료가 전무한 부분까지 U가 지어낼 재주는 없었다. 역시 널리 알려진 수법대로, 기사를 읽게 될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켜놓고 문제 풀이 책임까지 전가하면 그만이긴 했다. 헤드라인을 「하루아침에 숲이 된 도시, 대체 무슨 일이?」(물론 도시는 자고 일어나 보니 갑자기 덩굴줄기로 뒤덮인 게 아니고 한 계절에 걸쳐 꾸준한 진행 과정을 보였으나 이 정도의 과장은 애교일 뿐) 충격이 부족하다 싶으면 「손발이 덩굴줄기로 변한 사람들⋯⋯ 그 이유는?」같은 식으로 걸어놓고 사람들의 감수성과 공포심을 자극할 만한 스토리텔링을 때려 넣은 뒤 마지막 단락에 ‘과학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거나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정리하면, 그다음은 기사에 댓글을 다는 한가한 이들이 이끌어나갈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이것들 있는데 무서워죽겠다는 유의 난삽하고 있으나 마나 한 댓글이 대부분일 테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여남은 명, 기자는 뭐하면서 네티즌 수사대더러 찾으라고 던져만 놓느냐는 시비를 터는 댓글이 나머지 되겠다.

*
위 문단은 원래 밑줄 부분만 옮기려고 했는데 전후 내용의 사실성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모두 옮겼다. 책의 다른 부분들도 대부분 이정도 텐션은 유지하고 있으며, 천하제일의 명문은 아닐지라도 의식과 시선의 흐름정도는 충분히 조밀하게 긴 문장안에 너끈히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