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3 개미들은 왜 죽나
신기패라는 물건이 있는데 위와 같이 생겼다. 좌측 하단에 덧붙여진 부분은 갑(匣)의 옆에 나와있는 성분표를 찍은 것이다. 저 분필같이 생긴 것으로 개미가 자주 다니는 곳을 칠해놓으면 신기하게도 개미들이 엄청나게 죽는다. 하루이틀 지나면 족히 몇백마리는 그 자리 아래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것으로 개미가 지나가는 길목에 선을 그어도 신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개미가 아예 그 선을 밟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수백마리가 우글우글 하는 곳에 그어놓으면 개중에 몇은 금을 밟기는 한다. 그래도 얼마 안가 활동이 둔해지고 결국 죽어서 오그라든다. 그래서 개미가 있는 곳에 원을 그리면 개미들이 그 원에 갇히게 된다.
집을 며칠 비우기 전에 실수로 쥬스를 컵에 따라 놔뒀다. 당연히 우글우글 모여들었고, 다시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도 개미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먹을 것은 충분했다. 족히 몇백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장난기가 발동해서 컵 주위에 크게 원을 그렸다. 개미들이 어떻게 하나 보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그냥 싸그리 박멸이 목적이었다. 예상대로 개미들은 갇혔다. 원을 그린 직후 몇분 안에 개미들의 운동은 눈에 띄게 둔해지거나 멈춘다. 멈춰버린 녀석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면 조금씩 자리를 옮기기는 하는데 옮긴 뒤 그냥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수백마리의 개미들이 몇마리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개미들은 왜 죽었을까.
1. 그 수백마리의 개미들이 모두 신기패로 그어둔 선을 밟아본걸까.
2. 먹을것이 없어 죽은건 아니다. 먹을것은 원 안에 차고 넘치도록, 정말 개미가 죽을때까지 먹고도 남을 만큼 있었다.
3. 할일이 없어 죽었나.
4.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라는 생각에 죽은건가. 희망이 없어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