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5 눈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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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승객보다 좌석이 더 많은 오후의 지하철
스포츠지가 주인을 잃고 에어컨 바람에 펄럭인다.
벌거벗은 여자들을 갈피마다 숨겨두고
슬쩍슬쩍 보여준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젖히며
살 오른 목의 주름을 편다.
나는 읽던 책 사이에 간지(間紙)를 은밀히 끼워넣는다.
등받이에서 허리를 조금 내리고
허벅지를 모아 다리를 꼰다.
복숭아빛 스타킹이 꽁꽁 동여맨 여자의 허벅지가
스커트 속에서 조금씩 벌어진다.
여자의 무릎 사이로 검은 동굴이 뚫린다.
지하철도 침을 삼키며 꿈틀댄다.
동굴 입구가 조금씩 넓어진다.
깊숙한 곳에서 흰 것이 번쩍인다.
눈동자가 먼저 날아가서 조금 핥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여자의 붉은 혀가 꽃처럼 피어나고
여자의 무릎은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두 다리 사이에 그어진 금기의 금, 손대면 죽는다.
지하철이 역에 진입하며 요동친다.
여자의 다리가 서로 애무하며 벌어진다.
벌어진다, 나의 눈동자, 동굴 속으로 흰 것이 보인다.
팽팽해지는 사타구니, 배가 불러온다.


*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여성을 묘사한 듯 한데
조영석의 시들은 진짜로 하드코어다
비극도 희극도 아닌 진짜 하드코어.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시들도 많이 있었다.

(낮은 톤으로)
"손대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