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4 고골리 -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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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외투가 생각났다 고골리의 외투.
내용이 생각이 난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나오는 주인공의 인생이 생각났다.
인생에 별 재미도 없고 그닥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며 독신에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던 그. (아마 작은 공무소같은데서 글씨를 베껴대는 사람정도로 기억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인터넷이 좋은 점이, 공중파에서 접할 수 없는 뉴스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과,
또 재기발랄한 - 촌철살인이 뭔지 보여주는 그런 글쟁이들의 글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거다
 주로 정치적 이야기들이다.
 아무래도 나는 놀던물이 놀던물이라, 그들의 신앙에 관해서도 주의깊게 살펴보곤 한다
 언뜻언뜻 비치는 힌트들이나 그들의 자유로운 글에서 엿볼 수 있는 개인적인 사생활 - 물론 자신이나 지인들의 종교를 초점으로. 뭐 이런것들
 그런것들 보면서 결국 내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 어디서나 얻는 결론이지만)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점이다. 배운사람일수록 더더욱(종종 이게 좋은 꼬투리가 되긴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꼬투리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모든 천재가 다 불신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논리는 날카롭다. 더군다나 요새 접할 수 있는 글들은 유행을 탔는지 개신교에 관해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 또한 그들이 말하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맹신도'이어서 그런것일까 - 그렇지 않다고 믿지만, 내가 어떻게 믿든 - 대중을 자극하는 기초적인 상식에는 충분하지만 위험하기 짝이없구나 싶을 때가 많다. 여기서 '위험'은, 아주 근사(近似)해서 구별하는 데 썬데이크리스챤이 도덕문제 풀듯 해서는 어림도 없겠다 싶은 그런 위험 말이다. 교세확장에 위험하다 할 때 쓰는 그런 위험 말고.
 안타깝게도 내가 알기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대중의 지지를 받는 논평에 관해 조목조목 비판해주고 청년 혹은 소년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의 믿음은 이사람이 가정하는 믿음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써주는 사람은 없다. 그런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복음주의 카페같은 곳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작업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것같다 - 사실 이런거 해줘봐야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마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글쓰는 이의 재주가 아니던가.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믿음을 가지는 것이 어렵지. 사람은 대개 아주 이상한 인간 아닌 이상 믿는대로 행동하고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믿음이 타협을 허락하지 않을 때(이건 아주 위험한 발언이다. 특히 요즘같이 '개신교의 배타적 태도'와 '신념에 관한 불복'이 구분되지 않는 때 -_-) 믿음과 상관 없이 사는 일이란 참 어려운 일이다.

 말이 계속 빙빙 돈다. 여튼 갑자기 외투의 주인공이 생각난 이유는, 그토록 날카로운(혹은 그렇게 보이는) 필력을 가진 사람도, 혹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시대의 논객으로 불리는 사람도 신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많다면, 정말 고수는 오히려 이름석자 세상에 남을까 의심스러운 외투의 주인공같은 그런사람이 아닐까 싶어서다.
 날카로운 논리같은 것은 모르지만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잠든다. 술처먹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거나, 괜히 기분이 안좋다고 밤새 오락따위를 하는 일은 없다. 그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그것을 가르칠만큼 읽는 족족이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렇게 재미없는 인생을 살다가 죽는다.

 세인의 부러움을 사는 재주를 가지느니, 혹은 그러한 논리를 배우고 더 나아가 그 논리를 이길 수 있는 필력을 가진다느니 하는 뭐 그런식의 '스타'가 되느니, 외투의 주인공처럼 살겠다. 그것이 더 어렵고 더 위대하다고 믿는다.



왜 갑자기 이러냐면-
 종종 들러서 읽곤 하는 유명한 모 기자의 블로그에서 그의 여자친구가 '눈물을 줄줄 흘리던 독실한 삼일교회출신 광신도'였다가 그의 논리에 동의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또 그 기자가 쓰는 '섹스칼럼'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교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짜증이 확 몰려와서, 자야되는데도 밤중에 이 블로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긴 글을 쓰고 앉아있다.
 쓴 글을 퇴고를 두세번은 하는 편인데 밤도 늦었고, 내일 교회도 가야 하고, 졸리기도 하고, 또 이걸 멋들어지게 고치느니 내일 나의 할 일(교회에서 맡은 작은 일들)을 충실히 해내는것이 더 값지다고 이 글을 쓰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으므로 그냥 잘란다.



전군 2008.05.04 06:45
그러니까 이성친구를 잘 사귀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