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9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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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노란 물이 아직 남아 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가에 앉아 같이 웃고 있지만
지난겨울 이 녀석들 몰려와
학교 뒷건물 유리창 다 깨부수던 날 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속을 다 드러내 보여준 유리 같은 가슴
한 장 한 장 비명 소리를 지르며 깨지던 날
창호지같이 얇은 내 마음 갈기갈기 찢어지던 날
계단에 앉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있지만
이 녀석들 어둠 속에서 학교 손수레를 부수고
불질러 그 불에 고기를 구워 먹던 날 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캄캄한 폐허의 가슴에 시뻘건 불길이 솟고
겨울바람 불어 매섭던 그 밤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미움으로
이 녀석들 눈발 속에서 술 취해 짐승처럼 울부짖던 밤
아기예수 태어나신 날 경배하던 밤
내리던 눈발도 불길에 쫓겨 흔적 없던 밤
*
개인적으로 도종환시인을 매우 안좋아하지만
이것만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