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임명장
ph
최영철
100년 동안 너의 복무를 허락한다
부디 잊지 말기 바란다
너에게 사령을 내리는
저 근엄한 어깨가 떨고 있지
흠흠 헛기침을 해대며
넥타이 졸라매는 그 손길 파리하지
우렁우렁 뭐라 달변을 늘어놓는
햇살들의 잔기침,
너무 치닫지 말기 바란다.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기 바란다
더 이상 길을 내고
다리를 올리지 말기 바란다
길의 끝 다리 뻗은 자리
수렁에 닿지 말기 바란다
이미 쌓은 모래성
아슬한 낭떠러지가 되었구나
너무 높이 남긴 탑
허물고 가야겠구나
너무 분명하게 써놓은 약속
지우고 가야겠구나
너무 가득 차오른 불길한 아침
등지고 가야겠구나
100년 후
여기에 기록할 아무 공적이 없기를
잠시 떠맡은 해 별 풀 달
그냥 그 자리 둥실 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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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별 풀 달 그냥 그 자리 둥실 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