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속죄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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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챕터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중에서.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한 번은 사소한 일로 내 얼굴을 때렸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지휘권 밑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그렇게 다루는 데 습관이 베어 있었다. 이 순간 내가 더없이 분명하게 느낀 것은 사회에 저항하는 오래된 나의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개적인 반란 행위로 십장인 유스첵의 얼굴을 갈겼다. 나의 존엄성은 주먹질을 가한 그의 턱에 놓여 있었다. 그다음 결국 제압당하고 처참하게 얻어맞은 이는 당연히 신체적으로 훨씬 나약한 나였고,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고통스럽게 매를 맞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용기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가 우리 자아의 모든 것이고 우리의 전 운명이 되는 삶의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몸이었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굶주림과 내가 당했던 구타와 내가 가했던 구타속에서 말이다. 피골이 상접한 채, 때가 덕지덕지 앉은 내 몸은 나의 비참함이었다. 내 몸은 내려치기 위해 힘을 줄 때 나의 신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존엄성이었다. 신체적인 폭력 행위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분열된 인격을 복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나는 구타를 통해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