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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0568405 인플레이션]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지은이), 강영옥 (옮긴이)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poem> <h3>?</h3> <poem> 물론 처음에 국가는 국민들에게 일정한 가치를 약속하는 지폐를 주고 국민들은 이 지폐에 적힌 가치만큼 상품을 구매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굳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게 무슨 말일까? 결론적으로 화폐 발행권을 갖고 있던 국가는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화폐에는 명시된 금액만큼의 가치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화폐 주조 비용이 공제된 금액이다. 이것을 화폐주조차익<span class="wiki-original-term">Monetary Seigniorage</span> (중앙은행이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함으로써 얻는 수입)이라고 한다. </poem> <h3>53~54</h3> <poem> 차용증은 발행자의 상환 능력만큼 가치가 있다.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면 차용증은 가치가 없어진다. 이 경우에는 아무도 차용증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차용증이 있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지폐는 차용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발행자가 이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라는 것이다. 지폐에 명시된 가치는 그만큼 되돌려주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 아니다. 지폐의 가치는 국민이 벌어들일 수 있는 GNP, 즉 화폐의 범위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통해서 보장된다. 당신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내면 ‘GNP’라고 부르는 케이크의 큰 조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이 돈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GNP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실적이 점점 떨어지면 이 돈으로는 재미를 볼 수 없다. 당신은 이 화폐를 기피하고 다른 화폐나 다른 지불수단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으려고 할 때 보여주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도 유사한 행동을 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 방법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현대 화폐의 맹점이다. 국민들이 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지 신뢰할 때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된다. 화폐는 곧 신뢰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화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poem> <h3>65</h3> <h4>비공식 환율</h4> <poem> 내 돈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가치를 상실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국가에서 발표하는 공식 인플레이션율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언제든 조작될 수 있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이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암시장의 비공식적 환율이다(공식 주가도 간혹 정부에서 조작을 한다). 자국 통화에 문제가 있을 때 보이는 조짐이 있다. 1차 신호로, 비공식 환율이 급락한다. 2차 신호로, 국제 투자자들이 대출 금리 인상을 요구한다. 해당 국가의 유가물(有價物,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 가격이 인상되고 정부는 인플레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확신을 한다. 이런 상황의 국가에 여행을 할 때는 현금인출기나 환전소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 현금인출기나 환전소에서는 공식 환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손해가 훨씬 크다. </poem> <h3>68</h3> <poem> 디오클레티아누스<span class="wiki-original-term">Diocletianus</span> 황제는 파탄난 로마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먼저 그는 모든 재화에 최고가를 적용하고 최고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형에 처한다는 명문을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대형 돌판에 새겼다. 다음으로 그는 물가 상승을 법으로 억제시키려 했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각국에서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돌리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 전의 인플레이션 억제책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고가 규정을 도입한 국가에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고가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정부에서도 갈피를 못 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국가에서는 물건을 파는 것보다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 </poem> <h3>71</h3> <poem> 화폐의 가치는 흑사병과 함께 사라져갔다. 모든 영역의 물가가 하락하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생산 제품의 잠재적 소비자가 흑사병으로 사망하여 재화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때를 디플레이션 시기라고 말한다. 다행히 흑사병으로 인한 1차 쇼크가 잠잠해지는가 싶을 때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죽지만 동전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가 급감하면서 상품생산량이 감소했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정부는 로마제국이 했던 것과 똑같은 정책을 실시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긴급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은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흑사병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다. 연 인플레이션율은 6퍼센트에 조금 못 미쳤으나 이는 앞으로 닥칠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poem> <h3>77</h3> <h4>전쟁이 양산한저질동전 </h4> <poem> 17세기 초반 독일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키퍼 운트 비퍼<span class="wiki-original-term">Kipper und Wipper</span> 시대라고 말한다. 키퍼 운트 비퍼라는 표현은 동전 함량을 재는 당시의 관행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동전에 귀금속 함량을 줄여 동전을 위조하는 일이 빈번했다. 키퍼 운트 비퍼는 동전을 양팔저울에 올려놓은 다음 저울대를 기울이면서 무겁고 품질이 좋은 동전을 추려내고 품질이 떨어지는 동전에는 납, 구리, 주석을 섞던 관행에서 유래한다. 이를 악용한 통치자들에 의해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익히 일어난 일이 벌어졌다. </poem> <h3>?</h3> <poem> 재정난을 해결하고자 페터 리터 폰 보어는 직접 화폐를 찍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가 제조한 위폐는 당시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에서 전부 받아줄 정도로 정교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보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그의 아내가 위조지폐로 엄청난 고가의 시계를 사면서 이 행복이 날아가버렸다. 시계상 주인은 자신이 받은 돈이 위조지폐라는 걸 눈치 채는 순간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보어와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징역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국가적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이후 70년 동안 이 사건 관련 보도는 전면 금지됐다. </poem> <h3>97~99</h3> <poem>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큰소리를 빵빵 쳤던 존 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대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어떻게 돌려준단 말인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여 그 수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는 망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폰지게임<span class="wiki-original-term">ponzi game</span>(일종의 금융 다단계 사기수법을 말한다. 1925년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여 명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끌어모은 사기범 찰스 폰지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용어)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존 로의 주식을 사겠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식 덕을 본 하녀들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주가 등귀 현상을 두고 ‘하녀의 강세’라는 이름도 붙었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리프<span class="wiki-original-term">Louis Philippe</span>의 아내 리제로테 폰 데어 팔츠<span class="wiki-original-term">Lieselotte von der Pfalz</span>가 쓴 편지 구절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금 프랑스에는 부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백만 단위가 아니면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재물의 신이 파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과열된 주식의 가치,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 식민지의 실상, 은행권의 가치, 은행의 안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현금이 부족해진 중앙은행은 지폐를 발행하여 적자를 메웠다. 그러자 경기는 과열되고 물가는 상승했다. 1717년과 1720년 사이 연 인플레이션율은 26퍼센트에 이르렀다. 물가뿐만 아니라 주가도 폭등했다. 거액을 잃은 프랑스인들은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존 로는 은행과 무역회사가 파산하자 몸을 피해 벨기에를 거쳐 베네치아로 도주했다. 존 로의 대서사를 겪고 난 프랑스는 1720년 10월 금과 은을 다시 지불수단으로 돌려놓았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 볼테르 <span class="wiki-original-term">Voltaire</span>가 지적하듯 지폐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졌다. 지폐의 내재가치<span class="wiki-original-term">intrinsic value</span>는 0에 가까웠다. 존 로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온 나라를 망쳐 놓은 도박꾼이자 사기꾼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다양한 사상을 앞장서 실천했던 최초의 금융이론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존 로의 일부 사상은 이후 국민경제에 편입되었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는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6세기 중국의 비전, 17세기 스웨덴에 도입된 지폐, 18세기에 사용된 여타의 지폐들은 금, 은, 동을 본위로 하였고 이 지폐들은 명목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는 화폐였다. 반면 존 로가 발행한 은행권은 액면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지폐의 담보가치는 약속, 믿음, 평판, 희망뿐이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화폐를 ‘위험화폐’라고 한다. (귀금속을 본위로 가치가 보장되는 화폐와 대조적으로) 이러한 화폐는 보장가치가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내재가치만 남는다. </poem> <h3>98</h3> <h4>주가 붕괴에서도 버텨내기 </h4> <poem> 주가가 붕괴된다고 해서 모든 투자자들이 돈을 잃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경제학자 리처드 캉티용(<span class="wiki-original-term">Richard Cantillon</span>)은 로의 체제에서 투자 금액의 두 배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먼저 주가가 상승하기를 기다렸다. 그만큼 치고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그는 프랑스 통화에 투자했다. 그는 프랑스에 통화량이 넘치면 파운드 대비 프랑스화 환율이 하락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경험법칙상 주식을 팔아야 할 시기는, 여러분의 지인 중 금융이나 주식업계 종사자들이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장담할 때다. 이런 때는 과감하게 주식을 팔고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poem> <h3>105</h3> <poem>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의회에서 발행한 이른바 대륙지폐<span class="wiki-original-term">continental currency</span>의 가치는 급속도로 하락하여, ‘대륙지폐만큼의 가치도 없다’라는 표현까지 생길 정도였다. 전후에는 인플레이션 진정 조치가 필요했다. 지폐 발행이 중단되면서 물가와 경제활동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시절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심지어 농부와 군인들까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철창신세로 전락했다. 100년도 채 안 되어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부와 북부 모두 경쟁하듯 지폐 발행을 남발한 것이다. 그 바람에 북부의 인플레이션율은 28퍼센트, 남부의 인플레이션율은 209퍼센트로 또다시 치솟았다. 이래서 역사를 교훈 삼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poem> <h3>111~113</h3> <h4>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인플레이션 게임</h4> <h5>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친숙한 사건들</h5> <poem> 대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다음 수순을 따른다. 일단 정부는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가격 동결 조치를 시행한다. 그다음에는 원치 않는 화폐 인수 강요, 해외 귀금속 제조 금지, 금화 및 은화 거래 금지, 금은 및 재산 몰수와 같은 조치를 실시한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당시 전시 상태였던 영국에서 영국 정부의 승인하에 프랑스의 아시냐는 대량으로 복제됐다. 프랑스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재산을 해체하고 분배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혁명의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민중의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혁명 후에 반혁명이 일어났다. 국민의 권한을 장악하던 독재자와 지폐가 사라지고 금속 화폐가 재등장했다. 1795년 화폐개혁이 단행되면서 만들어진 프랑스의 새 금속 화폐의 이름은 ‘프랑’이었다. 1796년이 되자 아시냐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 시민들이 움켜쥐고 있던 금속 동전은 차츰 경제순환의 사슬로 편입됐다. 나폴레옹 정복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부를 쌓으며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화폐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았다. 이는 나폴레옹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황제 나폴레옹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현금으로만 거래를 한다.” 처음에 정부는 새로 발행한 지폐는 언제든 금속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정부는 지폐를 대량으로 발행했다. 지폐의 가치가 하락하자 정부는 지폐를 경화<span class="wiki-original-term">hard currency</span>로 교환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친숙한 사건들은 유럽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11세기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은 훨씬 오래 전부터 지폐를 사용했다. 1024년 중국이 인류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해 발달해온 지폐는 화폐의 가치를 보장해주지 않을뿐더러 지긋지긋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장본인이었다. 지폐 발행, 예산 적자, 지폐 발행량 증가, 인플레이션의 순서로 진행되는 이 게임은 왕조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13세기 중국에서 지폐는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송나라 황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10년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조치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송 황제는 지폐를 환수하고 불태우기까지 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1264년 이 화폐는 붕괴되었다. </poem> <h3>?</h3> <h3>인플레이션으로 가장 큰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h3> <poem> 독일에서 인플레이션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기업가 휴고 슈티네스 <span class="wiki-original-term">Hugo Stinnes</span>다. 1870년에 태어난 그는 1887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코블렌츠에서 상업 교육을 받고 베를린공과대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 서부 도시 뭘하임의 광산에서 실습 교육을 받았다. 1890년에는 가족 기업인 마티아스 슈티네스 합자회사<span class="wiki-original-term">Mathias Stinnes KG</span>에 합류했다. 슈티네스 일가는 뭘하임에서 루르지역 선원, 석탄거래상, 선주를 거쳐 나중에는 광산업까지 뛰어들며 부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집안에서 휴고 슈티네스는 성공가도를 달리며 1904년 젊은 나이에 대부호가 됐다. 전쟁 후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혼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슈티네스는 돈을 벌었다. 그는 대출을 받아 기업, 호텔, 신문사를 사들였다. 수백 개 업체가 합병되어 탄생한 대기업의 종업원 수만 60만 명이었다. 두뇌 회전이 빨랐던 그는 화폐의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출금을 상환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 중에도 돈을 벌 기회를 찾은 것이다. 휴고 슈티네스의 돈 놀음에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의 방식이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야망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독일국가자유당원<span class="wiki-original-term">Nationalliberale Deutsche Volkspartei</span>으로 제국의회 국회의원 자리까지 올랐지만 사람들은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인 이유가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돈에 끼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인플레이션으로 큰돈을 번 그가 간과했을 리 없다. </poem> <h3>123</h3> <poem> 대체 초인플레이션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한계값 5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초인플레이션은 1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다소 비학문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면, 돈 뭉치가 가득 실린 트럭이 대기하고 있거나 강도가 돈보다 타이어를 훔치려 한다면 초인플레이션 상태다. 이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초인플레이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poem> <h3>125~129</h3> <poem> 일반적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겪은 후 경제는 불안정해진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았는데, 이 전쟁배상금이 1920년대 독일에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한마디로 전쟁배상금이 사실상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공식 기록상 1920년대 독일에서 20세기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마침내 20세기의 금융 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pan class="wiki-original-term">Stefan Zweig</span>는 1920년대 독일의 경제사정을 보면 독일 사람들이 히틀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금융거래 수치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시기에 제국 은행은 총 524,000,000,000,000,000,000마르크를 지출했다. 여기에 700,000,000,000,000,000,000마르크 상당의 비상화폐가 투입되었다. 1923년에는 세계 최고권인 100조 마르크 권이 발행되었다. 1923년 가을, 133개 해외업체에서 1783대의 조폐기로 24시간 내내 지폐를 찍는 동안 30곳의 제지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했다. 29개 전기 제판술 공장에서 약 40만 개의 인쇄 조판을 제작하고, 3만 명의 인력이 약 100억 장의 ‘인플레이션 지폐’를 인쇄했다. 이렇게 대량으로 화폐를 찍어댔지만 재정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리하여 5800개 도시, 지역,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비상화폐를 찍어 시장에 유통시켰다. 1923년 말에는 빵 1킬로그램 가격이 4280억 마르크였고, 신문 한 부는 2000억 마르크, 우표 한 장은 1000억 마르크였다. 매일 천문학적인 숫자로 치솟는 물가를 보며 질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큰 자릿수에 대한 피로감’은 1923년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상病狀이었다. 가격표에 붙어 있는 0의 개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났고 사람들은 0만 봐도 피로감을 느꼈다. 1910 년부터 1923년까지 독일의 연 인플레이션율은 1174퍼센트였다. 1923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10억 대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월 최고치는 3만 퍼센트였다. 1910년에서 1923년의 기간 동안 물가지수는 1,430,000,000,000였다. 0의 개수만 무려 10개다. 술집과 카페에서는 음료 두 개를 동시에 주문받았다. 첫 번째 주문과 두 번째 주문을 받는 사이에 음료 가격이 오를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하루 단위로 지불됐고 노동자의 아내들은 수레를 가지고 와서 지폐 더미를 실어 날랐다. 이것도 그나마 사람들이 돈의 가치를 인정하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급기야 돈을 실은 수레를 가지고 와서 물건을 사는 동안 돈이 가득한 수레는 그대로 두고 빈 수레만 훔쳐가기 일쑤였다. 앞에서 다렸던 초인플레이션의 정의가 기억나는가? 초인플레이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재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의 과잉 부채와 무변별한 지폐 발행에 있었다. 1914년 독일은 거액의 빚을 져가며 전쟁을 했다. 국민들도 독일이 승리하리라는 기대감에 들떠 애국하는 마음으로 전쟁채권<span class="wiki-original-term">war bonds</span>을 샀다. 이때 진 빚에 1918년 승전국이 패전국에 부과한 전쟁배상금, 군대 해산, 고용 창출 정책, 지방분권화 재정 지출 등으로 독일 정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23년 독일 북서부의 루르 지역이 프랑스에 의해 점령당하자 독일의 채무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이론도 있었다. 마르크 투기꾼들 책임이라는 것이다(예나지금이나자본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기에 만만한 대상이 투기꾼이긴 하다). 반면에 독일 경제학자들은 전쟁배상금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독일은 수출을 늘려야 했고, 수출을 증가시키려면 마르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하나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 가치는 급락했다. 1923년 4월 1달러대 마르크 환율이 2만 마르크였던 것이 8월에는 460만 마르크, 11월 초에는 2조 2000억 마르크로 올라갔다가, 1923년 11월 20일에는 4조 2000억 마르크를 기록했다. 마르크 환율은 연일 고공행진을 하며 화폐가 광기를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1920년대 초반 사람들이 노후를 대비하여 모아둔 돈은 1923년이 되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돈으로는 노후 대비는커녕 신문 한 장도 사볼 수 없었다.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중산층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상점은 화폐를 받지 않고 물물거래를 했다. 이것은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하는 산업화 된 국민경제체제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이 틈을 타 돈을 번 투기꾼들과 암거래 상인들은 벼락부자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가물(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소유한 자가 곧 왕이었다. 유가물은 해외로 반출되었고 약삭빠른 투기꾼들은 대출받은 돈(몇 달 후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 거의 공짜로 물건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으로 재산과 지배권을 얻었다. 얼핏 보면 독일 정부가 돈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화폐를 마구 찍어 부채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정부가 정말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면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볼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은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과세다.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인플레이션 사례들을 들여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poem> <h3>?</h3> <h4>문학은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h4> <poem> 독일 문학계의 거장인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pan class="wiki-original-term">Stefan Zweig</span> 처럼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실감나게 표현한 작가도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회는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 얼마에 팔리는지 몰랐다. 물가는 마구 치솟았다. 심성이 바른 사람도 전날 다른 상점에서 산 성냥 한 갑을 양심의 가책 없이 웃돈을 붙여 팔았다. 그런데 이 성냥은 다음 날 다른 상점에서 20배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 사람들은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이렇게 사고 되팔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아닌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금붕어나 골동품 망원경은 소중한 ‘자산’이었다. 사람들은 지폐 대신 자산을 움켜쥐고 있으려 했다. 임대료는 기형적인 양상으로 폭등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회 계층의 대다수인) 임차인을 보호하고 임대인의 손해를 막기 위해 임대료 인상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츠바이크는 인플레이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40년 동안 부지런히 저축한 돈을 애국심 때문에 전쟁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빈털터리가 됐고, 그 덕분에 채무자들은 빚에서 해방됐다. 정직하게 자신에게 할당된 식료품만 받는 사람들은 배를 곯았다. 뻔뻔스럽게 법을 어기는 사람들만 배불리 먹었다. 뇌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출세를 하고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정가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도둑들의 표적이었고, 정직하게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은 속여 먹기 좋은 대상밖에 되지 않았다. 돈은 녹아서 증발된 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어떤 기준도 가치도 없었다.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아첨을 일삼고 뻔뻔해야 살 수 있고, 말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말 위에 올라타야 하는 세상이었다.” 츠바이크는 해외 자본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한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3년 동안 급속히 진행되어 화폐 가치가 불안정해지면 해외자본만 남는다. ······ 오스트리아는 ‘해외자본의 집결지’가 되었고 숙명적인 ‘외국인 특수’를 누렸다. 비엔나의 모든 호텔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돈독이 오른 자들은 호텔에 모여 칫솔에서 토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궁지에 몰린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골동품이 강도나 약탈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헐값에 팔렸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이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싹쓸이해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최고급 호텔 ‘드 유롭 인 잘츠부르크<span class="wiki-original-term">de l'Europe in Salzburg</span>’는 영국 실업자들에게 장기 임대를 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실업자 지원 혜택은 상당히 좋았다. 그 돈으로는 영국의 빈민가를 전전해야 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츠바이크의 결론은 우울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과 전쟁 채권을 발행하고 화폐발행을 남발하여 경제적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 책임져야 할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이 떠맡은 것이다. 독일 민족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하고 증오심에 불타올랐다. 정부가 조장한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 된 국민들은 히틀러의 등장을 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oem> <h3>?</h3> <h4>중앙은행은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할까? </h4> <poem> 중앙은행이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인지에 관해 다양한 이론이 있다. 첫 번째 이론은 연간 화폐 유통량을 정하고 수치를 공식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연방은행이 1974년부터 실천해온 방식이다. 이러한 관행이 정착된 배경은 화폐 발행량을 과도하게 늘리지 않는다면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 두 번째 이론은 테일러 준칙<span class="wiki-original-term">Taylor's rule</span>을 따르는 것이다. 테일러 준칙은 미국 경제학자 존 테일러 교수가 제시한 통화 정책 운용준칙으로, 적정 인플레이션율과 잠재 GDP 아래에서의 균형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평가하는지표로 테일러 준칙을 활용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테일러 준칙에 따라 한 국민경제의 가동률<span class="wiki-original-term">capacity utilization</span> (실질 GDP와 잠재적 GDP의 관계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과 실제 인플레이션 경향을 조정한다. 경제의 가동률이 중앙은행에서 목표로 하는 실질 인플레이션율보다 높을수록 금리가 더 높아야 한다. 셋째, 중앙은행에서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물가안정목표제<span class="wiki-original-term">inflation targeting</span>라고도 한다. 중앙은행이 명시적인 중간목표 없이 일정 기간 또는 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통화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발표하고 이 목표치에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poem> <h3>186</h3> <h4>자본과 시기의 상관관계 </h4> <poem> 자본 시장에는 주시해야 할 날들이 있다. 투자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러한 날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령 당신이 지난 10년 동안 독일 증시 DAX에 투자해오며 대략 6퍼센트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자. 그런데 이 10년 동안 수익률이 좋은 날은 단 10일뿐이다. 이 날들을 놓치면 수익률은 마이너스 1퍼센트로 감소한다. 만약이 기간에 수익률이 좋은 날이 20일(30일)이라고 하면 이 기간을 놓쳤을 때 수익률은 마이너스 5퍼센트(9퍼센트)로 떨어진다. </poem> <h3>196~197</h3> <h4>금융 위기를부른 마법의 주문</h4> <poem> 여기서 사태가 깔끔하게 마무리될 리가 없다. 1997년 3월 10일에 이어 2008년 9월 15일에도 대사건이 터졌다. 164년 전통을 자랑하는 리먼 브라더스<span class="wiki-original-term">Lehman Brothers</span> 투자은행이 파산하면서 전 세계가 술렁였다. 실업자 신세가 된 고연봉 직원들이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부동산 위기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며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감염력이 워낙 강력하여 다른 지역에서도 금융 위기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직격탄을 맞은 국가는 그리스였다. 2009년 4월 23일 요르요스 파판드레우<span class="wiki-original-term">Georgios Papandreou</span> 전 그리스 총리는 화창한 날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카스텔리조섬에서 그리스가 과도한 채무로 파산 직전이라고 공식 선언을 했다. 유럽연합의 핵심 프로젝트인 그리스 구제 금융정책은 혼란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화폐수량설 지지자들은 세 차례의 금융 위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바로 마법의 주문, 자산 인플레이션<span class="wiki-original-term">Asset Price Inflation</span> 이었다.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보면 인플레이션율을 계산할 때 주식, 채권, 금, 수집품, 파생상품<span class="wiki-original-term">Derivatives</span> 혹은 기타 투자상품의 가격은 반영하지 않고 재화와 용역의 가격만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화폐 유통량을 증가시키면, 즉 양팔저울의 왼쪽 접시가 더 무거워지면, 자금이 투자되지 않기 때문에 GNP가 증가하지 않는다. 즉, 유통속도에 변함이 없다. 이 경우에는 원래 물가가 상승해야 한다. 뜬금없이 중국이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저가와 물량 공세로 재화의 가격을 떨어뜨리거나 국민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딘가 다른 곳에 잉여 자금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재화와 용역 대신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금융자산 가격은 상승하지만 재화의 가격에는 변동이 없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재화가 아닌 금융자산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자본재<span class="wiki-original-term">capital goods</span> 가격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양팔저울을 평형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첫째, 통화량이 증가했는데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고 둘째, 2015년까지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호황기가 아니라도 자본시장 경기가 활성화되고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경기가 좋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 자금이 재화 시장이 아닌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교환방정식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통화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자본시장이 과열되어 결국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poem> <h3>212</h3> <h4>금융억압 </h4> <poem> 중앙은행의 금융 정책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저금리 유지 정책에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금융 정책은 사실상 정부에 유리하도록 국민, 즉 예금자들의 재산을 국유화하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원래 국가가 진 빚에 대한 이자는 국가에서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교묘한 금융 정책을 이용하여 시장 세력들 간 자유로운 경쟁으로 인해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것처럼 만든다. 이처럼 국가는 예금자를 희생시켜 부채 탕감 의무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켜 은밀하게 국가의 부채 규모를 축소시키는 행위를 ‘금융 억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에 투자되었을 자금을 국가로 돌리는 정책이다. 금융 억압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며 국가와 시기에 따라 결과도 다르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금융 억압으로 거둬들인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수익은 GNP의 평균 2퍼센트, 국가 재정 수입의 약 9퍼센트에 해당되는 액수다. 가장 높은 경우 20~30퍼센트까지 이를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국가 세금 수입의 100 퍼센트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poem> <h3>?</h3> <h4>화폐 수량이란 무엇인가? </h4> <poem> 화폐 수량설<span class="wiki-original-term">quantity theory of money</span>(물가 변동을 화폐 수량의 변동으로 설명하는 견해. 화폐 수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르고 화폐 수량이 감소하면 물가가 내린다는 것)에서는 항상 화폐 수량이 본래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고 개념을 사용한다. 화폐 수량은 여러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정확한 설명이 어려운 개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에서 직접 조달하는 화폐 수량을 본원 통화<span class="wiki-original-term">monetary base</span> (통화량 증감의 원천이 되는 돈. 어느 시점의 화폐 발행고와 예금 은행 지급 준비 예치금의 합계로 표시된다. 고성능 통화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현금 유통량과 시중 은행 예금의 총합을 화폐 수량이라고 한다(즉 중앙은행의 총 보유액과 일치한다). 한편 화폐 수량을 M1에서 M3의 단계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반영된 예금의 유동성에 따라 화폐 수량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M1은 비금융 부문에서 유통되는 현금과 비은행권의 1일 예금<span class="wiki-original-term">demand deposit</span> (예금주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지급할 수 있는 예금)의 총합이다. M2에는 2~3개월 해지 기간이 있는 보통 예금과 최대 2년 기간의 정기예금이 포함된다. M3의 경우 주로 단기 은행 채권(최대 2년 만기 지급 기일)과 머니마켓펀드<span class="wiki-original-term">Money Market Funds</span> (단기금융상품에 집중 투자해 단기금리의 등락이 펀드 수익률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한 공사채형 금융상품)가 추가된다. 과거에는 통화 승수라고 하는 본원 통화와 화폐 수량의 상관관계가 명확했다 가령 본원 통화가 10단위 상승하고 M3가 20단위 상승하는 경우 통화 승수는 2다. 그러나 통화승수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본원 통화는 인플레이션을 진단하는 지표로 적합하지 않다 </poem> <h3>238~243</h3> <poem>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일단 국가는 최대한 빚을 많이 지고 본다. 그다음에 빚더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그러니까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서 부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릴 방안을 찾다가 최악의 경우에 파산 신청을 할 것이다. 국가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 먼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인상한다.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에 몰리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유권자인 국민에게는 좋을 것이 없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환영받을 만한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국가에는 한 가지 카드가 더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앞서 페터의 사례에서 보았던 단순한 전략이다. 국가는 적당히 빚을 지고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 국가에 돈을 빌려준 국제 자금 시장과 국민은 예상치 못했던 고인플레이션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경제는 예상 시나리오대로 돌아간다. 국가의 부채가 평가절하되면서 실질 부채 부담이 감소하는 것이다. 정말 국가는 인플레이션 게임의 승자일까? 미국 경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미국 경제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1946년에서 1974년까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채 감소 효과는 20퍼센트에 불과했다. 80퍼센트는 미국 경제 발전에 속도가 붙으면서 정부의 부채 성향이 세전 기준 흑자를 기록하고 부채가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 안정기였던 1974년 이후부터 인플레이션은 미국 정부의 부채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6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경제에 관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예산 적자의 주된 원인은 기초 재정 수지 적자였다(국가의 부채에 대해 이자를 부과하지 않아서 발생한 적자). 반면 인플레이션의 부채 감소 효과는 10퍼센트에 불과했고, 90퍼센트는 GNP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 이 연구 결과대로 인플레이션이 국가의 부채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설불리 낙관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연구 대상 기간에 이 국가들은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은 줄였으나, 앞서 살펴보았던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었다. 이미 설명했지만 국가는 납세자의 주머니를 은근슬쩍 털어가고 있었다. 금융 억압으로 국민으로부터 착취한 금액은 조세 수입의 20~30퍼센트에 달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100퍼센트를 초과했다. 이렇게 좋은 무기가 있는데 국가들이 굳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처럼 자본시장이 세계화되고 자본 이동성이 높은 시대에는 금융 억압으로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조장 정책으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인플레이션으로 국가의 부채를 상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회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도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공식 인플레이션 수치는 조작도 가능하다. 이 문제에 관해서 라면 전문가인 아르헨티나 경제 장관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poem> <h4>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있을까? </h4> <poem> 인플레이션을 국채 해결사로 보는 이유가 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채는 국가적 사안에 가까웠다. 각국은 특히 자국민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이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는 자국민에게 돈을 빌려서, 즉 내국채<span class="wiki-original-term">internal debts</span>를 발행하는 동시에 세금을 인상하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국가는 국민에게 돈을 빌리고 세금을 인상시켜서 세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셈이다. 신사적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국채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는 일본의 국채 비율이 300퍼센트에 달하는데 국가 부도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은 다른 국가에 비해 국민에게 지고 있는 빚이 특히 많다.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빚을 지기 시작하면 이 방법으로는 국채를 해결할 수 없다. 이 국가는 자국의 경제소득을 포기하고 해외로 보내야 한다. 다른 국가에 빚을 지면 상품이나 서비스로만 상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은 상품이나 서비스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원치 않으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해외 부채를 처리할 때도 인플레이션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결국 인플레이션만큼 국가의 채무를 해결하기에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 앞 장에서 우리는 국가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간파하고 앞장 서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온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처럼 오랜 교훈을 정치인들이 잊을 리 없다. 여기에서 반론이 제기될 만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인플레이션율을 직접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중앙 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1923년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쓴 맛을 한번 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또다시 인플레이션을 조작하라는 유혹이 손짓을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은 정부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다. 1922년 독일 라이히스방크가 화폐 발행권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거부할 수 없다고 공언하자, 사람들은 “이 경우에는 결국 불미스런 정치적 개입으로 국가 재정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중앙은행이 끝까지 정치적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비춰보건대 중앙은행은 정치적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법은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다. 이러한 까닭에 유럽중앙은행은 유럽연합 부채국의 부채를 경감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이 끝까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고집했더라면 유로는 붕괴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을 올리는 데 중앙은행은 동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 덫에 걸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하는 단발성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중앙은행의 결정에 자유롭게 개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 덫에서 벗어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 각국이 추진해왔던 통화량 증가 정책도 정부가 통화 정책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는 못 했다. 이제 이러한 의혹의 전말을 파헤쳐야 할 때가 왔다. </poem> <h3>336~</h3> <h4>3. 쓸데없는 집착 </h4> <poem> 100유로를 지불하고 산 주식의 주가가 20유로로 하락했다고 하자. 이럴 때 우리는 100유로에서 20유로로 떨어졌으니까 언젠가는 다시 100유로로 상승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 그래서 이 100유로가 마음속에 닻처럼 박혀서 절대 이 주식을 팔려 하지 않는다. </poem> <h4>4. 처분효과 </h4> <poem> 연구결과에 의하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본 주식은 보유하고 수익을 낸 주식은 파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학자들은 이를 ‘처분 효과<span class="wiki-original-term">Disposition Effect</span>’라고 한다. 사람들은 손해 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손해를 피할 수만 있다면 고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손해 본 주식이 평균 시세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가가 떨어지면 언젠가는 다시 오르지 않겠느냐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처분 효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4.4퍼센트였다. </poem> <h4>5. 객관성을 잃은 희망 </h4> <poem>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경제학 원칙이 있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다<span class="wiki-original-term">Sunk is sunk</span>’. 우리는 이미 잃은 상태인데 또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추가 매입’이라고 한다. 주가가 떨어져서 이미 잃었는데 상담가들은 더 사야 한다고 부추긴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사둬야 손실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주가가 다시 오르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잃을 대로 잃은 상태에서 주식을 또 사야 할까? 당신 머릿속에서 사지 말아야겠다고 결론이 나오면 과감하게 남은 주식도 처분하라. </poem> <h4>6. 과도한 낙관주의 </h4> <poem> 자동차 운전자의 80퍼센트가 자신이 평균 이상 수준의 운전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과도한 낙관주의’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괜찮고, 똑똑하고, 재주가 많으며, 좋은 일은 자신에게, 나쁜 일은 남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향이 있어 거액을 무모하게 투자하곤 한다. 디스카운트 브로커<span class="wiki-original-term">Discount Broker</span>(증권거래에 있어서 증권사의 위탁수수료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성사시켜주는 업체)에서 집계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주식을 매입하고 보유하는 투자자는 세금 공제 기준으로 연평균 18.5퍼센트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거래량이 많은 투자자는 수익률이 평균 11.4퍼센트라고 한다(이 연구는 1990년대 초반 통계이므로 수익률이 더 높게 나왔다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통계에 의하면 세금 공제 기준 가계 수익은, 새로운 주식을 매입하고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도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더 줄어든다고 한다. ▢ </poem> <!-- 원문: https://www.notion.so/8c038739fae2481081eacbae22cfaa05 / Notion 독서 기록 이전, 2026-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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