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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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인용의 정확한 위치를 생략했고, 순서만 지킴)

  호니그가 양적완화에 반대한 이유는 이것이 전례 없는 양의 화폐를 공급하게 될 테고 그 돈이 월가의 거대 은행으로 먼저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호니그는 이 돈이 매우 부유한 사람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는 혜택을 보겠지만 월급 받아 살면서 저축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해가 될 터였다.

  티파티가 위력을 발휘한 선거 이후 의회는 어느 방식으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

  호니그와 의장인 버냉키의 관계는 원래도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적대적이 되었다. 몇 년 뒤에 버냉키가 펴낸 회고록에 남에 대한 옹졸한 험담은 그리 많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상당수가 호니그를 향한 것이었다. 버냉키는 호니그를 충성심이 없고 고집이 세며 심지어는 다소 편향된 사람처럼 묘사했다.

  댈러스 연은의 피셔는 이 계획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근사한 은유로 발언을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적완화는 시장 운영의 칡뿌리와 같습니다. 계속 자라고 또 자라기 때문에 일단 뿌리를 내리고 나면 제거하거나 쳐내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피셔는 이 계획이 본질적으로 거대 은행과 금융 투기 세력에 혜택을 주고 은퇴를 위해 저축했던 사람들을 처벌하는 격이 된다는 호니그의 우려에 의견을 같이했다. “이 정책을 실행하면 가난한 사람, 대부분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사람, 저축을 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결과가 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만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산 가격도 올리고 있었다. 호니그 같은 은행 감독관들이 보기에 자산 인플레이션은 매우 경악스러운 종류의 인플레이션이었다. 캔자스시티 연은 관할 지역의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는 핵심 자산은 농지였는데, 농지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상업용 부동산도, 유정도 그랬다. 이러한 자산이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올라와 있었는데, 이 자산들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은행들은 더 공격적인 대출을 하도록 부추겨졌다. 중서부 지역 전역에서 은행들은 농지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르리라는 전제에서 농민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었다. 상승하는 담보 가치가 대출금을 충분히 지탱해주리라고 본 것이다. 석유 산업도, 부동산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호니그는 부동산 가치가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만큼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재융자가 가능하리라는 전제하에 건설 분야로 단기 대출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대출을 하도록 몰아갔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는 은행과 투자자가 돈을 저축하려 할 유인을 없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저축으로 약간의 이자를 얻어도 오히려 손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 돈을 가지고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은행들은 점점 더 수익률 곡선의 먼 쪽으로 내몰렸다. 호니그의 팀은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자산 가격이 올랐으므로 은행들이 자신이 내어준 대출이 안전하고 은행 건전성도 안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은 감독관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 해도 장부의 숫자들이 은행 편이었다.


  장기간의 인플레이션이 예기치 못하게 뚝 멎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게 될 터였다.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막대한 붕괴가 발생하게 됩니다. 줄도산과 줄손실과 줄위기가 이어집니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자산버블’이라고 부르는, 매우 강력하고 지극히 다루기 어려운 현상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수십 년 뒤인 오늘날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은 대개 자산버블이라고 묘사되지 않는다. 오늘날 1970년대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재앙의 절반만 이야기한다. 고깃값이나 휘발윳값 같은 소비재 물가가 충격적으로 올랐던 시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인플레이션이 파괴적이었던 진짜 이유는 두 종류의 인플레이션이 상호연결되어 서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 절반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며,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후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다. 2000년의 닷컴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고 2008년 주택시장 붕괴도 자산버블이 터진 것이었으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시장이 전례 없이 붕괴했을 때도 큰 요인 중 하나가 자산버블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볼커가 금리 인상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그가 정말로 금리를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직후인 1979년 10월에는 그가 압력 때문에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준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정책을 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볼커는 토요일 저녁에 에클스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사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연준은 금리 인상에 진지하다고 선언했다. “최근 돌고 있는 소문과 달리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 주 주말에 11.6%이던 단기 금리는 그달 말에 16%가 되었고 1년도 안 되어 20%에까지 도달했다.
  그 토요일 저녁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이 경제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질문했는데, 볼커는 이 질문을 대체로 일축했다. “저는 이러한 조치의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불확실한 세계에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지표들을 보건대, 경제의 조정 과정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
  볼커의 이 말은 틀렸다. 어떤 것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미국의 경제 생태계는 저금리를 북극성 삼아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볼커가 느닷없이 북극성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재조정되어야 했다. 지난 10년간의 자원 배분 양상이 달라져야 했고 모든 것이 수익률 곡선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안쪽으로, 덜 위험한 쪽으로 돌아와야 했다.


  은행에 대한 연준의 긴급 융자는 재할인 창구를 통해 나가는데, 호니그는 1980년대 초에 캔자스시티 연은의 재할인 창구를 관리했다. 그의 팀이 어느 은행이 이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지를 결정할 때, 이것은 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선고를 내리는 격이었다.
  1982년에 진정한 은행 패닉이 터졌고, 이는 대공황 이래 최악이었다. 8 그해에 100개 넘는 은행이 도산했는데, 한 해 도산 건수 기준으로 1930년대 이래 어느 해보다도 많은 수였다. 1986년에는 심지어 이 숫자가 더 늘어서 200개가 넘는 은행이 도산했다. 1980년에서 1994년 사이에 총 1,600개 이상의 은행이 도산했다.


  호니그는 어리석은 대출이 전적으로 은행들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은행들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그에 비해 낮은 금리, 그리고 상승하는 자산 가격이라는 거시 경제 환경에 반응해 의사결정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거시 경제 환경은 은행들이 만든 게 아니라 호니그가 일하는 기관, 바로 연준이 만든 것이었다. 호니그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들은 자산 가치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던 환경에서 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환경은 10년이나 너무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했던 잘못에서 야기된 면이 컸습니다.” 이 부분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1980년대의 침체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자주 간과되곤 한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끝냈고 살아남은 건전한 은행을 구제해주었다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나온 연구는 이 재앙 전체에 연준이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순전한 실수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먼 훗날 데이터가 업데이트되고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연준이 고려했던 몇몇 데이터가 잘못되어 있었다. 잘못된 데이터 중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연준이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관되게 저평가한 것이었다. 이것은 곡사포 관제병이 오류가 있는 기상관측기구가 보내오는 정보에 기초해 발사 지시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실제 여건이 벙커 안에 있는 팀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


  당시 연준은 그 시기의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연준과는 관련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비용을 밀어올려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거대 노조가 노동 비용을 밀어올린다거나 중동의 석유 카르텔이 유가를 밀어올린다는 식으로 말이다.


  연준은 단지 자산버블만 부추긴 것이 아니었다. 연준은 버블이 커지던 동안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던 은행들을 버블이 붕괴할 때 구제하는 일에도 나서야 하게 되었다. 어떤 은행들은 너무 크고 너무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망하게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보와 연준은 대안을 마련했다. 예보는 이례적인 구제 패키지를 제공해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주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보가 원래 10만 달러 이내의 예금자만 보전해주게 되어 있는 규정을 넘어 그 이상 예금한 예금 보유자와 채권 보유자까지 모두 보전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돈을 넣었을 은행들에까지 안전망을 크게 넓혀준 것이다. 이제 납세자들이 그 손실 모두를 메워주게 될 터였다. 예보의 구제 금융과 동시에 연준도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콘티넨탈에 긴급 융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콘티넨탈 구제 금융은 대인플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에 위험을 충분히 많이 퍼뜨려 놓았다면 그 은행은 위기 때 구제되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까지 존재하던 규정은 그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간단히 무시될 것이었다. 이 선례는 미국 은행의 어휘집에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다. 콘티넨탈 구제 금융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코네티컷주 출신 공화당 의원 스튜어트 매키니Stewart McKinney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했다. “의장님, 돌려 말하지 맙시다. 우리 앞에는 이제 새로운 종류의 은행이 있습니다.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큰’ 은행 말입니다.”


  그린스펀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성장이 부채로 일으킨 성장이었고 그것이 은행들의 도산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매우 선견지명이 있는 발언이었다. 그린스펀이 묘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되고 강화되면서 21세기 미국 경제의 핵심 특징이 된다. 값싼 부채는 한동안은 빠른 성장을 가져왔지만 긴 붕괴와 오랫동안의 약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차차로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새로운 패턴을 더 잘 파악하게 되고 1990년의 불황이 그린스펀이 짐작했던 대로 정말로 전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업과 가계는 여전히 1980년대의 빚을 갚고 있어서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이것은 금융 침체 버전의 지독한 숙취라고 할 만했다.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전에는 불황 때도 해고 영향을 덜 받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린스펀이 주도한 조치들은 단기적인 응급 처방이 아니었다. 이 조치들은 ‘이지 머니easy money’의 새로운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다. 그린스펀이 1992년 동안 진행한 완화적 통화정책은 더 나중의 완화적 정책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1년에 연준이 일조한 악성 부채 오버행도 이후의 오버행에 비하면 온건한 편이었다. 그린스펀은 이 시기에 유명인이 되었고 연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이라는 인물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질수록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대중이 점점 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90년대의 10년 동안 연준은 경제 정책의 장에서 진정으로 핵심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매우 신경을 썼다.


  전에 폴 볼커의 방정식에는 ‘사촌지간’인 두 인플레이션(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린스펀의 연준은 점차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는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연준은 소비자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르지 않는 한에서 화폐 공급을 계속 늘리고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자산 가격은 제어 불가능한 본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방치되었다.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 탄탄한 근거 논리가 있었다. 우선, 추적이 더 쉬웠다. 휘발유, 빵, 텔레비전 등의 가격은 수집하기가 쉽다.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인기가 있었다. 연준이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릴 때는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자산버블을 터뜨리면 즉각적으로 고통이 일고 특히 매우 부유한 가구에 고통이 일었다. 금융 기자 세바스천 맬러비Sebastian Mallaby는 ‘버블에 직면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불확실한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치솟는 시장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는 정치인과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가 쓴 그린스펀 전기 <앨런 그린스펀의 삶과 시대The Man Who Knew>는 그린스펀 시기 연준의 정책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자산 인플레이션보다는 물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로 한 의사결정이 점진적으로, 하지만 1990년대 무렵이면 거의 분명하게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그린스펀 시기만의 특징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패턴을 설정했다.


  그린스펀은 이 결정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양당 모두의 의원들이 청문회 자리에서 그를 칭송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린스펀은 그 세대의 가장 뛰어난 금융 엔지니어로 보였고, 이러한 성공과 그것이 갖는 신비한 아우라의 핵심은 그가 물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은 채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1998년 무렵이면 자산 인플레이션은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우려를 별로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호황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말의 자산버블은 상당 부분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주가에서 벌어진 것만큼의 가격 상승이 버터나 휘발유에서 벌어졌다면 모두 경악했을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주가 지수가 1999년에 19.5%나 상승했다. 기술주들이 주로 있는 나스닥 지수는 80%가 넘게 뛰었다.


  그는 물가 인플레이션만 통제하기로 하고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무시했고, 그다음에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자산 가격이 붕괴하면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했다.

  물가 인플레이션은 통제하되 자산버블은 무시하기로 하는 그린스펀의 정책은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연준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로 이어질 커다란 자산버블에 불을 때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몇 년 동안 연준은 하나의 자산버블을 다른 하나의 자산버블로 대체하면서 경기를 진작했다. 주식시장 버블이 주택 버블로 선수 교체되었다. 주택 시장의 활황이 다른 영역으로도 넘쳐흐르는 ‘스필오버’ 효과를 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 지출과 대출을 촉진하리라는 것이 이에 대한 논리였고, 이 논리는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동안 부동산 산업은 호황을 구가했고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1970년대에 값싼 부채가 농지 가격을 밀어올렸듯이 낮은 모지기 금리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게 더 쉬워지게 했다. 그래서 매년 경쟁이 높아졌고 이것이 가격을 더 밀어올렸다. 대체로 이러한 동태적 과정은 1990년대 말에 주식시장 인플레이션을 표현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호황’이었다. 주식처럼 주택은 중산층이 부를 일구는 핵심 원천이자 중요한 노후 대비 투자라고 이야기되었다. 주택 가치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흠 없이 좋은 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그랬듯이,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게 된 것은 [주택 시장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물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서였다.


  물론 자산 인플레이션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적하는 게 물가 인플레이션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시장 교란 없이, 또 자산 가격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멈추기도 더 어렵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과는 재앙적이었다. 자산 가격이 조정되는 시점이 오면(자산 인플레이션은 언젠가는 반드시 조정이 된다) 막대한 금융 불안정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연준이 자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실업률 5%를 달성했다 해도 조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실업률 10%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자산버블의 피해를 다루기 위해 연준은 한층 더 크게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그 영향이 경제 시스템 전체로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갔고 시스템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교란은 2007년 8월에 시작되었다.


  은행의 황폐화가 명백해진 2008년 말에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2년 사이에 8조 달러가 사라졌다.


  연준의 조치들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보였고, 이 이미지는 긴급 대출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이국적인 야생동물원을 보는 것처럼 TAF(term auction facity, 기간물입찰대출제도)라든가 TSLF (term securties ending facity, 기간물증권담보대출제도)라든가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ty, 프라이머리딜러신용제도)와 같은 불가해한 영문 약어들로 되어 있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연준어이고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하나였다. 돈을 찍어서 소수의 프라이머리 딜러 계좌로 내보냄으로써 월가에 돈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연준은 이것을 전례 없는 규모로 실시했다.


  불행히도, 호니그가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의 통로로만 나갈 수 있었다. 케이블뉴스, 신문, 금융 통신 서비스, 그리고 점점 더 인기가 높아져가던 당파적인 웹사이트 등으로 구성된 미국의 언론 생태계였다. 그런데 2010년 무렵에 이 생태계는 분절되어 있었고 질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민주적 기관들이 쇠락했음을 반영하는 것이자 쇠락을 가속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양적완화와 제로금리가 지난 10년간의 경제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대중 담론에서 가장 논의되지 못한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은 트레이더들은 새로 만들어진 달러를 써서 금융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것이 경제와 은행 시스템에 연준이 미치는 영향력의 토대다.

  흔히 FOMC가 단기 금리를 ‘설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FOMC는 단기 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뉴욕 연의 트레이더들이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든다. 수십 년 동안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증권을 사고팔아서 돈의 비용이 FOMC가 원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 연준은 단기 채권 거래로만 통화 공급을 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 장기 채권을 사들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월가 투자자들이 돈을 안전하게 묻어둘 수 있었던 금고 하나를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수익률을 찾아 나설 때 그들은 자산을 구매한다. 이는 자산 수요를 증가시켜 회사채,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미술품에 대한 가격까지 밀어올린다.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의 목적이었고, 자산 가격이 높아지면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일으키고 이 이득이 더 폭넓은 경제로 확산되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지리라는 기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러한 자산 효과가 일어나려면 제로금리가 우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부터 이득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연준의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산 소유가 폭넓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준 자체의 분석으로도 그렇다. 2012년 초에 미국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25%를 소유했고 하위 50%가 소유한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연준이 자산 가격에 불을 땠을 때,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기별이 없이 상층의 매우 소수에게만 이득을 주었다.
  이러한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가장 적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헤지펀드 운영자 중 ZIRP가 소득 불평등을 강화하고 투기적인 부채 버블을 일으킨다고 소리 높여 비판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월가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거래가 수익이 높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정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이 그리로 우르르 몰려 거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적완화에 대한 대중의 논의는 계속 물가 인플레이션에만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종말론자들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되었고, 그러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호니그 같은 사람들의 주장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하고 동시에 같은 액수의 단기 국채를 매도해 장단기를 비트는[트위스트] 공개 시장 운영[오퍼레이션]을 한다. 연준은 장기 국채를 매입해 시장에서 퇴장시킴으로써 수요를 높여 장기 국채의 금리를 낮춘다. 하지만 같은 액수의 단기 채권을 매도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에 새로운 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장기 국채를 매입할 때 추가되는 만큼의 달러가 단기 국채를 매도할 때 다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이 조치의 목적은 은행 시스템에 존재하는 화폐량을 늘리지는 않으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에 돈을 묻어두고자 할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이다.

  듀크는 ‘재닛은 제한 없는 양적완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회상했다. “재닛은 매우 영향력이 컸습니다. 자신감이 넘쳤고 견해를 밀어붙이는 데 아주 유능했어요.” 옐런과 버냉키의 확신에 찬 주장은 한 가지의 단순한 견해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즉 무엇을 하더라도 오류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하는 쪽으로 오류를 저지르는 게 낫다는 의견이었다.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점차로 여기에 매우 능숙해졌다. 7월 말의 FOMC 회의에서 그는 점점 더 확장적이고 강한 개입 정책을 밀어붙이는 버냉키의 주장에 대해 길고 열정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피셔는 ZIRP 정책의 이론적인 장단점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ZIRP 정책이 이미 경제에 미치고 있는 위험한 왜곡의 실제 사례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피셔는 최근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재무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회사가 ZIRP 시대에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얼마 전에 낮은 비용으로 15억 달러의 부채를 조달했는데, 이 돈을 공장을 짓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쓸 계획이 아니었다. 그 돈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쓸 계획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이유는 부채 조달 비용은 0.45~1.6%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식에는 2.5%의 배당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은 부채를 늘리고 주가를 올리며 주주들에게 상당한 보상을 주는 정교한 금융 공학 기법이었다. 피셔는 그 재무 임원과의 대화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핵심을 지적했다. “그가 말하길, 아,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인용해도 좋다고 했는데요, 그 회사는 그 돈을 일자리를 하나라도 창출하는 데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춰 값싼 돈을 공급하면 기업들이 차입을 늘려 그 돈을 자본재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리라는 가정하에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중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7월 회의에서 제이 파월은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그는 QE가 자산 가격부터 먼저 올리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저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경로, 그러니까 자산 가격을 통한 경로가 우리의 모델이 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오류들은 새로운 라운드의 QE가 긴급히 필요한 조치이고 빠르게 경제를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그다음에는 철회되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면 양적완화는 연준이 사용하는 다른 수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령 금리 인하처럼 시행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빠르게 철회할 수 있는 수단 말이다.
  하지만 양적완화는 그렇지 않음이 곧 드러났다. 양적완화가 일으킨 왜곡은 깊었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으며 양적완화는 일단 시행되면 끝내기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러한 예측 오류는 그날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중앙은행 모두가 양적완화의 효과에 대해 일관되게 스스로를 오도했다. 2020년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한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양적완화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외부 연구자들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양적완화의 효과를 더 크게 잡은 중앙은행 연구자들이 더 승진을 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그들의 분석이 바로 그 프로그램을 미는 중앙은행 고위 인사들에게 보고되는 것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벳시 듀크는 집무실의 텔레비전과 실시간 블룸버그 통신 터미널에서 테이퍼 탠트럼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국채 금리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듀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것은 연준이 한 일 전부를 한꺼번에 쓸어 없애고 있었다. 연준이 쏟아부은 수천억 달러가 국채 금리를 낮추려는 것이었는데 그 금리 하락이 사라지고 있었다. 듀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점에, 상황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오히려 한층 더 강하게 지속하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매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시점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냥 계속해야 했고, 계속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테이퍼링을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연준은 자산 매입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고 양적완화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새로운 수준의 부채를 일으키면서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것은 QE의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QE의 목적이었다.

  매년 생존을 해내는 것만으로는,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은 칼라일의 경영진이 투자했을 때 기대한 수익을 아직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대개 투자한 뒤 5년 이내에 두 자릿수 수익을 내고자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숫자다. 가장 일반적인 전술은 부채를 더 일으켜서 회사를 더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회사는 부채가 증가하지만 즉각적으로 새로운 제품군과 고객층을 보탤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합병을 하면 비용 절감의 지름길이 생기기도 한다. 호니그였다면 이것을 ‘자원의 잘못된 배분’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돈 빌리는 게 쉬워지면 기업들은 빌린 돈을 합병이나 바이아웃에 쓴다. 이러한 활동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혁신을 일으키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 대중의 임금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이것이 ZIRP 전까지 브라이언이 내내 일해온 방식이었다. 그런데 ZIRP로 기업 부채 시장의 다이내믹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14년과 2015년에 브라이언은 중대한 폭로를 해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는 연준이 2010년에 시작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한 정책의 결과였습니다. 이제 인공적인 바닥이 생겼고 연준이 그 바닥의 상당 부분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장에서는 잃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잃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것은 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설명했다.
  잃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레버리지론과 CLO의 새로운 시장으로 그 모든 돈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2010년 말에는 미국에 CLO 잔액이 3,000억 달러가 채 안 되었는데 2014년 말에는 4,000억 달러가 되었고 2018년에는 6,170억 달러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위험한 기업 부채의 탑을 쌓았다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을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들은 연준이 인센티브를 준 대로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 중 어느 것도 연준의 의사결정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FOMC가 가장 큰 규모의 양적완화를 진행하던 2013년에 댈러스 연은 행장 리처드 피셔는 명시적으로 이 정책이 주로 사모펀드에만 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이 파월이 있었던 칼라일그룹 같은 곳 말이다. 피셔는 높은 자산 가격이 버냉키가 기대한 방식대로 ‘자산 효과’를 일으켜[즉 주식, 주택 등 자산 소유자들이 부가 증가했다고 느끼게 되면 이들의 소비가 촉진되어]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전망에 의문을 제기했다.
  피셔는 그때 FOMC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자산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자들과 시장을 잘 읽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버핏이나 KKR이나 칼라일이나 골드만삭스나 파월 같은 사람들에게만 그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마 피셔 같은 사람들도요. 이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돈을 빌려서 채권과 주식과 자산의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익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피셔는 이것이 연준이 바라는 정도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희한한 부작용 중 하나는 그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거대 은행들의 권력이 더 강화되고 공고화되었다는 점이었다. 2008년 시점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은 더욱 커져서 망하게 두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은행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자산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이대로 그냥 둘 생각인 것 같았다. 이것은 호니그가 수년 동안 경계했던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소수의 거대 은행이 가진 자산이 점점 더 늘어나는 동안 지역공동체 은행은 수천 개가 사라졌다. 은행 업계는 현대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집중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은행들이 더 위험한 행동에 나서게 부추기고 있었다. 또한 위험은 ‘그림자’ 은행 시스템으로도 퍼지고 있었다. 그림자 은행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방대한 양의 돈을 대부하면서 은행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공황 때 루스벨트 행정부와 의회는 은행의 권력을 제한하고 은행이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은행 업계를 완전히 개편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은 이와 달랐다. 은행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기는 했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라는 규제 기관도 새로 생기긴 했지만, 은행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기보다는 거대 은행들이 지켜야 할 매우 복잡한 새 규칙을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거대 은행이 계속 거대하게 있을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세세하게 감독과 관리를 받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것이 수백 쪽에 달하는 도드-프랭크법과 은행 관련 국제 협약인 ‘바젤 II’의 내용이다.
  하지만 호니그는 이것이 지는 게임이라고 보았다. 은행을 규제하는 규칙은 목적에 비추어 간명하게 작성되어야 하고 쉽게 이해되어야 하며 분명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뉴딜 시기에 그랬듯이 은행들이 다시 분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보험으로 보호되는 소비자 예금은 상업은행이 취급하게 하고 더 위험한 파생 상품 거래는 투자은행에 허용하는 식으로 은행 산업이 기능에 따라 다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분리하면 납세자들의 돈은 상업은행의 예금, 즉 예보가 보장하는 예금을 보호하는 데만 들어갈 것이고 이 안전망이 고객의 예금도 받으면서 위험한 투기성 거래도 하는 거대 은행들로까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을 터였다. 호니그는 일단 은행들이 이렇게 기능별로 분리되면, 그 다음에는 위기에 대비해 자본을 얼마나 많이 보유해야 하는가의 간단한 규칙에 따라 감독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호니그 규칙의 핵심은 은행 업계에서 더 위험한 부분과 경제적으로 더 필요한 기업 대출 같은 부분을 분리해서,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이 베팅을 잘못했을 때 전체 시스템을 함께 위험으로 끌고 내려가지 말고 혼자 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양적완화는 주식시장에 인플레를 일으킬 목적으로 고안되고 실행되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2010년 이후 10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연준이 개입 근거로 들었던 것처럼 전반적인 경제성장은 약세였고 임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정체되어 있었으며 해외에 심각한 위기 요인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2010년에서 2016년 사이에 77%나 상승했다. 천성이 다소 신랄한 어느 헤지펀드 트레이더는 실속 없이 부풀어 오르던 2016년의 주식시장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직전에 갑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상황에 빗댔다. 갑판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갑판이 너무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거기 말고는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월과 호니그 모두 연준이 노동 시장에서 얻을 상대적으로 작은 이득을 위해 위험한 자산버블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파월은 본인이 제기한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다. 그리고 호니그와 달리 파월은 비판의 어조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한때 FOMC의 닫힌 회의장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정책을 옹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때가 파월이 명실공히 권력의 위치로 떠오른 시점이다.

  공개된 경제 포럼에서 그는 현재로서는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에서 ‘한참 멀리 있다’고 말했다. 중립 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저해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말하는데, 아직 이보다 낮다는 의미였고 이는 금리 인상이 더 있으리라는 암시였다.
  그 발언 이후 시장은 급격히 하락했다. 다우지수는 이틀 만에 5%가 떨어졌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종목에는 은행과 에너지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준의 조치와 시장의 요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가려지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정을 설명할 그날의 뉴스가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기술주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뉴스는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테크 기업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정치계의 관심을 이유로 들었다. 맞긴 맞았다. 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실제로 세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주식시장 하락의 배경에 있는 더 큰 요인은 연준의 정상화 조치였다. 연준이 돈이 주식으로 몰려가게 하는 압력을 줄이자 투자자들은 가치가 가장 과대평가되어 있던 데서부터 돈을 빼기 시작했고 여기에는 기술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차없는 경제 요인의 힘이 자신의 모습과 범위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파월이 항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곧 분명해지듯이 정상화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 경제는 배전이 엉망이라 벽 뒤에서 전선이 녹고 있는, 잘못 지어진 거대한 건물과 같았다. 몇몇 방은 풀풀 연기가 났고 몇몇 방은 공기가 탁해지고 있었으며 언제라도 화염이 타오를 것 같았다.

  7월에 파월의 연준은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실업률은 3.7%로 50년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임금도 상승하고 있었다. 경기 순환의 이러한 국면에서는 일반적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 그래야 둔화 국면에 연준이 개입할 여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라면 경기를 둔화시켜 할 국면에 이례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이유로 연준은 이것이 일종의 보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이 보험이 시작일 뿐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물 시장에서 가격은 그해 말까지 세 차례 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반영해 형성되었다. 유럽, 중국, 러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중앙은행이 다시 완화를 시작했다. 중앙은행들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고 8월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침체와 싸우고 있었다.

  시장이 안정적이고 건전한 상태라고 여겨지던 때에 말이다. 그러한 위기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연준이 거의 곧바로 개입해서 레포시장 구제에 4,000억 달러를 지출했기 때문이었다. 전례 없는 구제 조치였고, 이러한 대규모 구제 조치는 레포시장을 공중 납치해 위험한 도박의 도구로 사용하던 소수의 헤지펀드에 큰 이득을 주었다. 연준이 그들을 그들의 도박이 일으킨 결과에서 구제해준 격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것이 거의 주목을 끌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4,000억 달러의 긴급한 현금 주입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연준은 이것이 일상적인 유지 보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날 아침에 레포 금리는 9.5%였고 이것은 금융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날 연준은 전례 없는 레포시장 개입을 시작했다. 오버나이트 레포 론 시장에 750억 달러를 붓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긴 구제금융의 시작이었고 나중에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치들을 발표할 때 연준은 아주 많은 전문 용어를 사용했고 전체를 일상적인 유지 보수 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대한 현실 하나를 가리고 있었다. 연준이 뿌리는 돈이 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이 돈은 어떤 이들에게는 이익을 주고 어떤 이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었다.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
  헤지펀드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레포시장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문을 열었다. 이것이 헤지펀드들에 준 금전적 이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레포시장 구제 금융은 레포 대출 자체에서 상당한 돈을 구제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이 베이시스 거래에 잘못 베팅한 결과를 피하게 해줌으로써도 거의 헤아릴 수 없는 금액을 구제했다. 연준 덕분에 헤지펀드들은 가진 자산을 뭐든 투매해서 현금으로 유동화하지 않아도 되었다.

  연준은 레포시장 개입을 발표하면서 헤지펀드나 베이시스 거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오버나이트 론 금리를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임시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레포 구제 금융은 수주, 수개월 간 지속되었는데 파월, 로건, 윌리엄스 같은 연준 고위 당국자들은 내내 이것이 일상적인 시스템 유지 보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실제의 번영은 경제 시스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만 누리고 있었다. 헤지펀드가 돈을 빌려서 그 돈을 주식시장에 부었을 때 뉴스 보도들은 상당히 신나 보였다. “다우는 오늘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마감했습니다.” 누가 여기에 불평할 수 있었겠는가?
  돌아보면, 호니그가 스타벅스에 온 날은 특히 통렬한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미국 경제사의 한 시대가 끝나는 마지막 장이었다. 곧 신문은 날마다 바이러스 소식으로 뒤덮이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3월 4일까지 감염자가 158명 발생했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날 호니그와 손님들은 스타벅스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나눴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였다. 이날 같은 좋은 날이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난 9월에 레포시장이 붕괴했을 때 연준은 75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날 3월 12일 목요일에 연준은 5,000억 달러어치 레포 대출을 제공한다고 발표했고 다음 날 다시 1조 달러어치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연준이 월가에 즉각적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보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우는 계속 급락해 그날 전일 대비 2,300포인트, 비율로는 10% 하락했다.

  파월의 연준은 벤 버냉키가 2008년과 2009년에 했던 것을 모두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달에 걸쳐서가 아니라 1주일 만에 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거의 제로로 낮추었고 외국의 중앙은행들과 스왑 라인을 열어 그들의 통화와 달러를 맞교환했다(많은 글로벌 부채가 달러 표시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총 7,000억 달러 규모로 또 한 차례의 양적완화를 개시했고 전보다 빠른 속도로 국채를 매입했다. 연준은 그다음 화요일이 되기 전에 8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매입했는데 이전의 양적완화에서 한 달에 푼 돈을 48시간 만에 푼 것이었다. 또 연준은 금리가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제로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놓았다. 이 모든 것이 하루에 다 시작되었다. FOMC는 이 긴급 조치를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클리블랜드 연은 행장 로레타 메스터Loretta Mester가 반대표를 던졌는데, 금리가 0.1%가 아니라 최대 0.5%까지로만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파월이 3월 15일에 시작한 긴급조치는 어느 기준으로 보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연준이 했던 어느 개입보다 범위도 넓었고 규모도 컸고 속도도 빨랐다. 하지만 3월 20일 금요일 저녁까지 벌어진 1주일간의 금융판 대학살은 연준의 조치들이 패닉을 누르기에 충분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이 시점에 이미 파월은 연준 구제책의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연준을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영역으로 가게 할 것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연준은 회사채, CLO, 심지어는 정크본드까지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 풋을 거의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부채 시장을 영원히 바꾸어놓게 될 것이었다. 이 조치는 공식적인 FOMC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FOMC 회의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지만 이 계획은 제이 파월, 존 윌리엄스(뉴욕 연은),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등 연준 이사들 사이의 정신없는 전화 통화에서 만들어졌다.

  첫 두 개의 SPV는 연준이 기업 부채를 매입할 수 있게 했다. 목적은 명백했다. 연준은 기업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줄도산하면 그것의 연쇄효과로 CLO 가치가 급락하고 은행들이 피해를 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연준은 연준 풋을 전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영역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때쯤이면 주식 거래인들은 주식시장이 붕괴하면 연준이 구제안을 가지고 달려와줄 것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을 거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기업 부채상품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을 훨씬 넘어선 곳까지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기업 부채의 금리는 그 부채의 기저에 있는 위험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제까지의 통념이었다. 위험이 큰 회사는 높은 이자를 내고 안전한 회사는 이자를 더 적게 냈다. 그런데 이제 연준이 기업 부채를 사들이는 큰 손이 되어서 이 시장에 바닥을 제공했고, 이는 부채에 매겨지는 금리의 속성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금리는 그 회사의 위험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연준이 그 부채를 매입할 의지를 반영하게 되었다. 매우 중요하게, 연준이 일단 기업 부채를 매입하는 일에 나서면 나중에 이 역할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월가의 열렬한 눈이 전에 보았던 것을 늘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이 개입할 때마다 미래에도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

  그날 아침 연준이 발표한 구제안은 급진적이었고 패닉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연준은 대략 90일 사이에 3조 달러를 만들어낼 것이었다. 2008년 위기 이전 시기의 정상적인 속도였다면 연준이 300년간 만들었을 돈에 맞먹었다.
  연준의 행동에 대중의 반대는 사실상 없었고, 파월은 연준의 행동을 확대했다. 첫 구제안이 나간 지 3주도 되지 않아서 이제까지 한 것에 더해 새로운 조치들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에도 FOMC 전체 회의의 표결을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새 조치들의 근거와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조치들의 일부는 4월 8일에 비공개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연준은 4월 9일에 회사채를 사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정크 등급의 더 위험한 채권도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크본드를 무조건 매입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연준은 팬데믹 이전에 투자 등급이었던 것만 사들일 것이었다. 이러한 채권을 월가에서는 ‘추락한 천사’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포드자동차 같은 회사의 부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추락한 천사’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연준은 기존에도 정크 등급이었던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위험한 채권들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가령, 렉스노드 같은 곳의 채권 말이다. 기존에는 정크 등급이 아니었던 부채의 등급이 강등되어 ‘추락한 천사’가 되면 이것들이 기존의 정크본드들을 대체하게 되고 기존의 정크본드는 투자자에게 매력이 훨씬 더 떨어지게 된다. 연준은 이러한 폭포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었다.
  또한 그날 연준은 별도의 새 프로그램 하나를 업데이트했다. '기간물자산담보부증권대출제도TALF: term asset 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라고 불리는 것인데, 연준 사상 처음으로 레버리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구성된 CLO의 거대한 덩어리들을 직접 매입할 것이었다. 이것은 연준이 제공하는 안전망의 적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한 것이었고, 이는 가치가 강등되어 수천억 달러 규모의 CLO가 약정상의 정크 등급 비율 상한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수천억 달러어치의 CLO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은행들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 중 어느 것도 대중 담론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조치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용어로 둘둘 싸여 있었다. 일례로, 연준의 표현을 빌리면 SMCCF는 수정, 확장될 것이었고, TALF는 새로운 자산군을 추가해 가정과 기업으로 흘러가는 신용 흐름을 지지할 것이었는데, 이는 대중의 눈길을 확 당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코로나 확진자가 3만 5,000명 나온 날(한 달 전 하루 확진자는 201명이었다), 그리고 주 정부들이 식당과 상점 문을 닫도록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금융 용어는 더더욱 관심을 끌 수 없었다.

  하지만 채권을 거래하는 사람들, 채권을 만들고 꾸러미로 묶고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역사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만했다. SPV 이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SPV 이후에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었다.

 이 조치들이 극적이긴 했지만 여기에서 직접 혜택을 본 사람은 소수였다.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 혹은 자산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사람들만 혜택을 보았다.

  CARES법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용도로 2조 달러의 지출을 승인했다. 여기에는 납세자의 돈으로 연준의 SPV에 출자할 돈 4,540억 달러도 포함되어 있었다. CARES법 내용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부분은 약 2,920억 달러 규모의, 사람들에게 직접 지급될 돈이었다.

  사람들의 계좌로 직접 들어간 돈이 CARES법의 가장 가시적인 부분이었지만, 의회가 승인한 지출 액수 전체 중에서는 작은 비중에 불과했다.

  가장 비중이 큰 지출은 ‘급여 보장 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 줄여서 PPP 대출이라고 불리는 총 6,7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이었다. 기업들이 PPP 대출을 받아 [폐업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게 하고, 다운 이후에 다시 문을 열고 모두가 일터로 돌아오면 [정해진 조건을 만족했을 때] 대출이 전부 또는 일부 탕감되었다. 길고 가혹한 락다운으로 큰 고통을 겪은 다양한 영역의 사업체들에 잠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백만 개 사업체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PPP 자금의 절반 이상이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5%로 들어갔다. 이 숫자마저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협소한 부분에서만 영향이 있었는지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지출된 PPP 자금의 전체 중 25%는 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1%에 들어갔다. 이 기업들은 대형 로펌, 전국적인 식품 체인점 등이었고 PPP 지원금 최대 한도인 1,000만 달러를 받았다. 이러한 수혜자에는 레스토랑 체인인 보스턴 마켓, 저명한 로펌인 보이스쉴러앤플렉스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연준 등의 분석에 따르면 PPP는 230만 개 일자리를 구했는데 일자리 하나당 비용이 28만 6,000달러나 들었다. 트럼프가 이 프로그램이 5,000만 개 일자리를 구하거나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한 다음에 말이다.

  CARES법이 승인한 지출 중 6,510억 달러가량은 세제 혜택의 형태로 기업에 지출되었다. 이 혜택은 받기가 매우 복잡하다. 이 말은, 뛰어난 세무 관련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큰 기업들에 세제 혜택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 체인인 치즈케이크팩토리는 4만 1,000명을 해고했는데도 5,000만 달러의 세제 혜택을 청구했다. 총 세제 혜택 중 2,500억 달러 규모는 팬데믹으로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산업의 어떤 기업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사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은 1,35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았는데, 이 말은 연 100만 달러 이상 버는 4만 3,000명이 160만 달러어치를 각각 받았다는 뜻이었다. 대체로 이 돈은 기업의 금고와 개인의 계좌로 조용히 흡수되었다. 이 같은 매우 불평등한 분배는 몇 개월이 지나서 <워싱턴포스트>가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하고서야 드러날 수 있었다.

  메인 스트리트 프로그램으로 최대 6,000억 달러어치의 부채를 사들일 예정이었지만 12월에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을 때 사들인 규모는 170억 달러어치에 불과했다.
  연준의 구제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진짜 구제 프로그램, 성공한 구제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신속했는데, 이것은 자산 소유자들을 위한 구제 프로그램이었다. 주식 소유자들은 팬데믹 붕괴 이후 9개월간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고 기업 부채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월에 연준이 개입하고부터 주식시장은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호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우지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장은 3월 중반에 저점을 쳤고 이때 미국채 시장도 급락했지만 그날부터 6월 중순까지 불과 3개월 사이에 시장 가치가 35% 올랐고 그다음 3개월간 다시 7%가 올랐다. 그 무렵이면 주식시장은 식당, 극장, 호텔, 크루즈 등이 영업을 하던 시절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월평균 레버리지론 수익률도 이르게는 4월부터 회복되었다. 8월에는 투자 등급 신규 채권이 어찌나 많이 발행되었던지, 이전 신기록이던 2017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늘 그랬듯이 자산 인플레는 언론에서 ‘호황’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호황은 너무나 강력해서 초현실적일 정도였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퇴거 위험에 처하고 식당들은 문을 닫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부채 시장과 주식시장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구제 금융은 ZIRP와 QE 정책에 의해 크고 강력해진 곳들에 주로 들어갔다. 빌린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거대 기업들에, 미국 전체 자산 중 방대한 부분을 소유한 매우 부유한 사람들에게, 빌린 돈으로 글로벌 마켓에서 위태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월가의 가장 위험한 금융 투기 세력에,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고 다들 믿게 된 미국의 거대 은행들에 말이다.

  ZIRP 시기에 득을 본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경제 영역은 자산 시장이었다. 주식시장 가치는 2010년대 동안 두 배가 되었고, 심지어 2020년의 붕괴 이후에도 자산 시장들은 계속 놀라운 성장세와 수익률을 보였다.

  이렇게 레버리지론, 주식, CLO, 그밖에 월가가 십수 년 동안 부지런히 만들어내었던 온갖 위험한 금융상품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면, 파월의 연준은 익숙한 선택의 기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될 터였다. 위험한 금융상품 가치가 붕괴하게 두거나, 다시 개입해 양적완화와 긴급 구제 프로그램을 한 번 더 돌리거나. 2018년 말에 위험한 자산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갔을 때 파월은 이러한 기로에 선 적이 있었고 더 많은 돈을 풀어 시장을 진정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투기와 자산 인플레를 부추겼다.

  12월 16일에 파월은 중대 발표를 했다. 봄에 연준이 긴급 처방으로 시행했던 일 중 몇 가지가 이제 준영구적인 것이 될 예정이었다. 메인 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은 조용히 끝났지만 구제안에 포함되었던 다른 것들은 지속될 것이었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유지할 터였고 앞으로 한동안 매달 1,200억 달러어치의 양적완화를 실시할 것이었다. 과거에 일반적이던 속도에 비추어 보면 10년 동안 창출되어야 할 만큼의 돈을 30일마다 내놓겠다는 의미였다. 파월은 경제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전이 더 있을 때까지’ 이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파월은 물가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하지 않는 한 연준이 개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에 걸쳐 2%를 상회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었다. 몇몇 항목의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것은 공급 교란 때문이었고, 약한 성장과 약한 수요가 소비자 물가를 전반적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은 제약 없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12월에 주식시장은 너무나 호황이어서 거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웹 기반 음식 배달 업체 도어대시는 그달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온라인 숙소 공유회사 에어비앤비도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이 회사들로서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상장 직후에 이렇게 급격히 주가가 뛰었다는 말은 회사의 원래 소유주들이 많은 돈을 밑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모가를 너무 낮게 설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 회사 로블록스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12월 예정이던 상장을 연기했다. [공모가 산정이 어려워]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면서 말이다. 닷컴 붐이 불었던 시기 이래로 기업들의 실제 매출 활동에 비해 주가가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계속될 것이었다. 이후 몇 개월간 시장은 계속 기록을 깨고 또 깼다.

  노동자의 가치는 줄었는데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준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

  많은 중요한 면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오랫동안 경제에 탈구를 일으킨 ‘긴 붕괴’였다.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문제들은 거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금융 붕괴는 미국의 민주적 기관들이 가진 역량의 긴 붕괴로 한층 더 다루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 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폭했다.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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