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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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0월 4일 (목) 18:37 판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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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정리. 일일이 타이핑 하기 귀찮아서 구글의 OCR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ㅎㅎ

원제는 Moonwalking With Einstein이고,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이라는 제목으로 전에 나왔다가 새로 디자인 바뀌어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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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기억술의 핵심은, 우리 뇌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억할 내용을 상대적으로 기억이 잘 되는 시각 이미지로 바꾸어 기억의 궁전에 심는 것이다. 이때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기괴한 이미지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 “무엇이든지 사소하고,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 반대로 아주 비열하고, 치욕스럽고, 놀랍고, 믿기지 않고, 또는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향이 있다.”

위대한 기억술사와 그렇지 않은 기억술사는 어떤 장면을 머릿속에서 신속하게, 그림 그리듯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를 수 있다. 정상급 기억술사들이 자신들의 기억 능력은 창의력에 많이 기댄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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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과 만나면 꽤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철완 아톰과 아인슈타인의 만남, 즉 세기의 근육과 두뇌가 만나 서로 보듬고 서 있는 모습. 내 책상머리에도 이런 자세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나는 이런 역사적 만남이 실제로 있었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검색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1977년에 태어난 마리우스 푸지아노스키라는 사람으로, 폴란드 비알라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맨손으로 약 419킬로그램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건 두 살 된 내 조카 또래 아이를 한 번에 서른 명이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힘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능지수가 가장 높은 사람’, ‘지능 챔피언’,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등 갖가지 단어로 검색해 보았다. 검색해 보니, 뉴욕 시에 지능지수가 228인 사람이 있었고, 52명과 동시에 눈가리개 경기(눈을 가린 체스 기사 한 명이 눈을 가리지 않은 여러 명과 동시에 대결을 벌이는 경기 옮긴이)를 한 헝가리 출신 체스 기사도 있었다. 또 200자리나 되는 수의 23제곱근을 암산으로 50초 만에 푼 인도 여성, 4차원 루빅큐브를 빠르게 맞춘 사람도 있었다. 그 밖에도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천재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없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똑똑한 정도는 힘의 세기보다 계량화하기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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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벤 프리드모어는 달랐다. 그는 순서를 뒤섞은 포커 카드 한벌을 32초 만에 순서대로 암기할 수 있었다. 5분 안에 아흔여섯 가지 역사적 사실을 날짜대로 암기하기도 했다. 또 원주율 값을 5만 자리까지 알고 있었다.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이 평소에 깜박 잊어버리는 것을 다시 찾거나 만회하느라 1년 365일 중 40일을 낭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벤 프리드모어가 잠시 실업자였다는 것을 접어 두고 본다면,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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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것이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방편이라고 한다면, 나처럼 한나절 만에 책 한 권 뚝딱 읽고 내용이나 요점을 깊이 새겨 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 두는 것만큼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있고, 기억해 두면 유용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지, 며칠 지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책꽂이를 보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모를 책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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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1928년 5월 어느 날, 젊은 기자 S가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R. 루리야의 연구실에 찾아가 자신의 기억력을 시험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물론 자진해서 찾아가지는 않았고, 직장상사가 보내서 간 것이다. 신문사 편집장이던 그의 상사는 매일 아침 편집회의에서 취재를 위해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기자들에게 속사포처럼 불러 줬다. 모든 기자가 수첩에 받아 적느라 정신 없었지만, 딱 한 사람은 예외였다. S는 멀뚱히 듣기만 한 것이다.

하루는 편집회의 중에 S의 무심한 태도를 참다 못한 편집장이 그를 따로 불러 제발 소명 의식을 갖고 일하라고 충고했다. 내 목소리가 꾀꼬리 소리라서 아침부터 목청껏 사람들 이름과 주소를 불러 준다고 생각하나? 관련 인물을 취재하지도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주소도 없이 어떻게 찾아가겠나? 텔레파시로 접촉할 생각인가? 언론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받아 적는 습관부터 들이라며 대놓고 나무랐다.

S는 자신을 꾸짖는 편집장을 우두커니 쳐다보면서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회의에서 그가 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었다. 기겁한 편집장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S는 나중에 자기 자신이 편집장보다 더 놀랐다고 고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누구나 자기처럼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루리야의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기억력을 시험한 루리야는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무엇보다 자신의 기억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고 했다. 루리야는 S에게 숫자 목록을 주고 암기해 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S는 70 자리나 되는 숫자를, 그것도 앞뒤로 자유자재로 되뇔 수 있었다. 루리야는 이렇게 기록했다. “단어나 아무 뜻도 없는 음절, 숫자나 소리를 말로 불러 주든 종이에 써 주든 뭔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내가 어떤 것을 제시하든 그는 3, 4초 정도 있다가 별 어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되뇌었다.” S의 기억력을 계속 시험해 보았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실험을 계속 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심리학자로서 많은 실험을 했지만 S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갑자기 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누가 보면 심리학자에게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억력 실험을 그에게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었다.” 루리야의 기록이다.

그래도 루리야는 그 뒤로 30년 동안 S를 연구해 이상심리학에서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 본 기억의 심리학』을 썼다. S는 수학에 관해 문외한이었는데도 복잡한 수학 공식을 암기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몰랐는데도 이탈리아어로 된 시를 암송할 수 있었으며, 아무 뜻도 없는 음절까지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암기할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더 놀라운 것은 세월이 흘러도 그의 기억력이 결코 감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략)

하지만 S의 기억력은 망각의 곡선을 따르지 않았다. 어떤 것을 외우든, 얼마나 많이 외우든, 얼마나 오래전에 외웠든 그는 방금 외운 것처럼 정확하게 되뇌었다. 그는 16년 전에 외운 것까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루리야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눈을 감고 앉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예⋯⋯. 이건 제가 당신 아파트에 갔을 때 암기하라고 준 자료네요⋯⋯. 당신은 탁자에 앉아 있었고⋯⋯ 갈색 정장을 입고 있었지요⋯⋯.’ 그러고는 마치 바로 전 실험에서 암기하라고 준 자료를 되뇌듯 그때 외운 것을 정확하게 되뇌었다.”

이 기록대로라면 S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심리학에서 S는 아주 독특한 예외로 취급된다. 하지만 직접 기억술을 익힌 나로서는 S의 이야기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주 특이하긴 하지만, 그와 반대로 평범하고 쇠약하고 잘 잊는 우리의 뇌가 그로부터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의 비상한 재능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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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손에 따르면 전문 지식이란 ‘관련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획득한 광범위한 지식, 패턴에 기초한 검색, 계획 체제’다. 다른 말로 하면, 우수한 기억이란 전문 지식의 부산물이 아니라 전문 지식의 정수다.

121~122

기억상실증을 앓으면서 EP에게 공간은 눈앞에 펼쳐지는 협소한 범위로 한정됐다. 인간관계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로 국한됐다. 그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불빛 한 점 밑에서 살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라디오를 들었다. 하지만 침대로 돌아가 누우면 곧 자신이 아침을 먹었는지, 방금 일어났는지 항상 헷갈려 했다. 그래서 때로는 다시 아침을 먹고 침대로 돌아가 라디오를 들었다. 아마 그러고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아침을 여러 번 먹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봐도 아주 잠깐씩 흥미를 느낄 뿐, 자신이 한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역사 채널을 좋아했는데,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프로그램을 특히 즐겼다. 산책도 좋아해서 보통 오전에 짧게 여러 번 동네를 돌고, 가끔 45분 정도 되는 거리까지 가기도 했다. 뜰에 나가 신문을 읽지만,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로서는 기사가 생뚱맞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아마 타임머신을 타고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을 것이다. 기사 한 편을 끝까지 읽어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신문을 다 보고 나면, 대개는 신문에 실린 사진에 수염을 그려 넣거나 수저를 올려놓고 테두리를 따라 그리는 등 낙서를 즐겼다. 부동산 시세를 볼 때면 매번 놀라워했다.

기억이 없는 EP는 시간관념도 없었다. 그에게 의식은 물줄기가 아니라 생기자마자 증발해 버리는 빗방울 같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벗기거나 시간을 바꿔 놓으면, 그는 정말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상상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망각의 늪에 빠져 영원한 현재를 사는 그에게는 근심거리, 걱정거리도 없었다. 이웃에 사는 딸 캐럴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행복해하세요. 정말 행복하시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아요.” EP는 오히려 만성 기억상실증 덕에 일 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스콰이어가 물었다.

그는 뭔가 계산이라도 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잠시 뒤에 말했 다. “음, 쉰아홉인가 예순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기억력은 괜찮은데 가끔 사람들이 뜬금없는 질문을 해요. 당신도 제 나이 또래 같아 보이는데, 아닌가요?”

스콰이어는 그의 나이를 알면서도 그냥 “예, 맞습니다.” 하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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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체계화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수면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한 시간 동안 쳇바퀴를 돈 쥐는 잠결에도 똑같이 한 시간 동안 쳇바퀴를 돈다. 쳇바퀴를 돌 때 나타나는 신경 발화 패턴이 잘때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꿈은 실제 생활에서 겪은 일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경험이 장기기억으로 서서히 굳어 가면서 나오는 부산물이 바로 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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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는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 실존적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를 잡고 흔들면서 말해 주고 싶었다. “당신은 아주 희귀한 기억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지난 50 년의 기억이 모조리 지워졌어요. 아마 채 1분도 안 돼서 이 대화도 잊을 거예요.” 나는 그를 엄습할 공포, 찰나의 깨달음, 눈앞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질 공허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공허감은 옆을 지나는 차들과 멀리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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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궁전이라고 해서 진짜 궁전이거나 건물일 필요는 없다. S의 것처럼 어떤 마을을 지나는 도로일 수 있고, 철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역사일 수 있으며, 천문학의 12궁이나 신화에 나오는 동물일 수도 있다. 크든 작든, 실내든 실외든, 실존하는 것이든 가상의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한 장소가 다음 장소와 잇닿아 있어야 하고, 눈에 선할 만큼 아주 친숙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네 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 스콧 해그우드는 기억 저장소로 건축 전문 잡지 『건축 다이제스트』에 소개되는 호화 주택을 썼다. 말레이시아의 기억술사인 입 스위 추이 박사는 5만 7,000 단어를 수록한 1,774 짜리 『옥스퍼드 중영사전』을 통째로 암기하기 위해 자기 몸의 각 부위 를 기억의 궁전으로 썼다. 기억의 궁전은 기억해야 하는 것의 종류에 따라 원하는 만큼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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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억하는가는 인격과 직결됐다. 체스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비결이 지난 경기들을 학습하고 숙지하는 것이듯 삶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비결은 옛 문헌들을 학습하는 것이었다.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때 대처할 방법에 대해 기억 말고 믿고 의지할 데가 있을까? 내가 책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독서와 학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문헌을 제대로 학습하려면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18세기 초 네덜란드의 시인 얀 루이켄은 ‘머리에 새겨 넣은 책 한 권이 책꽂이에 쌓아 둔 책 1,000권과 맞먹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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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이해할 만큼 정교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컴퓨터는 ‘The stuffy nose may dim liquor’ (코가 막히면 술 맛이 나지 않는다)와 ‘The stuff he knows made him lick her’ (그가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를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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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능력을 학습하는 사람의뇌를 fMRI로 촬영해 보면 단계마다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임무를 자동적으로 수행함에 따라 이성적 추론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는 떨어지고 다른 부위는 활성화된다. 이것을 ‘오케이 플래토’라고 한다. 오케이 플래토란 계속 연습하던 것을 어느 순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하는 수준이다. 임무가 자동적인 것, 즉 무의식적인 것이 되면서 더는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것들이 대부분 어느 순간에는 오케이 플래토에 도달한다. 10대에 운전하는 법을 배워 조금 시간이 흐르면 신호 위반과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다. 아버지가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 아버지는 40년 동안 골프를 쳤는데도 전혀 진전이 없다. 40년 동안 핸디캡이 한 타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실은 아버지도 오케이 플래토에 이른 것이다.

초기에 심리학자들은 오케이 플래토가 개인이 타고난 능력의 상한선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우생학자이자 탐험가인 프랜시스 골턴은 1869년에 쓴 『유전하는 천재』라는 책에서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큰 벽에 부딪치는데, 이 벽은 ‘학습이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주장을 보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에릭손과 그의 동료 심리학자들은 실험 과정에서 골턴의 논리와 반대되는 경우를 계속 발견했다. 그들은 골턴의 벽이 선천적 한계와는 관련이 없고 우리 자신이 설정한 만족도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전문가는 판에 박힌 일에도 초지일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구분된다. 에릭손은 전문가들의 이런 태도를 ‘주도면밀한 습관’이라고 부른다.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 중의 최고만 연구한 그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같은 발전 양식을 발견했다. 그들은 ‘자동화 단계’로 진입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다음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한다. 자신의 기술에 집중하고, 항상 목표를 지향하며, 결과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인지 단계’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연습 시간에 연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프로 연주자들은 곡의 특정 부분이나 난해한 부분에 연습을 집중한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피켜 선수들은 연습 시간에 평소 실수가 잦은 점프만 연습하지만, 평범한 선수들은 벌써 완벽하게 숙달한 점프를 계속 연습한다. 주도면밀한 습관을 들이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것에 정통하고 싶을 때 연습 시간의 양보다는 연습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실 체스에서 바이올린과 농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문 분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그 분야에 얼마나 오래 종사했는가와 성과 수준은 이렇다 할 인과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홀컵 대신 깡통을 갖다 놓고 퍼팅 연습하는 것을 좋은 훈련 습관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도 주의 깊게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좋은 습관을 길들이고 발전하려면 실수를 돌아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중략)

어떤 것에 정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연습하는 동안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동화 단계로 넘어가 무의식적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타자에서 오케이 플래토를 피하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의 타자 속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빨리 치도록 자신을 다그치는 것, 그리고 일부러 실수하는 것이다. 타자수들에게 평소 그들의 타자 속도보다 10~15퍼센트 정도 빠르게 단어를 보여 주면서 타자하게 한 실험이 있다. 처음에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낸 그들은 이를 극복하고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타자할 수 있었다. 자동화 단계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지 단계로 되돌아감으로써 그들은 오케이 플래토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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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렇게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자기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서 오케이 플래토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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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에릭손은 사람들이 원래 스스로 심리적 장벽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벽을 깨려고 맘만 먹으면, 깨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295~296

그가 말했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해서 저절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을 모르고는 이해조차 할 수 없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이 알기가 쉬워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붙잡는 거미줄과 같다. 붙잡는 것이 많을수록 거미줄은 커진다. 거미줄이 커질수록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중략) (학자들 중에는 아는 것은 많지만 이해 수준이 그에 못 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탓에 기억력이 떨어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많아도 통찰력은 여전한 노교수도 있다.) 그런데 기억과 지혜는 근육과 운동의 관계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이 둘은 피드백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가 우리가 벌써 가지고 있는 정보망에 단단히 포착될수록 기억하기가 쉬워진다. 입력된 기억을 붙잡아 놓을 거미줄 연상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것도 쉽게 기억한다. 즉 우리는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알 수 있다. 더 많이 기억하면 할수록 세상사를 잘 처리할 수 있다. 세상사를 잘 처리할수록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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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을 대상으로 한 모든 실험은 귀무가설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귀무가설이란, 대안으로 수립된 가설들이 거짓으로 입증될 경우 참이 되는 작업가설이다. 즉 대니얼이 서번트가 아니라면 그는 평범한 사람이라야 한다. 하지만 정작 시험이 필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서번트가 사실은 훈련된 기억술사일 수도 있다는 대안 가설이나 가능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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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능력에서 시작해 훈련으로 정점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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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구루들은 카밀로를 네트워크 시대의 역사적 선구자로 본다. 이들은 가장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의 궁전인 인터넷과 맥, 윈도우즈의 운영 체제가 이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맥과 윈도우즈의 폴더와 아이콘이 카밀로의 기술 원리를 차용한 것으로 본다. Peter Matussek (2001), “The Renaissance of the Theater of Memory", Paragrana 10, no.1, pp. 2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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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산에 대해 조사하다가 우연히 스티븐 스미스라는 심리학자가 쓴 The Great Mental Calculators: The Psychology, Methods, and Lives of Calculating Prodigies Past and Present(1983) 라는 놀라운 책을 알게 됐다. 스미스는 암산 천재들의 뇌가 보통 사람들의 뇌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암산 능력은 계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서 비롯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계산과 묘기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장애가 없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묘기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동기가 있는 사람만 묘기를 배울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간 계산기라고 할 수 있는 조지 패커 비더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누구든 암산을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