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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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황정은 〈마더〉

어제 사간 고기는 맛이 이상했어. 남자는 진열대 가장자리에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걸치고 말한다. 병든 소였지? 몇 달 동안이나 항생제를 먹다가 죽어버린 소 말이야. 뉴스에서 봤어.

오는 진열대에 바짝 붙어 선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오의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선생과 닮았다. 오는 그 선생에게 뺨을 얻어맞은 적이 있다. 수업 중에 볼펜을 시끄럽게 딸각거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독일어 선생은 오를 교탁 앞으로 불러내서 여섯 차례 뺨을 때렸다. 특이한 모양으로 손바닥을 구부려서 딱, 딱,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오를 제자리로 돌려보내며 그는 흡족한 듯 웃고 있었다. 얇은 입술이 길쭉하게 벌어지고 뾰족한 송곳니가 드러났다. 오는 뺨 안쪽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빨아먹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저 남자를 우연히 만나면 입을 찢어버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남자의 광대뼈는 그 독일어 선생의 것보다 튀어나와 보인다. 정수리쯤의 두상도 훨씬 좁고 높은 것 같다. 하지만 고교를 졸업한 지도 팔 년이나 흘렀으니까, 세월 탓에 저런 얼굴로 변했을지 모른다. 그 고등학교에 재직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면 이빨 틈에 나이프를 밀어 넣고, 볼 쪽으로 단숨에 날을 당겨, 입을 찢는다. 지금? 지금. 오는 팔을 늘어뜨린 채 손바닥을 말았다 펴며 남자의 얼굴을 본다. 뭘 드릴까요. 현대정육도매센터의 또 다른 직원인 윤이 남자를 향해 말한다.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진열대 유리를 꾹 누르며 돼지갈비를 두 근 달라고 말한다. 암퇘지와 수퇘지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오는 묻는다. 남자는 투명한 다갈색 눈으로 오를 바라본다. 남자가 말한다. 무슨 차이가 있나. 암퇘지는 갈비뼈가 둥글고 수퇘지는 평평하다고 오는 대답한다. 아시다시피, 오는 끈적거리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다. 암퇘지는 뱃속에서 새끼를 키워야 하니까요.

남자는 잠깐 망설이다가 암퇘지를 달라고 말한다. 오는 고깃덩어리를 육절기 속에 밀어 넣고 버튼을 누른다. 둥근 칼날이 부드럽게 회전을 시작하고 같은 간격으로 말끔히 잘린 갈빗살이 밀려나온다. 오는 한쪽 손바닥에 고기조각을 차곡차곡 포개며 숙성실 쪽을 돌아본다. 현대정육도매센터의 사장이 숙성실 불빛 속에서 오늘 들어온 소를 부위별로 나누고 있다. 손잡이에 노란색 고무 밴드를 감은 스위스 나이프를 손에 쥐고 꼭 필요한 만큼만 팔꿈치와 손목을 움직여 우둔과 설도와 사태를 떼어내고 채골과 안심을 나눈다. 오는 인중에 배어 나온 땀을 빨아먹는다. 이대로 도마를 밟고 진열대를 넘어 남자에게 달려든다면 사장이 저 나이프를 쥔 채 달려 나올 것이다. 오는 다음에, 라고 생각한다. 돼지갈비가 든 비닐봉지를 진열대 너머로 건네며 다음에, 라고 말한다. 남자는 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헬리콥터가 낮게 날아간다. 현대정육도매센터의 유리문이 와르르 흔들린다. 정육점 천장에 매달린 십육 인치 텔레비전의 화면에도 가느다란 노이즈가 떠오른다. 무선 마이크를 쥔 남자 사회자와 여자 사회자의 얼굴이 지그재그로 비틀린다. 오는 진열대에 가슴을 누르고 선 채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오는 저 프로그램의 오프닝 송을 기억한다. 사춘기 때 저 프로그램의 주소로 엽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나를 낳은 여자는 코끼리와 오리가 그려진 종이가방에 나를 담아 전철에 버렸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가며 정중하게 써서 보냈는데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답해주지 못할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는 노래 부르듯 중얼거린다. 짤깍짤깍 소리를 내며 시계바늘이 움직인다. 해체도 위로 늘어진 십자수 시계 속에서 얼굴이 흰 소년과 소녀는 매일 키스하고 키스한다.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둔한 움직임으로 벽을 가로질러 돼지 해체도 밑으로 숨어든다. 만지는 사람이 없는데도 해체도 표면은 늘 불투명한 기름 막으로 덮여 끈적거린다. 고깃점에서 흘러나온 묽은 피가 모노륨 바닥에 고여 있다. 현대정육도매센터의 사장이 근육과 지방이 달라붙은 스위스 나이프를 행주에 닦으며 숙성실에서 나온다.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장은 볶음밥을 먹고 또 다른 직원인 윤은 울면을 먹는다. 오는 플라스틱 의자를 가게 밖에 내어놓고 그 위에 앉아서 자장면을 먹는다. 사장과 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오에게 안으로 들어와 밥을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는 플라스틱 그릇 속의 면을 휘젓는다. 날이 흐리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갑고 매캐한 공기가 빨려 들어와 목을 자극한다. 플라스틱 그릇 속의 면은 금세 식는다. 오는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촛농 같은 기름덩어리를 젓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면을 건져먹는다. 툭, 툭, 툭, 하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울린다. 오는 자신의 심장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밤에 들은 마더의 심장소리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트럭 한 대가 길 건너편의 비탈길을 내려와 도로 쪽으로 느릿느릿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은색 범퍼가 둔탁하게 반짝인다. 보도 위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오는 저기 어디쯤에서 마더를 주웠다. 밤이었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보도에 주차된 흰색 세피아와 감색 엘란트라 사이에서 마더는 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오른쪽 눈에 연필심만한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해파리처럼 생긴 신경조직들이 밀려나와 있었다. 많은 액수의 수술비와 두 달간의 진료비가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오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별히 돈이 들어갈 만한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니지만 돈은 늘 남는다. 오는 길에서 주운 개에게 마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더는 요즘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만 남은 눈으로 물끄러미 사람을 바라본다. 마더의 눈을 치료한 의사는 마더의 나이가 꽤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오는 면을 다 골라먹은 자장그릇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는다. 오렌지색 하프코트를 입은 여자가 구두 굽으로 딱딱 보도를 찍으며 오의 앞을 지나간다. 나를 낳은 여자도 저런 구두를 한 켤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는 여자의 구두를 바라본다.

길쭉한 새의 그림자가 오의 운동화 위로 휙 지나간다. 오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새는 없고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오의 이마에서 탁 터진다.

인사를 하는 일도 안부를 묻는 일도 없다. 나이도 묻지 않고 이름은 더구나 묻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 받아 회원을 선발한다. 그러나 평가가 까다로워 근래에 새롭게 들어온 회원은 없다. 오를 포함한 네 명의 회원은 모두 ‘티파니’로 불린다. 일주일에 한번, 온라인에서 만나 투표를 한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답은 예스, 노우로 선택된다. 한 사람이라도 ‘예스’를 선택한 순간에 접속은 끊어진다. 오프라인 모임은 단 한번. 언젠가 죽음이 결정되는 날에 열릴 것이다. 드릴로 머리를 뚫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티파니가 말한다. 가장 추한 자살은 창자를 쏟아놓고 죽는 것이라고 티파니가 말한다. 그 냄새를 생각해 봐! 자살은 필연이자 권리라고 티파니가 말한다. 사람이 생각을 할 줄 아는 생물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다. 단지 살아가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생각은 왜 필요한가. 사람은 분명 살아가지만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하며 최종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 ‘생각’이 그러한 권리의 명백한 증거다.

오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티파니의 말을 들여다본다. 마침표 부분에 번진 지문자국을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마더가 다가와 오의 발가락에 축축한 코를 댄다. 오는 가볍게 몸을 떤다. 마더는 오의 발등을 베고 눕는다. 그리고 이따금씩 기침을 한다. 이웃집과 맞붙은 벽 쪽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자기타와 드럼의 뭉툭한 소음에 짓눌린 채 들려온다. 티파니는 다양한 자살법과 자살을 해야 하는 개인적 이력에 대해 말하지만, 왜 함께 죽을 사람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비참한 모습으로 혼자 죽는 것을 견딜 수가 없는 거라고 오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처럼. 혼자는 불안하고 억울하다. 비겁한 일이 흔히 그렇듯이, 공범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러니까 자신처럼.

오는 티파니의 이름으로 말한다. 누군가의 죽고 싶다는 열망은 또 다른 누군가의 뇌에 다다른다. 이를테면 텔레파시다. 당신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의 누군가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원한다.

옆집의 음악소리가 가파르게 높아진다. 누군가 거친 발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옆집 문을 두드린다. 쿵쿵쿵. 마더가 머리를 들고 으르렁거린다. 무리다. 곧바로 기침이 터진다. 등이 둥글게 말리고 네 다리가 가슴 쪽에 바짝 붙는다. 오는 책상 밑으로 팔을 뻗어 단단하게 굳은 마더의 목을 문지른다. 개액개액,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더는 몸을 늘어뜨린다.

모니터 속 티파니의 방에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다. 투표가 시작된다. 노우, 노우가 떠오르고 망설이듯 간격을 두고 예스가 떠오른다. 접속이 끊긴다. 티파니들은 당분간 더 살아간다.

오는 책상 서랍을 당겨 양고기가 든 캔을 꺼낸다. 뚜껑을 잡아 뜯고, 먹기 좋도록 손가락으로 헤집어서 바닥에 내린다. 코앞에 먹이가 놓였는데도 마더는 까만 눈으로 오를 바라볼 뿐 머리를 들지도 않는다. 오는 볼 안쪽 살을 어금니로 씹으며 마더를 바라본다. 의자를 밀고 일어난다. 엄지손가락이 부었다. 왜 부었지,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간다. 변기에 앉아 시간을 들여 조금씩 배변한다.

얼마 전까지 방안에 놓여 있던 행운목 화분이 변기 앞에 놓여 있다. 욕실 구석에 화분이 놓이게 된 경로를 생각해 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는 허리를 구부려 행운목을 들여다본다. 열 두 개의 잎은 모두 끝부분이 다갈색으로 말라 있다. 터질 듯 갈라진 줄기에는 진하고 독해 보이는 분비물이 동글동글 맺혀 있다. 아직은 죽지 않겠다며 악을 쓰는 것 같다. 오는 행운목의 길쭉한 잎에 닿지 않도록 무릎을 바짝 당긴다. 변기 레버를 누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속으로 배설물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한 번 물을 내린다.

중학교 때 고흐의 화집을 본 적이 있다. 주말마다 고아원으로 자원봉사를 나오는 미대생이 있었다. 가슴이 납작하고 손가락이 길고 표정이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의 가방에서 지갑과 화집을 훔쳤다. 지갑 속엔 돈이 얼마 없었다. 강한 색상의 물감을 여러 번 덧발라 그린 그림들을 무심히 넘겨보다가 어느 페이지에서 눈길이 멎었다. 나체로 몸을 웅크리고 앉은 여자의 옆모습을 데생한 그림이었다.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딱딱하게 마른 젖가슴과 공허하게 부푼 배, 울퉁불퉁한 등. 나를 낳은 여자는 꼭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흥분했다. 그림의 우측 하단을 살폈다. 길쭉한 뿔처럼 생긴 화가의 사인 옆에 r와 w만을 필기체로 쓴 sorrow 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왜 슬픔인가, 이 스케치의 이름은 마더가 되어야 한다. 커터로 제목을 긁어내고 제대로 된 제목을 붙여주었다. 지갑은 정화조 속에 버리고 화집은 개인사물함 밑바닥에 숨겼다. 지갑과 화집을 도둑맞은 미대생은 그 후로도 일년 반 동안 자원봉사를 계속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립해 나오면서 화집을 잃어버렸지만 지금도 나를 낳은 여자, 를 중얼거리면 그 그림 속 여자가 떠오른다.

왼쪽 어깨를 떠밀려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진다. 오는 횡단보도 앞에 선 자신을 깨닫는다. 서너 명의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두 사람은 우산을 쓰고 나머지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오는 눈으로 들이치는 빗방울을 방치하며 길 건너편을 바라본다. 신호등의 녹색 불빛이 점멸하고 있다. 오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기로 하고 한쪽 발에 실린 체중을 다른 쪽 발에 싣는다. 자신도 모르는 새 집중을 하고 있었던 탓에 신경이 피로하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꽉 메우고 있던 그림이 다시 망막으로 떠오른다. 여러 번 눈을 깜박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는 허벅지에 손가락을 대고 사라져, 라는 글자를 도독 찍는다. 짐을 잔뜩 실은 트럭 한 대가 반구형 화단에 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눈이 녹은 빗물이 점퍼 안쪽으로 스며들어 어깨가 차다. 손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 내고 싶지만 손목에 힘이 없다. 설 대목이 다가와 바쁜 시즌이다. 하루 종일 차갑게 식은 고기와 힘줄과 뼈를 썰었다. 손목뼈를 감싼 피부 안쪽에서 미세한 거품이 부글거리며 끓는 것 같다. 집, 오는 중얼거린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마더에게 먹이를 주고 두꺼운 이불 밑에서 잠을 자자. 지금 이 순간이 웹 페이지에 떠오른 영상이라면 클릭 한 번으로 집(home)으로 돌아갈 수 있을텐데. 현실은 성가시고 불편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1031719171&code=960205#csidxdc60430e39b1b6d8a16e3b3eb60c4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