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5 실패하는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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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는 증명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가진 성질을 이용한다. 결국 ‘A는 A다’라는 너무 당연한 말을 비비 꼬아서 적은 것에 불과한 것. 이게 문제가 어려워지면 자기 자신도 속는다. 그 자신을 이용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본질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증명은 무언가를 엄밀하게 정의(define)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좋은데, ‘어떤것을 정의한다’는 문제는 그 자체로 순환적이기 때문이다. ‘뭘 정의를 해야겠으니 그것에 대해 알아야겠는데, 아니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니. 그게 정의라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얘기.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대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정의가 명확하면 이해가 흐릴 수가 없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정의하고 엄밀한 정의가 더 좋은 이해를 낳는다. 이렇게 선순환 사이클을 타서 무모순성에 얼른 도달해야 그걸 또 다른 곳에 써먹고 하는데, 이 과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문제 안에 답이 있다’는 말이나, ‘옳은 답을 얻으려면 옳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