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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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8월 9일 (수) 14:54 판 (새 문서: <poem> 안주철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 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 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갈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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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철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 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 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갈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리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