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8 노량진 고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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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9월 8일 (금) 16:30 판 (새 문서: <poem> 조영석 조선왕조가 문을 닫은 지 백 년이지만 노량진에는 여전히 지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사람들의 텃새쯤은 사투리로 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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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조선왕조가 문을 닫은 지 백 년이지만
노량진에는 여전히 지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사람들의 텃새쯤은 사투리로 밟아두고
저마다 고향의 특산물이 아닌
특산물을 팔아치운 돈 몇 푼을 거머쥔 채
배 대신 기차를 통해 들어와
땅을 사서 뿌리를 박았다.
뜨내기 보부상처럼 봇짐 하나씩을 짊어지고
어디를 걸어도 골목뿐인 길을 돌아다녔다.
출신을 알 수 없는 어깨들과 부딪치며
온몸에 붙은 졸음을 쫓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다다르면
고시원으로 들어가거나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처마 밑에 모여 시험에 대해 떠도는 소문들을
담배 한 갑으로 나누어 피웠다.
길바닥에는 단풍보다 화려한 전단지들이 뒹굴었다.
다달이 시험은 멈추지 않았고 한번 뿌리가 걸린 사람들은
쉽사리 노량진을 뜨지 못했다.
어느 누가 손에 잡힐 듯한 금의환향을 마다하겠는가.
한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며
웃음은 모두 증발해버린
비린내 대신 짠내만 가득한 동네
노량진 고시촌.



*
짠내만 가득한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