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1 구멍, 오래된
이용한
지하철 18호선
언제부턴가 내 몸속에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1호선, 2호선, 3호선, 차츰차츰 늘어나더니 결국 서울시내에도 없는 18호선까지, 내 몸에 이렇게 많은 터널이 한꺼번에 생겨나다니, 하지만 나는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미친놈 왜 고속도로는 안 생겼냐? 그럴 것이 뻔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몸속에 지하철이 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하루는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입을 짜악 벌리고 누웠다
"내 속에 지하철이 다녀요, 선생님."
"언제부터죠?"
"며칠 됐어요."
의사는 입 속에 손전등을 넣어 몸 안을 비춰보더니 "몸속에 지하철이 다니는 병은 처음이군요"라며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한참 뒤, 건장한 간호사가 나를 창살이 달린 방으로 데려갔다 그제야 나는 의사와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며칠 후 그가 방으로 와서 "아직도 지하철이 다녀요?"라고 물었을 때, "아뇨, 지하철은 애당초 다니지 않았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날로 나는 그 이상한 방을 나왔고,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지하철이 무슨 자가용이냐, 다녔다 안 다녔다 하게!"
오래된 구멍
언제부턴가
책방보다는 단골 술집이
여행보다는 낮잠을,
애인보다는 TV에 더 빠져 산다
언제부턴가
저녁 대신 술을
비타민 대신 사리돈을 먹고 잠자는 날이 많아졌다
방문을 열면,
그 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암흑천지의 세계가
오! 내가 밟고 온 지구의 골목과
추억과 세월이
난장처럼 뒤엉켜 있다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듯 오래전에 떠난 낡은 구멍을 읽어본다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긴 아무도 없는데,
거기도 지하철 다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