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9 약국 여자
이용한
들뜬 잇몸 사이로 치통이 올라온다 배고픈 시절을 겪은 나로서는 뭐든 먹을 때는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고, 진통제를 너무 먹었더니 배가 불러! 간신히 약국 여자에게 아악~ 나는 검은 속을 내보인다 여긴 병원도 아니고, 냄새나는 입은 그만 닫아도 좋아요 당신은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퇴근해버린다 약국 여자는 밀물처럼 슬프고, 썰물처럼 아파서 부르튼 입술로 겨우 믿을 수 없는 바다를 읊조린다 정작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아침마다 약국에 도착하는 시계처럼 정확한 당신이다 빨간약과 반창고로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당신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오직 약국 여자가 행복했던 기억은 싱겁게도 해군 장교와 수안보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1년 전 봄이었다는 것을, 철책을 두른 해안선이 불안한 연애를 경계해왔고, 어느 날 32호차 운전병이 밴쿠버로 떠난 여자를 벗어나고자 시속 80km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하필이면 그 옆좌석에 해군 장교가 타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말할 수 없었고, 당신의 말할 수 없는 처방이 얼마나 절박한 극약인가를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가령 당신이 내일쯤 차를 몰고 7번 국도로 떠나버린다 해도, 거기서 갑자기 집어등 켜진 별빛 속으로 뛰어든다 해도 그것이 이미 예정된 사실이라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아아! 명태처럼 울고 있는 내가 내 차에 차압 딱지가 붙고 나서야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오래전 크로바 타자기를 타다탁탁 두들기던 시절은 타다탁탁 지나가고, 브레이크만 밟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간단하게 끝나죠, 진통제는 고통을
잊게 해줄 뿐, 낫게 하진 않아요, 라고 말하는 약국 여자에게 이미 처방전은 필요 없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자꾸 약국 여자의 꼭꼭 여민 철책 너머를 기웃거렸고, 물렁해진 가슴을 딱 한 번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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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글들은 가끔 너무 객관적으로 절망적이다
무서울만큼
타다탁탁, 타다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