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 메트릭 스튜디오
문병로 교수의 메트릭 스튜디오
문병로 (지은이)김영사2014-03-07
37~38
돈이 많을수록 증식되는 속도가 빠르다?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한다. 같은 대상에 같은 액수를 투자해도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버는 반면 빠듯한 사람은 잃는 일이 발생한다. 증권 계좌 잔고의 100%를 주식에 투자한 사람은 잔고가 점점 줄어드는 데, 똑같은 종목으로 같은 시간에 매매해도, 잔고의 50%만 투자한 사람은 잔고가 늘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을 어리 둥절하게 하는 현상 중의 하나다. 돈의 흐름은 누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리적으로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상해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엄밀한 수리적 근거가 있다.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매달 60% 상승하거나 40% 하락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주식이 있고, 상승과 하락 확률은 반반이라고 하자. +60%와 40%를 산술 평균 하면 10% 이익이다. 언뜻 생각하면 매달 평균 10%씩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자신이 가진 전부를 투자한다면 이 사람은 월평균 2%씩 잃는다. 항상 자신이 가진 재산의 반만 투자한다면 이 사람은 장기적으로 월평균 2%씩 수익을 낸다. 시간이 흘러 재산이 1000만원이었던 사람은 36개월이 지나면 잔 고가 480만원으로 줄어든다. 재산이 2000만원이었던 사람은 36개월 후 잔고가 4080만원으로 불어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것도 산술 평균과 기하 평균의 차이 때문이다. 위험 관리, 변동성 관리와 상관이 있는데 이는 5장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게 될 것이다. 5장에서는 샤논, 켈리 같은 천재들이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설명하고,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 주제를 가능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볼 것이다.
59
케인스는 동물적 낙관주의에 근거한 비합리적 행동이 경기 순환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았다. 즉,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이 기껏 동물적 느낌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 스럽게 군중의 동물적 비합리성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인지안 경제 이론으로 연결된다.(우습게도 많은 정부들이 시장보다 더 심한 동물적 기상에 의지하여 정책 결정을 함으로써 나라를 더 말아먹는다. 우리나라 여러 지방 정부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군중의 비 합리성에 대한 탁월한 담론을 듣고 싶으면 애커로프와 쉴러가 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1]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쉴러는 2013년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거기다가 감정적인 가중치까지 더해지니 감정 없이 투자하는 기계에 비해 많이 불리하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좋은 수익을 내려면 감정적 가중치에 의해 결론이 왜곡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모델을 고수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주 단순한 모델로 시간의 횡포를 견디며 투자하는 것이 그나마 시장 수익률을 이길 수 있는 현명한 길이다. 복잡한 모델로 승부하려면 방대한 탐색 능력을 가진 컴퓨터 알고리즘을 당해 낼 수 없으니 단순하게 가는 것이 좋다.
63
이런 특성으로 인해 주식 시장의 단기적 움직임은 예측하기가 힘든 반면, 장기적 움직임은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장기적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도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고 노이즈가 산재해 있어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데이터 처리 능력이 제한된 개인이 이런 일을 하려면 인자의 수를 대폭 줄이고 모델을 최대한 간명하게 하면 장기적으로 유의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간단한 예는 PBR이 1 미만이고, PER이 7 미만인 주식을 20개 사서 1년을 기다린다는 식의 모델이다. 이런 장난감 같은 모델만으로도 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너끈하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정말 개인 투자자가 이런 방법 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90%는 못 얻는다. 안 되기 때문이 아니고, 못 기다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1년 동안 온갖 일이 다 일어난다. 장기적 움직임에 대한 지식과 확신, 훈련된 행동 양식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좋은 선택을 해 놓고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 지 못한다. 시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2장에서 좀 더 소개하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만 살짝 들여다보자.
지난 2000년부터 12년간의 우리나라 모든 상장 주식을 조사해 보면, 임의의 주식을 매입하고 1년 기간 내에 30% 이상 상승을 경험할 확률은 2/3다. 3분의 2가 30% 이상 상승을 경험한다고 하니 1년을 견디기는 쉬울 것 같지만 이 중 절반이 23% 이상의 하락 경험을 하게 된다(30% 상승과 같은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하락은 23%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런 단기적 움직임을 견디지 못한다. 하락하면 불안 해서 처분하고, 상승하면 도로 돌아갈까 봐 처분한다.
68
섀넌이 주식 투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섀넌은 많은 주식 관련 노트를 남겼고 실제로도 성공한 투자자였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달리 노이즈가 많은 주식 시장이기에 그 속에서 정보의 본류를 찾는 정보 이론의 창시자인 섀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관심의 확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모르면 과학자 섀넌과 주식 연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내가 지인들에게 왜 컴퓨터 공학자가 ‘엉뚱하게’ 투자 공학을 연구하냐는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섀넌의 이야기로 설명을 대신한다.
섀넌은 동전을 던져서 2배를 받거나 반을 돌려받는 게임에서의 배팅 금액을 결정하는 균형 복원 포트폴리오라는 간단한 운용 전략이 수백 회 반복되면 잔고가 수백만 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 전략의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일반화한 것이 같은 벨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켈리인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켈리 베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궁극적으로 기하 평균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다. 기하 평균은 대략 ‘장기 복리 수익’과 비슷한 의미라 생각하면 된다. 5장에서 이와 관계된 내용이 소개된다.
72
피카소 작품의 진화를 보면서도 공학의 창의적 프로세스를 연관시킬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절박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은유적 연관성을 발견할 때가 많다. 고등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긴장도가 높은 은유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같은 현상을 놓고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자신의 머릿속에 형성된 지적 기본 빌딩 블록들이 어떤 수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물에 대해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들은 단지 우리 의식의 내부 구조들의 표상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새로이 만들 수 있는 산출물은 자신이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지적 빌딩 블록들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1단계의 추상화 수준에 있는 사람과 10단 계의 추상화 수준에 있는 사람은 애초에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통할 수도 없다. 투자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고 15분이 지나면 그가 가진 추상화 레벨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단계 이상 차이나면 대화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81
다양한 상황에 대해 이런 수치적 결론을 여럿 갖고 있는 선수와 대충 느낌으로 하는 선수는 상대가 되겠는가? 시중에서 제법 한다고 하는 사람도 이런 계량적 기준이 없으면,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봉이다. 포커의 고수는 상대가 베팅하는 모양과 결과를 몇 판만 보면 당장 자신의 적수인지 봉인지를 안다. 버튼 맥키엘이 포커 판의 격언을 하나 소개했다. “포커 판에서 누가 봉인지 모르겠거든 당장 자리를 뜨도록 하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86
다시 한 번 포커 판의 속담을 상기하자. “포커 판에서 누가 봉인지 알 수 없다면 자리를 뜨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봉들로 인해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면 시장을 뜨라. 당신이 봉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사고 나면 1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겨울이 왔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없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올 확률이 100%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해서, 손실을 포함한 모든 것이 확률적 전개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편한 잠을 청할 수 있다.
주식을 1년 동안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는 정말 드물다. 평균적인 투자자에게 1년이란 매우 긴 시간이다. 워런 버핏 같은 사람에게는 1년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일반적인 주식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일들을 알고 있다면 1년간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비교적 느긋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강한 확신이 있으면 시간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
138~139
주가는 장기적으로 합리적이다.
주식 시장에 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견고한 확률로 작동하는 불변의 법칙! 다행히 주식 시장에 불변의 법칙에 가까운 것들이 존재한다. 단, 장기적 관점으로 시장을 볼 때만 그렇다.
주가와 장부 가치의 동행
2000년부터 2013년까지의 한국 주식 시장이 보인 강한 패턴 중 하 나는 순자산의 증가와 주가 지수의 장기적 동행이다. 주가 지수의 증가율이 순자산 증가율을 못 따라가면 이어 주식 시장이 상승하고, 그 반대면 조만간 하락한다. 그림 22는 자본 총계(순자산과 거의 같다)와 지수의 흐름을 비교해 본 것이다. 분기별로 표시했는데, 시작은 2000년 1분기 말이고 끝은 2013년 3분기 말이다. 나의 팀에서 우리나라 상장 기업 전체의 자본 총계 변화를 종합지수 산정과 같은 방식으로 지수화하여 계산했는데 이를 ‘자본 총계 지수’라 하자. 주가 지수는 KOSPI와 KOSDAQ 상장 기업을 모두 포함하는 매경-FnGuide 지수인 MKF2000을 사용하였다. 두 지수의 상대적 흐름을 보기 위해 시작 시점의 자본 총계 지수를 100으로 놓고 MKF2000을 자본 총계 지수의 회귀선에 맞추었다.
171
⋯⋯이런 가설이 매년 만족되는 것은 아니다. 연도별 수익률은 들쑥날쑥하다. 10년 이상의 데이터를 놓고 보면 아주 강력하게 만족된다. 장기적인 호흡을 갖지 못한 투자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도 투자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주, 1개월, 3개월의 수익에 일희일비한다면 몇 년이라는 시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사실,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건강하다. 기다리지 못하면 알고도 수익을 낼 수 없다. 기다릴 수 있는 힘은 확신의 크기에 비례한다. 2008년 외환 위기 때나, 2011년 3월의 일본 대지진, 2011년 8월의 폭락장 같은 시기에 느긋하게 장을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강한 확신은 공부와 성공적인 경험의 누적으로만 가질 수 있다.
292
주가는 정규 분포가 아니다. 블린저밴드의 통계적 약점을 보완하면 더 유용해지는가?
볼린저밴드는 통계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큰 약점이 있다. 볼린저밴드는 최근 종가들의 평균과 표준 편차를 사용한다. 이것은 정규분포를 가정한 것인데 주가는 사실 정규 분포가 아니다. 복잡한 논의는 제쳐 두고, 주가에 로그를 씌우면 주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정규 분포에 훨씬 가까워진다.(로그를 씌운 다음 만들어지는 정규 분포를 로그 정규 분포라 한다.) 그래서 로그를 씌운 주가의 평균과 표준 편차를 구해서 이로부터 밴드를 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더 합리적이다. 이렇게 밴드를 구해서 다시 추가로 환원해 그리면 평균을 중심으로 위쪽 밴드가 아래쪽 밴드보다 넓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볼린저밴드를 바꾸어서 상단 돌파의 예후를 보아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볼린저밴드가 정규 분포 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로그 볼린저밴드가 더 합당하지만 조사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이럴 때 투자 공학자는 시장에 저항하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더 합리적이지만 시장의 역사가 지원하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300
이러한 하나의 조정 구간에는 다양한 수익과 손실을 본 사람들이 혼재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대표하는 심리는 있을 수 없고 다양한 군상들의 집단 심리가 통계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양한 군상은 다양한 노이즈를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 속했을 때 역사적 추이를 아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이 역사적 데이터로 볼 때 확률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주식 시장의 흐름엔 군데군데 이런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 운 좋게 위에서 처분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고통의 기간을 견디거나 참지 못하고 처분하게 된다. 고점 근처에서 팔고 조정의 바닥 근처에서 다시 사는 것이 좋을 듯하지만 그것은 극히 운이 좋아야 한다. 고점을 맞춘다거나 저점을 맞추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들 하는데 말이 쉽지 이것조차도 만만치 않다.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판다고 해 보았는데, 지나고 보니 무릎인 줄 알았던 것은 어깨였고, 어깨인 줄 알았던 것은 무릎이었던 경우가 흔하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이런 것을 기가 막히게 아는 도사가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경험으로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 특히 매도는 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들이 주로 시장에 머무르면서 손해 볼 때는 보고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전략을 취한다.
386
섀년의 천재성에 경외감을 표한 권위자들은 수없이 많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2]
그것은 단 한 사람이 그 영역을 구축하고 모든 적절한 질문을 제기했을뿐 아니라. 그 질문의 대부분을 증명하고, 단번에 그 모든 것에 대해 답을 내린, 역사상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다. — 토비 버거
어떤 사람은 섀넌을 아인슈타인에 비교하는 것은 섀넌에게 억울한 일이라고 한다. — 윌리엄 파운드스톤
디지털 시대에 섀넌의 업적을 말해 보라고 하는 것은 알파벳의 발명자가 문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얘기해 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솔로몬 골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