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은이)문학동네
아주 잘 읽었던 책. 다시 읽을 날도 있을 듯.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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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편지 교환이 무슨 그리 큰 의미였다고. 그것도 쉰 살이나 차이 나는 외국인과의 펜팔이었다. 쉰 이후로는 돈도,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아왔지만 자기를 굽히는 법을 모르던 사람이 쇼코의 침묵 앞에서는 체념했다. 쇼코의 편지를 모아놓았던 거실 협탁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우편함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쇼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집에서 인형처럼 붙박여 있던 쇼코의 모습이 유령처럼 뜻언뜻 눈앞을 스쳤다.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테고.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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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나는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잃어갔다. 기다려준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림자를 먹고 자란 내 자의식은 그 친구들마저도 단죄했다. 연봉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친구는 볼 것도 없이 속물이었고, 직장생활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 간다고 고백하는 친구를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끔찍함에 놀랐으나 그 조차 오래가지는 못했다.
씬짜오, 씬짜오
89~90
“씬짜오, 투이.”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말했다. 감색 털모자를 쓰고 코가 빨개진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를 보던 투이의 얼굴, “씬짜오.” 투이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장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줌마가 우리집으로 올라가서 우리 식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을, 아줌마와 투이가 엄마가 떠준 털모자를 쓰고 그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그 둘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 흔한 포옹도, 입맞춤도, 구구절절한 이별의 수사도 없었다. 그저 안녕, 그 한마디였을 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외투에 묻은 눈을 털고 길가로 걸어나갔다. 나는 길을 건넜고, 아줌마와 투이는 건너지 않았다. 내가 집 현관문 앞에 서는 걸 보고서야 아줌마와 투이는 걸음을 옮겼다. 저 모퉁이를 돌면 보이지 않겠지. 나는 현관문 앞에 붙박인 채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줌마와 투이를 바라봤다. 한 번, 두 번, 투이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아줌마와 투이는 모퉁이를 돌았고, 나는 더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올지 몰라. 나는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오지 않아 나는 투이네 집 앞까지 걸어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한지와 영주
164~165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미카엘라
225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든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든 그게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엄마는 그녀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아줌마들의 머리를 말고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빠는 말했다. 자본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앞으로는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으로 떨어지게 될 거라고.
어쩌라는 건가. 아빠, 지금 이 집안을 빈곤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범은 세상도 자본도 아니고 아빠 자신이다. 자기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내를 일곱 평도 안 되는 미용실에 하루종일 세워두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하지만 그녀는 아빠보다도 엄마를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일을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고는 아빠의 하루를 살폈다. 오늘 하루 피곤하지는 않으셨느냐, 읽고 있는 책은 어떠냐⋯⋯ 그녀는 엄마가 아빠를 다 받아주기 때문에 아빠가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헛꿈만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엄마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아빠 같은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라고. 이건 사랑도 뭣도 아니라 일방적인 착취라고 말이다.
작가의 말
291~292
서른 살 여름, 종로 반디앤루니스 한국소설 코너에 서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한참을 서서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은 멀리 있었고, 점점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이 년간 여러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했지만 당선은커녕 심사평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다. 그해 봄 애써서 썼던 「쇼코의 미소」도 한 공모전 예심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한 빚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등단 이후,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과 연애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몰두해서 글을 쓸 때만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은퇴하신 아빠께 드릴 선물이 이 책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엄마에게도 기쁨이 되어 좋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생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특이하고 예민한 애였던 나를 맡아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그분들께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사랑을 받았다. 사랑하는 이모와 이모부께도 감사드린다. 남편에게 고맙다. 살며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나의 고양이 레오, 미오, 마리, 포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