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시작
So Many Ways to Begin
Jon McGregor
167 그들은 목소리를 낮게 낮추고, 서로 착 붙어서 얘기했기 때문에, 종알종알 하는 말들이 마치 촛불 연기처럼 서로를 향해 구불구불 나아가는 것 같았다.
159 만져야 할 살갗이 많았고, 만져져야 할 살갗도 너무 많았다.
167 만약 직장을 잃었다면 대신 미끄러져 들어갔을 또 다른 생이란 딱히 없다.
203 나중에, 몇 년 후에, 엘리너는 겁이 났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가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의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알 수 없이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공포에 질렸었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싶었지. 좀 갈팡질팡하면서,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더랬어. 하지만 엘리너는 이런 것들을 당시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숨겼다. 설겆이를 끝내고, 남편과 함께 앉아 나머지 저녁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보았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손을 셔츠 속에 넣어 살갗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하고 엘리너가 얼마 있다가 중얼거렸고, 데이비드는 끄덕였다.
323 자기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거기 있기는 했지만, 떠나고 싶었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349 그러고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이번에 겪은 것과 같은 주말이 몇 주까지, 때로는 몇 달까지 늘어나던 시절을 생각했다. 간절하게 상황을 고쳐보고 싶었지만, 어떤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원망에 차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던, 어둡고 느리던 나날들.
393 둘은 거의 매일 바쁘게 지냈고, 어느 기진맥진한 저녁 데이비드가 농담했듯이, 그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피해 다닌 평범한 생활을 마침내 맞이하여, 행복했다.